[EAI·중앙SUNDAY 공동기획] 미 GNP 반토막 난 뒤 철회한 관세전쟁…90년 뒤 교훈은
편집자 주
1·2차 세계대전의 거울에 비친 2026년 강대국들의 패권경쟁과 무력 선호, 경제 위기와 민주주의 후퇴 그리고 권위주의 부상, 국제기구 무력화…. 오늘을 읽는 키워드지만, 100년 전에도 유효한 키워드였다. 기존 질서가 무너지며 낯설어진 오늘을 이해하기 위해 과거로 시선을 돌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100년간의 평화’ 막바지였던 1차 세계대전 직전, 그리고 1·2차 세계대전 사이의 전간기(戰間期) 시기와의 비교다. 세계적 역사학자인 마거릿 맥밀런은 “(양차 대전) 당시 전 세계를 짓눌렀던 개전(開戰)의 공포를 우리가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고 투자계의 스티브 잡스로 물리는 레이 달리오는 “1945년 형성된 새 질서가 진화해 1929~1939년 당시와 유사한 지점에 도달했다”고 봤다. 미 국방부전략기획담당 특별보좌관 출신의 할 브랜즈도 “지금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1930년대와 훨씬 더 닮았다”고 했다. 과연 어느 정도로 유사한 것인가. 역사의 반복(repeat)인가, 비슷한 변주(rhyme)인가. 중앙SUNDAY와 동아시아연구원(EAI)이 4일부터 공동기획 ‘1·2차 대전의 거울에 비친 2026년’을 통해 이 논쟁을 다룬다. ‘100년간의 평화’와 전간기가 왜 비극적으로 귀결됐는지, 오늘날 그 경로를 차단하려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색이기도 하다. 12명의 전문가가 상호의존부터 패권 경쟁, 극단주의까지 12주제를 탐색한다. 고정애 기자
미 워싱턴 FDR 기념공원에 있는 대공황 시절 무료급식 대열 동상. [중앙포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해방의 날’이라고 자칭한 2025년 4월 2일 대규모 ‘상호 관세’ 행정명령을 발표함으로써 미국의 평균 실효관세율은 2024년 2.5%에서 2026년 18.4%까지 치솟았다. 실효관세율이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여파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1933년 18.75%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2020년대는 1930년대 이후 가장 극단적인 보호주의로 평가되고 있다.
대공황 이후 경기 침체로 고통받은 제조업과 농민을 외국 경쟁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의회는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제정해 2만 개 이상 품목의 평균 관세율을 1929년 40.1%에서 1932년 59.1%까지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후버 대통령에게 요청했던 1028명의 경제학자들의 우려처럼 관세 인상의 긍정적 효과는 즉각 나타나지 않았다. 캐나다를 비롯해 쿠바·멕시코·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아르헨티나·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스위스가 보복관세를 도입하면서, 미국산 상품의 수출이 어려워졌다. 그 결과 1929년에서 1933년 사이 수입은 44억 달러에서 15억 달러로 66%, 수출은 54억 달러에서 21억 달러로 61%, 국내총생산(GNP)은 1031억 달러에서 556억 달러로 53% 각각 줄었다.
자국 제조업·농민 보호 ‘관세의 유혹’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4년 상호무역협정법을 통해 관세를 낮추고 국제무역을 회복하려 했다. 사진은 노변담화 모습. [중앙포토]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부정적 효과가 확산되자, 민주당은 1932년 선거에서 관세 인하를 공약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4년 상호무역협정법을 제정해 행정부가 양자 협상을 통해 관세를 인하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다. 1934~1945년 미국은 27개국과 32개의 상호 무역 협정을 체결해 관세율을 대폭 낮췄다.
제2차 세계전쟁이 끝나기 직전 미국은 23개국과 함께 품목별 양자 관세 협상을 진행, 승인했다. 다양한 양자 간 합의를 통합하여 1947년 10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이 타결됐다. 비록 처음 목표한 국제무역기구(ITO)가 설립되지 않았지만,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기 전까지 GATT는 여덟 차례의 라운드를 통해 자유무역을 신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1980년대부터 세계경제의 통합이 가속화되면서,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자유무역의 심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도입했다. 1985년 이스라엘과 최초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이후 미국은 1994년 캐나다 및 멕시코와 함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까지 출범시켰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도 한국을 비롯한 20여개국과 FTA에 합의해, 미국의 평균 실효관세율이 사실상 0%에 수렴했다.
21세기 들어 세계화의 부정적 영향이 대두하면서 자유무역에 대한 비판이 점차 확산됐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미국 기업의 해외직접투자 증가로 인한 제조업의 공동화(또는 탈산업화)였다. 제조업 고용이 감소하여 빈부 격차가 증가함으로써 무역정책이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했다. 2001년 WTO 가입 이후 세계 최대 무역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값싼 제품을 미국에 대량으로 수출하면서, 무역적자 문제가 미·중 관계의 핵심적 갈등 요인이 됐다.
중국이 미국 노동시장에 미친 충격을 의미하는 ‘차이나 신드롬’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 반영됐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 무역전쟁을 개시해 관세를 인상하는 것은 물론 첨단 과학기술에 대한 수출통제도 강화했다. 13차례의 고위급 회담을 거쳐 2020년 1월 미국과 중국은 1단계 무역합의에 서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적자와 불법이민을 거론하며 캐나다와 멕시코와 함께 결성한 NAFTA도 개정했다. 2020년 7월 NAFTA는 공식 폐기되고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으로 전환됐다. 미국 자동차 기업이 멕시코로 생산 기지 이전을 막기 위해 자동차 부품의 원산지 규정이 대폭 강화됐다.
2025년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 2기는 보호주의를 더 과격하고 노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관세 맨(tariff man)’을 자처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돼 펜타닐 밀수 근절을 명분으로 캐나다와 멕시코에는 각각 25%, 중국에 대해서는 10%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4월에는 1977년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의거, 모든 국가에 10% 기본관세, 57개국에 대해서 10~50%의 국가별 상호관세를 추가했다. 또한 철강·알루미늄, 그 파생상품에 50%, 자동차·자동차 부품에 대해 25%의 232조 관세가 도입됐다. 그 결과 2025년 7월 30일 미국의 평균 실효관세율은 18.4%까지 치솟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양자 협상을 통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국가에 상호관세율을 인하해 줬다. 영국·EU·일본, 우리나라 등은 상호관세가 발효되기 전에 미국에 대규모 생산시설 건설에 투자하는 조건으로 상호관세율을 15% 이하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는 중국이다. 미국이 대중 관세를 2월 4일 10%, 8일 10%, 3월 4일 10%, 4월 2일 34%, 8일 50%, 9일 21% 올리자, 중국도 대미 관세를 4월 4일 34%, 9일 50%, 12일 41% 인상했다. 또한 중국은 희토류를 비롯한 중요 광물의 대미 수출을 제한하는 수출 통제정책을 강화하고, 17개 미국 기업을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에 포함시켰다. 미국과 중국은 10월 부산 정상회담에서 관세전쟁을 중단하기로 타협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전쟁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IEEPA에 의거한 관세 부과 조치의 위법 판결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헌법이 의회에 부여한 관세 부과와 세금 징수의 권한을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명분으로 독단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합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1930년대와 보호무역 목표·상황 달라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전쟁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이 판결 직후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법 301조 조사를 거쳐 지난달 24일 60개국에 10~12.5%의 ‘강제노동 관세’를 발표했다. 이 관세는 세 그룹에 차등적으로 적용된다. 영국·캐나다·멕시코·인도 등 17개국에는 기존 관세에 10%, 중국·호주·브라질·베트남 등 38개국에는 기존 관세에 12.5%가 추가됐다. 우리나라, 일본·스위스·타이완·EU에는 기존 최혜국대우 관세율을 고려해 총관세율을 맞췄다. 이번 달 3일 뉴욕, 캘리포니아 등 민주당 소속 주지사가 이끄는 25개 주가 이 관세를 연방국제통상법원(USCIT)에 제소했다. 이 관세가 위법 판결을 받을 경우, 트럼프 행정부는 다른 관세를 신설해 지난해 7월 협상한 상호관세율을 지킬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율 인상으로 평균 실효관세율이 18%를 넘었다는 점에서 1930년대와 2020년대의 보호주의는 상당히 유사하다. 그러나 보호무역의 목표와 국제정치적 환경은 근본적으로 상이하다. 1930년대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효력은 4년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자국의 취약 산업 보호라는 목표가 달성되지 않고 주요 교역국의 보복관세로 무역이 급감하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4년 상호무역협정법을 통해 관세율을 점진적으로 인하했다. 이러한 교훈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브레턴우즈 회의에서 합의된 GATT를 통해 전 세계적 차원에서 자유무역을 전파했다.
ㆍ스무트-홀리법(1930)=미국이 1930년 제정한 관세법으로 2만여 품목에 평균 40~50%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대공황 속 자국 산업 보호를 내걸었으나 각국의 보복 관세를 촉발, 세계 무역량이 급감해 대공황를 더욱 악화시켰다.
ㆍ관세및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T, 1947)=스무트-홀리 같은 보호무역 재발을 막기 위해 1947년 출범했다. 관세 인하와 무역장벽 철폐, 최혜국 대우 원칙을 통해 자유무역을 확대했으며, 1995년 WTO로 발전적 해체·계승되었다.
ㆍ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1977)=대적(對敵)통상법(1917)의 ‘국가비상사태’ 조항을 대통령들이 관행적으로 활용하며 경제 규제를 하자, 의회 차원에서 마련한 법안. 국제경제 거래에 한해 대통령의 비상권한을 부여하면서 의회의 견제도 강화했다.
2020년대 트럼프 대통령은 보호주의를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다. 수입 물가가 올랐지만, 미국 경제는 여전히 건실하게 성장하고 있으며 주가지수도 역대 최고치를 계속 경신하고 있다. 또한 관세전쟁의 핵심 목표가 미국의 제조업 재건뿐만 아니라 중국과 전략경쟁의 승리에 있다. 2010년대 제조업과 무역에서 세계 1위로 등극한 중국의 도전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대외정책의 핵심 수단으로 계속 활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사법부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법 122조 및 301조를 비롯한 다양한 근거법령을 활용해 평균 실효관세율을 10%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2020년대 관세전쟁은 1930년대 관세전쟁보다는 훨씬 더 치열하고 더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주대 정외과 교수이자 최근 신설된 국회의장실 외교안보수석이기도 하다. 런던정경대(LSE) 국제정치학 박사. 미·중 관계와 동아시아 정치경제 등을 연구하며 『지역연구의 전환과 세계정치의 이해』 『글로벌사우스의 부상과 국제정치 변동』 등의 공저가 있다.
[출처:중앙일보, 고정애 기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57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