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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NK 논평] 미중 경쟁기 한국의 연루·방기 담론 비판

분류
논평이슈브리핑
발행일
2026년 8월 19일
관련 프로젝트
북한 바로 읽기(Global NK Zoom & Connect)

편집자 주

전재우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미중 경쟁 국면에서 국내 안보 담론의 주축을 이루는 연루와 방기의 위험이 대칭적이거나 기계적 균형을 이루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연루가 현재 진행 중인 지정학적 위험인 반면 방기는 미국의 동맹 산업 역량 내부화 이후에나 부상하는 후행적 위험이기에, 방기를 우려해 선제적으로 유무형의 자원을 내어주는 행동은 오히려 한국의 대체 불가능성을 훼손한다고 비판합니다. 전 박사는 불확실한 방기의 공포에 휩쓸리기보다는 미중 갈등 최전방으로의 연루 위험을 적극적으로 통제하는 한편, 차세대 핵심 역량을 국내에 확보하여 동맹 내 전략적 가치를 굳건히 지켜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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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

I. 서론

미중 경쟁이 격화되면서 국내 안보 담론에서 ‘연루와 방기’ 개념이 빈번하게 소환된다. 누군가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나 대만해협 유사시 등과 관련해 연루 위험을 지적하면, "동맹에 대한 기여가 충분치 않으면 방기의 위험도 있다"는 응수가 따라붙는 식이다. 이런 논의는 대개 별 소득 없이 공회전하거나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는 원론으로 끝난다. 반론도 어렵지만 유의미한 정책적 함의도 도출하기 어렵다.

이 담론 구도에서 북한 위협은 어김없이 소환된다. 북핵에 대응하려면 동맹 결속과 확장억제 강화가 불가피하고, 동맹에 소극적이면 방기를 자초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본고의 논지는 두 위험이 대칭적으로 병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발 위협이 한미동맹이 오랜 기간 ‘관리’해 온 상대적으로 특정된 위험이라면, 강대국 갈등으로의 연루는 한국을 분쟁의 최초 표적으로 만들 수 있는, 규모와 치명성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위험이다.

이에 본고는 연루와 방기의 위험을 등가로 놓는 ‘기계적 균형론’을 비판한다. 두 위험의 상대적 크기는 상수가 아니라 변수이며, 어느 쪽이 지배적인가는 주어진 구조와 국면에 따라 갈린다. 따라서 연루든 방기든 위험을 주장하려면 구체적 행위자와 구조적 정황, 유인 경로와 시계열 등을 특정해야 한다. 이를 갖추지 못한 채 "반대 위험도 있다"를 주장하는 것은 사실 균형적 제언이 아니라, 소모적 공전이거나 판단의 유예다.

연루는 군사적·지정학적 이유만으로도 성립하는, 이미 진행 중인 위험이다. 방기는 이와 다른 시계열 위에 있어, 연루 구조가 무르익은 뒤에야 개연적 위험으로 부상한다. 이 차이를 간과하면 위험한 처방이 정당화된다. 예컨대, "방기당하지 않으려면 지금 더 협력하고 더 내주어야 한다"는 ‘선제적 기여론’이 그것이다. 이 처방은 특정하기 어려운 방기 가능성을 명분으로 현재 실존하는 연루의 위험을 수용케 하고, 나아가 연루 이후에나 가능한 방기의 위험을 오히려 앞당긴다.

Ⅱ. 연루와 방기는 대칭적 위험인가: 이론적 재검토

기계적 균형론은 이론적 계보 안에서도 근거를 찾기 어렵다. 스나이더는 연루와 방기 중 어느 위험이 지배적인가를 결정하는 조건을 명시한 바 있다.[1] 동맹 의존도, 공약의 명시성, 이익 공유의 범위, 대안적 파트너의 존재, 체제의 극성이다. 사실 연루와 방기를 다루는 어떤 이론도 두 위험이 상존하니 늘 균형을 유지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어진 구조와 국면에서 어느 변수가 더 결정적으로 활성화되는지 판별하는 데 관심이 있다. 딜레마의 확인은 분석의 출발점이지 결론이 아니다.

빅터 차의 유사동맹론은 이 점을 한미일 관계에서 구체화한다.[2] 그에 따르면 한일 협력의 향방은 미국의 공약 변화에 따라 한일 양국이 어느 위험을 더 지배적으로 우려하게 되는가에 달려 있었다. 이 이론에서 위험의 무게는 국면에 따라 한쪽으로 기울며, 둘이 등가인 상태는 상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를 결정하는 것은 한일의 국내 정치나 양자 관계보다는 미국이라는 변수다. 한일 양국의 국내 정치 지형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한일을 아우르는 동맹 강화를 그 어느 때보다 강조하는 지금 양국의 안보협력이 전례 없는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이 구조적 규정성을 잘 드러낸다.

기계적 균형론은 위험의 경로와 시계열의 차이를 균질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위험한 정책적 처방인 선제적 기여론으로 이어진다. 이 처방은 그것이 막으려는 방기의 경로와 메커니즘을 특정하지 못한다. 또한 미국을 이익에 따라 동맹을 버릴 수 있는 행위자이자 관계국의 기여에 구속되는 행위자로 동시에 상정하는 내적 설명 부담을 안고 있다. 상세한 논증은 뒤로 미루고, 여기서는 방기 가능성을 결정하는 것이 한국의 기여 수준이 아니라 미국이 한국의 자산을 필요로 하는 정도라는 점만 확인해 둔다.

한국이 현재 처한 연루의 위험은 미중 전략 경쟁이 진행되면서 지정학적·군사적 영역에서 이미 상당 기간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온 구조적 변화로부터 기인한다. 반면, 방기의 위험은 동일한 경로에 놓여 있지 않다. 오히려 미중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미국은 한국의 지정학적 유용성을 더욱 중시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미국의 현 제조업 능력을 고려할 때 한국의 반도체·조선·배터리 역량 등은 미국이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방기의 위험은 최소한 미국이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역량을 자국의 ‘내생적’ 능력으로 상당 부분 이전(‘산업역량의 내부화’)하고 나서야 개연성을 갖는다. 즉, 방기는 연루의 동일 경로, 동일 시점의 대칭항이 아니라 연루 구조의 후과일 개연성이 크다.

그렇다면 기계적 균형론과 선제적 기여론은 한국의 담론장을 어떻게 왜곡하는가? 핵심은 스나이더 등 주요 이론이 조건부로 제시한 연루와 방기의 관계를 (무조건적인) 법칙처럼 다루는 데 있다. "연루를 피하려 거리를 두면 방기 위험이 커진다"는 연동은 특정 조건에서만 성립하며, 그 성립 여부의 무게중심은 한국의 행동보다 미국이 한국의 자산을 필요로 하는 정도라는 구조적 조건이다. 미국의 필요가 살아 있는 한 한국이 거리를 두려 해도 방기 위험의 증대는 제약되고, 반대로 그 필요가 사라지면 아무리 밀착하려 해도 방기 위험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을 개연성이 더 크다.

기계적 균형론은 바로 이 조건성을 탈각하고, 선제적 기여론은 그 위에 한국이 기여도를 높이면 미국이 방기할 수 없다는 결론까지 얹는다. 조건부 관계를 무조건적 법칙으로 오인하는 오류와 그 전제 위에 정책을 얹은 비약이라는 이중의 결함이다.

Ⅲ. 미국 변수: 한미일 삼각협력의 역사적 동학의 변화

냉전기에 미국은 종종 한미일 삼각협력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의 공약과 관여가 강화되는 국면에서는 한일 양국이 오히려 삼각협력을 회피했다. 한국과 일본이 실제로 가까워진 것은 미국이 안보 공약을 축소했을 경우에 한정되었다.[3] 예를 들어 1970년대 닉슨 독트린과 주한미군 부분 철수, 카터의 철군 시도는 양국에서 방기의 위험을 지배적 우려로 만들었고, 이때 한일은 서로에 대한 반감에도 협력 방향으로 기울었다. 반대로 미국의 공약과 관여가 견고했던 시기에는 한일 양국 모두, 특히 일본이 앞장서서 삼각협력 요구를 거부했다.

일본의 이러한 전략적 스탠스에는 뚜렷한 지정학적 배경이 있었다. 이 시기 일본에게는 임박한 위협이 없었다. 소련의 주력은 유럽 전선에 배치되어 있었고 북한과 중국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취약했다. 무엇보다 한반도가 미소 대결의 완충지대로 기능하는 한, 일본은 최전선에서 비켜나 안보를 미국에 위임한 채 경제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일본이 방위비를 GDP의 1% 이하로 유지하면서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린 것은 이러한 구조의 산물이었다.

한국과의 안보협력 제도화를 내포하는 삼각협력은 일본에게 이득 없이 위험만 키우는 과도한 선택이었다. 그것은 한반도 분쟁에 얽힐 확률을 높이는 것을 넘어, 미국의 진짜 표적인 핵보유국 소련과의 대결 구도에 스스로를 더욱 깊숙이 연루시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탈냉전 초기에도 유사한 패턴이 유지되었다. 소련이 사라졌고 중국은 아직 가난했으므로, 미국이 역내 안보에 더 기여하라고 거듭 요구했음에도 일본이 부응해야 할 동기는 없었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중국의 부상이 가시화되면서 일본의 계산이 바뀌기 시작했다. 일본은 1995~1996년 대만해협 위기를 통해 중국의 호전성을 뚜렷이 인식하기 시작했고, 댜오위/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대립은 영토·영해 주권과 동중국해 패권을 놓고 중국과 직접 충돌할 수 있다는 전망을 현실화했다. 2010년 중국의 GDP는 일본을 추월했고 오늘날 그 격차는 네 배를 넘는다. 여기에 과거 자국의 대중국 침략의 기억까지 더해져, 일본은 스스로를 중국의 위협에 노출된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냉전기 소련과 달리 중국의 팽창이 더 이상 한반도를 경유하지 않는다. 중국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라는 자체 해양 접근로를 통해 미국·일본과 직접 대면한다. 이제 강대국 갈등의 최전선에 노출되는 것은 일본 자신이 되었다. 냉전기에 삼각협력을 회피했던 바로 그 논리가 이번에는 삼각협력을 요구하는 논리로 전환되었다. 즉, 한미일 안보협력이 제도화를 통해 유사시 최초 표적을 일본에서 한국으로 전환시킴으로써 한국을 미국과 일본 양자를 위한 (새로운 맥락에서의) 완충지대로의 재편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함의는 분명하다. 현재의 삼각협력 심화 노력은 냉전기 1970년대처럼 미국의 관여도 약화에 따른 한일의 방기 우려가 커져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현재 미국은 2023년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안보 공약을 명문화하고, 이에 따른 삼각 사무국 설치 및 삼각 군사협력 강화 등의 제도적·군사적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즉, 지금 작동하는 동학은 미국의 관여도 약화에 따른 한일 양국의 방기 불안의 해소가 아니라 강화된 미국의 대중국 전략 중심의 연루 구조의 심화다. 이러한 구도는 유럽과 중동에서의 전쟁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유지되고 있다. 이는 복수의 전선 분산에도 미국의 대중국 전략의 우선순위가 흔들리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미국의 주요 위협 인식 전환은 한일 관계뿐 아니라 북한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탈냉전으로 소련이라는 주적이 사라지자 미국은 주한미군 주둔의 명분을 새로 확보해야 했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이 북핵 위협이었다. 1990년대 초 북한이 핵개발 의사를 밝힌 이래, 미국은 이 위협을 관리하면서 한미동맹을 점차 대중 지향으로 재편해 왔다. 1999년의 공동 미사일방어 요구가 그 구체적 신호탄이었고, 부시, 오바마, 트럼프를 거치며 삼각협력 강화는 대북 위협 대응의 외양 아래 일관되게 추진되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라는 큰 틀에서 추진된 북핵에 대한 ‘전략적 인내’조차 삼각협력의 토대를 본격적으로 다지는 방편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에 이르러서는 삼각협력이 중국을 겨냥한 것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이는 초당적으로 바이든 시기를 거쳐 트럼프 2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주목할 점은 북핵 대응 자체에는 삼각협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의 GDP는 북한의 수십 배에 이르고 국방비만으로도 북한의 경제 규모를 넘어선다. 북핵은 한미동맹의 확장억제나 한국 자체의 역량으로 대응할 문제이지, 한미일 삼각 구도를 요구하는 사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북한 위협이 삼각협력과 확장억제 ‘강화’의 명분으로 반복적으로 소환되어 온 것은, 그것의 본질이 대북 대응을 넘어 한국을 미국의 대중국 전략과 지역 전략에 결박하는 기제로 기능해 왔음을 시사한다. 후술하겠지만 이 점은 확장억제를 둘러싼 우려를 방기의 징후로 읽는 통념을 재고하게 만든다.

Ⅳ. 연루 위험의 현재성과 방기 위험의 후행성

1. 진행 중인 연루의 위험

연루는 단순한 담론적 가정이 아니라 실제 진행 중인 구조적 변화다. 냉전 종식 이후, 특히 중국이 부상한 이후의 전개가 이를 실증한다. 2026년 1월 공개된 미국 국가방위전략(NDS)은 4대 과업을 설정했고, 여기에는 본토·서반구 방어, 대중국 억제, 동맹의 부담 분담 확대, 방위산업기반 동원이 명시되어 있다.[4]

인도·태평양에서는 제1도련선을 따라 ‘강력한 거부 방어’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한반도에 대해서는 한국이 ‘결정적이지만 더 제한적인’ 미국의 지원 아래 대북 억제의 ‘주된 책임’을 질 능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주한미군의 성격이 대북 억제에서 대중 억제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한반도 주둔 전력의 운용은 한반도 밖 유사사태와 연동될 개연성이 증대된다. 국내 일각에서는 이를 ‘新애치슨라인’에 비유하여 방기의 신호로 읽지만, 이 비유는 재검토가 필요하다. 애치슨라인 자체가 통설과 달리 더 큰 전략적 설계의 일부로 해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별도의 논의를 요하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지휘부의 발언도 이러한 추세를 확인해 왔다.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2025년 5월 하와이 AUSA 태평양지상군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한국을 "중국 앞에 떠 있는 항공모함"에 비유했다. 그는 주한미군이 북한 격퇴에만 초점을 두지 않으며, 더 큰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부로서 역내 작전에도 초점을 맞춘다고 밝혔다. 그는 ‘거리의 횡포’ 극복을 위해 주한미군이 역내 작전 지원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도 언급했다.[5] 2025년 11월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의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헤그세스 미 전쟁부장관은 주한미군을 대만해협이나 동중국해 작전에 활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역내의 다른 비상사태에 대처할 수 있는 주한미군의 유연성 제고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답했다.[6]

이는 이미 주요 인사의 발언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2026년 들어 한국과의 사전 조율 없이 미군 전투기가 서해 방향으로 발진하여 중국과 군사적 마찰 직전까지 간 상황도 있었다. 한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한국 영토에서 발진한 전력이 제3의 분쟁에 투입되고, 그 과정에서 한국이 긴장에 노출되는 것은 연루의 교과서적 정의다.

이전 한국 행정부에서 전례 없는 수준으로 진척시킨 한미일 삼자 안보 협력의 제도화가 또한 이 구조를 고착시켰다. 캠프 데이비드의 협의 공약, 2024년 7월 도쿄에서 서명된 삼국 안보협력 프레임워크 각서, 정례화된 연합훈련 등은 삼각협력을 정권 교체를 초월해서 제도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제도화 자체가 악은 아니고, 필요하면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국익에 따른 판단인가에 대한 검증과 협의 절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상기 요소들은 한국이 연루에 이르는 인과적 경로를 단축한다. 이미 전략 문서의 명문화, 지휘부의 발언, 전력의 실제 차출, 제도적 고착이 모두 관측되었다. 각 단계는 다음 단계를 개연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화는 이탈 비용을 높인다. 협의 절차와 연합계획이 이미 짜여 있으면 한국이 특정 사안에서 발을 빼기 어려워지고, 그만큼 미국이 요구하는 역외 작전에 연루될 여지가 커진다.

연루의 위험은 군사적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후술하겠지만 미국은 자국 방위산업 기반의 한계를 동맹국의 제조 역량으로 보완하려 하며, 이 구도에서 한국이 유사시 미국의 ‘전진 병기창’ 역할을 전담하게 되면, 이 또한 미중 분쟁 시 중국·러시아의 우선적 타격 대상으로 부상할 개연성을 증대시킨다.

군사적 충돌 이전 단계에서도 비용은 부과될 수 있다. 한국 무역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은 배터리 핵심 원자재·희토류 등 핵심 투입재의 공급망을 쥐고 있고, 러시아가 대북 군사기술 이전의 수위를 높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연루는 직접적인 군사적 피격만이 아니라 경제적·기술적 취약성의 활성화라는 형태로도 현실화되는 것이다.

이렇듯 ‘연루의 위험’은 구조적 정황, 행위자, 유인과 경로와 시간표를 모두 특정할 수 있다. 이제 물어야 한다. 과연 ‘방기의 위험’도 이와 같이 특정할 수 있는가?

2. 방기 위험의 조건: 지정학적 가치와 산업적 가치

미국의 대중 전략에서 한국의 가치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산업적으로 한국은 현재 미국이 사실상 상실한 역량을 가졌다. 최상위의 반도체 생산 능력, 대형 상선·군함 건조 능력, 배터리 생산 능력 등이다. 예컨대, 중국의 해양 팽창에 맞서려면 한국 조선업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을 미국 조야는 공공연히 인정한다. 당연히 미국은 중국과의 전략 경쟁 국면에서 필수적 자산을 버릴 수 없다. 둘째,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중국의 목전에 놓인 전진 군사 기지다.

우선 이 산업적 가치의 배경에는 미국 방위산업 기반의 구조적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지원과 중동 개입으로 패트리어트·사드 등 정밀 요격체계의 재고가 소진된 가운데, 약화된 제조 기반 탓에 미사일 한 발의 주문부터 납품까지 상당한 리드타임이 소요된다. 예산을 증액해도 제조 현장을 담당할 숙련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첨단 무기 제조에 필수적인 희토류 공급망의 대중국 의존까지 겹쳐 있다. 전면전 발생 시 전투가 아니라 ‘공급망의 한계’로 패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미국 국방부 내에 팽배하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본 NDS의 방위산업기반 동원 과업, GDP 대비 4%대 중반으로의 국방예산 증액 권고, 저가 무기 대량 양산과 비전통 방산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모두 이 위기의식의 산물이다.

CSIS가 2026년 7월 6일과 7일 연이어 발표한 두 보고서는 이 맥락에서 미국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7월 6일 보고서는 미국 방위산업 기반의 전시 태세 전환 진척을 점검하면서 동맹국과의 산업협력을 핵심 과제의 하나로 다루고, 한화오션의 필라델피아 조선소 인수와 50억 달러 규모의 군함 건조 시설 전환 투자를 동맹국 산업협력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해외 건조 함정의 미 해군 조달을 금지해 온 국내법(번스-톨레프슨법)의 우회 가능성까지 언급할 정도로, 한국 조선업의 양산 능력에 대한 미국의 수요는 절박하다. 요컨대 현시점에서 미국이 한국의 산업 역량을 포기할 유인은 없으며, 오히려 그 역량을 확보·활용하려는 유인이 지배적이다.

근본적으로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구조는 한반도를 변수가 아니라 지정학적 상수로 삼아 설계되었다. 이는 정책 선호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므로 행정부 교체로 바뀌는 차원이 아니다. 통념적으로 미국 동아시아 전략의 주춧돌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간 일본의 산업 기반과 기지 체계가 서태평양 전체의 미군 작전을 지탱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일본 자신이 최전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최전선 국가는 대규모 상비군과 그에 상응하는 동원 체제를 요구받는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냉전기 내내 두 핵보유국의 대치선에 직접 노출된 상태에서 요시다 독트린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오직 한반도가 그 최전선 역할을 수행할 때 일본의 후방기지화 및 동아시아의 안보 구조가 성립할 수 있었다.

이는 사후 해석이 아니다. 냉전기 미국과 일본의 정책 결정자 수준에서 실제 반복적으로 확인한 구조였다. 한반도 전진기지·완충지대 구조는 한미일 안보협력의 가장 근원적인 조건이었다. 요시다 시게루 내각 이래 일본의 입장은 일관됐다.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해 안보를 보장하지 않는 한 미국과 협력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일본이 미소 대결의 최전선에 서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 근거했다. 미국의 계산도 다르지 않았다. 대소련 견제를 위해 일본을 자기 진영에 묶어두려면, 일본을 최전선에 놓는 대신 한반도를 완충지대로 배치해야 했다.

요컨대 한국의 버퍼 역할은 미일 양측 모두에게 안보협력을 성립하기 위한 전제였다. 1969년 11월 사토-닉슨 공동성명 제4항도 대한민국의 안보가 일본 자신의 안보에 긴요하다고 명문화했다. 이른바 ‘한국 조항’이다. 이 조항이 오키나와 반환 협상의 일부로 등장한 점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은 오키나와의 시정권을 반환하면서도 극동 최대 기지에 대한 작전적 재량을 지켜야 했고, 그러려면 한반도 유사시 기지 사용을 제약하지 않겠다는 일본의 확약이 필요했다. 실제로 1972년 8월 닉슨은 다나카에게 일본이 기지 사용을 어렵게 만들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한반도 공약과 대일 접근권이 서로를 조건 짓는다는 사실이 직접적으로 확인되는 장면이다.

냉전기와 현재의 지정학적 조건의 차이도 정확히 읽어야 한다. 냉전기 소련은 지상군 중심의 대륙 세력이었고, 사실상 태평양 방면에 연중 쓸 수 있는 부동항이 없었다. 그 결과 소련의 힘이 투사되려면 군사전략상 한반도라는 육상 축선을 반드시 경유해야 했다. 즉, 한반도는 완충지대인 동시에 소련 팽창의 유일한 육상 축선을 막는 길목이었다.

당시 미국에게는 소련이, 한국에게는 북한이 주적이었으므로 위협의 대상이 일치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위협의 방향과 성격은 같았다. 즉, 소련도 북한도 북쪽에서 오는 지상군 위주의 위협이었다. 미국이 소련을 막기 위해 향한 방향과 한국이 북한을 막기 위해 향한 방향이 겹쳤다. 따라서 한미는 주요 위협 인식의 불일치에서 오는 정렬 문제를 냉전기 내내 겪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상대는 소련이 아니라 중국이고, 중국은 소련의 지정학적 조건을 공유하지 않는다. 중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함대와 강력한 항공 전력을 보유하고,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라는 자체 해양 접근로를 갖는다. 즉 소련과 달리 중국의 힘이 역외로 투사되는 데에는 한반도 경유가 필수적이지 않다. 냉전기 한미 간 상대적으로 일치했던 위협의 방향과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이며, 이것은 오늘날 정렬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되고 있다.

다만 위협 인식이 근본적으로 어긋난다는 사실과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의 변화 유무는 다른 층위의 문제다. 정렬 문제는 미국과 한국이 무엇을 주요 위협으로 보는가의 차원에서 발생하지만,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는 그것만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반도의 ‘불가결성’은 소멸한 것이 아니라 그 맥락이 바뀌었을 뿐이다. 냉전기에 그것이 소련의 남하를 막는 지리적 거부의 가치였다면, 오늘날 그것은 중국이라는 위협에 맞서 미국이 동원하는 역량의 거점이자, 중국과의 직접적인 충돌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일본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사활적 가치다.

이 맥락에서 보면 미국의 한국 방기는 한국 하나를 포기하는 결정이 아니다. 연쇄적으로 일본을 포기하는 결정과 같다. 일본이 단독으로 중국에 맞설 수 없기 때문이다. 2025년 중국의 국방비는 SIPRI 추정으로 약 3,360억 달러, 일본은 622억 달러였다. 다섯 배 이상의 격차다. 격차의 원인은 의지가 아니라 경제 규모다. 일본이 지출 비율을 두 배로 올려도 격차는 여전히 크다. 여기에 중국의 핵전력과 일본의 비핵 지위, 인구 구조 등이 더해진다.

따라서 미국이 한국을 방기하면 일본에 남는 개연성 높은 선택지는 둘뿐이다. 미국 주도 질서로부터의 이탈, 아니면 독자 핵무장이다. 전자는 대중 관계 조정일 수도, 등거리 중립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서태평양에서 미국의 지위를 붕괴시킨다. 후자는 미국이 70년간 유지한 비확산 질서를 와해한다. 어느 쪽이든 한국을 방기해 절약할 수 있는 비용을 압도한다. 방기의 비용은 대상 하나에 그치지 않고 체계 전체로 번진다.

이 논거의 함의는 두 가지다. 첫째, 미국의 관점에서 한국의 가치는 단순히 양자적이 아니라 체계적이다. 선제적 기여론은 주로 양자 차원에 국한해서 한국이 미국에 무엇을 주어야 방기를 막을 수 있는가를 따진다. 그러나 한반도의 근원적 가치는 무엇보다 역내 안보 구조상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나온다. 둘째, 이 지정학적 가치는 단일하지 않다. 냉전기 거부의 가치는 물리적으로 고정되어 있던 반면, 오늘날 동맹 응집의 가치는 상당 부분 역량과 인식, 그리고 이에 기반한 제도화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것이 ‘방기’가 현실적 위험이라는 주장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응집의 가치가 인식에 일부 의존한다 해도, 그 인식을 떠받치는 것은 결국 한반도가 안보 구조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자체 역량이다. 다만 이 가치가 상대적으로 냉전기 지리처럼 저절로 주어진 성격은 아니라는 점은 지적해 둘 만하다. 역량에 대한 인식과 그에 기반한 상호 신뢰는 관리가 필요한 영역이다. 한편 구조와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인식이라면, 그리고 이러한 인식에 기반한 제도화라면 그 자체가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선제적 기여론’을 지지할 수 없는 이유다. 후술하겠지만, 한국의 가치를 지키는 길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운 정밀한 관계 관리에 있다.

이전할 수 없는 위치적 가치 외에도 현재 한국은 상당한 역량 기반 가치도 지니고 있다. 문제는 산업 역량이 옮겨질 수 있다는 데 있다. 바로 이 이전 가능성이 실질적인 방기 문제를 야기한다. 현재 미국의 정책이 기본적으로 한국을 결박하는 동시에 한국이 가진 것을 자국으로 옮기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 추세는 한 정권에 국한되지 않고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을 통해, 보조금과 시장 접근을 조건화하는 방식으로 한국의 첨단 제조 역량을 미국 안으로 끌어들였다. 북미에서 생산하지 않으면 보조금에서 배제되고, 미국 지원을 받으면 중국 내 생산이 제약되는 구조 아래, 삼성전자의 테일러 파운드리와 배터리 3사의 대규모 대미 투자가 사실상 강제되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압박의 형식을 바꾸었을 뿐이다. 제도화된 조건 대신 관세라는 노골적 위협을 앞세워, 2025년 관세협상에서 3,500억 달러 투자와 조선 협력을 끌어냈다. 수단은 세련됨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강압이었고, 방향은 하나였다. 한국 역량의 대미 이전이라는 점에서 두 정권은 연속적이었다.

CSIS의 7월 7일 보고서는 이 이전을 정당화하는 담론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보여준다. 보고서는 한국의 2025년 사상 최대 수출 실적(7,097억 달러)이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 것이 더 많다고 규정하고, 대중국 무역흑자의 급감(2018년 997억 달러에서 2025년 196억 달러로)과 합계출산율 0.75의 인구 구조를 근거로, 기존 수출 모델에 머무는 나라는 점차 주변부화되고 대체 가능한(substitutable) 존재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AI·반도체·통신, 배터리·정밀제조, 로봇·공작기계, 핵심광물·에너지 등 네 영역에 걸친 한국의 강점을 인정하는 형식을 취하되, 그 역량을 미국이 주도하는 기술·안보 생태계의 일원으로 편입시키라고 종용한다. 위기의 진단과 편입의 처방이 한 묶음으로 제시되는 이 구조는, 선제적 기여론의 논리가 국내 담론에 앞서 미국 측 담론에서 먼저 정식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겨냥하는 바는 분명하다. 한국의 자본과 기술과 인력으로 미국 안에 제조 능력을 짓는 것이다. 2026년에는 대미투자특별법 시행, 한미전략투자공사 설립, 워싱턴의 한미 조선협력센터 개소가 이어졌다. 공동 연구개발과 기술 교류, 인력 양성이 협력의 공식 내용으로 명시되었다. 반도체 부문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투자가 첨단 생산 능력을 미국 안에 복제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보면 한국의 ‘대체 불가능성’을 이루던 요소들이 시차를 두고 미국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생산 설비, 공정 지식, 숙련 인력이 그것이다. 기술 교류와 인력 양성이라는 협력의 언어는 달리 보면 수십 년간 축적된 암묵지의 이전을 뜻한다. 문제는 이 과정이 완성되면 한국 없이도 미국 안에서 반도체가 생산되고 군함이 건조된다는 점이다.

이 과정을 ‘리쇼어링’으로 개념화하는 것은 본질을 왜곡한다. 미국 기업이 해외로 내보냈던 생산을 되돌리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대미 투자는 미국 기업의 귀환이 아니라 한국 기업의 신규 그린필드 투자다. 한화의 필리조선소 인수는 자산 회수가 아니라 외국 자본의 인수다. 무엇보다 이전 대상에는 미국이 한 번도 가진 적 없는 것, 곧 한국이 독자적으로 축적한 공정 지식이 포함된다. 가진 적 없는 것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미국의 ‘온쇼어링’도 적절한 용어가 아니다. 이 용어는 미국이 무엇을 얻는가만 말할 뿐 상대(한국)가 무엇을 잃는가는 담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기만적이다.

현재의 국면은 미국이 한국이라는 외부 공급자에게 의존해 온 제조 기능을 자국의 영토와 기술 기반 안으로 옮겨 스스로의 능력으로 바꾸는 일종의 역량의 ‘내부화’ 과정이다. 내부화의 완료란 곧 외부 공급자에 대한 의존의 소멸이고, 그 공급자의 잉여화이다. 내부화는 본래 기업이 외부 기능을 자기 경계 안으로 흡수하는 과정을 뜻하지만, 이 맥락에서의 관건은 소유가 아니라 통제다. 한국 기업이 소유한 미국 내 설비도 수출통제와 역외 관할권, 보조금 조건부과를 통해 사실상 미국의 관할 자산으로 기능한다. 소유와 소재의 분리, 그리고 소재지 국가의 실효적 통제야말로 이 내부화의 특징이다.

본고에서 결정적으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방기 위험의 물적 조건은 미국에 공장이 생겼다는 사실이 아니라 한국의 대체 불가능성이 잠식되는 관계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국내의 ‘산업 공동화’라는 표현은 결과는 포착하지만 원인을 놓친다. 공동화는 비용 경쟁력 상실에 따른 자연발생적 유출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시되는 것은 미국이 패권 유지와 대중 경쟁을 위해 동맹을 상대로 구사한 강압적 협상의 산물이라는 측면이다.

상기 경로에서 방기가 한국의 현실적 위험이 되려면 미국의 관점에서 최소한 세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산업적 가치의 대체재가 확보되어야 한다. 둘째, 위치적 가치를 포기할 만큼 역내 전략이 재편되거나, 그 위치적 가치를 다른 방식으로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종합적으로 한국을 ‘유지’하는 비용이 잔여 가치를 넘어서야 한다.

지금은 어느 조건도 충족되지 않았다. 다만 미국 산업의 내부화가 진전될수록 첫째 조건은 점진적으로 충족된다. 미국 내 생산 기반이 성숙하고 기술과 인력의 이전이 끝나면 한국을 붙잡아 둘 산업적 유인이 사라지고, 미국의 계산은 지정학적 비용-편익으로 수렴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둘째 조건은 체계적이고 단기간 내 충족되기 어려운 성격이다.

이 첫째 조건의 충족은 이미 관측 가능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반도체 부문에서 미국은 한국산 HBM(고대역폭 메모리)에 의존하면서도 자국 기업 마이크론을 집중 육성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 보조금과 연계된 차세대 HBM 생산 기반이 본격 가동되면 한국 메모리의 대체 불가능성은 그만큼 잠식된다. 대미 수출의 구조도 시사적이다. 최근 대미 수출 증가분의 상당 부분이 미국 현지 공장 건설용 자재와 설비라는 분석이 있는데, 이는 현재의 수출 호조가 역설적으로 장차 한국 완제품 수출을 대체할 미국 내 생산 기반을 한국 스스로의 비용으로 짓고 있는 과정일 수 있음을 뜻한다. 여기에 스마트 자동화 공정과 로봇 기술의 이전이 더해지면, 숙련 인력의 대규모 이동 없이도 미국 내 생산이 자립하는 경로가 열린다. 요컨대 내부화는 가설이 아니라 명백한 진행형의 추세다.

이상을 종합하자면 미국 산업의 내부화 이후에 한국에 닥칠 개연성 높은 국면은 전면적 방기의 위험이 아니라 부분적 도구화다. 다시 말해, 산업적 가치가 사라지면, 미국에게 한국은 보호할 동맹이 아니라 확보·활용할 위치로서의 가치만 남는다. 즉 미군은 주둔하되 그 임무는 한국의 방위가 아니다. 한국은 보호받는 대상이 아니라 활용되는 기지가 된다. 이는 방기보다 오히려 더 다루기 까다롭다. 미국이 산업 역량의 내부화를 추구하는 한편, 대북 억제의 책임은 한국에 넘기고 전략적 유연성은 강화하려는 것은 정확히 이 방향을 가리킨다. 위치는 유지하고 우리의 역량을 흡수하면서 전략적 비용과 부담은 넘기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 방기의 위험은 단순히 연루의 대칭항이 아니라, 연루 구조의 후과(後果)에 가깝다. 연루가 현재의 문제라면 방기는 조건부 미래이며, 전면적 방기보다는 ‘도구화’의 형태로 현실화될 개연성이 크다. 이는 단순한 방기보다 훨씬 참혹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선제적 기여론에 기반한 정책은 바로 이러한 위험 조건을 스스로 조성하거나 촉진한다.

3. 선제적 기여론의 이중적 취약성

이상의 재구성은 국내 담론장에 널리 유통되고 있는 연루와 방기의 ‘기계적 균형론’과 ‘선제적 기여론’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한다. ‘선제적 기여론’은 방기의 위험을 우려한다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특정하지 않는다. 행위자가 미국이라는 것 외에 왜, 어떤 경로로, 언제, 얼마나 등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없다. 특정되지 않은 위험에 대한 대비는 그 유효성을 평가할 수 없다. 무엇을 얼마나 해야 충분한지 가릴 기준이 없으므로 이 논변은 언제나 ‘아직 부족하다’라는 또 다른 차원의 비약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II장에서 예고한 더 근본적인 문제, 곧 이 논변의 내적 비정합성을 자세히 살펴보자. 선제적 기여론은 미국을 상반된 두 방식으로 상정한다. 한편으로 미국은 이익 계산에 따라 동맹을 버릴 수 있는 행위자다. 그렇지 않다면 방기를 걱정할 이유가 없다. 동시에 미국은 동맹의 기여 정도에 구속되는 행위자다. 그러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행위자에게 이미 받은 기여가 매몰비용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무시된다. 무엇보다 미국은 단순히 한국과의 양자관계만 고려하지 않는다. 미국이 모종의 이유로 방기를 검토할 단계에 진입했다면 한국이 무엇을 주었는지가 아니라 더 큰 틀에서 앞으로 무엇을 더 줄 수 있는지(만)를 따질 수도 있다.

더욱 근본적으로 두 가지 문제가 더 있다. 첫째, 이러한 주장의 검증 불가능성이다. 기여의 예방 효과는 반증 가능하지 않다. 방기가 없으면 기여 덕분이라 하고, 방기가 현실화되면 기여가 부족했다 하면 되기 때문이다. 둘째, 이러한 비과학적 사고 자체도 문제지만, ‘선제적 기여론’이 말하는 실효적 기여를 구성하는 내용이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이들 내용 대부분은 역외 작전 협력, 연합성의 심화 등과 관련이 깊은 연루의 구성 요소들이다. 연합성 강화의 사전적 정의 자체가 공통의 적에 대한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결국 미래의 불특정한 방기를 막기 위해 현재의 특정한 연루를 감수하라고 주장하는 바와 같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이 요구하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일부) 동의나 연합체계 강화는, 연루의 위험이 가시적으로 닥쳐도 회수하기 어렵다. 최악의 경우 한국이 치를 대가는 강대국 분쟁의 당사자화다.

선제적 기여론의 처방은 지정학적 영역에만 작용하지 않는다. 미국이 필요로 할 때 확실히 기여하라는 요구는 3,500억 달러 투자 패키지의 정당화 논리이기도 했다. 그런데 방기가 ‘내부화’ 이후에 오는 것이라면 이 기여는 자기 목적을 배반한다. 더 깊이 기여하고 더 많이 이전할수록, 한국은 자신의 대체 불가능함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대체재를 미국 땅에 자기 비용으로 지어 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선제적 기여론은 두 방향에서 손실을 낳는다. 지정학적으로는 불특정한 미래 위험을 명분으로 특정한 현재 위험을 받아들이게 한다. 산업적으로는 ‘지불’을 통해 예방하려던 그 위험의 조건을 앞당겨 완성할 개연성을 증대시킨다. 이 처방은 두 위험 사이의 균형이 아니라 두 위험의 동시 극대화에 가깝다.

Ⅴ. 예상되는 반론

본고의 입장에 대한 반론도 가능하다. 첫째, 확장억제의 신뢰성 우려야말로 방기 위험이 실재함을 보여준다는 반론이다. 실제로 한국의 자체 핵무장 논의 등을 지속적으로 추동해 온 현실적 우려다.

그러나 이 반론에 답하기 전에, 확장억제의 성격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핵무기의 기획·운용부터 최종 사용에 이르는 모든 권한은 헌법상 핵보유국의 배타적 국가지휘권에 속한다. 동맹국이 자문회의체에 참여하고 일부 정보를 공유받는다 한들, 그 권한 자체가 분할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확장억제는 구조적으로 권한의 분유(分有)가 아닌 ‘기대’의 영역이며, 그 기대의 신뢰성은 언제나 검증 불가능성을 내포한다. 따라서 ‘기대 관계를 강화한다’는 수사는 논리적으로 대단히 어색한 연결이다.

검증할 수 없는 기대에 대한 불안은 스스로 해소되지 않는다는 특성 때문에, 그것은 사실상 끝없는 결박의 명분으로 활용되기 쉽다. 이 검증 불가능성은 뒤에서 보듯 확장억제를 둘러싼 담론 자체의 성격을 규정한다. 이 원리적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이하 논의의 출발점이다.

이 원리 위에서 보면, 확장억제 신뢰성 우려가 방기 위험의 실재를 보여준다는 통념은 오히려 뒤집혀야 한다. 확장억제의 신뢰성 문제가 방기의 증거라는 통념과 달리, 그것은 미국이 한국을 결박하는 또 하나의 통로에 가깝다. 한국이 북핵을 두려워할수록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의존은 깊어지고, 그 의존은 다시 한국을 미국의 역내 전략에 묶어 두거나 청구서를 제시할 기제로 작용한다.

그런데 앞서 살펴보았듯, 그 우산의 명분인 북핵 위협 자체가 순수하게 외생적인 것만은 아니다. 미국은 냉전 종식 이후 한미동맹을 대중국 지향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는 한편, 이를 대중국 및 지역 전략의 명분으로 활용해 왔다. 따라서 확장억제를 둘러싼 한국의 불안은 단순한 ‘방기의 전조’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을 연루 구조 안에 묶어두는 전략적 기제로서의 성격이 더 본질적이다. 즉, 확장억제에서 비롯되는 불안감은 극단에 이르지 않는 한, 방기의 신호라기보다 한국의 '자발적' 연루를 효율적으로 심화하는 유용한 동인으로 작동한다.

여기에는 특정의 결여라는 또 다른 문제가 겹친다. 확장억제가 상정하는 최악의 시나리오, 곧 북한의 대남 핵사용은 정권의 존립이 걸린 극단적 국면에서나 합리적으로 상정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선제적 요구는 이 사용 개연성에 대한 구체적 판단보다, 확장억제 ‘강화’라는 이름을 표방할 수 있는 조치들 자체에 쏠려 왔다. 자문회의체 신설이나 전략자산의 정례적 전개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조치들이 실제로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얼마나 ‘강화’하는지는 그 자체로 불분명하다. 자문회의의 빈도나 자산 전개의 가시성이 억제의 실효성과 정비례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결국 무엇을 어느 정도 얻어야 확장억제가 충분히 신뢰할 만큼 ‘강화’되는 것인지에 대한 기준 없이 요구만 반복되는 구조다. 이 기준의 부재는 미국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기준이 없는 한 미국은 그 대가로 범주와 규모에 구애받지 않는 청구서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이 핵우산을 실제로 철회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방기일 것이다. 확장억제의 제공이 결박이라 해서 그 철회가 방기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국면에서 확장억제를 둘러싼 움직임은 철회가 아니라 표면적인 ‘강화’와 이를 빌미로 한 다양한 층위에서의 제도화이다. 워싱턴 선언이 그 단적인 예다. 즉 지금 관측되는 추세는 우산을 거두는 조짐이 아니라,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검증될 수 없는) 핵자문회의체와 전략자산 전개 같은 조치들을 매개로 각종 연루의 제도적 결박이 심화되는 방향이다. 따라서 확장억제에 대한 우려를 방기의 근거로 드는 반론은, 정작 그 우려로 인해 어떻게 연루가 실질적으로 강화되는지를 외면하거나 간과한다.

다만 확장억제 신뢰성을 정책 문제로 논하는 것과, "확장억제가 불안하니 방기 위험도 있다"며 연루 논의를 상쇄하는 화법은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구별은 전자가 본고의 규율(행위자와 경로와 시간표의 특정)을 충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앞서 보았듯 핵 사용의 권한은 원리상 동맹국과 분유되지 않으며, 그 신뢰성은 애초에 검증도 특정도 불가능한 기대의 영역에 속한다. 이 점에서 확장억제는 본고가 요구하는 규율이 원리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예외적 논제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특정이 불가능하므로 반증도 불가능하고, 반증이 불가능하므로 확장억제는 방기 위험의 총칭으로 무한정 소환될 수 있다. 확장억제를 방기 차원의 문제로 분류하는 순간, 우리는 개념의 원리적 한계를 미국이 설계한 결박의 논리에 대한 정당한 우려로 착각하게 된다.

둘째, 2026년 NDS가 대북 억제의 주된 책임을 한국에 넘긴 것을 방기의 징후로 읽는 반론이다. 그러나 이는 부담의 재분배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그 목적은 한국을 방기하는 것이 아니라 미군 전력을 대중 임무로 전환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방기라기보다 연루 구조 재편의 일부이며, 방기론의 유력한 근거처럼 보이는 이 사실조차 자세히 보면 연루의 문법으로 쓰여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에서 불거진 주한미군 감축 발언과 방위비 압박이 곧 방기 위험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그 압박은 동맹 해체의 예고가 아니라 협상 지렛대였다. 방위비 증액과 3,500억 달러 투자 패키지가 그 대가로 회수되었다. 방기를 거론한 압박의 귀결이 이탈이 아니라 더 큰 결박과 더 깊은 내부화였던 것이다.

Ⅵ. 결론

1. 담론의 규율과 연루의 위험 관리

연루든 방기든 위험 주장이 논쟁 가능한 주장으로 인정받으려면 행위자, 유인과 경로와 시간표 등을 특정해야 한다. 행위자와 경로를 특정하지 않은 채 반대 위험만 내세우는 주장은 논증이 아니라 논증 회피다. 담론의 조건반사적 기계적 균형은 그 자체로 오히려 현실의 불균형을 가리고 진행 중인 구조 변화를 무비판적으로 다루게 만드는 또 다른 위험을 낳는다. 기계적 균형은 중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울어진 현실 위에서의 균형 화법은 기울기의 반영일 뿐이다.

두 위험이 상이한 시간성과 영역에서 작동하므로 대응도 분리되어야 한다. 연루 관리는 현재적, 지정학적, 군사적 과제이다. 무엇보다 한국은 미중 갈등의 최전방이 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파생적으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행사에 사전 동의와 협의를 제도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여기서 감축 문제를 정면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통념은 주한미군 감축을 방기의 징후로 읽고 이를 막는 것을 안보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왔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 오늘의 주한미군은 그 성격이 변하고 있다. 그 임무가 대북 억제에서 대중 억제로 재정의되는 한, 병력의 유지는 곧 연루 구조의 유지를 뜻한다. 이 조건에서 감축은 방기가 아니라 연루 완화의 계기일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이 역외 전개를 고수한다면, 한국은 주한미군의 일부 감축을 감수해서라도 강대국 갈등 한복판으로 끌려드는 위험을 줄이는 편이 나을 수 있다. 감축이 곧 방위 공백이라는 등식은, 주한미군이 대북 방어에 전념하는 경우에 성립하기 때문이다. 역으로 감축=연루 완화 등식 또한 잔류 전력의 임무 구성이라는 조건을 특정해야 성립할 수 있기에, 이에 대한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이 판단의 근거는 두 위험의 비대칭성에 있다. 북한발 위협은 한미동맹이 오랜 기간 관리해 온, 상대적으로 규모와 성격이 특정된 위험이다. 반면 강대국 갈등으로의 연루는 한국을 강대국 간 분쟁의 최초 표적으로 전환할 개연성이 크며, 그 피해는 회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를 수 있다. 관리 가능한 위험을 이유로 회복 불가능한 위험을 떠안는 것은 합리적 교환이 아니다. 이 점에서 강대국 갈등으로의 연루 위험은, 적어도 그 잠재적 규모와 치명성 차원에서, 북한발 위협보다 우선시해야 할 사안이다. 같은 맥락에서 서해 같은 민감 공역의 활동은 기획 단계부터 정보 공유를 의무화해야 한다. 요컨대 공약의 깊이가 아니라 공약의 조건을 다투는 것이다.

2. 방기의 위험 대비와 정책적 함의

‘방기의 위험’에 대한 남용을 비판하는 것은 방기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의 정확한 경로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기 대비는 미래의 과제이다. 그 실질은 미국의 산업 ‘내부화’ 속도의 관리다. 방기가 내부화의 완성을 조건으로 온다면, 진짜 대비는 ‘지금 더 많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대체 불가능성’을 지키는 것이다. 대미 투자에서 원금 회수와 수익 배분 장치를 실효화하고, 기술과 인력 이전의 속도와 범위를 관리해야 한다. 설계와 공정의 최상류 역량은 반드시 국내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이 대체할 수 없는 차세대 역량으로 옮겨가 대체 불가능성 자체를 갱신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한국의 안전과 번영은 ‘방기의 위험’을 앞세워 사실상 무조건적 기여를 선제적으로 주문하는 처방과 정반대 방향에 놓여 있다.

방기 불안을 이유로 연루 관리를 포기하고, 연루 구조 안에서 동맹으로서의 ‘신뢰’를 입증하려 내부화를 가속함으로써 오히려 방기 위험의 가능성을 키우는 두 트랙을 뒤섞으면 최악의 조합이 나온다. 유감스럽지만, 이것이 ‘기계적 균형론’과 ‘선제적 기여론’이 실천적으로 도달할 개연성이 큰 지점이다. ‘균형’은 그 언어 자체가 긍정적 이미지를 갖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균형은 저울의 눈금을 읽은 뒤에 말하는 것이지, 무엇이 올라 있는지 보지도 않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연루와 방기 사이의 균형이 아니라 두 개념 각각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력이다. ■

[1] Glenn H. Snyder, "The Security Dilemma in Alliance Politics," World Politics, vol. 36, no. 4 (1984), pp. 461-495.

[2] Victor D. Cha, Alignment Despite Antagonism: The United States-Korea-Japan Security Triangle (Stanford,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9).

[3] Jaewoo Jun, "Underlying Dynamics for US-Japan-South Korea Tr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ISPI Commentary, Istituto per gli Studi di Politica Internazionale, 8 April 2024, https://www.ispionline.it/en/publication/underlying-dynamics-for-us-japan-south-korea-trilateral-security-cooperation-169126.

[4] U.S. Department of War, 2026 National Defense Strategy (Washington, D.C.: Department of War, 23 January 2026), https://media.defense.gov/2026/Jan/23/2003864773/-1/-1/0/2026-NATIONAL-DEFENSE-STRATEGY.PDF.

[5] 제이비어 브런슨(Xavier T. Brunson) 주한미군사령관, 미국 육군협회(AUSA) 태평양지상군(LANPAC) 심포지엄 기조연설, 하와이 호놀룰루, 2025년 5월 15일(현지시간).

[6]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직후 안규백 국방부장관·피트 헤그세스 미 전쟁부장관 공동 기자회견,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2025년 11월 4일. 관련 보도: 「헤그세스 "한국 핵잠 건조 적극 지원"…한미 방산협력 강화」, 『한국일보』, 2025년 11월 4일.

■ 전재우_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오인환_EAI 수석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11) | leesj@ea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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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재우_한국의 연루방기 담론 비판_260819_GlobalNK논평.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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