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NK 스페셜리포트] ② 증거 기반 북한 연구: 김정은 시대 국가전략 전환과 엘리트 동학
편집자 주
김택빈 국방대학교 교수는 북한의 주요 정책 전환이 최고지도자의 일방적 결단이라는 '수령 결정론'에서 벗어나, 엘리트 집단과의 권력 분점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분석합니다. 저자는 김정은 시대의 네 차례 국가전략 전환을 중심으로 '홍(紅)'과 '전(專)' 성향 엘리트들의 현지지도 동행 데이터를 추적하여 정책 노선과 엘리트 구성의 역동적인 상관관계를 실증적으로 제시합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증거 기반의 분석이 북한 내부의 권력 지형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향후 대북 전략을 선제적으로 준비하는 데 필수적인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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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단절의 시대, 그러나 변곡점은 다시 온다
2023년 말, 북한은 남과 북을 ‘적대적인 두 국가’로 규정하며 통일이라는 단어를 스스로 지워 버렸다. 대화의 창구는 닫혔고, 교류는 사실상 끊겼다. 지금 한반도에는 서로를 향한 끈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이 겨울도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70여 년간 남북관계는 늘 단절과 해빙 사이를 오가는 진자(振子)였고, 전환의 변곡점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왔다. 진짜 문제는 그 순간이 닥쳤을 때 우리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준비의 핵심은, 북한의 변화를 먼저, 그리고 정확히 읽어내는 능력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북한을 어떻게 읽어 왔는가? 대개는 ‘수령의 교시’나 ‘당의 공식 문건’을 토대로 해석해 왔다. 이 연구는 바로 이러한 전통적인 관습에 질문을 던진다. 북한의 정책 발표문만 읽으면, 모든 결정은 마치 최고지도자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오랫동안 북한의 정책 변화를 수령의 단독 결단으로 설명해 왔다. 이른바 ‘수령 결정론’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체제 연구가 일관되게 지적하듯, 독재자라 할지라도 혼자서 통치하지는 못한다. 정책의 방향이 바뀌면 기존 노선에서 이득을 보던 엘리트 집단은 밀려나고, 새 노선을 떠받칠 집단이 떠오른다. 손실을 보는 집단의 불만은 곧 지도자에 대한 위협이 된다. 그래서 중대한 정책 전환은 지도자와 엘리트 사이의 권력분점(power-sharing)이라는 줄다리기 속에서 빚어진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이 연구의 질문은 단순하다. 김정은 시기의 중대한 국가전략 전환은 수령의 일방적 결단인가, 아니면 특정 엘리트 집단이 먼저 부상해 견인한 결과인가? 정책은 발표되는 순간에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발표 이전에, 누가 수령 곁에 서는가가 먼저 바뀔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 변화를 추적해 북한 정책의 방향을 미리 읽을 수 있다. 이 연구는 이러한 질문에 경험적 증거로 답하고자 한다.
이 작업은 방법론적으로도 하나의 시도를 담고 있다. 체제의 폐쇄성 때문에 북한 연구는 오랫동안 담론 분석과 일화적(anecdotal) 사례 해석에 주로 기대어 왔다. 그러나 최고 지도자 주변 인물들에 대한 자료를 축적하고 분석하는 것처럼, 체제의 틈으로 새어 나오는 다양한 신호들을 체계적으로 모아 검증할 수 있다면, 우리는 보다 정확하고 과학적인 추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의 제목이 말하는 ‘증거 기반 북한 연구’란 바로 이런 접근을 가리킨다. 다만 본 발표는 그 접근의 완성이 아니라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김정은 공개활동 동행 엘리트 자료를 바탕으로, 어떠한 방식을 통해 이러한 방법론적 전환이 가능한지 보여주는 일종의 탐색적 연구인 셈이다.
이 연구는 다음 순서로 진행된다. 2장에서 본 연구의 연구 질문이 왜 중요한지를 선행연구와의 관계 속에서 짚고, 3장에서는 권력분점과 ‘홍·전’이라는 이론적 렌즈를 소개한다. 4장에서 데이터와 방법론을, 5장에서 세 개의 경쟁 가설을 제시한 뒤, 6장에서 네 차례 전략노선 전환을 ‘네 개의 장면’으로 보여준다. 7장과 8장에서 각각 학술적 함의와 정책적 제언을 제시할 것이다. 마지막 9장에서는 본 연구의 한계와 향후 연구 방향성을 짚는다.
2. 왜 이 연구가 중요한가: 선행연구 속 이 연구의 자리
권위주의 체제 연구는 오래전부터 ‘지도자–엘리트 간 상호작용’을 정치의 핵심 기제로 전제해 왔다. 선거 같은 제도적 정당성이 약한 체제에서 지도자는 생존을 위해 엘리트를 포섭(cooptation)하거나 억압하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대다수의 경험 연구는 여전히 '지도자'의 생존 전략에 초점을 맞춘다. 쿠데타·대중봉기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의회나 정당 같은 제도를 왜 운영하는지를 설명하면서도, 엘리트는 능동적 행위자가 아니라 지도자의 전략에 조종되는 수동적 대리인으로 인식되어 왔다.
Bueno de Mesquita & Smith(2011)의 ‘승리연합–선출인단’ 논의나, Geddes et al.(2018)의 제도·포섭 논의도 결국 ‘어떤 엘리트 관리 전략이 지도자의 생존에 유리한가’를 묻는다는 점에서 지도자 중심의 시각을 공유한다. 즉 엘리트는 분석의 대상이되, 행위의 주체는 아니었다.
2.1. 최근의 전환: 엘리트를 ‘행위자’로
이러한 한계를 인식한 최근 연구들은 분석의 초점을 지도자 1인에서 엘리트의 배경·구성·영향력으로 옮겨왔다. Newson & Trebbi(2018)는 북한·중국·아프리카 엘리트의 활동 기록을 분석해, 권위주의 권력 배분이 ‘승자독식(winner-take-all)’이 아니라 ‘승자다득(winner-take-more)’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본다. 지도자가 더 많이 갖되, 내부 파벌과 엘리트에게도 상당한 수준의 권력이 분배된다는 것이다. Shih & Lee(2023)는 중국공산당 인사 데이터로 후원자–피후원자 파벌이 어떻게 결속을 유지하는지를 보였고, Kim(2021)은 북한 엘리트의 기관 단합력·경력이 숙청 위험을 가른다는 점을 실증했다.
엘리트 구성의 변화가 정책 노선과 연결된다는 통찰은 특히 중국 연구에서 뚜렷하다. 이홍영(1997)과 주장환(2009; 2017)은 중국 지배 엘리트가 ‘혁명간부 → 기술관료 → 일반관료’로 바뀌는 과정이 개혁·개방이라는 정책 노선 전환과 맞물려 있었음을 보여준다. 즉, 엘리트의 ‘유형’이 바뀌면 체제가 우선시하는 정책의 ‘방향’도 바뀐다는 것이다.
2.2. 북한이라는 빈 공간
문제는 이런 ‘엘리트 행위자론’이 자료 접근이 비교적 쉬운 중국·러시아·베트남을 중심으로 축적되어 온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여전히 경험적 분석이 매우 빈약하다는 점이다. 한기범(2009; 2019; 2023)은 북한 경제개혁의 추진과 후퇴를 ‘조직행태’와 ‘관료정치’ 모델로 풀어내며 ‘수령 결정론’의 한계를 지적했고, Ishiyama(2014)는 현지지도 네트워크로 강경파–온건파의 교체를 추적했다. 표윤신·허재영(2019)은 김정은 시기 당·정·군 동행 네트워크에서 2016년 이후 당의 부상을 포착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특정 시점의 엘리트 현황을 ‘기술(description)’하거나 네트워크를 한 시점에 고정해 분석하는 데 그쳤다.
요컨대 기존 연구의 빈자리는 분명하다. 구체적인 정책 전환 국면을 시계열적으로 살펴보고, 전후의 엘리트 구성 변화를 비교해 둘 사이의 선후관계를 추적한 연구는 거의 이뤄진 바 없다. 이 연구는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첫걸음으로, 김정은 시기 네 차례의 주요 전략노선 전환을 식별하고 각 시점 전후 ‘동행 엘리트’ 구성의 변화를 추적하며, 이를 식별하기 위한 방법론적 의제를 함께 제시한다.
3. 이론적 프레임: 권력분점과 홍·전 갈등
3.1. 권력분점
Svolik(2012)은 권위주의 정치의 핵심 갈등이 대중과의 대립이 아니라 '지도자와 엘리트' 간의 권력분점 문제에 있다고 본다. 그의 경험적 발견에 따르면, 비헌법적 방식으로 권력을 잃은 독재자 대다수는 대중봉기가 아니라 내부 엘리트의 쿠데타로 축출되었다. 지도자의 가장 큰 위협은 외부가 아니라 측근들 속에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도자는 엘리트를 억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을 달래고 포섭하기 위해 일정한 권력을 나눠 줄 수밖에 없다.
이 논리를 정책결정에 적용하면, 중대한 노선 전환을 지도자 1인의 결단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새 정책은 어떤 집단에는 이익을, 다른 집단에는 손실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자는 정책을 공식화하기 ‘이전에’ 손실을 볼 집단을 미리 약화시키고 정책 수행에 필요한 집단을 선제적으로 끌어올려 반발 위험을 줄이려 할 수 있다. 엘리트 역시 자신들의 선호가 담긴 정보·대안을 먼저 제공하며 수령의 상황 인식을 형성하는 의제 설정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Meng et al.(2023)이 말하듯, 진정한 권력공유는 단순한 이익 분배가 아니라 의제설정권·강압수단 같은 ‘보장’을 포함한다. 두 방향 모두 ‘발표 이전의 구도 변화’로 관측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연구의 분석적 출발점이다.
3.2. 갈등모델과 ‘홍(紅)·전(專)’
엘리트 집단은 결코 동질적이지 않다. 정치적 충성·혁명성을 중시하는 집단과 전문지식·실무능력을 중시하는 집단은 서로 다른 정책 선호를 갖는다. 권위주의 정책결정을 집단 간 대립의 산물로 보는 갈등모델(conflict model), 그중에서도 정책을 ‘상이한 정책선호를 가진 집단들의 경쟁 결과’로 보는 정책경향모델(policy tendency model)이 여기에 연결된다. Hamrin(1990)은 중국 엘리트를 개혁·보수로 나눠 정책 방향을 노선 경쟁의 승패로 설명했고, Moody(1984)는 이를 ‘홍(紅, Red)’과 ‘전(專, Expert)’의 대립으로 개념화했다. 혁명성·이념적 정통성을 중시하는 ‘홍’과, 전문성·실무·경제성과를 중시하는 ‘전’의 경쟁이 곧 정책 노선의 갈등을 집약한다는 것이다.
초기 사회주의의 급진적 개조기에는 ‘홍’(혁명간부)이 군림했지만, 경제발전·개혁이라는 새 노선으로 전환되며 복잡한 산업사회를 관리할 ‘전’(기술관료)의 수요가 급증했다. 특정 시기 지배 엘리트가 ‘홍’에 치우쳤는지 ‘전’이 우위인지를 보는 것은, 그 체제의 정책 우선순위와 권력 지형을 읽는 핵심 지표가 된다.
표 1. ‘홍’과 ‘전’의 개념
| 유형 | 성격 | 대표 영역(기능) |
| 홍 (紅) | 혁명성·이념적 정통성· 체제 보위를 중시 | 당 조직·선전·사상, 보위·보안, 정치군·야전군, 중앙/지방당 |
| 전 (專) | 경제적 효율성·전문성· 과학기술 성과를 중시 | 내각·경제, 과학기술·산업, 외교·무역, 건설, 당 내 군수·경공업 등 전문부서 |
3.3. 북한에 대한 적용
이 구도는 북한에도 유효하다. 표면적으로 북한의 의사결정은 수직적 위계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당·군·내각이라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의 조직들이 정책 형성과 집행에 동시에 관여한다. 지도자는 각 조직이 올리는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 정보에는 필연적으로 조직의 선호가 실린다.
2000년대 북한의 경제개혁 국면이 좋은 사례이다. 7·1 경제관리개선조치(2002)와 종합시장 공인(2003) 등으로 내각이 시장 활용·자율성 확대를 밀어붙이자, 통제력 약화를 우려한 당이 이를 ‘과도한 개혁’으로 프레임화하며 견제에 나섰다. 결국 박봉주 내각 상무조 해체(2005), 박남기 주도의 계획재정부 신설(2005), 6·18 담화를 통한 시장통제(2008)로 개혁은 후퇴했다. 이는 정책 실패라기보다 조직 간 갈등과 권력관계 재조정의 결과였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실용과 경제를 중시한 내각은 ‘전’에, 통제와 이념을 앞세운 당은 ‘홍’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북한 안에도 ‘홍–전’의 정책 갈등이 실재했던 것이다.
이 긴장은 김정은 시기에도 이어진다. 2022년 12월 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대외 경제협력·선진기술 도입을 중시하는 경제 간부들의 성향을 ‘패배주의와 기술신비주의’로 규정하며 “낡은 사상이 잠재해 있다”고 질타했다. 제재 장기화 속에서도 개방·기술을 선호하는 ‘전’과 이를 경계하는 ‘홍’의 긴장이 여전히 작동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4. 데이터와 방법
4.1. 왜 ‘김정은 현지지도 동행 데이터’인가?
기존 북한 엘리트 연구는 대개 ‘누가 어떤 직책에 임명되었는가’라는 공식 직위 변동으로 권력 변화를 읽어왔다. 그러나 공식 인사는 변화가 한참 진행된 뒤에야 확정된다. 실질적 위상 변화의 미세한 징후를 잡아내기 어렵다.
그래서 이 연구는 ‘김정은 공개활동(현지지도·행사) 동행 데이터’에 주목한다. 최고지도자와 함께 다니는 인물은 무작위로 정해지지 않는다. 그 시기의 정책 수요가 누구를 곁에 두는지를 결정하며, 동행은 공식 직위 변동보다 먼저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현지지도는 장시간·장거리 이동을 수반해 수령과 동행 엘리트 간 정책 논의의 기회가 크다. 즉 동행자 명단은 권력 기제가 작동하는 보다 정교한 실시간 시그널에 가깝다.
물론 동행 빈도가 영향력 자체를 완벽히 측정하지는 못한다. 의례적 동행이 섞일 수 있고, 동행 횟수가 적어도 실세인 인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연구의 목표는 개별 엘리트의 서열 측정이 아니라, 전환 국면을 전후한 ‘홍’ 또는 ‘전’ 집단의 전반적 동행 비중 변화를 집단 차원에서 보는 데 있다. 이 점에서 동행 데이터는 충분한 분석 가치를 가진다. 자료는 통일연구원(KINU) 「김정은 공개활동 보도분석 DB」를 기반으로 구축하고, 누락·불명확 항목은 『로동신문』 보도와 통일부 인물정보 자료(2012–2022)로 교차 검증했다.
4.2. ‘홍·전’ 코딩
기존 연구의 또 다른 한계는 엘리트를 주로 당·정·군이라는 ‘소속 기관’으로 나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 방식은 소속이 달라도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경우에는 정책 노선에서의 선호와 역할을 가리기 어렵다. 그래서 이 연구는 소속이 아니라 그 인물이 실제 수행해 온 기능과 전문성을 기준으로 ‘홍’과 ‘전’을 코딩했다.
각 인물을 ‘홍(1)’ 또는 ‘전(0)’으로 코딩하되, 당과 내각을 오간 인물은 동행 당시의 주된 직무를 기준으로 판단했고, 학력보다 실제 직무 경력을 우선했다. 전문 교육을 받았더라도 관련 실무 경력이 없으면 해당 유형에서 제외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코딩의 일관성을 확보했다.
4.3. 분석 도구와 그 식별상의 주의
이 연구의 1차 분석 도구는 리드-랙 회귀분석(Lead-Lag Regression)이다. 네 차례 정책 발표 시점을 기준(0)으로 전후 6개월씩, 총 13개월의 ‘엘리트-월(elite-month)’ 패널을 만들어 ‘홍’ 비중의 추이를 추정한다. 발표 이후(lag)에야 홍·전 비중이 바뀌면 수령이 정해 놓고 사람을 끼워 맞춘 ‘하향식’에, 발표 이전(lead)부터 이미 비중이 변해 있다면 엘리트 구도가 먼저 움직여 결단을 견인한 ‘상향식’에 가깝다고 판단한다.
다만, 이 설계가 ‘선행이냐 사후냐’를 확정적으로 식별하려면 두 조건이 추가적으로 필요하지만, 현재의 자료는 그 조건을 아직 충분히 충족하지 못한다. 첫째, ‘lead가 평상시보다 높다’고 말하려면 발표 시점으로부터 충분히 떨어진 사전 기준시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정책 발표시점 ±6개월만 보면 13개월 전부가 사건 구간이기 때문에, 비교의 기준점이 윈도우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전체적인 패턴은 식별할 수 있으나 lead의 ‘통계적 유의성’을 확정하기 어렵다. 둘째, 전략노선 전환은 김정은 시기에 단 네 차례뿐인 희소 사건이기 때문에, 평균적 추론의 검정력이 다소 제한된다. 따라서 본 발표의 계수와 유의성은 확정적 가설검정이 아니라 탐색적 패턴으로 읽어야 한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4.4. 분석 대상: 네 차례의 국가전략노선 전환
분석 대상은 김정은 집권 이후 당 전원회의·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공식화된 네 차례의 전략노선 전환이다. ① 경제·핵무력건설 병진노선(2013.3, 6기 23차 전원회의), ② 사회주의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2018.4, 7기 3차), ③ 정면돌파전(2019.12, 7기 5차), ④ 핵무력 법제화(2022.9, 최고인민회의 14기 7차). 네 국면 모두 체제 생존의 두 축인 ‘국방(핵무력)’과 ‘경제건설’ 간 우선순위가 재조정된 시기로, 홍·전 동학을 탐색하기에 적합하다.
5. 세 개의 경쟁 가설
이 연구는 세 가지 경쟁 가설을 설정하고, 데이터에 비추어 어느 해석이 더 타당한지를 탐색한다. 가설 1은 전통적 '수령 결정론'을, 가설 2는 '권력분점·엘리트 행위자론'을, 가설 3은 둘이 동태적으로 결합한 '연속적 권력분점'을 반영한다. 핵심은 어느 가설이 입증되느냐보다, 어떤 국면에서 어떤 기제가 더욱 강조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표 2. 세 가지 경쟁 가설
| 가설 | 관점 | 예측 |
| 가설 1 | 수령 결정론 (하향식) | 발표 ‘이후’에 새 노선에 맞는 엘리트의 동행 비중이 증가한다. (엘리트는 수동적 집행자) |
| 가설 2 | 권력분점/엘리트 행위자 (상향식) | 발표 ‘이전’부터 특정 엘리트 집단의 비중이 유의하게 변한다. (엘리트가 의제를 선점해 결단을 견인) |
| 가설 3 | 연속적 권력분점 (전→후 지속) | 발표 ‘이전’의 선행 변화가 발표 ‘이후’까지 이어진다. (선제적 의제설정과 사후적 지배연합 공고화의 결합) |
6. 분석 결과: 네 가지 장면
먼저 네 국면을 한눈에 비교한 그림이다. 첫 번째 관찰은 패턴이 국면마다 뚜렷이 다르다는 점이다. 같은 데이터와 같은 분석방법인데 결과가 이처럼 뚜렷하게 다르다는 것은, 북한의 정책 전환이 단일한 공식으로 환원되지 않는 역동적인 정치 과정임을 시사한다. 이하 네 ‘장면’은 확정적 검정 결과가 아니라, 각 국면의 홍/전 구성을 기술하고 맥락과 함께 해석한 탐색적 스케치임을 미리 밝혀 둔다.
그림 1. 네 차례 국가전략노선 전환 전후 홍·전 엘리트 동행 비중 변화 비교
6.1. 장면 ① 병진노선(2013.3) — 구간 전반의 ‘홍’ 우세
그림 2. ‘경제·핵무력건설 병진노선’ 발표 전후 (양수=홍 우세)
병진노선 국면에서는 구간 전반에 걸쳐 ‘홍’ 엘리트의 비중이 높게 관찰된다. 발표 6개월 전(lead6, 계수 0.131)부터 발표 직후(lag2, 0.178)까지 양(+)의 값이 이어지다가, 4개월째(lag4)부터 약화된다. 핵·국방을 한 축으로 끌어올린 이 전환의 방향과 체제 보위형(홍) 엘리트의 상대적 우위가 부합한다.
6.2. 장면 ② 총력집중노선(2018.4) — 가장 견고한 ‘전’의 부상
그림 3. ‘사회주의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 발표 전후 (음수=전 우세)
정반대의 그림이다. 자원을 경제건설에 집중하겠다는 이 전환에서는 ‘전’ 엘리트가 두드러진다. 흥미롭게도 그 패턴은 발표 이전 구간에서 이미 뚜렷하다 — ‘경제 집중’ 선언이 공식화되기 전에 경제·실무형 엘리트가 수령 곁에 다수 포진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 국면의 ‘전’ 부상은 네 국면을 함께 비교했을 때 통계적으로 가장 견고하게 확인되는 패턴이다. 2018년 ‘경제 집중’이 그해 전격적 남북·북미 정상외교와 맞물렸음을 떠올리면, 이 ‘전’의 부상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노선 전환의 예고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는 상향식(가설2) 해석을 뒷받침하는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6.3. 장면 ③ 정면돌파전(2019.12) — ‘전’에서 ‘홍’으로의 이동
그림 4. ‘정면돌파전’ 발표 전후 (전→홍 전환)
제재 교착 속 ‘자력갱생’을 내건 정면돌파전에서는 두 기제가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듯한 모습이 관찰된다. 발표 전후로 ‘전’ 엘리트가 우세하다가, 발표 약 3개월 후(lag3)부터 무게추가 ‘홍’ 쪽으로 옮겨간다. 협상 동력이 남아 있던 국면에서는 실무·경제형 엘리트가 의제를 주도하다가, 교착이 굳어지며 체제 결속형 엘리트로 지배연합이 재편되는 그림으로 읽을 수 있다.
6.4. 장면 ④ 핵무력 법제화(2022.9) — 뚜렷한 변동 없음
그림 5. ‘핵무력 법제화’ 발표 전후 (대부분 비유의)
네 번째 장면에서는 발표 전후로 뚜렷한 변동이 관찰되지 않는다. 핵 교리를 법령으로 명문화한 이 조치는 실질적 자원 배분이나 역할 재편을 크게 수반하지 않는 ‘상징적·선언적’ 정책에 가깝고, 엘리트 구도의 ‘무반응’은 그 해석과 부합한다.
6.5. 하나의 표로 보는 네 장면
표 3. 네 장면의 관찰 패턴과 탐색적 해석
| 전략노선 전환 | 발표 시점 | 관찰된 홍/전 패턴 | 탐색적 해석 |
| 경제·핵무력건설 병진노선 | 2013.3 | 구간 전반 ‘홍’ 우세 | 체제보위형 우위. |
| 사회주의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 | 2018.4 | ‘전’ 우세 (네 국면 중 가장 견고) | 경제 지향과 부합. 선행 부상은 상향식 의사결정을 일정부분 지지 |
| 정면돌파전 | 2019.12 | ‘전’→‘홍’ 이동 | 협상→교착 전환과 정합적. |
| 핵무력 법제화 | 2022.9 | 뚜렷한 변동 없음 | 상징·선언적 정책과 부합 |
종합하면, 네 국면은 서로 다른 홍/전 구성 프로파일을 보인다. 가장 견고하게 말할 수 있는 두 가지는 (a) 대부분의 구간에서 ‘전’이 ‘홍’을 역전하지 못하는 ‘홍 우위의 구조적 지속’과, (b) 경제 지향 국면(경제총력집중)에서 두드러지는 ‘전’의 상대적 부상이다. 한편 ‘엘리트 구도가 발표에 선행해 움직였다’는 주장에 대한 보다 견고한 검증은 추가적인 설계로 검증해야 할 과제다. 분명한 것은, ‘수령이 정하고 엘리트가 따른다’는 단선적 그림(가설1)만으로는 이 국면별 이질성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7. 세 가지 함의
1) 수령 결정론을 넘어설 단서
네 국면의 이질적 패턴, 특히 경제 지향 국면에서 ‘전’이 부상하는 모습은, 가장 폐쇄적인 일인독재로 분류되는 북한에서도 정책 노선과 엘리트 구성이 연동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단선적 하향식 그림만으로는 포착되지 않으며, 비교권위주의가 중국·러시아·베트남에서 축적해 온 ‘엘리트 행위자론’을 자료 제약이 가장 큰 북한 사례로 확장할 단서를 제공한다.
2) 정책의 ‘성격’이 엘리트 동학을 가를 수 있다
자원 배분과 우선순위를 실제로 재조정하는 정책과 상징적 선언에 그치는 정책 사이에, 엘리트 구도의 반응이 다를 수 있다. 만약 이 차이가 후속 분석에서 견고히 확인된다면, 엘리트 구도의 반응 여부는 어떤 발표가 ‘말’인지 ‘실행’인지를 가늠하는 보조 잣대가 될 수 있다.
3) 발표는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일 수 있다 — 선행지표로서의 가능성
만약 엘리트 재편이 정책 발표에 선행한다면, 북한의 공식 발표는 내부 조정이 상당히 끝난 ‘종착점’에 가깝다. 그 경우 북한의 다음 행보를 읽으려면 발표문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수령 주변 엘리트 구도의 변화를 선제적으로 추적해야 하며, 동행 데이터는 그 조기경보의 유력한 선행 근거가 된다.
세 함의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북한은 ‘블랙박스’이지만 완전한 암흑은 아니다. 누가 수령 곁에 서는가의 미세한 변화는, 발표문이 말해 주지 않는 정책의 방향과 무게에 관한 단서를 보여준다. 이러한 단서들을 체계적으로 모으고 엄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면, 우리는 북한을 ‘예외적 사례’로 격리하지 않고 비교권위주의의 틀 안에서 읽을 수 있으며, 동시에 우리의 대북 정책·정보 분석에 유효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적대적 두 국가’의 빗장이 굳게 걸린 지금은 역설적으로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다. 교류가 끊긴 상황에서도 북한 내부의 엘리트 구도는 멈추지 않고 움직이며, 그 움직임은 동행 데이터에서 보이듯 조금씩 외부로 새어 나온다. 우리가 이 신호들을 꾸준히, 체계적으로, 그리고 방법론적으로 엄밀하게 읽어 둔다면, 다음 변곡점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쪽이 아니라 ‘먼저 읽고 설계하는’ 쪽에 설 수 있다. 증거 기반 북한 연구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8. 정책적 함의와 제언
본 연구의 결과와 접근법은 학술적 기여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 부처·정보 분석·언론 등 대북 실무에도 직접적인 시사점을 준다. 그 시사점은 하나로 모인다. 즉, 우리는 ‘바라는 북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명확한 근거 위에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세 가지 제언을 덧붙인다.
1) ‘바라는 북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으로 — 가치개입에서 증거기반으로
대북 정책은 종종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나 정치적 선호에 좌우되어, 북한을 ‘그러했으면 하는 모습’으로 그린다. 그러나 본 연구가 보여주듯, 동행 데이터와 같이 관측 가능한 신호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면 북한 내부의 실제 권력 지형과 정책 우선순위를 보다 냉정하게 가늠할 수 있다. 예컨대 어느 국면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홍’ 우위의 구조적 지속은 ‘개혁·개방이 임박했다’는 류의 낙관을 절제하게 하고, 경제 지향 국면에서 관찰되는 ‘전’의 상대적 부상은 ‘어떤 조건에서’ 실용 노선이 힘을 얻는지를 읽는 단서를 준다. 당위와 기대가 앞선 정책이 아니라, 이러한 객관적 근거 위에 선 ‘실체로서의 북한’ 이해가 정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2) 객관적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하는 전문인력의 양성
아무리 많은 양질의 데이터가 있어도 그것을 읽어낼 역량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본 연구가 보여주듯, 같은 신호도 어떤 방법으로 분석하고 그 한계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른다. 따라서 정부·정보기관·언론에는 북한 관련 데이터를 수집·축적·해석하고, 그 위에서 신중한 정책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방법론적으로 훈련된’ 전문인력이 절실하다. 지역학적 지식에 더해 양적·질적 방법을 겸비하고, 신호의 불확실성과 식별의 한계까지 비판적으로 따질 수 있는 인력이다. 이를 위해 대학원 교육과 실무 재교육을 잇는 학제적 분석가 양성 트랙을 제도화할 것을 제안한다.
3) 북한 행동 예측을 위한 데이터 수집·축적의 제도화
본 연구의 가장 큰 제약은 결국 자료의 제약이었다. 즉, 사건은 네 건뿐이었고 관측 창은 짧았다. 이는 개별 연구자의 문제가 아니라 ‘연구 인프라’의 문제다. 김정은 공개활동, 인사·숙청, 매체 담론, 예산·교역 등 관측 가능한 신호를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수집, 표준화, 축적하는 국가적 데이터 기반이 필요하다. 일회성 분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쌓이는’ 데이터라야 변곡점을 먼저 포착할 수 있다. 통일연구원, 통일부, 정보기관, 학계가 함께 쓰는 표준 데이터셋과 공개 코드북, 그리고 그것을 갱신·관리하는 상시 체계를 제안한다.
이 세 제언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순환을 이룬다. 신호를 모으고(데이터), 읽어낼 사람을 키우고(인력), 근거 위에서 판단한다(증거기반 정책). 이 순환이 작동할 때 비로소 우리는 다음 남북관계의 변곡점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쪽이 아니라 ‘먼저 읽고 설계하는’ 쪽에 설 수 있다. 폐쇄된 북한을 상대로도, 증거는 쌓을 수 있고 역량은 기를 수 있다.
9. 나가며: 한계와 다음 단계
이 연구는 탐색적 단계로서, 향후 보다 견고한 데이터 축적과 분석 작업을 필요로 한다. 연구의 한계와 관련하여 다음의 몇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측정의 한계이다. 동행 빈도가 영향력을 완전히 측정하지는 못한다(의례적 동행, 동행이 적은 실세 등의 문제). 다만 관심이 개인 서열이 아니라 집단 비중의 추이이므로 이 문제는 부분적으로 완화된다. 둘째, 코딩의 주관성이다. ‘홍·전’ 구분은 경력 해석에 대한 일정한 판단이 개입한다. 코딩 규칙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교차검증으로 보완하며, 향후 이중코딩 신뢰도(κ)를 함께 보고할 계획이다. 셋째, 식별의 한계이다. ±6개월 윈도우는 사건 구간 전체를 덮어 적합한 사전 기준 시점이 없고, 국가전략노선 전환이 총 네 건뿐이라 동적 효과의 통계적 식별과 일반화가 본질적으로 제한된다. 따라서 본 발표의 ‘선행’ 관련 해석은 확정적 결론이 아니라 탐색적 해석이다.
다음 연구 단계는 이 한계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먼저, 타임 윈도우를 발표 전후 ±12개월로 확장해 국소 사전 기준선을 확보하고, 네 국면을 결합해 공통 기준 대비 평균 변화를 타당한 표준오차로 추정한다. 이로써 ‘lead의 움직임’이 선행효과인지 국면 수준차인지를 분리한다. 다음으로, 집단 비중을 넘어 개인 수준의 진입·퇴장 동학(생존분석)으로 내려가 ‘누가 먼저 부상하는가’를 직접 추적한다. 또한, 전략노선 전환이 희소 사건이라는 본질적 제약을 인정하고, 계량적 기술과 과정추적(로동신문, 전원회의 문건, 인물 추적)을 결합한 혼합설계로 인과적 선후의 기제를 사례 내부에서 규명한다. 끝으로, 동행 데이터를 인사·숙청·매체 담론 등 다른 신호와 결합하고, 장기적으로는 텍스트 기반 정책지향 지수와의 시계열 인과까지 확장해 ‘증거 기반 북한 연구’의 외연을 넓히는 작업도 필요하다.
폐쇄성은 북한 연구의 숙명이지만, 그 틈으로 새어 나오는 신호들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방법론적으로 엄밀하게 모으면 ‘수령의 교시’ 너머의 정치를 읽어낼 수 있다. 남북 간 단절의 겨울은 길어 보이지만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봄의 변곡점을 먼저 읽는 쪽은, 신호를 미리, 그리고 체계적으로 모아 둔 쪽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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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택빈_국방대학교 안보정책학부 교수.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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