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기 EAI 아카데미] ① 미래 속의 젊은 그들: 21세기 한국의 꿈
편집자 주
하영선 EAI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은 '미래 속의 젊은 그들' 아카데미 첫 강연에서, 세계질서가 기술 위에 부강·문화·생태·공치가 쌓이는 3층 복합무대로 재편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하 이사장은 군사비·GDP·AI 역량 지표로 본 미중 간 힘의 격차와, 정보 수집부터 표적 타격까지 AI가 바꿔놓은 전쟁의 양상을 근거로 근대적 자강균세의 논리가 경쟁과 공생이 공존하는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제시합니다. 이를 토대로 화자는 한반도 통일과 사이버·우주 공간까지 아우르는 'K-복합국가'를 미래세대가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YouTube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QwOGZ0WU0GQ
■ 하영선_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영상 스크립트
반갑습니다. 이번 아카데미는 총 10회로 진행될 예정이며, 오늘 첫 강연에서는 아카데미를 개최하는 이유와 전체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가능하면 매주 강의 후 30분 정도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담당자에게는 강의 줄거리와 관련된 글을 읽고 일종의 지적 위원회 편지를 써보라고 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마지막 30분 질의응답 시간을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10회 강좌 전체의 주제를 포괄하는 내용으로 강의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강좌의 제목은 '미래 속의 젊은 그들, 대한민국의 꿈'입니다. 이 제목은 어디서 왔을까요?
이 제목은 일종의 패러디입니다. EAI에서 약 16~17년 전인 2009년에 '역사 속의 젊은 그들: 18세기 북학파에서 21세기 복학파까지'라는 개몽 강연을 여의도에서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하도 엉망이라 국회 근처에서 강연하면 국회의원들이 계몽을 받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국회의원들의 참여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때도 상대적으로 대학원생과 대학생들이 많았는데, 강연 제목이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이었습니다.
그 강연은 8주에 걸쳐 매주 하나씩 진행되었고, 수강생들이 책으로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래 '역사 속의 젊은 그들: 18세기 북학파에서 21세기 복학파까지'라는 제목으로 강연이나 책을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동기에서 시작되었는데, 아마도 냉전에서 탈냉전 시대로 넘어오던 1990년대 초반, 즉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되어 러시아로 바뀌던 1991년경이 그 출발점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국제정치의 변화는 상당한 격변으로 여겨졌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국제정치 변화가 당시보다 더 큰 변화였는지 쉽게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변화가 더 클 수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요?
냉전에서 탈냉전으로의 전환이라는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 차원에서 그러한 생각이 들어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온 역사 속에서 격변기를 겪었던 시기의 젊은이들은 어떻게 그 시기를 넘어섰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체계적인 접근이 아니라, 하나둘씩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6일준 선생의 글에서부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사유문 등에서 시작하여 여러 글을 보다가 결국 일곱, 여덟 편의 시리즈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이라는 제목이 붙었는데, 오늘날의 '미래 속의 젊은 그들'은 우리 자신, 즉 '젊은 우리들'이 될 것입니다. '미래 속의 젊은 우리들'이 가진 대한민국의 꿈은 무엇일까?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것이 첫 시간의 중심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소감을 쓰라는 요청에 14편의 지적 위원회 편지가 제출되었는데, 일곱 명은 상대가 마땅치 않아 쓰지 않았거나, 쓰기 싫었거나, 읽지 않아서 쓰지 않은 것 같습니다. 14편 중에서
6일준 선생이 네 편, 김양수가 세 편, 연남이 두 편, 그리고 다른 분도 두 편을 썼습니다. 동주, 유영희 선생 등은 한 편씩 제출했습니다. 총 열세, 네 편의 편지를 간단히 읽어보았는데, 이는 잠시 후 질의응답 시간에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강연의 증간본, 즉 원래 강연에는 없었던 마지막 챕터인 '사랑의 세계 정치'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보호하는 내용입니다. '미래 속의 젊은 우리들', 나는 나를 어떻게 꿈꿀 것인가? 또는 한반도, 한국, 세계, 지구, 우주의 꿈은 어떻게 꾸어야 할 것인가?
이러한 이야기들을 한 시간 반 동안 생각해 볼 것입니다. 책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여덟 편으로 구성된 내용 중 가장 많았던 것은 마지막 부분의 '복합'에 관한 것입니다. 편의상 제가 국제정치를 함께 공부했던 챕터를 넣었지만, 복합파 전체를 다 실을 수는 없었습니다. 편의상 여러분 나이대의 얼굴을 대신 넣는 형태로 편집되었습니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미래 속의 젊은 우리들, 대한민국의 꿈, 또는 나의 꿈'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테마와 연관되어 이야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이나 한반도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솔직히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오히려 저는 그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의 꿈'이라는 것은 약간의 생각이 필요합니다. 내가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 20대라면 50년 후 나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꿈'이라는 말은 한자로는 '몽(夢)'이지만, 우리말로는 '꾸민다는 동사'에서 온 명사형입니다. 즉, 앞으로 50년 후의 나를 어떻게 꾸밀 것인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왜 특정 시점에 이러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는가 하면, 어쩌면 그 꿈을 특별히 꾸어야 할 시점에 우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떤 꿈을 꾸는가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에 대해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있다면, 꿈에 대해서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대표적입니다. 프로이트가 꿈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도달한 일차적인 결론은, 꿈은 결국 자기 자신의 잠재의식이 꿈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며, 그 잠재의식은 현실의 삶에서 충족되지 못한 것들이 어떤 의미에서 드러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꾸민다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즉, 70대가 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꿈꾸거나, 한반도 또는 한국의 꿈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왜 특정 시점에 그런 것을 해야 하는가? 앞으로 50년이 보인다면 별로 꿈꿀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취직해서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적당한 크기의 아파트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시간이 지나면 세상을 떠난다고 예측되는 미래라면, 사실 꿈을 꿀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운 경우에 꿈이 등장하게 됩니다.
세계 질서의 변화와 새로운 시대의 도래
그렇다면 왜 이 특정 시기가 특히 꿈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시기인가 하는 이야기부터 조금 시작해보겠습니다. '미래 속의 젊은 우리들'에서 '미래'는 우리말이 아닙니다. 아직 오지 않았다는 '미래'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 속에서 어떻게 유난히 꿈이 많아질 수밖에 없겠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편의상 첫 번째 테이블은 지난달 EAI 학생 모임에서 잠깐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것은 기원후 1년부터 2008년까지의 GDP를 대략적으로 그린 표입니다. 얼핏 보면 복잡해 보이지만, 크게 보면 세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기원전 초부터 1600년대까지를 보면 인도와 중국이 가장 중요한 나라로 눈에 띕니다. 천년경에는 GDP를 보면 인도가 가장 높았고, 그다음이 중국인데, 중국이 정점에 도달했던 것은 대체로 17세기, 18세기이며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뒤를 잇는 것이 서유럽, 그다음 미국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지금 꿈을 꾸는 '미래 속의 젊은 우리들'은 2026년에서 2050년까지를 생각하는 다음 시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크게 보면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약 1700~1800년까지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지 않았던 세계. 우리는 지금 서양이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것에 익숙해져 왔기 때문에 그것을 마치 역사 내내 그래왔던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이 그 앞에 인도나 중국 같은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하나.
두 번째로는 서양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가 있는데, 대체로 15세기, 16세기부터 후진에 있던 서양이 동양을 넘어서 현재를 지배하게 되는 시기가 있습니다. 과거라고 하는 큰 한 시기, 또는 전통의 시기가 있었다면, 지난 500~600년의 근대라고 하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틀 속에 들어간다면 근대가 계속되고 있으면 사실은 오늘 같은 주제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별로 꿈꿀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알고 있는 세상이 진행될 텐데, 그 속에서 테마는 꿈이 아니라 잘 적응하는 것입니다. 이미 답이 나와 있는 것을 열심히 따라가면 되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다고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크게 세 시기로 나눈다면, 편의상 '전통'이라고 부르는 시기는 아까 말했듯이 인도나 중국이 지배하고 있었던 시기입니다. 우리 경우는 주로 중국적인 '천하질서'라는 틀 속에 있었던 시기가 대체로 3국 시대부터 19세기까지 진행되는 모습입니다.
두 번째는 서양이 근대의 후진에서 선진으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500년, 1600년 시대였는데,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세기라고 봐야 합니다. 중국, 한국, 일본의 입장에서는 19세기 초중반부터 본격적인 '서세동점'의 시기를 맞이하는데, 이를 두 번째 '근대'라고 한다면, 지금 여러분들이 살면서 그렇게 부르고 있지는 않지만, 저는 그렇게 부릅니다. 이 복합 질서 속으로 이미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나의 꿈을 꾸어야 하고, 내가 속한 나라의 꿈은 어떻게 꾸어야 하는가 하는 크게 보면 세 등분되는 이야기들입니다. 이 이야기는 아마 10주 동안 진행될 이야기이며, 두 번째 시기에서 세 번째 시기로 넘어가는 변화 속에서 부딪히는 여러 문제들을 여러분들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근대'는 제가 따로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비교적 여러분들이 느낌으로 알 수 있는 변화들입니다. 편의상 대표적인 유형으로 주인공이 누구인지, 드라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천하국가'에서 '국민국가'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국민국가'라는 말도 번역어이며, 서양 사람들이 먼저 만든 것이기 때문에 '네이션 스테이트'의 번역어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회'를 강조하면 '민족국가'가 될 것이고, '국내 파트'까지 고려하면 '국민국가'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주인공이 얼마나 바뀌고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주인공의 변화를 두 번째는 그 주인공이 어디에서 움직인다고 하는 이야기인가 하는 경우입니다. 19세기에 우리가 본격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서양 모델'이라고 하는 것은 '부국강병'이라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매우 진부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19세기 당시에는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부국강병'이라고 하는 것은 '쌍놈의'
국가들이 지향하는 문명 야만의 표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무엇이 표준이었는가? 그 당시에는 '예(禮)'가 무대의 핵심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는 것이 예가 있는 나라가 선진이고, 예가 없는 나라는 후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국강병'이 새로운 문명 표준으로 등장했고, 그것을 따르지 못하면 무대에서 내려서야 한다는 변화를 겪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예'나 '부국강병' 무대에서 퍼포먼스, 즉 연기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요?
배우들이 어떤 형태로 연기했는가 하는 것인데, 그 연기의 내용도 매우 달랐습니다. 전통 시대에는 흔히 듣는 '4대 자소(자질)'와 같이 큰 나라를 모시고 작은 나라를 자손처럼 보듬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근대 국민국가에서는 '자강균세'가 기본 원칙입니다. 스스로 힘이 있어야 하고, 플러스 힘만 가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세력 균형'이 필요합니다. '균세'라는 말도 영어 'balance of power'를 번역할 당시에는 '균세'였고, 이제 뒤늦게 뒤집어서 '세력 균형'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차적으로는 '자강'이고, 그다음은 '균세'입니다. 그렇게 보면 오늘날 기성세대 대부분 또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거의 90% 이상이 생각하는 연기의 핵심은 '자강 균세'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근대적인 틀을 가지고 살면 굳이 꿈을 바꿔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우리가 10주 동안 강좌를 하는 이유는 아마 그렇게만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조금 더 복잡해집니다.
행위자들이 어떤 형태로 연기를 했냐 하는 그 연기의 내용도 굉장히 달랐습니다. 전통 시대는 흔히 여러분들이 듣던 큰 나라를 모시고 작은 나라를 보필하는, 즉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작은 나라들을 자유롭게 보듬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근대 국민 국가에서는 자강(自强)과 균세(均勢)가 기본 원칙입니다.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하고, 힘만 가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세력 균형이 필요합니다. '세력 균형'이라는 말도 영어의 'balance of power'를 들여올 당시에 번역은 '균세'였습니다.
뒤늦게 그것을 뒤집어서 '세력 균형'이라고 요즘은 번역하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자강이고, 그다음은 균세입니다. 그렇게 보면 오늘날 기성세대 대부분 또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거의 90% 이상이 생각하는 연계의 핵심은 자강과 균세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냐? 근대적인 틀을 가지고 살면 굳이 꿈을 바꿔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냐? 하지만 우리가 10주년을 하는 이유는 아마 그렇게만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조금 더 복잡해집니다.
여러분들이 지적 자극을 받는 교수, 선배, 혹은 좋은 책을 통해 열심히 공부하며 부국강병, 자강균세의 틀에 맞춰 개인과 국가를 준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AI 시대로의 진입은 단순히 그런 시대를 넘어섭니다. 열심히 예습했는데 시험 문제가 다르게 나오는 사태가 현실적으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를 빠르게 눈치채고 미리 준비하는 개인이나 국가는 앞서나가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운명이 달라집니다. 서구의 부상이 임박했을 때도 중국, 한국, 일본은 각기 다르게 대응했습니다.
일본은 비교적 빨리 문명의 전환임을 인지하고, 기존 문명 표준을 받아들이는 속에서 나아갈 길을 모색했습니다. 소위 메이지 유신이 그러한 예입니다. 반면 중국은 천년 이상 중화 문명의 중심이었기에, 스스로를 '중앙의 나라'라 칭하며 서구 세력이 새로운 문명의 표준을 제시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중국이 '문명'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번역하는 데 반세기가 걸렸습니다. 1840년대 아편전쟁 이후, 특히 청일전쟁에서 서구의 아류였던 일본에게 패배하면서 중국은 과도기적으로 문명 표준을 받아들이고 미래를 기약해야 했습니다. 깨어 있던 조선은 중국보다 작은 나라였음에도 일본처럼 빠르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끝까지 버텼습니다. 그 결과, 나라로서의 자리를 잃고 부국강병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격차가 벌어졌습니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을 보면, 일본은 근대 해전을 수행했지만 우리는 군함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물론 한중일 삼국의 역사가 원래 달랐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50년에서 100년 사이에 한 세대가 놀고 있으면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1850~60년대부터 약 50~60년 사이에 완전히 뒤집히는 상황이 온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새로운 질서의 모습에 맞춰 살고 싶다면, 근대적 틀만으로는 부족합니다.
AI 시대, 복합 무대로 재편되는 세계 질서
근대적 틀만으로는 안 되며, 또 다른 문명의 전환이 오고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이에 맞춰 새롭게 준비하는 개인이나 국가의 꿈을 꾸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3층 구조의 복합 무대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기층 무대에는 기술, 지식이 자리 잡고, 그 위에는 부강, 그리고 맨 위에는 공치가 있습니다. 여기서 '공치'는 흔히 '글로벌 거버넌스'라고 불리는 개념입니다.
이 '공치'라는 용어는 우리말로 번역이 쉽지 않습니다. 국내에서도 글로벌 거버넌스 학회에서 번역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번역이 어렵다는 것은 결국 우리 지식으로 내면화되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굳이 번역한다면 '공치'가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복합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기반 무대가 바뀌고 있다는 점입니다.
AI가 상징적인 예시이며, 넓게 보면 첨단 기술의 변화입니다. 기술은 늘 중요했지만, 고대에는 종교가, 근대에는 정치가, 산업혁명 이후에는 경제가 중심이었습니다. 이제는 또 한 번의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기술과 지식은 군사, 종교, 경제와 연계되어 작동했지만, 이제는 그 역할이 바뀌고 있습니다.
AI의 등장 초기에는 국제정치학에서 독자적으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국제정치경제학의 하위 분야로 다루어졌을 뿐입니다. AI라는 용어 자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56년으로, 인간의 뇌를 모방한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논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전문가들은 비교적 쉽게 구현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1956년 이후 70년이 흘러 오늘날과 같은 폭발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국제 경제가 국제정치의 핵심이라는 주장은 사회주의권에서는 있었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1970~8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주로 전쟁과 평화가 국제정치의 핵심 주제였습니다.
이후 경제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국제정치경제학(IPE)이 등장했고, AI와 같은 기술적 요소들도 IPE의 범주에 포함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기술 지식에서 출발하여 국제정치를 다시 봐야 한다는 변화에 직면했습니다. 따라서 이 강의는 국제정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실전적인 공부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50년, 혹은 현대 의학의 발달로 70~8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할 것입니다.
미래를 정확히 아는 교수들이 미래를 가르치거나,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교육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스스로 꿈을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나는 AI 시대에 대비하지 않고 근대인으로서 일생을 마치겠다'고 결심한다면, 70~80년 후의 삶은 어떻게 될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역설적으로 한반도의 남과 북은 미래에 대한 꿈이 상당히 다릅니다. 만약 북한이 AI와 같은 새로운 문명 전환을 남한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50년 후 남북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매우 달라질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AI가 체질에 맞지 않아 받아들이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한다면, 그 개인의 모습이나 그러한 국가의 모습은 어떻게 될지 곰곰이 따져볼 만한 주제입니다. 첫째, 기술 지식이 단순히 기술 지식으로 끝나지 않고, AI와 같은 기술이 복합 무대의 다른 영역에 변화를 촉발하는 요소가 된다는 점입니다.
군사 분야에서 AI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지난 70~80년간 핵이 중요했지만,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핵 시대는 저물고 있는지 모릅니다. 'AI 뉴클리어 넥서스'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핵무기 자체가 발전한 것이 아니라 AI의 발달 덕분입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해서 격변하는 AI 뉴클리어 넥서스 시대에 그 효용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는 북한의 군사력 강화에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경제 역시 첨단 기술과 연관된 부분에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치', 즉 글로벌 거버넌스 영역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어떻게 조정하고 통제할 것인가가 중요해집니다.
지난 7월, 가장 큰 뉴스는 무엇이었을까요? 대부분 이란과 미국의 갈등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7월 17일부터 20일까지 시진핑 주석이 상하이 세계 AI 회의에 참석하여 AI 협력 기구 창설을 제안한 것이 주목할 만합니다. 29개국이 이에 서명했습니다.
이는 '공치' 영역과 관련된 것으로, AI의 군사적, 경제적 이용 등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 많습니다. AI 선진국이 결국 세계를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AI 기술을 어떻게 통제하고 활용할 것인가가 최대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한국은 이 회의에 참석했지만, 외교부 AI 과장과 베이징 대사관 과학기술 담당관이 대표로 참가했습니다. 반면 미국, EU, 일본은 대표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29개국 서명국은 대부분 AI 후진국, 즉 글로벌 사우스에 해당하는 국가들입니다.
이러한 회의가 큰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있습니다. AI의 중심은 미국, 일본, 한국 등 선진국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이 직접 참석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중국은 대대적인 보도를 했지만, 미국, EU, 일본 등 AI 선진국에서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반대 보도도 있습니다.
미중 경쟁과 AI 기술의 부상
AI 선진국들이 계속해서 세계 질서의 중심에 있다면 좋겠지만,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보도도 많습니다. 만약 50년 후 중국이 AI 분야에서 한국을 넘어선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핵심적인 국제정치 문제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과학 국제정치의 중요성이 커졌고, 부국강병의 의미가 AI로 인해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공치의 내용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문화와 생태 분야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본격화될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변화를 더 겪고 있는 파트겠지만, 그 연기 내용도 상당히 바뀌었다. 자강·균세 같은 근대적 개념에서는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미가 강한데, 그런 개념이 사라지는 것이냐? 여러분의 세계관과 다르지 않다. 당장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것도 경쟁 시스템이 더 치열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경쟁과 공생 시스템으로 바뀌어 갈지 모른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공생적인 요소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 내가 잘 먹고 잘 살아야 하고, 내가 소속된 정치 단체가 잘 살아야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잘되고 너도 잘되는' 공생의 생각을 하는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일까? 경쟁은 근대적인 것에서부터 주어졌지만, 경쟁을 끝까지 하면 어떻게 될까? 첨단 기술이 상상을 넘어서게 변화하는 경우, 경쟁만으로 가면 결국 나만 오만하게 되고, 나도 죽고 너도 죽는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경쟁을 공생으로 보완하거나 와해시키지 않고서는 나도 죽고 너도 죽는 시스템에 본격적으로 부딪히게 될 것이다. 얼핏 들으면 '나는 이미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다. 나는 전통인도 아니고 근대인도 아니며, 탈근대 복합인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만약 근대에서 복합 질서로 바뀌어 간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나는 근대인으로만 살아가지 않고 복합인으로 살아가려는 복합파 이론을 세워 인생과 나라를 함께 그려나가려 동참했는데, 가보니 여전히 근대인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더라.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나는 무대 주인공이 아니거나, 무대 설 공간도 적고 연계 내용도 익숙하지 않은 것들뿐이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행위자 변화와 새로운 국제정치
물론 내 시각에서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는 것이고, 들어보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동의할 수 없다. 나는 근대인으로 살고 싶다. 복합인으로 사는 것보다. 그러면 여러분의 운명을 선택하는 것이니 내가 말릴 수는 없다. 그러면 내가 말한 것처럼 주인공이 변화하고 있는가? 근대인에서 복합 국가로 바뀌고 있는 것인가? 무대 내용이 바뀌고 있는 것인가? 연기의 내용이 바뀌고 있는 것인가? 그것을 좀 따져보고, 그러기 위해서 미국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고, 중국은 무슨 짓을 하고 있으며, 세계 질서의 중심에 놓인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꿈은 무엇이 될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따라서 우선 미중 간의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행위자(actor)를 보면, 행위자가 바뀌었는가?
행위자를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편의상 세계 군사비 추세, 2025년 SIPRI 통계를 가지고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통계를 보면 1위부터 15위까지 나와 있다. 대체로 3년 세계 군사비가 현재 3조, 작년에 3조 정도 썼다. 2조 9천억 달러 정도 썼는데, 예상대로 1위는 미국, 2위 중국, 3위 러시아, 4위 이렇게 해서 한국 13위, 15위 스페인까지 쭉 나열되어 있다. 내가 이것을 보여주는 것은 그냥 막연히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계 질서, 세계 질서의 중심 국가는 누구인가? 우리가 굉장히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한국 같은 데서 교육을 받으면 우리가 쓰는 중요한 말 중에 하나가 '주변 4강'과 분단된 남북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주변 4강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이야기인가? 보라. 러시아가 지금 가지고 있는 군사비는 미국과 중국에 비해 미국이 대체로 1조, 중국이 3천억 달러 정도 된다. 3대 1 정도 된다는 말이다. 러시아가 가지고 있는 것은 2천억 달러가 안 되고, 일본은 우리와 비슷한 12권에 있다. 그러면 맞지 않다. 제가 주변 4강이 아니다. 그러면 머릿속에 대강 그림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면 3조에 1조를 쓴다. 내년 미국은 특히 문제인데, 내년 국방 예산에서 1조에서 1조 5천억으로 늘리겠다고 트럼프가 지금 예산을 의회에 보내놓고 있다.
그 1940억 달러 증가인데, 1조 5천억이 되면 엄청난 군사비 증강이다.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미국은 망하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그러면 저런 것을 보면 이제 어떤 생각이 드냐면, 우리가 국제정치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논의하는 핵심은 이런 것들이다. 드디어 미국 중심의 질서에서부터 바이폴라에서 멀티폴라로 가고 있다. 멀티폴라로 가려면 그중 첫 번째 지표인 군사비가 멀티폴라가 되어야 하는데, 저것으로 봐 가지고는 멀티폴라라고 얘기하기는 좀 이르다.
누가 제일 잘 아는가? 중국이 제일 잘 안다. 왜 중국이 미국과 정면 승부를 안 하는가? 대체로 힘의 배분 비율이 3대 1이 되지 않는데 싸우는 것은 바보라고 할 수 있다. 한 개인의 싸움에서도 힘이 1/3도 안 되는데 맞장을 뜨는 것은 죽을 각오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국도 그걸 잘 안다. 그러니까 정면 승부는 안 한다. 따라서 우리는 언뜻 생각에 미중 중심의 질서라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이것은 어느 정도 비대칭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그림을 머릿속에 상정해야 한다.
두 번째는 경제다. 군사만 근대 국가나 이런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째 지표가 경제인데, 경제를 보니 금년도 GDP 전망은 2026년 대체로 124조 달러 정도 될 것으로 예측한다. 그중에 미국이 32조, 중국이 21조다. 아까 군사비보다는 상대적으로 얼추 70% 정도 따라온 것이 아닌가? 약간 3대 1이었는데 이것은 70대 100쯤 되는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도 아직까지는 여전히 미국이 우위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이 15위 정도 된다. 그러면 이게 바이폴라가 멀티폴라가 될 것이냐 아니냐 이런 얘기를 할 때, 누가 그런 논쟁을 할 때 여러분 머릿속에는 이런 데이터 같은 것을 먼저 가지고 생각을 해라. 그러면 어떻게 된다는 거지? 멀티폴라가 되면 어떤 그림의 변화가 오는 것이지? 그런데 아까 누누이 설명했듯이 이것은 근대 지표다. 부국강병해야 무대 중심 스타가 된다. 그런데 새로운 질서에서는 군사력과 경제력만 가진다고 주인공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새로운 것은 첨단 기술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예인데, 그러면 예를 들어 AI는 누가 가지고 있는가? 서로 군사·경제는 좀 약하더라도 AI가 오히려 앞서가고 있으면 어떻게 되는가? AI를 하나의 지표로 군사비나 GDP로 계산하기는 조금 애매하지만, 샘플의 하나로 제시한 여섯 가지 자본(파워, 탤런트, 특허권, 데이터, 에너지, 컴퓨팅 파워)을 종합해 보니, 대강 AI 선진국은 미국과 중국인 것 같고, 그중에도 아직 미국이 앞서가고 있다. AI 선진국 중도국에 해당하는 것이 EU, 일본, 사우디아라비아이고, 새로 부상하는 것은 돈의 힘 때문에 UAE나 사우디이며, 나머지 AI 후진국들이 존재한다.
그러면 대강 머릿속에 그림들이 얼추 그려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지표를 보면, 이것은 전 세계 싱크탱크 평가다. 전 세계 수백, 수천 개의 싱크탱크가 있는데, 전 세계 싱크탱크 담당자들이나 관련 국제정치 담당자들에게 여론 조사를 해서 랭킹을 매긴 것이다. 어디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나? 세계 질서에 대해서. 왜 2018년 자료인가? 저것을 내년 통계로 내던 이구소 소장이 2018년 사망으로 저 통계가 끊어져 버려서 저게 마지막이고 뒤를 잇지 못했는데, 2018년 통계를 보면 20개 중에 미국이 열 개나 된다. 군사력보다 지식력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훨씬 앞서가고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소위 '안다'는 면에서. 그런데 더 복잡한 것은 그다음은 어디인가? 유럽이 일곱 개다. 아, 자기네들이 조사한 거니까 그렇지.
그런데 꼭 그렇게만 조사한 것은 아니다. 저게 글로벌로 다 우리한테도 물어보고, 중남미, 중국, 아프리카, 글로벌 사우스까지 다 물어봐서 통계를 낸 것이다. 그럼 왜 저렇게 밖에 안 나오는가? 중국이 군사·경제 모두 2위인데 왜 여기에 미국이 열 개면 한 대여섯 개는 중국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중국도 알고 있다. 왜 싱크탱크가 국제적인 영향력에서 브루킹스나 CSIS 같은 것들이 될 만한 것들이 없냐 하는 것은 어쩌면 그것이 중국이 가지고 있는 지금 한계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행위자 차원에서는 새로운 복합 국가에서는 아직까지 미국이 선두의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힘이 점차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를 머릿속에 가져야 한다. 그러니까 섣불리 단편화 또는 복합화 논쟁을 추상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구체적으로 얼마만큼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스스로 공부하고, 개인에게는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중국이 중심적인 행위자가 된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면 영어를 하면 안 된다. 지금이라도 중국어 학원을 다녀야 한다. 그렇지 않겠는가? 열심히 중국 학원을 다니고 중국의 역사나 문화를 공부하고, 50년 후 영어를 때려치우고 중국어를 했는데 50년 후에 중국이 세계 질서의 중심권에 서지 않았다고 하면 엄청난 개인적인 변경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그 판단은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동시에 마찬가지로 '나는 영어에 올인하겠다' 그것도 조심스러운 게, 미국이 옛날의 위치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는 변화를 지금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미국을 넘어선 새로운 행위자들의 모습에 내가 예민해져야 되는 부분은 중요하다. 그럼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이것에 예민해야 하는가? 그래서 나는 오히려 복합 네트워크 국가가 된다. 그러니까 선생님, 저는 조금 더 미래 지향적으로 글로벌 사우스를 위해서 한평생 몸 바치든지, 또는 글로벌 조직이나 이런 것에 올인하겠다.
기술 국제정치의 중요성과 전문가 부족
그런데 그 경우는 그 경우대로 그것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힘의 배분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것대로 무대 중심에 설 수는 없는 딜레마가 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커지고 어느 한계에 있는 것이냐에 대한 정확한 리딩이 굉장히 중요하다. 두 번째는 이것은 아까 설명을 했으니까 길게 안 하겠다. 내가 이것을 아무리 설명해도 1990년대에 무대가 바뀌고 있다. 설명을 해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아서, 궁리하다가 다보탑에 비유해서 다보탑이 3층 탑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저 안보·경제 질서에 모든 것을 받쳐서 리서치를 하는데, 실제 국내 국제정치를 가르치는 대부분의 전공을 봐도 안보 전공이냐 또는 구 국제정치경제 전공이냐 하는 부분이 많다. 최근에 와서 기술 국제정치 같은 것에 조금 관심들을 가지고 있다.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가령 이 부분에서 국내에서 제일 열심히 했던 것은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 김상배 교수가 비교적 앞서서 해온 케이스인데, 김 교수가 8학번이니까 아마 90년대 초에 와서 '선생님, 이게 운동권으로 80년대를 뛰어다녔는데, 이거 가지고 안 공부를 해야 되겠는데 뭐 좋겠냐?'
미국 유학 가서 기술을 해라. 그런 게 없는데요. 가르치는데요. 왜? 그것을 필드로 있지는 않지만, 기술과 국제정치 이런 것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 밑에 가서 그것을 해라. 어떻게 됐을 것 같아? 그러니까 한 10년 가까이 걸려서 했다. 인디애나에서 돌아와서 이제 같이 리딩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처음 한 5년. 왜 그러냐면 1994년에 월드 와이드 웹이라는 것이 처음 등장하거든요. 그러니까 처음으로 인터넷이 본격화되는 시절이었고, 선생님이 기술과 정치로 뜬다.
그래서 10년을 버티고 했는데, 그것을 국제정책에서 왜 하냐고 아무도 관심도 없고 불러주는 사람도 없다. 아, 그러니까 내가 연도를 정확히 맞출 수는 없지. 그런데 이것은 시간 문제다 그랬거든요. 2000년대 초반에. 그러고 어떻게 됐나? 요즘은 만날 수가 없다. 너무 바빠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화를 해서 뭐 정부나 비즈니스, 언론이 기술 국제정치를 아는 사람 중에 김상배라는 사람 말고 누구 없냐고. 한 사람한테만 다 물어볼 수는 없지 않나.
그건 어떤 의미에서 스테이지로는 대박이 난 것이다. 또 하나의 지금 문제가 생긴 것은 AI라는 것이 졸지에 각광을 받으니까. 그런데 AI는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지금 아니지 않은가? 범용 기술(general-purpose technology)이라고 하는 것은 아까 말한 대로 군사, 경제, 글로벌 거버넌스 모든 것에 지금 변화를 가져오고 있기 때문에 이게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 주식 시장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군사회가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남북한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런데 사람이 없으니까 AI 전문가들이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AI를 연구하는 분들 가운데 국제정치를 공부한 경험이 있거나 개론 이상 수강한 사람이 드뭅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매우 위험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AI를 기반으로 미중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는 것을 AI 전문가나 AI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에게 묻는다면, 그들은 AI 기술이나 AI 비즈니스에 대한 매우 좁은 시각에서 과감한 예측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전체 무대를 보지 못하는 것이므로, 그들의 예측에 따라 투자했다가는 큰 손실을 볼 수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비전공자들이 전문가 행세를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에게 열린 무대를 얼마나 정확하게 읽고, 그 문제에 대해 전문가 수준의 훈련을
근대 국제정치를 넘어서는 행위와 훈련
개인이나 국가, 혹은 지구 차원에서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 됩니다. 퍼포먼스의 경우, 행위자나 무대가 바뀌면 궁극적으로 행동 자체가 달라지는데, 그 움직임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자강·균세에서 경쟁·공생으로 바뀐다는 것은 인간이 바뀔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국제정치를 근대적으로 배울 때, 미국 국제정치학은 리얼리즘부터 시작하며, 국제정치는 결국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과연 이것이 100% 맞는 말일까요?
근대적인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는 것과 근대를 넘어선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의 방식이 반드시 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것에 따라 내가 추구하려는 춤사위도 바뀌고 훈련도 해야 합니다. '국제정치는 어떻게 바뀌어도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주장은 과연 맞을까요? 트럼프, 시진핑, 유럽연합(EU)의 상황을 보더라도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드시 그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복합 질서는 왜 그러냐면, 우리가 생명체 중에 근대 국제정치의 비유법으로 늑대를 많이 비유합니다. 실제 늑대가 들으면 억울하겠지만, 저는 사람들의 글을 별로 믿지 않기 때문에 국제정치학자들은 거짓말을 많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늑대가 살아가는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자세히 보면, 그렇게까지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이야기했지만, 국제정치에는 그런 요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늑대 거미'는 다릅니다. '네트워크 국가'는 그물망처럼 연결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거미와 관련이 있습니다.
늑대는 많이 모여 사는 수인데, 검이라고 하는 것은 사방에 연결하는 것입니다. 1990년대에 제가 이를 고민하며 한쪽에서는 늑대가 중요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거미의 삶이 중요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AI에 물어보면 되겠지만, 당시에는 인터넷 초기였기 때문에 찾아보던 중 우연히 늑대와 거미를 함께 검색했습니다. 그랬더니 늑대거미가 화면에 나타났습니다.
처음으로 늑대거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늑대거미처럼 사는 것이 복잡한 현대 사회의 핵심 요소라는 점을 홍보했습니다. 늑대거미에서 더 나아가, 허밍버드와 꽃의 공생 관계를 살펴보면 서로 살아남기 위해 일정 부분 변화합니다. 새는 부리가 길어졌고, 꽃은 새가 먹기 좋게 바뀌어 갔습니다. 이처럼 삶의 양식이 동시에 변화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AI가 등장하면서 근대 국제정치만으로는 미래 국제정치를 공부하는 데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AI가 군사 분야에 미치는 혁신적 영향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 근대 국제정치의 꽃은 전쟁과 평화입니다. 전쟁과 군사는 근대 국제정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근대 국제정치에서 AI가 등장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미국에서 AI를 도입해 바꾸려는 것은 이미 세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2017년 처음 프로젝트로 등장해 이제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등장한 부분은 정보 수집 방식의 변화입니다.
AI가 정보를 수집할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두 번째는 군사적 결정을 AI가 내릴 경우 인간이 하던 것보다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마지막으로 결정된 것을 실행하여 목표물을 타격할 때 AI가 발전하면 어떤 변화가 올까요? 이러한 세 가지 변화가 이미 나타나고 있으며, 정보 수집, 의사 결정, 목표물 타격 방식이 AI 이전과 이후로 매우 달라졌습니다.
맨 왼쪽의 세 가지를 보면, 미국이 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드론이 수없이 많은 사진을 찍어 왔지만 분석관이 밤낮없이 봐도 10%밖에 분석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AI에게 분석을 맡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AI를 동원하여 육해공에서 찍는 다양한 정보를 하나로 모아 상대방의 적정을 AI를 통해 읽어내도록 했습니다. 처리하지 못하던 정보들을 매우 세부적으로 읽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때 지도자 40여 명이 모인 곳을 정확히 타격하여 순식간에 제거했던 것처럼, 다양한 정보를 AI를 매개로 하여 분석하고 의사 결정 과정으로 넘겨줍니다. 조각났던 정보들을 종합하여 결정을 내리는데, 최근 AI 발전을 동원하면 무수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정책 결정이 무엇인지 100시간 이상 걸릴 것을 1분 이내에 시뮬레이션해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이 최종 결정을 내리고, 타격 역시 이전보다 훨씬 정확하게 이루어집니다. 한반도 경우, 확장 억제에 대해 북한이 불편해하는 것은 만약 전쟁을 동원하는 형태로 사태가 진전된다면, 우리는 평양 시민은 다치지 않게 하면서 당신들의 지하 벙커 테이블만 부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 AI의 도움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최근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이러한 예측이 거짓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현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미 간 군사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시 작전권을 언제 주고받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은, 미국이 작전권을 진행하는 데는 AI가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데, 우리 작전권은 매우 근대적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초보적인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를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2028년에 전시 작전권을 받아올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2~3년 후 미국이 어떤 형태로 전시 작전권을 수행할지는 국방부도 답변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AI 기술 혁신과 밀접하게 연관된 부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다음 세대나 새로운 세대가 고민해야 할 것은 우선 같은 작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인지입니다. 한 나라가 왜 전시 작전권을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지는 정치적인 문제이지만, 그 이전에 기술적으로 같은 작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가 먼저 해결되어야 합니다. 만약 양측의 작전권이 매우 다르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해질 것입니다. 예상대로 시간이 매우 빨리 가고 있으므로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변화하는 세계 질서를 미국이나 중국은 얼마나 예민하게 따라잡으려고 하고 있는 것일까요?
미중의 세계 질서 대응과 한국의 과제
한편으로는 맞고 한편으로는 틀린 부분이 있습니다. 이 변화하는 세계 질서를 누가 가장 선도하고 이끌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미국이나 중국이라고 단정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당장 트럼프만 봐도 매일 이야기가 다르고, 트럼프의 꿈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워싱턴 DC나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최악의 시기인데, 싱크탱크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우리가 고민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자신의 방식대로 하겠다는 판단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미국이 무슨 생각을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간단한 방법은 대표적인 문건인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을 보는 것입니다. 이 문건은 보통 4년에 한 번씩 발표됩니다. 트럼프가 마음대로 한다고 해도, 그의 생각에 맞는 팀에 의해 작성되고 트럼프가 직접 읽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그의 생각과 전혀 다른 보고서가 나올 수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2025년 11월에 발표된 '국가안보전략' 보고서가 중요하며, 이후 국방부 등 하위 문서들이 나올 것입니다. 몇 가지만 지적하자면, 가장 중요한 변화는 과거의 '글로벌리즘'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트럼프는 더 이상 글로벌리즘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복합 시대로 나아가고 있으니 좀 더 복잡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트럼프의 주장은 전형적으로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며, 이를 어떻게 극대화할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기적인 트럼프의 생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문명사적 변화 과정 속에서 트럼프, 시진핑, 푸틴, EU 등이 나타나는 현상 자체가 근대가 겪고 있는 대혼란기의 중요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우선주의'가 첫 번째 원칙이며, 이에 따라 중요한 변화가 나타날 것입니다. 첫째는 미국이며, 둘째는 서반구입니다. 셋째로 강조하는 것은 아시아 태평양,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을 어떻게 장악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유럽인데, 트럼프는 유럽에 대해 모욕적인 발언을 계속하며 '너희는 설 자리가 없다'고 말합니다. 유럽은 이제 끝났다는 것입니다. 유럽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중동이나 아프리카는 그 아래 단계에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의 명칭을 바꾸고 '국방전략(Defense Strategy)'을 동시에 생산합니다. 앞서 언급한 '미국 우선주의'를 어떻게 힘을 바탕으로 달성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북한이 다섯 번째로 언급된 것을 보면 중요한 부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홈랜드 헤미스피어, 차이나, 러시아, 북한(DPRK) 순입니다. 정말 북한을 중시하는 것일까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 중심이며, 두 번째는 중국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핵심입니다. 러시아, 이란, 북한은 앞선 국가들에 비해 제한적인 위상을 가집니다. 맨 아래 항목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중국'의 경우, 우리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국제정치를 배우기 때문에 단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미국 친구들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아태지역을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미국과 서방구를 일차적 목표로 놓고, 이를 위해 아태지역을 들여다봅니다.
그들의 중심 논쟁 중 하나는 '제1 도련선, 제2 도련선, 제3 도련선'으로 인도-태평양을 나누는 것입니다. 'First Island Chain'이라는 말이 있듯이, 도련선은 섬들을 연결한 선입니다. 일본 북쪽에서 내려오면 대만은 제1 도련선 안쪽에 해당하며, 우리나라도 제1 도련선에 가까운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미국은 미중 경쟁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우선적인 과제로 삼고 있으며, 북한은 부차적인 과제입니다.
우리는 이것만 주로 생각하고 있어서 서로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중국은 상대적으로 미국보다 총체적인 국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문제를 매우 길고 넓게 보는 데에는 매우 훈련된 나라임은 확실합니다. 1971년 키신저와 저우언라이가 만났을 때, 키신저는 저우언라이가 역사를 오늘이나 내일이 아닌 10년, 20년, 또는 100년의 사이클로 본다는 것을 보고 당황했습니다.
중국은 대체로 천년 단위로 역사를 보며, 이는 하나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키신저는 매우 당황했습니다. 힘은 약하지만 시공간에 여유를 두고 보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는 2022년 10월 제20차 당대회에서 발표된 2035년과 2050년까지의 목표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2020년부터 2035년까지는 사회주의 현대화 기본 실현을, 2050년까지는 '건성(建省)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목표로 합니다. 중국 친구들에게는 이 제목을 바꾸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제목이 너무 길면 오히려 무엇을 하려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좋은 말을 다 집어넣으면 오히려 핵심이 흐려집니다.
어릴 적 교가처럼 이름을 길게 지으면 오래 살라는 뜻이지만, 물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처럼 한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어야 명확합니다. 그럼에도 2022년에 2035년과 2050년에 대한 논의를 내부적으로 매우 본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한국의 경우, 2050년에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별로 없습니다. 이는 여러분의 몫일 수 있습니다. 최근 내용을 자세히 보려면, 외교, 경제, 기술, 규범, 안보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외교 및 경제 파트는 근대적인 부분입니다. 중국은 근대적인 경쟁을 계속해야 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형 대국 관계'와 '신형 주변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가 중요합니다. 시진핑 주석이 2012년 집권 이후 강조해 온 것은 미국과 일차적으로 충돌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불충돌, 불대항'을 원칙으로 하되, 힘의 비대칭성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과 공동 번영을 위해 협력하자는 것이 3대 목표입니다. 하지만 주변국 관계에서는 항상 충돌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주변국 관계에 해당합니다.
핵심 이익을 침해받는 경우에는 군사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핵심 이익이란 국가 안보와 관련된 문제, 그리고 사회경제적 안보에 대한 도전이 있을 때, 미국과 직접 대결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싸울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대만 문제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경제적으로는 '쌍순환' 전략 등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기술 분야에서도 중국은 예상보다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북한과의 대비입니다. 북한 역시 기술과 국제 정치 변화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7월 17일부터 20일까지 열린 행사에 북한은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9개국 서명에도 북한 이름이 보이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만약 이러한 흐름이 제한된다면, 19세기에 선두에 섰던 국가들이 어떻게 선두에 서게 되었는지를 염두에 둘 때, 21세기 후반의 중심은 핵보유국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의 복합 국가 건축과 미래 전망
AI 강국이 중심이 될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규범 분야에서는 최근 중국이 제안한 3대 이니셔티브, 즉 경제, 안보, 문명에 대한 중국식 구상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어떻게 될까요? 잠정적으로 '복합 국가 건축'이라고 한다면, 주인공이 복합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현명한 방법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도 복합인보다는 근대인으로 살고 싶을 수 있지만, 외로울 수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복합화를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우선 아시아 태평양을 어떻게 엮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지정학, 세 번째는 근대의 숙제인 한반도 통일 문제입니다. 통일 문제는 더 이상 면제될 수 없으며, 그 자체로 풀어야 합니다.
통일 방안 마련도 탈근대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새롭게 부상하는 사이버 공간과 우주 공간의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용어는 1984년에 등장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우주 공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으로 근대 또는 전통 내내 문제가 되었던 국내 공간의 문제입니다.
행위자적 복합성을 획득하려면 무대적 차원에서도 복합화를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 기술에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에 참여하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어떻게 구축할지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주체적인 AI', 즉 '서버린 AI'를 하고 싶다면, 글로벌 AI나 아메리칸 AI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가 중요합니다.
중국은 중국대로 나아가는데, 왜 미국, 일본, 유럽은 가지 않는데 우리는 실무 과장이라도 간 것일까요? 한국의 스타트업들도 해외 전시장 등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해결해야 할 국제 정치의 중심 영역입니다.
따라서 첫째, 첨단 기술 파트 부분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과학 기술 전공자에게는 국제 정치와 관련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이 국제 정치의 핵심입니다. 둘째, 비극적으로 우리는 근대적 숙제인 통일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과 유사시 전술핵 사용 가능성을 고려할 때,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방안은 근대적 숙제이자 복합 시스템에서도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셋째, 경제 파트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넷째, 새로운 문명 표준으로서 근대 국가는 배타적 민족주의를 강조했지만, 이제는 각국이 일국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규제'에 대한 조심스러운 자기 성찰이 필요합니다. 이를 먼저 생각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대 설명에서 언급했듯이, 뒤늦게 다가오는 생태 문제와 문화 문제는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숙제들이 주어졌습니다. 순서를 잘 지켜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정부는 과거에는 생태 문제를 우선시하여 원자력 발전을 반대했지만, 이제는 AI의 마지막 싸움이 전기이며, 풍력이나 태양광만으로는 부족하여 원자력을 쓸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국제 정치를 제대로 읽었다면 이러한 판단 오류를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생태 문제는 언젠가 오지만, 그 순서가 먼저는 아닐 수 있습니다. 원자력 공학과를 나왔다면 꿋꿋이 다녔어야 합니다. 상당 기간 원자력 발전소는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시류가 생태 문제 중심으로 흘러 원자력 공학과를 바꾸는 판단은 단기적으로는 합리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역전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판단은 개인의 운명뿐 아니라 무대의 중심 세력을 결정하는 요소가 됩니다.
BTS와 한국 국제정치학의 새로운 가능성
마지막으로, 왜 이런 내용을 썼는지 의아할 수 있습니다. 복합 시대를 살면서 BTS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입니다. 물론 최근에는 주목도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국제 정치적 시각에서 BTS가 주목받는 이유를 검토해보고자 1년 가까이 공부 모임을 했습니다. 저는 평생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기에 BTS와 관련하여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가사를 읽어보는 것이었습니다.
BTS의 가사를 최근 곡들 위주로 살펴보니 약 200개였습니다.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어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가사가 일곱 멤버나 방시혁 PD만의 생각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어떤 방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짧은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흥미롭게 본 것은, 본인들은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두 곡이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페이크 러브'이고, 다른 하나는 '마이크로 코스모스'입니다. '마이크로 코스모스'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어설픈 해설보다는 본인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RM이나 정국 등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특히 RM은 자신이 불렀던 곡 중 하나를 꼽으라면 '페이크 러브'를 선택했습니다.
노래로 불렀다면 틀렸을 수도 있지만, 가사를 보고 뽑았기 때문에 비교적 심정을 잘 읽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들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마이크로 코스모스'를 두 번째로 중요한 곡으로 생각한 이유는, 2013년부터 발표된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에서 '페이크 러브'(2018년 곡)는 가짜 사랑과 진짜 사랑을 이야기하던 시절에서, '마이크로 코스모스'는 사실상 진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페이클럽(Fake Love)은 제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잘 아실 겁니다. 제가 이 노래에 주목하는 이유는, 제가 쓴 책 『사랑은 세계 정치에 있다』의 한 챕터만 읽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20대에 7년간 국제정치를 공부하면서도 국제정치 대신 몰두했던 개념이 루소의 '아모르 드 소아(amour de soi)'와 '아모르 프로프르(amour propre)'의 관계였습니다. '아모르 드 소아'는 진정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고, '아모르 프로프르'는 가짜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가령 남의 시선에 비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가짜 사랑인데, 노래 가사에도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까?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아파트에 사는 것, 이런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모르 드 소아'입니다. '아모르 프로프르'는 자기 생존을 위한 최선의 방법, 즉 경쟁이나 사회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억지로 번역하자면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다. 이에 대한 돌파구는 무엇일까요? 마이크로 코스머스(Microcosmos)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구상의 70억 인구가 각자의 촛불을 가지고 밤하늘을 비춘다면, 어쩌면 그 빛들이 합쳐져 무언가를 밝히지 않겠느냐고요. 아까 경쟁과 공생의 관점에서 볼 때, 결국 AI가 가져오는 질서에는 긍정적인 요소도 있지만 엄청난 위험 요소도 있습니다. 이러한 위험 요소를 완화하거나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살아남으면서 동시에 전체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마이크로 코스머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BTS의 가사에는 이런 내용이
있는데, 한국의 국제정치학계에서 이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적이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다행한 일입니다. 선배 학자들이 이미 다 썼다면 선점되어 할 것이 없겠지만, 이곳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비어 있는 공간입니다. 한국의 국제정치학은 역설적으로 미국 국제정치학에 크게 기대어 훈련되고 연구되어 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반대로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합니다. BTS 같은 노래가 인기를 얻는 것도 단순히 기존의 틀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한 저항적인 요소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어딘가 새로운 모습의 노래 가사, 춤사위, 곡조 등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만약 그런 것들이 아미(ARMY)를 움직인다면, 어쩌면 그것이 답일지도 모릅니다. 이를 바꾸어 여러분 각자의 삶에서, 또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어떻게 실현해 보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10주간의 강의를 들으면서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런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입니다. 소위 말해 좁은 의미에서 국제정치학을 깊이 있게 이해하자는 것보다는, 조금 더 꿈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