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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특별논평] 미국 부채, 달러 패권, 그리고 갈라지는 국제 금융 질서 : 한국에 주는 함의

분류
논평이슈브리핑
발행일
2026년 7월 22일

편집자 주

강명구 뉴욕시립대 교수는 미국의 부채 전가 압력에도 달러 패권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를 통화 보유가 아닌 3층 결제 인프라에서 찾습니다. 저자는 mBridge 등 대안 결제망이 확장되고 있지만 아직 기존 인프라를 대체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달러 패권을 지탱하는 정책 자체가 만성적 금융 불안을 낳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강 교수는 이 병존이 10년 이상 지속될 구조적 상수임을 지적하며, 한국이 달러 질서 내 입지를 유지하되 대안적 전환 가능성을 확보할 비전과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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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미국 연방부채, 과연 지속 가능한가

우리는 흔히 미중 패권 경쟁을 어느 한쪽이 이기고 다른 쪽이 지는 구도로 본다. 그러나 최소한 금융질서는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미국은 해외 자본이 들어오지 않으면 부채 시스템을 굴릴 수 없고, 중국은 미국과 유럽이 깔아 놓은 인프라 없이는 자기 결제 시스템조차 키울 수 없다. 둘은 서로를 완전히 대체하지도, 완전히 떠나지도 못한 채 묶여 있다. 이 상호 구속이 오늘의 국제 금융 질서를 규정한다.

이 구조 위에서 미국 부채가 지속가능한가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발단은 천문학적인 규모다. 미국의 총 연방부채는 2025년 10월 38조 달러를 넘어섰고, 국내총생산(GDP)의 약 123%에 이른다. 시장이 주로 보는 공공보유부채 기준으로도 2025 회계연도 말 GDP의 99.8%까지 올랐다. 2차 세계대전 직후를 빼면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쟁도 없는 평화기에 부채 비율이 전시 수준에 다가섰다는 사실, 이것이 논쟁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지속가능성을 가르는 것은 부채의 크기가 아니라 이자율과 성장률의 관계다. 실질 이자율(r)과 명목 성장률(g)의 크기 비교가 관건이다. g가 r보다 크면 성장이 부채를 알아서 흡수하고, r이 g를 넘어서면 정부가 손을 놓아도 부채가 저절로 불어난다. 미국은 지난 60년 가까이 g가 r보다 큰 안전 구간에 있었다. 그런데 현재는 g가 약 5.6%, r이 약 4.6%로 격차가 1%포인트까지 좁혀졌다. 새로 찍는 국채의 금리가 오르면서 이 여유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그 결과는 이자비용의 급증으로 나타난다. 2025 회계연도 순이자비용은 GDP의 약 3.1%로, 종전 최고치인 1991년의 3.2%에 바짝 다가섰거나 이미 넘어섰다. 결정적 차이는 방향이다. 1991년의 정점은 한 번 찍고 내려왔지만, 현재는 계속 올라가기만 한다. 미 의회예산처(CBO)는 순이자비용이 2036년 GDP의 4.6%, 2050년대 중반에는 6%를 넘어서리라 전망한다. 이쯤 되면 연방 세입의 40%가량이 이자 갚는 데에 쓰인다. 함의는 분명하다. 점증하는 이자비용은 누가 집권해도 당장은 줄이지 못하는 구조적 부담이다.

이 재정 위기가 아직 터지지 않은 것은 해외 자본의 유입 덕분이다. 미국은 해마다 약 1조 2천억 달러의 해외 자본을 빨아들이며, 순 대외투자 잔액은 2025년 말 약 -27조 5천억 달러로 연방부채와 맞먹는다. 미국 금융 시스템이 굴러가는 유일한 조건은 이 자본이 계속 들어오는 것이다. 그 흐름이 갑자기 멈추거나 뒤집히는 순간, 흔히 '급정지(sudden stop)'라 부르는 현상이 발생하면 미국발 금융위기는 불가피하다. 1997년 한국이 겪은 바로 그 메커니즘이다.

그래서 논쟁은 두 갈래로 갈린다. 한쪽은 미리 손을 써서 부채 규모와 이자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보고, 다른 쪽은 기축통화국의 지위가 그런 개입 없이도 시스템을 지탱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 논쟁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문제는 미국이 파산하느냐가 아니다. 향후 10년 세계 경제가 직면할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는 파산하지 않는 미국이 그 비용을 누구에게 떠넘기느냐이다.

Ⅱ. 미국 정부는 파산하는가

미국 정부가 부채 때문에 파산하는 일은 사실상 없다. 부채 우려는 흔히 채무불이행 걱정으로 표현되지만, 이는 잘못된 질문에 기댄 걱정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미국은 자국 통화를 찍어 빚을 갚을 수 있는 기축통화국이며, 다른 방법은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국채를 더 사 주는 것, 곧 통화 정책이 재정 정책에 끌려가는 재정 지배(fiscal dominance)로의 이행이다. 이 길로의 진입은 이미 시작됐다. 연준은 2022년 6월부터 이어 온 양적긴축을 2025년 12월 종료하였다.

연준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려면 일본이 참고가 된다. 일본은행은 자국 국채의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정부 빚을 사실상 중앙은행 장부로 옮긴 셈이다. 미국 연준의 국채 보유 비중은 현재 10% 안팎이다. 코로나 위기를 겪으며 일시적으로 20% 이상까지 치솟았으나 이후 줄어드는 추세였다. 일본이 간 길에 비추면 아직 넉넉하다. 앞으로 10년 동안의 미국의 통화 정책은 연준이 국채를 얼마나 빨리, 어느 정도 매입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컨대 파산은 없다.

그러나 연준이 국채를 사 준다고 재정 위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위기는 없어지지 않고 형태를 바꿔 특정 집단에게 비용으로 떠넘겨진다. 그 통로는 결국 하나로 모이게 되며, 미국이 부채 부담을 인플레이션으로 녹이는 것, 곧 달러의 실질 가치를 서서히 깎아 내는 것이다. 이 하나의 과정이 세 집단에 다른 방식으로 부담을 지운다.

첫째, 미국 시민이 물가로 떠안게 된다. 돈을 풀어 빚을 사면 물가가 오르고 실질 임금과 구매력이 감소하게 되며, 그 부담의 상당 부분은 중산층에게 돌아간다.

둘째, 해외 보유자가 실질 가치 잠식으로 떠안게 된다. 해외 정부와 기관은 현재 약 9조 5천억 달러어치의 미국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는 한, 이 자산의 명목 가치와 국채의 명목 이자는 유지되어도 물가를 제외한 실질 가치는 조용히 깎여 나간다. 한국은행은 약 3,600억 달러, 외환보유액의 88~90%를 미국 증권으로 보유하고 있어 이 잠식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채무불이행도, 장부상 손실도 없이 손실이 발생한다. 이것이 조용한 손실이다.

셋째, 각국이 달러 체제에 대한 신뢰를 거두기 시작한다. 미국이 자기 부채 부담을 이런 식으로 떠넘기는 것을 지켜본 각국 중앙은행은, 달러 의존을 줄이기 위해 준비자산을 다변화하고 대안 결제 인프라로 눈을 돌린다. 그 전환의 과정에서 국제 금융 질서의 혼란이 불가피하다.

이 삼중 전가는 트럼프 2기 정부의 전략과 맞닿는다. 달러 가치를 낮춰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부채와 이자 부담을 인플레이션으로 덜어 내려는 것이다. 그 부담은 결국 해외 보유자에게 넘어간다. 명목상의 디폴트는 없으나 이 위험은 미국 국채 시장의 공급 구조가 바뀌면서 증폭되고 있다.

Ⅲ. 시장은 왜 더 위험해 졌는가

파산이 없다면 진짜 위험은 국채를 누가 사 주느냐에 있다. 미국 국채 시장의 자금 공급 구조는 지난 10여 년간 조용히, 그러나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해외 정부가 들고 있는 미국 국채 비중은 2008년 약 50%에서 현재 약 30%로 떨어졌다. 미국이 오랫동안 누려 온 특권, 곧 국채의 재정 위험과 무관하게 형성되던 해외 공적 수요가 말라 가고 있는 것이다.

이 감소를 분석해보면 세 나라가 각기 다른 이유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 약 1조 2천억 달러로 여전히 최대 보유국이지만, 팔고 싶어도 판매할 수가 없다. 이미 너무 많이 들고 있어 대규모로 팔게 되면 자기 자산부터 무너지기 때문이다. 일종의 강제된 편승이다. 영국은 2013년 1,600억 달러에서 8,630억 달러로 다섯 배 넘게 늘었지만, 이는 영국 정부의 판단이 아닌 런던에 몰린 글로벌 헤지펀드·연기금 포지션이 통계상 잡힌 것이다. 중국은 같은 기간 1조 3,200억 달러에서 6,840억 달러로 줄였다. 명백히 의도적인 견제다. 같은 자산을 세 나라가 세 가지 논리로 들고 있는 셈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빈자리를 누가 채웠는가이다. 답은 케이맨 군도에 등록된 헤지펀드다. 이들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새로 발행된 미국 국채의 약 37%를 사들였고, 현재는 중국·일본·영국을 제친 최대 해외 보유자가 됐다. 2024년 말 기준 보유액은 약 1조 8,500억 달러로, 2년 새 1조 달러가 늘었다.

이 헤지펀드들은 현재 미국 국채의 약 8~10%를 쥐고 있다. 한 나라 중앙은행에 맞먹는 규모이면서, 성격은 정반대다. 이들의 국채는 대부분 빚으로 산 것이라, 상위 펀드는 자기 돈의 18배까지 빌려 굴린다. 문제는 이 구조가 작은 충격에도 통째로 흔들린다는 점이다. 시장이 불안해져 국채가격이 조금만 떨어지면, 돈을 빌려준 쪽은 같은 국채를 담보로 덜 쳐 주고 더 많은 현금을 요구한다. 빚으로 굴리던 펀드는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담보로 맡긴 국채를 팔 수밖에 없다.

여기서 진짜 위험이 시작된다. 수십 개의 펀드가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투자하고 있어, 한쪽이 국채를 매도할 시에 값이 더 떨어지고, 그러면 다른 펀드의 담보 가치도 같이 떨어져 그들도 팔아야 한다. 매도가 매도를 부르는 것이다. 2020년 3월이 바로 그랬다. 코로나 충격에 이 투자들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베이시스 트레이더들이 약 1,000억 달러어치의 국채를 쏟아냈고, 세계에서 가장 깊다는 미국 국채 시장이 며칠간 마비됐다. 결국 연준이 나서서 국채를 사들여야 했다.

현재 이런 레버리지는 그때의 두 배로 불어나 있다. 물론 충격이 올 때마다 반드시 터지는 것은 아니다. 2025년 4월 트럼프의 상호관세발 혼란기에는 연준의 유동성 장치가 작동해 큰 탈이 없었다. 그러나 사상 최대로 쌓인 이 레버리지가 시장의 상시적 취약성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가장 안전하다던 국채 시장이, 거꾸로 위기를 키우는 증폭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달러 시스템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역설이지만, 이유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을 빠져나온 돈이 갈 데가 마땅치 않다. 유로존은 구조적 정체와 재정 통합의 한계에 갇혀 있고, 일본 금융 시장은 규모가 작으며, 중국은 자본 계정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아 한번 들어간 돈이 나오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보면 미국 시장이 여전히 가장 깊고 투명하고 유동적이다. 바로 이 상대적 우위가 위기의 역설을 낳는다. 시스템 위기가 깊어질수록 안전자산인 달러 자산으로 돈이 몰리고, 그 결과 달러 패권은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구조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15년간 달러 패권이 약해지기는 커녕 강해진 것이 그 증거다.

역사도 완만한 시간표를 시사한다. 영국 파운드는 대영제국이 만든 금본위제에서 1931년 발을 뺀 뒤에도, 패권적 지위를 완전히 내려놓기까지 1950년대 중반까지 걸렸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전쟁을 겪고도 20년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니 달러 패권의 교체를 5년, 10년 단위의 사이클로 보는 것은 무리다.

정말로 걱정해야 할 것은 미국의 파산이 아니라 파산을 막으려 쓰는 정책 수단이 금융 시스템의 신뢰를 갉아먹고, 그 결과 미국발 금융 불안의 진폭이 커지고 주기가 짧아지는 상황이다. 대안 금융 질서가 무르익지 않은 조건에서 이 불안정한 병존은 오래갈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병존을 떠받치는 토대는 무엇인가.

Ⅳ. 패권은 통화가 아니라 인프라다

부채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해외 정부는 물러나며 시장은 취약해졌는데, 왜 달러 시스템은 무너지지 않는가. 이 지속성의 뿌리를 알기 위해서는 달러 패권의 진짜 토대를 정확히 짚어야 한다. 통념과 달리 그 토대는 통화가 아니다. 통화 뒤에 있는 3층 결제 인프라다.

이 인프라는 3층 건물로 보면 쉽다. 맨 위는 SWIFT(국제 은행간 금융 통신협회)다. 전 세계 약 11,500개 금융기관을 잇는 메시징 시스템으로, 결제 지시를 주고받는 통신망이다. 중간은 CHIPS(은행간청산결제시스템)와 Fedwire(연준 자금이체망)다. 실제 돈이 오가는 청산 시스템으로, 하루 약 6조 달러가 지나간다. 맨 아래는 연준 계좌로, 모든 달러 거래가 결국 여기서 정산된다. 2022년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 약 3,000억 달러를 동결한 것도 바로 이 맨 아래 층(연준 계좌)에서 벌어진 일이다.

세 층은 서로 대체할 수 없는 보완재다. 한 층만 우회해서는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 중국의 위안화 국제결제망(CIPS)이 그 결정적인 사례다. 이 결제망은 청산 층을 우회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그 거래의 약 80%는 여전히 SWIFT로 메시징된다. 러시아가 이 결제망을 써도 미국의 2차 제재가 제대로 먹힌 이유가 여기 있다. 제재는 거래를 처리하는 단계가 아니라 거래가 보이는 단계에서 작동한다. 메시징 층을 대체하지 못한 대안은 이 가시성을 가리지 못한다.

여기서 얼핏 앞뒤가 맞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 미국의 부채 문제가 불거지면서 각국 중앙은행은 달러 자산을 줄여 왔다. 준비자산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9년 71%에서 2025년 57%로 꾸준히 내려갔다. 여기까지만 보면 세계가 달러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읽히지만 실제 국제 결제에서 쓰이는 통화를 보면 정반대이다. 결제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33%에서 2025년 약 50%로 오히려 늘었다. 쌓아 두는 달러는 줄어들지만, 실제로 주고받는 달러는 늘어난 것이다.

이 어긋남은 '쌓아 두는 것'과 '실제로 쓰는 것'이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생긴다. 중앙은행이 달러를 얼마나 쌓아 둘지는 정치적인 선택이다. 미국의 제재와 자산 동결 위험에서 한발 물러서기 위해 준비자산을 다변화하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오늘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은행과 기업이 무역 대금을 결제하고 자금을 옮길 때 어떤 통화를 쓸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인프라의 문제다. 달러를 대체할 결제 시스템이 아직 없기에 실무에서는 달러를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적으로는 달러에서 멀어지려 하는 바로 그 시기에, 기술적으로는 달러에 더 깊이 묶이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이 역설이 달러 패권의 진짜 위치를 알려 준다. 부채 우려로 각국이 달러를 덜 쌓아도, 대안 인프라가 없는 한 실무 부문에서의 달러 의존도는 오히려 커진다. 패권은 통화가 아닌 그 통화를 처리하는 인프라에 있다는 뜻이다. 달러 보유가 줄어든다고 패권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인프라 지배력이 흔들려야 비로소 패권이 흔들린다. 그렇다면 대안 인프라는 달러의 지배력을 실제로 위협하는 지점까지 왔는가.

Ⅴ. 대안 질서: 시간과 우여곡절, 그 사이의 역설

대안 인프라는 지난 10여 년간 부분 우회에서 완전 우회로 진화해 왔다. 중국의 위안화 국제결제망은 2016년 4조 위안에서 2024년 약 175조 위안으로 약 44배 커졌고, 참여 기관도 출범 당시 직접 19곳에서 현재는 직접 190여 곳, 간접 1,500여 곳으로 늘어 124개국에 깔렸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 이 결제망은 청산 층만 우회할 뿐, 메시징의 80%는 여전히 SWIFT에 의존한다.

이 한계를 넘으려는 시도가 디지털 화폐 쪽에서 진행 중이다.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를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라 부른다. 중국의 디지털 위안이 대표적이다. 디지털 위안은 2025년 말까지 누적 34억 건, 약 16조 7천억 위안(약 2조 4천억 달러)을 처리하여 세계 최대의 실험이 됐다. 다만 대부분은 국내 결제이고, 2026년 1월 이를 예금부채로 재분류한 조치는 그 위상이 아직 유동적임을 보여준다.

결정적인 사례는 여러 나라 중앙은행이 함께 쓰는 결제망 mBridge로 중국, 홍콩, 태국, 아랍에미리트, 그리고 2024년 6월 정식 합류한 사우디아라비아까지 5개국 중앙은행이 참여하고 있다. 이 결제망은 자체 메시징과 다자 네팅, 참여 중앙은행 원장을 통한 결제를 갖춰, SWIFT 및 달러 청산을 거치지 않는다. 3층을 한꺼번에 우회하는 첫 통합 대안이다. 누적 거래는 2025년 11월 기준 약 555억 달러, 4,000여 건으로, 2022년 초기 파일럿(약 2,200만 달러)에서 약 2,500배 커졌다. 이 가운데 약 95%가 디지털 위안으로 결제된다.

두 가지 변화가 이 결제망의 무게를 키웠다. 첫째, 그동안 프로젝트를 중립적으로 조율하던 국제결제은행(BIS)이 2024년 10월 31일 손을 뗐다. 공식 사유는 프로젝트가 자체 운영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었으나, 그 시점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카잔 BRICS 정상회의에서 유사한 대안 결제망을 제안한 지 일주일 뒤였다. 그 결과 운영 주도권은 중립적인 다자 기구의 손을 떠나 BRICS 참여국의 중앙은행들, 특히 중국과 아랍에미리트로 넘어갔다.

둘째, 국제결제은행은 기존 자원을 서구 진영의 대응 결제망(Project Agorá)으로 돌렸다. 서구 7개국 중앙은행과 40여 개 상업은행이 참여하는 이 병행 프로젝트는 2026년 1월 시험에 들어갔다. 이 프로젝트 역시 국가 간 결제라는 동일한 문제를 다루지만, 서구 주도의 거버넌스 아래 진행되며, 결정적으로 기존의 환거래은행 체계를 대체하기보다는 그대로 보존하는 방향을 취한다. 국제 결제 시스템이 형태는 동일하나 제도적으로는 갈라지는 두 갈래로 나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이 이원화의 규모는 아직 작다. 이 결제망의 누적 결제금액 555억 달러는 미국 청산망(CHIPS·Fedwire)의 하루 약 6조 달러에 비하면 미미하다. 전 세계 137개 국가·통화동맹(세계 GDP의 약 98%)이 디지털 화폐를 실험하고 있지만, 실제로 일반용 디지털 화폐를 내놓은 곳은 소수의 작은 경제에 그치고 있다. 토대는 깔리고 있으나 기능적 대체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요컨대 대안 질서를 세우는 데는 시간과 우여곡절이 따르고, 그 이행기에는 대안이 없어 오히려 달러 패권이 강해지는 국면이 이어질 수 있다. 현재 트럼프 2기 정부의 지난 1년이 그러한 시기다. 그러나 길게 보면 달러 쇠퇴에 대비한 헤징의 필요는 사라지지 않으며, 대안 인프라도 그 그릇을 조금씩 갖춰 가고 있다.

Ⅵ. 결론과 한국에 주는 함의

이 불안정한 병존은 한국에 특히 무겁게 다가온다. 앞서 보았듯이, 한국은행이 보유한 대미 증권은 외환보유액의 대부분을 차지해 이미 조용한 손실에 노출돼 있는데, 여기에 2025년 10월 확정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가 더해지고 있다. 이 패키지는 그 노출을 오히려 키운다. 단기 국채에서 20년 만기의 고위험 장기 사업으로 자금이 옮겨 가면서, 인플레이션을 방어할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노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은 무역에서는 대미·대중 사이의 이중 압력, 결제 인프라에서는 중국이 주도하는 대안 결제망 어디에도 참여하지 않은 헤징 수단의 부재, 그리고 안보와 통화, 무역이 하나로 묶인 협상 구조에 동시에 노출되어 있다.

문제는 방향만이 아니라 속도다.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가 미국과의 안보 관계를 유지하면서 대안 인프라로 위험을 분산하는 동안, 한국은 안보 뿐만 아니라 경제·금융에서도 미국 진영과의 결합을 오히려 가속화하고 있다. 세계가 위험을 나누는 흐름과 견줘보면, 한국의 궤적은 그 반대편에 가깝다.

그러나 여기서 성급한 결론으로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달러 패권은 쉽게 저물지 않는다. 영국 파운드가 그러했듯 패권 교체에는 수십 년이 걸리고, 위기가 깊어질수록 안전자산인 달러로 돈이 몰려 그 지위는 오히려 공고해진다. 대안 질서는 아직 미완이며, 그 공백을 메우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붕괴를 앞질러 상정하고 서둘러 발을 빼는 것은 무모하다.

그러나 달러가 저물지 않는다는 사실이 곧 안심의 근거는 아니다. 미국은 파산하지 않지만, 파산을 막으려는 정책이 만성적인 불안정을 낳기 때문이다. 연준이 국채를 떠안을수록 그 비용은 인플레이션으로 조용히 전가된다. 이 불안정은 일시적 사건이 아닌 앞으로 10년, 그 이상 이어질 구조적 상수다. 달러는 건재하지만 그 달러가 만들어 내는 파고는 잦아들지 않고 오히려 더 사나워질 공산이 크다. 이 역설이 한국이 직면한 도전이다.

따라서 한국의 과제는 어느 한쪽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과 속도를 신중하게 조율하는 데 있다. 서둘러 이탈할 일도, 파산이 없다는 이유로 결합을 방심하며 심화할 일도 아니다. 달러 환율과 미중 관계의 등락에 일희일비하는 단기 대응으로는 이 균형을 잡을 수 없다. 필요한 것은 달러 질서에 발을 딛되 그 위험에 발목 잡히지 않도록 대안으로 향하는 문을 함께 열어두면서, 성급하지도 안이하지도 않게 불안정이 상수가 된 앞으로의 10년, 그 이상을 건너갈 국가적 비전과 전략이다.■

참고문헌

Arslanalp, Serkan, Barry Eichengreen, and Chima Simpson-Bell. 2022. "The Stealth Erosion of Dollar Dominance and the Rise of Nontraditional Reserve Currencies." Journal of International Economics, 138.

Atlantic Council. 2026.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Tracker." Accessed July 21, 2026.https://www.atlanticcouncil.org/cbdctracker/.

Dalio, Ray. 2025. How Countries Go Broke: The Big Cycle. New York: Avid Reader Press.

Kang, Myungkoo. 2026. "Testing the Alternative: mBridge, the Hengli Episode, and the Empirical Viability of a Bifurcated Financial Order." Working Paper, Baruch College, CUNY.

Miran, Stephen. 2024. "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 Hudson Bay Capital.

Rogoff, Kenneth. 2025. Our Dollar, Your Problem: An Insider's View of Seven Turbulent Decades of Global Finance, and the Road Ahead.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 강명구_뉴욕시립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 임재현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9) | jhim@eai.or.kr

첨부파일

  • 강명구_미국 부채, 달러 패권, 그리고 갈라지는 국제 금융 질서_260722_EAI 특별논평.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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