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중앙SUNDAY 공동기획] 100년 전과 닮은 꼴, 3대 국제경제 시스템이 흔들린다
편집자 주
1·2차 세계대전의 거울에 비친 2026년 강대국들의 패권경쟁과 무력 선호, 경제 위기와 민주주의 후퇴 그리고 권위주의 부상, 국제기구 무력화…. 오늘을 읽는 키워드지만, 100년 전에도 유효한 키워드였다. 기존 질서가 무너지며 낯설어진 오늘을 이해하기 위해 과거로 시선을 돌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100년간의 평화’ 막바지였던 1차 세계대전 직전, 그리고 1·2차 세계대전 사이의 전간기(戰間期) 시기와의 비교다. 세계적 역사학자인 마거릿 맥밀런은 “(양차 대전) 당시 전 세계를 짓눌렀던 개전(開戰)의 공포를 우리가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고 투자계의 스티브 잡스로 물리는 레이 달리오는 “1945년 형성된 새 질서가 진화해 1929~1939년 당시와 유사한 지점에 도달했다”고 봤다. 미 국방부전략기획담당 특별보좌관 출신의 할 브랜즈도 “지금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1930년대와 훨씬 더 닮았다”고 했다. 과연 어느 정도로 유사한 것인가. 역사의 반복(repeat)인가, 비슷한 변주(rhyme)인가. 중앙SUNDAY와 동아시아연구원(EAI)이 4일부터 공동기획 ‘1·2차 대전의 거울에 비친 2026년’을 통해 이 논쟁을 다룬다. ‘100년간의 평화’와 전간기가 왜 비극적으로 귀결됐는지, 오늘날 그 경로를 차단하려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색이기도 하다. 12명의 전문가가 상호의존부터 패권 경쟁, 극단주의까지 12주제를 탐색한다. 고정애 기자
대공황 중이던 1931년 미국 시카고 도심에 마련된 급식소 앞에 실직자들이 길게 줄 서 있다.
‘실직자를 위한 무료 수프와 커피, 도넛’ 간판을 단 이 시설은 ‘수프 키친’으로 불렸는데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가 마련했다.
하루 평균 2200명이 식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국제사회는 대규모 경제충격과 이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이 어떻게 국제질서를 파국으로 이끌 수 있는지를 경험하였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인 전간기(1919~1939) 때이다. 1929년 미국발 대공황은 전간기에 국제경제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2차 세계대전이라는 지정학적 충돌로 이어졌다.
이 전간기에 무너진 건 3대 자유주의 시스템으로 금본위제 통화체제, 자유로운 자본 이동, 자유무역 체제가 그것이다. 유럽의 강대국들은 1차 대전이 끝난 뒤 전쟁 이전의 번영을 되살리려 했으나 1919년부터 1939년 사이 20년 남짓한 시기에 이들 기둥은 차례로 무너졌다. 금본위제는 유럽 각국이 1차 대전의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금태환을 정지한 후 일시 멈추었다가 전후에 원상태로 복귀가 시도되었으나 복귀가 쉽지 않았다. 가령 영국은 1925년 파운드화를 전전 평가로 금에 복귀시켰지만 이는 전후 취약해진 영국경제의 여건에 무리였다.
국제경제협력 틀 사라진 자리엔 불신
1929년 미국 월스트리트의 주가 대폭락으로 촉발된 대공황은 이미 균열이 가 있던 자유주의 국제경제 시스템을 무너뜨린 분기점이 되었다. 대공황이 국제경제 시스템 붕괴에 미친 영향은 크게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금본위제의 붕괴다. 금본위제는 영국의 파운드, 프랑스의 프랑, 미국의 달러 등을 금의 가치에 각각 연동한 대표적인 고정환율 제도를 말하는데(금 1온스는 4.25 파운드, 1파운드는 25.22프랑이었음), 환율 안정화를 통한 자유무역을 촉진한 기제였다. 대공황으로 인한 디플레이션과 은행 위기가 겹치면서 각국은 수출증대를 통한 경제위기 탈출을 위해 경쟁적 환율 평가절하를 시행하였다. 이 유명한 ‘근린궁핍화’ 정책은 고정환율제인 금본위제의 붕괴와 다름 아니었다. 영국은 1931년 금본위제를 이탈했고, 미국도 1933년 금태환을 정지했다.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스위스·이탈리아·폴란드 등 금블록 국가들도 1936년까지 차례로 이탈했다. 금본위제는 각국의 자조적 평가절하 경쟁으로 무너졌다.
둘째, 자본통제의 강화다. 은행 시스템이 연쇄적으로 붕괴하고 자본이 안전자산을 찾아 급격히 이동하자, 각국 정부는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외환통제와 자본이동 규제를 도입했다. 오스트리아는 1931년 여름 크레디트안슈탈트(Credit-Anstalt) 은행의 파산 직후 즉각 외환통제를 실시하였다. 독일은 1931년 7월 외환관리법을 도입해 마르크화의 해외유출과 외화 매입을 엄격히 통제해 사실상 자본자유화를 포기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은 1935년 이후 자급자족경제의 일환으로 외환통제와 자본이동 제한을 강화하였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 포괄적인 자본통제 정책은 도입하지 않았지만 자본이동의 관리와 제한적 통제를 강화하였다.
셋째, 보호무역주의의 대두다. 미국은 1930년에 2만 개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을 실시하였다. 미국은 당초 자유무역체제에서 불이익을 받아온 농부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 관세법안을 고려하기 시작하였는데 결국 수입관세를 대폭 상승시키게 되었다. 이 법 시행 이후 미국의 평균 실효관세율은 40%에서 약 47~48%가 되었다. 이에 각국이 보복관세로 맞대응하면서 세계무역량은 1929년부터 1933년 사이 3분의 1 이상 급감했다. 영국은 제국특혜관세를 통해 자국 식민지·자치령 중심의 파운드 블록경제를 구축했다. 미국·프랑스·독일과 일본 역시 각각 달러·프랑·마르크·엔 블록을 형성했다. 세계경제는 몇 개의 폐쇄적 경제블록으로 쪼개졌다.
이 세 가지 흐름은 서로를 강화하는 악순환을 이뤘다. 금본위제 붕괴는 환율 불안을 낳았고, 이는 자본통제를 정당화했으며, 환율 불안과 자본통제는 중상주의적 보호무역을 부추겼다. 그 결과 국제경제협력의 틀이 사라진 자리에 블록 간 경쟁과 불신이 자리 잡았고, 이는 결국 2차 대전이라는 지정학적 파국으로 이어지는 배경이 되었다.
1944년 미국 브레턴우즈에서 열린 통화 회의. 이 회의에서 국제 통화 질서인 브레턴우즈 체제가 수립되었는데,
미국의 달러화를 금에 고정하고 다른 나라들의 통화는 달러와의 교환 비율에 의해 결정되도록 했다. [사진 세계은행]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에서 나타난 변화들은 전간기의 패턴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첫째, 달러 기축통화 체제의 균열이다.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에도 달러는 사실상 유일한 국제 기축통화 지위였다. 그러나 2008년 위기로 미국 금융시스템의 신뢰가 흔들리면서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은 달러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위안화 국제화, 브릭스(BRICS) 국가들의 자국 통화 결제 확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논의, 그리고 최근의 대러시아 제재 이후 러시아·중국의 탈달러 결제망 구축 강화는 모두 같은 맥락에 있다. 아직 달러의 지위를 대체할 뚜렷한 대안은 없지만, 단일 기축통화 체제에 대한 신뢰는 분명 이전보다 약해졌다.
둘째, 자본통제의 부활이다. 2008년 위기 이후 신흥국들은 급격한 자본유출입에 대응해 다양한 형태의 거시건전성 규제와 자본이동 관리 수단을 도입했다. 국제통화기금조차 과거와 달리 제한적 자본통제를 용인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최근에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외국인투자심사 강화, 수출통제, 기술이전 제한 등 안보를 명분으로 한 새 형태의 자본·기술 통제가 확산되고 있다. 이는 순수한 자본이동 규제를 넘어 경제와 안보가 결합된 통제로 진화한다는 점에서 전간기보다 한층 복합적이다.
셋째, 보호무역주의의 재부상이다. 2008년 위기 이후 각국은 표면적으로는 자유무역을 표방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자국산업 보호 조치를 늘려왔다. 2018년 이후 미·중 무역분쟁에서 본격화한 관세전쟁,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 전략산업에 대한 보조금 경쟁과 공급망 재편, 프렌드쇼어링, 칩4동맹,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디리스킹 담론, 브릭스 확대, 상하이협력기구 강화(SCO)는 세계무역기구 중심의 다자무역체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음을 보여준다. 우방끼리만 핵심 자원과 기술을 공유하겠다는 배타적 경제블록화의 현대적 변용이다. 이는 전간기 블록경제화와 본질적으로 유사한 흐름이다.
얽힌 공급망 영향 완전한 디커플링 어려워
그렇다면 이러한 유사성은 2차 대전과 같은 지정학적 갈등으로 귀결될 것인가. 두 가지 상반된 답이 모두 가능하다. 먼저 비관적 시나리오다. 경제 시스템의 균열이 지정학적 갈등으로 전이되는 경로는 전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기축통화 체제에 대한 불신, 자국 중심의 자본·기술 통제, 진영별 무역블록화가 동시에 진행되면 각국은 상호의존에서 오는 경제적 혜택보다 자립과 진영 결속에서 오는 안전을 우선하게 된다. 미·중 전략경쟁이 무역·기술·금융 전반으로 확산되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정세 불안이 이를 증폭시키는 지금의 양상은 전간기 블록경제와 지정학적 긴장이 서로를 강화했던 과정과 구조적으로 겹친다. 경제 갈등이 영토 전쟁이자 국제질서의 파멸적 재앙으로 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적 상호의존이 약해질수록 무력충돌의 비용 인식이 낮아진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낸다.
그러나 낙관적 시나리오 역시 성립한다. 전간기와 결정적으로 다른 조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첫째, 금융·통화·무역·개발·안보 등과 관련된 다양한 다자 국제협력기구와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와 같은 포괄적인 상시적 국제 정책협의체가 존재해 위기 시 최소한의 정책 조율 통로를 제공한다. 전간기에는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없었다. 둘째, 핵무기 시대의 전면전은 상호확증파괴(MAD)라는 인식이 강대국 지도부에 최후의 레드라인처럼 공유돼 있다. 따라서 경제 갈등이 곧바로 군사충돌로 비화할 가능성을 억제한다. 셋째, 오늘날의 공급망은 전간기 블록경제보다 훨씬 촘촘하게 얽혀 있어 완전한 디커플링의 경제적 비용이 막대하다. 과거의 블록경제는 블록 내부에서의 자급자족을 목표로 완결성을 가질 수 있었지만, 현대의 첨단산업은 단 하나의 국가나 블록이 가치사슬 전체를 독점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과 중국이 아무리 디커플링을 외쳐도 원자재, 부품, 완제품의 유통 네트워크 전반에서 완벽하게 단절되는 것은 서로에게 즉각적인 경제충격이 될 수 있다.
전간기의 경험이 주는 근본적 교훈은 경제충격 그 자체보다 그것이 기존 국제경제 시스템의 취약성과 결합할 때 파괴력이 커진다는 사실이다. 2008년 위기 이후 달러체제·자본이동·자유무역이라는 세 축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국제경제 시스템은 분명 전간기와 유사한 위기 국면에 놓여 있다. 다만 그다음 단계, 즉 이 균열이 2차 대전과 같은 지정학적 파국으로 이어질지는 각국이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전간기의 실패는 예정된 운명이 아니라 정책적 선택의 누적된 결과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ㆍ금본위 통화제=화폐 가치를 일정한 무게의 금에 연동하는 제도. 통화 당국이 발행한 지폐를 요구 시 언제든 금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 금태환. 통화량을 금 보유량 내로 제약해 물가를 안정시키지만, 경제 위기 시 유연한 재정ㆍ통화 정책을 막는 한계가 있다.
ㆍ제국특혜관세=1932년 영국이 대영제국에서 상호관세를 낮추고, 블록 외 국가에는 고율 관세를 부과한 배타적 보호무역 제도. 전 세계를 경제 블록화 및 세력권 분할로 치닫게 만들었으며, 2차 대전의 배경이 되었다.
이용욱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남가주대(USC) 국제관계학 박사로, 오클라호마대 조교수와 브라운대 펠로우를 거쳤다. 국제금융통화의 정치경제, 동아시아 금융협력, 한중일 금융외교를 연구하고 있다. 『위기 이후 한국의 선택』 『지역연구의 전환과 세계정치의 이해』 등의 공저가 있다.
[출처:중앙일보, 고정애 기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45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