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AI 패권경쟁과 동남아 기술 진영 선택 압박: 팍스 실리카·WAICO 경쟁 구도 분석
총괄 요약
미 국무부의 팍스 실리카 구상과 중국 WAICO가 병존하는 가운데, 워싱턴은 배타적 참여를 요구하는 서한 초안을 통해 동남아·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양다리 전략에 제동을 걸고 있다. 다만 서한 발송 여부와 시점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이며, 말레이시아가 미국의 반대에도 화웨이 칩 채택으로 기울어 있는 사례는 배타적 요구가 실제 관철되기 어려울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싱가포르, 카자흐스탄 등은 즉답을 피하고 전반적 관계 속에서 판단하는 헤징 외교를 통해 아세안 특유의 비동맹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 이런 정황을 종합하면 전면적 진영 고착보다 안보 연계 품목에 국한된 선별적 압박이 지속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첨단 반도체·파운데이션 모델 등 미국 수출통제 영역에서는 기존 기조를 유지하되, 동남아 현지 데이터센터·클라우드 등 일반 상업 영역에서는 조달선을 성급히 단일화하지 않는 이중 트랙 전략이 요구된다.
I. 이슈 상황분석
미-중 AI 패권경쟁, 동남아 기술 진영 선택 압박
1. 이슈 배경 및 경과
미 국무부는 2025년 12월 팍스 실리카(Pax Silica) 구상을 발족시켰다. 이 구상은 반도체·희토류·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14]. 국무부가 조율을 맡았고, 비구속적 선언 형태로 출범했다[6]. 이후 국무부는 첫 정상회의에 이어 올해 6월 두 번째 팍스 실리카 정상회의를 개최했다[6].
중국은 이에 맞서 지난 7월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WAICO)를 설립했다[15]. 인도네시아 전 무역장관은 아세안이 이 두 구상 사이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다"고 진단했다[15]. 동남아·중앙아시아 국가 다수는 팍스 실리카와 WAICO에 동시 참여하는 다변화 전략을 취해왔다. 카자흐스탄이 대표적 사례다. 이 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두 경쟁 구상 모두에 가입한 국가다[5].
이런 양다리 전략에 제동을 건 것이 로이터가 8월 보도한 국무부 서한 초안이다. 이 초안은 팍스 실리카 참여국에 경쟁 구상과의 병행 참여를 자제하라고 경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1]. 아스타나타임스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서한 초안은 팍스 실리카 참여를 원하는 국가에 미국 주도 구상에 대한 배타적 참여를 요구하는 내용이다[8]. 다만 워싱턴이 이 서한을 실제로 발송할지, 언제 발송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전해졌다[8].
2. 현재 상황
싱가포르는 이 압박의 최전선에 서 있다. 디지털개발정보부 조세핀 테오 장관은 의회에서 싱가포르가 WAICO 가입 초청을 받았다고 공개했다[11].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싱가포르가 이 제안을 중국 및 다른 국제 AI 협력구상과의 전반적 관계 속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11]. 같은 매체는 WAICO 가입이 싱가포르에 발언권을 줄 수 있지만 팍스 실리카 내 역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가들의 우려도 함께 보도했다[11].
말레이시아는 이미 실질적 선택에 나선 모양새다. 비즈니스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말레이시아는 미국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웨이 AI 반도체를 자국 주권 AI 프로젝트의 핵심 축으로 채택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13]. 이 프로젝트는 4억9,400만 달러 규모로, 말레이시아가 AI 역량에 대한 자국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이다[13]. 트럼프 행정부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정이 내려지고 있다는 점은, 동남아 국가들이 미국의 배타적 참여 요구를 수용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13].
카자흐스탄에 대해서는 현지 전문가들이 상반된 평가를 내놓고 있다. 아스타나타임스는 카자흐스탄의 AI 균형전략이 진영 경쟁이라는 낡은 논리 자체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전문가 견해를 전했다[8]. 이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미중 양자택일 압박에 순응하기보다 다변화 노선을 고수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5].
트리니다드토바고 사례는 이 압박이 동남아·중앙아시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주 트리니다드토바고 중국대사관은 미국이 자국 기술 파트너십에 개입하지 말라고 공개 경고했다[18]. 이는 워싱턴의 배타적 참여 요구가 카리브해 지역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3. 주요 행위자 및 입장
미 국무부는 팍스 실리카를 통해 동맹·파트너국의 AI 기술 스택을 미국 표준에 고정시키려 한다[14]. 브루킹스연구소는 이를 두고 워싱턴이 다른 국가를 미국 AI 기술 스택에 묶어두려는 작업이라고 평가한다[14]. 재무장관 베선트는 "중국이 AI 경쟁에서 이기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게 된다"며 위기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16]. 그는 미국의 막대한 국방예산도 그 경우 국가를 지켜내지 못할 것이라고 언급했다[16]. 이 발언은 데이터센터 건설을 둘러싼 미국 내 반발 여론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16].
중국은 WAICO를 통해 독자 진영을 구축하는 한편, 개별 국가에 대한 미국의 개입에는 외교 채널을 통해 즉각 반발하는 이중 전술을 쓰고 있다[18].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중 정상이 AI 안전장치를 논의할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고 보도했으나, 실리콘밸리 내부에서도 실질적 협력 가능성에는 회의적 시각이 우세하다고 전했다[17].
싱가포르는 미국과의 안보·경제 관계, 중국과의 경제적 상호의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구조적 딜레마에 놓여 있다[11]. 말레이시아는 비용과 접근성을 앞세워 화웨이 반도체 쪽으로 실질적으로 기울면서, 미국의 경고를 수용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있다[13]. 카자흐스탄은 두 진영 모두에 가입한 유일한 국가로서, 다변화 노선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5].
아세안 회원국 전반은 진영 경�쟁 자체보다 이 경쟁에 휘말려 역내 회복탄력성이 훼손되는 상황을 더 우려한다. 인도네시아 전 무역장관의 발언은 아세안의 과제가 "글로벌 지정학에 맞서 회복탄력성을 갖추는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15].
4. 핵심 쟁점
첫 번째 쟁점은 서한의 실제 발송 여부와 강제력이다. 국무부는 아직 발송 시점을 확정하지 않았다[8]. 배타적 참여 요구가 문서화되지 않은 채 압박 수단으로만 남을 가능성도 있다.
두 번째 쟁점은 각국의 실제 대응 방향이다. 말레이시아처럼 이미 화웨이 채택 쪽으로 움직인 사례가 나온 이상, 서한이 실제 발송되더라도 이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13]. 싱가포르처럼 아직 결정을 유보한 국가들에는 이 서한이 실질적 변수가 될 수 있다[11].
세 번째 쟁점은 이 압박이 반도체·데이터센터 투자 결정에 미치는 파급 범위다. EAI 기존 분석은 미국의 인프라 우위와 중국 대안의 제한적 흡인력을 감안할 때 "안보 연계 품목에 한정된 선별적 디커플링이 지속될 가능성이 55~60%로 가장 높다"고 평가한 바 있다[3]. 동남아·중앙아시아 사례는 이 판단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개별국 단위에서는 전면 편입 압박이 여전히 현실적 변수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II. 이슈 심층분석
미-중 AI 패권경쟁, 동남아 기술 진영 선택 압박
1. 근본 원인 분석
이번 서한 압박의 근저에는 미국 AI 인프라 우위의 구조적 규모가 있다. 미국은 데이터센터 5,427개를 운영 중이다. 이는 다른 어떤 국가보다 10배 이상 많은 수치다[3]. 이 격차를 만든 것은 민간 투자 규모다. 2013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의 누적 민간 AI 투자는 3,352억 달러에 달했다[10]. 중국은 이에 현저히 못 미쳤다[10]. 워싱턴 입장에서 팍스 실리카는 이 우위를 제도화하는 수단이다. 벳센트 미 재무장관은 "이 경쟁에서 중국이 이기면 모레는 없다"고 말했다[16]. 그는 미국의 방대한 국방예산도 이를 막지 못할 것이라 경고했다[16]. 이 발언은 워싱턴 내부에서 AI 경쟁을 실존적 위협으로 규정하는 시각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준다.
배타적 참여 요구가 나온 시점도 근본 원인과 맞닿아 있다. 팍스 실리카는 지난해 12월 비구속적 선언으로 출범했다[6]. 강제력 없는 다자 플랫폼으로 시작한 셈이다. 그런데 중국이 지난 7월 WAICO를 설립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15]. 카자흐스탄처럼 양쪽에 동시 가입하는 국가가 나타나자, 팍스 실리카의 구속력 부재가 워싱턴에는 전략적 허점으로 인식된 것으로 보인다. 서한 초안이 나온 시점이 WAICO 출범 이후라는 사실은 이 압박이 중국 대안 구상에 대한 대응 성격을 갖는다는 점을 시사한다[5][8].
중국 측 동기는 자국 기술의 시장 확보다. 화웨이는 동남아부터 중동까지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발판을 넓히려 하고 있다[13]. 말레이시아의 4억9,400만 달러 규모 주권 AI 프로젝트에 화웨이 반도체가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은 이런 시도가 실제 성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13]. 베이징 입장에서 WAICO는 반도체 수출통제로 막힌 시장을 우회하는 통로다.
2. 구조적 맥락
정치적으로 이 사안은 아세안 특유의 비동맹 전통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인도네시아 전 무역장관은 아세안이 팍스 실리카와 WAICO 사이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다"고 진단했다[15]. 아세안은 냉전기부터 강대국 사이 등거리 외교를 지역기구 운영 원칙으로 삼아왔다. AI 인프라라는 새로운 전장에서 이 원칙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싱가포르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조세핀 테오 디지털개발정보부 장관은 WAICO 가입 초청 사실을 의회에서 공개하면서도, 이를 중국 및 여타 국제 AI 협력구상과의 "전반적 관계 속에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11]. 즉답을 피하는 이 화법 자체가 싱가포르식 헤징 외교의 전형이다.
경제적으로는 반도체 조달선의 이중 구조가 걸림돌이다. 말레이시아는 미국의 강한 반대에도 화웨이 AI 반도체를 자국 주권 AI 프로젝트의 핵심으로 채택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13]. 이는 단순한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라 비용과 조달 가능성이라는 실무적 판단이 작용한 결과로 봐야 한다. 미국 기술스택은 성능과 생태계에서 앞서지만, 수출통제로 접근이 제한된 국가일수록 화웨이 대안의 상대적 매력이 커진다.
안보 구조 차원에서는 데이터센터 물리적 시설 자체가 취약점으로 부상했다. 지난 3월 이란의 오퍼레이션 에픽 퓨리 작전 중 드론 공격으로 아마존웹서비스(AWS) 데이터센터 3곳이 중동에서 피해를 입었다[12]. 구조적 손상과 전력 공급 중단, 화재진압 시스템 가동에 따른 추가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12]. 이 사건은 해외 데이터센터 건설이 단순 상업 투자가 아니라 안보 자산 배치라는 성격을 갖는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미국이 동맹국 인프라에 배타적 참여를 요구하는 배경에는 이런 안보 연계 인식도 자리한다.
3. 역사적 선례 및 유사 사례 비교
카자흐스탄의 이중 가입 사례는 냉전기 비동맹운동과 본질적으로 다른 조건에 놓여 있다. 비동맹운동은 군사동맹 불참을 통해 등거리를 유지했다. 반면 AI 인프라는 물리적 데이터센터, 반도체 조달선, 클라우드 표준이라는 실물 자산에 고착된다. 한번 특정 스택에 인프라를 구축하면 전환비용이 막대해진다는 점에서 군사동맹보다 이탈이 어렵다. 아스타나타임스가 전한 현지 전문가들의 평가, 즉 카자흐스탄의 균형전략이 "진영 경쟁이라는 낡은 논리 자체에 도전할 수 있다"는 시각은[8], 다변화가 여전히 가능하다는 낙관을 담고 있지만 인프라 고착이라는 현실적 제약을 충분히 반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트리니다드토바고 사례는 압박의 지리적 확산성을 보여준다. 중국대사관이 자국 기술 파트너십에 대한 미국의 개입에 공개적으로 경고했다는 사실은[18], 이 갈등이 동남아·중앙아시아라는 지역적 경계를 넘어 카리브해까지 번지고 있음을 뜻한다. 이는 냉전기 미소 경쟁이 제3세계 전역에서 대리전 형태로 확산됐던 패턴과 유사하다. 다만 이번에는 군사 개입이 아니라 반도체 수출통제와 표준 강제라는 경제적 수단이 동원된다는 점에서 수단의 성격이 다르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유럽·일본·한국 등 중견국이 직면한 위험이 "기술 의존을 훨씬 넘어선다"고 짚었다[2]. AI 선도 자산을 통제하는 국가가 다른 국가들의 세계경제·국제정치 참여 조건 자체를 규정하게 될 것이라는 진단이다[2]. 이는 1980년대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미일 마찰이나, 2010년대 5G 표준을 둘러싼 미중 화웨이 갈등보다 훨씬 포괄적인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과거의 기술 패권 다툼이 특정 품목이나 표준에 국한됐다면, 이번 AI 인프라 경쟁은 데이터센터·전력·반도체·모델을 아우르는 전방위적 스택 경쟁이라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다르다.
4. 이슈 전개의 핵심 변수
첫 번째 변수는 서한의 실제 발송 여부와 시점이다. 아스타나타임스가 확인한 바로는 워싱턴이 이 서한을 실제로 보낼지, 언제 보낼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8]. 초안 단계에 머무는 한 각국은 관망하며 이중 가입을 이어갈 유인이 크다. 실제 발송되고 배타적 참여가 공식 조건으로 명문화되는 순간,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다변화 노선 국가들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두 번째 변수는 개별국 국내 정치의 반응이다. 싱가포르는 의회에서 WAICO 초청 사실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투명성을 택했다[11]. 이는 국내 여론과 야당의 견제를 의식한 조치로 볼 수 있다. 반면 말레이시아는 미국의 반대를 사실상 무릅쓰고 화웨이 반도체 채택으로 기울고 있다[13]. 이런 개별국 대응의 편차는 앞으로도 아세안 전체가 통일된 노선을 취하기 어렵다는 점을 예고한다.
세 번째 변수는 9월로 예정된 미중 AI 안전대화의 성사 여부와 성격이다. 닛케이아시아는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에서 AI 안전장치가 의제로 오를 가능성을 보도했다[17]. 다만 실리콘밸리 인사들 사이에서도 양국 협력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여전하다[17]. 이 대화가 리스크 관리 차원의 제한적 합의에 그칠지, 혹은 진영 간 긴장 완화의 계기가 될지에 따라 동남아·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운신 폭이 달라진다.
네 번째 변수는 데이터센터 안보 리스크에 대한 인식 확산이다. AWS 중동 시설 피격 사례가 보여주듯, 해외 인프라 투자는 물리적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12]. 이런 안보 우려가 커질수록 미국은 동맹국 인프라에 대한 배타적 통제를 더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각국은 안보 부담을 이유로 오히려 다변화된 공급선을 선호할 수도 있어, 이 변수가 어느 방향으로 작용할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이 보고서는 EAI 연구원의 기획에 따라 AI 기반의 정교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EAI 연구원이 최종 작성한 심층분석 보고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