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지위 불가역 선언과 ARF 비핵화 촉구 대립: 구조적 교착의 장기화와 한국의 전략 전환 과제
총괄 요약
북한은 2023년 헌법 명문화와 2025년 수령의 핵무력 지휘권 제도화를 통해 핵 보유 지위를 불가역적으로 완성하였으며, 김여정의 ARF 비핵화 촉구 거부 선언은 이 국가 노선의 대외적 재확인에 해당한다. 러시아의 외교적 방패막이 역할로 유엔 안보리를 통한 대북 압박 채널이 기능을 상실한 상황에서, ARF의 비핵화 촉구 성명은 규범적 의지 표명에 그칠 뿐 북한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실질적 수단으로서의 한계가 명확하다. 기본 시나리오(확률 65%)는 핵·미사일 능력의 질적 고도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전면 도발은 자제하는 '관리된 긴장' 국면의 장기화이며, 완전한 비핵화 실현 가능성은 구조적으로 봉쇄된 상태이다. 한국은 비핵화 협상 재개를 중심축으로 삼는 기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한미 핵협의그룹(NCG) 기반 확장억제 실질화, 한국형 3축 체계 전력화 가속, 코리아 패싱 방지 메커니즘 제도화를 핵심 축으로 하는 '강인한 관여'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기업은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의 구조적 상존을 전제로 공급망 다변화와 방산·안보 분야 전략적 포지셔닝을 강화하는 중장기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I. 이슈 상황분석
북한 핵 포기 거부 선언과 ARF 비핵화 촉구 대립
이슈 상황분석
1. 이슈 배경 및 경과
북한의 핵 보유 의지는 단기적 외교 전술이 아닌 수십 년에 걸쳐 제도적으로 완성된 국가 노선의 산물이다. 그 결정적 전환점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이었다. 이후 북한은 그해 10월 스웨덴 실무 접촉에서 "조선 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장애물들이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 없이 제거될 때에라야 가능하다"고 선언하며 비핵화 협상의 전제 조건을 사실상 미국이 수용 불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2]. 이어 2019년 12월 당 중앙위 7기 5차 전원회의를 통해 '정면돌파전' 노선을 공식화하고,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는 미국을 "전쟁 괴수" "최대의 주적"으로 규정하며 대외 강경 기조를 당 규약 차원에서 제도화했다[8].
이러한 노선은 헌법 개정으로 더욱 공고해졌다. 2023년 북한은 핵 보유 지위를 헌법에 명문화하였으며, 2025년 3월 최고인민회의 제15기 1차 회의에서는 수령의 핵무력 지휘권을 헌법 서문에 명시하고 한반도 '두 개 국가' 원칙을 제도적으로 확립함으로써 통일 지향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헌법 체계를 재편했다[11]. 이로써 비핵화 협상의 법적·구조적 여지는 사실상 봉쇄되었으며, 이는 단순한 수사적 강경화를 넘어 국가 노선의 불가역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평가된다[2].
핵 능력의 물리적 발전도 병행되었다. 북한은 6차례의 핵실험과 2017년 핵 무력 완성 선포 이후에도 영변 원자로 가동과 고농축우라늄 생산을 지속하고 있으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부터 전술핵 탑재 가능 단거리 미사일까지 핵 운용 전략의 스펙트럼을 전략적 응징 억지에서 전술적 거부 억지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5]. SIPRI는 2026년 연감에서 각국이 핵무기를 국가 권력의 수단으로 점점 더 의존하는 추세가 수십 년간의 감축 노력을 역전시키고 있으며, 오판과 확전의 위험이 동시에 상승하고 있다고 경고했다[6].
2. 현재 상황
2026년 7월 26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는 의장 성명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실현을 위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성명은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의 완전한 이행을 촉구하며 평화적 방식의 비핵화를 위한 국제적 노력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12]. 이는 2년 연속 채택된 비핵화 촉구 성명으로,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우려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은 사흘 후인 7월 27일 즉각적이고 단호한 반격에 나섰다. 김정은의 여동생이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인 김여정은 조선중앙통신(KCNA)과 러시아 국영통신사 TASS를 통해 공식 성명을 발표하고, 북한의 핵 보유 지위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선언하며 핵 잠재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것임을 천명했다[14]. 그녀는 ASEAN의 비핵화 촉구를 "어리석고 멍청한(stupid and foolish)" 주장으로 일축하며 비핵화 논의 자체를 "어리석은 몽상"으로 규정했다[4][10]. 특히 이번 성명이 KCNA뿐 아니라 TASS를 통해 동시에 배포되었다는 점은 북러 전략 공조의 심화를 대외에 과시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북러 군사협력의 심화는 이 사안에 또 다른 복합적 차원을 더하고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선 투입을 위해 추가 북한군 3만 명을 수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북러 군사협력이 단순한 무기 거래를 넘어 실질적 군사 동맹 수준으로 격상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이미 2024년 9월 북한 비핵화는 러시아에게 "협상 테이블에서 내려간 사안"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으며[3], 이로써 유엔 안보리를 통한 대북 압박 채널은 사실상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2].
3. 주요 행위자 및 각 행위자의 입장과 이해관계
북한: 핵 보유의 제도적 완성과 전략적 활용
북한에게 핵 보유는 외교적 협상 카드를 넘어 체제 생존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자리 잡았다. 외교적 차원에서 핵은 미국으로부터 제재 해제와 체제 보장을 얻어내기 위한 강압 외교의 수단이며, 군사적 차원에서는 한미 연합 전력에 대한 억지력이다. 내부 체제 차원에서는 주민의 안보 불안을 해소하고 경제 집중 여건을 조성하는 기제로 기능한다[5]. 김여정이 이번 성명의 전달자로 나선 것은 단순한 대변인 역할이 아니라, 그녀가 대남·대외 강경 노선의 실질적 설계자이자 집행자임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북한은 핵 보유를 헌법에 명문화하고 수령의 핵무력 지휘권을 제도화함으로써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비핵화 협상으로 회귀할 수 없는 구조적 장치를 완성했다[11].
러시아: 북한 핵 지위 정상화의 외교적 방패막이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북한을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공개 수용하는 입장으로 전환했다. 라브로프의 비핵화 불가 발언[3]과 ARF에서의 북한 핵 지위 옹호는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를 무력화하는 외교적 방패막이 역할을 자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2]. 러시아의 이해관계는 명확하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북한의 포탄과 병력이 필요한 러시아는 그 대가로 북한에 외교적 보호막과 군사기술 협력을 제공하는 구조적 상호 의존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번 성명이 TASS를 통해 배포된 것은 이 공생 관계의 상징적 표현이다.
ASEAN 및 ARF: 규범적 압박의 한계와 전략적 딜레마
ASEAN은 ARF를 통해 2년 연속 비핵화 촉구 성명을 채택함으로써 국제 규범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ASEAN의 비개입 원칙과 컨센서스 기반 의사결정 구조는 실질적 압박 수단의 부재로 이어진다. 말레이시아 현지 매체인 더스타(The Star)는 이번 사태를 북한이 ASEAN의 비핵화 촉구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으로 보도하면서도, ASEAN 내부에서 북한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기보다 대화 채널을 유지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존재함을 시사했다[7]. 싱가포르 채널뉴스아시아(CNA) 역시 김여정의 발언이 ASEAN에 대한 외교적 도전임을 강조하면서도, 북한이 ARF 틀 자체를 이탈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10].
한국: 패러다임 전환의 기로
이재명 정부는 신뢰구축 조치를 통한 남북 대화 재개를 모색하고 있으나, 북한은 남북 대화 재개 의지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2]. 한국의 딜레마는 비핵화 협상 재개라는 기존 패러다임을 고수할 경우 외교적 공전이 불가피하고, 이를 포기할 경우 국내 정치적 부담과 한미 공조 체계의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EAI 동아시아연구원은 "김여정의 핵 지위 '불가역적' 선언은 북한이 헌법 개정, 수령의 핵무력 지휘권 명문화, 전술핵 전진 배치 등을 통해 수년간 제도적으로 완성해 온 국가 노선의 대외적 재확인으로, 단순한 수사적 강경화를 넘어 비핵화 협상의 법적·구조적 여지 자체를 봉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2].
4. 핵심 쟁점 정리
이번 사태의 핵심 쟁점은 크게 네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비핵화 협상 패러다임의 유효성 문제다. 북한이 핵 보유를 헌법에 명문화하고 수령의 핵무력 지휘권을 제도화한 상황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 기존 협상 틀이 여전히 현실적 목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된다. ARF의 비핵화 촉구 성명이 2년 연속 채택되었음에도 북한의 핵 능력이 지속적으로 고도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규범적 압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심화시킨다[12][5].
둘째, 북러 군사협력의 한반도 억제 구조에 대한 영향이다.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를 무력화하고 북한의 핵 지위를 사실상 정상화하는 외교적 방패막이 역할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다자 제재 메커니즘이 북한의 행동을 제약하는 데 얼마나 실효적일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된다[3][2].
셋째, 한국의 확장억제 신뢰성과 자체 억제력 강화의 균형 문제다. 북한이 전술핵을 전진 배치하고 핵 사용 독트린을 공세적으로 발전시키는 상황에서, 한미 핵협의그룹(NCG) 기반의 확장억제가 실질적 억지력을 제공할 수 있는지, 그리고 한국형 3축 체계의 전력화가 충분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지가 쟁점이다[2][15].
넷째, ASEAN의 전략적 자율성과 대북 관여의 한계다. ASEAN이 비핵화 촉구 성명을 채택하면서도 실질적 압박 수단을 결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ARF 틀 자체를 이탈하거나 무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지역 안보 거버넌스의 공백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7][10].
II. 이슈 심층분석
북한 핵 포기 거부 선언과 ARF 비핵화 촉구 대립
이슈 심층분석
1. 이슈의 근본 원인 분석
북한이 비핵화를 "어리석은 몽상"으로 일축하며 핵 지위의 불가역성을 선언한 근본 원인은 단순한 외교적 강경 수사가 아니라, 체제 생존 논리와 국가 정체성이 핵무력과 불가분하게 결합된 구조적 귀결이다. 북한의 핵 개발 동기는 외교적, 군사적, 내부 체제적 차원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어느 하나로 단순화할 수 없다[5]. 외교적 차원에서 핵은 미국으로부터 제재 해제나 안전보장을 얻어내기 위한 강압 외교의 수단으로 기능해 왔으며, 군사적 차원에서는 미국과 한국의 군사적 위협을 억지하는 전략적 보험으로 작동한다[5].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동인은 체제 내부에 있다. 김정은 정권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외부의 군사적 위협이 아니라 북한 주민의 의식 변화일 수 있으며, 핵무력은 주민들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여 경제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내부 통치 수단으로도 기능한다[5]. 이러한 다층적 동기 구조는 어떤 외부적 유인이나 압박도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내기 어렵게 만드는 근본적 이유다.
하노이 회담 결렬은 이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결정적 계기였다. 2019년 2월 북미 정상 간 '빅딜' 협상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북한은 협상을 통한 체제 안전보장 획득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품게 되었다. 이후 북한이 스웨덴 실무 접촉에서 비핵화의 전제 조건을 미국이 수용 불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은 협상 테이블을 완전히 떠나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으로 협상 가능성을 차단하는 전략적 선택이었다[2][8]. 이 시점부터 북한의 핵 노선은 협상 카드에서 국가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전환되기 시작했으며, 이후의 모든 제도적 조치들은 이 전환을 법적·구조적으로 완성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러시아의 전략적 지원이 북한의 핵 포기 거부를 더욱 강화하는 외부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22년 이후 모스크바는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사실상 수용하는 신호를 공개적으로 발신해 왔으며, 2024년 9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북한의 비핵화가 러시아에게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노골적으로 선언했다[3]. 이는 유엔 안보리를 통한 대북 압박 채널이 기능을 상실했음을 의미하며, 북한으로 하여금 핵 포기의 대가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을 필요성 자체를 희석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2].
2. 구조적 맥락
정치적 구조
정치적 차원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조 변화는 북한이 핵 보유를 헌법적 질서의 근간으로 편입시킨 것이다. 2023년 핵 보유 지위의 헌법 명문화에 이어, 2025년 3월 최고인민회의 제15기 1차 회의에서 채택된 헌법 개정은 세 가지 측면에서 한반도 문제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11]. 첫째, 헌법 제2조의 영역 조항을 통해 한반도 '두 개 국가' 원칙을 제도화함으로써 통일 지향 자체를 부정하고 남북관계를 '별도의 국가 간 관계'로 규정했다. 둘째, 헌법 서문에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을 명문화하여 김정은이 핵무력에 대한 지휘권을 직접 행사하고 최고인민회의에도 소환되지 않는 절대권력을 가짐을 확인했다. 셋째, 이 개정은 기존의 모든 헌법 개정이 어떤 형태로든 통일 달성과 연관되어 있었던 것과 달리, 명시적으로 반통일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전례 없는 전환이다[11].
이러한 헌법적 구조화는 김여정의 이번 성명이 단순한 외교적 발언이 아님을 의미한다. "김여정의 핵 지위 '불가역적' 선언은 북한이 헌법 개정, 수령의 핵무력 지휘권 명문화, 전술핵 전진 배치 등을 통해 수년간 제도적으로 완성해 온 국가 노선의 대외적 재확인으로, 단순한 수사적 강경화를 넘어 비핵화 협상의 법적·구조적 여지 자체를 봉쇄한 것이다."[2] 즉, 이번 선언은 이미 완성된 제도적 구조를 국제사회에 공식 통보하는 성격을 지닌다.
아울러 김여정이 KCNA뿐 아니라 러시아 국영통신사 TASS를 통해 성명을 발표한 것은 주목할 만한 정치적 신호다[14]. 이는 북한이 러시아를 자국의 핵 지위를 국제적으로 정상화하는 외교적 통로로 적극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동시에 서방 주도의 국제 규범 체계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상징적 행위이기도 하다.
경제적 구조
경제적 차원에서 북한의 핵 노선은 '병진노선 2.0'으로 진화하고 있다. 북한은 경제 발전에 집중하면서도 국방력 강화를 통한 안보 우려 해소로 경제와 안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으며, 핵무력은 이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기능한다[5]. 핵 억지력이 확보된 상태에서 재래식 군사비를 절감하고 경제 자원을 생산 부문에 집중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 구조에서 비핵화는 단순히 안보 자산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발전 전략 자체를 해체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므로, 어떠한 경제적 유인도 핵 포기의 대가로 수용될 가능성이 극히 낮다.
북러 군사협력의 심화는 이 경제적 구조에 새로운 변수를 추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 북한군을 파병하고 러시아로부터 군사 기술 및 에너지 자원을 공급받는 교환 구조는 유엔 제재 체제의 실효성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가 추가로 북한군 3만 명을 수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이 군사경제적 협력 구조가 일시적 편의 관계가 아니라 장기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심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대북 제재의 경제적 압박 효과를 더욱 희석시키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안보적 구조
안보적 차원에서 북한의 핵 전략은 전략적 응징 억지에서 전술적 거부 억지로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5]. 북한은 ICBM을 통한 미 본토 타격 능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전선장거리포병부대에 전술핵을 배치하여 한반도 내 재래식 충돌 시에도 핵 사용 옵션을 현실화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15]. 이는 핵에 대한 북한의 자신감이 공세적 재래식 군사 행동의 가능성을 동시에 높이는 역설적 안보 딜레마를 초래한다[15].
김정은은 남북관계를 "두 개의 교전 국가" 관계로 재정의하면서 "유사시 핵전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하여 대한민국 전 영토를 제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를 계속 가속화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9]. 이 선언은 북한의 핵 전략이 억지를 넘어 실제 사용 가능성을 전제한 공세적 전쟁 준비와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주며, 한반도 안보 구조의 근본적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유엔 안보리를 통한 다자 압박 메커니즘의 기능 마비는 이 안보 구조를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 핵심 변수다. 러시아가 국제 다자 포럼에서 북한의 핵 지위를 사실상 정상화하는 외교적 방패막이 역할을 자임하면서, 유엔 안보리를 통한 대북 압박 채널은 기능을 상실했다[2]. SIPRI가 2026년 연감에서 각국이 핵무기를 국가 권력의 수단으로 점점 더 의존하는 추세가 수십 년간의 감축 노력을 역전시키고 있으며 오판과 확전의 위험이 동시에 상승하고 있다고 경고한 것은[6], 북한 문제가 한반도를 넘어 글로벌 핵 질서의 구조적 위기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3. 역사적 선례 및 유사 사례 비교
북한의 핵 불가역 선언을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도·파키스탄 사례와의 비교가 유용하다. 두 국가 모두 국제사회의 강력한 반대와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 실험을 강행하고 사실상의 핵 보유국 지위를 획득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제사회는 이들의 핵 지위를 묵시적으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적응했다. 북한이 이 선례를 의식하고 있음은 분명하며, 충분한 시간과 핵 능력의 고도화가 이루어지면 국제사회가 결국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러나 북한 사례는 인도·파키스탄과 중요한 차이점을 가진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적이 없어 조약 위반의 문제가 없었던 반면, 북한은 NPT 탈퇴를 선언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며 핵을 개발했다. 또한 두 국가는 경제적으로 국제사회와 상당한 통합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완전한 고립을 피할 수 있었지만, 북한은 러시아·중국이라는 특정 후원국에 의존하는 구조적 고립 상태에서 핵 지위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리비아 사례는 반면교사로서 북한의 전략적 계산에 깊이 내면화되어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은 2003년 국제사회의 압박과 경제적 유인에 응하여 핵 프로그램을 자발적으로 포기했으나, 2011년 아랍의 봄 과정에서 나토의 군사 개입으로 정권이 붕괴되었다. 북한은 이 사례를 핵 포기가 체제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결정적 증거로 해석하고 있으며, 이는 어떠한 외부적 보장도 핵 포기의 대가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북한 지도부의 확신을 강화하는 역사적 근거로 작동한다[8].
북한 자체의 역사적 협상 패턴도 중요한 선례를 제공한다.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 2018~2019년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북한은 일관되게 협상을 통한 양보를 획득하면서도 핵 개발을 지속하거나 합의를 파기하는 패턴을 반복했다. 이 역사적 패턴은 북한이 협상을 핵 포기의 경로가 아니라 핵 개발의 시간을 버는 전술적 수단으로 활용해 왔음을 보여주며, 이번 불가역 선언은 이러한 전술적 협상 여지마저 공식적으로 차단하는 노선의 전환을 의미한다.
ARF의 비핵화 촉구 성명과 북한의 즉각적 거부라는 패턴 역시 역사적 반복성을 가진다. 2년 연속 채택된 ARF의 비핵화 촉구 성명은 국제사회의 규범적 입장을 재확인하는 의미를 가지지만,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실질적 압박 수단으로는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12]. 이는 다자 외교 포럼이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한 국가에 대해 가지는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냉전 시대 소련과 중국의 핵 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이 결국 억지와 공존 관리로 귀결되었던 역사적 선례와 유사한 궤적을 따르고 있다.
4. 이슈 전개의 핵심 변수
이슈의 향후 전개를 결정하는 첫 번째 핵심 변수는 북러 군사협력의 심화 속도와 범위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의 북한군 파병 규모 확대와 러시아의 군사 기술 이전 수준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속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러시아가 추가 북한군 3만 명을 수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보는 이 협력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지속 기간과 연동되어 있음을 시사하며, 전쟁의 장기화는 북한의 전략적 자율성을 더욱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러시아가 북한에 제공하는 기술 지원의 내용이 핵탄두 소형화나 재진입 기술 등 핵 능력의 질적 도약과 관련된 것일 경우, 한반도 억제 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양적 확대와는 차원이 다른 위협으로 전환될 수 있다.
두 번째 핵심 변수는 미국의 대북 전략 방향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어떤 접근법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한반도 안보 구조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만약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수용하는 전제 하에 핵 동결 협상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경우, 이는 비핵화를 정책 목표로 유지해 온 한국의 입장과 충돌하는 '코리아 패싱' 리스크를 현실화할 수 있다[2]. 반대로 미국이 강력한 확장억제 공약을 재확인하고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실질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한반도 억제 구조의 안정성은 상대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세 번째 변수는 중국의 전략적 선택이다. 중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공식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러시아와 달리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 강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중국이 북러 군사협력의 심화에 대해 어느 수준까지 용인할 것인지, 그리고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가 동북아 안보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대북 압박의 다자적 기반이 재구성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북한의 핵 능력이 중국의 전략적 이익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중국의 대북 레버리지 행사 의지가 변화할 수 있다.
네 번째 변수는 북한 내부의 경제적 압박 수준이다. 북한이 '병진노선 2.0'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핵·미사일 개발과 경제 발전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자원이 필요하다. 러시아와의 군사경제적 협력이 이 자원 제약을 일정 부분 완화하고 있지만, 내부 경제 상황의 악화가 임계점을 넘을 경우 체제 안정성에 대한 도전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에게 가장 큰 두려움이 주민의 의식 변화라는 점을 고려할 때[5], 경제적 압박이 핵 포기로 이어지기보다는 내부 통제 강화와 대외 긴장 고조로 귀결될 가능성이 더 높다.
다섯 번째 변수는 ASEAN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대북 인식 변화다. ARF가 2년 연속 비핵화 촉구 성명을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남아시아 국가들 내부에서는 북한 문제를 자국의 핵심 안보 이익과 직결된 사안으로 인식하는 정도가 상이하다[12]. 만약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와 북러 군사협력 심화가 역내 안보 불안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전개될 경우, ASEAN 국가들의 대북 압박 의지가 강화될 수 있다. 반면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ASEAN이 어느 진영과도 거리를 두는 전략적 중립 노선을 강화할 경우, 다자 외교를 통한 대북 압박의 실효성은 더욱 약화될 것이다.
이 보고서는 EAI 연구원의 기획에 따라 AI 기반의 정교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EAI 연구원이 최종 작성한 심층분석 보고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