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AI 수출통제 확대에 따른 한국 반도체·AI 공급망 리스크와 전략적 대응 방향
총괄 요약
Executive Summary
2025년 6월 백악관이 Anthropic의 프론티어 AI 모델에 대한 해외 접근을 사후적으로 강제 차단한 사태는, 미국의 수출통제 체계가 하드웨어를 넘어 AI 소프트웨어 모델 영역으로 전면 확장되는 구조적 전환의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특히 SK텔레콤과 엔비디아의 기가와트급 AI 클라우드 파트너십 발표 불과 닷새 만에 접근 차단 명령이 내려진 사실은, 미국의 수출통제 결정이 동맹 협력의 논리보다 자국 중심의 안보·산업 이익 논리에 의해 우선적으로 구동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한국 기업들이 미국 AI 생태계에 의존하는 전략 자체의 구조적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켰다. 그러나 동시에 AI 공급망의 병목이 GPU를 넘어 메모리·기판·광부품 등 한국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핵심 하드웨어 밸류체인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어, 한국의 협상 레버리지는 오히려 구조적으로 강화되는 국면에 있다. 이에 본 보고서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미국과의 상호의존성을 전략적으로 심화시켜 제도적 접근 보장을 획득하는 동시에, 자체 AI 역량과 대안 생태계를 병행 구축하는 투트랙 전략을 핵심 대응방안으로 권고한다. 단일 파트너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미국 생태계와의 완전한 분리 모두 현실적으로 수용 불가능한 선택지인 만큼, 한국 기업들은 미국 AI 생태계 내 전략적 불가결성을 높이는 동시에 자체 역량 강화를 통해 협상력의 구조적 기반을 공고히 해야 한다.
1단계: 이슈 상황분석
미국 AI 수출통제 강화와 한국 반도체·AI 공급망 리스크
이슈 상황분석
1. 이슈 배경 및 경과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반도체를 넘어 AI 소프트웨어 모델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미국의 수출통제 체제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중국·러시아 등 안보 우려국의 군사·정보기관이 첨단 AI 시스템을 악용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하드웨어(반도체·장비)에 이어 프론티어 AI 모델에 대한 접근 통제까지 수출규제의 범위를 확대해왔다[7]. 트럼프 행정부는 이 같은 기조를 더욱 공세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Anthropic과 OpenAI 등 주요 AI 기업의 최신 모델 공개 및 배포에 대한 정부 개입을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9].
이러한 흐름 속에서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2025년 6월 7일, SK텔레콤과 엔비디아가 한국에 기가와트급 AI 클라우드 인프라를 구축하는 파트너십을 발표하며 한국의 국가 AI 전략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하는 듯 보였다[1]. 그러나 불과 닷새 후인 6월 12일, 백악관은 Anthropic에 자사의 최첨단 AI 모델인 Mythos 5와 Fable 5에 대한 모든 해외 접근을 즉각 중단하라고 명령했다[1][7]. 이는 정부가 공개 배포된 프론티어 AI 모델을 강제로 회수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며, 동맹국을 포함한 전 세계 파트너들에게 미국 AI 기술 접근의 불확실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13].
2. 현재 상황 (최신 동향)
Anthropic 사태는 완전한 해제가 아닌 제한적 복원의 형태로 일단락되었다. 미국 정부는 6월 26일, Fortune 500 기업을 포함한 100개 이상의 '신뢰할 수 있는' 미국 내 기관에 한해 Mythos 5 모델 접근을 부분적으로 허용했다[8].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 국내 기관에 국한된 조치로,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 기업들은 여전히 접근이 차단된 상태에 놓여 있다. 이 과정에서 인도는 미국 측으로부터 "일단 제공된 기술 접근은 차단되지 않을 것"이라는 구두 확약을 받아냈으나[12], 한국에 대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공식적인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미국은 6월 25일 워싱턴에서 약 20개국이 참여하는 제2차 'Pax Silica' 정상회의를 개최하며 AI 공급망 안보를 위한 동맹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2]. 이 자리에서 제이컵 헬버그 미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은 한국을 반도체 생산 및 기술력에서 "체급을 훨씬 뛰어넘는 국가"로 평가하며 미국 주도의 AI 공급망 안보 이니셔티브에서 서울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표명했다[2]. 같은 시기, 중국은 향후 5년간 2,950억 달러를 AI 데이터센터 네트워크에 투자하되 지원 기술의 최소 80%를 국내 공급업체로부터 조달하도록 의무화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어[4], 한국 기업들의 대중국 시장 접근은 구조적으로 더욱 좁아지는 양상이다.
국내에서는 AI 붐에 따른 생산 능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새로운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며, 대통령 자문위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클러스터 계획을 10년 앞당겨야 한다고 강조했다[3]. AI 인프라 병목 현상이 GPU를 넘어 메모리·기판·광부품 등 공급망 전반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이들 핵심 하드웨어 밸류체인을 한국·대만·일본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어 미국 자본의 투자가 이 세 국가로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6].
3. 주요 행위자 및 각 행위자의 입장·이해관계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AI 기술을 국가안보 자산으로 규정하고, 프론티어 모델에 대한 접근을 동맹국에도 조건부로만 허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 헬버그는 한국을 핵심 파트너로 치켜세우면서도[2], 인도와의 협상에서 드러났듯이 기술 접근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공식 프레임워크 마련에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5]. 미국의 핵심 이해관계는 첨단 AI 기술이 중국·러시아 등 적대국에 유출되는 것을 차단하는 동시에, 동맹국을 자국 주도의 기술 질서 안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Anthropic은 정부 명령에 따라 해외 접근을 차단했다가 부분적으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자율적 판단이 아닌 정부 지시에 종속된 행위자임을 스스로 드러냈다[8][9]. 이는 미국 AI 기업들이 독립적인 글로벌 사업 전략을 추구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시사하며, 한국 기업들이 미국 AI 플랫폼에 의존할 경우 언제든 유사한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3].
한국 정부 및 기업은 미국 주도의 AI 공급망 체제에 깊이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기술 접근의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구조적 취약성에 처해 있다. SK텔레콤은 엔비디아와의 대규모 AI 클라우드 협력을 추진하는 동시에 Anthropic 모델 접근 차단이라는 충격을 동시에 경험했으며[1],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 등 AI 핵심 하드웨어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유지하며 미국 측의 전략적 파트너로 인정받고 있다[2][15]. 그러나 중국 시장 의존도를 완전히 탈피하기 어려운 현실과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 강화 사이에서 지속적인 딜레마를 안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기술 봉쇄에 맞서 AI 인프라의 자국산 조달 의무화와 대규모 국가 투자를 통해 독자적 기술 생태계 구축을 가속화하고 있다[4]. 이는 한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사업 기회를 모색할 여지를 구조적으로 축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유럽 및 기타 동맹국들도 미국의 일방적 수출통제 확대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ASML을 겨냥한 MATCH 법안에 반대하며 워싱턴과의 협상에 나섰고[11], 호주는 Anthropic 접근 차단을 계기로 자국 AI 역량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10]. 이는 미국의 수출통제가 동맹국 전반에서 기술 자립 논의를 촉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 핵심 쟁점 정리
첫 번째 핵심 쟁점은 기술 접근의 예측 가능성 붕괴다. Anthropic 사태는 미국 AI 기술에 대한 접근이 동맹국의 행동과 무관하게, 실리콘밸리 기업의 내부 사정이나 미국 정부의 안보 판단에 의해 하룻밤 사이에 차단될 수 있음을 실증했다[3]. 이는 미국 AI 플랫폼 위에 사업 전략을 구축한 한국 기업들의 계획 지평을 근본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두 번째 쟁점은 동맹 파트너십과 기술 통제 사이의 모순이다. 미국은 한국을 AI 공급망 안보의 핵심 파트너로 공개적으로 치켜세우면서도[2], 프론티어 AI 모델 접근에 관한 공식적이고 구속력 있는 보장은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인도가 구두 확약을 받아낸 것과 비교할 때[12], 한국의 협상 포지션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난다.
세 번째 쟁점은 대중국 시장 접근 제한의 심화다. 미국의 수출통제 강화와 중국의 자국산 조달 의무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한국 반도체·AI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양방향에서 압박받고 있다[4]. 특히 어떤 수준의 중국 사업 관계가 미국 측의 '의심 기준'에 해당하는지가 명확히 정의되지 않아[4], 한국 기업들은 불확실한 규제 환경 속에서 사업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네 번째 쟁점은 AI 병목 해소를 위한 기술 주도권 경쟁이다. HBM을 비롯한 AI 인프라 핵심 하드웨어에서 한국이 글로벌 주도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전략적 자산이지만[6][15], 소프트웨어·모델 영역에서의 의존도는 오히려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한다. 기술 병목이 GPU를 넘어 메모리·기판·광부품 전반으로 확산되는 추세는 한국 기업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동시에 미국의 공급망 통제 범위가 확장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6].
2단계: 이슈 심층분석
미국 AI 수출통제 강화와 한국 반도체·AI 공급망 리스크
이슈 심층분석
1. 이슈의 근본 원인 분석
이번 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이 AI를 단순한 민간 기술이 아닌 국가 안보의 핵심 전략 자산으로 재정의했다는 데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러시아 등 안보 우려국의 군사·정보기관이 프론티어 AI 모델을 악용할 가능성을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하드웨어 중심의 기존 수출통제 체계를 소프트웨어·모델 영역으로 전면 확장하는 전략적 전환을 단행하고 있다[7][9]. 이는 반도체 장비와 첨단 칩에 대한 수출통제가 AI 모델 그 자체에 대한 접근 통제로 진화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의미한다.
두 번째 근본 원인은 AI 기술의 이중사용(dual-use) 특성이 기존의 수출통제 프레임워크와 구조적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반도체나 제조 장비는 물리적 실체가 있어 수출 통제의 경계를 비교적 명확히 설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AI 모델은 디지털 형태로 존재하며 국경을 초월하여 즉각적으로 복제·배포될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수출허가 체계로는 통제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미국 정부가 이미 공개 배포된 프론티어 모델에 대해 사후적으로 접근을 강제 차단하는 전례 없는 조치를 취한 것은[13], 바로 이 기술적 특수성에서 비롯된 정책적 고육지책이라 할 수 있다.
세 번째로는 미국 내 AI 기업 간의 경쟁 역학이 정부 규제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Anthropic의 해외 접근 차단 조치가 순수한 안보 판단에서만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실리콘밸리 기업 간의 경쟁적 이해관계가 규제 과정에 개입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3]. 수출통제가 안보 우려뿐 아니라 기업 간 경쟁 구도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동맹국 기업들의 기술 접근 예측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기업의 경쟁적 기동이 동맹 파트너의 기술 접근권을 하룻밤 사이에 소멸시킬 수 있다는 현실은, 한국 기업들이 미국 AI 생태계에 의존하는 전략 자체의 취약성을 드러낸다[3].
2. 구조적 맥락
정치적 구조
정치적 차원에서 이번 사태는 미국의 기술 패권 유지 전략이 동맹 관리 방식과 충돌하는 구조적 긴장을 반영한다. 미국은 한편으로는 한국을 "체급을 훨씬 뛰어넘는" 핵심 반도체 파트너로 치켜세우며 Pax Silica 이니셔티브의 중심축으로 끌어들이고 있지만[2], 다른 한편으로는 동맹국에 대한 AI 기술 접근을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차단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는 미국의 수출통제 정책이 동맹 협력의 논리보다 자국 중심의 안보·산업 이익 논리에 의해 우선적으로 구동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인도와의 비교다. 미국은 인도에 대해 "일단 제공된 기술 접근은 차단되지 않을 것"이라는 구두 확약을 제공했으나[12], 한국에 대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공식적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미국의 기술 외교가 국가별로 차별화된 협상력과 전략적 우선순위에 따라 작동하며, 동맹국이라는 지위 자체가 기술 접근의 안정성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한국 정부가 Pax Silica 체제 내에서 보다 명시적이고 구속력 있는 기술 접근 보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동맹 참여의 비용은 지불하면서 혜택은 불확실한 비대칭적 구조에 머무를 위험이 있다.
경제적 구조
경제적 차원에서 한국은 AI 하드웨어 공급망의 핵심 노드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AI가 에이전틱 단계로 진화하면서 병목 현상이 GPU를 넘어 메모리, 기판, 광부품 등 공급망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이들 핵심 하드웨어 밸류체인은 한국·대만·일본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6].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서 선도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으며, 내년 두 기업의 합산 영업이익이 역대 최고 수준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15]. 이처럼 한국은 AI 인프라의 물리적 기반을 공급하는 불가결한 파트너로서의 협상 레버리지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강점은 동시에 구조적 취약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 AI 생태계(엔비디아 GPU, Anthropic·OpenAI 모델 등)와의 긴밀한 통합을 전제로 사업 전략을 구축해왔는데, SK텔레콤과 엔비디아의 기가와트급 AI 클라우드 파트너십이 발표된 지 닷새 만에 Anthropic 모델 접근이 차단된 사례[1]는 이 통합 전략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반면 중국 시장은 향후 5년간 2,950억 달러를 AI 데이터센터에 투자하면서도 지원 기술의 80% 이상을 국내 조달로 의무화하고 있어[4], 한국 기업들의 대중국 시장 접근 가능성은 구조적으로 축소되고 있다. 결국 한국 반도체·AI 기업들은 미국 시장 의존도를 높이면서도 그 접근의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안보적 구조
안보적 차원에서 이번 사태는 기술 통제권이 새로운 지정학적 권력의 핵심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Pax Silica 이니셔티브를 통해 AI 공급망 안보를 중심으로 한 기술 동맹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한국은 이 체계의 핵심 구성원으로 편입되어 있다[2]. 그러나 이 체계의 내부 논리는 동맹국의 자율성보다 미국의 통제권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수출통제가 안보 우려와 검증되지 않은 의심을 근거로 동맹국 기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면, 미국 프론티어 AI 기술에 대한 동맹국의 접근 기준은 사실상 불명확한 상태로 남게 된다[4].
이 안보 구조는 한국에게 이중의 압박을 가한다. 대중국 기술 수출통제 체제에 동참함으로써 중국 시장 접근을 제한받는 동시에, 미국 AI 기술에 대한 접근도 언제든 차단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안고 가야 한다. 중국은 이에 대응하여 자국 AI 생태계의 폐쇄성을 강화하고 있어[4], 한국이 중국 AI 생태계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3]. 이처럼 한국은 미·중 기술 블록화의 교차선에서 선택의 여지가 점점 좁아지는 구조적 압박에 직면해 있다.
3. 역사적 선례 및 유사 사례 비교
코콤(COCOM)과 바세나르 체제
현재의 AI 수출통제 강화는 냉전 시기 공산권에 대한 전략물자 수출을 통제하기 위해 설립된 코콤(COCOM, 대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의 현대적 재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코콤 체제는 서방 동맹국들이 소련 및 공산권 국가에 대한 이중사용 기술 수출을 집단적으로 통제하는 메커니즘이었으며, 냉전 종식 후 1996년 바세나르 체제로 전환되었다. 현재의 Pax Silica 이니셔티브[2]는 AI·반도체 기술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기술 동맹 통제 체계로서, 코콤의 현대적 버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코콤이 회원국 간의 합의를 기반으로 운영된 반면, 현재 미국의 AI 수출통제는 동맹국과의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일본 반도체 산업에 대한 미국의 압박 (1980년대)
1980년대 미일 반도체 마찰은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과 구조적으로 유사한 선례를 제공한다. 당시 미국은 일본 반도체 산업의 급성장을 자국 안보 및 산업 이익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을 통해 일본 기업들의 시장 행동을 제약했다. 이 사례는 미국이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자국의 기술·산업 패권이 위협받는다고 판단할 경우 일방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HBM 등 핵심 AI 인프라 기술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은[15], 장기적으로 미국과의 기술 경쟁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한다.
화웨이 제재와 공급망 재편
2019년 미국의 화웨이 제재는 AI·반도체 수출통제가 글로벌 공급망을 어떻게 급격히 재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직접적인 선례다. 화웨이 제재는 단순히 한 기업을 겨냥한 조치를 넘어, 글로벌 통신 장비 및 반도체 공급망 전체를 미국 기술 의존 여부에 따라 재편하는 효과를 낳았다. 당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중단해야 했으며, 이는 단기적으로 상당한 매출 손실로 이어졌다. 현재의 AI 모델 수출통제는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한국 기업들의 사업 환경을 급격히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ASML과 네덜란드의 딜레마
네덜란드 ASML의 사례는 한국이 참고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선례다. 세계 유일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제조사인 ASML은 미국의 압력으로 중국에 대한 첨단 장비 수출을 제한받아왔으며, 최근에는 MATCH 법안으로 인해 추가적인 제약에 직면해 있다[11]. 네덜란드 무역장관이 직접 워싱턴을 방문하여 의회와 상무부에 우려를 표명하는 이례적인 외교적 행동에 나선 것은[11], 기술 수출통제 문제가 단순한 무역 이슈를 넘어 동맹국 간의 핵심 외교 현안으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한국 역시 ASML과 유사하게 AI 공급망의 불가결한 노드로서의 지위를 활용하여 보다 적극적인 외교적 대응에 나설 필요성이 제기된다.
4. 이슈 전개의 핵심 변수
변수 1: 미국의 동맹국 차별화 접근 방식
향후 이슈 전개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미국이 AI 기술 접근에 있어 동맹국을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다. 현재 인도는 구두 확약을 받아냈고[12], 호주는 자국 AI 역량 구축의 필요성을 공식화했으며[10], 유럽은 집단적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13]. 한국이 Pax Silica 체제 내에서 명시적이고 구속력 있는 기술 접근 보장을 협상해낼 수 있는지 여부는, 한국 AI 생태계의 안정성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미국이 동맹국별로 차별화된 접근 기준을 적용한다면, 한국의 협상력과 외교적 포지셔닝이 기술 접근의 범위와 안정성을 직접적으로 규정하게 된다.
변수 2: AI 수출통제의 제도화 수준
미국 정부가 AI 모델에 대한 수출통제를 얼마나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제도화하느냐도 중요한 변수다. 현재는 기업의 경쟁적 기동이나 검증되지 않은 안보 우려에 의해 동맹국의 기술 접근이 하룻밤 사이에 차단될 수 있는 불확실한 상태다[3][4]. 만약 미국이 명확한 기준과 절차를 갖춘 제도적 프레임워크를 구축한다면 한국 기업들의 사업 계획 가능성이 높아지겠지만, 반대로 임의적·사후적 통제 방식이 지속된다면 한국 기업들은 미국 AI 기술 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9].
변수 3: 한국의 자체 AI·반도체 기술 역량 확보 속도
한국이 미국 AI 생태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적인 기술 역량을 얼마나 빠르게 구축할 수 있는지도 핵심 변수다. 정부 차원의 새로운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3]과 KAIST·UNIST 등 이공계 대학들의 AI 인프라 기술 개발 경쟁[15]은 이 방향으로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HBM이 KAIST 연구실에서 아이디어가 태동했듯이[15], 차세대 AI 병목 해소 기술에서 한국이 독자적 원천 기술을 확보한다면 미국 AI 모델 접근 차단의 충격을 완충하는 동시에 협상 레버리지를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단기간에 실현되기 어려운 장기적 과제라는 점에서, 단기적 리스크 관리와 장기적 기술 자립 전략을 병행하는 이중 접근이 요구된다.
변수 4: 중국의 기술 자립 진전 속도
중국이 AI 데이터센터 투자(2,950억 달러)와 국내 조달 의무화(80%) 정책을 통해 자국 AI 생태계를 얼마나 빠르게 자립화하느냐도 한국에 중요한 변수다[4]. 중국의 기술 자립이 가속화될수록 한국 기업들의 대중국 시장 접근 가능성은 더욱 좁아지며, 이는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중국이 기술 자립 과정에서 한국의 특정 부품이나 소재에 대한 의존도를 단기간에 해소하지 못한다면, 이는 한국 기업들에게 일시적인 협상 레버리지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 기술 자립의 진전 속도는 한국 반도체·AI 기업들의 시장 다변화 전략의 유효성을 결정하는 외생 변수로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이 보고서는 EAI 연구원의 기획에 따라 AI 기반의 정교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EAI 연구원이 최종 작성한 심층분석 보고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