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 전후 일본과 조선의 보편 근대에 대한 도전: 근대 초극론과 서인식의 역사철학
사랑방의 젊은 그들 진경을 찾아 헤매다 : 사랑방의 젊은 그들 규슈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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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버 가든
규슈 국립박물관
최은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석사과정
I. 서론
1. 소개 및 역사적 배경
본 페이퍼는 중일전쟁을 전후한 시기,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대표적 국제정치 사상가들 이 전개한 근대성 비판과 대안적 세계질서 구상을 비교 분석한다. E.H.카가 지적한 국 제정치학적 위기는 1940년대에 이르러 더욱 복합적인 양태로 심화되었다. 카는 당시 윌슨주의에 기초한 국제정치학이 국제연맹과 같이, 권력적 요소를 망각한 채 “유토피아 적” 이상과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질서를 산출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국제법이 도덕적 우위성을 가진다는 주장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며, 국제법이 실제로는 단지 헤게 모니 유지를 정당화하는 도구로써 작용한다고 믿었다. 카의 이러한 비판은 동시대 추축 국 지식인들의 문제의식과 강하게 공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의 경우, 칼 슈미트는 자유주의와 합리주의를 표방한 근대적 세계관이 한 계에 도달했다고 인식했다. 그는 홉스와 칸트에서 출발한 기계론적 국가관이 국내적으 로는 주권과 정치적 영역이 결여된 노모스를 산출했고, 국제적으로는 팽창주의적 성격 을 띤 해양적 노모스를 낳았다고 보았다. 게다가, 이러한 국내적 노모스는 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추세와 결합하면서, 기계론적 국가관이 국경을 넘어 윌슨식 국제법이라는 기 제를 통해 하나의 세계질서적 원칙으로 전회할 조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에 대해 슈 미트는 내적으로는 예외의 영역을 인정하여 주권자를 재발굴할 것을 촉구했고, 외적으 로는 획정 가능한 육지에 기반한 대지의 노모스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전 환만이 세계가 무질서로 와해되는 것을 방지하고, 기계적 결정주의 속에서 소멸되어 가 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구제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 보았다. 나아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성립해야 할 신국제질서는 타 세력이 침투할 수 없는 지역 강대국들의 성역, 즉 대공간(Grossraum)의 원칙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공간은 먼로 독트린과 유사하게, 지리적 인접성과 이념적 동질성을 원칙으로 결속될 예정이었다. 이런 관점에
- 84 - 서, 슈미트는 독일의 총통을 자신이 갈망하던 주권자의 현현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자 기파괴적인 근대성의 점진적 엄습을 저지하기 위한 숙명적 전쟁으로 해석했다. 물론 슈 미트의 국제정치사상을 단순히 가치 편향적인 “전체주의”라는 용어로 환원해버리는 데 에는 문제가 있지만, 그를 個과 全의 대립 구도에서 위치시킬 경우, 다분히 전의 우위 를 정당화할 수 있는 개방성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같은 시각 일본에서는, 니시다 기타로를 지적 지주로 삼은 교토학파가 고유한 국제정치사상을 구축해 나가고 있었다. 니시다의 형이상학적 문제의식은 이른바 “역사 철학적 전회”를 통해 구체화되었고, 그 관심의 초점 역시 無의 철학이라는 인식론적 고 민에서, 서양과의 문화적 투쟁 속에서 일본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역사 적, 정치적 의제로 이동했다. 1930-40년대에 이르러, 메이지 유신에서 출발한 일본의 서양화는 더 이상 번복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이 자명해졌다. 메이지 이래 누적되어 온 서방의 영향은 단순한 기술적 도입이나 제도의 도구적 수용에 그치지 않았다. 일본 은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통해 의회주의를 실험했고, 문화적 차원에서는 서구적 “개인주 의“의 확산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종래 서구 문명은 중화 유교 문명을 대체할 새로운 문명 표준으로 받아들여지고 꾸준히 달성해야 할 모방의 대상으로 비춰져 왔지만, 30-40년대에 이르러 서양 문명에 심각한 모순이 내재해 있다 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서방의 의회주의는 애초에 약속했던 공적 이익 증진이나 개인들 의 합리적 토론을 실현하지 못한 채, 자이바츠財閥와 같은 조직화된 이익집단들이 자신 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연극장으로 전락했다. 외적으로도, 마치 슈미트가 기계론적 국제법 질서의 확산에 비판적이었던 것처럼, 일본제국 역시 만몽(滿蒙)문제를 둘러싸고 국제연맹의 리튼조사단(Lytton Commission)과 충돌했으며, 최종적으로 국제연맹 탈퇴 를 통해 윌슨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로써 당대 일본 인들에게 서양적 근대는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실패하고 있던 것으로 비춰졌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 내 깊숙이 침투한 유럽발 근대는 모방하거나 보완할 대상이 아니 라, 초극해야 할 대상, 독(毒)으로 인식되었다. 이 지점에서 ”역사라는 변화의 장에서 주체의 자기동일성”이라는 문제를 갖고 씨름했던 니시다의 역사철학은 당대의 지적 수 요를 충족해주는 시의적절한 틀을 제공했다. 교토학파는 서양을 초극하기 위한 이론적 자원을 니시다의 무(無)의 논리에서 찾으려고 했고,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 적 배경과 맞물리면서, 서양적 국제정치질서의 결함을 일본적 원리로 대체함으로써 세 계를 위기로부터 구제한다는 세계사적 철학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2. 선행연구 근대 초극론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문제적인 정치적 행보로 인해 오랫동안 연구 대상 에서 배제되었으며, 연구되더라도 흔히 다음 두 제한적인 틀 중 하나에 머물러 왔다. 한편으로, 이들의 사상은 단지 추축국 팽창주의의 정당화 논리 정도로만 치부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의 국제정치 구조, 또는 물질적, 환경적 조건으로 인해 그러한 아
- 85 - 이디어가 창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결정론적인 담론에 속했다. 따라서 교토학파의 국제 정치철학은 유럽도 비유럽도 아닌 중간적 정체성 때문에 일본 내 일부 연구자를 제외 하면 본격적으로 조명되지 못했다73). 서인식 역시 식민지 조선이라는 주변부적 위치로 인해 국내 학계를 제외하고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근대 초극론과 교토학파의 국제정치사상은 여전히 일본 국제정치학파Japanese IR school의 전유물로 남아있다. 국내 학계에서도 근대 초극론의 국제정치사상에 대한 연 구는 사실상 전무하고, 교토학파 연구 역시 역사학계와 철학계를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근대 초극론의 한국적 수용을 다룬 연구로는, 한일 역사 연구자들이 조 선 지식인들의 근대 초극론에 대한 텍스트에 해제를 덧붙인 단행본이 대표적이다74). 나 아가, 본 논문은 기존의 역사주의적 서술이나 사상사적 접근은 지양한다. 이는 역사적 맥락을 전면적으로 무시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들 사상가들의 문제의식이 형성된 주변 조건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만, 이러한 맥락화 작업은 어디까지나 이들의 문제 의식을 명료하게 드러내기 위한 차원에 한정된다. 구체적으로는, 한편으로 이들이 살았 던 담론적 환경을 묘사함으로써 사상 형성에 영향을 미친 조건을 그려내고, 다른 한편 으로는 그들이 직면했던 지정학적 지형을 통해 존재론적 고민을 추론하는 데 목적을 둔다. 다시 말해, 본 연구는 이들의 결론을 계보적으로 추적하여 책임 소재를 묻는 가 치판단적 논의나, 이들이 처했던 환경적 요인으로부터 그러한 결론을 도출될 수밖에 없 었다고 설명하는 결정론적/환원주의적 접근과는 거리를 둔다.
3. 문제의식 이 글은 교토학파와 서인식을 비교하는 작업이 두 가지 측면에서 학술적 의의를 갖는 다는 자각에서 출발한다. 첫째, 전간기라는 공통된 역사적 조건 속에서 이 사상가들은 자유주의적 근대성이 지닌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대체할 대안적 세계질서를 모색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둘째, 약 한 세기에 가까운 시차에도 불구하고, 이 들이 직면했던 근대성의 위기는 오늘날 실질 국제정치가 마주한 지구적 위기와도 강하 게 공명한다. 근대성과 근대 국제질서, 즉 베스트팔렌-홉스적 국가체제는 아직 건재한 반면, EU, UN, WTO 등 초국가적 협력체는 정체 상태에 빠져있다. 또한, 중국의 부상 과 함께 자유주의/국가주의의 담론은 서구/비서구라는 이분법적 구도에 배태되어 유통 되고 있다. 특히 중국 국제정치학 학파(Chinese school of IR)의 자오팅양, 옌쉐통, 친 야칭 등은 내용적 측면과 전개 방식 모두에서 교토학파와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을 보 인다. 이는 전간기 국제정치사상가들이 당면했던 문제가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채, 그 들의 유산을 오늘날의 담론 속에서 여전히 재현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서인식의 문제의 식은 새로운 보편주의적 국제질서론들이 20세기적 백가쟁명(百家爭鳴) 속에 횡행하는 가운데, 약소국의 개체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라는 한국의 시대초월적인 고민이 담 73) Thuy T. Do (2020) Between East and West: Japanese IR at a crossroads, The Pacific Review 74) 홍종욱, 식민지/근대 초극 연구회, 식민지 지식인의 근대 초극론,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7
- 86 - 겨 있다. 비록 식민지 한국과 21세기의 중견국 한국의 위치를 대등하다고 볼 수는 없겠 지만, 주변부의 국제정치학은 한국을 초월한, 비강대국들의 보편적 문제의식을 대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근대초극론과 서인식의 현재적 함 의를 논의하는 것은 한 편의 논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따라서 이 글은 단지 근대성의 역사철학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둘을 비교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것이다.
이렇게 교토학파와 서인식은 모두 서방적 근대와 자유주의에 기반한 당시 국제 질서 도달했다고 인식했다. 다만, 이들은 비판에 그치지 않고, 해당 국제질서를 초극해 야 할 대상으로 설정하여, 이를 대체할 대안적 국제질서의 구상을 제시했다. 이 과정에 서 이들은 당대 국제질서를 하나의 역사적 단계로서 시간성의 축 위에 위치 지었으며, 동시에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공간 개념 역시 새로운 시대정신에 부합해야 한다고 보 았다. 다시 말해, 교토학파의 근대 초극론과 서인식의 근대초극론 비판은 공히 역사철 학적 문제에 기반했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이런 문제의식에 입각해 본 페이퍼는 근대 초극론 좌담회와 서인식의 역사철학을 탐구하려고 한다. 그러나 국제정치사상에 관심을 두고 본 페이퍼를 읽는 독자라면 이에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국제정치사상을 탐구하는 데 있어 시간성의 철학보다는 공간성의 철학이 더 적합한 창구가 아니냐는 의문이다. 특히, 왈츠식 구조적 현실주의나 커헤인-나이식 제도주의적 자유주의처럼, 시간성에 부차적 중요성만을 부여하는 이론들에 익숙한 현대 독자일수록 이러한 접근은 더더욱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이에 본 페이퍼는 공간성과 역사철학이 불가분의 관계 에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공간 개념들은 때로는 시간성을 조각하고, 반대로 시간성이 역시 공간을 통해 구체화되고 조직되기 때문에, 공간성과 시간성은 상 호관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럼에도 역사철학에서 일반적으로 공간성보다 시간 성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슈미트와 달리 근대 초극론 좌 담회와 서인식은 공간 개념을 자각적으로 이론화하기보다는, 그것을 도구적으로, 시간 성의 구체적인 발현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공간성은 존재론을 추동하는 파생물인 역사를 매개하여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파생물의 파생물로 위치 지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따라서 본 페이퍼의 또 하나의 과제는 근대 초극론과 서인식의 저술 군데군데에 산발적으로 묻어들어가 있는 공간적 상상력을 발굴하고, 이를 부차적 요소가 아니라 시간성에 준하는 위치로 격상하여 유기적인 하나로 재구성하는 데 있다.
더 구체적으로, 본 연구는 근대초극론의 학자들과 서인식이 전간기 국제질서의 위기를 어떻게 진단했고, 어떤 방식으로 대안적 세계질서를 구축함으로써 이를 돌파하고 자 했는지 고찰한다. 이들은 모두 서방발 근대를 위기의 근원으로 지목하고, 각자의 독 특한 역사철학을 통해 세계사적 방향을 설정하면서, 자유주의의 패망이 필연적인 귀결이 라고 주장했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할 것이다. 근대의 진보적 역사철학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세계사가 발전하는 실제 방향은 무엇이고, 역사의 역할과 주체는 누 구인가? 특이점, 즉 역사의 종언은 존재하는가? 마지막 파트에서는 이런 종착점을 달성 하려는 방법과 구체적 양식이 무엇인지를 알아볼 것이다. 이처럼 근대성의 위기는 두 차
- 87 - 원에서 제기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서 셋은 각각 새로운 시공간 개념을 각자 제시한다. 근대초극론이 제시한 새로운 공간을 개(個)와 전(全)이라는 대립쌍으로 도식화 한다면, 공영권이 식민지나 비강대국의 개체성을 인정해주는 방식으로 전개되지는 않았 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서양식 전체주의나 일본식 동양주의 사이에서 서인식이 제시한 다원적 공간의식은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 역시 본 논문의 핵심이 될 것이다.
II.근대 초극론: 서양적 근대를 대체하기 위한 無의 대동아공영권
슈미트가 주권론과 법철학에서 출발한 반면, 교토학파(니시다 기타로)는 인식론에서 출 발했다. 즉, 양자가 아주 다른 출발점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대동아 공영권이나 그로스라움과 같은 유사한 공간적 질서 구상을 산출했다. 이러한 수렴은 슈 미트는 비교적 일관된 문제의식을 유지한 단독 사상가였던 데 반해, 교토학파는 복수의 사상가들로 구성된 집단이었다는 점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교토학파는 구성원 과 시대상의 변화에 따라 핵심 개념과 문제의식이 꾸준히 이동하는 과정을 겪었다. 교토 학파의 전회는 크게 세 변곡점을 거쳤다고 볼 수 있다. 첫째는 니시다 기타로의 주체와 대상의 합일이라는 문제의식이다. 둘째는 그 합일된 상태에서 발생하는 “실제 세상에서 정체성의 동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서, 초기의 인식론적·존재론적 관점을 역 사적 공간의 문제로 이동시킨 전회다. 셋째는, 타나베 하지메의 “종의 논리”를 2세대가 국가주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교토학파에 국가주의적 경향이 강하게 가미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교토학파의 사상적 전회는 개체/전체라는 보편·추상적 수준에서, 점 차 구체적이고 특수한 정치적 질서로 나아가는 방향을 취했다. 이런 경로는 슈미트와 교 토학파의 종착점 사이에서 나타나는 일정한 차이점을 설명해준다. 슈미트는 처음부터 비 교적 구체적인 정치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고, 사상적 종착점인 그로스라움이나 라이히 역시 적어도 명시적으로는 독일을 역사적 사명의 주체로 승화시키지 않았다. 그런 의미 에서 슈미트는 완전한 특수성으로 귀결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본문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교토학파를 1세대와 2세대로 구분하는 이유와 그 역사적 배경을 간략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들은 흔히 같은 교토학파로 묶이지 만, 탐구영역과 문제의식 모두에서 1세대와 2세대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Heisig(2001)의 분류75)를 따라 니시다 기타로와 타나베 하지메를 1세대 교토학파로 간주한다. 이 두 사상가 사이에도 사상적 차이가 상당하지만, 이들은 주로 형이상학적 영역에 머물렀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에 비해 2세대는 니시다 철학을 “사회과학화” 내지 “국제정치학화”한 집단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들은 주로 1세대에게 직접 사사받은 인물들로 구성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소위 “교토학파 사천왕”이라 불리 는 4인은 모두 1942년의 “근대의 초극” 좌담회에 참석했다. 이 좌담회는 잘 알려진 바 와 같이 일본 군부가 주최한 행사였으나, 통념과는 달리 그 목적은 태평양 전쟁에서 연 75) Heisig, James W., Philosophers of Nothingness : An Essay on the Kyoto School,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1
- 88 - 이어 패배하던 일본 해군이 팽창주의 노선을 취하던 육군을 견제하는 데 있었다. 해군 은 패망 이후에도 일본 국체를 보존하려는 차원에서 대안적 담론을 모색했고, 그 일환 으로 교토학파와 협력하게 되었던 것이다.76)
근대 초극론의 국제질서 구상을 논하면서 좌담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던 니시다 기타로까지 분석 대상으로 포함시키는 것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니시다의 사상 체계는 근대 초극론은 물론 서인식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그 사상적 지반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분석 대상에서 배제될 수 없다. 물론 니시다의 입장과 좌담회 참석 자들의 입장을 동일시하는 것은 마땅히 지양되어야 한다. 이에 본 논문은 좌담회를 니 시다 철학의 일부로 간주하지 않되, 니시다 철학이 내포하고 있던 문제의식이 제2차 세 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도달할 수 있었던 하나의 가능한 귀결로서, 즉 니시 다 철학의 연장선상에서 유기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1.니시다 기타로의 역사철학
니시다 기타로의 후기 철학을 정치철학사적 계보 속에서 자리매김하자면, 그가 “제국 “이라는 개념과 씨름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사상적으로 제국에 접근할 때 반복해서 부 상하는 화두는 보편과 특수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의 문제다. 예컨대, 키케로나 천하사상은 로마와 중국이라는 실제 정치체를 보편적 위치로 격상하고, 일관된 논리체 계를 통해 특수한 제국의 존재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담론은 제국 내에 이미 존 재하는 다양한 정체성을 조화롭게 품는 유기체적 이상향을 그려내는 패턴을 보인다. 나 아가, 이 특수한 제국이 더 포괄적인 자연관이나 형이상학 속에 배태된 것으로 묘사하 고, 이를 자연과 가장 조화로운 정치체로 설파함으로써 그 존재의의를 대내외적으로 해 명한다. 키케로에게는 스토아주의가, 선진(先秦)시대에는 천명(天命)이라는 규범적 자연 관이 그러한 역할을 수행했다.
니시다의 경우, 그의 철학적 고민이 보편과 특수의 관계에서 출발했기에, 그것 을 국제정치적 차원으로 옮겨놓는 과정이 ”제국“으로 귀결되는 것은 얼핏 자연스러운 결론처럼 보일 수도 있다. 개별 민족들이 어떻게 하나의 정치적 질서 속에서 공존하고 통합되는가라는, 고전적으로 제국적인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시 다 철학 체계를 보다 엄밀히 살펴보면, 제국은 오히려 비직관적인 결론이라 할 수 있 다. 니시다의 문제의식이 애초에 제국 담론에 특징적인 ”특수를 아우르는 보편“이 아니 라 ”특수를 살리기 위한 보편“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론이 무엇이었든 간에, 니시다 의 정치사상은 전통적 하향식(top-down) 제국사상과 구별되는 독특한 보편과 특수의 관계를 갖는다.
76) Kosuke Shimizu, “Chapter 5: The Transcendental Whole and ‘Inclusiveness’ The Discourse of the
Big 4”, The Kyoto School and International Relations - Non-Western Attempts for a New World
Order, 2022
- 89 - 흔히 보편자를 논할 때 우리는 ”특수의 것을 일반적인 것으로 포섭(subsume)하 는 추론식”77)으로 일반자를 상상한다. 비근한 예로 과일이라는 일반 개념은 사과, 포도, 멜론, 딸기 등 경험적 특수 개체들을 포섭하는 우산과 같은 개념이다. 하지만 니시다에 따르면, 이러한 하향식 개념화는 특수의 생동력을 구속해버리는 “죽은, 고정된” 일반자 에 불과하다. 따라서 “참으로 일반적인 것은 특수한 것의 내면적 구속력이어야만” 한 다.78) 그러나 모든 개체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스스로를 한정하지 않아 고정성을 잃어버 린다면, 세계는 무질서한 상태에 이르고 만다. 그래서 니시다는 이를 묶어내는 불변성 의 동력인 ”논리“를 발견하고자 했다. 그는 피히테와 마찬가지로 ”생명의 약동과 로고 스 추구“라는 일견 상충되는 두 동학을 동시에 고려함으로써 ”생성과 존재의 절대 모순 의 자기 동일“79)을 설명하려 한다.80)81) 그럼 이제 니시다의 철학적 여정을 거슬러 올 라가, 근대 초극론이 어째서 태평양전쟁을 정당화하는 도의적으로 어긋난 결론에 이르 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니시다에게 역사철학적 관심은 “순수 경험”에서 출발한다. 니시다의 가장 핵심 적인 문제의식은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는 순간 구체적인 “경험”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 다는 데 있었다. 예컨대 예술 작품을 향유하거나, 조용한 숲속을 산책하거나, 공부에 몰 두하여 물아일체(物我一體)에 도달하는 경험을 떠올려 보자. 이때 내가 나 자신을 자각 하여 경험하고 있는 나를 의식하는 순간,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82). 순수 경험이 객관에 의해 오염되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니시다는 주체와 대상이 아직 분화 하기 이전의 상태, 즉 양자가 미분(未分)된 채로 순수경험이 발생하는 초월적인 장소를 상정했다. 이 장소는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기 이전의 무(無)의 차원이었다. 이 차원을 무(無)의 장소라고 명명하는 이유는, 어떠한 것을 서술하는 술어가 등장하는 순간 그것 이 나머지로부터 분리되기 때문이다.
77) 허우성, 근대 일본의 두 얼굴: 니시다 철학, 2000 p.116
78) 내부 구조를 말한다는 점에서 니시다의 생(生)이 칸트의 물자체와 같은 개념이라 오해할 수 있다. 내
부로부터 인간을 추동하는 원리 내지 본질로 이해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칸트의 물자체가 주
체의 인식(현상)을 선행한다면, 피히테나 니시다 계열의 논의에서는 오히려 인식이 경험적 세계를 구성
한다. 칸트의 목적이 인식론적 차원에서 본질을 찾아내는 데 있었다면, 피히테와 니시다의 관심은 존재
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가 의식의 활동으로부터 형성되며, 자아가 자기
자신을 정립하는 과정이 곧 세계를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칸트의 현상/본질 이원론을 거부하고 일
원론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니시다는 말한다. “칸트처럼 인식과 실천을 처음부터 구별하여 생각해
간다면 확실히 한 가지 방식의 문제 해결은 얻어지리라. 그러나 모두 세계가 어떻게 관계할지 하는 점
이 분명하게 되어 있지 않다. 나는 그걸 하나로 모아서 생각해가고 싶다.” (허우성 (2000) p.128) 79) 허우성, 근대 일본의 두 얼굴: 니시다 철학, 2000, p.130
80) Ibid. p.120
81) 기존의 보편-특수 관계와 니시다의 그것 사이의 차이는 논리학적 개념인 동일률(law of identity)에
대한 입장에서도 확인된다. 동일률은 A=A라는 비모순성 원칙인데, 피히테는 이것을 자아가 자기 자신
을 세우는 행위로 규정한다.
82) 필자는 이를 읽으면서 사르트르의 “시선regard”과 “즉자卽自en-soi/대자對自pour-soi” 개념을 떠올리
며, 니시다의 논의와 무엇이 다른지 고민해보았다. 가장 큰 차이는 사르트르가 대자-즉자 이분법을 주
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며 출발하는 것과 달리, 니시다는 순수경험을 바탕으로 객관과 주관을 결합하겠다
는 훨씬 담대한 프로젝트를 구상한다는 점인 것 같다. 실제로 니시다가 서양의 실존주의를 “자각주의”
라는 이름으로 지칭한 바 있다.
- 90 - 하지만 여기서 니시다는 해소되지 않는 난점에 직면한다. 만약 주체와 대상이 본래 분 리되어 있지 않았다면, 나(주체) 역시 대상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그리고 무질서하게 변화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인 지하고 있다. 이는 개인적 수준에서 나(我)라는 존재의 자기동일성을 어떻게 확보하는 가라는 질문으로 표현된다. 주체의 의식이 자기동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경험 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경험을 이처럼 초월적인 형태로 옮 겨놓으면 구체성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니시다는 초 점을 역사철학으로 이동시킨다. 그에게 역사란 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공간이자 과 정이었다.
니시다는 개인적 차원의 혼돈과 민족·국가적 차원의 혼돈을 유비적으로 연결한 다. 위의 질문이 국가·민족이 어떻게 자기동일성을 확보하는가라는 사회적 수준의 질문 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이때 니시다는 역사를 순수 경험과 구분한다. 순수 경험이 주체 와 대상의 미분된 상태라면, 역사는 다양한 경험들의 이질성, 순간성과 개성을 관통하 는 무언가를 포착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구성된 역사학은 과학과 예술 사이에 위치하는 중간적 학문이다. 절대 의지를 부정하고 대상으로 나아가면 결정론적인 과학이 성립하 고, 의지를 상대적으로 긍정하여 개성을 강조하면 역사학이 탄생한다. 마지막으로 개성 이 완전히 살아 움직인다면 예술이나 종교로 나아간다. 같은 맥락에서 니시다는 세계를 물질적 세계, 생물학적 세계, 역사적 세계라는 세 층위로 구분한다. 이 중 역사적 세계 는 인간이 의도적 행위를 통해 세계의 자기 창조에 기여하는 차원이고, 전체와 부분, 환경과 개별자 사이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어떻게 추동되는가? 여기서 현재의 역할이 핵심적이다. 현재 는 과거의 무게와 미래의 지평이라는 두 힘에 의해 “눌려” 있는 상태로 이해된다. 요컨 대, 과거가 현재를 제한하는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미래는 현재에게 변화를 최촉하는 강압으로 기능한다. 현재는 이처럼 자기연속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넘어설 것 을 요청받고, 그 결과로 항시적인 자기 부정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얻게 된다. 이렇게 역사는 현재의 자기 부정을 통해 추동된다. 한편 이처럼 자기 부정을 수행하는 현재는 창조적이고 단일한, 비반복적 순간이기에, 역사는 결정론·기계론적 인과관계의 나열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역사적 과정은 이미 성립된 주체의 의지에 의해 추동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자기 부정 속에서 주체의 자유와 창조성이 사후적으로 생성되는 것이기에 의지론적 결과물도 아니다.83)
이런 맥락에서 니시다는 순수 경험이라는 개념이 실제 세계에서 드러난 경험적 사례를 제시할 수 없다는 난관에 직면한다. 이에 그는 대상과 주체, 전체와 부분 사이 의 중간적 위치를 점하는 역사를 통해 “순수 경험의 근사치를 내는” 방안을 택한 것이 다. 나아가 니시다는 존재론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돌파구로서 역사철학을 택했다. 83) 허우성, 근대 일본의 두 얼굴: 니시다 철학, 2000 p.313. 우리의 직접 경험은 시시각각으로 이행해가
는 하나하나 이질적인 연속적 발전이다. 즉 하나하나 개성을 띤 것이다. 그런데 자연과학은 가능한 한
그 이질성과 개성을 버리고, 모든 경험을 일반적 성질 아래에 통일하고, 여기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려
고 하는 것이다.
- 91 - 하지만 후기 교토학파는, 본래 니시다가 경험적 사례를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호명되었 던 역사철학을 오히려 이론의 핵심적인 축으로 삼는다. 이 과정에서 첫째, 니시다의 주 체와 대상의 안티노미를 해소했던 역사적 현재의 매개적이고 모호한 지위는 약화되고, 역사 발전에서 개별 인간 집단의 주체성이 강조된다. 둘째, 이렇게 새롭게 강조된 주체 성을 대변하는 현실세계의 담지자로 문화, 민족과 국가가 호출되고, 또 세계사적 사명 을 수행할 주체로 규정된다.
2.대동아공영권: 근대 초극론의 신공간 종의 논리와 도덕적 에너지: 대동아공영권의 논리 니시다 기타로 자신 역시 서양 대 동양이라는 문제의식은 오래전부터 2세대와 공유하 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문제를 단순한 토착적 전회(nativist turn)로 해소하는 것에 는 거부감을 내비쳤으며, 동양과 서양의 이분법 자체를 넘어설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정치적 사상이 구체적인 방안에 도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2세대 교토학파에 이르러, 니시다가 제안했던 무(無)는 서양적 유(有)에 대비되는 동양 또는 일본의 고유한 특질로 본질화되었다. 서양의 근대성이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는 판단 아래, 그 탈출구로서 동양적 무를 내세운 것이다. 동양적 무를 보편적 해법으로 사용하지 않고 일본이라는 국가에 귀속시키는 시도는 근거가 빈약해 보일 수 있었기에, 2세대 교토학파들은 두 가지 정당화 논리를 소환한다.
첫째는 1세대 교토학파 사상가인 타나베 하지메의 “종의 논리”이다. 본래 니시 다의 철학은 개인과 전체라는 이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서 구체적인 정치철학으로 연 결되기에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에 타나베는 개인과 전체 사이에 중간적 매개항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그것을 종(species) 개념에서 찾았다. 타나베의 종의 논리는 개인 (individual)-종(species)-속(genus)의 삼분 구조 위에서 전개되는데, 이는 개인-국가-국 제라는 국제정치사상의 익숙한 삼층위 구조와 유사하다. 비직관적이게도, 타나베의 체 계에서 인류는 종이 아닌 속에 해당하고, 종은 문화 및 그 문화를 체현하는 국가에 해 당한다. 타나베는 개인과 자유를 결부시키는 한편, 종을 자유의 제한과 연결된 한 쌍으 로 파악했다. 이처럼 상충하는 두 논리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길항관계가 형성되는데, 이 긴장의 균형 속에서 출현한 것이 바로 국민국가다. 그리고 이 국민국가는 곧 역사를 추동하는 주체로 설정된다. 고야마와 고사카는 타나베의 이러한 종의 논리를 빌려 이념 과 실천을 결합하고, 주도적인 종이 문제를 해결하고 현실의 의의를 창조하는 과정을 “세계사의 창조“라고 규정한다.
고야마: 사변의 의의나 이념이 사후에 나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역사라는 것은 대개 그
런 것이지요. 사변의 진행과 함께 현실의 의의가 창조되어갑니다. 그런 의의를 창조하는
것이 우리의 활동입니다. 지나사변을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앞으로 우리의 활동 여하
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말입니다만, 신황정통기에 있는 천지의 시작은 오
- 92 - 늘을 시작으로 한다”는 말의 의미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지창조라는 것은 특별
히 오래된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의 창조여야 합니다. 낡은 세계가 깨지고 신질서가 만들
어지는 것, ABCD 포위선을 어떻게 깨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낼 것인가-이것이 천
지 창조입니다. (...) 오히려 앞으로 우리의 활약으로 새롭게 창조하고 부여해가야 하는
것입니다. 전쟁도 그것을 수행함으로써 그 진정한 의의가 창조되어갑니다. 과거를 살리고
죽이는 것도 현재의 활동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에 우주 창조의 의미가 있고, 그것이 오
늘이 천지의 시작이라는 까닭입니다. (...)
고사카: 물론 역사 문제는 멋대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매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기꺼이 해결해 나가고 새로운 세계로 전개해 나가는 데 역사적 의의가 있
습니다. 그 해결 주체가 국가적 민족입니다. (...)84)
역사를 추동하는 법칙: 모랄리세 에네르기(moralische energie)
이러한 국가의 “주체됨”에 학문적 권위를 더하기 위해 소환된 두 번째 개념이 바로 랑케의 도의적 생명력(moralische energie)이다. 랑케는 역사 발전과 개별 국가들 의 흥망을 설명할 때, 자연적/객관적 조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보았고, 국가와 민족으로 하여금 역사 속에서 자신의 사명을 구현하게 만드는 힘에 “도의적 생 명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도의적 생명력은 헤겔의 운명론적 역사관과 대척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헤겔이 일선적이고 목적론적인 역사관을 제시했다면, 랑케는 무질서와 운명론 사이에서 인간 자유의 역할을 찾고자 했다. 랑케에게 역사란 인간의 자유가 과 거의 힘이라는 저항에 부딪히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나아가는 과정이다. 역사는 과 거와 미래의 연속선 위에 놓여 있되, 그 귀결은 어떤 방식으로도 미리 예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85)
고야마: 프랑스가 패배했다고 할 때, 프랑스가 패전한 근본 원인은 뭘까요? 랑케의 말로
하면, 즉 모랄리세 에네르기가 결핍되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와 문화 상에 틈이나 대립이
생겨 문화와 정치가 완전히 분리되었지요. 문화도 정치도 모두 건강한 생명력을 잃었습
니다. (...) 절정기의 파리가 잿더미가 되어도 조국 프랑스를 지킨다는 도의적 에네르기
속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 프랑스 문화였습니다. (...)
고사카: 현실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단순히 경제라든가 학문만이 아니라, 좀더
Subjektiv한, 주체적인 것, 구체적으로는 민족의 생명력 같은 것입니다. 물론 문화적인 것
을 내용으로 하지만요. (...)
(...) 모랄리세 에네르기의 주체는 국민이라고 봅니다. “민족”은 19세기의 문화사적 개념 84) 나카무라 미츠오, 니시타니 게이지, 태평양전쟁의 사상 – 일본정신의 기원. “세계사적 입장과 일본”으
로 본 ”근대의 초극” 좌담회, (이하 태평양전쟁의 사상), 이매진, p.219
85) Leopold von Ranke (Georg G. Iggers ed.), “Chapter 7: The Great Powers” in The theory and
practice of history, 1833.
“World history does not present such a chaotic tumult, warring, and planless succession of states and
peoples (...) There are forces and indeed spiritual, life-giving, creative forces, nay life itself, and
there are moral energies, whose development we see (...) In their interaction and succession, in
their life, in their decline and rejuvenation (...) lies the secret of history.”
- 93 - 인데, 설사 과거의 역사가 어떻든 간에 오늘날 “민족”은 세계사적 힘이 없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국민”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모랄리세 에네르기는 개인 윤리도 아
니고 인격 윤리도 아니며 피의 순결함도 아닙니다.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국민에 집중하
는 것이 오늘날 모랄리세 에네르기의 중심이 아닐까요? (...) 주체성을 갖지 않고 자기한
정성을 갖지 않은 민족, 다시 말해 국민이 되지 않은 민족은 무력합니다. 그 증거로 미국
인디언 같은 경우는 결국 독립된 민족의 의미를 갖지 못하고 다른 국가적 민족 안으로
흡수되어버렸습니다. 유대 민족의 경우도 결국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세계사의 주체는 국가적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86)
종의 논리와 도의적 생명력이라는 두 가지 사상적 자원을 통해, 2세대 교토학 파는 자유를 “법칙화”하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일본이라는 특수한 정치체를 “도의적 생 명력”을 보유한 “종”으로 승화함으로써, 특수와 보편을 잇는 사상적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대동아공영권 구상은 유럽발 근대성이 수많은 전쟁으로 인해 스스 로의 도덕적 한계를 노출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일본은 동양적 무(無)를 체현 한 국가인 동시에, 비유럽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러일전쟁에서 유럽 열강을 상대로 승리 를 거둔 강대국이었다. 이 점에서 일본은 아시아인들을 선도할 수 있는 도덕적 우위, 즉 도의적 생명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논리가 구성되었다. 이렇게 “지나사변”과 “대동아 전쟁”은 “모럴의 싸움”으로 승화되고, “동양의 도덕과 서양의 도덕 사이의 싸움”으로 의미를 부여받았다.87)
고야마에 따르면, 서양의 도덕적 파탄은 근대성이 촉발한 세계대전이 아니라, 그러한 전쟁을 가능하게 했던 개인주의에서 기원한다. 개인주의는 미시적 차원에서는 애국심의 결여를 낳았고, 거시적 차원에서는 근대 국제관계가 힘의 논리라는 실상을 은 폐한 채 강국과 약소국 사이의 계급구조를 재생산하는 질서를 형성했다. 국내적 차원에 서도 원자론적 인간관에 기초한 자유주의적 경쟁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계급투쟁을 산 출했다. 이처럼 고야마는 개인적 차원, 국가적 차원과 국제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모랄 리세 에네르기의 부재를 “원자론적 세계관”이라는 하나의 공통 원리로 묶어내고 있다. 하지만 고야마는 이 원자론에 대한 충분한 해명을 제공하지 않은 채 논의를 이 대목에 서 멈추고 있다.
근대의 국제관계는 (...) 원자론적 사상, 즉, 각각 개별적으로 독립된 사상이 지배하고 있
었습니다. 각 민족과 각 국가에는 자신들이 행사할 수 있는 한 표씩의 투표권이 있습니
다. 대, 소국도 강, 약국도 모두 권리에 있어서는 평등하다는 윤리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
런 생각은 근대 사회의 원자론적인 사상의 연장이기 때문에, 개인주의 사상이 그대로 국
제관계로 연장된 꼴이죠. 하지만 형식상으로야 그렇지만 역시 실제로는 강국이 약국을
복종시키고 있습니다. (...) 이 자유주의가 국내 사회에서 자유경쟁이라는 이름 하에 강자
가 약자를 복종시키는 계급투쟁으로 되어 버립니다. 국제적인 제국주의건 국내적인 투쟁
이건 그 원리는 하나의 근본 원칙을 이루고 있습니다.88)
86) Ibid. p.206 87) Ibid. p.224
- 94 - 이런 차원에서, 원자론적 자유주의를 대체하는 일본의 모랄리세 에네르기는 개 인, 국내와 국제를 동일한 원칙 하에 결합하는 신질서인 것이다. 예컨대, 개인적 차원에 대해서는 니시타니가 “나머지 다른 민족은 수준이 훨씬 낮[기 때문에], 그런 민족들을 끌고 민족적인 자각을 일깨워주고 대동아권이라는 것을 자발적이고도 주체적으로 짊어 질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 대동아권에 있어서 일본의 특수 사명이다.89) 민족의 정 신 구조까지 확 바꿔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90)”고 쓰고 있다.
기존 제국과 대동아공영권의 차이
전술했지만, 광역권Grossraum은 좌담회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되었다. 하지만 좌 담회 참석자들은 공영권과 그로스라움이나 기존 제국과의 차별점을 강조한다.
고사카: 현재 문제는 하나의 국가적 민족의 그것이라기보다는, 민족 상호간이 얼마나 깊
게 매개하느냐하는 문제입니다. (...)
고야마: 광역권이라든가 공영권이라든가 하는 것이 성립할 수 있는 역사적 필연성은 오
로지 민족문제에서만 생기는 것일까요? 경제적인 문제는요?
고사카: 오로지만은 아니지만 상당히 중요한 계기죠. 그렇지 않으면 역사의 주체성이 흐
려져버립니다.
스즈키: 광역권이라는 관념이 경제권, 즉 경제 자급권의 관념, 자유무역에 대한 아우타르
키 경제이론에서 나온 건 분명해요. (...) 자유주의 경제가 본질적으로 더는 갈 데가 없게
되고 그 결과 1929년부터 1931년에 걸쳐 세계불황을 맞이하죠. 세계불황 가운데 자본주
의에 대한 구제책 혹은 자본주의에 대한 강화책으로서 블록 경제가 생각된 것입니다.
(...) 광역권의 기본 개념에는 경제관계가 근본을 이루지만, 정확히 말하면 근본이라기보
다는 오히려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91)
역사철학은 이렇게 슈미트와 근대 초극론 모두에서 기존 질서의 전환과 변혁을 정 당화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고야마 역시 영미적 자유주의를 가리켜, 그것이 “역사 속에 있으면서 역사를 비시간화하고 영원화하는 반역사적인 타력[이며] 반윤리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했다.
역사적 현실 안에서 앵글로색슨적인 세계질서만을 초역사화하고, 구질서를 영원의 질서로
생각하려는 반역사적 힘에 대해 어디까지나 역사적 생명의 입장에 서서 싸우는 윤리와
반윤리간의 싸움이라는 면도 있습니다.92)
88) Ibid. p.267 89) Ibid. p.265 90) Ibid. p.286 91) Ibid. p.286 92) Ibid. p.272
- 95 - 역설적으로, 근대 초극론의 역사철학은 역사의 방향성을 “모랄리세 에네르기”라 는 준準법칙적 원리로 설명하면서, 역사를 일종의 자연법으로 환원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 결과 동적이어야 하는 역사철학을 도리어 정태적인 것으로 고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점에서 근대 초극론은, 자유주의적 무질서라는 구체적 문제를 대지의 노모스라는 대안을 통해 진단하면서도, 이를 완결된 법칙으로 자연법화하기보다는 지속적인 탐구의 과정으로 제시함으로써 역사철학의 자연법화를 회피한 슈미트와 대조를 이룬다.
마지막으로, 공영권의 수립은 총력전을 수행하기 위한 신경제 질서의 수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는 일본과 조선 각지에서 활동하던 사회주의자들에게 전향의 계 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총력전은 자원의 총동원을 요구하는 긴박한 상황에 서 채택되는 단기적 대응책으로 이해되고, 위기가 해소된 이후에는 다시 기존 질서로 복귀하는 임시적 수단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스즈키의 인식은 이런 통상적 이해와는 사 뭇 다르다. 스즈키는 전쟁 이전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고, 오히려 전 쟁 그 자체를 신질서를 구축하고 실험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맥락에서 구체적 제도로서 계획경제의 수립을 제안한다.
세계의 모든 질서가 총체적으로 막다른 데 이르러 전면적으로 변화하는 대대적인 변혁이
바로 총력전입니다. 경제 질서도 자유주의 경제에서 계획 경제로 변하고, 국가의 구조나
체제, 세계관도 변합니다. 19세기의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붕괴되는 것이지요.93)
전술했다시피, 이와 같은 “총력전의 이념”은 사회주의자들에게 친일로 전향의 계기를 제공했지만, 그 전향이 근대 초극론의 무비판적인 수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 다. 서인식의 사례는 식민지 조선이라는 個를 살리면서, 새로운 세계적 보편을 지향하 는 독특한 사상적 전개를 보여준다.
III.서인식, 個를 살리는 매개체로써 사회계층
서인식은 식민지 조선의 역사철학자으로써, 함흥에서 태어나 1924년부터 와세 다 대학에서 수학했다. 이래로, 그는 도쿄에서 조선공산당의 일본총국,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에서 운동가로 활동하고 그로 인해 투옥되기도 했다. 193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그는 조선 논단의 전방위에서 일본 근대 초극론에 대적할 대표 논객으로 주목받기 시 작했다.94) 이 무렵, 일본은 중일전쟁에 돌입하면서 한반도와 만주를 중국 정벌을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하였고, 조선에 징병제를 도입하였다. 따라서 본래 치안 유지 목적에 국한되었던 조선군은 관동군과의 합동작전에 본격적으로 투입되었다. 이에 따라 식민지 조선은 경제적으로는 전시경제체제로 재편되었고, 사회적으로는 내선일체(內鮮一體)라 는 슬로건 아래 황민화 정책이 추진되었다. 이러한 전체주의적 움직임에 미키 기요시와 같이 일본 본토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몸담았던 학자들과 조선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비 93) Ibid. p.314
94) 홍종욱, 식민지/근대 초극 연구회, 식민지 지식인의 근대 초극론,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7
- 96 - 판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서인식은 중일전쟁을 “세계사적 의의를 가진” 거대한 역사 적 변곡점이라 판단하고, 이에 헤겔의 변증법적 역사철학적 독해법을 적용하여 자유주 의와 전체주의라는 양대 경향성을 뛰어넘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려고 했다. 이러한 서인식의 해법을 일종의 “근대와 근대초극에 대한 초극”이라 명명할 수 있으리라. 그의 주된 문제의식은 “에폭을 결정”할 수 있는 “정히 중대한 일지사변(日支事變)”와 마주한 시급한 상황에서, “현대일본의 최고의 지성을 대표하는 이론가들”이 그 세계사적 의의 를 잘못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근대초극론의 세계사를 전체주의라고 규정하고, 식 민지라는 주변부에 주체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그는 “문화”를 “제국”을 대체하는 새로 운 탈중심적 공동체로 옹호한 것은, 중심-주변의 논리를 재생산할 수밖에 없는 일본식 협동주의를 다원주의적 세계 속으로 희석하려는 목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상을 바탕으로, 서인식 역사철학의 논리적 구조를 살펴보자. 그의 역사철학은 필연적인 자연성과 가변적인 역사성이라는 두 항 사이의 긴장에서 출발한다. 그는 역사 적 현실의 전개가 자유의지적 요소와 결정론적 요소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역사적 차원에서 “자유의지”와 “결정론”으로 호명되는 이 요소들은 정치적 차원에서는 각각 “리베랄리즘(자유주의)”와 “전체주의”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 후, 서인식은 일견 상호배타적으로 보이는 이 두 요소를 매개하는 가교를 노동에서 찾 았다. 나아가 이런 통합 논리와 나란히 하는 동학을 지성, 그리고 문화에서 발견했다. 그는 1930-40년대에 들어 두 가지 역사적 추세에 주목한다. 하나는 세계시장의 통합이 가속화되면서 단일한 세계성이 발생하고, 그에 따른 융합적 문화의 가능성이 가시화되 고 있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2차 세계대전으로 기존 질서가 무너짐에 따라 신질서 가 임박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그는 근대 초극론 지식인들이 제시하는 대 안적 세계질서를 검토하게 되었고, 그에 대한 비판을 내놓는다.
1.자연과학과 역사과학의 긴장: 필연성과 자유의 대립을 넘어서
서인식의 역사철학적 문제의식의 출발점은 역사를 추동하는 두 요소, 즉 필연 과 우연의 길항관계를 해소하는 것이었다. 그는 현재까지 역사철학자들의 역사의 필연 과 우연의 단면에만 주목하면서, 그것을 초월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그는 “역 사철학잡제”에서 역사철학 선행 연구와 최근 동향(1938년 기준)을 개괄하면서, 역사철 학의 발전사를 삼등분하여 정리한다. 첫째는 이른바 “전기 역사철학”으로, 콩트나 헤겔 로 대표되는 형이상학적 역사철학이다. 이 단계에서는 “절대정신”이라는 개념을 매개로 합리주의를 역사 영역에까지 확장하고, 모든 역사적 전개를 포괄하는 단일한 필연적 발 전법칙을 발견하고자 했다. 둘째는 딜타이나 빈델발트 등의 중기 역사철학으로, 일선적 발전 법칙을 찾는다는 야망을 포기하는 대신, 역사를 인식론적 차원으로 접근하여 자연 과학적 방법론에 비견될 만한 합리적 연구 방법론을 구축하고자 했다. 마지막은 하이데 거, 니시다 기타로, 미키 기요시 등이 선도한 형이전학(形而前學prophysik적)95) 시기 95) 이 prophysik은 말 그대로 자연학physik 이전의 영역을 지칭한다. 서인식은 니시다의 객체와 주체 분
화 이전의 경험론을 염두에 둔 듯하다. 다시 말해, 여기서 서인식이 말하는 physik란, 자연학physics이
나 형이상학形而上學, 즉 形을 초월한 사유가 아니라, 형화形化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하지만 形化
- 97 - 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1930년대의 세계적 위기 속에서 딜타이의 인식론적 접근을 안 일한 것으로 평가하여 역사학을 존재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는 헤겔과도 단절하여 합리적 법칙의 탐구를 포기하고, 베르그송의 生의 철학과 같이 유동적이고 비연속적인 측면에서 현재적 개성을 찾는 데 주력한다. 그러나 서인식은 이 세 가지 접근법 가운데 어느 하나에도 전적으로 동조하지 않으며, 모두에 대해 유보적 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역사철학적 토론이 전개되는 지반의 저변 에는 보다 근본적이면서 아직 해소되지 않은 문제가 깔려있다. 이른바 칸트 이래 지속 되어 온 자연과 역사 사이의 긴장이다.
주지하다시피, 칸트는 객관적 앎의 가능성을 유한한 시공간이라는 인간의 보편 적 존재 조건, 즉 선험적(a priori) 영역에 귀속시킴으로써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을 완 성했다. 그 결과 객체의 영역은 보편적이고 비시간적인 인과관계의 지배를 받는 영역으 로 규정되었고, 이는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주체의 영역, 즉 역사의 영역과 대비되었다. 다시 말해 칸트는 자연을 인과법칙에 의해 규정되는 필연의 세계로 파악함으로써, 자연 대 역사라는 이분법을 고착화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서인식은 칸트가 상정한 자연의 비역사성의 정당성이 20세기 과학적 발견들에 의해 부식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으 로 다윈의 진화론이나 천문학의 진보는 별과 생명체 역시 고유한 역사성을 지니고 시 시각각 변화한다는 점을 보여주었고, 이로써 자연이 시간 초월적인 보편적 존재 조건으 로 기능한다는 전제는 설득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행태에도 일 정한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이 발견될 수 있었다. 이렇게, 자연만을 필연성의 성역으로 설정하고 역사를 무질서의 영역으로 분리하는 칸트적 구도는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다 는 것이다. 인간적 규범성과 물화학적 자연성이 서로 교차하는 부분이 존재하고, 그 교 차 지점이 인간 역사의 존재 양식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상품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객체인 동시에, 그 가치가 노동이나 (노동가치론) 경제과학의 수 리적 법칙(시장주의: 수요와 공급 가치론)에 의해 규정되는 실체적 모습을 갖고 있지 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사회의 감성이라는 매개를 통해야지만 가치를 갖는다는 규범적 차원 역시 갖고 있다. 이렇듯 서인식의 중심적 과제는 칸트가 분리해낸 자연의 필연성과 역사의 우연성을 결합시키는데 있었다. “현대의 세계사적 의의”(1939)에서 그 는 말한다.96)
역사가 가능과 우연, 필연과 우연의 통일이라 하는 말은, 그가 곧 우연의 계기(繼起97))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미에 있어서 역사는 또한 운명이다. 그러나 역사가
우연의 계기라 하는 말은 결코 그의 필연성을 부정함은 아니다. 필연이란 우연 아닌 그
무엇이 아니라 우연의 총화(總和)가 곧 필연이다. 역사적 현실은 그 개개에 있어서는 우
연이나 전계열(全系列)로서는 필연이다. 필연은 이방 개개의 우연에 대립하면서도 또한
되기 이전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주체로서의 역사를 통로로 하고, 객체로서의 역
사에 도달하려는 것이 현대 역사의식이 노리는 里程이다.”
96) 홍종욱, 식민지/근대 초극 연구회, 식민지 지식인의 근대 초극론, “現代의 世界史的 意義“, 2017 97) 契機가 아닌 繼起이다. “繼起“는 Succession, 즉 잇따라 일어남 또는 연이어 발생함을 뜻한다.
- 98 - 그들 제우연(諸偶然)을 자기실현의 제계기(諸契機)로 통일하여 가지고 그들의 전계기과
정(全繼起過程)을 통하여 자기의 철칙(鐵則)을 관철하는 법이다. (...) 그러나 우연을 필
연으로 전화하고 필연을 현실로 구현하는 것은 인간의 능동적 행동뿐이다. (...) 이러한
고난에 찬 행위가 없는 한 필연도 우연으로 전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서인식이 교토학파의 진단에 그토록 불만족스러워했던 이유를 이 해할 수 있다. 서인식은 중일전쟁을 16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시기를 끝맺고 새 로운 세계사적 국면을 여는 중대한 변곡점이라고 파악했다. 나아가 그는 “우연을 필연 으로 전화하고 필연을 현실로 구현하는 것이 인간의 능동적 행위뿐”이라는 확신을 지니 고 있었다. 이 점에서 서인식과 근대초극론은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그가 자신이 속한 세계사적 시대의 핵심 원리로 파악한 것, 그리고 그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은 근대초극 론자들과 결을 달리했다. 근대초극론자들 역시 자유주의를 문제 삼았지만, 그것은 어디 까지나 근대 유럽의 몇 가지 특징을 본질화한 데 그쳤다. 이들은 일본이 세계사적 의의 가 전환하는 시점을 목격하고, 그것이 변곡점임을 사실을 “자각”함으로써 세계사의 피 동적 수반자가 아닌 능동적 행위자가 될 수 있으리라 여겼다. “도의적 생명력“이라는 표어로 함축된 한정된 민족 공동체로서의 자각은, 세계사의 주체가 특정될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 가능한 것이었다. 이처럼 근대초극론자들에게 문화가 민족국가를 구성하는 기층을 이루었던 것과 달리, 서인식에게 ”문화“란 특수한 ”민족“이나 ”국가 “에 귀속되는 민족문화와, 보편적인 ”계층성”에 귀속되는 인류문화(人類文化) 내지 일 반문화(一般文化)로 양분되는 개념이었다. 그는 ”문화의 유형“을 논하며 계층문화와 민 족문화를 다음과 같이 유형화한다.98)
오늘날의 세계문화는 횡단(橫斷)하여 놓고 보면 두 낱 이하의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종관(縱貫)하여 보면 두 낱 이상의 민족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한 낱의 시대
문화로서는 이른바 시민문화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시민계급의 관념형태로서의 동일한
성격을 갖고 있으나 민족문화로서는 제 각기 상이한 전통적 차별성을 갖고 있다. (...) 현
대의 시민문화 속에서도 감성적, 지성적 불란서문화와 정신적, 신비적인 독일문화를 구별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시대문화 속에서 제다(諸多)의 민족문화를 구별할 수 있는 반대로
또한 한 민족문화 속에서도 그 역사적 성격을 달리하는 제다의 시대문화를 발견할 수 있
다. 같은 ”일본문화“ 속에서도 고대의 덴죠비토(殿上)문화와 중세의 무인문화와 근세의
쵸닌(町人)문화99)를 구별할 수 있으며, 또 조선서도 신라의 화랑문화, 고려의 승려문화,
이조의 양반문화를 구별할 수 있다. 그러면 문화의 계층성과 민족성은 각각 어떠한 지반
우에서 형성되는 것이며 문화의 발전행정에 있어서 서로 어떠한 연관을 갖고 있는가?
이후 서인식은 각 특수 문화 역시 본질적으로는 역사적 발전의 보편 원리에 착 근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을 가한다. 서인식은 각 국가 간 상이한 민족 문화의 특수성이 사실상 외피에 불과하고, 근본적인 것은 계층이라고 역설하는 듯 보인다.
98) 서인식 전집, 歷史와 文化, “문화의 유형과 단계”, 역락, 2006
99) 殿上과 町人의 의미에 대해서는 홍종욱, 식민지/근대 초극 연구회(2017)을 참고
- 99 - 한 시대의 문화형태는 그 시대의 사회생활의 특수한 구조를 반영하는 만큼, 그 사회를
콘트롤하는 사회성층(社會成層)의 생활의욕(生活意慾)이 그 시대의 문화에 대해서 결정
적인 의의를 차지할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 문화사의 발전행정을 시대사적으로 (...)
노늘 수 있다면 우리는 또한 그것을 계층을 기준하고 (...) 일계열(一系列)의 표식을 부쳐
서 역사제단계(歷史諸段階)에 배열할 수 있다. 그런데 계층성이 그의 발전제단계를 구별
하는 반대로 문화의 민족성은 그의 정신적 유형을 표시하는 표식밖에 더 될 것이 없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민족성과 계층성 역시 지금은 안티노미의 관계에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헤겔적 변증법의 합(合, synthesis)으로 초월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만일 승의(勝義)의 문화란 원래 이론이성의 산물로서 그 대응주체로서는 보편개성을 전제
하며 그 발전동향에 있어서는 세계를 지향함을 알 수 있지 않는가? 문화의 문화성을 결
정하는 표식은 인간성을 완전히 이탈한 객관성, 합리성, 보편성에 있는 것이다. 표현제형
식(表現諸形式)은 신화, 언어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지행(知行)이 분리하기 이전의 정의
표현형태로서 개념성이 말하자면 상징성 속에 수면(睡眠)하고 있지만, 문화제형식은 수리
나 과학에서 볼 수 있듯이 지행 분리 이후의 지성의 개념적 구성의 산물이다. 전자가 생
대생(生對生)의 공동유대로서 사회생활의 주체적 측면을 형성하는 만큼 생에 부착하는 주
관성을 탈각할 수 없지만, 후자는 지성의 대상화를 걸쳐서 구성되는 만큼 생에서 완전히
이탈하여 독자의 객관성을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승의의 문화는 보편개성 즉 의식일반을
전제하고서만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승의의 문화가 그 대응주체로서 의식일반
즉 이성일반을 전제한다면 문화가 그 본질에 있어서 세계성 즉 보편성을 요청하고 지향할
것은 두말할 것 없다. 그런데 보편개성은 구체적 개성이 아니고 개성일반이며, 이성인간은
구체적 인간이 아니고 인간일반이다. 인간=개성이라 하는 것은 단순히 이성의 허수아비가
아니고 이성과 함께 정의(情意)를 가진 것이다. 단순히 추상적 존재가 아니고 역사적 사
회적 존재이다. (...) 민족이 가족과 함께 공동사회의 범주에 속하며 계층이 개인과 함께
이익사회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은 [오늘날의 정설이다]. (...) 전자는 개인을 사회유기체의
일분지(一分肢)로서 흡수하는 유기체적 원리에 의하여 형성되는 법이며, 후자는 사회가
개인의 산술, 총화로서 결합되는 원자론적 원리에 의하여 구성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공동사회는 개인의 매개를 걸치지 않은 직접적 전체성의 원리에 입각한 전체주의사회이
며, 이익사회는 개인에 매개만 된 추상적 보편성의 원리에 입각한 개인주의사회이다.
이 지극히 난해한 문단은 세 층위로 나누어 독해할 수 있다. 첫째, 앞서 언급했 듯이 문화는 기본적으로 보편적이다. 이것은 문화적 원리이다. 언뜻 이는 서인식이 특 수한 정치체를 지양하고 세계적 일통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는 지금까지 특수적 문화의 구성방식에 애로가 있었음을 파악하고, 그것을 보 편적 원칙에 입각하여 재구성하자는 주장이다. 둘째, 문화는 두 형식을 띈다. 신화나 언 어와 같은 특수적 요소는 ”표현제형식“으로서 공동체적인 삶과 연결되어 있고, 주관적 요소가 강하다. 반면 수리나 과학과 같은 요소는 인간성과 삶에서 완전히 탈각되어 있 고, 독자적 객관성을 갖는다. 셋째, 하지만 인간의 문화는 인간성에서 완전히 탈각된 보
- 100 - 편적 추상성 위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구체적 인간이란 감정과 의지를 가진 존재고, 따 라서 인간은 ”보편적으로 구체적인 역사성“의 산물이다. 기존의 사회 구성 원리는 ”개 인을 사회유기체가 흡수“해버리는 사회와 ”원자론적 원리“에 의하여 구성되는 ”개인의 산술[적 합]”인 사회, 이 두 가지였는데, 서인식에게 이 둘은 모두 초극해야 할 대상이 다. 참고로 이 두 사회 유형은 각각 페르디난트 퇴니스(Ferdinand Tönnies)의 게젤샤프 트(이익사회)와 게마인샤프트(공동/유기체사회)에 대응한다.
2.특수성과 일반성, 그리고 자연성과 일반성의 매개로써 노동
위에서와 같이, 서인식의 문제의식의 출발점이 일견 무질서해 보이는 역사와 필연적인 자연이 상이한 이해 방식, 나아가 구조 논리를 갖고 있었다는 것에 주목했다. 서인식이 자연적 필연성과 역사적 우연성의 긴장을 해소하는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이를 위해 먼저 지성이 자연성과 역사성 사이에 어떻게 위치하는지를 논한다.100) 주지하다시피, 마르크스주의 사회 이론에서는 사상적인 상부구조가 물질적인 하부구조 와 상부상조의 관계를 맺는다. 다시 말해, 이데올로기, 즉 지성과 문화로 규정될 수 있 는 상부구조가, 생산수단이나 생산관계 등이 포함된 하부구조가 유지될 수 있게 도와주 는 반면, 하부구조는 상부구조를 조직하는 조건이다. 카를 만하임의 지식사회학 역시 이러한 도식 속에서 역사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101) 몽상가들의 유토피아는 현 존 질서를 넘어서는 질서를 상상하고, 그 혁명적 상상을 통해 기존 이데올로기를 초극 하지만, 종국적으로는 그 유토피아가 다시 이데올로기로 전락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따 라서, 역사적 전개과정에서 지성의 영역은 이러한 변증법을 통해서 추동된다는 것이다.
서인식에게 역시 계몽주의적인 시대초월적이고 보편 적용 가능한 과학에 대해 서 비판적이다. 그는 “인간의 인식의 방법과 구조가 사회와 민족, 신분과 계급이 다른 데 따라 적든 크든 각각 상이하다”고 웅변하며, 또 “지성의 운동이란 노동의 운동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모든 지성은 특수한 노동양식에 얽매이기 때문에, “절대로 합리적인 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나아가 우리가 고대 희랍인들 과도, 독일인들과도 감성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한 것을 보아 노동양식과 시대의 변화로 인해 단절된다거나, 완전한 상대주의로 환원하진 않지만, 단지 일반성이 시대에 묻어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그 노동양식이 합리적인 한에서만 합리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나 칸트의 지성이 오늘날까지도 불멸의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은 그 속에
지성으로서의 합리성, 일반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지성의 일반성은 직접으로든 간
접으로든 사회체제의 하부구조에 있어서의 생산과정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
기서 아리스토텔레스나 칸트의 지성이 지성으로서의 일반성을 가지면서도 특수성을 가지
며 합리성을 가지면서도 비합리성을 가짐을 알 수 있다. 절대로 비합리적인 지성도 없거
니와 절대로 합리적인 지성도 없는 것이다. 일정한 노동양식은 일정한 기술적 기초 위에
서는 노동의 일반적 특성과 일치하는 만큼 합리성을 가지나 기술적 기초가 변하면 노동 100) 서인식 전집, 歷史와 文化, “‘지성’의 자연성과 역사성”, p.30, 역락, 2006
101) Karl Mannheim, Ideology and Utopia: An introduction to the Sociology of Knowledge, 1936
- 101 - 의 일반적 특성과 배치되는 비합리적인 것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는 기존 상부구조-하부구조 도식에 머무르지 않고, 이 마르크스주의 적 도식을 넘어서면서 노동을 자연과 역사를 매개하는 궁극적 중간자로 위치 짓는다. 기존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지성과 이데올로기를 물질적인 하부구조에 조직되는 파생물 또는 현상 정도로 파악했다면, 서인식은 상부구조의 내적 상호작용에 천착한다. 한편으 로, 지성이 생산구조라는 준準자연적 요소에 배태되어 있지만, 그 외에도 역사성이라는 추가적 제약 조건이 지성의 운동 궤도를 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서인식에게 지성 은 부유초처럼 자유롭게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역사성이라는 두 제약 조건에 한정되어 운동한다. 그는 이에 어부의 예를 든다.
인간이 자연과 관계하는 것은 그 동기는 사회에 있으나 그 행동은 자연에 순응하지 않을
수 없다. 고기를 잡는 동기는 예하면 현대 노동자에게는 화폐획득에 있고 중세 농민에게
는 자가수요에 있을는지 모르나 고기잡는 데는 고기의 습성, 즉 노동대상의 자연적 성질
을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은 서로 다를 것이 없다. 그러므로 지성은 생산노동과
결합된 확도가 크면 클수록 사회로부터 제약되는 확도는 적다고 볼 수 있다.
요약하자면, 서인식은 노동이 자연성과 역사성의 대립에서 매개체로 지목하고 있다. 마치 어부가 고기를 잡을 때 고기의 습성이라는 조건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지 만, 사회와 그 규범이 변함에 따라 어부는 고래의 자급자족이라는 목표로 고기를 잡는 것에서 화폐획득을 위하여 고기를 잡는 동인이 변했다. 그런데, 문화는 어떤 구조를 갖 고 있고, 노동과의 관계는 어떠할까?
문화의 자연성과 역사성은 인간존재의 자연성과 역사성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과를 결합하여 두 낱
존재양식의 교차점을 이루고 있는 생산노동의 역사성과 자연성에서 유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인간의 노동과정(勞動過程)을 전인류과정(全人類過程)을 관통하여 그 기저를
이루는 추상적, 자연사적 과정으로 볼 때에 그에 대응하는 것이 문명이며, 그와 반대로
인간의 노동과정을 개개의 사회형태에 따라 생산양식을 달리하는 구체적, 사회사적 과정
으로 볼 때에 그에 대응하는 것이 문화이다.
서인식은 결론을 내린다. 지성은 노동에 배태된 것이고, 노동은 자연성과 역사성을 매개한다. 그럼에도, 지성은 어떠한 특수한 생산양식 속에서 내적 합리성을 갖는다. 이를 전(全)과 개(個)에 비유하자면, 자연적 전체성과 역사적 개체성이 동시에 존재 의의를 획득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문화의 운동형식은 문명이 구체화되어 그 사회 의 규범을 체화한 것이다. 그럼에도, 문화가 문화로써 존속하려면, 문명의 일반성을 체현해 야만 문화로써 존속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일반성과 특수성의 동학에서 서인식의 대 동아공영권에 대한 비판이, 그리고 個와 全이 동시에 살 수 있는 방식이 이해될 수 있다.
- 102 - 3.無의 논리에서 多의 논리로: 個 대 全의 구도를 넘어서
서인식의 역사철학적 논리는 헤겔-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전개 방식을 따른다. 자연성과 역사성을 안티노미(antinomy)를 노동이 해결하는 식의 정반합(正反合)의 논리다. 풀어 서 말하자면, 자연성의 원리와 역사성의 원리는 둘 다 참이지만 상호긴장 관계에 있다. 한편으로, 인간은 물질적 제약 속에 위치하기에 “인간의 행동 양태는 물질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자연성의 원리를 따른다 (正, thesis).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단순 자연물이 아니라 문화, 제도 등에 의해서 형성되는 존재이기에, “인간은 역사를 만든다 “는 역사성의 원리 역시 따른다 (反, antithesis). 이 두 상충되고 모순되는 원리를 해결 해주는 요소가 바로 노동(合, synthesis)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1940년대의 미래적 지평을 서인식이 그리는 역사철학은 어떤 변증법으로 사유되었을까? 서인식은 자유주의(리베랄리즘)와 전체주의를 두 가지 적으로 지목한다. 자유주의가 세계성은 있으나 계층성이 없는 안이라면, 전체주의는 세 계를 통일해나가는 계층문화를 민족주의라는 지역문화에 종속시켜 세계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재래의 리베랄리즘의 사관을 인류사관이라 말하고, 쏘시알리즘의 사관을 계
급사관이라 말한다면, 전체주의 사관은 인종사관 또는 민족사관이라고 말할 수 없을까?
(...) 전체주의가 말하는 “부분에 앞서는 전체”란 끝까지 민족과 그를 대표하는 국가이
다.102)
여기서 그가 나치스와 이탈리아와 더불어 일본을 파시스트 정권의 일례로 열거 하고 있지 않지만, 그가 우려하는 것이 일본이라는 점을 다음 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현대일본의 세계사적 과제를 동양을 서양으로부터 해방하는 데 둔다.
그러나 서양으로부터 동양의 해방 그 자체가 곧 세계사적 의의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서
양으로부터 동양을 해방하는 것도 단순한 사실로서는 동양을 서양에 예속시키던 사실이나
다를 것 없이 한낱의 흥망사적 사실밖에 될 것이 없다. 그러나 (...) 동양의 해방도 오늘날
세계사의 현대적 과제와 내면적 연관을 갖고 수성될 수 있다면 그는 물론 세게사적 의의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오늘날 세계사의 내면적 구조연관을 통찰한다면 누구나 캐피털리
즘 문제와의 실천적 연관을 [할 수 있다].103)
서인식이 보기에 일견 대립하는 듯 보이는 두 이데올로기 – 또는 서인식의 표 현을 빌리자면, “역사문화”가 - 그 기본에 있어서는 상당히 유사한 양식을 띠고 있었 다. 전체주의 문화와 자유주의 문화가 똑같이 문화구성의 단위를 민족에 두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다만 차이는 전체주의가 민족을 최우선으로 두는 국민주의 문화라면, 자유주 의는 개인을 최우선으로 하는 개인주의 문화라는 것이 문제점이었다. 서인식은 “리베랄 102) 서인식 전집, 1편 歷史와 文化, “전체주의 역사관”, p.165, 166, 역락, 2006 103) Ibid. “현대의 과제(2)”, p.150
- 103 - 리즘은 개인을 개성 일반 (...)으로 정립하고 민족을 개인의 단순한 산술적 총화로 이해 하지만 전체주의는 민족을 불가분의 유기적 개체로 정립하고 개인은 민족=정치를 매개 하고서만 존재할 수 있는 단순한 지체로밖에 더 안 본다.” 이렇듯, 기존 보편지향주의 적이었던 자유주의와 전체주의가 민족이라는 특수문화로 분화하면서 종래 달성하고자 했던 목적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었다. 서인식이 이에 제안하는 방안은 바로 민족성에서 계층성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이 계층 문화는 종국적으로 개별문화의 한계를 극복하 고 보편주의적인 세계 문명을 낳는 단계로 기능할 것이었다.
따라서 서인식에게 세계성을 이어주는 중간자가 계층성이다. 개와 전의 입장에 서 본다면, 서인식의 문제의식은 니시다 기타로와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역시 전체와 개인을 매개하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그의 전체란 단순히 다원에만 머물러 있 는 것이 아니라, 사각지대에 해당하는 주변부까지 포함할 수 있어야 비로소 전체가 되 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너무나도 보편적이고, 주체와 대상의 경계를 없애면서 모든 것 을 같은 경험 안으로 통일시켜버리는 절대 무보다는, 개를 살리면서 전으로 가는 것을 택했다. 그는 사회주의의 도래로 인해 세계성의 도달이 임박했다고 인식했으며, 바로 이 세계적 보편성을 갖고 있는 계층성이 개와 전체를 연결시켜줄 수 있는 매개라고 인 식했다. 타나베 하지메나 근대 초극론에서 “전체”와 “개체”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역사 적 현대를 추동하는 종(種), 즉 문화로 정의된 민족국가였다면, 서인식에게 매개체는 “계층”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적 현재가 그 어떠한 전형기에 있어서든 다양한 가능성의 혼돈한 투장이라는 것은 곧
다양한 가능적 미래가 현재의 속에 병립 또는 대립적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역사적 현재는 일의적 다방향적이기보다도 도리어 다의적 방향적의 것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 현재가 미래에의 동향에 있어서 시사하는 제다
의 가능성은 그 존재 연관에서 볼 때에는 ‘현대 역사’를 구성하는 사회 제 성층을 기초로
하고 그들의 ‘이데올로기’로서 발현하는 것이며 의미 연관에서 볼 때에는 현대 역사에 내
포된 역사 제 시대의 문화 제 성층을 기초로 하고 그들 제 성층의 각양각색의 신결합에
의한 새로운 ‘뮤토쓰’ 혹은 ‘유토피아’로서 발현하는 것이다. (...) 구체적인 문화는 늘 계
층문화였다. 그 의미에 있어서 민족과 세계, 자연과 이념을 역사에 매개하는 것은 계층이
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익사회는 이념으로서는 보편개성을 요청하면서도 존재로서는
계층적 조성(組成)을 가젔다면, 그는 또한 세계구조에 있어서 이념으로서는 도처가 중심
이 될 수 있는 원자론적 세계를 요청하나 사실에 있어서는 중심과 주위가 지배와 귀속의
관계를 일우지 않을 수 없다. 문화에는 원래 국경이 없는 법이다.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
족의 자유로운 교환이 문화로 형성하나, 정치는 다중심을 불허한다.104) (...) 그러나 그것
은 단순한 공동사회가 될 수 없다. 단순한 공동사회는 직접적인 전체노동을 기초로 한 것
으로 직접적 전체성의 원리에 입각한 세계이나, 이것은 매개적인 전체노동을 기초로 하는
것으로, 개인에 앞서면서도 또한 개인에 매개되는 매개적 전체성의 원리를 요구하는 것이
기 때문이다. 단순한 공동사회가 개인없는 전체사회이며 단순한 이익사회가 전체없는 개
인 결합임에 반하여, 이것은 개인에 매개된 전체, 전체에 매개된 개인을 요구하게 된다. 104) Ibid. “문화의 유형과 단계”, p.218
- 104 - 이러한 계층성은 단지 구체적인 문화라는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이론적 도구가 아니라, 실제 구성원들의 행복과 직결된 것이었다. 서인식은 전(全)이 존재할 수 있는 전제로 개(個)의 행복을 내세운다.
인간과 사회, 내재와 초월의 통일은 내재가 그대로 곧 초월이고 초월이 그대로 곧 내재
될 수 있는 장소, 개인이 그대로 곧 사회이고 사회가 그대로 개인이 될 수 있는 사회 상
태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다가 그대로 곧 하나가 아니고, 하나가 그대로 곧 다가 될
수 있는 세계, 한 사람의 행복이 만 사람의 그것을 전제하고 만 사람의 행복이 곧 한 사
람의 그것이 될 수 있는 사회에서만 현대 인간의 상극하는 양면을 새로운 통일로 인상할
수 있을 것이다.105)
이렇게 그에게는 개와 전과의 공생 관계가 선제 조건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서인식은 일본이 이러한 질서를 만들 능력이 있다고 보았을까? 서인식은 이 후 그는 구라파 문명이 쇠퇴해가고 있음은 기정사실이며, “구주 제국이 장내의 상잔을 되풀이하는 것이 구몰의 운명을 최촉하기 쉬운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렇기에 그들도 지금까지 가지가지로 전쟁의 위기를 당할 때마다 오로지 양보를 거듭하 면서 국면의 파탄을 미봉하여 온 것이다”고 주장한다. 즉, 2차 대전을 하나의 필연이자, 유럽의 세력 균형 기반 질서가 한계에 도달하여 새로운 질서를 요구한다는 진단은 근 대 초극론의 그것과 동일하다. 물론, 여기서 일본이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주체가 되 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이후의 새로운 질서를 예측하기 위해 그는 구 주문화의 발전 과정을 도식적으로 설명하여, 거기서 구라파 붕괴 원인을 찾으려고 한 다. 이 부분은 고야마 이와오의 논의와 거의 동일하다. 중세의 신의 후퇴로 근대 사회 가 발생했고, 다시 기계론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개개인에 의하여 조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자의로부터 독립하여 한낱의 절대적 필요물로 소여되는 것이다. 사회가 자동적 메카니즘으로 전화하였다는 것은 인간이 사회의 주체의 지위에 서 허수아비의 지위로 전락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고야마 이와오가 말하는 정신 적 위기는 현실이지만, 일본이 그런 것을 수행할 수 있는 현실적 능력이 부족할뿐더러, 사상적 자원 역시 모자라다는 것이다.
현대의 혼란을 극복할 원리는 어디 가서 찾아야 할까? 사람에 따라서는 동양의 원리에서 구
주 재흥의 정신적 근거를 찾을는지 모른다. 허나 동양의 형이상학적 세계는 피로한 정신의
은유처는 될망정 아직까지는 착잡한 현실을 정리할 무기를 제공하기 어렵다. 구라파 부흥의
원리는 구라파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 즉, 현대 구라파의 파탄이 인간이 제작한 사회
가 인간을 초절한 자동적 기계로 전화한 데 있다면, 그 파탄을 구제하는 것은 일단 초절하
였던 사회를 다시 내재화시킬 수 있는 원리가 아니면 안 될 것이다.
105) 차승기, 정종현, 서인식 전집, 신문, 잡지편, “제2차 대전을 해부한다”, p.84, 역락, 2006
- 105 - 나아가 그는 일본이 제시하는 과제로써 동양과 서양의 대립을 단지 뮤토스, 즉 외 형적인 문제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시대 분리를 제안하고 있다.
그러면 세계사적 현대의 시간적 내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 세계의 원리로서의 캐피탈
리즘이었다. (...) 세계사의 현대적 과제를 캐피탈리즘의 문제라 하면, 그의 근대적 과제는 포
이달리즘의 문제였다. (...) 오늘날 제창하는 사상적 원리로서의 동아협동이론도 그것이 단순
한 동양적 뮤토스로서 [논의된다].106)
IV. 결론
본 논문은 근대 초극론과 서인식이 주목한 근대의 문제의식, 그리고 근대를 초 극하기 위해 제시된 역사철학적 구상을 살펴보았다. 교토학파가 직면한 핵심 문제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래 적극적으로 모방·수입해 온 유럽적 근대가 차츰 그 내적 모순 을 노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착수한 작업은 두 방향으로 전개되었 다. 한편으로는 일본 정신의 심층에까지 침투한 근대성의 본질을 규명하고 일본 사회가 그로 인해 붕괴하지 않도록 이를 “정화”하는 작업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럽 중심의 세계화가 산출한 전례 없는 차원의 세계성에 대한 대응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좌담회의 논자들에 따르면, 유럽 정신이 내포한 모순은 개인주의적이고 수동적인 인간 상을 낳음으로써 궁극적으로 도덕적 상실을 초래하였다. 이에 더해 근대 초극론 좌담회 는, 유럽적 근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된 것은 르네상스 즈음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초극 해야 할 대상은 유럽의 역사 구조 자체임을 역설했다. 고야마 이와오가 강조했듯이, 실 체적 유(有)의 자기모순을 부정하며 전진하는 역사학은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한 유럽 정신구조의 필연적인 귀결이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일본은 오직 서양적 유(有)에 대 비된 동양적 무(無)의 철학을 통해서만 이 순환적 굴레를 종결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 다. 그리고 이 세계사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선행 조건으로 도의적 생명력이 요구되 었는데, 좌담회 논자들은 일본이야말로 그러한 도의적 생명력을 보유한 유일한 국가라 고 자임했다. 근대 초극론이 이처럼 국가주의적 결론으로 귀결되면서, 최종적으로 공영 권이라는 독특한 공간 개념이 산출되었다. 태평양 전쟁으로 인한 총력전 체제는 새로운 공간 운용 방식을 요구했고, 근대 초극론은 정신적 우월성을 보유한 일본이 인접 국가 들을 지도·조직해야 한다고 웅변했다.
다른 한편, 서인식은 일반성을 함축하는 자연성과 특수성을 의미하는 역사성을 헤겔적 변증법 속에서 서로 대립하는 안티노미이자 초극해야 할 대상으로 읽었다. 민족 과 세계, 전체와 개체, 공동사회와 이익사회 같은 여타의 대립항들은 모두 이 근본적 대립에서 파생되는 것이었다. 서인식은 중일전쟁을 새로운 세계사적 변화를 예고하는 중대한 사건으로 파악했는데, 이 새로운 시대에 세계사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일본의 지 성계가 제출한 “협동주의”와 “대동아공영권”은, 초극을 표방하면서도 위의 안티노미를 106) Ibid. p.152
- 106 -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못하는 제한적 해법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에게 당대의 가장 근 본적인 문제는 보편과 특수의 대립이었고, 캐피털리즘의 모순은 그 증상으로 표출되는 것이었다. 식민지의 사회주의자 지식인으로서 그는 중심에 의해 주변의 주체성이 희생 되는 상황에 불만을 품었지만, 동시에 보편주의가 지닌 뿌리칠 수 없는 매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음은 그의 글에서 자명하게 드러난다. 아울러 그는 노동 양식의 통합을 매개로 한 계층적 세계성의 도래가 임박했다고 전망하면서, 그 속에서 특수성이 어떠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가 도달한 결론은, 전체가 지속 가능하려면 이 근본 모순, 즉 보편의 법칙에 의해 구성되면서도 그것으로 환원되 지 않는 특수를 유지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그는 전(全)이 성 립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개(個)를 내세움으로써, 개를 전체 속에 융화시켜 버리는 근 대 초극론의 모순을 폭로하고자 했다.
- 107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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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 - 구, 9, 43-71, 2008
- 109 - <다음 기수를 위한 사랑방 25기의 답사 준비 꿀팁> 교통
규슈는 너무 넓어서 택시로 이동하기에 부담이 있고 버스나 대중교통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후쿠오카 공항에서 시내 호텔까지는 공항버스로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첫날에는 차량을 빌리지 않았습니다. 후쿠오카 공항-시내행 버스표는 공항에서 직접 구 매했지만, 23기는 https://www.highwaybus.com/gp/index를 통해서 미리 부킹했다고 합니다. 저희는 총 6인(교수님 포함)이었는데, 대중교통 요금과 택시 비용 차이가 크지 않아 그때 그때 2대의 택시로 이동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관람을 마친 후에 길거리 에서 바로 택시를 잡거나 우버를 사용했는데, 택시를 더 빠르게 잡는 방법(현지 앱?)이 있다면 미리 알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버스 대절은 큐큐국제여행사 (https://qqtour.com/en/japan/van-6/.)를 이용했습니다. 저희 버스 기사님이 일본어만 가능하셨지만, 기사님마다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버스 견적을 받기 위해서는 사전 에 상세 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여행계획서를 미리 작성하고 업체와 연락하 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벤의 기본 예약 시간이 하루 8시간(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었고 추가 요금이 시간당 5,000엔 가량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산과 일정을 짤 때 미 리 고려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비용 정산 방법
저희는 카카오뱅크 모임통장(공동계좌)와, 개인카드 사용 후 정산하는 두 방법을 택했 습니다. 카카오뱅크 경우에는, 버스 예약금은 인원수로 N분의 1로 하고, 교수님 지상공 비는 EAI가 모임통장에 지급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나머지 현지 일비는 학생 한 명이 선결제하고 여행 이후에 N분했는데, 이를 위해선 여행 이후에 예산을 다시 다 정리해 야 해서, 처음부터 모임통장에 여행 비용을 예치해두고 체크카드로 결제하는 방식이 더 편리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타 팁
l 출발하기 전에 Visit Japan Web, eSIM/로밍을 먼저 등록하면 좋습니다.
l 음식점은 타베로그(https://tabelog.com/kr/)와 구글에서 평점을 확인한 뒤 예약했습
니다.
l 자유시간에는 돈키호테, 텐진 지하상가 등을 방문했는데, 둘 다 구경할 것이 많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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