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세기 동인도회사(VOC)와 동양의 만남: 도자기 무역의 국제정치학 아리타 도자기박물관/궁전
복합의 눈으로 재구성한 동아시아의 과거와 미래 : 사랑방의 젊은 그들 규슈를 품다
정다연 · 고려대학교
들어가며
도자기는 한 시기의 정치, 경제, 문화, 기술 분야 특징을 집약하여 보여주는 상품이다. 우리는 당대 도자기를 이용하는 계층별 사용법, 도자기 디자인, 거래 방식 등에서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다. 도자기에 대한 선행연구는 고고학적, 미학적 시각에서 분석되거나 도자기 공학, 도자사 시각에서 주로 분석되었다. 무역 시각에서는 각 분과학문 관점에서 부분적으로 분석되었다. 국제정치경제적으로는 동아시아 질서 변동과 기술 문화전파에 대한 연구는 무역사의 관점에서 도자기라는 재화가 어떻게 교류되었고, 세계적으로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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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포하였는지에 초점을 맞춘 연구들이 많다.
17 세기 동인도회사(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VOC)와 동양, 즉 중국의 경덕진(景德鎭)과 일본의 나가사키(長崎県), 4. 17 세기 동인도회사(VOC)와 동양의 만남: 도자기 무역의 국제정치학_아리타 도자기박물관/궁전 이마리(伊万里)가 도자기를 매개로 했던 만남을 다루고자 한다. 17 세기는 서양 종교전쟁과 동양 명청 교체기라는 사건을 통해 동서양의 역동성을 띄고 있다. 이 중 도자기 무역은 동양과 서양이 각자의 역동성을 소화해내며 동시에 만남을 어떻게 가졌는지에 대한 구체적 면모를 묘사한다. 동양이라는 공급자와 서양이라는 수요자가 초기 산업 활동에서 어떠한 거래 양상을 띄고 있었는지, 당대 최고 기술을 반영하는 도자기 기술이 동양에서 서양으로 어떻게 전파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기존 서양과 도자기 무역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중국이 명-청 교체라는 국내정치적 혼란기로 인해 그 지위를 놓쳤을 때, 동인도회사가 일본에 어떻게 접근하였고 일본은 그 기회를 어떻게 잡았는가에 대한 것이다.
다만, 도자기 무역에 대한 포괄적 추이가 아닌 대표적인 추이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동인도회사의 도자기 무역를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인 볼커(T. Volker) 의 자료와 동인도회사 다흐(Dagh) 문서(Registers)를 중심으로 자료를 분석하였는데, 당시 무역 규모의 일부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도자기 무역은 마닐라, 말라카, 시암에서도 상당한 규모로 이루어졌고, 중국 개인 상인들에 의해서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동인도회사와 동양과 도자기 무역을 통한 만남을 살펴보는 것이 유의미한 이유는 첫째, 세계화 시작단계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자기 무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17-18 세기 이후에는 전 세계적 차원에서 도자기 무역시장이 만들어졌다. 원거리 항로를 따라 아메리카 대륙 까지를 아우르는 전 지구적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둘째, 도자기를 통해 당시 정치경제적 환경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자기는 예술적 가치가 있는 상품일 뿐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기술 등의 요인이 만난 복합 상품이다. 셋째, 17 세기 시작된 동양의 근대적 거래 양상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17 세기 초반 일본은 쇄국 정책으로 국경을 폐쇄하고 외국과 교류를 엄격하게 제한한다. 하지만 일본은 나가사키를 열어 둠으로써 세계와의 교역의 여지를 남겨둔다. 특히 그 중 동인도회사와의 도자기 교역은 상당히 근대적인 거래 면모를 보인다. 17 세기 이전 중국과 서양이 도자기 무역을 하던 것과 비교할 때, 적극적인 소비자-생산자 관계를 맺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중국과 서양의 도자기 무역
중국식 도자기에 대한 유럽의 수요는 16 세기에 시작되어 네덜란드와 아시아가 만나게 되는 17 세기에 확연하다. 중국 요업지인 경덕진은 수세기 동안 세계 도자기 생산, 수출의 중심지였다. 경덕진에서의 도자기 생산은 이미 한나라 때부터 시작되었고, 송나라 시기에는 ‘청화백자매병’, 원, 명, 청 시기에는 ‘청화’를 생산하였다. 특히 우수한 품질의 자기인 청화는 궁궐에서 사용되는 고급 자기 4. 17 세기 동인도회사(VOC)와 동양의 만남: 도자기 무역의 국제정치학_아리타 도자기박물관/궁전 일종이었으며, 유럽, 이슬람권 등 해외 여러 나라에도 널리 수출되어 '차이나(China)'의 어원이 되었다.
그림 1. 청와백자매병
명나라 시기(1368-1644), 고급 도자기 생산량이 급증하였다. 명나라는 왕실 그릇 공급의 중심지가 되었고, 넘쳐나는 수출 시장의 수요량을 생산하였다. 경덕진은 명-청 교체기에 잠시 도자기 수출입을 닫았다. 하지만 청나라 시기(1644-1912)에 경덕진은 도자기 산업은 “황실 가마(imperial kilns)”이라고 불리며 재부흥하였다. 경덕진의 위상은 중국에서 도자기 기술을 배웠던 프랑스 신부 프랑수아 자비에르 당트르콜(François Xavier d'Entrecolles)의 말에서 알 수 있는데, 그는 “경덕진은 전 세계에 (도자기를) 혼자 보급하는 영광을 누린다 ”고 한 바 있다. 또한 17 세기경 경덕진에는 수천 개 가마가 존재했고 도공만 5 만 내지 6 만명에 달했다고 추정한다. 도공들은 가족과 스승–도제관계에 기초하여, 밀도 있는 집단을 이루어 도자기를 생산했다.
17 세기 이전까지 중국은 도자기의 유일한 공급자로서 도자기 무역에서 독점적 지위 누렸다. 그러나 17 세기에 중국 내부 정치적 혼란으로 주요 요업지인 경덕진의 수출 중단과 관요의 폐쇄, 새로운 소비시장으로서 유럽의 등장은 기존 도자기 무역 수급 구조에 균열을 가져왔다. 유럽이라는 소비자에게는 중국 도자기 생산 중단이 대체품을 적극적으로 찾는 유인으로 작용하면서 일본이라는 새로운 생산지의 등장과 수급 구조 다변화 양상이 나타나게 된다.
일본 도자기 기술의 배경과 동인도회사의 진출 과정
17 세기 이전 일본에는 도기를 만드는 전통가마는 존재했지만, 고급 도자인 백자를 만드는 고령토와 기술은 부재했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많은 조선 도공이 일본으로 유입되어 기여하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조선 도공 이삼평이 일본 도자기 산업의 기념비적인 인물로 남게 된다. 이삼평은 1616 년 아리타 이즈미야마(泉山)에서 백자를 만들 수 있는 고령토 광산을 발견하고 고온으로 자기를 굽는 가마를 만들게 된다. 이로써 일본은 백자를 생산하게 되고, 동인도회사의 수요를 맞출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다. 4. 17 세기 동인도회사(VOC)와 동양의 만남: 도자기 무역의 국제정치학_아리타 도자기박물관/궁전
특히 1658 년은 일본 도자기 무역의 중요한 기점으로 작용했다. 경덕진의 일시적 폐쇄는 일본 규슈, 특히 일본 도자기의 주요 생산지였던 아리타 도공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먼저, 일본과 동인도회사의 수평적인 거래 관계는 주목할만한 점이다. 동인도회사가 일본 쇼군에게 선물을 바치는 모습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쇼군이 받은 선물 항목 중 도자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 도자기는 중요한 해외 교역품이었고, 일본에서도 도자기는 주요 물품 8 가지 중 3 위에 있던 물품이었다(Van Dam). 이를 통해 일본 도자기 산업은 초기 단계에 있었지만, 동인도회사는 중국과의 무역을 대체하기 위한 방안으로 일본을 택했고, 일본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한 것은 물론이고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1640 년도부터는 일본에서 거래되는 중국의 도자기 량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점차 심화되다가, 1651 년이 일본 도자기 무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해가 되었다. 중국의 도자기 공급이 중단되고, 서양으로의 일본 도자기 공급이 시작된 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658-1659 년도를 기점으로 일본 도자기가 동인도회사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 시장으로 대량 수출이 시작되었다. 특히, 1659 년에 중국의 샤먼(廈門)으로 일본의 도자기가 대량 수출된 것은 주목할 만한 사건인데, 샤먼은 기존 중국 도자기 수출의 핵심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데지마의 기록(register)에서 동인도회사와 일본 거래의 근대적 모습을 알 수 있다. 기록에서는, “네덜란드 동인도 수도인 바타비아(Batavia)와의 첫 거래였기 때문에 다소 저렴한 가격으로 계약을 체결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한 일본과 동인도회사는 단순한 도자기 상품 무역을 떠나, 가격 조정, 디자인 요구 등의 구체적인 주문과 이를 수정 및 수락하는 방식을 취한다. 1655 년 데지마에서 출발하여 네덜란드령 포르모사에 도착한 선하증권(Bill of landing)에서 일본 자기 종류의 다변화 양상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에서 동인도회사로 작은 도자기 약병(small porcelain phials)이 수출되었는데, 기존 도자기의 형태, 용도와는 상이한 새로운 도자기 무역이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2. 자기 가운데 ‘VOC’가 새겨져 있는 17 세기 아리타 도자기
일본과 동인도회사의 활발한 무역에도 불구하고 위 시기를 동인도회사의 일본 진출과정으로 생각해야한다. 동서양의 도자기 무역에서 중국의 역할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1655 년 4. 17 세기 동인도회사(VOC)와 동양의 만남: 도자기 무역의 국제정치학_아리타 도자기박물관/궁전 나가사키 항구에 도착한 37 개의 중국 범선에서는 일본에서 혹은 일본으로 수출 혹은 수입된 도자기는 없었지만, 615 개의 도자기 물감(porcelain paint)이 일본으로 수입된 바를 알 수 있다. 또한 일본이 유일한 도자기 공급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1656 년 일본은 역설적으로 네덜란드에 “네모 모양으로 구워지고, 높이 6 인치 너비 4,5 인치 그리고 손잡이가 달려있는 네덜란드 도자기(Dutch earthenware)판매”를 요구한 바 있다.
일본과 동인도회사의 무역 과정: 1662~1682
1651 년, 일본 도자기가 서양에 수출되기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10 년 뒤인 1661 년부터 일본의 도자기 무역은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게 된다. 이전까지 일본 나가사키 항에서 서양으로 중저품 도자기만을 수출했던 것과는 달리, 일본은 동인도회사에 고급 황실 도자기를 판매하기 시작한다. 프랑스 신부 프랑수아 자비에르 당트르콜(François Xavier d'Entrecolles)의 말을 빌리자면, 고급 도자기를 혼자 보급하는 중국의 영광을 이제는 일본이 누리게 된 셈이다. 또한 1668 년부터 일본은 해외 도자기 국내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수입 전면 중단에는 도자기 뿐만이 아니라 도자기 제작을 위한 재료, 물감 등 모든 물품이 포함되었다.
일본의 독점적 지위는 1680 년대 경덕진이 정상화되면서 마무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17 세기 말~18 세기 초반 차이니즈 이마리(Chinese Imari) 양식이 유럽에서 유행한 것에서 일본 도자기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차이니즈 이마리는 유럽의 수요에 의해 중국 자기가 일본 자기를 모방한 양식이다.
그림 3. 차이니즈 이마리 양식의 도자기
일본의 도자기는 향후 유럽 도자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유럽 도자기 생산의 선발주자인 독일 마이센(Meißen)은 유럽 최초로 백자 생산에 성공한 바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일본 도자기, 특히 가키에몬(柿右衛門) 양식의 자기에 심취해있던 아우구스트 1 세의 집요한 투자와 관심에 의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4. 17 세기 동인도회사(VOC)와 동양의 만남: 도자기 무역의 국제정치학_아리타 도자기박물관/궁전
그림 4. 가키에몬 채색 호랑이 매화무늬 접시
마치며
17 세기의 도자기 무역 시장의 변화는 전체 도자사에서도 중요한 지점이었다. 주요 공급자였던 중국 내부 혼란으로 인해 도자기의 공급이 불안정해졌고, 새로운 수요자인 동인도회사가 도자기 시장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면서 구조적 공백이 발생하였다. 일본이 구조적 공백을 기회로 활용하면서 단기간 내 새로운 공급자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다만 중국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관리하는 관요와 더불어 인근의 민요까지 상당한 규모를 이루고 있던 것에 비해 일본은 고급 도자기 중심으로 요업지가 형성되었고 상대적으로 많은 물량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동인도회사가 종종 불평했듯이 그 시대의 일본 도공과 상인들이 도달하지 못하는 지점이었다. 그럼에도 일본 이마리 도자기는 일본이 도자생산의 후발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상품과 새로운 양식을 유행시킨 바 있다. 붉은색의 채색자기와 차이니즈 이마리 양식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일본은 중국의 내부 정치적 혼란기, 동인도회사라는 글로벌 무역 네트워크와의 안정적 연결, 선택적 쇄국정책으로 구조적 공백을 활용함으로써 도자기 시장에서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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