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 년대 동아신질서와 일본의 기회
21세기 조선통신사, 규슈에 가다 : 사랑방의 젊은 그들 규슈를 품다
규슈 국립박물관 · 강현민 · 고려대학교
‘일본에서 아시아로’ 규슈 국립박물관
규슈 국립박물관. 오랜 옛날부터 도자기와 난학, 서양 문물 등을 유입했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는 아시아 질서의 거대한 변혁을 주도했던 규슈 지역을 대표하는 이 박물관은 겉으로만 보면 전세계 여느 박물관과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현대적인 건축양식과 그 안에 전시되어 있는 여러 유물과 사료가 태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역사를 뽐내고 있고, 빠질래야 빠질 수 없는 뮤지엄 샵과 오픈 카페, 레스토랑, 그리고 그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방문객들. 어떻게 보면 페이스북에 올릴만한 사진 한 장을 건지러 가는 것만으로 만족할 정도로 진부하고 평범한 박물관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 혹은 저처럼 딱히 생각이 있는 건 아닐지라도 깨알 같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진부함과 평범함 속에서 무언가 특별하고 독특한 것을 찾아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었습니다. 8. 1930년대 동아 신질서와 일본의 기회: 큐슈국립박물관
규슈 국립박물관의 독특함과 차별성, 바로 그것은 규슈 국립박물 관이 내세우고 있는 전시 컨셉트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특히 규슈 국립박물관의 상설 전시관 전시 컨셉트에 눈독을 들였습니다. 이 상설 전시관은 박물관 4층에 자리잡고 있는 ‘문화교류 전시실’로, 본 박물관이 자신의 ‘얼굴’로 내세우고 있는 곳입니다. 박물관 측에서는 문화교류 전시실의 전시 컨셉트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곳(문화교류전시실)은 상시 800건 정도의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는 본
박물관의 얼굴이다. 그러나 왜 ‘상설 전시’가 아닌 ‘문화교류 전시’라고
명칭을 붙였을까? 이는 규슈 국립박물관에게 주어진 과업으로서 일본의
문화 교류 역사를 전시하기 위한 하나의 답변이다. 일본 통사가 아닌,
규슈의 지역사도 아닌, 아시아와의 문화 교류사. 우리들은 이 전시실에서
일본 문화가 외래 문화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이를 소화하고 축적하여
독자적인 세계를 창조해온 경로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제가 본 소개 글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받은 첫 인상은 일본 혹은 최소한 본 박물관의 경우 일본 문화가 그 독자성을 인정받고 있지 못한다는 일종의 피해 의식을 갖고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조심스럽게 가져보았습니다. 물론 다른 나라에 있는 박물관들도 자국 문화의 독자성을 뽐내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위의 인용문에서 언급된 것처럼 규슈 국립박물관은 일본 문화가 외래 문화를 모방했다는 일종의 비평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소화와 축적의 독자적 문화’로서 일본 문화를 탈바꿈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실 일본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자국의 독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중화질서 속에서 나름대로 자리잡고 있던 우리와는 달리, 완전한 오랑캐도 아니고 완전한 사대주의 국가도 아니었던 일본은 자국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주요 전시물 중 하나인 ‘덕천가부조선국왕완국서사’ 등을 보면 조선통신사에 대한 대우를 간략화 하는 등 일본이 조선과 대등한 관계를 수립하고자 한 적이 있는가 하면, 그보다 훨씬 이전에 수나라 황제가 ‘왜황’이라고 지칭한 부분을 일본의 쇼토쿠 태자가 “동쪽의 천황은 삼가 서쪽의 황제에게 고한다.”고 그 명칭을 고쳐 답변하는 등 독자적인 ‘황제’를 가진 일본으로서 중국과도 대등한 관계를 수립해보려 한 적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중화질서 속에서 일본이 점하고 있던 그 애매한 위치 덕분에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보다 큰 범위에서 행동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상대적으로 매우 이른 시기부터 네덜란드와 같은 서양 국가와 접촉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만, 궁극적으로 이것은 오히려 일본의 정체성을 더욱 흐리게 만드는 효과를 낳았을 수도 있겠지요. 중국과 한국으로부 터 받아들인 문화에 서양 문화까지 섞어버리니 말입니다. 8. 1930년대 동아 신질서와 일본의 기회: 큐슈국립박물관
그러했던 일본이 20세기에 들어서 아시아 국가 중 가장 일찍 개항하여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덕분에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급성 장하게 되고, 성장한 국력을 바탕으로 기존의 중화질서를 깨고 아시아 에 일본의 정체성이 낄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하여 그 자리를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를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됩니다. 물론 결론부 터 말씀 드리면, 그 절호의 기회는 결국 슬픈 끝을 맞게 됩니다. 일본이 아시아에 새로운 질서를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그 기회를 활용하는 수단과 방법이 옳지 않아 결국에는 아시아와 서양 국가 모두에게 버림을 받게 되니까요.
20세기 일본, 정체성 확립 위한 절호의 기회를 맞다
일본에 그 절호의 기회란 바로 ‘동아신질서론’(東亞新秩序論) 이었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 동아신질서는 간단히 말해 아시아 지역에서는 평화를 사랑하는 유일한 민족주의인 일본의 민족주의가 아시아의 중심이 되어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통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담론이 세계 2차대전 발발 직전인 1930년대에 일본에서 만연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동아 신질서론은 세계 2차대전 발발 까지 일본 군부가 조선, 대만, 중국 등을 대상으로 감행했던 침략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한 명분으로서 만들어졌거나, 아니면 일본인들이 다른 아시아인들보다 평화를 더 사랑한다는 그 믿음 위에 만들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는 관점은 조금 다릅니다. 제가 보기에 동아 신질서란 일본이 자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일련의 노력이었습니다. 지난 수천 년간 아시아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가, 중화질서를 통째로 깨뜨리고 그 자리에 자국 중심의 질서를 세움으로써 그 자리를 끝내 확립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던 것입니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정부마저 통제하지 못하고 있던 일본 군부의 일방적이고 무자비한 침략 행위마저 앞다투어 합리화하려고 들었을까요. 당대의 철학자였던 미키 기요시는 1937년 11월호 《중앙공론》에 게재한 논문인 ‘일본의 현실’에서 다음과 같이 동아 신질서를 정의합니다.
역사적으로 실크로드의 끝에서 문화를 전수받기만 했던 일본은 사상 처음으로 ‘대륙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일본 문화의 진출에 따라 새로운 동양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아시아의 통일은 이미 다가오는 세계사적 단계이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일본이 그 사명을 갖고 사력을 투입해 달성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미키는 새로운 동양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선 우선 일본 문화의 진출이 있어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 일본 문화란 무엇이었을까요? 제 생각에는 바로 ‘평화를 사랑하는 문화’이었을 것입니다. 규슈 국립박물관 직원부터 시작해 규슈 전 지역, 나아가 일본 전역에 걸쳐서 보면 일본 국민만큼 친절하고 착한 성품을 8. 1930년대 동아 신질서와 일본의 기회: 큐슈국립박물관 가진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것이 설사 가식이라 해도, 저는 이번 답사를 통해 미키도 다른 아시아인과 주변을 둘러보면서 ‘정말 일본인들은 평화를 사랑하는구나’라는 인식을 가졌을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너무 가까운 주변만 보았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일본군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고, 고문하고, 죽이고 있었는데 말이죠. 이 대목에서 저는 ‘사랑방’ 강의를 통해 열심히 읽었던 “개인은 도덕적이되 사회는 비도덕적이다.”고 주장한 미국의 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이 문득 생각이 납니다. 옆집 정원을 가꾸는 할아버지나, 앞길 꽃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는 각자 무척 착하고 친절할지라도, 이들마저 ‘반유대주의’, ‘중국해방’, ‘인종적 우월주의’ 등의 슬로건을 내건 군중 속에 섞이면 하나같이 다 비도덕적인 존재가 되어버리더라는 내용입니다. 니버가 이 책을 조금 더 일찍 써서 미키가 이를 읽어볼 수 있었다면 그의 사상이 크게 변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정말로 주변에 살고 있는 착하고 친절한 사람들만 쭉 둘러보고 나서 이러한 믿음을 갖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미키가 만주 일본군의 만행을 반영하지 못하고 그저 일본인의 ‘평화를 중요시하는’ 문화를 잘못 개진한 탓에, 그의 사상은 일본군의 잔혹한 행위마저 합리화하는 데 사용되어버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자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싶어하는 일본의 그 염원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되돌아오면, 이것이 사실 그렇게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 자신도 그렇고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인정을 이끌어내는 방식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자신의 소속, 직업, 계급 등을 자랑하면서 상대방의 인정을 받고자 하지요. 대한민국 남성의 경우, 군대를 다녀와야 서로를 인정하고 말이 통하며 금방 친해지는 문화가 있듯이,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일종의 소속감이 있어야 상대방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정 하에 생각해보면 일본엔 그러한 확실한 소속감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일본이 이를 거부했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당시 이러한 소속, 계급 등을 부여하는 주체는 동아시아의 경우 ‘중화질서’ 였다고 볼 수 있는데, 일본의 경우 그 중화질서가 강요하던 위계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꾸준히 아시아 대륙 국가들과 대등한 관계를 갖고 싶어 했으니까요. 따라서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일본은 옛날부터 중화질서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지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중화질서에 대한 동경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동경심이란 중화질서 그 자체에 대한 동경심이 아니라, 그 질서 안에서 서로를 인정해 주며 공존하고 있는 국가들에 대해 동경심이었겠죠. 굳이 중화질서가 아니라 하더라도, 일본도 어떠한 질서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 때마침 일본에 동아시아의 기존 질서인 중화질서를 와해시키고 자신이 원하는, 그리고 자신이 속할 수 있는 질서를 직접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8. 1930년대 동아 신질서와 일본의 기회: 큐슈국립박물관
앞서 미키 기요시를 잠깐 언급하면서 ‘평화를 사랑하는 일본의 문화’에 대해 말했는데, 이것이 일본이 구축하고 싶어하던 동아 신질서가 기존의 중화질서와 차별화되는 핵심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또 다른 철학자인 로야마 마사미치는 1938년 11월 <개조>에 게재한 ‘동아협동체의 이론’에서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습니다.
동양의 통일은 민족주의의 극복으로부터 만들어져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극복을 가능케 할 수 있는 동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 주
동력은 일본의 민족주의가 아시아 대륙에 진출해나간 과정에
내재하고 있습니다(蝋山政道 1938, 11).
여기서 로야마가 말하는 일본의 민족주의가 바로 미키가 말하고 있는 평화를 사랑하는 일본의 문화와 일치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미키는 상기 논문에서 일본의 민족주의가 일본의 천황제적 민족 관념, 즉 ‘일군만민의 세계에 유례없는 국체에 기초한 협동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것,’ 포용성, 진취성, 지적 성질, 그리고 생활적이며 실천적 성격을 아우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즉 일본이 ‘동양 사상을 시정하는 데 충분하다고 보는 것은 그 독특한 연대 사상이며 협동 사상’이 있기 때문이며, ‘일본 국체의 근원을 이루는 일국만민, 만민보익의 사상’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함동주 2000, 30). 미키는 이와 같은 ‘일본적’ 민족 관념이 단지 일본만의 특성으로 제한되지 않고 중국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로야마도 마찬가지로 유사한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로야마도 결국에는 미키가 갖고 있던 단점도 그대로 답습하여 그의 주장은 일본 군부의 만행을 정당화시키는 데 악용되고 맙니다. 아무리 애초의 취지가 좋았다 하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취지마저 비난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이야기는 소속감을 얻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본의 슬픈 이야기입니다. 제 집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외로운 늑대의 이야기이지요. 서양 세력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중화질서 에서 제 자리를 찾아보려 하다가 실패하고, 서양 세력이 들어오고 나서는 유럽 질서에서 제 자리를 찾아보려 하다가 그것마저 실패하여 오늘날까지 국제 사회에서 애매한 위치에 선 채 두리번거리고 있는 일본의 모습. 최근 아베 총리가 일본의 군사력 보유 및 전쟁수행 능력을 금하고 있는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무기를 수출하고 자위대를 파병하려고 하는 등 나름 개진하고 있는 강경한 외교정책도 어떻게 보면 오늘날의 세계 질서에서 제 자리를 찾기 위한 하나의 발악일지도 모릅니다. 동아시아 평화와 안보를 도모하고자 중국과 북한 등을 견제하는 데 있어서 일본 측에 책임을 점진적으로 전가하고 싶어하는 미국의 입장을 활용하여 군사력을 다지고, 미국의 지지를 바탕으로 일본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네오(neo) 동아신질서’를 세우 는 것이 일본의 궁극적인 목표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를 왜곡하고, 과거에 대한 충분한 반성 없이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의문이 들지만, 일본이 1930년대에 조우했던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큰 아쉬움이 아직까지 남아있겠구나 8. 1930년대 동아 신질서와 일본의 기회: 큐슈국립박물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오늘날의 이슬람주의자들이 한때 찬란했던 범이슬람국가(Pan-Islamic State)를 그리워하고 이를 다시 세우고자 노력하 는 것처럼, 일본도 그 기회를 놓친 아쉬움이 큰 만큼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도 클 테니까요.
맺으면서
규슈 국립박물관을 돌면서 저는 어떻게 규슈 국립박물관의 전시 컨셉트만 읽고 이 정도의 생각을 해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생각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이만큼 생각해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군인으로서, 그리고 한일관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만큼 이에 대한 문제 의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 의식이라 함은 오늘날의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대한민국과 중국, 일본 등 각국이 어떠한 자리에 서서 어떠한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인데, 이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동아시아 질서는 아직도 형성 단계에 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화질서가 서양의 침략에 의해 무너지고 난 이후, 우리는 여태까지 이렇다 할 만한 질서를 구축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대한민국과 일본이 한 축, 그리고 중국과 북한이 다른 축을 점하고 있는 양축 구도가 성립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양축 구도로 인해 오히려 동아시아 질서 수립이 더욱 지연되고 있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러한 분단된 상황에서 일본은 과거의 영광스러운 시절에 집착한 나머지 주변국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독자적인 질서를 구축하려 하니, 동아시아 질서의 수립은 더욱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평화롭고 안정적인 동아시아 질서를 수립하기 위해서, 최소한 일본은 자국의 위치를 재평가 해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때 동아시아의 패권을 거머쥐고 있던 일본이 과거에 집착하기보다, 오늘날의 일본이 어떠한 위치에 서 있는지 객관적인 평가를 내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시대적 패권국이 아닌, 신시대 중견국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시대 패권국으로서의 일본을 정당화하고 찬양하기 위한 역사왜곡 및 군사력 확장 등의 노력을 자제하고, 신시대 중견국임을 깨닫고 오늘날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일본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본이 패권시대에 돌입하는 최초의 관문이었던 규슈. 그 곳에서 메이지 유신이 처음으로 발돋움하였고, 이토 히로부미 등 일본을 패권 국가로 거듭나게 한 일등 공신이 자라났습니다. 일본의 수도인 도쿄에 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방이라 할지라도, 1930년대에 동아신질서를 수립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규슈야말로 단연코 중심지였습니다. 이와 같이 역사적으로 큰 의의를 담고 있는 지역을 대표하는 박물관이 바로 규슈 국립박물관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정치학도들은 그만큼 신중함을 기하여 방문해야 했던 곳이었습니다. ■ 8. 1930년대 동아 신질서와 일본의 기회: 큐슈국립박물관 참고문헌 함동주. 2000. “미키 키요시의 동아협동체론과 민족문제.” <인문과학> 30.
蝋山政道. 1938. “東亜協同体の理論.” <改造>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