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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國公法』 번역과 질서의 충돌 이화원

동아시아질서건축사 : 고대천하에서 미래복합까지 : 사랑방의 젊은 그들 베이징을 품다

분류
EAI 사랑방 답사기
발행일
2026년 6월 30일

이현 · 이화여자대학교

I. 서론

19세기 중후반, 중국은 서구 열강의 침략과 외교적 압력이라는 거대 한 도전에 직면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전통적 세계관인‘천하(天下)’ 질서는 심각한 위협을 받았고, 국가적 위기감 속에서 세계에 대한 중 국의 인식 역시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서 양의 국제법(International Law)이 중국어로 번역된 사건은 단순한 기 술적 문제가 아니라, 중국이 스스로의 정체성과 세계 내에서의 위치를 재정립하려는 사상사적·정치적 행위로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1864년 윌리엄 마틴(William A.P. Martin)이 번역한 헨리 휘 튼(Henry Wheaton)의 『Elements of International Law』는 중국어 로 『萬國公法』이라는 명칭으로 옮겨졌다. 여기서 사용된 ‘만국(萬 國)’이라는 용어 선택은 단순한 언어적 대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당시 중국 지식인과 번역자들이 서구의'international'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어떠한 세계관을 상상했는지에 대한 중요한 단 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당시 번역자들은 어째 서 'international'이라는 개념에 대응하는 용어로 '만국(萬國)'을 선택 했는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을 중심에 놓고 탐구를 전개한다. 이 질문 은 윌리엄 마틴의 번역 행위를 통해 당시 중국의 세계관과 질서 개 념이 서구적 개념과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조정되는지를 밝히고자 하 는 목적에서 비롯된다. Zhiguang Yin은 이 번역이"단순한 외국어의 도입이 아니라, ‘천하’와‘국제’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질서 간의 충 돌이었다"고 지적하였다. (Zhiguang Yin, 2016) Yin에 따르면, 윌리 엄 마틴의 번역은 서구 국가 간 평등을 전제하는 '만국' 개념을 채택 함으로써, 위계적이고 중국 중심적인 천하 질서와는 다른 질서 상상 력을 중국에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Zhiguang Yin, 2016) 이러한 문제 제기를 통해, 본 논문은 당시 번역 현장에서 작동한 다양한 사 상적 긴장과 타협의 과정을 밝혀내고자 한다. 결국 이 연구는 마틴의 번역 선택이 가진 정치적 함의와, 중국이 전통적인 세계관을 재구성 하며 근대적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겪었던 개념적 혼란과 타협을 심도 있게 조명할 것이다.

『萬國公法』에 관한 기존 연구들은 주로 이 번역본의 도입 경위, 마틴이라는 번역자의 역할, 그리고 국제법이라는 서구 법제의 수용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이러한 접근은 청말 중국이 서구 열강과의 외교적 충돌 속에서 국제법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제도 사적 관점에서 조망해왔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여를 한다. 예컨대, Yin 은 윌리엄 마틴이 휘튼의 국제법을‘기독교적 보편주의’라는 틀로 재구 성하여 중국에 소개하였으며, 이를 통해 보편 가치로서의 국제법이 중 국의 정치 질서와 접합되는 방식을 분석하였다.(Zhiguang Yin, 2016)

그러나 이 연구는 마틴의 문명론적 번역 시도에 집중하는 한편, 번 역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한 중국 협력자들의 개념 인식이나 질서 체 계의 충돌, 협상의 구체적 국면에는 충분히 접근하지 못한다.Rune Svarverud의 저작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Wheaton의 국제법 번역 이Late Qing China의 질서 재편 및 실용적 외교 대응과 깊이 연결 되어 있었음을 강조한다.(Rune Svarverud, 2007) 특히 Wheaton 번 역이 단순한 문화 수입이 아니라, 서구 질서에의 적응과 자강운동이 라는 국가적 기획의 일환이었다는 점을 조명한다. 그러나 이 역시 ' 국제법 도입'이라는 제도사 중심의 분석에 머무르며, 정작 ‘international’을 ‘만국’으로 번역하게 된 개념사적 긴장 구조, 즉 ‘국 제’라는 표현이 아닌‘만국’이라는 용어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유적 교착 상태에 대해서는 분석이 부족하다.

한편 Han Sang-hee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국제법 용어가 어떻게 순환 되고 확산되었는지를 비교사적으로 분석하면서, 일본에서는‘國際’가 표준 화된 반면, 중국에서는‘萬國’이라는 용어가 자리 잡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Han Sang-hee, 2010) 그러나 이 역시 표면적 언어정책의 차이에 초점 을 둘 뿐, 중국 내부에서 왜 그러한 번역어 선택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개념사적·사상사적 분석은 제공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Ignacio de la Rasilla는 Wheaton 번역을 통해 청말 중국이 국제 규범 질서의 일부로 재편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주장하였고(Ignacio de la Rasilla & Cai Congyan, 2023), Deborah Cao는 중국 법률언어 체계에서 번역이 수행 하는 문화적 기능을 분석하였다. (Deborah Cao, 2007)

그러나 이들 연구는 ‘번역어’의 선택이 야기하는 언어적 갈등과 정치적 타 협의 장면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하였고, 특히 ‘만국’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천 하’와 ‘국제’ 사이의 질서 인식을 조정하려 했는지에 대한 내적 복원을 시도하 지 않았다. Lydia Liu가 제시한 ‘translingual practice’ 개념은 번역의 문화정 치성을 이론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지만, 이를 휘튼-마틴 번역 의 실제 사례에 적용한 연구는 아직 드문 실정이다. (Lydia Liu, 1995) 요컨대, 기존 연구들은 국제법 도입의 제도사적 경위나 마틴의 번 역자로서의 기획에 조명을 비추었지만, “왜 하필 만국이었는가”라는 질문에는 충분히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번역어 선택이라는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언어적 결정은 사실, 서구 국가체계의 보편성과 중국 천하질서의 위계적 보편주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벌어진 깊은 사상 적 협상과 절충의 결과였다. 본 논문은 바로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번역 현장을 사상적 긴장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설정하고, 마틴과 중 국 협력자들 간의 개념적 상상력의 충돌 구조를 복원하고자 한다.

이러한 기존 연구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국제법 제도의 도입 경위나 번역자의 개인적 의도를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번역이라는 행위를 둘러싼 사상사적 맥락과 정치적 긴장을 복원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international’을 ‘만국(萬國)’으로 번역한 선 택은 단순한 어휘의 치환이 아니라, 당대 중국 지식인들이 서구의 국 제질서를 어떻게 해석하고, 자신들의 전통적 질서 인식과 어떻게 연 결·충돌·조정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결정이었다.

본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19세기 중후반 청말의 국 제법 번역 현장을 ‘질서 간 충돌의 장’으로 설정하고자 한다. 즉, 번 역 당시의 논의 구조, 마틴과 청조 협력자들 간의 상호작용, 그리고 중국 지식인들이 보유하고 있었던 전통적 공법 개념 및 천하 인식이 서구 국제법 담론과 충돌하며 발생한 의미 생성의 과정을 복원하고 자 한다. 이 과정에서 ‘만국’이라는 번역어가 어떻게 정치적·사상적 절충의 산물로 등장했는지를 중심에 두고 분석할 것이다.

이와 함께 일본에서는 같은 시기 ‘international’을 ‘국제(國際)’로 번역하며 서구 질서를 받아들였다는 점에 주목하여, ‘만국’과 ‘국제’ 라는 상이한 번역어 선택의 비교를 통해 중국이 보여준 언어 선택의 정치성을 조명할 것이다. 이를 통해 번역이라는 실천이 단지 외국 개 념을 옮기는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 인식과 질서 상상력을 창출 하는 사상적·정치적 행위임을 드러낼 것이다.

Yin은 이와 관련하여, 중국 지식인들이 마틴의 번역에 수동적으로 반응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유 속에서 고유한 ‘공법’ 개념을 구성 하려는 시도가 존재했음을 강조한다. 그는 번역이 단지 외래 개념의 수용이 아니라, 기존의 ‘천하’ 질서를 재구성하려는 능동적 협상의 과정이었다고 보았다.(Zhiguang Yin, 2016) 또한 Mingqian Li 역시 번역어 선택이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이 새로운 국제 질 서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전통적 제도와 개념을 재구성한 실천이 었다는 점을 분석하였다.(Mingqian Li, 2021) 더 나아가 J d’Aspremon는 중국어권과 영어권 국제법 담론이 서로 다른 의미질 서에 기반하고 있으며, 같은 사건조차도 서로 다른 내러티브로 전개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J d’Aspremon, 2021) 이처럼 번역은 단지 의 미를 전달하는 통로가 아니라, 문화적 해석이 개입되는 복합적 장소 임을 보여준다.이러한 문제의식과 이론적 논의들을 바탕으로, 본 논 문은 '왜 하필 만국이었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놓고, 번역어 선택의 사상사적 함의를 복원하고자 한다. 이는 중국의 국제법 수용사를 언 어정치적 맥락 속에서 새롭게 조망함과 동시에, 동아시아 지역의 질 서 전환과 언어 선택의 역학을 해명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II. 국제법 번역의 출발점: 제도 도입에서 질서 인식의 전환으로

1. 서구 열강과의 충돌, 아편전쟁 이후 외교의 제도화 필요성 (1) 아편전쟁의 충격과 불평등 조약 체제

1840년 아편전쟁은 청조가 천하 중심의 위계적 외교 질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직면하게 만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난징조약 (1842)과 베이징조약(1860)을 통해 중국은 주권, 영토, 경제적 자율 성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고, 외교는 더 이상 전통적 예법으로 대처할 수 없는 실용적 과제로 부상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 내에서 ‘신수외교(信守外交, treaty-observing diplomacy)’라는 새로운 외교 전략의 등장을 촉진했다. 이는 위계와 예법 중심의 외교 의례가 아닌, 국제 조약과 규범을 기반으로 한 법 적·제도적 외교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했다. 기존의 ‘서구는 야 만, 중국은 문명’이라는 외교적 자기 인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았고, 외교적 실용성과 제도화가 긴급한 과제로 부상했다.

Rune Svarverud는 이러한 변화를 “도덕적 위계질서에서 조약 기 반의 외교로의 인식론적·제도적 전환”으로 설명한다.48) Deng과 Fairbank 또한 난징조약 이후 청조가 불평등 조약 체제 속에서 서구 의‘주권 평등’ 원칙을 수용하게 되었음을 지적하며, 이는 중국 외교 정체성의 근본적 변화였다고 분석한다.49) HanSang-hee는 이 시기 를 중국 법제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간주하면서, 서구의 압력 속 에서 중국은 법을 강제와 복종의 수단이 아니라 협상의 구조로 인식 48) Rune Svarverud, International Law as World Order in Late Imperial

China, Brill, 2007, p. 36.

49) Deng Siyu & John K. Fairbank, Research Guide for China's Response

to the West, Harvard University Press, 1954, p. 51. 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조약·주권·법률 등의 개념을 번역하고 이해 할 필요성이 촉발되었다고 본다.50)

이러한 외부적 충격은 동시에 내부적 제도 개편을 요구했다. 전통 적 외교문서와 예의서신, 조공 예절에 의존한 외교 체계로는 근대 국 가들과의 실제적인 외교 대응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861년, 청조는 총리아문(總理衙門)을 설치하여 보다 실무적인 외교 대응 기구를 출범시켰으며, 국제법 번역 사업은 이 새로운 외교 제도 구축의 일환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결국 아편전쟁은 단순한 무력 충돌을 넘어, 중국이 자신이 위치한 세계 질서의 근본 틀을 재검토하게 만든 계기였다. ‘만국공법’의 번 역은 이와 같은 변화의 산물이며, 청조가 법적 언어와 외교 규범을 통해 서구 열강과 새로운 방식의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 속에서 시작 되었다고 할 수 있다. Ignacio de la Rasilla와 Congyan Cai가 지적 했듯, 아편전쟁은“중화 중심 세계관의 인식론적·존재론적 기반을 분 열시킨 사건”이었다.51) 따라서 번역은 단지 제도의 도입이 아니라, 사유 방식의 전환이기도 했다.

(2) 총리아문(總理衙門)의 설립과 의의

1861년 3월, 공친왕(恭親王)의 주도로 설립된 총리아문(總理衙門, Zongli Yamen)은 청조 외교 체계의 역사적 전환을 상징하는 제도적 사건이었다. 공식 명칭인‘총리각국사무아문(總理各國事務衙門)’은 ‘모든 50) Han Sang-hee, The Circulation of International Legal Terms in East

Asia, p. 4.

51) Ignacio de la Rasilla & Cai Congyan, The Cambridge Handbook of

China and International Law, 2024, Ch. 1. 국가에 관한 사무를 총괄하는 관청’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며, 기존의 조 공 중심 외교 질서로부터 벗어나 다자간 외교 관계를 상정하는 새로운 외교 인식의 전환을 예고했다. 이는 1729년 옹정제의 군기처 설립 이후 청조 중앙기구에서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제도적 혁신이었다는 점에서, 외교뿐 아니라 행정사상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52)

총리아문은 이전의 임시적 외교 대응 기구들과는 달리, 외국과의 상시 외교를 수행하는 상설 기관이었다. 이를 통해 청조는 서구 열강 의 존재를 단순한‘화이의 경계 밖 존재’가 아니라, 교섭 가능한 주권 국가들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실제 외교 실무를 담당할 전문 관청이 필요하다는 내적 자각에 도달한 것이다. 특히‘各國’이라는 표현은 과 거의‘천하’적 언어체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다국적 질서와 수평 적 외교 구조를 암시하는 언어적 전환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Ignacio de la Rasilla와Cai Congyan은 이 명칭에 주목하여, “Zongli Yamen의 명칭에서부터 이미 중화 중심 질서에서 국제적 외교 사고 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반영되었다”고 분석한다.53)

총리아문은 단순한 외교 대응기구를 넘어, 이후 청조의 ‘자강운동’과 ‘동치중흥’을 이끄는 핵심 제도 기반이 되었다. 공친왕과 문상(文祥)의 지도 아래, 총리아문은 외국 공사들과의 협상, 조약 해석, 통번역 업무 는 물론, 서구 제도와 법률에 대한 연구와 번역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 는 곧 국제법이라는 낯선 개념에 대한 제도적 수용 가능성을 열어주었 으며, ‘만국공법’ 번역 작업 또한 이 기관의 주도 하에 착수되었다. Svarverud는 이를 “Wheaton의 국제법 번역은 Zongli Yamen의 주도로 시작된 체계적 대응이었다”고 평가하며, 당시 청조가 국제 질서에 실질 52) Masataka Banno, China and the West, 1858–1861, Harvard

University Press, 1964, p. 87.

53) Ignacio de la Rasilla & Cai Congyan, 위의 책. 적으로 편입되려 했던 시도를 제도 차원에서 입증한다.54)

총리아문 설립의 정치적 정당성은 마틴이 직접 언급한 회고적 기 록에서도 드러난다. 『A Cycle of Cathay』에서 마틴은 “공친왕 자 신이 직접 나에게 서구 국가들이 어떤 법에 따라 관계를 맺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번역을 의뢰했다”고 밝히고 있다.55) 이로 미루어 볼 때 『萬國公法』의 번역은 개인의 자발적 선교 활동 이나 학술적 호기심이 아닌, 청조 외교 전략의 일환으로서 제도적으 로 기획된 실천이었다.

이처럼 총리아문은 서구 열강의 압력에 ‘정면 대응’하기 위해 등장 한 제도였지만, 동시에 청조 내부의 질서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 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지표였다. 전통적인 외정-내정 분리 구조 속 에서, ‘외정’을 전문적·제도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총리아문의 등장은 이후 Wheaton 번역이라는 구체적 작업의 실현 기반이 되었으며, ‘각 국’이라는 언어 인식은 이후 ‘만국’이라는 번역어 선택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총리아문은 단순한 관료 조직을 넘어, 질서 감각의 전환을 제도적으로 구현한 장소로서 해석될 수 있다. 총 리아문은 단순한 외교기구가 아니라, 중국이 '천하'에서 '각국'으로 세 계를 인식하는 언어 감각의 제도화를 보여주며, 이후 '萬國'이라는 개 념 선택의 구조적 기반을 제공했다.

2. 국제법 번역 대상의 선택과 도입 배경 (1) 국제법 지식의 필요성 인식

청 정부가 국제법 번역이라는 결단을 내리게 된 가장 중요한 배경은, 54) Rune Svarverud, 위의 책, p. 39.

55) William A. P. Martin, A Cycle of Cathay, 1900, p. 276. 단순한 외교 기술의 부재가 아니라 국제 외교 질서의 룰을 몰랐다는 사 실 자체가 외교적 약점이 된다는 현실 인식이었다. 특히 공친왕은 아편 전쟁 이후 불평등 조약 체제에 내재된 서구의 법적 논리와 제도를 이해 하지 못할 경우, 외교 무대에서의 협상력 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도달했다. 이에 따라 그는 로버트 하트(Robert Hart)의 조언을 받아들여, 윌리엄 마틴(W. A. P. Martin)에게 서구 국제법의 핵심 규범 이 체계화된 헨리 휘튼(Henry Wheaton)의 『국제법 요소(Elements of International Law)』를 번역할 것을 공식 의뢰하였다.56)

이 번역 작업은 단순히 서구 법이론의 수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 었다. 총리아문이 실제로 외교 실무자들이 현장에서 사용하는 텍스트 를 전략적으로 선별하여 24개의 장을 번역하게 했다는 점에서, 청 정부는 국제법을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실전 외교를 위한 생존 도 구로 간주하고 있었다. 특히 마틴이 사용한 판본은 Wheaton 원서의 6판이자, 미국 외교관 윌리엄 비치 로렌스(William Beach Lawrence)가 주석을 덧붙인 1855년판이었다. 이 판본은 외교, 조약, 전쟁, 사절단의 권리 등 실제 국제 분쟁과 교섭의 현장에서 적용 가 능한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국제법=문명국의 외교규 범’이라는 가치질서 또한 강화되었다.57)

이러한 전략적 번역 결정은 당대 중국의 외교관들이 처한 실질적 조건에서도 절실한 과제였다. 당시 서구 외교관들과의 교섭에서 Wheaton의 논리에 근거한 주장들이 반복적으로 제기되었고, 청 정 부는 이들 논변을 이해하고 대응할 기본적인 법률 언어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마틴은 회고록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중 56) Rune Svarverud, 위의 책, pp. 41-43

57) Yan, Tsz-ting, A study of late Qing collaborative translation, 2011, p.

3 국의 국제법에 대한 무지는, 그녀가 고립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가장 명백한 증거 중 하나였다”58)고 진술하며, Wheaton 번역 이 단순한 언어작업이 아니라 중국이 ‘고립’을 벗어나‘문명화’로 나아 가기 위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실천이었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마틴은 Wheaton 번역을 총리아문의 요청에 따른 수동적 수행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나는 Wheaton의 국제법을 중국 어로 번역할 필요성을 끊임없이 주장해왔다”59)며, 본인의 적극적 판 단과 신념에 따라 이 번역을 수행했음을 분명히 한다. 이는 ‘총리아 문이 마틴에게 번역을 지시했다’는 일방적 설명을 넘어서, 당시 번역 현장이 개인 번역자의 문명론적 신념과 청 정부의 외교 전략이 교차 한 장소였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번역의 내용 자체도 마틴의 신학적· 문명론적 관점이 일부 반영된 것으로 평가되며, Zhiguang Yin은 이 를 “국제법이 단순히 서구 지식으로 수용된 것이 아니라, 중국 전통 질서와 접합되도록 번역의 과정에서 재구성되었다”60)고 설명한다.

결국 휘튼의 국제법 텍스트 선택은, 청 정부가 자국의 외교 역량을 법률 언어로 무장시키기 위한 시도였으며, 동시에 마틴이 이해한 ‘국 제법= 문명국의 보편 규범’이라는 사고방식과 접합된 정치적 번역 프로젝트였다. 이러한 이중적 동학 속에서 ‘국제법 번역’이라는 사건 은 단순한 이식이 아니라, 지식과 질서가 재조정되는 사상사적 공간 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58) William A. P. Martin, The Awakening of China, p. 285. 59) William A. P. Martin, 위의 책, p. 287.

60) Zhiguang Yin, 위의 책, pp. 7-8. (2) 프로이센-덴마크 선박 사건과 국제법의 실용적 가치 입증

1864년, 다구(大沽, Dagu) 항 인근 중국 해역에서 발생한 프로이 센-덴마크 선박 나포 사건은 청조가 국제법 번역을 단행하게 된 결 정적 계기이자, 마틴 번역의 실효성을 입증한 외교적 사례로 기록된 다. 당시 프로이센은 덴마크와의 유럽 전쟁 중 세 척의 덴마크 선박 을 중국 해안 근처에서 나포하였고, 이에 대해 공친왕은 중국 관할 수역에서 이루어진 군사행위는 중국의 주권과 중립 원칙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였다.61)

공친왕은 휘튼의 책에서 제시된 전시 중립국의 권리, 그리고 국가 간 조약에 명시된 영해(Territorial Sea) 개념을 근거로 삼아, 프로이 센 측에 조약 위반을 항의하였다. 그는 특히 “중국과 귀국(프로이센) 간 체결된 평화 조약에는 '중국 해양(中國海洋)'이라는 표현이 명시되 어 있으며, 이는 외국과의 조약 전체에 적용되는 공통적 원칙이자 관 할권의 표시”62)라고 서한을 통해 주장했다. 이때 공친왕은 Wheaton 이 규정한 중립국 해역에서의 무력행위 금지 원칙을 그대로 적용함 으로써, 국제법이 현실 외교 분쟁의 해결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실증해 보였다.

이 사건은 양국 간의 무력 충돌로 비화되지 않았고, 중국 측의 항 의가 받아들여진 채 평화적으로 종결되었다. 이후 청 정부는 Wheaton 번역의 외교적 유용성에 주목하며, 마틴의 번역본에 대한 예산 지원과 정식 출판을 승인하게 된다. 마틴은 이 경험을 회고하며 “중국 외교부로부터 감사의 상소를 받았고, 이 번역본이 자국 외교관 들에게 실질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63) 61) Rune Svarverud, 위의 책, pp. 45-46. 62) Rune Svarverud, 위의 책, pp. 46 이 사건은 Wheaton 번역이 단지 학문적 호기심이나 문명론적 열망 에서 비롯된 작업이 아니라, 국가 외교 전략의 일환으로 수행된 ‘실용 적 번역’이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또한 공친왕이 중국 전통의 ‘내해 (內海)’ 개념을 Wheaton의 ‘영해(territorial sea)’ 개념에 접속시켜 서구 국제법 언어로 자국의 질서를 해석하고 정당화했다는 점에서, 당시 번 역이 단지 언어의 치환이 아니라 사상적 접합의 시도였음을 드러낸다. Han Sang-hee는 이 사건을 “국제법 범주의 지역화(localization)”의 사 례로 평가하며, ‘territorial sea’라는 개념이 이 시점부터 동아시아 문맥 에서 구체적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64)

결국 1864년 다구 사건은 ‘번역의 효용성’을 실증한 외교 현장이자, ‘만국공법’이 출판되기 전 이미 중국의 외교 전략에 적극적으로 사용되 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Carrai는 이 사건을 가리켜 “국제법이 단순히 번역되었을 뿐 아니라, 실제 외교 분쟁에 적용되었다는 점에서 그 보편성과 실천 가능성을 입증한 전환점”65)이라 평가한다.

이처럼 Wheaton의 국제법이 청조 외교 체계 안으로 제도적으로 도 입되는 과정은, 단순한 외래 지식의 수용이 아니라, 전통 질서와의 충 돌을 예고하는 변곡점이었다. 총리아문의 설립, 휘튼 번역의 승인, 번역 인력의 조직 등은 외형상 서구 질서에의 제도적 적응으로 보일 수 있으 나, 그 이면에는 ‘질서 언어’의 전환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내재 해 있었다. 청말 관료들과 번역자들은 단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 이 아니라, 그 제도를 가능하게 하는 세계 인식, 즉 ‘국가란 무엇이며, 63) William A. P. Martin, The Awakening of China, p. 288. 64) Han Sang-hee, 위의 논문, pp. 6-7.

65) Maria Adele Carrai, The Politics of History in the Late Qing Era,

2020, pp. 12-13.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사유 구조의 전환을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Wheaton 번역의 본격화는 단지 기술적 작업이 아닌, 서구 적 개념어들을 중국의 사상 전통 속에 어떻게 배치하고, 충돌을 조정 할 것인가라는 개념사적 과제로 이어졌다. 이제 논의는 제도사적 맥 락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번역자 마틴과 청조 관료들이 ‘international’을 둘러싸고 벌인 사유의 협상, 그리고 ‘만국’이라는 표 현을 통해 어떤 절충이 이루어졌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Ⅲ. ‘만국’이라는 선택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번역 현장의

충돌과 절충

1. 마틴의 'international' 해석과 문명주의적 의도

(1) 보편주의 전략으로서의 번역: 마틴의 문명 선교와 자연법 해석

마틴에게 국제법 번역은 단순히 청조 외교의 실무적 결핍을 보완 하기 위한 기술적 작업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에서 Wheaton의 국제 법은 서구 문명 세계의 윤리적 우위와 질서를 표현하는 법체계였으 며, 이를 중국에 이식하는 번역 행위는 곧 “기독교적 정의의 보편화” 라는 문명 선교의 연장이었다. 그는 번역 작업을 통해 중국을“신과 그의 영원한 정의(the eternal justice of God)”의 질서에 편입시키고 자 하였고, 이를 문명화 사명의 일부로 인식하였다.66)

이러한 전략은 단지 외교적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실용주의에서 비 롯된 것이 아니었다. 마틴은 휘튼의 자연법적 국제법을 유교적 질서 개념과 도덕적으로 조응시키는 방식으로 번역을 기획했다. Zhiguang Yin의 분석에 따르면, 그는 ‘natural law’를 ‘성법(性法)’으로 옮기며 66) William A. P. Martin, A Cycle of Cathay, p. 276. 유교 인성론과 연결시켰고, 국제법의 ‘보편적 정당성’을 천리(天理)라 는 용어로 치환함으로써 중국 지식인의 사유틀 안에 이를 자연스럽게 배치하려 했다.67) 이 같은 번역 전략은 유교 윤리를 차용한 정치적 합리화 장치로 기능했으며, 마틴의 문명주의적 의도를 은폐하는 수단 이기도 했다.

그는 더욱이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서구 국제법의 기원으로 설정 하는 고대화 전략을 취했다. Maria Adele Carrai는 마틴이 춘추전국 시대를‘proto-international law’의 시기로 재해석하고, 당시의 제후 국 간 질서를 유럽의 근대 주권국 체제에 대응시키려 했음을 지적한 다.68) 마틴은 이를 통해 국제법의 도입을 중국의 전통에 뿌리내린 복원 행위로 보이게 만들었고, 중국 지식인들에게‘서구 질서의 수입’ 이 아니라‘고유 질서의 재확인’으로 받아들이게 하려 했다.

이러한 보편화 전략은 마틴 자신의 회고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그는“중국이 도덕적·외교적 측면에서 문명국가들과 나란히 설 수 있 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궁극적 목표였다고 말한다. 그의 시선에서 국제법은‘법’ 이전에‘문명’이었고, 번역은 곧 도덕적 세계 질서 설계 라는 사상적 기획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번역 전략은 청조 지식인들이 이해하던 공법(公法) 개념, 즉 내외 구분과 조공질서를 전제로 한 질서 구조와는 본질적 충 돌을 빚었다. 겉으로는 “도덕”과 “천리”의 언어가 같아 보일 수 있었 지만, 그 안에 내포된 질서의 전제 조건—예컨대 서구식 주권국가의 평등한 분립과 계약 관계—는 천하관에 기반한 위계적 국제관과 양립 불가능했다. 결과적으로 마틴의 번역은, 청말 지식인들과 협력자들에 67) Zhiguang Yin, 위의 책, pp. 7-8. 68) Maria Adele Carrai, 위의 책, p. 10 게 단순한 번역물이 아닌 사상적 충격으로 작용했으며, 이후 1.2절에 서 분석할 “중국 고대 공법의 발명”이라는 절충 전략을 촉발하는 계기 가 되었다.

(2) 중국적 수용을 위한 ‘고대화’ 전략: 춘추전국 시대의 발명

윌리엄 마틴은 Wheaton의 국제법을 단순한 외래 지식으로 소개하 는 데 그치지 않고, 중국의 전통 속에서 이미 유사한 규범 체계가 존 재했음을 강조함으로써, 번역된 개념에 대한 문화적 거부감을 줄이려 했다. 그는 특히 춘추전국 시대의 제후국 간 외교 관행을 서구 국제 법의 원형으로 제시하며, 국제법의 중국적 기원을 구성하려는 ‘고대 화 전략’을 취했다. 이러한 전략은 국제법을 ‘본래 중국에도 존재했 던 질서’로 재현함으로써, 외래 질서의 정당성을 내재적 전통에서 찾 는 역사화 작업이었다.

마틴은 A Cycle of Cathay에서 “중국에 국제법을 소개하기 위해 나 는 그 기원을 고대 제후국들의 교섭에서 추적하게 되었다”라고 밝히며, 춘추전국 시대의 사례를 통해 국제법의‘rudiments’를 상정했다.69) 그는 공자의 『춘추』에 나타난‘공법’(春秋公法) 개념을 서구의 자연법 (natural law)에 대응시키며, 도덕적 보편성의 동형성을 구성하고자 했 다. Zhiguang Yin은 이 과정이 단순한 개념의 병치가 아니라, 자연법 과 천리(天理)의 연결을 통해 국제법의 윤리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전략 적 의미 전치(substitution of meaning)라고 지적한다.70)

Maria Adele Carrai 역시 마틴이 이 전략을 통해 국제법의 수용 가능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분석한다. 그녀에 따르면, “중국 고대에 69) William A. P. Martin, 위의 책, p. 278. 70) Zhiguang Yin, 위의 책, pp. 7-9. 국제법의 뿌리를 두는 방식으로 마틴은 문화적 친연감을 형성하고, 저항을 최소화하려 했다.”71) 이는 마틴의 번역이 단순한 외교 문서 번역이 아니라, 문화적 수용을 위한 설계 작업이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고대화 전략은 표면적으로는 중국 전통에 대한 존중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구 질서의 도입을 정당화하는 문명 전략의 일 환이었다. 마틴은 ‘중국에도 공법이 있었다’는 프레임을 활용해, 국제 법이 외래 질서라는 사실을 흐리며 ‘문화적 자존심’을 자극하지 않도 록 번역의 이데올로기를 구성했다. 이는 동시대 청조 관료들에게 국 제법을 일종의 ‘자기 질서의 재발견’으로 인식하게 하여, 법질서의 전환에 대한 심리적 저항을 약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춘추 공법’은 실제로는 내치의 도덕적 원리이 자 군주 권위의 정당화 장치였으며, 유럽의 주권국 간 평등한 계약 질서로서의 국제법과는 기초 전제에서 상충하는 개념이었다. 이로써 마틴의 고대화 전략은 전통 질서와 외래 질서가 충돌하는 접점을 형 성했으며, 이 개념적 충돌은 이후 번역어 선택의 정치성과 연결된다. 2. ‘천하’ 질서vs ‘국제’ 개념의 충돌

(1) 개념의 충돌: 천하 질서와 국제 체계의 구조적 차이

‘국제법’을 번역하고 수용하는 과정은 단순한 언어 전환의 문제가 아 니라, 서로 다른 질서 상상력의 충돌이었다. 청말 중국이 마주한 국제 법은 평등한 주권 국가 간의 계약적 질서를 전제로 한 체계였지만, 당 시 중국의 외교 질서는 여전히 ‘천하(天下)’ 중심의 위계적 공간 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이 두 체계는 질서 구성 방식, 법의 정당화 근거, 71) Maria Adele Carrai, 위의 책, p. 11. 문명 인식이라는 핵심 항목에서 본질적으로 충돌하였다.

천하질서는 중국을 문명의 중심으로 설정하고 주변을 야만으로 상정 하는 문화적 위계 구조에 기반해 있었다. 『서경』에 나타난 “천하에 왕토 아닌 땅이 없다(普天之下莫非王土)”는 표현은 경계 없는 확장 가 능성을 전제로 하며, 이는 명확한 국경과 주권을 전제로 하는 서구의 영토 질서와는 결정적으로 상반되었다. Wang Hui는‘천하’가 단순한 정 치 질서가 아니라, 경계가 없는 포섭의 우주론(cosmology of inclusion without boundary)이라고 지적하면서, 당시 번역어 ‘만국’이 이러한 확 장적 상상력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음을 설명한다72).

반면, 서구 국제법은 웨스탈리아 체제를 기점으로 법적 평등과 영 토 주권, 그리고 계약에 기반한 상호 규범을 중심으로 구축된 체계였 다. 이 체계는 문화적 우열보다는 형식적 동등성을 강조하며, 외교와 전쟁, 중립과 간섭 등을 모두 조약이나 국제 규범에 따라 규정한다. 이는 위계와 문화적 우위를 전제로 했던 천하질서와의 절충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 정합성이 강한 질서 체계였다.

이러한 체계 간 충돌은 번역의 현장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예 컨대 ‘interference(간섭)’라는 국제법 용어는 Mingqian Li의 분석에 따르면 청대 문헌에서7가지 다른 표현(간섭, 방해, 삽입, 관여, 침입 등)으로 번역되었으며, 이는 국제법 개념이 기존 질서의 언어 구조와 제대로 맞물리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73) 또한 ‘공법(公法)’이 라는 표현도 단지 법적 규범이 아닌 유교적 리(理)와 의(義)를 통해 해석되며, 서구의 법적 정의와 동등하게 이해되지 못했다. 이처럼 번 역 과정은 용어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정치철학적 정당성을 재구 72) Wang Hui, The Rise of Modern Chinese Thought, p. 245.

73) Mingqian Li, A Linguistic Approach to Late Qing China's Encounter

with International Law, pp. 5-6. 성하는 ‘개념투쟁’의 장이었다.

1864년의 프로이센-덴마크 선박 사건은 이러한 질서 간 충돌이 실제 외교적 실천에서도 나타난 대표적 사례였다. 이 사건에서 공친 왕은 보하이만이 ‘내양(內洋)’, 즉 중국의 ‘내해(inner ocean)’라고 주 장하며 외국 간의 군사적 충돌이 중국의 중립을 침해했다고 항의하 였다. 하지만 이 때의 ‘내해’ 개념은 Wheaton의 국제법이 규정한 ‘영해(territorial sea)’와는 그 개념 범주와 법적 근거가 상이했으며, 결국 Wheaton의 논리적 해석을 통해 중국식 ‘내해’ 개념이 보편적 국제법의 틀 안에서 재정의되는 방식으로 수용되었다.74) 이는 천하 중심 질서와 국제법 질서가 단순히 병존하지 않고, 특정한 권위 구조 안에서 상호 조정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요컨대, ‘천하’와 ‘international’은 단지 표현 양식의 차이가 아니라, 질서를 정당화하고 세계를 구조화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하나는 문명 중심의 위계적 확장 체계이며, 다른 하나는 주권 평등의 경계적 질서이다. 이 개념 간 충돌은 단순한 용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번 역자와 수용자가 어떤 세계를 질서로 상상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 진다. 따라서 ‘international’을 ‘만국’으로 번역한 선택은 언어적 결정 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이고 사상사적인 절충의 결과였다.

(2) 충돌의 외교적 현현: 프로이센-덴마크 선박 사건과 용어의 혼란

‘천하’ 질서와 국제법 질서의 충돌은 단지 개념적 사유의 차원에 그치지 않았다. 이러한 추상적 대립은 1864년의 프로이센-덴마크 선 박 나포 사건이라는 구체적 외교 분쟁의 형태로 표면화되었다. 이 사 74) Rune Svarverud, 위의 책, pp. 45-46 건은 Wheaton의 국제법이 청조 외교 실무에 최초로 실천적 도구로 사용된 사례이자, 서구 개념어의 수용이 갖는 사유구조적 충돌을 입 증하는 결정적 장면이었다.

1864년 봄, 프로이센과 덴마크 간 유럽 전쟁이 한창일 때, 프로이 센은 중국 텐진 인근 다구(大沽, Dagu) 항구에서 세 척의 덴마크 선 박을 나포하였다. 이에 대해 청조를 대표한 공친왕(恭親王)은 즉각 항의하며, 해당 해역이 중국의 내양(內洋, inner ocean)에 해당하므 로 외국의 전시행위가 허용될 수 없는 영해임을 주장하였다. 이는 단 순한 외교적 분쟁이 아니라, 서구 국제법의 ‘territorial sea’ 개념과 중국식 ‘내해’ 개념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이었다.

공친왕은 프로이센 측 장관 레푸스(von Rehfues)에게 보내는 항의 서한에서, 중국 해역은 조약상 명시된 ‘중국해(中國海)’에 해당하며, 이는 ‘외국과의 평화 조약에 의해 관할이 보장된 구역’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는 이 논리를 Wheaton의 국제법 논리, 특히 ‘중립국의 권리’와 ‘해양 관할권’에 관한 조항에 근거하여 구성하였으며, 이에 따라 중국의 중립이 침해되었음을 국제법적으로 주장하였다.75)

하지만 이때의 ‘내해’라는 표현은 국제법상으로는 명확한 정의를 갖고 있지 않았으며, ‘territorial sea’와도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다. 즉, 중국 측은 Wheaton의 국제법 개념을 자국의 전통 질서 속 개념 과 등치시키려는 시도를 했지만, 양자의 개념적 기반은 본질적으로 달랐던 것이다. 이는 용어 선택이 단순한 번역 행위가 아니라, 질서 개념 전체의 전유와 조정이 요구되는 문제였음을 드러낸다.

Mingqian Li는 이러한 개념적 혼란을 ‘interference(간섭)’의 번역 문제에서도 동일하게 포착한다. 그에 따르면 ‘간섭’은 청대 문헌에서 75) Rune Svarverud, 위의 책, pp. 113-116 7가지 이상으로 번역되었으며(干涉, 侵擾, 窺伺, 插手등), 이는 개념 의 비가시성과 문화적 저항을 반영한 결과였다.76) ‘territorial sea’와 ‘inner ocean’ 간의 불일치도 마찬가지로, 개념의 불일치가 외교 실 천에서 법적 모호성과 충돌을 유발한 사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중국 외교가 Wheaton의 국제법을 실 질적으로 활용한 첫 사례로 평가받는다. 사건은 평화적으로 해결되었 고, 공친왕은 곧바로 마틴의 번역본을 공식적으로 출판할 것을 상주 하였다. 그는 번역서가 자국 외교관들에게 실질적 유용성을 제공했다 는 점을 근거로 예산 배정을 요청했고, 이는 『萬國公法』의 본격적 인 유통으로 이어졌다.77) 이는 번역이 단지 사상의 도입이 아닌, 정 치적 실천과 제도화의 출발점이었음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요컨대, 이 사건은 천하질서의 내재 개념인 ‘포섭과 중심성’과, 국 제법의 핵심 원리인 ‘경계와 권리의 분리’가 현장에서 충돌한 사건이 었다. 동시에 개념의 불일치와 용어의 모호성이 외교적 대응을 제약 하거나 오히려 창조적으로 조정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틴의 번역본 은 이 지점에서 단지 서구 법률 지식의 이식이 아니라, 질서 전환의 도구로서 기능하였으며, 이로써 ‘만국공법’은 외교 현장에서 검증된 정치적 실천물로서 위상을 획득하게 된다.

(3) ‘간섭’ 번역의 다의성과 문화적 저항

‘interference’라는 단어는 국제법에서 국가 간 내정 불간섭의 원칙, 혹은 무력 개입의 금지와 같은 중요한 규범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76) Mingqian Li, 위의 책, pp. 5–6.

77) William A.P. Martin, 위의 책, p. 288. 19세기 말 중국어로 이 개념을 번역하는 과정은 단순한 어휘 선택이 아니라, 서구 국제법의 개념 질서와 유교적 정치 문화 간 충돌이 응 축된 실천적 장면이었다. 당시 ‘간섭’은 하나의 일관된 번역어로 정 착되지 못하고, 무려 일곱 가지 이상의 다양한 표현들—干涉, 插手, 介入, 壓力, 控制, 攪擾, 調停—로 번역되었다.78) 이러한 번역의 파 편화는‘간섭’이라는 개념이 중국 지식인들의 사유 체계 내에서 명확 한 대응점을 갖지 못했음을 반영한다.

이처럼 ‘interference’의 번역은 단지 언어적 불안정의 문제가 아니 라, 개념적 불투명성과 문화적 거부감의 결과로 이해되어야 한다. 유 교적 정치 질서에서 ‘간섭’은 위계적 관계에서 상위자가 하위자에게 개입하는 행위로 간주되어, 자율성 침해라기보다 교화의 연장선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서구 국제법은 개별 국가의 ‘주권 불 가침’을 핵심 원리로 삼았기에, 간섭은 그 자체로 법적 위반이자 위 협 행위였다. 이처럼 한 용어에 대응하는 질서의 상상 방식이 전혀 달랐기 때문에, ‘간섭’은 번역자들에게 정치적, 문화적으로도 낯선 개 념이었고, 이는 곧 다의적 번역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용어의 불안정성은 구체적 외교 현장에서의 혼란으로도 이어졌다. 특히 ‘간섭’과 관련된 개념은 외교적 항의, 내정 간섭 금 지, 또는 중재 요청 등의 상황에서 정확한 법적 효력을 발휘해야 했 지만, 해당 용어들이 일관되지 못한 상태로 번역되자 실무 외교의 신 뢰성과 일관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Svarverud는 이러한 용어의 다중 성과 불확실성이 중국 측이 국제법 질서에 온전히 편입되는 데 구조 적 장애로 작용했음을 지적하며, 번역이 곧 개념 수용의 전선이자, 질서 간 협상 공간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79)

78) Mingqian Li, 위의 책, pp. 113-117 79) Rune Svarverud, 위의 책, pp. 108-110 결국, ‘간섭’이라는 단어 하나를 두고 나타난 번역의 분열은, 청말 국제법 번역이 단지 외래 개념을 옮기는 언어 행위가 아니라, 서구 질서와의 충돌을 피할 수 없는 개념사적 투쟁의 장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왜 청조가 ‘international’이라는 단어를 대응시키는 데 있어, 법적·계약적 상호주의를 전제로 하는‘국제(國際)’보다, 보다 포괄적이고 정합성 부담이 적은 ‘만국(萬國)’이라는 용어를 택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3. 번역자-수용자 간 협상 과정

(1) 협력 구조의 형성: 번역의 제도화와 인력 배치

『萬國公法』의 번역은 단순히 마틴 개인의 작업이 아닌, 청말 국가 기구와 지식인 집단이 공동으로 수행한 협력 번역의 결과물이었다. 마 틴이 번역을 처음 제안했을 당시, 그는 “유능한 관리 한 명”의 지원만 을 요청했으나, 청조는 이를 ‘외교 전략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훨씬 더 조직적인 대응을 펼쳤다. 총리아문은 1차적으로 4인의 문사(何師孟, 李達文, 張煒, 曹景榮)를 파견하여 마틴의 초안 작성을 지원하게 했고, 이후 번역의 난해함과 의미 전달의 문제를 인식한 뒤, 6개월에 걸쳐 2 차 인력 4인(陳欽, 李常華, 方濬師, 毛鴻圖)을 추가로 파견하여 문체 교정과 개념 조정을 진행하도록 하였다. 이 같은 체계적 인력 배치는, 번역 작업이 단순한 언어적 수용이 아니라 청조의 외교적 대응 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제도적 기획의 일부였음을 시사한다.80)

이러한 협력은 표면적으로는 번역 지원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청조 관료와 학자들이 번역의 개념 선택과 문체 구성에 실질적으로 개입 80) Yan, Tsz-ting, 위의 논문, pp. 27-35 한 과정이었다. 예컨대, ‘주권(主權)’과 같은 개념어는 유교 전통에서 유래한 ‘주인(主人)’의 의미망과 결합되어 조정되었으며, ‘공법(公法)’ 의 경우에도 단일한 국제 규범의 의미로 번역되기보다는, “나라 간 교류를 위해 지켜야 할 공공적 법칙”이라는 다소 유동적인 정의로 정리되었다.81) 이는 서구 국제법 개념이 단순히 옮겨진 것이 아니라, 번역자들에 의해 재구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협업 구조는 마틴 자신의 회고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난 다. 그는 당시 중국 학자들과 “각 개념어의 의미를 반복적으로 논의 하고, 문체를 다듬는 과정에 공동으로 참여했다”고 언급하며, 번역이 다층적 협의와 조정의 산물이었음을 강조한다.82) 또한, 마틴이 번역 을 시작하게 된 계기 자체가 공친왕과 문상 등 청 고위 관료의 요청 에 기반하고 있으며, 번역을 위한 ‘중국인 보조자 집단’을 청조가 직 접 조직하여 제공하였다는 사실은, 이 작업이 청말 국가 권력의 기획 아래 수행된 체계적 작업이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83)

결국, 『萬國公法』 번역은 단일한 지식인의 결과물이 아니라, 정 치적 이해와 사상적 충돌이 교차된 협상 공간에서 조율된 결과였다. 이는 단지 공동의 노동이라는 의미를 넘어, 번역자와 수용자가 함께 새로운 질서를 협상하고 조정해낸 구조를 보여준다. 이러한 협력 구 조를 전제로 할 때, ‘왜 하필 만국인가’라는 질문은 단지 언어 선택 의 문제가 아니라, 복수의 주체가 상이한 질서 감각을 조정한 결과였 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81) C. L. Tsinghua China Law Review, p. 10 82) William A.P. Martin, 위의 책, p. 280 83) William A.P. Martin, ,p.287 (2) 사유의 충돌: 언어·문화적 협상의 구체적 사례

마틴의 『萬國公法』 번역은 단순한 언어적 전달이 아닌, 외교적 지형을 뒤흔들 수 있는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프랑스 외교관 클레츠 코프스키(Kleczkowski)는 이를 두고“그를 죽여야 한다(choke him off)”고 격분했으며, “중국이 이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끝없는 문제 (endless trouble)에 시달릴 것”이라 주장했다(Carrai, 2020: 12).

이는 번역 자체가 식민적 불균형 질서에 균열을 줄 수 있는 정치 적 사건으로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미국 선교사 S. W. Williams 역 시 Wheaton의 국제법 번역이 조약체제 전반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점 을 인정한 바 있으며, 이는 번역의 파급력이 ‘통역된 지식’을 넘어 ‘전략적 재무장’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중국 내부에서도 마틴은 ‘트로이의 선물’처럼 의심받았고, 황실 인 준이 지연되던 중 1864년 프로이센-덴마크 사건을 계기로 『萬國公 法』의 실용성이 증명되면서 비로소 공식 출간이 허락되었다. 이 과 정은 곧, 번역이라는 행위가 정치적 긴장의 협상장이자, 제국적 지식 을 둘러싼 재맥락화의 장이었음을 보여준다.

『萬國公法』의 번역 현장은 단순한 어휘 대체나 문장 전환의 작 업이 아니라, 서구적 질서 체계와 중국 전통 사유 체계가 충돌하며 의미의 경계를 새롭게 재편하는 사상적 교섭의 장이었다. 마틴과 청 조 관료, 그리고 번역자 집단은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과 정치적 입 장을 바탕으로 ‘공법’, ‘주권’, ‘간섭’, ‘비준’ 등의 핵심 개념을 번역하 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긴장과 갈등을 경험하였다.

이와 같은 충돌은 구체적 사례를 통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대 표적인 일화로, 마틴이 전신기의 원리를 시연하며 서구 문명의 과학 적 우월성을 강조하자, 한 한림학사는 “중국은 사천년간 전신 없이도 대제국이었다”는 말로 응수하였다.84) 이 발언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 라, 기술문명의 진보가 곧 정치적 정당성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중 국식 세계관의 자존적 발현이었다. 서구의 문명론적 서사에 대한 이 와 같은 반발은 이후 번역 과정에서도 반복적으로 출현하였다.

예컨대, ‘ratification’이라는 개념의 번역을 둘러싼 충돌은 그러한 긴장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천진조약 체결 당시에는 이 개념이 ‘批准’으로 번역되었지만, 『萬國公法』 번역에서는 동일한 개념이 다른 표현으로 옮겨졌다.85) 이는 단순한 번역상의 일관성 부족이 아 니라, 외교적 승인 행위가 가지는 정치적 의미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 서 비롯된 것이었다. 서구 국제법에서 ‘비준’은 국가 간 법적 의무 확정 행위로 작동하는 반면, 청조의 세계관에서는 군주권의 발현과 권위에 대한 직접적 연결 고리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또한 ‘공법(公法)’ 개념을 둘러싼 해석 역시 격렬한 사상적 교섭의 장 이 되었다. 마틴은 공법을 기독교적 자연법 혹은 ‘보편선’의 개념과 연 결 지으려는 의도를 내비쳤지만, 청조 협력자들은 “公者,非一國所得 私也”라는 해석을 제시하며, ‘공법’은 특정 국가가 독점할 수 없는 공공 적 원칙이라는 유교적 관념에 근거한 것임을 강조하였다.86) 이 과정에 서 Woolsey 번역본은 마틴이‘공법’의 정의를 유교적 정당성의 문법으로 포장하는 방식으로 활용되었음을 보여주며, 단어 하나를 둘러싼 사상적 포섭과 조율의 긴장을 증언하는 사료로 작용한다.87)

이러한 사례들은 번역이 자동적이거나 중립적인 과정이 아니라, 정치적 질서를 둘러싼 해석투쟁의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각각의 용어는 84) Yan, Tsz-ting, 위의 논문, pp. 35-37 85) Yan, Tsz-ting, 위의 논문, pp. 38-39 86) Yan, Tsz-ting, 위의 논문, pp. 40 87) Rune Svarverud, 위의 책, pp. 122-125 단순히 언어적 등가물을 찾는 문제를 넘어, 질서를 어떻게 재구성하고 상 상할 것인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정치적 질문과 직결되었다. 따라서 『萬 國公法』의 번역은 ‘무엇을 어떻게 번역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어떻게 충돌하고 조정되었는가’를 통해 그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3) 개념어 선택의 협상: 의미는 어떻게 조정되었는가?

『萬國公法』 번역 과정은 단지 외래 개념을 중국어로 치환하는 작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존 사유 체계와 상충하는 서구 개념을 어 떻게 수용할 것인가를 둘러싼 의미의 협상 과정, 다시 말해 정치적 번역 행위의 현장이었다. 청말 번역자들은 단어를 옮긴 것이 아니라, 질서를 조정하였다. 이 조정의 과정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것은 ‘주권(主權)’, ‘공법(公法)’, ‘ratification’과 같은 개념어들을 둘러싼 의미의 창출과 절충이었다.

우선 ‘주권(主權)’ 개념은 유교적 정치 질서와 근본적으로 충돌하 는 개념이었다. 유교적 맥락에서 군주의 권위는 하늘(天)로부터 위임 된 덕치(德治)의 산물로서, 군민 간 계약에 기반한 서구적 주권 개념 과는 상이한 기반 위에 있었다. 그럼에도 번역자들은 이 개념을 단순 히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기존 ‘성군(聖君)’ 개념의 언어자산을 확장 하여 ‘主權’이라는 용어를 구성하였다.88) 이는 새로운 개념을 번역이 라는 외피 안에서 내부적으로 창출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공법(公法)’ 개념 또한 유사한 절충의 산물이었다. 마틴은 이를 서 구 자연법 전통에 따라 ‘보편적 공공선’의 법으로 이해했지만, 청조 협력자들은 유교의 ‘의(義)’·‘리(理)’ 개념에 기반하여 그 의미를 조정 88) Yan, Tsz-ting, 위의 논문, pp. 45-46 하였다. 이 과정은 Woolsey 번역본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었는데, 이 번역은 공법을“邦國所持以交際者,謂之法... 公者,非一國所得私也” 라고 정의하였다.89) ‘공’이라는 개념이 특정 국가의 이익이 아닌 다 자 간 질서를 전제로 한다는 유교적 보편주의로 포섭되며, 서구 국제 법의 이념과 일종의 접속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조정은 ‘ratification’의 번역에서도 드러난다. 이 개념은 천진조약에서는‘批准’으로 번역되었으나, 『萬國公法』 번역에서는 다른 표현이 채택되었다. 이는 청조 관료들이 조약의 비준이라는 행 위를 단순한 승인 절차로 이해하기보다, 황제의 절대적 권위와 직접 충돌하는 정치 행위로 간주했기 때문이다.90) 결과적으로 번역자들은 이러한 긴장을 우회하기 위해 보다 중립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을 택 함으로써 개념어를 둘러싼 문화적 긴장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를 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번역이 단지 언어의 문제를 넘어서, 세계관의 조 율이라는 정치적·문화적 작업이었음을 입증한다. 번역자는 단어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상 간 충돌의 결과로서 의미를 조율한 행위자였다. 이는 번역이 곧 개념 충돌의 협상장이었다는 명제를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4. ‘국제’ 대신 ‘만국’ 선택의 사유구

(1) 공간적 상상력의 흔적: '만국'과 천하적 질서의 연속성

청말 중국에서 ‘international’이라는 개념을 번역함에 있어 ‘국제 (國際)’가 아닌 ‘만국(萬國)’이라는 표현이 채택된 것은 단순한 어휘 상의 대체가 아니었다. 이 용어 선택은 청조 지식인들이 당면한 근대 국제질서와 전통 ‘천하’ 질서 사이의 긴장 속에서 이루어진 하나의 89) Woolsey edition, 위의 논문, pp. 12-13. 90) Rune Svarverud, 위의 책, pp. 128-129 공간적·정치적 절충이었다. 곧, 이는 질서 간 충돌의 결과이자, 세계 인식의 조율 장면이었다.

무엇보다 ‘만국’이라는 표현은 전통적 유교 세계관의 공간 질서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만국’은 천하(天下)의 중심에 위치한 중국이 주변을 점차 포섭해 가는 구조 속에서 나타나는 계층적 세계관의 확 장선상에 있으며, 이는 ‘보편 문명’의 세계를 지향하는 무경계적 공 간 상상력에 기반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만국’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자 기준으로서 역할한다는 인식을 유지한 채,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인정하는 표현이었다.91) 반면, ‘국제’는 각 국이 경계 (boundaries)를 지닌 동등한 주권체로 구성된 세계라는 근대 서구의 정치 질서를 전제한다. 이 차이는 단어의 선택을 넘어, 세계의 구조 를 어떻게 상상하는가에 관한 사유 방식의 차이를 드러낸다.92)

‘만국’ 선택은 단지 공간적 전통의 반영일 뿐 아니라, 정치적 타협 의 결과이기도 하다. 청조 관료들과 번역자들은 서구 국제법을 완전 히 받아들이기보다는, 그것을 자국 질서의 언어로 변형하여 수용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마틴은 『萬國公法』을 단순한 번역물이 아닌, 고 대 중국에도 유사한 법 전통이 있었다는 “중국 고대 국제법” 발명 담론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이는 청조 지식인들의 문화적 자존감 과 정치적 위신을 보존하려는 시도와 절묘하게 결합하였다.93) 결국 ‘만국’은 서구 체제를 수용하면서도 기존 수사 전통을 해체하지 않으 려는 타협의 언어적 형식이 된 것이다.

또한 이 용어 선택은 당대 언어 구조의 제약과 창의성의 산물이었다. 19세기 중엽 중국어에는 오늘날 ‘international’을 정확히 지칭할 수 있 91) Wang Hui, 위의 책, pp. 78-82.

92) Rune Svarverud, 위의 책, pp. 145-147 93) Rune Svarverud, 위의 책, pp. 147 는 ‘국가 간’ 개념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번역자들은 ‘국제’라는 조어보다는, 보다 포괄적이고 유연한 개념어인 ‘만국’을 통해 그 의미를 포섭하려 했다. 이 같은 전략은 유교적 언어 체계의 자원을 재배치하여 새로운 개념을 번역하는 창조적 실천으로 해석될 수 있다.94)

이러한 선택은 일본의 사례와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일본은 1873년 미쓰쿠리 린쇼(箕作麟祥)에 의해 ‘국제법(國際法)’이라는 신 조어를 창조하였고, 이는 근대적 국가 체계를 전제로 한 국제질서를 명시적으로 수용한 결과였다. 반면 중국은 ‘만국’이라는 표현을 통해 외래 개념을 내면화하면서도 전통 질서를 해체하지 않는 방식의 수 용 전략을 택하였다.95)

요컨대 ‘만국’이라는 용어의 선택은 단지 번역상의 편의가 아니라, 사유 구조, 정치적 타협, 언어적 한계의 교차점에서 이루어진 절충적 산물이었다. 이 용어는 천하질서의 공간적 유산을 보존하면서도, 외 부의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는 문화적 수용의 전략어로 기능하였다. 이는 번역이 단순한 개념 대응이 아닌, 세계 질서를 구성하는 사상사 적 행위였음을 시사한다.

(2) 타협의 언어: 마틴과 청조 관료의 수사적 협상

‘international’이라는 개념이 ‘만국’으로 번역된 과정은 단순한 어휘 선택이 아니라, 문명 담론과 질서 인식이 충돌하고 조정된 수사적 협상 의 장이었다. 청조는 서구의 제도와 이론을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았으 나, 동시에 자국의 전통 질서를 직접적으로 해체하지 않으려는 수사적 94) Yan, Tsz-ting, 위의 논문, pp. 48-50

95) Han Sang-hee, 위의 논문, pp. 200–204. 보존 전략을 취했다. 반면, 마틴은 기독교적 자연법의 보편성을 중국에 소개하려는 문명화 사명을 갖고 있었으나, 그것이 청조 관료들의 수용 범주 안에서 수용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문화적 포장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마틴은 『萬國公法』의 핵심 개념들을 단순히 서구 법적 언어로 전달하기보다는, 그것을 중국 고유의 사유 전통에 호소 하는 방식으로 번역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공법(公法)’의 개념 정립이다. 마틴은 ‘public law’를‘공법’으로 옮긴 뒤, 이를 단지 법적 규칙이 아닌 도덕 질서와 공공성을 담은 개념으로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공법은 국가들이 교류할 때 따르는 법이며, ‘공’이 란 어느 한 나라가 독점할 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96) 이는 유교 전 통에서‘공(公)’이 지닌 도덕적, 비독점적 성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 여, 서구 국제법 개념을 자국 질서의 언어로 해석하려는 전략이었다.

마틴 자신도 『A Cycle of Cathay』에서, 자신이 용어를 중국 관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였음을 인정한다.97) 그는“‘public law’를 나는 ‘공법’이라 번역했으며, 이를 중국 전통 개념에 부합하도록 설명하였다”고 회고하였다.이는 그가 단순한 언어 전달자가 아니라, 문화적 의미를 협상하 는 실천적 번역자였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그는 춘추전국시대에 이미 중국 에는 유사한 국제 질서가 존재했다는‘중국 고대 국제법’ 발명 담론을 통해, 청조 엘리트의 문화적 자존감에 호소하려 했다.98)

한편, 청조 관료들 역시 이 번역 작업에 수동적으로 임하지 않았 다. 그들은 마틴의 문명주의적 서술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과 충돌 하는 지점에서 수사적 조정을 요구하였으며, 일부 협력자는 번역 과 정에서 용어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전통 어휘로 변형하는 방식으로 96) Woolsey edition, 위의 논문, pp. 12-14.

97) William A. P. Martin, A Cycle of Cathay, p. 283. 98) Maria Adele Carrai, 위의 책, pp. 217-222. 저항과 절충을 병행하였다.99) 이들은 마틴이 제안한 기독교적 자연 법의 세계관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그것을 ‘공(公)’이나 ‘의(義)’와 같은 유교 어휘를 통해 재해석하고, 번역 언어 안에서 새 로운 의미 체계를 구성하려 하였다.100)

이와 같은 조율의 결과로 선택된 번역어가 바로 ‘만국’이었다. ‘만 국’은 마틴이 지향한 보편 문명 담론과, 청조 관료들이 수호하려 했 던 전통 질서가 상호 양보를 통해 구축한 상징적 언어 공간이었다. 이는 ‘만국’이 단지 ‘international’의 공간적 대응어로 쓰인 것이 아 니라, 문명론과 정치현실이 타협한 수사적 결정체임을 보여준다. (3) 창조적 번역과 질서 상상력

‘만국’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어휘 차용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대 중국어의 어휘적 공백 속에서 사유 체계를 새롭게 조직하고자 했던 창조적 번역의 산물이었다. 19세기 중엽, 중국어에는 ‘international’ 이라는 개념을 정확히 포괄할 수 있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國 際’라는 용어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으며, 이후 1873년에야 일본의 미츠쿠리 린쇼(箕作麟祥)가 『國際法』이라는 번역어를 창안하면서 처음 등장하게 된다.101) 반면 중국의 번역자들은 기존 어휘 자원 내 에서 사상의 틈을 메우기 위한 창조적 전략을 선택하였다.

‘萬國’은 본래 존재하던 표현이었으나, 『萬國公法』의 번역 과정에 서는 이 전통 어휘가 새로운 맥락 속에서 재의미화되었다. 번역자들은 ‘만국’을 단순한 수사적 장치가 아니라, 서구적 개념을 수용 가능한 형 99) Yan, Tsz-ting, 위의 논문, pp. 37-39 100) Rune Svarverud, 위의 책, pp. 145-150 101) Han Sang-hee, 위의 논문, pp. 202-203. 태로 재배치한 결과물로 구성하였다. 이는“단어를 고른 것”이 아니라, 의미를 담기 위해 단어를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러한 작업은 Svarverud가 지적하듯, 기존 어휘 안에 새로운 개념을 담는 ‘semantic innovation’의 시도였으며102), 그 과정에서 ‘주권(主權)’, ‘공법(公法)’, ‘간섭(干涉)’과 같은 신조어들 또한 동시에 탄생하였다.103)

이러한 창조적 번역은 단순한 언어의 기교를 넘어선, 질서에 대한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번역자들은 유교적 어휘(‘義’, ‘理’, ‘公’ 등)를 재맥락화함으로써, 기존의 천하적 공간성과 서구적 국가 체계를 병치 하려는 시도를 감행하였다. ‘만국’은 곧 무경계의 도덕적 세계(天下) 와 다수 국가의 법적 질서(international system)를 동시에 표현하는 하이브리드적 개념이었다. Zhiguang Yin이 말하듯, 이러한 번역은 단순한 대응(transposition)이 아니라, 정치적·철학적 투쟁이 벌어지는 개념 공간에서의 협상 결과였다.104)

요컨대 ‘국제’라는 표현이 부재한 상황에서, 번역자들은 ‘만국’이라 는 표현을 통해 서구 국제 질서를 천하 질서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창조적 번역을 시도했다. 이는 단어 선택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질서를 구성하기 위한 수사적 상상력의 결과였으며, 당시 번역자들이 단순한 중계자가 아니라 개념 생산의 주체였음을 시사한다.

Ⅴ. 결론

본 논문은 『萬國公法』에서 ‘international’이 ‘국제’가 아닌 ‘만국’ 으로 번역된 이유를 단순한 어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질서 인식의 102) Rune Svarverud, 위의 책, pp. 153-157 103) Yan, Tsz-ting, 위의 논문, pp. 45-48 104) Zhiguang Yin, 위의 책, pp. 11-13. 충돌과 협상, 그리고 번역자들의 사상적 조정이라는 구조 속에서 조 망하였다. 이 과정은 ‘천하’라는 유교적 보편 질서와 서구 국제법의 평등 국가 체계 간의 충돌, 마틴과 청조 관료 사이의 협상, 언어적 대안의 조정, 그리고 최종적으로 ‘만국’이라는 용어의 선택으로 이어 진 사상사적·정치사적 긴장의 연속선상이었다.

첫째, ‘국제’라는 표현이 아닌 ‘만국’이 채택된 것은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닌, 세계 질서에 대한 서로 다른 상상력 간의 충돌에 기인 하였다. 청말 중국은 서구의 국가 체계가 전제하는 경계 중심의 세계 관에 대해, 경계가 없는 천하적 공간성으로 응답하였다. 이 점에서, ‘만국’은 천하 질서의 확장적 연속선 위에 놓인 표현이자, 새로운 국 제적 맥락 속에서 의미를 재편성한 결과였다.

둘째, 번역의 현장은 단순한 의미의 전달이 아니라, 문화적·정치적 협상장이었다. 마틴은 기독교 자연법을 보편 질서로 삼고 이를 중국 에 이식하려 했으나, 청조 관료들은 전통적 어휘와 사유 구조를 통해 이를 재조정하였다. Maria Adele Carrai가 지적하듯, 마틴의 번역은 “중국 전통과 서구 국제법의 접합을 시도한 정치적 행위”였으며, 그 결과는 충돌이 아닌 타협이었다.105)

셋째, ‘만국’이라는 번역어의 채택은 기존 질서의 포기라기보다, 유 교적 언어를 보존하며 새로운 질서를 수용하려는 절충적 시도였다. 공법(公法)을 ‘모든 나라가 따르는 비독점적 법’으로 설명하거나, ‘주 권’을 군주 권위가 아닌 공동 질서로 재맥락화한 사례들은, 번역이 단순한 등가 대응이 아니라 개념 창조의 장이었음을 보여준다. Zhiguang Yin의 표현대로, 번역은 “보편성의 구성”이며, 중국 질서 와 서구 질서가 협상한 공간이었다.106)

105) Maria Adele Carrai, 위의 책, p. 219. 106) Zhiguang Yin, 위의 책, pp. 11–13. 결론적으로, ‘만국’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언어적 편의가 아니라, 동 아시아 사유의 전환점에서 등장한 질서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이 용 어는 ‘국제’라는 단어가 갖는 근대국가 중심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중국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질서를 수용할 수 있는 정치적 언 어로서 기능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국제법’의 수용이라는 외형적 제도사에서 벗어나, 번역을 통한 질서 구성의 내면을 복원하는 시도 로서, 중국 근대성과 동아시아 개념사의 탐구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본 연구는 『萬國公法』 번역에서 ‘international’이라는 개념이 ‘만 국’으로 옮겨진 사건을 단순한 언어 선택이 아니라, 사상사적 전환의 결정적 장면으로 분석하였다. 이는 근대 국제질서의 수용이라는 외형 적 제도사의 틀을 넘어서, 중국 지식인들이 기존의 천하 질서를 어떻 게 재구성하며 새로운 개념 질서를 사유했는가를 복원하는 시도였다.

‘만국’이라는 표현은 근대 국가 간 질서를 지시하는 ‘국제(國際)’와는 다른 공간적 상상력에서 기원한 것이다. 그것은 무경계적 보편성을 전 제하는 천하관의 확장된 표현이며, 청조가 서구의 평등주의 국제 질서 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자국의 위계적 문명론적 질서를 수사적으로 보존 하고자 했던 전략적 언어 선택이었다. Wang Hui가 지적하듯, ‘만국’은 ‘천하–만방–만국’으로 이어지는 연속적 공간 질서 속에서 동아시아적 보편주의의 언어로 기능하였다(Wang, 2023, p. 81).

또한, 번역된 국제법 개념들은 단순히 대응어를 찾는 기술적 과정 이 아니라, 개념의 재맥락화를 통한 정치적·도덕적 질서의 재구성 과 정이었다. 예컨대 ‘공법(公法)’은“公者, 非一國所得私也”라는 표현을 통해, 기독교 자연법적 보편성이 아닌 유교적 공공성과 도덕 질서의 언어로 번안되었다. 이는‘공법’이라는 개념 자체가 중국 전통의 공 (公)–의(義)–리(理)의 문맥 안에서 유의미하게 새로 조직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러한 번역 행위는 결과적으로 중국적 언어와 개념의 틀 속에서 서구 국제법 체계를 소화하고 저항하며 동시에 변형하는 복합적 사 상 운동이었다. Mingqian Li는 이를 두고 “번역은 서구 법 질서를 중국적 사유 구조 안에서 수용·조정·재구성하려는 시도”였다고 분석 하며, 그것이 단순한 ‘언어 이전’을 넘어서는 의미 생산의 장이었음 을 강조한다(Li, 2023, pp. 115–117).

결과적으로 본 연구는 청말 번역 현장이 단순한 도입이 아닌 동아 시아적 질서의 재조직이 벌어진 정치적 공간이었음을 실증적으로 보 여주었다. 이는 오늘날 중국이 국제법을 수용하고 재해석하는 방식에 도 역사적 연속선을 제공하며, “인류 운명공동체”와 같은 현대 담론 의 문화적 기원을 설명하는 데에도 이론적 단서를 제공한다. 번역은 과거에도, 지금도 질서 구성의 장치이자 정체성 구성의 실천이다. <참고문헌> Banno, Masataka. 1964. “China and the West, 1858–1861: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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