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동아시아에서 빚은 미래의 세계정치 : 사랑방의 젊은 그들 규슈를 품다
송승윤 · 성균관대학교
들어가며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총리가 1967 년 천명한 ‘비핵 3 원칙’ 이래 일본은 ‘세계 유일 피폭국’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평화 애호국가(peace-loving state)’라는 외교브랜드를 만들고 발전시켜왔다(Oros, 2018, 232). 일본의 그러한 노력은 다자 간 비핵화 레짐에 참여하거나 유엔총회와 같은 무대에서 핵군축 및 비확산 의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여 국제사회의 공론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박영준, 2009, 36). 일본은 1994 년부터 1999 년까지 유엔총회에 “핵무기의 궁극적 폐절을 향한 핵군축 관련 결의”를 제출해왔고, 2000 년과 2004 년 유엔총회에서는 “핵무기의 전면적 폐절에의 도정”을 제출하여 압도적 다수로 가결시켰다. 특히 2009 년에는 이전까지 핵군축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결의안에 반대해오던 미국이 공동제안국으로서 일본과 함께 결의안을 가결시키기도 했다.
일본의 핵무기 관련 결의안 제출은 2010 년대에도 계속되었는데, 2017 년 문재인 정부가 여기에 기권한 것에 대해 당시 보수야당이 문제제기한 바 있다. 북핵 규탄이 포함된 결의안에 정부가 기권한 것을 두고 안보적 관점에서 비판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해당 결의안에 일본의 원폭 피해사실만 강조되어 있어서 동의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일본이 2015 년부터 발의해온 “핵무기 철폐를 향한 공동행동” 결의안에는 원폭 피해자라는 뜻의 일본어 '히바쿠샤(被爆者)'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는데, 여기엔 이 용어를 국제공용어화, 일본의 피해자성을 국제무대에서 공식화하려는 의도가 담겨있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한겨레, 2017). 이 해프닝은 일본의 피폭체험과 피해자 정체성 호소가 국제정치 무대에서 문제시된 의미심장한 사례이자, 아래로부터의 민간 기억(피폭자의 증언)에 호응하여 각 국민국가가 승인하고자 한 공식기억이 탈식민 동북아 공간에서 충돌한 흥미로운 사례가 아닐 수 없다.
2010 년대를 기점으로 하여 본격화된 일본외교의 공세적 전환은 일본의 ‘전후 평화주의’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더욱 의구심을 품게 했다. 아베 내각 출범 이후 일본외교가 전후 시대의 유산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하여 ‘현대’로 이행했다는 평가가 있는가
168 하면1, 총리 개인의 신념이나 일본사회의 우경화에 주목하여 일본의 재무장을 전전(戰前)으로의 퇴행인 것으로 진단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모두 일본외교가 전후 시대와 상이한 양상을 보인다는 데에 주목하여 일본외교의 정체성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고 평가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일본 중앙정치인이 사용하는 공식 외교언어에서 일본 자신의 도덕적 확신과 피해 의식만큼은 일관되게 두드러진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의 이와 같은 자기규정은 피폭체험의 내면화라는 전후의 정신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 이 글은 국제정치학의 기존 논의들이 전후와 현대의 단절을 과장하고 있다고 보고, 전전 - 전후 – 현대를 아우르는 일본외교 정체성의 연속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오늘날 일본이 추구하는 대외정책의 사상적/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선 국제정치학이 전통적으로 정의 내려온 일본의 안보정체성(security identity)을 비판적 일본학의 관점에 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일본정신사의 연속과 단절’에 주목하여 일본외교 정체성을 평가해온 기존의 논의들을 폭넓게 검토하고, 일본의 외교적 정체성을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에 기반한 ‘도덕적 1 일본사회에서 ‘전후’와 ‘현대’의 구별은 간단치 않은 문제인데, 일본 지식사회 에서는 종전 50주년이었던 1995년을 기점으로 하여 이른바 ‘탈전후’ 논쟁이 벌 어진 바 있다. 본고에서는 이를 따라 ‘전후’는 종전부터 1995년까지를, ‘현대’는 1995년부터 현재까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로 한다.
169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현실주의’로 규정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러한 규정은 2010 년대 일본외교의 전환이 전후 평화주의로 부터의 일탈이 아니라, 그것이 예비하고 있었던 독특한 내셔널리즘의 발현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할 것이다. 특히 일본의 전후 내셔널리즘과 평화담론은 모두 피폭이라는 일방적인 2 파괴의 경험을 제외하고 논해질 수 없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 글은 그러한 관점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평화기념식과 전국전몰자추도식의 총리 연설문 (2005~2023)을 통해 일본외교의 정체성이 어떻게 언어화 되고 있는지 확인할 것이다.
현실주의와 구성주의: 전후와 현대의 단절
2 전후 일본에서 ‘전사자’라는 호칭은 ‘전쟁에서 전사한 전투원’에 한정되어 사용 되어 왔는데, 종교학자 니시무라 아키라는 공습이나 원폭 등에 의해 죽은 비전 투원인 ‘전재사자(戰災死者)’까지 포함한 표현으로서 ‘전쟁사자’를 제안하였다 (이영진, 2018, p.4에서 재인용). 본문의 ‘일방적’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구별을 염 두에 두면서, ‘전사자’들이 전투행위와 직접 연루되어 있어 전쟁-가해자적인 성 격을 지닌 것에 반해 원폭 등에 의한 민간인 ‘전재사자’들은 보다 ‘순수한(일방적 인)’ 피해자에 가깝다는 점에 주목하여 사용한 것이다.
170 일본의 외교 행태는 대단히 특이한 현상으로서 국제정치학의 오랜 탐구 대상이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은 일본의 국력 신장과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동(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핵위협)에 따라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시간문제일 것으로 전망했다(Waltz, 1993). 그러나 일본이 구조적 현실주의자들의 예상과 달리 군사대국의 길을 걷지 않자, 국제정치학은 국가의 ‘정체성’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일본’이라는 특이사례는 90 년대에 구성주의 국제정치학이 부흥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Hagström, L., & Gustafsson, K., 2015, 4-5). 일본 케이스를 두고 카첸슈타인이나 토마스 버거 같은 초기의 ‘규범적 구성주의자 (norm constructivists)’들은 일본의 국내규범과 문화에 주목했다. 규범과 문화는 매우 천천히 변화하기 때문에 일본의 비핵 정책이 비교적 일관성 있게 추진되는 것은 일본의 ‘평화 애호 문화’를 통해 잘 설명되는 듯 보였다.
아베 2 기 내각이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우며 집단적 자위권 용인, ‘미일 안보가이드라인 2015’ 공표, 11 개 안보법제 재편 등을 통해 대외정책의 전환을 시도하자(박영준, 2015) 구성주의의 설명이 도전 받기 시작했다. 중국의 부상과 그로 인한 미국의 아시아정책 변화가 일본 보통국가화의 원인인 것으로 보였고, 구조적 현실주의자들의 설명이 다시 힘을 얻는 듯했다. 구성주의 국제 정치학자들은 규범과 문화가 ‘잘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는 초기 구성주의의 전제를 수정하여 일본외교의 변화를 설명하고자 했다. 관계론적(relational) 구성주의자들은 국가의 정체성이 다른 나라와의 171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관계 속에서 상대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보고, 문화나 정체성을 탄력적이고 유연한 것으로 이해하였다(Hagström, L., & Gustafsson, K., 2015). 이들은 일본이 주변국들에 대해 가지는 인식에 주목하여 2010 년 일본외교가 일시적 조정국면을 겪는 것으로 보았다. 일본의 평화주의 내러티브가 갖는 ‘서사적 힘’(narrative power)에 신뢰를 보내며 평화주의의 지속을 예상하기도 했다(Hagström, L., & Gustafsson, K, 2019). 그러나 그들조차 최근 ‘학문적 논쟁은 아베 정부의 안보정책 변화를 온전히 설명하는데 실패’했다며 ‘일본 평화주의의 사망(Japan’s Pacifism is Dead)’을 선언했다(Gustafsson, K., Hagström, L., & Hanssen, U.,2023, 151). ‘제 2 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대외행동을 제약하던 모든 요소가 제거되었으며, 일본이 할 수 없는 안보적 행동은 거의 없어졌다’는 이들의 진단은 구성주의 국제정치학의 최종 실패를 선언하는 듯하다.
이처럼 주류 국제정치학은 어느 경우이든 일본외교가 전후 평화주의로부터 이탈하였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 원인에 대한 설명은 궁색하기만 하다. 구성주의자들은 일본의 정체성이 왜 갑자기 변화했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현실주의자들은 이전의 전후 평화주의가 어떻게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일본의 국내정치 동학이나 지도자 개인의 역사수정 주의적 신념으로부터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도 있지만 이는 단지 현상기술적인 설명일 뿐이다. 현실주의자들과 구성주의자들은 모두 전후 일본과 현대 일본의 단절을 과장하고 있기 때문에 설득력 있는
172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 안보정체성의 본질을 내셔널리즘으로 보면, 2010 년대 일본 외교의 전환은 전후 평화주의로부터의 일탈이나 단절이 아니며, 오히려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000 년대 이후가 되어서야 총리가 주도하는 ‘관저(정치)외교’가 본격화되었다는 진단과 달리(서승원, 2009; 이주경, 2021), 일본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국민을 호명하는 구조(내셔널리즘) 자체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으며, 그것이 일본 대외정체성의 지속적인 핵심이라고 봐야 한다. 이러한 입론을 위해서는 먼저 현실주의 대 구성주의의 틀로만 이해되어온 기존의 ‘일본 외교정체성 논쟁’을 ‘전전(戰前)과 전후(戰後)의 연속과 단절’이라는 일본적인 담론 구도를 통해 재정리해야 한다.
일본외교의 정체성에 대한 모색: 상인과 수도승
무사상(無思想)의 외교
일본은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19 세기 이래로 대륙국가와 해양국가, 대동아공영권 사상과 문명개화론, 발전과 협조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국가 정체성을 고민해왔다(이오베 마코토, 2003, 11-22). 이리에 아키라(入江昭)가 일본외교를 ‘무사상(無思想)의 외교’라고 지칭했을 때, 그것은 일본 외교가 고유한 정체성 없이, 대외여건에 따라 부화뇌동해 왔다는 진단이다. 이리에는 일본의 ‘무사상의 173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외교’를 ‘민간의 이상주의’ 와 대비되는 ‘정부의 현실주의’라고 보아 일본의 외교가 철저한 현실주의에 입각한 것이었음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지도자가 철학 없이 ‘무사상의 입장에서’ 상황관리와 현안처리에 급급하여 외교에 임하는 것이야말로 ‘근대일본 외교의 원류가 안고 있는 특징’이다(이리에 아키라, 1993, 42). 민간은 정부의 ‘외교관념의 무사상성에 대한 반동’으로서 일본이 ‘아시아의 지도자가 되어 서양에 대치해야 한다’는 형태의 이상주의적인 ‘아시아주의 사상’을 제기했는데, 이는 정부의 현실주의를 비판하는 맥락에서 등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이 일본외교를 지배했던 것은 1930 년대뿐이고, 그것이 외교의 지도원리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1941 년 전후의 몇 년’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리에의 설명이다(이리에 아키라, 1993, 142). 이리에는 90 년대에 출간한 저서에서 앞으로의 일본외교가 ‘전략 수준을 넘어선 사상, 문화상의 대응’을 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독선적인 아시아주의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하여 ‘문명의 혜택을 나누어 가지고, 자유와 인권의 확장을 목표로 아시아의 사람들이 보다 인간다운 생활을 하도록 협력하는’, ‘신지구주의’ 사상을 일본외교에 주문하면서 글을 맺고 있다(이리에 아키라, 1993, 304). 이리에는 일본 외교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현실주의에 기울어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칼더(Kent Calder)는 80 년대 일본의 통상정책에 주목, 일본을 ‘반응형 국가(reactive state)’로 규정하여 일본 외교가 대외여건에
174 반응하는 소극적 행태를 띤다고 보았다. ‘반응형 국가’란 국내적 동기나 국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인 대외정책을 펼치지 않으며 외부의 압력에 대해 반응하는 방식으로만 행동하는 국가를 의미하는데, 일본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칼더는 일본의 철저한 수동성의 원인으로 미국에 대한 경제적, 외교적 의존과 함께 의사결정 구조의 분절화와 이익집단의 압력을 들고 있다(Kent Calder, 1988). 사무엘스와 하긴보텀(Samuels & Heginbotham)은 일본이 군사안보 보다 기술경제적 관심에 치중하는 것을 상업적 현실주의 (mercantile realism)로 정의하여 일본의 경제중심주의 외교를 구조적 현실주의의 틀 속에서 설명하고자 했다. 저자들은 일본의 통상국가적 정체성이 에도 시대 상인들의 아첨가적인 기질과 습속으로부터 연원 하는 것으로 보았는데(Samuels & Heginbotham, 1998, 201) 이는 ‘무사상성이 근대일본 외교의 원류’라는 이리에의 평가와 공명하는 것이다.
이리에가 포착한 일본외교의 ‘무사상성’은 양면적이다. 이리에의 시각은 기본적으로 일본 외교가 국제정치 환경에 종속되어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구미 신현실주의자들의 시각과 닮아 있지만, 동시에 일본 외교의 고유한 정체성 공백을 채우고자 하는 다양한 국내 행위자들의 역동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리에가 보기에 1930~40 년대 일본외교는 다름 아닌 ‘민간의 이상주의자들’에 의한 국내정치의 역동성이 대외적 현실주의를 압도한 결과였다. 일본외교가 고유한 정체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175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일본 내에서 외교노선을 둘러싼 논쟁이 끊임없이 지속될 수 있었고, 경우에 따라 이것이 파국으로 치닫기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일본의 대전략을 둘러싼 일본 국내정치세력의 분화에 주목하는 것도 암묵적으로 일본 외교의 ‘무사상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무엘스는 일본 국내정치에서 대두되었던 2000 년대 국가 정체성 논쟁에 세밀한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일본의 대전략 논쟁에는 근본적으로 새로울 것이 없으며, 역사적으로 이미 존재해왔던 다양한 입장의 경합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Samuels, 2007). 중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서구적 민주주의와 자유의 근본적 가치들에 대한 도전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일본외교의 무사상성과 수동성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케네스 파일(Kenneth Pyle)은 아베 정부 대외노선의 ‘혁명적 전환’을 목도하면서, 2010 년대 이후 미국 주도 세계질서의 쇠퇴가 일본 외교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Kenneth Pyle, 2018). 경무장과 경제중심주의로 특징지어지는 일본 전후 외교의 준거 틀인 ‘요시다 노선’의 물적 토대가 미일동맹과 샌프란시스코 체제였다면, 미국 패권의 상대적 쇠퇴 국면은 요시다 노선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파일은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 대한 아베의 적극적인 외교행보는 일본외교의 ‘인도-태평양 전략’으로의 전환을 암시하는 것이며, 아베가 우익 신념형 지도자라는 일각의 시선과 달리 아베는 철저히
176 실용주의적이고 전략적인 외교를 지향한다고 평가한다. 이 경우 역시 일본외교의 변화가 대외환경의 변화로부터 비롯될 것으로 전망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아베가 ‘무사상’의 정치인이라고 봤다는 점에서 일본의 국가정체성을 근본적으로 수동적인 것으로 보는 입장으로 분류할 수 있다.
평화국가론
일본외교를 바라보는 또다른 주요 입장은 일본을 평화국가로 보는 시각이다. 일본은 대외적으로 ‘평화 애호 국가’를 표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평화로운 선진국 시민’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광범위하게 공유하고 있다(Kim, 2010). 일본의 국가정체성으로서 ‘평화주의’는 일본의 ‘핵 알레르기’, 국민적인 반전(反戰), 반군(反軍) 관념 및 평화헌법에 대한 지지여론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일본외교를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보는 ‘무사상의 외교’ 옹호자들은 일본 외교의 속성이 근세 시기부터 이어져온 것으로 보아 상대적으로 전전과 전후의 연속성에 주목한다. 반면, ‘평화국가론’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과 원폭 피해 경험을 계기로 역사적 교훈을 얻어 국가이념의 변화를 경험했다고 보기 때문에 전후 외교의 독특성과 과거와의 단절성을 강조한다. 일본 국민들이 전쟁 중 체험한 공습과 피폭의 체험, 군국주의 지도자들에게 ‘속았다’는 반감, 학도병들의 군대 체험 등(남기정, 2014)으로부터 형성된 염전과 177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반군의 심성이 전전과 전후 외교를 결정적으로 단절시킨다는 것이 평화국가론의 기본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평화국가론자들은 제도화된 전후 평화주의의 내구성에 주목하기 때문에 일본외교정책이 비탄력적이고 경로의존적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국제정치학에서 이러한 측면에 주목하는 것은 구성 주의자들이다. 카첸슈타인(Katzenstein)은 2 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국민들의 ‘사회적 학습의 심도’가 평화 우호적인 공공여론을 만들었고, 이것이 일본의 대외행동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다고 보았다(Katzenstein & Okawara, 1993; Katzenstein, 1996). 토마스 버거(Thomas Berger)는 일본의 경험을 같은 패전국인 독일의 경험과 비교하면서, 패전의 경험이 일본인들에게 어떻게 독특한 반군사주의(antimilitarism) 관념을 형성하도록 했는지 분석한다. ‘일본이 재무장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독일과 달리 일본이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피해의식 속에서 군대 자체에 대한 반감을 광범위하게 공유했다는 데에 주목하면서 일본이 근미래에는 군사대국화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Berger, T.,1995,135-137). 같은 물음을 2010 년대의 맥락에서 검토한 오로스(Andrew Oros) 역시 일본이 형성해온 전략문화(strategic culture)가 안보 정체성 으로서의 국내적 반군사주의(domestic antimilitarism)를 지속시킬 것으로 보아 일본의 군비확장은 매우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질 것으로 분석했다(Oros, 2017).
178 사카이데쓰야(酒井哲哉)는 일본 내에서의 전간기 국제 정치학 수용사에 초점을 맞추어 전전 및 전중과 구별되는, 전후 일본외교의 독자성을 부각한다. 사카이에 따르면 일본의 전후 평화헌법을 전간기 이상주의 국제정치학의 구현으로 보는 것은 요코타 기사부로(橫田喜三郞)에 지나치게 주목하는 것이다. 전후 지식인들의 ‘마음 속에’ 있었던 국제정치학은 요코타식의 윌슨 주의적 집단안전 보장론과 이상주의적 세계정부론이 아니라 다바타 시게지로 (田畑茂二郞)가 주목한 바텔(Vattel) 식의 ‘진보적, 항의적 주권개념’ 이었다. 요코타가 지지했던 집단안전보장은 냉전 체제 속에서 전면 강화론 반대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구미의 반공주의적 이상주의에 가까워 일본 국제정치학의 주류였던 항의적 주권개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본 전후 평화론의 주도권은 요코타가 아니라 마루야마 마사오 등이 이끌었던 ‘평화문제담화회(담화회)’가 쥐었다는 것이 사카이의 평가이다. 평화문제담화회는 전면강화론을 내걸고, 국제연합이 사실상 ‘반공 십자군’으로 기능할 것을 우려하면서 ‘아래로부터의 내셔널리즘에 의해 지탱되는 주권 개념을 갖고 보편주의 비판, 시민사회론, 반제국주의론의 세 가지를 통합하는 전후 외교론’(사카이 데쓰야, 112)을 형성했다. 사카이는 ‘윌슨주의 가 파탄한 1930 년대에 청춘을 맞이했던 세대의 복잡한 심정에서 생겨난’(사카이 데쓰야, 113) 진정한 의미의 평화론으로서 전후 평화주의의 독자성을 평가하고자 한다.
179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이상에서 검토한 일본 국제정치학의 시도들 역시 대체로 만족스럽지 못하다. ‘무사상의 외교론’이 일본을 냉정하고 효율적인 ‘생계형 상인’로 본다면, ‘평화국가론’은 일본을 전의를 상실한 ‘금욕적인 수도승’으로 본다. 하지만 일본을 상인이나 수도승으로 보는 것은 일종의 문화적 편견이 작동한 결과일 뿐이다. ‘무사상의 외교론자’들의 가장 큰 약점은 일본의 군국 주의 경험을 지나치게 사소하거나 예외적인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본의 구체적인 역사체험을 ‘상인 기질’과 같이 관념적인 수준에서만 다루고, 대외노선을 둘러싼 국내의 논쟁 구도 역시 현재적 관점에서 정리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입장을 따르면 2010 년대 일본외교의 전환과 군사대국화 가능성을 두고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식의 어설픈 답변에 만족하거나, 케네스 파일의 경우와 같이 외부에서 변화의 원인을 찾게 되어 일본사회의 독특성에 기반한 내재적인 설명을 포기 해야한다. ‘평화국가론’은 일본의 전쟁체험을 중요한 사건으로 취급하고 전쟁을 전후로 하여 일본 외교의 정체성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본다는 점에서 일본의 역사체험에 비교적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나, 전후 평화주의의 성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어 일본의 외교적 정체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없다. 가령 평화국가론자들은 아베의 ‘적극적 평화주의’ 언설을 내재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결국 일본외교 전환의 원인을 국제구조의 변동과 같은 외부요인으로부터 찾게 되어 비물질적인 관념과 규범에 방점을 두겠다는 스스로의 전제를 배신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전전과 전후를
180 완전히 단절된 것으로 인식하는 평화국가론은 탈냉전기 동북아시아 시공간의 탈식민적인 맥락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역사학 분과에서 시도되어온 ‘기억의 정치학’을 참조하여 ‘전후 평화주의’의 중층성을 드러낼 필요가 제기된다.
기억의 정치학:
마루야마 마사오의 전후 내셔널리즘과 대항기억들
역사학에서 기억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된 것은 탈냉전 이후, 거대서사가 몰락하고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인간들의 증언과 서사가 아래로부터 솟구치기 시작한 것과 관련된다. 기억의 역사학은 내셔널리즘을 국민국가의 공식기억과 아래로부터의 풀뿌리 기억 사이의 긴장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기억의 정치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일본은 지속적으로 근대적인 의미의 ‘일본 민족’을 추구해왔다.
다른 국가들은 1950 년대만을 ‘전후(postwar)’라고 지칭하고 그 이후를 ‘현대(contemporary)’로 지칭하는데, 일본만은 ‘전후(sengo)’ 라는 표현을 90 년대까지 공공연하게 사용해왔다는 점에서 일본의 전후는 과거의 특정한 시기가 아니라, 평화나 (자유)민주주의 같은, 현대 일본사회의 기본전제들을 구성하는 ‘중층적 기억’으로서의 ‘장기 전후’였다(Gluck, 1993, 93). 전후일본의 ‘공식기억’은 마루야마 마사오 버전의 ‘전후 내셔널리즘’이었다. 일본 ‘전후 내셔널리즘’의 181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핵심은 (자유)민주주의와 내셔널리즘의 종합으로 특징 지어지는 ‘올바른 근대성’을 추구하기 위해 전중(戰中)과 전후를 단절시키는 것이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이 정상적인 근대화 경로로부터 벗어나 패망한 원인은 내셔널리즘이 위로부터의 국가주의와 동일시되는 바람에 자발적인 정치참여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마루야마는 30 년대와 40 년대를 우회하여 에도 시대의 유교사상으로부터 건강한 근대성의 맹아를 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한 근대적 개인의 ‘애국’을 전후 일본의 재건을 위한 새로운 국가정체성으로 제시했다. 평화헌법 제 9 조 역시 전후 일본의 재출발을 위한 새로운 내셔널리즘의 기반이었다. ‘평화나 도덕의 주장’이 ‘일본에게 남겨진 마지막 국가정체성의 기반’이었기 때문이다(오구마 에이지, 2019, 193).
그러나 다양한 행위자들의 증언과 서사가 투쟁하는 ‘기억의 장소’(Pierre Nora)에서, 공식기억은 아래로부터의 풀뿌리 기억에 의해 도전 받기 마련이다. 마루야마는 전후 재건의 이데올로기로서 새로운 내셔널리즘을 제시하면서 전쟁체험을 추상화하고 비인격화했지만, 전쟁체험은 매우 구체적인 죽음의 기억을 우회하고는 다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프란지스카 세라핌(Franziska Seraphim)은 개인의 전쟁 기억과 전몰자에 대한 애도문화가 일본의 공식기억에 편입되거나 그것과 긴장관계를 이루는 양상을 이익집단 정치 동학을 통해 분석했다. 리사 요네야마(Lisa Yoneyama)는 보다 구체적으로 원폭 희생자의 기억이 일본의 공식기억에 균열을 일으키는 과정을
182 분석했다. 일본은 원폭 문제에 있어 줄곧 피해자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기억을 ‘국유화’히고자 했는데, 조선인 피폭자의 증언이 등장하면서 ‘히바쿠샤 서사’가 취한 기억의 선별과 선택적 침묵, 그리고 식민주의의 잔재가 폭로되었다. 오구마 에이지(小熊英二)는 전후 일본이 표방하는 반핵 평화주의가 단일민족 이데올로기에 기반해 있었다며 일종의 탈식민주의적 비판을 제기한다. 포스트 제국의 전후 내셔널리즘이 전전과 전후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과정에서 제국이 병합하고자 했던 조선인과 오키나와인 등을 배제했다는 비판은 피폭자 서사의 국유화 과정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것이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대내적 민주주의와 대외적 평화주의를 통해 관념으로써 전후 시대를 구축하고자 했지만, 실제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전쟁시대에 대한 민간의 애도 기억과 지속적으로 뒤섞이면서 형성된 것이었다. 후술하겠지만 그 본질은 다름아닌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였다.
1990 년대에는 기억을 동원하여 전후와 구별되는 일본의 ‘현대’를 구획 짓는 것이 일본 지식사회의 당면 과제였다. ‘종전 50 주년’이었던 1995 년 출간된 가토 노리히로(加藤典洋)의 <패전후론(敗戰後論)>은 그러한 시도의 일환이었다. <패전후론>은 일본의 전쟁책임을 지기 위한 민족 주체가 형성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시아의 2 천만 희생자에 앞서 일본의 3 백만 전쟁사자들에 대한 애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어찌 되었건 일본이 전쟁 책임을 인정하고 ‘아시아의 2 천만’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는 사실을 183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패전후론>의 관점은 우익 역사수정주의에 비해 진일보한 인식일 수 있다. 하지만 하르투니언(Harootunian)은 가토가 ‘식민주의적 위계 구조를 죽은 자들 사이에서 되살리고 있다’며 극우나 다름없다고 보았다(Harootunian, 2000, 727). <패전후론>의 핵심 문제의식은 일본에서는 자국민 ‘전사자 숭배’가 금기시되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근대국가가 형성되지 못했다는 것으로, 일본이 전후시대를 끝내고 ‘정상적인’ 국제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일본인 희생자를 ‘먼저’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르투니언은 기억과 역사를 구별하면서, 현대 일본의 우파 이데올로그들이 반복적으로 ‘기억’을 동원해서 ‘역사’를 부인하고자 하는 구조를 발견한다. 이들은 ‘진정한 기억’을 통해 ‘역사’를 수정하여 ‘전후’를 종결시킴으로써 현대 일본사회의 문제들을 극복하고자 한다(Harootunian, 2000, 725). 이처럼 일본사회에서 전쟁에 대한 기억과 전사자에 대한 애도는 현재적 요청에 의해서 반복 소환되어 일본인의 정체성과 민족적 자아를 구성하는 기제였다.
일본에서 끊이지 않는 ‘애도와 기억의 정치학’의 본질은 강력한 근대지향성이다. 그리고 이것은 90 년대에 새롭게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전후 시대부터 지속된 것이었다. 탈식민 동북아시아 ‘기억 체제’의 복잡성은 일본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외교적 정체성으로까지 작동하게 했다. 식민화와 탈식민 및 국민국가 형성의 경험 속에서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새로운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할
184 필요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는데, 이때 제 2 차 세계대전에 대한 기억이 다양한 방식으로 동원되고 활용되었다. 냉전 해체 후 샌프란시스코 체제 하에서 억압되었던 ‘아래로부터의 기억’들이 재부상하고, 민주화된 한국과 대국화한 중국이 새로이 도입하고자 하는 공식기억이 이에 호응함에 따라, 전후 일본이 선택적 망각을 감수하면서 봉합해왔던 ‘동북아시아 기억 체제’에 대한 근본적 수정이 시도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국제정치적 수준의 갈등으로 분출되고 있는 것이 현재 동아시아 지역이 경험하고 있는 ‘과거사 갈등’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Fujitani et al, 2).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와 도덕적 현실주의
일본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다층적인 기억과 증언이 투쟁하는 ‘기억의 장소’로서 내셔널리즘을 역사화하는 것에서 나아가, 전사자를 숭배하고 애도하는 행위가 근대 국민국가를 가능하게 하는 시민종교의 핵심이라는 인류학의 시선을 참조하면 전후 일본 내셔널리즘의 근대지향적 본질에 더욱 다가갈 수 있다. 시민종교는 무의미한 죽음을 국가와 공동체를 위한 ‘위대한 희생’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민족이나 조국과 같은 세속적인 실체에 신성한 지위를 부여한다(임지현, 2021). 국민국가는 추모의례와 기념식을 통해 이를 185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제도화한다. ‘근대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무명용사의 기념비나 묘지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없다’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언명에서 알 수 있듯, 전사자 숭배와 시민종교야말로 근대 민족주의의 본질인 것이다.
임지현은 여기에 ‘지구화’와 ‘보편 인권규범’의 등장이라는 맥락을 반영하여 근대적인 전사자 숭배와 구별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도입한다. 과거 집단적 숭배의 대상은 고전적인 민족주의 영웅에 한정되었고, 이 영웅적 죽음은 엘리트주의적 순교로 승화되어 각국의 민족주의를 자연화 했다. 그러나 지구화 시대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전쟁영웅이 아닌 무고한 민간인 사망자까지 숭배의 대상으로 하는 ‘죽음의 민주화’를 전제로 한다. 냉전 시대를 지배했던 진영화 된 피해자 서사는 탈냉전을 계기로 보편적 도덕의 언어로 재편되었다. 임지현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을 유대민족만의 비극이 아닌 인류 전체의 고통 기억으로 보편화한 스톡홀름 선언이 있었던 2000 년을 ‘지구적 기억체제의 0 년’으로 설정한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학살과 전쟁범죄를 인류의 이름으로 단호하게 단죄하는 21 세기적인 인권 감수성의 지평 위에서, 무엇보다 도덕적 정당성에 기반하여 작동하는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라는 것이 임지현의 입론이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핵심은 집합적 피해자로서의 도덕적 우월감에 있는데, 국민국가들이 도입하고자 하는 공식기억들 사이에서 끝없는 ‘도덕성 경쟁’이 벌어지면서 또다른 내셔널리즘의 강화가 나타난다. 죽음의 민주화와
186 함께 나타난 ‘순교의 국민화’로 인해 지구화의 흐름 속에서 내셔널리즘은 오히려 강화된다.
일본은 패전의 우울과 고통 속에서 재빠르게 자신의 지위를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옮겨 놓고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강화했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위로부터의 정치종교적 시도가 아래로부터의 풀뿌리 기억과 결합해야 하는데, 일본의 경우 오랫동안 깊은 풀뿌리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이 과정이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그 첫번째 축은 서구세계에 대한 인종주의적 피해 의식이었다. 아시아의 일원으로서 ‘서양식민주의의 피해자’라는 인식은 근대초기부터 일본 기층에 만연했다. 일본 민족주의의 출발은 메이지 초기의 저항 민족주의였고, 대동아공영권 역시 미 제국주의로부터 아시아를 해방하고 방어하려는 역사적 사명감 속에서 시도되었던 것이었다(임지현, 2021, 242). 이러한 반서구적 민족주의는 패전 이후 인종주의적 피해의식으로 나타났다. 일본이 보기에 미국이 원자폭탄을 독일이 아닌 일본에 사용한 것은 서양인의 인종주의적 편견이 작동한 결과였다. 도쿄재판에 대해서도 일본인들은 미국이 ‘승자의 정의’를 일방적으로 적용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도쿄재판의 유일한 인도인 판사였던 라다비노드 팔(Radhabinod Pal)이 일본에 대해 보였던 우호적인 입장이야말로 인종주의에 오염되지 않은 공정한 판단이었다는 인식이 대표적이다(다우어, 2009). 이처럼 일본은 연합군 최고사령부(SCAP) 187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치하에서 스스로가 ‘포스트식민주의 상황에 놓여 있다고’ 인식했다(임지현, 2021, 266).
희생자의식을 강화하는 두번째 축으로서 기억의 ‘탈맥락화’는 ‘분리 – 담론화 – 철학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먼저 군국주의 지도자들과 일본의 일반 민중을 ‘분리’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패전 후 가장 많이 사용된 수동표현은 다름아닌 “다마사레타(だまされた, 속아버렸다)”였는데, 이는 평범한 일본인들이 지도자들에게 속았다는 확신이 반영된 언어였다 (다우어, 2009, 633). 당대 일본인들이 전시 동원체제 하에서 군부와 민간이 이루고 있었던 공범성을 망각하고 ‘군부, 군국주의, 체제와 같은 추상’이야말로 진정한 전쟁의 가해자라고 인식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도자급만을 선별하여 처벌했던 도쿄재판 역시 ‘분리’를 정당화했다. 마루야마 마사오 식의 ‘전후 내셔널리즘’ 하에서 일본의 전쟁범죄는 ‘비정상적인 근대화에 의한 불가피한 결과’인 것으로 ‘담론화’되었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군벌, 관료, 관제 단체가 인민의 자주성과 창의성을 질식시키고 국민의 총력이 발휘되지 못하도록 막았기 때문’이었으며(임지현, 2021), 일본인들은 두 번 다시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는 서구식의 ‘정상적인 근대화 경로’를 다시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후 일본이 ‘평화’와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고, 교육과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정책을 편 것은 이러한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결정적으로 일본의 피해 기억을 탈맥락화한 것은 원폭의 압도적 파괴력 자체였다. 원자폭탄의
188 파괴력에 대한 인식은 당대부터 이미 철학적이고 종교적이었 다(다우어, 2009). 나가사키의 경우 특유의 기독교적인 분위기 탓에 희생자들의 사망은 ‘순교’로 쉽게 우상화 될 수 있었다. 임지현은 나가사키의 의사이자 가톨릭 신자였던 나가이 다카시 박사를 매개로 하여 피폭의 기억이 아우슈비츠의 고통과 병치됨으로써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본질화되고 정당화되었던 사례를 인상적으로 서술한다(임지현, 2021, 369-370).
일본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전후 재건과 전몰자에 대한 추모의례를 통해 ‘국민화’됨으로써 완성되었다. 패전 직후 GHQ 에 의해 수개월간 지속되었던 검열로 인해 자유로운 추모와 애도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범아시아주의적 언사, 죽음, 파괴, 패배 등 전쟁을 연상시키는 주제는 물론, 슬픔과 전사자에 대한 추모도 모두 검열의 대상이었다(다우어, 2009, 523). 점령군의 검열체제 하에서 지연된 슬픔과 애도는 후대에 야스쿠니 신사 초혼제나 특공위령제 등 다양한 정치종교의 형태로 민간과 지역사회에서 분출되었다(임지현, 2021, 139-141; 이영진, 2018). 8 월의 수많은 전쟁기념 행사들 가운데서도 일본총리의 방문이 공식화되어 있는 것은 정부가 주최하는 ‘전국전몰자추도식’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열리는 ‘평화기념식’ 이다. 피폭의 기억은 일본사회의 ‘희생자의식을 더 강화하고 기억의 국민화를 재촉했다’(임지현, 2021, 221). 후술하겠지만 이때 이루어지는 총리 연설은 애도의 대상을 암묵적으로, 때로는 189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명시적으로 일본인 전몰자에 국한함으로써 ‘순교의 국민화’를 수행한다.
도덕적 현실주의
전후 내셔널리즘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적인 요소가 현대 일본의 외교적 정체성으로 발현된다고 하였을 때, 그 국제정치학적 핵심은 두 가지다. 먼저 보편적 인권 개념이 정립된 국제사회에서 희생자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동원되는 피해의 기억과 죽은 자들에 대한 애도는 광범위한 도덕적 호소력을 지닌다. 근대 민족주의가 일국적 민족영웅의 무공(武功)에 기반해 있었다면, 21 세기 지구적 기억 체제에서 민족주의의 기반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야만적 학살을 혐오하는 보편적 도덕 감수성에 있다(임지현, 2021). 일본이 대외적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경험한 ‘절대 피해’로서의 피폭체험을 강조해온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피해자 정체성을 강조하고 ‘고통에 대한 지구적 공감’을 호소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도덕적 강자’로 거듭나 발언권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러너(Lerner)는 국제무대에서 국민국가가 시도하는 피해자 정체성의 강조와 ‘슬픔의 외적 투사(grievance projection)’가 가해-피해와 직접 관련 없는 제 3 국의 지지를 쉽게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외교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보았다 (Lerner, 2020, 69-71). 고통에 대한 공감과 잔인성에 대한 혐오
190 등 감정이 국제정치학에서 사용되는 것 역시 어색하지 않다(Crawford, 2000; Bleiker, R., & Hutchison, E. 2008). 세계평화를 위해 ‘지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일본인은 ‘전쟁의 패자’에서 ‘평화의 승자’로 거듭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다우어, 2009)는 기대야말로 전후 평화주의의 본질을 잘 드러내 준다. 요컨대 일본은 보편적 도덕에 호소함으로써 ‘승자’가 되고자 했다. 그렇다면 21 세기적인 맥락에서 일본의 ‘희생자 정체성’은 수세적이고 애상적인 자기규정이 아니라, 외교적 ‘힘’이자 ‘자원’이 된다.
두번째 핵심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본질은 결국 ‘자국중심적 내셔널리즘’으로서, 그것이 보편적 도덕 언어의 형식을 띠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은 권력정치적인 속성을 강하게 띤다는 것이다. 피해자 정체성은 일견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희생자 서사를 통한 문화적 기억의 공고화와 집단적 소속감의 강화는 궁극적으로 ‘누가 더 큰 피해자인지를 둘러싼 도덕성 경쟁’으로 귀결될 위험을 지닌다. 다름 아닌 한-중-일 3 국의 ‘기억 전쟁’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도덕성 경쟁이 현실적인 외교 갈등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트랜스내셔널한 기억의 재배치는 연대와 화해로 나아갈 가능성도 지니고 있는 것이지만, 후술할 연설문 분석에서 알 수 있듯이 피폭체험의 압도감은 일본으로 하여금 기억의 도덕성-경쟁적 측면을 강화하도록 했다. 실제로 일본의 피해자 정체성은 존재론적 안보의 수준으로까지 발전하여, 구체적으로 한국과 중국의 민족주의를 자국에 대한 ‘안보위협’ 191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으로까지 인식하게 했다(Suzuki, S., 2015; Tamaki, T.,2004). 전후 평화주의의 실질이 일국적 내셔널리즘이었다면(오구마 에이지, 2019), 대외적으로 평화를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은 매우 강한 뉘앙스의 정체성 외교나 다름없다. ‘전쟁의 피해자로서 평화를 말하는 것’은 가해자에 대한 비난과 힐책의 언어에 가깝기 때문이다.
‘외교담론화 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양면적인 성질을 두드러지도록 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가 요청되는 바, 도덕성의 권력정치적 활용에 주목한 옌쉐통(Yan Xuetong)의 ‘도덕적 현실주의’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옌쉐통은 도덕의 기능을 무시해온 주류 국제정치학에 반대하면서 고전적 현실주의에서부터 도덕성은 중요한 외교적 자원으로 여겨져 왔다고 주장한다. 주류 국제정치학이 ‘국력’의 구성요소로 제시하는 능력(capability), 힘(power), 권위(authority)는 도덕(morality)과의 관계에 의해서 조절되고 통제되기 때문이다. 3 국가의 대외행동이 보편적인 도덕 표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면 행위의 정당성이 확보되어 국력신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옌쉐통은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방문 3 옌쉐통은 이를 “CC=(M+E+C)*P”라는 수식으로 간결하게 제시한다(Yan, 2019, 13) “M은 군사력(military), E는 경제력(economy), C는 문화(culture)이고 P는 정 치적 조정능력(Political Capability)”인데, 중국사상의 전통에서 정치적 조정능력 은 바로 도덕성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옌쉐통은 이 정치적 조정능력을 조지프 나이의 소프트 파워와 구별되는 것으로 제시한다(13-14).
192 사례를 ‘일본이 국제적 도덕 표준에 배치되는 행동을 한 결과 정치적 리더십이 손상된 사례’로 제시한다(Yan, 2019, 20). 그러나 옌쉐통이 간과한 것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히로시마/나가사키 평화기념식 및 전국전몰자추도식이 모두 국민국가의 추모 의례 로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기제라는 점에서는 동류 라는 사실이다. 또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경우와 달리 히로시마/나가사키 평화기념식은 ‘반핵 평화주의’라는 보편적 도덕 코드를 과시하는 장으로도 활용된다. 일본의 국제적 영향력 증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전범 국가였던 일본이 국제적으로 피해자성을 내세우면서 ‘도덕적 강자’로 행세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도덕적 현실주의를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구도 속에서 이해할 경우, 옌쉐통이 제시한 것과는 다르게 도덕성의 기반은 중국 전통사상이 아니라 21 세기 지구적 기억 체제에서 새롭게 떠오른 보편적 인권규범과 희생자에 대한 공감의 분위기였던 것으로 봐야 한다. 일본 전후 내셔널리즘의 성격을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로 규정하는 이러한 접근은 전전과 전후, 전후와 현대의 불연속성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2010 년대 일본외교의 전환을 설명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일본외교의 전환은 대외변수나 국내정치 동학에서만 비롯한 것이 아니라, 일본 내셔널리즘의 속성 속에 내재되어 있던 피해자 정체성이, 21 세기 지구적 기억체제의 대두와 함께 주류화 된 ‘희생자 서사’와 결합하여 경쟁적 민족주의의 성격을 띠게 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도덕적 193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현실주의의 틀 속에서, 일본의 민족주의와 평화주의가 피해자로서의 도덕적 확신에 기반한 권력 정치적 속성을 지닌다고 이해하면 일본 보통국가화의 복합적인 속성도 정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의 보통국가화는 ‘평화’라는 보편적 도덕의 언어에 기반해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서방세계에게는 국제주의적(internationalistic)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아시아의 피해국’이었던 한국과 중국은, 일본의 피해자 정체성(=도덕적 강자성) 호소에 ‘공감’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통 국가화 시도의 권력정치적 실질을 더욱 선명하게 보아내는 것이다.4
일본 총리 연설문의 언어 분석
일본정부의 공식 담화는 일본의 과거사 인식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흔히 사용되어 왔다. 1993 년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한 ‘고노 담화’와 1995 년 일본의 식민지배 책임을 4 옌쉐통의 ‘도덕적 현실주의’는 미중 패권이행 국면에서 중국의 부상을 정당화 하는 관변담론적인 성격을 강하게 띤다(서정경, 2022). 이 글이 일본의 대외행동 을 도덕적 현실주의로 설명하는 것은 일본이 동북아 역내에서 사실상 ‘중국처 럼’ 패권적으로 행동하려고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자 함이다. 중국의 ‘자칭’ 평화 부상이 서방 세계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적극적 평화주의’도 주변국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독선적인 ‘역내 패권주의’와 구별 되지 않을 것이다.
194 인정한 ‘무라야마 담화’는 과거사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으며, 이후 일본 정부의 과거사 관련 발언이나 행보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기준으로 작동했다. 한국 언론도 일본 총리의 구체적인 언어표현과 뉘앙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일본정부의 과거사 인식을 문제삼아 왔다.
일본외교의 전환과 관련하여 일본 총리의 외교 언어를 분석하는 경우 주로 2015 년 8 월 14 일에 발표되었던 전후 70 주년 기념 연설(아베 담화)에 주목한다. 아베 담화는 현재 일본외교의 공식 슬로건인 ‘적극적 평화(proactive contribution to peace)’가 처음 등장했던 담화로, 흔히 아베의 역사수정주의적 입장을 보여주는 문헌으로 평가되어 왔다. 박찬승(2016)은 아베 담화에 나타난 과거사에 대한 소극적이고 불분명한 사죄 표현과 자국 중심적인 애도에 대해 한국, 중국, 미국, 타이완이 보인 반응을 분석하면서 전쟁에 대한 집단기억의 충돌 양상을 분석했다. 최순육(2016)은 아베 담화의 문학적 수사에 주목한다. 아베가 과거사에 대한 주체적 사과를 우회하고 자신의 우파적 비전을 드러내면서도 이를 국제사회와 국내 여론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하기 위해 감성을 자극하는 호소문에 가까운 담화를 내놓았다는 평가다. 반면, 이정환(2019)은 아베 담화에 역사수정주의적인 성격보다 국제주의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고 주장한다. 아베 담화가 상정하고 있는 청자가 아시아의 피해국가들이 아니라 미국이었다고 보면, 아베 담화는 일본 주의적인 우파적 신념을 강조한다기보다 세계적 보편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195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것이다. 한편, 권혁태(2009)는 일본 정치권에서 ‘유일 피폭국’이라는 표현이 정착하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이것이 곧 피폭체험을 국민화하고 일본국민을 피해자화하는 과정 이었다고 정리한다. 피해자 내셔널리즘이 전후 평화주의의 한 축을 이룬다는 권혁태의 관찰은 이 글의 문제의식과 가장 가까이에 있다.
이 글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매년 열리는 국가적 추모행사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평화기념식과 전국 전몰자추도식에서의 총리 연설에 집중한다. 기본적으로 평화기념식과 전몰자추도식은 애도와 추모의 장으로서 ‘애도의 언어’가 바탕이 되지만, 이 과정에서 총리 연설문의 언어는 ‘기억의 탈맥락적 결합’을 통해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동시에 일본 스스로를 ‘전쟁의 피해자’로 규정하면서 세계평화라는 도덕의 언어를 내세운다. 이 글은 2005 년부터 2023 년까지의 해당 기념식의 모든 총리 연설문을 분석하여 기억의 결합과 배치가 변화하는 양상을 시계열적으로 추적한다.
히로시마/나가사키 평화기념식의 언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평화기념식 연설문은 전국전몰자추도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고 간결한 편이다.
원자폭탄이라는 ‘절대 악’에 의한 압도적 피해를 경험한 장소가 주는 경건함과 숙연함의 분위기가 평화기념식의 기본 분위기를 이룬다. 같은 피폭지임에도 일본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받아들여지는
196 방식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분노하는 히로시마, 기도하는 나가사키(怒りの広島, 祈りの長崎)”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히로시마는 정치적-좌파적-반미적인 반면, 나가사키는 명상적- 종교적-타협적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총리의 평화기념식 연설문에서는 그런 차이를 찾아볼 수 없다. 같은 해의 히로시마 연설문과 나가사키 연설문은 고유명사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동일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연설문 분석 시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차이가 아니라 내각 별, 연도 별 차이를 비교하는 것이 중요하다.
2005 년부터 2023 년까지의 평화기념식 연설문에서 매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희생자에 대한 애도 및 원폭 피해자에 대한 지원대책, 그리고 일본이 피폭의 체험을 ‘교훈 삼아’ 국제사회에서 지속하고 있는 비핵화의 노력이다. 전몰자추도식 연설과 달리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관례화 되어 있다. 평화기념식에서 총리는 단 한 번도 피폭의 원인과 정황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이 피폭의 기억을 탈맥락화하고 일본의 피해자성을 강화한다는 비판은 원칙적으로 가능한 비판이겠으나, 어찌 되었건 수십만명의 자국 민간인이 사망했고 현재까지 고통받는 상황에서, 일국의 총리가 다른 곳도 아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을 맞을 만했던’ 정황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인지도 모르겠다. 대신 ‘히바쿠샤(被曝者)’라는 범주를 일반화하여 피폭자의 범위를 일본 국민에 한정하고 조선인 피폭자 등 197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다른 인종의 피해자들을 주변화 하는 상징폭력은 명백하게 비판할 여지가 있다. 5 타지의 원폭피해자가 피해보상을 받기 위해서 일본정부의 관료제적 승인 시스템에 편입되어야 하는 아이러니(오은정, 2013)는 총리 연설에서도 확인된다.
일본 정부는 원자폭탄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건강, 의료,
복지를 포괄하는 종합적인 지원책을 개발했습니다. 작년
가을에 정부는 해외 거주 중인 원자폭탄 피해자가 일본의
외국에 위치한 기관을 통해 금전 지원을 신청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정했습니다. 정부는 생존한 원자폭탄 피해자의
실제 상황을 고려하여 이러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촉진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2006년 8월 9일 나가사키 평화기념공원, 고이즈미
준이치로)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지났습니다. 이
법은 늙어가는 원자폭탄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건강, 의료 서비스 및 복지를
포괄하는 종합적인 구호 조치를 철저히 발전시키겠습니다.
(2015년 8월 6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아베 신조)
다음으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세계 유일 피폭국”이라는 표현이다. ‘세계 유일피폭국’이라는 표현은 모든 총리의 연설문에서 5 ‘히바쿠샤’ 표현의 문제성에 대해서는 Yoneyama (1999), 오은정(2013), 오은정 (2018) 참고.
198 빠지지 않고 매해 등장해온 표현이다. ‘유일피폭국’이란 말은 ‘세계에서 오직 일본(인)만 피폭되었다는 뜻’으로, 여기엔 피폭 체험의 역사적 계승과 반핵평화의지의 주체를 일본으로 한정하려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권혁태, 2009, 80-81). 이 표현의 정치적 부당성에 민감했던 총리는 아무도 없었다. 급기야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했던 2016 년의 연설문에서는 노골적으로 미국을 ‘핵무기를 사용한 유일한 국가’로 지칭하며 미국의 가해자성을 부각했다. 아베는 그 다음해인 2017 년에도 오바마의 방문 사실을 연설문에서 언급한다.
원자폭탄의 고통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경험한 우리는,
그러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고통과 슬픔을 견디고 스스로
딛고 일어서서 우리의 조국을 재건하고 나가사키를 아름다운
도시로 복원했습니다. ... 우리 일본인은 전쟁에서 핵의
파멸을 경험한 유일한 인류입니다. 그러한 사람들로서 우리는
"핵무기 없는 세계"를 실패없이 이루어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2013년 8월 9일 나가사키 평화기념공원, 아베 신조)
지난 5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히로시마를 방문했습니다. 핵무기를 사용한 유일한 국가의
대통령께서 원자폭탄의 현실을 목격하고, 원자폭탄
피해자들과 함께 핵무기 없는 세계를 추구할 것을 세계에
호소하고, 핵무기 보유국들이 그러한 세계를 추구할 용기를
가질 것을 강력히 촉구한 것입니다.
199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2016년 8월 6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아베 신조)
세계 유일피폭국임을 강조하는 것과 함께 매해 등장하는 또다른 표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아름다운 도시’로 재건한 전후의 노력에 대한 찬사다. 예외적으로 그런 표현이 부각되지 않았던 것은 2011 년 평화기념식 연설문이었는데, 이는 당시 대지진의 여파 속에서 성공적이었던 과거의 재건 사실을 언급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간 나오토 총리의 2011 년 연설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원폭 피해의 기억과 2011 년 동일본 대지진의 기억이 ‘핵’을 매개로 결합하는 대목이다. 간 총리는 연설 말미에 동일본 대지진을 언급하면서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지진 복구 지원에 감사를 표하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와 관련하여, 일본이 이 일을 계기로 ‘핵에너지의 안전성 미신’에서 벗어나 에너지 정책을 수정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다.
일본은 에너지 정책을 처음부터 재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하고
있습니다. 저는 핵에너지의 "안전성 신화(security myth)"를
믿었던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며, 이 사건의 원인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실시하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시행하겠습니다. 동시에, 일본은 핵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여 핵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것입니다. 나는 이 사건을 모든 인류의 새로운
교훈으로 받아들이고, 우리가 배운 것을 세계 인민과
후대에게 전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믿습니다.
(2011년 8월 6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간 나오토)
200 서로 다른 맥락의 ‘피해’ 기억이 총리의 언어 속에서 병치됨으로써 일본 국민의 희생자성은 강화되었다. 병치의 위험성은 각 사건의 구체적 맥락이 사상(捨象)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원폭피해는 20 세기 일본에 의한 태평양 전선 개전이라는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던 일이고, 2011 년 동일본대지진은 순수한 자연재해에 가까웠기 때문에, 압도적 재난 상황이었다는 공통점을 제외한다면 두 사건은 서로 참조될 여지가 거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일본인들에게는 ‘고통의 체험’과 ‘일본사회의 종언’이라는 시대감각 속에서 두 사건을 관련 짓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고, 이것이 총리의 연설문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요컨대 일본인들에게 동일본대지진은 21 세기판 원자폭탄이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이것이 원폭피해에 대한 일본인들의 기억을 추상화, 관념화 한다는 것이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국제정치적 핵심은 자민족의 피해자 정체성을 부각함으로써 도덕적 강자성을 호소하는 것이다. 평화기념식 연설에서는 매해 거의 빠지지 않고 당해의 각종 비핵/군축 관련 국제회의와 외교성과에 대한 보고가 이루어진다. 국제정치적인 측면에 주목해본다면, 총리의 평화기념식 연설은 ‘애도의 언어’라기보다 반핵 평화에 대한 도덕적 의지를 드러내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핵 관련 발언권을 확대하는 ‘영향력 외교’의 언어에 가깝다.
저는 지난 해 유엔 총회 핵군축 고위급회담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달성하기 위한 결의를 선언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201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제출한 핵군축 결의안은 처음으로 100 개 이상의 협조국을
확보하며 압도적인 다수로 채택되었습니다. 종합적
핵실험금지조약(Comprehensive Nuclear Test Ban
Treaty)의 조속한 발효를 향해 나아가면서, 일본은 또한 관련
국가 정상들에게 직접 결의안 비준을 요청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핵군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올해 4 월에는 이곳 히로시마에서 비핵화 및 비확산
이니셔티브 장관 회의(Non-Proliferation and Disarmament
Initiative Ministerial Meeting)가 개최되었습니다. 이곳
피폭지에서 우리의 생각이 세계로 강력하게 전해졌습니다.
내년은 피폭 70 주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해이며, 5 년마다
개최되는 핵확산방지조약 총회(Review Conference of the
Parties to the 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도 개최될 예정입니다. 일본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더욱 진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2014년 8월 6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아베 신조)
일본의 외교적 정체성이 ‘도덕적 현실주의’라고 본다면, 이는 특정 이슈(핵)를 선점하여 영향력을 확대하는 식의 틈새외교나, 비군사적인 영역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여 국제적인 매력을 증대하고자 하는 소프트파워 외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 현실주의의 틀에서 도덕성은 일종의 정치적 알리바이로 기능하여 해당 국가의 다른 행위에 대해서도 정당성을 보장해주는 기능을 한다. 평화기념식 연설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평화헌법수호 의지와 비핵 3 원칙의 언급여부다. 평화 헌법수호에 대한 의지는
202 정권에 따라 언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비핵 3 원칙만큼은 모든 내각에서 일관되게 언급 되었다. 그렇다면 일본의 비핵 3 원칙은 국내 차원의 개헌에 대한 정치적 알리바이로 기능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 모든 양상이 정치적 현실주의의 틀 속에서 설명되는 것은 물론이다.
<표 1. 히로시마/나가사키 평화기념식 연설문 분석> 203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전몰자 애도, 원폭 피해자 지원, 국제사회에서의 노력은 매해 언급. 전쟁 반성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관례)
전국전몰자추도식(全国戦没者追悼式)의 언어
평화기념식보다 정치적 긴장도가 높고 상징성도 커서 더욱 주목받는 기념식은 천황이 참석하는 전국전몰자추도식이다. 총리의 전몰자추도식 연설의 경우에도 국가적 추모의례답게 전몰자에 대한 애도와 일본의 전후 재건 및 발전사,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한 일본정부의 노력이 매해 언급된다. 그러나 히로시마/나가사키 평화기념식과 달리 ‘세계 유일 피폭국’이라는 표현이나 ‘평화헌법’, ‘비핵 3 원칙’과 같은 정치적 의제는 다루어지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무엇보다 전몰자추도식 연설문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과 사죄 표현의 등장여부다. 한국의 언론에서도 매해 이 대목에 주목하여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에 우려를 표하곤 한다. 전몰자추도식에서의 반성 및 사죄표현은 정확히는 사죄가 아니라, 회한과 애도의 대상을 일본이 아닌 ‘다른 국가들의 국민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국민들’로까지 넓히는 것이었다. 매우 정형화되어 있는 해당 문단은 아베 신조 2 기 내각 출범 전까지는 형식적으로 반드시 포함되는 문단이었다.
204 지난 전쟁에서 일본은 많은 국가의 사람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국민들에게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일으켰습니다.
나는 이로 인해 희생된 전쟁 피해자들과 그 유가족들에게
깊은 유감과 진심 어린 애도의 마음(feelings of profound
remorse and sincere mourning)을 표합니다.
그런데 정확히 아베 신조 2 기 내각부터 해당 표현이 사라지고, 대신 기존에 없던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이 등장(2013, 2015)하거나, 특유의 감상주의적인 표현(2013, 2014)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우리가 현재 누리는 평화와 번영은, 그대들의 소중한 희생
위에 건설된 것입니다. 그대들은 사랑스러운 자식과 아내를
생각하며, 남겨진 어머니와 아버지의 행복을 기원하며,
고향의 산과 강이 푸르게 빛나기를 바라면서 소중한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절대로, 한 순간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 제 2 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일본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평화의 길을 열심히 걸어왔습니다.
(2013년 8월 15일 68주년 전몰자 추도식, 아베 신조)
‘순교의 국민화’ 혐의는 희생자를 지칭하는 표현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고이즈미 내각에서는 단순히 ‘많은 사람’이라고 지칭되었던 희생자들이, 아베 신조 1 기 내각부터 관습적으로 일본인 희생자의 숫자를 나타내는 ‘3 백만명’이라는 수식어를 끼고 등장하다가(三百万余の方々), 아베 신조 2 기 내각부터는 ‘영혼’을 205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나타내는 일본식 표현인 ‘미타마(みたま)’를 사용하거나 아예 ‘3 백만 동포(三百万余の同胞の命)’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희생자를 일본인으로 특정하기 시작했다. 아베의 2014 년 연설에서는 특이하게도 그 해 총리의 파푸아뉴기니 일본인 전몰자 위령비 방문 사실을 언급하면서, 태평양 전쟁을 우회적으로 언급하고 해외 전사자 유해 발굴 및 송환에 대한 의지를 처음으로 드러냈다. 2014 년은 일본정부가 임시각의를 통해 집단적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결정한 해로, 당시의 남태평양 순방과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 실시는 그것과 맞물려 있는 것이었다. 국가의 이름으로 해외의 전사자들을 ‘고국으로’ 귀환시킬 것을 다짐하는 것은 이후의 추도식 연설에서도 반복된다. 이 대목에서 이 글이 제시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국제정치적 성격이 드러난다. 죽음과 애도의 정치는 일본의 대외정책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일본의 피해자 정체성은 수동적이거나 수세적인 자기규정이 아니라, 강한 내셔널리즘과 근대지향성을 내포한 것으로서 국제정치적으로는 현실주의에 가까운 행동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또한 아직까지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전몰자들의
유해를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며칠 전, 나는 파푸아
뉴기니에서 12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곳의 정글과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것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자세로 손을
모았습니다.
(2014년 8월 15일 69주년 전몰자 추도식, 아베 신조)
우리는 아직도 유해가 수습되지 않은 수많은 전몰자들을 절대
206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을 국가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며,
우리는 그들의 유해가 빠른 시일 내에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어떠한 노력도 아끼지 않겠습니다.
(2022년 8월 15일 77주년 전몰자 추도식, 기시다 후미오)
2019 년 전몰자추도식 연설부터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가 직접 언급되기 시작했다. 원폭 피해 뿐 아니라 도쿄 대공습과 오키나와 지상전 등 제 2 차 세계대전 당시의 구체적인 전쟁들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문단이 전몰자추도식 연설문에 새롭게 추가된 것은 정확하게 아베가 상징정치를 통해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내셔널리즘적인 측면을 강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래의 문단은 이후의 스가, 기시다 총리도 그대로 승계하여 사용한다.
전쟁 중에 300 만 명 이상의 동포(compatriots)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며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다른 이들은 전쟁 이후에 먼 타지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다른 여러 전투들 중에서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도쿄와 다른 도시들에서의 공습,
오키나와의 지상 전투 등이 무자비하게 많은 희생자를
남겼습니다. 오늘, 목숨을 잃은 모든 이들의 영혼 앞에서,
그들의 안식을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2019년 8월 15일 68주년 전몰자 추도식, 아베 신조)
외교용어인 ‘적극적 평화(Proactive Contribution to Peace)’가 전몰자추도식 연설문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20 년부터였다. 일본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노골적으로 대외적 현실주의와 207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결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이 군대를 보유하고 외국과 자유롭게 군사동맹을 맺으며, 그것에 기반하여 집단적 자위권을 포괄적으로 행사하는 것을 ‘평화’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일견 모순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도덕적 현실주의의 틀에서 군사동맹은 ‘강대국이 약소국의 안보를 보호하는’ 도덕적 행위로 이해된다(Yan, 2019, 65-66). 군사력을 통한 국제 공공재의 공급은 강대국의 전략적 신뢰성과 국제적 영향력을 제고하며, 이는 패권이행 국면에서 리더십 구축이라는 현실주의적인 목표 하에서 이루어진다.
일본의 외교정체성을 ‘상인’이나 ‘수도승’으로 이해하는 경우 이러한 변화는 불연속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피해자로서의 ‘도덕적 강자성’이 일본의 오랜 정체성 이었다고 본다면 이것은 변화나 전환이 아니라 지속이다.
"적극적 평화주의(Proactive Contribution to Peace)"의 원칙
하에, 우리는 국제사회와 손을 잡고, 세계가 직면한 다양한
도전에 대해 지금까지보다 더 큰 역할을 하겠습니다. 우리는
현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COVID-19)을
극복하고 현재 세대와 내일의 세대를 위해 우리 나라의
미래를 개척하겠습니다.
(2020년 8월 15일 68주년 전몰자 추도식, 아베 신조)
이처럼 2020 년에 이르러 전몰자추도식은 일본의 외교적 정체성을 밝히는 컨퍼런스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8 월’이 본래 애도와 추모의 시간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208 이러한 변화는 대단히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경쟁적 성격을 도덕적 현실주의의 틀로 이해한다면 ‘애도’가 ‘국제정치’와 연결되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의 피해자 정체성은 전전, 전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유지되어온 것이고, 21 세기에는 기억 정치 동학이 작동하여 그것이 현실주의적으로 구현되었을 뿐이다.
나가며
이상으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국제정치적 성격을 도덕적 현실주의로 규정하고, 내셔널리즘의 지속이라는 관점에서 일본 외교적 정체성의 일관성을 고찰하였다. 기존의 국제정치학이 대체로 일본의 시대구분론을 따라 일본의 외교적 정체성을 불연속적이고
<표 2. 전몰자 추도식 연설문 분석>
209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전몰자 애도, 전후 재건 및 발전상, 국제사회에서의 노력은 매해 언급. 세계 유일
피폭국, 평화헌법, 비핵 3 원칙은 언급되지 않음) 단절적인 것으로 규정해온 것에 비해, 이 글은 일본이 아시아 국가로서 일종의 포스트 식민주의적인 정체성(피해자)을 가지고 전전-전중-전후-현대 내내 일관된 ‘민족주의 외교’를 수행해 왔다고 주장한다. 이론적으로는 옌쉐통의 도덕적 현실주의를 차용하여 이른바 ‘중국 IR’의 적용 범위을 넓혔고,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국제정치적으로 재해석하여 국제정치학에서 ‘감정’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고찰하였다.
일본인의 내면에 천착하여 일본의 진정한 외교적 정체성을 규명하려는 시도로서 ‘도덕적 현실주의’는 실제 사례에 다양하게 적용이 가능하다. 가령, 일본은 일관된 피해자 정체성에 기초하여 언제나 강한 도덕적 확신에 입각해 다른 국가를 인식해왔다. 역사학자 요나하 준(與那覇潤)은 일본의 외교가 ‘유교화’되고 있다며 평범한 일본인의 대외인식을 예로 든다. 그에 따르면, 평범한 일본인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 “(과거사 인식과 관련하여) 이렇게나 순수한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그걸 몰라주는 것인가”,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관련하여) 두 번 다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기분(마음)으로 참배하고 있는데 뭐가 나쁘단 말인가”,”(침략전쟁 인정여부를 떠나서) 선의에서 한 행위를 비난하는 중국인이나 한국인, 또 일본 내 좌익이 편협한 인간인 게
210 아니냐”(요나하 준, 2013, 242-243). 6 이런 식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하고 ‘억울함’ 과 자신의 ‘도덕성(선한 의도와 마음)’을 내세우는 것이 현대 일본이 한국과 중국에 대하여 사용하는 외교 언어의 기본 뉘앙스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한국을 상대로 할 때 두드러진다. 일본은 한국에 대해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위안부 합의 관련)’,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는 한국(강제징용 판결 관련)’ 등 규범과 도덕에 입각하여 강한 어조의 판단을 내려왔으며, 급기야 2018~2019 년 초계기 사건에서는 ‘한국이 초계기를 조준했다’는 식으로 피해자 정체성을 호소하였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제안자인 임지현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희생’시켜서 기억의 연대를 이루어야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임지현, 2021, 522-523).
국민국가적인 상상에 가려진 역사의 비식별역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억압된 기억을 서사화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나날이 내셔널리즘이 강화되어가고 있는 국제정치의 현실에서 ‘민족주의의 극복’만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은 지나치게 계몽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공유할 수 있는 피해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여 희생자의식 6 요나하는 독특한 역사관에 입각하여 현대일본이 점차 ‘중국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는데, 그의 분석을 따라, 유교윤리의 내면화라는 점에 비추어 본다면 옌쉐통이 중국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이론을 일본에 적용하는 것은 제법 설득력 있다고 할 수 있다. (요나하 준, 2013)
211 4. 일본외교의 ‘도덕적 현실주의’ : 피폭체험의 외교담론화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민족주의의 해방적인 측면에 주목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 해 한일 정상의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 희생자 공동참배는 그런 측면에서 매우 뜻깊은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종전 80 주년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이 진정한 화해에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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