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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의 달빛은 오늘, 이곳을 비추고 798 예술구 후속세대 리송송을 중심으로 강민아

시간을 거슬러 동아시아의 역사를 만나다 : 사랑방의 젊은 그들 베이징을 품다

분류
EAI 사랑방 답사기
발행일
2026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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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 예술구 · Johns Hopkins university

798 예술구 후속세대와 리송송

1976 년 문화대혁명이 종식된 이후, 중국 현대미술은 사회주의 국가건설에 동원되는 정치적 수단에서 벗어나 부지런히 예술적 저변을 넓혀갔습니다. 문혁 이후 세대의 예술가들은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의 퇴보 속에서 새로운 예술적 실천의 장으로서 베이징의 798 예술구(艺术区)를 탄생시킵니다. 이는 과거 소련의 무기 공장이던 구역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세입자로 모여들면서 형성된 장소로서 현대 중국미술의 독자적인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1982 년 베이징시가 사회주의식 집단형 발전 도식을 탈피한 도시계획방안을 공표하고 황루이(黃銳, 1953~)를 비롯한 문혁 이후 세대의 선구적 예술가들이 798 예술구를 고안하였으며 2005 년도 베이징시는 798 구역의 공업건축 군을 6. 이백의 달빛은 오늘, 이곳을 비추고 798 예술구 후속세대 리송송을 중심으로_798 예술구 ‘역사문화 보호지역’으로 공식 지정하였습니다. 특히 2008 년도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798 예술구는 국제적인 이목을 끌어들였으며 공연히 현대 중국을 상징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하였지요.

오늘날 중국의 예술가들은 또다시 새로운 ‘현대 중국’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문혁 이후 세대의 선구적인 노력에 힘 입어 798 예술구가 활기를 띠게 된 시점으로부터도 한 세대가 지났습니다. 798 예술구는 국제 미술시장의 대자본을 끌어들이게 된 동시에 극심한 상업화를 겪고 있습니다(박정희, 2012). 가난한 예술가들은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그곳을 떠났으며 상품성 있는 작업에 자본이 편중되는 등 상업적 셈법이 예술구를 침투하고 있습니다. 또한, 2008 년도를 전후로 국제 미술시장의 자본이 급속도로 유입되는 동시에 미술시장이 통합되면서 중국의 미적 기준과 글로벌한 미적 기준이 본격적으로 충돌하고 있지요. 특히 글로벌한 미적 기준 앞에서 ‘중국적 모티프’의 미적 가치를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본고에서 주목하는 베이징 출신의 작가, 리송송(李松松, 1973~)은 798 예술구의 후속세대면서 ‘중국적 모티프’를 광범위하게 활용합니다. 그는 2000 년에 등단하여 초기에 798 예술구에 작업실을 얻은 멤버이기도 하였는데, 1973 년생으로 황루이나 아이웨이웨이(艾未未, 1957~)를 비롯한 798 예술구의 주역들과는 십수 년 차이가 납니다.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1989 년의 톈안먼 사태를 기억하는 사이세대(in-between generation)이지요. 그는 2004 년도에 독일 아샤펜부르크의 99 갤러리(99 Gallery)에서 첫 해외 개인전을, 이후에도 뉴욕, 런던, 루체른, 바덴바덴, 볼로냐 등에서 해외전시회를 열었습니다 .

이처럼 리송송은 국제무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회화 소재로서는 중국의 역사적인 장면을 비롯해 마오쩌둥, 루쉰, 1970 년대의 하방지식인과 같은 상징적 인물, 쿵푸나 동방홍(东方红)과 같은 문화적 심벌, 혹은 체 게바라, 칼 마르크스와 같은 사회주의 혁명가 등 이른바 ‘중국적인 것’의 모티프를 폭 넓게 활용합니다. 회화 소재는 신문이나 잡지의 사진과 일러스트에서 얻은 원본 이미지에서 가져옵니다. 이 원본 이미지의 구성을 대체적으로 유지하고 그 위에 격자 무늬를 그어 그리드(grid)를 만듭니다. 이어서 그리드에 따라 서로 다른 색감의 유화 물감이 그리드를 채우도록 하고 질감은 두껍게 표현합니다. 이로써 역사적 장면에 대한 설명적 묘사는 제한하는 한편 유화의 색감과 거친 붓 자국을 통해 정서적 분위기가 극대화되지요. 6. 이백의 달빛은 오늘, 이곳을 비추고 798 예술구 후속세대 리송송을 중심으로_798 예술구

사진

[그림 1] 리송송, Khmer Rouge (红高棉), 2006, acrylic on canvas

이 글에서는 리송송의 작업을 통해 문혁 이후 세대보다도 후속세대인 그가 중국적인 미적 기준과 국제적인 미적 기준의 긴장 구도를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 추적해봅니다. 특히,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리송송에 대한 연구로서 국제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미적 기준의 충돌 속에서 그가 작업하는 역사재현 방식의 의미를 탐구하려 합니다.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중국적 모티프’를 활용한 작업 중에서도 중국 근현대사를 회화의 소재로 활용한 역사화(history painting) 작업을 연구대상으로 삼으며 구체적으로는 2015 년도에 이탈리아 볼로냐의 MAMbo(Modern Art Museum of Bologna)에서 열린 개인전《Historical Materialism》이후의 작업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로써 문혁 이후 세대 예술가들에게 상징적인 장소이던 798 예술구가 오늘날 후속세대에 이르러서는 어떠한 심미적 가능성을 안고 있는지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문화대혁명 이후 세대와 역사화의 위상과

역사재현의 변천

리송송의 역사화를 본격적으로 살펴보기에 앞서 중국 미술사에서 역사화의 위상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문화혁명이 종식되기 이전 시기, 즉 마오쩌둥의 통치 시기에 예술과 정치권력이 긴밀히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예술 또한 사회주의 혁명의 연장선에서 인민과 당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관점이 지배적이었으며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사회현실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사조가 그 선두에 있었지요. 여기에서 대장정과 옌안 시기, 항일전쟁, 그리고 국공내전 등의 역사적 장면이 수많은 작품의 소재로 채택되어 당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하고, 모범적인 사회주의 시민으로서 노동생산력을 향상시키거나 전쟁에 참전하라는 메시지가 노골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그림 2] 참조). 6. 이백의 달빛은 오늘, 이곳을 비추고 798 예술구 후속세대 리송송을 중심으로_798 예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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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탕다시, 인민의사과(人民的苹果), 1973

[그림 3] 자크 루이스 데이비드, 호라티우스형제의맹세(Le Serment des Horaces), 1786

역사적 장면을 정치 선전이나 민중 계몽의 수단으로 활용한 회화 전통은 서구 미술사에서도 손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림 3]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 ~ 1825)의 1785 년 작품으로 호라티우스 삼형제가 공화국을 위해 충성을 맹세하며 경례하는 고대 로마사의 한 장면을 담고 있지요. 이 작품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분명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훗날 프랑스 혁명의 상징물이 되었습니다(박희숙 2010). 위인들의 역사적 순간을 그린 역사화가 민중 교화의 목적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역사재현 방식이 마오쩌둥 시기의 중국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널리 활용되어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지요.

문혁 이후 세대의 중국 신미술에서도 역사적 장면을 회화 소재로 활용하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술사가 우홍(巫鸿, 1945~)이 중국 신미술이 1989 년 톈안먼 사태를 기점으로 ‘당대적 전향(contemporary turn)’을 맞이하였다고 지적한 것에 기반하여 1980 년대와 1990 년대 이후를 구분하여 살펴보려 합니다. 1979 년의 《싱싱미술전(星星美展)》과 1985 년의 신조미술운동 등을 이끈 1980 년대의 전위예술가들은 자신들을 1919 년의 5・4 운동의 계몽정신과 연계시키며 현대 서양 미학과 철학을 수용하여 중국 미술을 현대화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우홍 2011: 30-36). 그들은 문화대혁명의 ‘진정한 정신’을 재현하기 위해 쇼펜하우어, 니체, 샤르트르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예술과 사회에 대한 전면적인 재성찰에 몰두하였습니다(Lü peng 2012: 314). 한편에서는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조형미와 추상에 대한 탐구가 이뤄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문혁 시기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거부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호소가 표출되었던 것이지요(권은영 2009: 330).

그 중에서도 역사재현을 소재로 한 작품에는 문혁 시기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주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오샤오화는 문혁 종식 직후에 등장한 ‘상흔예술(傷痕藝術)’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문혁의 흔적이 가득하면서도 현실적인 역사적 소재를 취하여 문혁 시기에 대한 비애와 비판을 투시합니다. [그림 4]에서는 거리에 앉은 홍위병 소년들의 공허한 표정은 문혁 시기가 남긴 상처의 쓸쓸함을 실재적으로 전해줍니다. 한편, 1980 년대 후반 작품인 우산쫜의 〈홍색 유머_대자보〉는 문혁시기가 남긴 폐허를 있는 사실적으로 6. 이백의 달빛은 오늘, 이곳을 비추고 798 예술구 후속세대 리송송을 중심으로_798 예술구 재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당대의 현실로 끌어들이지요(우홍 2011: 19-20). 작품은 문혁시기를 상징하는 혁명적 표어와 개혁개방 이후의 상업광고가 혼재된 대자보 형식의 원고와 찢긴 종이가 방을 한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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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가오샤오화, 왜(为什么), 1979

[그림 5] 우산쫜, 홍색유머_대자보(紅色幽默_大字报), 1986

한편, 1989 년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 미술계가 깊은 좌절과 분열, 그리고 세계화를 비롯한 사회적 격변을 경험하면서 중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장면을 담은 역사화가 정치선전 혹은 정치운동의 목적을 위해 동원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85 신조미술운동을 주도한 작가들이 해외로 망명되고 깊은 균열과 좌절이 사회 전반에 만연하였으며 자조와 조롱, 냉소만이 지식인들이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였을 것입니다(윤재갑 1996: 73; 권은영 2009: 335; Lü Peng 2012: 170). 물론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존재하였지만 이는 작가 개인의 문제의식으로부터 비롯된 작업이었으며 이러한 배경에서 중국적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정치적 팝아트와 시니컬 리얼리즘(Cynical Realism)의 성격이 형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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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왕광이, weather report, 1989 [그림 7] 쟝샤오강, 천안문(天安门),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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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웨민쥔, 처형(处决), 1995

1990 년대의 작품들은 정치적 목적에 따른 집단적인 예술운동이라 보기 어렵지만 중국적 아방가르드의 사조에서 역사화의 성격을 갖는 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림 6], [그림 7], [그림 8]은 1990 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그려낸 톈안먼 광장의 모습입니다. 당대를 대표하는 왕광이(王廣義, 1957~), 장샤오강(张晓刚, 1958~), 웨민쥔(岳敏君, 1962~) 세 작가가 6. 이백의 달빛은 오늘, 이곳을 비추고 798 예술구 후속세대 리송송을 중심으로_798 예술구 1989 년 톈안먼 사태 이후에 이 장소를 소재로 작품을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지요. 이들은 톈안먼 사태의 폭력성과 비극적 실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 조롱과 냉소가 지배적인 시대적 분위기에도 저마다 전력투구하고 있던 예술적 실천의 연장선 상에서 서로 다른 형상으로 톈안먼 광장의 모습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문혁시기부터 개혁개방과 톈안먼 사태에 이르기까지 중국 현대미술사에서 역사재현에 대한 관심은 줄곧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하지만 비교적 선명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예술적 실천이 집단적인 정치선전이나 정치운동의 일환으로 조직될 수 있었던 시기는 1989 년에 만료된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 중국 미술계는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혁명에 우호적인가 혹은 비판적인가의 문제에만 몰두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정치사회적 지평에 놓여 있습니다. 특히 798 예술구의 상업화 이후 미술시장이 국제적으로 통합되면서 중국의 역사적 소재를 비롯한 ‘중국적 모티프’의 심미성과 정당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역사화는 더 이상 집단적인 정치적 효과를 발휘하기가 어려워졌으며 세계적 미적 기준이 개별적인 역사적 소재를 압도합니다. 그 가운데 오늘날 중국 미술계에서 역사화는 예술적 가치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요?

추상성과 내러티브를 통한 파편적 현실의 재현

그렇다면 문혁 이후 현대 중국 예술을 상징하는 798 예술구의 후속세대인 리송송의 역사화 작업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는 ‘중국적 모티프’를 풍부하게 활용하였는데 특히 1949 년 이후 중국 공산당 정치사의 공식적인 이미지에 주목하였습니다(Lü Peng 2012: 347). 여기에서는 리송송을 둘러싼 기존의 비평 구도를 추상성과 내러티브, 그리고 파편적 현실이라는 개념으로부터 파악하여 어떻게 추상성과 내러티브의 상충되는 해설이 동시에 도출될 수 있었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일찍이 2004 년도부터 국제전시에 데뷔한 이후, 그의 작품은 서구 비평가들의 이목을 끌었으며 추상과 표현이라는 특성에 비추어 잭슨 폴록(Paul Jackson Pollock, 1912~1956), 로버트 리만(Robert Ryman, 1930~2019) 등 서구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추상화가들에 비견되었습니다(Bündge 2015). 한편, 문혁 이후 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웨이웨이도 등단 초기부터 그를 주시하며 동양회화의 함축성을 읽어냅니다(Ai 2014: 222). 그의 작품이 가진 힘은 시각적 효과의 강렬함, 논리, 빛 또는 색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정신과 감정, 자유의지로부터 나온다는 지적이지요.

한편, 리송송이 작품에 남겨 놓은 내러티브의 가독성에 주목하는 시각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리드를 나누는 것이 재현의 전통보다도 조형적 심미성에 주목하는 서구 모더니즘의 6. 이백의 달빛은 오늘, 이곳을 비추고 798 예술구 후속세대 리송송을 중심으로_798 예술구 상징적인 작업이지만, 리송송의 유화 그리드 작업은 내러티브의 가독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징적입니다(Bündge 2019). 즉, 그리드를 활용하여 비-재현성을 더하고 있지만, 역사적 장면이라는 소재자체가 갖고 있는 재현성을 지워버리는 것은 아니라는 관찰이지요([사진 1], [그림 9], [사진 2], [그림 10] 참조). 그러므로 작품의 관람자는 작가가 재현하고 있는 본래의 역사적 장면을 알아차릴 수 있으며, 그로부터 연상되는 역사적 내러티브를 작품 감상에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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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히틀러의 블론디 산책

[그림 9] 리송송, 개산책II (走狗〈二〉), 2015, oil on aluminium p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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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1972 년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

[그림 10] 리송송, 연극감상(看戏), 2004, oil on canvas 또한, 그가 공식기억에서 빗겨 있는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내러티브를 조명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Feng 2018). 캡션으로 부여된 작품의 제목은 공식기억으로 군림해온 거대 내러티브와 일정 거리를 확보하게 하지요. 이러한 시각에서 [그림 11]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핵탄두와 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인데, 회화의 제목은 디즈니 《백설공주》(1937)의 표제가인 〈Someday My Prince will Come〉을 패러디하여 붙여졌습니다. 이때, 화면을 가로질러 거대하게 배치된 핵탄두는 현대 전쟁을 상징하는 극한의 폭력성과 위압감이라는 일반적인 기호로서 전달되지 않습니다. 캡션으로 달린 제목이 힌트가 되어, 핵탄두는 관 속에서 왕자를 기다리는 백설공주의 모습과 중첩되고 이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은 공주를 걱정하며 다시 깨어나길 기대하는 일곱 난쟁이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이렇게 본다면, 일반 시민들이 핵무기를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걱정과 두려움, 희망과 기대감과 같은 미묘하고도 폭넓은 감정의 스펙트럼을 음미할 수 있지요. 6. 이백의 달빛은 오늘, 이곳을 비추고 798 예술구 후속세대 리송송을 중심으로_798 예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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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리송송, Someday My Prince will Come(某一天我的王子将到来), 2007, oil on canvas

이처럼 리송송의 역사재현 방식은 추상성과 내러티브를 동시에 감지하게 합니다. 아이웨이웨이가 제시한 ‘파편적 현실(Fragmented Reality, 片断的真实)’ 개념은 이러한 이중성을 이해하는데 실마리를 제공해주지요. 그에 따르면 리송송의 유화 그리드 작업은 조각난 역사적 장면의 백 개의 모순들이 기적적으로 하나로 포개어져 서로를 지탱하게 하여 세부적인 파편에만 존재하는 역사의 진실을 드러냅니다(Ai 2014: 219). 즉, 원본 이미지를 파편화 한다는 점에서는 형식상으로 추상적인 재현 방식이지만, 조각난 역사적 장면이 한 회화를 이루면서 역사 속의 복잡한 모순과 우연성, 임의성을 감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풍부한 내러티브를 담아낼 수 있습니다. 특히 아이웨이웨이는 작품을 해설하려는 욕망이 논리적 해설이 아닌 흥분과 피로감을 동반하는 최면상태에 이르게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리송송이 재현하는 ‘파편적 현실’을 이루는 요소로서 ‘추상성’과 ‘내러티브’라는 상반되는 두 특성을 미술감상의 경험 속에서 조화시키고자 합니다.

역사적 시공간으로의 유인과 심미적 실천

앞서 살펴본 것처럼, 리송송은 중국과 서구 미술계의 주목을 동시에 받으며 수많은 비평이 오가는 가운데 자연스레 중국 현대미술의 후속세대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의 작업을 서구 모더니즘의 언어로 포착하려는 서구 비평가들의 시각에서도, 최면 상태로 이끄는 동양회화의 위력을 투시하는 아이웨이웨이의 시각에서도, 중국 현대미술의 후속세대를 바라보는 기대감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이 장에서는 기존의 비평을 참조하고 아이웨이웨이가 제시한 ‘파편적 현실’ 개념에 기대되, ‘관조’와 ‘노동’을 키워드로 그가 분투하였을 심미적 실천 과정을 추정해보려 합니다. 아이웨이웨이는 리송송의 작품이 흥분과 피로감을 동반하는 최면상태에 이르게 하는 격렬한 감정적 동요를 일으킨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만으로는 다음의 인터뷰에서 드러나듯이 작품과 현실 사이에서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면서도 현대 중국의 역사적 장면을 비롯한 ‘중국적 모티프’를 왜 그토록 오랜 기간 몰두하여 작품 소재로서 담아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6. 이백의 달빛은 오늘, 이곳을 비추고 798 예술구 후속세대 리송송을 중심으로_798 예술구

사실, ‘파편적 현실’은 리송송을 비롯한 21 세기 중국 당대예술의 현주소를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평론가 뤼펑(吕澎, 1956~)은 오늘날 중국이 마주하고 있는 예술 생태(ecology of art)’의 변화와 그 주역인 1970~ 80 년대생 예술가들이 지닌 독특한 감수성을 ‘파편적 현실’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합니다(Lü peng, 2012). 문화대혁명 이전의 중국과 이후의 중국, 그리고 전통적 중국과 서구가 바라보는 중국 사이에서 표류할 수밖에 없었던 예술가들은 더 이상 현실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거기에 중국이 후발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중국 예술시장에서 국제적 상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전체가 아닌 파편적인 현실이 예술의 대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적 장면의 관조

2004 년도 아이웨이웨이, 비평가 펑보이(冯博一, 1960~)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현실을 재현하기에는 사진이나 비디오가 더 수월하며 회화가 직접적으로 현실을 다룰 필요는 없다는 답변을 남깁니다(Ai&Li&Feng 2004). 또한, 역사적 장면을 회화 소재로 삼는 의도를 묻는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는 대신에, 처음으로 역사적 장면을 작품으로 그리게 된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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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 리송송, Digging, 1999, oil on canvas

펑보이: 역사적 주제를 다룬 오래된 사진들에 줄곧 관심을 갖고 있었나요? (생략) 왜 혁명전쟁 시기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의 건설, 그리고 문화혁명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사건들을 소재로 선택했나요? 이러한 이미지를 단순히 역사적 사실로 사용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미지가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인가요?

리송송: 딱히요. 예를 들면, 병사들이 참호를 파고 있는 그림이 있는데요, 본래 사진은 우연히 보게 된 거였어요. 그리고 사진을 들여다보는 과정에 매료되었어요. 우리가 책에서 사진을 보면, 대부분 사건의 의미를 파악하고 나면 책을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조금 더 유심히 그 장면을 보았기 때문에 아마도 그림을 그리게 된 거 같아요. 사실, 정말 평범한 장면이었어요. 제복 입은 6. 이백의 달빛은 오늘, 이곳을 비추고 798 예술구 후속세대 리송송을 중심으로_798 예술구 사람들이 황무지를 파내고 있었어요. 설명을 읽고나서야, 그들이 한국전쟁 시기에 참호를 파던 인민지원군인 걸 알았죠. 장면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면, 그 안의 다른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생략)

이상의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는 자신의 작품과 작업 방식을 정돈된 언어로 설명하는 대신에 자신의 경험을 전하여 관람자에게 자유로운 감상과 해석의 권한을 양도합니다. 다만, 그가 역사적 장면이 담긴 원본 이미지를 조금 더 유심히 바라보았던 것처럼, 관람자들이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작품을 감상하도록 요청합니다. 이때, 또다시 캡션이 힌트를 제공해주는데, 인터뷰에서 그가 언급한 작품([그림 12])의 경우 현재진행형 동사 ‘digging(파낸다)’을 제목으로 붙여 의도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감추고 있습니다. 즉, 한국전쟁 시기 인민지원군이 전쟁에 참전하여 참호를 파냈다는 사실로부터 ‘파낸다’라는 동사 하나만을 남겨 놓은 것이지요. 관람자는 ‘파내다’라는 한 단어에 기대어 작품을 마주보게 됩니다. 이로써 그가 최초에 원본 이미지를 들여다보면서 여러 가지 질문들을 던져보았던 관조의 경험이 관람자에게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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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3] 리송송, Tempest(崩), 2019, oil on aluminium panel

최근의 작품〈Tempest〉(2019)에서도 그가 관조의 경험과 역사적 재현 사이에서 분투한 과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본 작품은 1972 년 닉슨의 중국 방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으로부터 작품의 기반이 되는 이미지를 가져온 것입니다. 데탕트의 신호탄이 된 미중회담 이후 양국의 핵심 인사들은 인민대회당 건물에 전시되어 있는 20 세기 중국 산수화의 거장인 푸바오스(傅抱石, 1904~1965)와 쿠안샨유에 (关山月, 1912~2000)의 작품〈이 땅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있다 (江山如此多嬌)〉(1959) 앞에서 6. 이백의 달빛은 오늘, 이곳을 비추고 798 예술구 후속세대 리송송을 중심으로_798 예술구 기념사진을 찍고 흩어졌는데, 바로 다큐멘터리 영상을 그 순간에 정지한 이미지입니다. 이례적으로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코멘트를 덧붙이면서, 사진이 아닌 영상을 정지한 화면을 붓질을 통해 재구성하면서 이미지와 새로운 관계를 창조하는 과정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자신의 한계를 부딪쳤다고 밝히기도 하였지요(Li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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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4] 푸바오스, 쿠안샨유에, 이땅은아름다움으로가득차있다(江山如此多嬌), 1959

그의 짧은 코멘트에서 특징적인 것은, 다큐멘터리에서 본래의 이미지를 가져왔다는 언급 이외에는 2004 년도의 인터뷰와 마찬가지로 작품의 내러티브에 대한 특정한 설명을 회피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대신에 작업을 하면서 자주 들었던 곡인 베토벤의 〈Tempest〉로부터 작품의 제목을 지었다는 얘기를 서두에, 그리고 뒷배경의 작품을 그린 푸바오스에 대한 일화를 끝에서 늘어놓습니다. 푸바오스는 마오쩌둥이 지은 시 〈이 땅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있다 (江山如此多嬌)〉로부터 작품의 제목을 붙이는 등 정치적 작품활동에도 줄곧 참가하였는데, 1960 년 초기에 문화특사로서 쓰촨성(四川省)에 방문하여 지역의 환대와 아름다운 지역 음식, 그리고 길거리에서 굶어 죽은 시체들을 목격하고 여러 글을 남겼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는 이처럼 짧은 코멘트를 통해서 관람자가 더 오랜 시간 작품을 감상하게 합니다. 최초에 관람자는 작품 속 역사적 장면이 어느 시점을 가리키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시작으로 작품을 마주볼 것입니다. 혹은 작품 속 장면이 1972 년의 미중회담과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채고 기념사진을 찍은 직후에 흩어지는 인물들이나 세기적인 사건이 마무리된 직후의 회담장 분위기를 상상해볼 수도 있겠지요. 또한, 알루미늄 판넬로 구분되는 하나하나의 그리드와 작품 전체를 번갈아 보면서 유화 그리드가 내뿜는 감각적 색감에 기대어 1972 년을 재구성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그의 코멘트를 읽게 되면, 흩어지는 인물들 뒤에 그려져 있는 푸바오스의 그림을 확인해보거나 1960 년경 조국의 빛과 그림자를 몸소 경험하였던 푸바오스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요. 6. 이백의 달빛은 오늘, 이곳을 비추고 798 예술구 후속세대 리송송을 중심으로_798 예술구

리송송은 역사적 장면에 대한 설명적 사실을 제공하거나 자신의 시각을 노출하지는 않지만, 관람자가 자신에게 익숙한 역사적 사건의 의미와 눈앞의 작품을 견주어 보면서 다양한 질문을 던져보도록 유도합니다. 즉, 역사적 장면에 대한 특정한 진실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장면의 구체적 내러티브를 의도적으로 숨겨 폭넓은 해석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지요(Bianchi 2015). 특히, 앞에서 살펴본 유화 그리드와 캡션, 코멘트 등의 장치를 통해 그의 작품을, 혹은 ‘파편화된 현실’로서 표현된 사실 너머의 역사적 장면을 유심히 바라보는 관조의 경험을 관람자에게 선사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유물론적 재현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노동과 같다. 내가 얼마나 많은 양의 노동을 들였는가의 문제는 종종 내 작업을 감상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Li 2019).

‘관조’에 이어 ‘노동’은 리송송이 조각난 역사적 장면을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시키는 구체적인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역사적 장면 속의 우연성이나 혹은 작업 과정 중에서 나타나는 우연성을 작품의 주요한 요소로서 언급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리 그어 놓은 그리드를 따라 반복적으로 유화를 덧칠하며 자신의 작업을 수련과 노동의 과정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Li 2015). 실제 그의 작업 과정을 살펴보면, 캔버스 바로 옆에 작업에서 참조하는 원본 이미지가 놓여 있으며 캔버스 가장자리에는 격자를 나눈 선과 숫자가 표기되어 있습니다([사진 3], [사진 4] 참조). 또한, 위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그는 스스로도 노력과 시간을 들이는 노동의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작품을 이해합니다. 예술과 노동, 우연성과 반복성은 일면 상반되는 개념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긴장감 속에서 그는 파편화된 역사의 조각을 하나로 포개어 역사적 사실에 다가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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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Li Songsong 의 작업장면, 2015

[사진 4] Li Songsong 의 작업장면, 2015

아울러, 유화는 물감의 특성상 집요한 반복 작업을 통해서 더해지는 노동의 흔적이 구체적인 물질성이 남게 됩니다. 여러 겹으로 두껍게 표현된 유화는 캔버스 평면상에 3 차원의 공간성을 만들어내고, 선명히 남은 거친 붓 자국은 관람자가 하나하나의 붓질을 쫓아갈 수 있도록 하지요. 또한, 작품이 완성된 이후에도 유화 물감은 완벽히 건조되지 않아 변형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Maraniello 2015). 역사적 장면에 날 것의 물질성을 6. 이백의 달빛은 오늘, 이곳을 비추고 798 예술구 후속세대 리송송을 중심으로_798 예술구 더하여, 한편으로는 추상적 형식성이 더해져 논리적 이해가 더욱 어려워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물질성이 선명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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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5] 리송송, 흑선(黑船), 2018, oil on canvas

2019 년도의 작품 〈흑선〉은 1854 년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군 해군 동인도 함대의 함선이 일본에 내항하였던 흑선의 이미지를 가져왔습니다([그림 15]). 19 세기 흑선의 내항은 훗날 일본이 개항하여 메이지유신을 이뤄내는 데 있어서 주요한 계기가 된 사건이며 천하질서의 문명표준이 근대 국제질서로 역전될 것을 예고하는 사건이기도 하지요. 그러므로 관람자가 작품 속 소재의 의미를 알아차린다면 흑선 내항이 갖는 상징성으로 인해 ‘왜 중국인인 작가가 19 세기 일본을 회화 소재로 삼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밀려올 것입니다. 하지만, ‘지붕 타일’처럼 빽빽하게 표현된 파도는 흑선의 정체를 불명확하게 만들지요(Li 2019). 또한, 빽빽한 파도는 실제 파도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미지에 대한 강력한 열망을 투영한 것이며, “당신들이 정말 강하다면, 당신들의 나라에 가보고 싶습니다”라며 선박에 몰래 타려 했던 한 사무라이(요시다 쇼인, 吉田松陰)의 일화가 담긴 리송송의 코멘트가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관람자들의 일반적인 기대로부터 또 다시 일정 거리를 확보해냅니다.

이로써 독자들의 시선은 다시금 빽빽한 파도로 옮겨가게 되며 감상의 기간이 지연됩니다. 캔버스 가운데의 흑선을 둘러싸고 그리드에 따라 절묘하게 파편화되어 있는 빽빽한 파도의 붓 자국들을 훑어보며, 전체 그림상을 잠깐 잊어버리기도 하였다가 하나하나의 붓 자국에서 전체 그림으로 시선을 옮겨 흑선의 등장을 다시 마주볼 수도 있겠지요. 그 과정에서 관람자는 자연스레 역사적 장면을 바탕으로 작가가 남겨놓은 물질성의 자국들, 곧 노동의 흔적을 목격합니다. 그가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인 노동의 흔적들, 질퍽한 유화물감의 자국이 관람자를 붙잡고 캔버스에 이리저리 시선을 옮겨보게 하는 매개물이 되어 하나의 완결적인 회화 작품으로서 ‘파편적 현실’을 완성시킵니다. 6. 이백의 달빛은 오늘, 이곳을 비추고 798 예술구 후속세대 리송송을 중심으로_798 예술구

〈흑선〉을 비롯해 리송송의 역사화에서 유화의 물질성은 오늘날 중국을 이루는 수많은 전통과 일화, 그리고 비극의 축적물입니다(Maraniello 2015). 2015 년도에 이탈리아 볼로냐의 MAMbo 에서 열린 개인전 《Historical Materialism》, 독일의 바덴바덴 주립 미술관(Staatliche Kunsthalle Baden-Baden)에서 열린 개인전 《Material as History》는 칼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 사관을 패러디하여 “역사적 유물론”, “역사로서의 물질”이라는 전시 제목이 붙어있습니다. 리송송은 고집스러운, 담담한, 그리고 두꺼운 붓 자국을 남기는 강력한 붓질로 역사적 장면에 물질성을 채워내 자신만의 ‘역사적 유물론’을 실천합니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투입된 노동의 과정을 통하여, 작품 감상이 현실 정치로 비약하여 설명되는 것을 방지하고 관조의 경험을 유도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역사의 재현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전명월광, 이백의 달빛은 오늘, 이곳을 비추고

이번 답사기행에서는 현대 중국예술을 상징하는 베이징의 798 예술구의 후속세대인 리송송의 역사화 작업에 주목하여, 그의 독창적인 역사재현 방식을 탐구하였습니다. 문혁 이후 중국 예술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가고 동시에 예술시장이 상업화되면서, 중국 예술가들은 ‘전체’가 아닌 ‘파편화된 현실’에 주목하기 시작했지요. 특히 후속세대의 대표주자인 리송송은 중국의 근현대사 장면을 배경으로 삼고 이를 격자로 나누어 두꺼운 유화로 색감을 더하는 작업 방식을 통해서 역사적 장면에 추상성과 내러티브를 동시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관조와 유물론적 실천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그가 작품과 현실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계속해서 중국 현대사의 중대한 장면들을 소재로 주목하는 동력을 확인해보고자 하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작품에서 여러 장치를 활용하여 관람자가 오래토록 작품의 언저리를 배회하도록 이끕니다. 또한, 두껍게 겹쳐진 유화 자국에는 그의 노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격자무늬로 파편화된 역사의 한 장면을 관람자가 스스로 재구성해보게 하지요.

2019 년도 작품 <정야사(靜夜思)>는 관조와 노동의 심미적 실천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작품은 당나라의 시인 이백의 오언절구 <정야사(靜夜思)>를 유화 그리드 기법을 통해 그려냅니다([그림 16] 참조).

스무 칸으로 나뉜 그리드는 오언절구의 한자를 한 글자씩 담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그의 다른 작품들보다도 그리드를 선명하게 나눠, 하나의 그리드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는 인상을 주지요. 한 그리드 내에서 붓 자국은 일정한 방향성에 따라 가지런히 표현되며, 여기에 알루미늄 판넬의 입체감이 더해져 표현됩니다. 특히, 모티프가 되었던 이백의 시에서 대응하는 한자와 6. 이백의 달빛은 오늘, 이곳을 비추고 798 예술구 후속세대 리송송을 중심으로_798 예술구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시를, 그리고 작품을 한 글자씩, 한 그리드씩, 읽어가게 하지요. 한자문화권에 익숙하지 않은 관람자도 그의 작품을 통해 이백의 시를 만나게 됩니다.

사진

[그림 12] 리송송, 정야사(靜夜思), 2019, oil on aluminium panel 이백, 정야사(靜夜思) 床前明月光, 침상 앞에 비친 달빛을 바라보고 Moonlight shines before my bed 疑是地上霜.

땅 위에 내린 서린가 여겼네 like frost spread upon the ground. 举头望明月,

머리 들어 밝은 달을 바라보다

I raise my head to the moon 低头思故乡.

머릴 숙여 고향을 생각하네

down I sink to thoughts of home. 역시나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이백의 시를 모티프로 삼게 된 의도나 시어에 대한 해설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2019 년도에도 ‘중국적인 것’의 모티프 중에서도 가장 고전적인 작품, 이백이 고향을 생각하는 작품을 활용해 자신의 유화 그리드 작업을 지속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현대 미술계에서 ‘중국적인 것’의 모티프나 중국인 작가는 출신만으로도 서구 중심주의와 반서구 중심주의,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비롯한 정치적 논쟁과 비평 구도에 따라 과도하게 의미부여 되는 동시에 작품 자체에 대한 관심은 과소평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비평 구도 속에서, 꾸준히 중국적인 것의 모티프를 활용하면서도 자신의 재현작업이 특정한 정치적 메시지로 환원되지 않고서 가능한 오랜 시간 관람자가 작품을 마주보게 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문명표준이 다시 새로운 경주를 벌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리송송이 가리키는 경주의 방향은 이러한 역사의 한 순간을 붓 자국을 하나하나 살펴보듯 유심히 지켜보는 것일 겁니다. 관조의 경험은 탈정치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역사적 장면에 오랜 시간 시선을 머문다는 점에서 가장 지속 가능한 정치적 실천입니다. 그리고 붓질을 하나하나 덧칠하여 반복하는 노동의 과정은 역사적 시공간으로 진입하는 고요하면서도 집중적인 여정일 것입니다. 6. 이백의 달빛은 오늘, 이곳을 비추고 798 예술구 후속세대 리송송을 중심으로_798 예술구 참고문헌 국문 논문 권은영. 2009. “중국 현대미술의 문화 정체성에 대한 미술사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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