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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과 망치, 중국현대미술

베이징에서 동아시아 복합질서를 만나다 : 사랑방의 젊은 그들 베이징을 품다

분류
EAI 사랑방 답사기
발행일
2018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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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 예술구 · 나태웅 ·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들어가며

예술은 사회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한 사회를 주도하며 선도할 수 있습니다. 예술은 한 사회가 가지는 과거와 현재를 반영한다는 면에서 거울이며, 향후 나아갈 미래와 방향성을 예측하고 선도 해간다는 점에서 망치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현대미술은 중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나아갈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과 망치로서 역할을 해왔습니다. 중국현대미술은 제국열강의 침략, 사회주의 혁명과 신중국 건립 후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노선 실험, 문화대혁명과 개혁개방으로 인한 자본주의 시장경제 도입 등 숨 가쁘게 전개되어온 중국의 격변의 20세기를 반영할 뿐 아니라 1930년대 루쉰의 목판화 운동에서 1979년 싱싱화회(星星画会)의 결성, 85신조미술운동(85’ 新潮美术运动), 1989년 <89’중국현대미술전(89’ 中国现代美术展)> 등의 선도적 사건들에서도 잘 알 수 있듯 각각 정치사회적 변화를 야기하며 선도해왔습니다.

한편 1949년 이후 상하이와 함께 신중국 미술 정책의 산실이자 그 예술적 성과물의 집결로서 역할을 해온 수도 베이징(北京)은 800년 고도로서의 자부심과 전통문화유산이라는 영감의 원천을 기반으로 예로부터 많은 우수한 예술 천재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습니다. 많은 중국현대미술의 대표선수들이 이 도시에서 배출되었으며 여전히 이곳에서 작업하며 세계주류미술 시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특별히 베이징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 ‘따산즈(大山子)’ 혹은 ‘798 예술구(798 艺术区)’라 불리우는 곳은 중국현대미술의 변천을 상징 하는 공간입니다. 원래 1950년대 소련의 원조로 건설된 군수공장 단지였던 이곳은 가난한 예술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10년이 채 지나기 전에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중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798 예술구는 중국의 과거와 현재, 전통적인 것과 현재적인 것, 동양과 서양의 만남을 경험할 수 있는 상징적인 복합 공간으로서 ‘중국의 소호’라는 별칭과 함께 중국 미술의 심장부로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798 예술구가 공간으로서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만남을 상징한다면 그 양분을 먹고 자라난 개인 예술가의 삶과 작품 세계 또한 이를 어떤 방식으로든 반영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술가는 어느 시대에서나 그가 속하는 시대의 정신을 나타내는 도구이며 대변인입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예술가는 그가 속하는 시대의 성격과 가치관에 형태를 부여하고, 반대로 그 시대의 성격과 가치관은 예술을 형성합니다(Jaffe Aniela 2008, 239-282). 현재 왕광이(王廣義), 장샤오강(张晓刚), 위에민쥔 (岳敏君), 팡뤼쥔(方力鈞) 등 소위 중국 현대미술의 ‘사대 천왕’을 비롯하여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국현대미술의 대표선수들은 모두 이를 잘 증명하고 있습니다. 같은 이유에서 이번 베이징 답사를 통해 만나고자 하는 자오강(赵刚)의 삶과 예술세계는 흥미롭습니다. 그는 1979년 중국 후문혁기 중국현대미술의 모태라고 평가되는 싱싱화회에 18살 막내로 들어가 아티스트의 삶을 시작한 이후 20여년 간 유럽과 미국에서 유학하며 자신의 예술적 스펙트럼을 넓히게 됩니다. 이후 2006년 베이징으로 다시 돌아와 현재 국제적 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끊임없는 자기도전과 실험을 통해 예술적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보고서는 798 예술구를 대표하는 시태(時態)공간과 자오강(赵刚)의 전시를 중심으로 거울과 망치 로서의 중국현대미술의 의미와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넓은 의미에서 중국현대미술사의 맥락과 흐름을 살펴보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중국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을 798을 상징하는 인물과 장소인 황루이(黄锐)와 798 시태공간(798 时态空间)을 통해 느끼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어제와 오늘의 연장선상에서 미래를 선도해가는 망치의 중국현대미술을 자오강(赵刚)의 『Acquiring Identity』 전시를 통해 엿보고자 합니다.

중국현대미술사의 흐름

지금까지의 선행연구들은 중국현대미술사의 흐름을 크게 I) 후 문혁 시기(1976~1984), II) 현대미술의 실험기(1985~1990년대 초), 그리고 III) 중국적 현대미술과 국제화 시기(1990년대 초~현재)의 세 시기로 구분 하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습니다. 중국 현대 미술은 독특하게도 내재적인 미술사적 맥락이 아닌 중국의 현대 정치사와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이는 종종 중국현대미술의 특징임과 동시에 한계로 지적되고 있습니다(박일우 2014, 124-125). 즉 중국 미술사는 매우 방대하며 정치적인 맥락에서 재단되고 형성되어온 소위 현대 중국의 아방 가르드 현대 미술은 전체를 대변할 수 없고 실제로도 무대에서 사라 지는 추세입니다.

1. 후 문혁 시기(1976~1985년) 후 문혁 시기는 1976년 마오쩌둥(毛泽东)의 죽음과 함께 문화 대혁명이 막을 내리고 1985년 ‘85신조미술운동(85’新潮美术运动)’으로 불리는 중국추상미술운동이 본격화되기 직전의 시기까지를 일컫 습니다. 이 시기는 문혁시대를 풍미했던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학 으로부터 벗어나 서구 모더니즘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전환기라 할 수 있습니다(이주현 2010, 163).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소위 4인방이라 불리우는 장청, 왕훙원, 장춘차오 등이 실각되고, 화궈펑(华国锋)에 이어 등소평(邓小平)의 개혁개방 시대(1978~)가 열리자 ‘북경의 봄’으로 명명되는 자유와 개혁의 바람이 사회문화 전반에 불기 시작했습니다. 북경의 서단 지역 ‘민주의 벽’에는 시민들의 대자보가 나붙었고, 『今天』, 『北京之春』 등 문학 잡지 등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하면서 민주화와 개혁에 대한 열망이 폭발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치사회적 배경 속에서 기존 마오쩌둥 치하 문혁기를 거치며 혹독한 검열과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중국 미술계에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마오쩌둥의 아내이자 문혁시기 4인방 중 한명이었던 장청(江青)이 선포한 원칙들을 따라 사회주의 사실주의이라는 틀 안에서만 존재해야 했던 중국 미술은 보다 정치성이 감소되고 자유로운 미학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 미술계의 동향은 크게 미술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사실주의 화단과 재야미술계를 중심으로 한 서구 모더니즘화단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이주현 2010, 164). 먼저 사실주의 화단에서는 기존의 소련식 사회주의 사실주의라는 틀에서 벗어나 ‘상흔(傷痕) 미술’과 ‘향토회화(鄕土繪畫)’ 등 비판적 사실주의 등이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뤼중리(罗中立)의 <아버지>는 이시기 비판적 사실 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적 사실주의 역시 과거 문혁기의 경직적인 사실주의 화풍의 연장선에 있다는 지적과 지난 30여년 간 이어진 경직된 예술형식에 대한 염증을 느끼는 가운데 서구적 모더니즘에 대한 관심이 젊은 재야 작가들이 조직한 미술 단체를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이들은 자체적 으로 전시회 등을 열어 자유로운 형식의 실험을 시도함과 동시에 관중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23명의 아마추어 미술가들로 구성된 싱싱화회(星星画会)라는 미술가 단체는 새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 습니다. 이들은 모택동으로 표상되던 ‘태양의 시대’, 곧 문화대혁명의 시대는 가고 이름 없이 밤을 밝히는 ‘별들’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미술을 통해 알리고자 했습니다(이주현 2010, 177). 또한 황루이(黄锐), 마더셩(马德升) 등이 중심이 되어 1979년 개최된 <제1회 싱싱 미전(星星美展)>은 표현의 자유를 위한 호소였을 뿐만 아니라 근대화 예술 운동의 초석으로 후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 으며(Sullivan 1999, 715), 이후 85신조미술운동으로 본격화되는 중국 아방가르드미술의 길을 연 하나의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었습니다. 85신조미술운동 베이징 중국미술관 동쪽 공원의 40m 길이의 철책 난간에 150여 작품을 가지런히 건 <제 1회 싱싱미전2>의 서문은 이 ‘사건’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2 <제 2회 싱싱미전>은 1980년 8월 싱싱화회가 미술협회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후, 그 달 8월 24일부터 9월 7일까지 중국미술관 내에서 전시되었으며 27인이 참여하였 다. “… 우리는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자신의 붓과 조각도로

세계에 참여하고자 한다. 우리의 그림 안에는 각종의 표정이 있으며

우리들의 표정은 각자의 이상을 호소하고 있다. … 우리는 시간을 절단할

수 없으니, 과거의 그림자와 미래의 광명은 함께 교차하며 우리들의

다층적 삶을 구성한다. 꿋꿋이 살아가는 것, 모든 교훈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2. 현대미술의 실험기(1985년~1990년대 초) 앞서 언급한 상흔회화와 싱싱화회는 자연스럽게 85신조 3 (新潮) 미술운동(이하 ‘85운동’)으로 이어졌지만 그 정신적ㆍ 사회적 특징은 사뭇 달랐습니다. ‘85운동’은 두 번의 정치 운동, 즉 반- 정신오염운동(反精神污染运动, 1982-84)과 반-자산계급자유문화 운동(反资产阶级自由文化运动, 1987) 사이에서 나타난 예술운동으로 문화혁명 이전 예술로의 회귀와 정치에 갇힌 예술을 거부하고 서양 현대 예술 수용 및 개성과 창조성 획득을 주장하며 전국에 걸쳐 폭발적으로 나타났습니다. 1985년부터 1987년까지 무려 87개의 급진 예술 단체가 발족했으며 2,000여명의 작가들이 각지에서 150여 3 신조(新潮)는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으로 1985년 학자이자 큐레이터인 까오밍루 (高铭潞)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 김지연(2013) p. 187. 참고. 차례의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을 벌였습니다(권은영 2007, 333).

중국적 아방가르드4의 태동이라 불리는 85운동은 오늘날 다양한 중국현대미술의 성격을 규정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아우르면서 지적 해방 운동의 선두를 달렸습니다. 85운동은 항저우 미대나 쓰촨 미대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억압되었던 예술적 자유와 내면의 본성들이 한꺼번에 분출하는 장이 되었으며, 그 구체적인 주제들로는 “당대 문화와 서구 문명의 관계 설정, 계급과 이데올로기 투쟁에 대한 자성과 비판, 자아와 사회의 상관관계, 대립과 모순 판단력 상실과 허구적 인간가치, 자연과 인본적 구조, ‘질적인 자아와 외피적인 자아’에 대한 고뇌 냉소, 모순, 파괴, 회의, 절망과 더불어 진정한 현대인의 가치를 탐구하는 다양한 주제(최병식 2005)” 등이 주요 화두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는 2010년 현재까지도 중국 현대미술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85운동은 1989년 <89 중국현대미술전(89’中国现代美术展)>으로 절정 으로 치닫고 결실을 맺게 되는데, 특별히 항저우 출신 여류작가 샤오루의 “행위 예술”로 인해 세상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 <Dialogue>의 거울에 권총으로 쏘아 부수는 행위예술을 4 레나토 포지올리오(Renato Poggioli)는 아방가르드의 특징을 행동주의, 적대주의, 허무주의, 투쟁주의라는 4가지 요소로 정리하면서 이들 모두가 중국 예술에 접목 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자세한 내용은 “The theory of the Avant-Garde”(1968), Harv ard University press, p 20 참고. 선보였는데, 이는 정경유착을 폭로한 다분히 반체제적 성격의 작품으로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고, 전시는 곧 폐쇄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1978년 이후 고조되었던 자유 창작활동들에 다시 박해가 가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텐안먼 사건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텐안먼 사건 이후 사회에 만연한 상호불신과 반목은 체제비판적 성격이 강한 중국 예술을 발전시키게 되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팝아트’라는 중국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예술 양식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 양식의 최초 작품은 앞서 언급한 1989년 <중국현대미술전>에 출품된 왕광이(王廣義)의 <모택동-체크무늬 1호>를 평론가 리시엔팅이 ‘정치 팝 아트’로 명명하면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후 왕광이를 포함하여 소위 ‘사대 천왕’으로 불리 우는 장샤오강(张晓刚), 위에민쥔(岳敏君), 팡뤼쥔(方力鈞)과 이들 못지않게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아이웨이웨이(艾未未), 쉬빙(徐冰) 등을 통해 중국 뿐 아니라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됩니다.

3. 중국적 현대미술의 실험과 국제화 시기(1990년대 초~현재) 중국 미술계는 1980년대부터 85신조미술운동 등 점차 서양현대 미술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1980년대 후반부터는 적극적으로 국제미술계의 경향에 발맞춘 작품들을 선보이고자 노력했습니다 (정창미 2017, 95-96). 1990년대 들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중국은 국제미술계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 바로 1993년 <제45회 베니스 비엔날레>입니다. 이 전시를 통해서 중국현대미술은 본격적으로 국제미술계의 이목을 주목시키기 시작하면서 중국적 현대미술의 실험과 국제화 시기가 본격화됩니다. 아울러 그 해 1월에 홍콩에서 열린 <후89중국신예술전>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정치 팝아트”와 “냉소적 사실주의” 등 중국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을 보이면서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로 이어지는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1999년 <제4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중국 작가 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차이궈치앙(蔡国强)이 설치작품 <베니스 셔우주위안(收租院)>으로 중국인으로서 최초로 베니스비엔날레 대회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면서 중국현대미술은 더 이상 국제 미술계의 주변부에 머무르는 조연이 아닌 극을 이끌어가는 주연 으로서 활발히 활동하게 됩니다. 또한 차이궈치앙의 작품은 현대 미술의 양식적인 면에서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기존에 세계인들이 중국미술에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정치 팝 아트”나 “냉소적 사실주의”이 아닌 설치, 행위 등 보다 다양한 장르와 시각으로 전개된 양식을 선보였으며(정창미 2017, 103), 주제 또한 점점 탈정치화되어 점차 개인적이고 독립적 조형언어로서 예술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권은영은 중국 현대미술의 문화정체성을 ‘지역성(locality)’과 ‘세계성(globality)’이 공존하는 ‘혼성성(hybridity)’로 이해(권은영 2009, 326)하려 시도합니다. 필자에 따르면, 중국 현대미술은 “전근대와 근대, 현대가 혼재하는 시대적인 혼성과 함께, 동서양 문화의 교집합이라 할 수 있는 지역적 혼성, 그리고 지역성과 세계성을 동시에 구연하는 혼성적 문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박일우 또한 미래의 중국 미술은 신수묵화 등 자신의 전통의 재해석·재발견을 시도함과 동시에 다양성 가운데 서구와의 소통을 견지하면서 국제적 조류를 선도해갈 것이라 예측합니다 (박일우 2004, 142-143).

오늘날 중국현대미술은 전 세계 미술지형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글로벌 미술시장정보업체 아트프라이스(Artprice)의 조사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중국미술시장은 48억 달러(한화 약 5조 436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미국을 제치고 명실상부 세계 1위의 예술품 경매시장이 되었으며, 현재 세계 미술품 판매의 30% 이상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현재 국제미술계에서 중국 국화 (国画)에 대한 재해석 움직임과 더불어 1970년대 이후 출생한 차오페이(曹菲), 천커(陈可) 등 젊은 신진 작가들의 약진이 두드러 지고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 황루이(黄锐)와 798 시태(时态)공간

앞서 언급했듯,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800년 고도로서의 자부심과 전통문화유산이라는 영감의 원천을 기반으로 중국의 우수한 예술 인재들을 잉태시키는 ‘중국현대미술의 자궁’으로서 역할을 해왔 습니다. 베이징 외곽 따산쯔(大山子)에 위치하고 있는 798 예술구(798 艺术区)는 특별히 중국의 과거와 현재, 중국적 전통과 서구의 모더니즘이 만나는 중국현대미술의 복합성과 전위성(박정희 2012, 522)을 가장 잘 상징하고 있는 공간으로서, 지난 20여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중국현대미술의 거울과 망치로서 기능해왔습니다. 한편, 싱싱화회의 핵심인물로서 2002년 이곳에 정착한 황루이 (黄锐)는 이 독특한 공간의 건축과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서 빠질 수 없는 인물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절에서는 798 예술구를 상징하는 ‘그 사람’과 ‘그 곳’을 통해 중국현대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그 사람’- 황루이(黄锐) 황루이(1952년, 베이징 출생)는 중국현대미술 재야계의 큰 별과 같은 존재입니다. 후 문혁기 그는 앞서 언급한 왕커핑, 마더셩 등과 함께 1979년 조직한 미술단체 싱싱화회를 중심으로 표현과 예술의 자유를 억압하는 탄압적인 정권에 저항하며 반체제적 성격의 예술 활동을 해오다가 1984년 정부의 박해를 피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됩니다. 이후 1995년에는 입국 금지령이 떨어져 6년간은 임시 귀국조차 불가능했습니다. 일본에서의 삶은 고단하고 힘들었지만 그에게 국제적 미술의 흐름을 경험하며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방식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1994년부터 98년까지 주로 설치 작업을, 98년부터는 행위 예술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며 중국 권위주의 정부 하의 억압된 자유와 경직성을 폭로하는 사회적·정치적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던졌습니다.

이후 21세기로 접어든 2002년, 재혼한 황루이는 드디어 입국 허가를 얻게 되었고, 귀국 직후 우연한 계기로 친구를 통해 지금의 ‘798 예술구’를 소개받게 됩니다. 그는 798이 주는 공간적 매력과 예술적 역사적 가치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일본 도쿄 화랑을 시작으로 여러 예술 단체를 비롯한 예술가들과 친구들에게 798를 적극적으로 소개하면서 이곳에 정착하면서 다시 “제2의 싱싱화회”의 부활을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798 공장단지를 철거하고 첨단 전자 단지를 조성하려는 정부의 계획이 발표되어 이 공간의 실질적 사용자인 예술가들과 정부 간 긴장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황루이는 어떻게든 이 공간을 보존하고자 하였고, 그 결과 쉬용 등을 비롯한 예술가 동료들과 함께 ‘예술가로서의 투쟁’을 전개해갑니다5. 즉 총과 칼을 드는 대신 붓과 5 이 투쟁 과정에 대한 일련의 과정과 내용은 그가 출판한 <北京798: 再创造的工厂 조각칼이라는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예술적 시위를 하기로 결심하였고, 그리고 그 결과 2004년 지금의 798 예술구를 있게 한 ‘베이징 국제 따샨즈 예술제(北京大山子国际艺术节, DIAF)가 시작되었 습니다. 2004년 1회부터 2006년 3회까지 황루이는 총감독으로서 따샨즈 예술제를 이끌었을 뿐 아니라 예술제 외에도 자신의 작품 혹은 각종 언론과 행사를 통해 798을 알리고 국내외 세력들이 연합하여 798을 보존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이보연 2008, 65-66). 그 결과 798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며, 이 모든 노력의 결과로 정부는 2006년 ‘798 공장지대 철거 계획 취소’를 발표하고 이 공간을 ‘문화 창의 산업 구역(文化创意产业区)’로 지정하게 됩니다. 이후 798 예술구는 국제적 유명세를 얻어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며 어림잡아 400여개의 국내외 화랑, 대형 미술관, 잡지사, 디자인 사무소, 서점,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며 오늘 날의 798로 거듭났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가치로만 798를 바라보는 정부는 이 예술적 공간을 재빠른 상업화의 길로 유도하였고(이보연 2008, 67), 본래 가난한 예술가들의 작업장이었던 798의 높아진 임대료와 이해관련자 들의 압력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떠나게 됩니다. 황루이 또한 최후의 날까지 <공개(公开)>, <차 마시러 가자(吃茶去)> 등 행위 예술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알리며 정부에 끝까지 저항하다가 결국 798을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베이징 당대 국제 예술제(DIAF)’의 감독을 >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며, 영어로도 번역되어 전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맡아 예술로서 정부의 억압에 저항하는 등 예술가로서, 투쟁가로서의 분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 ‘그 곳’- 798 시태공간(时态空间) 798 시태공간(798 Space)은 앞서 언급한 황루이의 예술적 세계관과 가치관이 가장 잘 반영된 공간이자 798 예술구의 ‘어제’와 ‘오늘’을 상징하는 심장과 같은 곳입니다. 798 예술구는 원래 1950년대 구소련의 원조와 동독의 설계로 차오양구에 건설된 국영공장 이었습니다. 1951년 건축을 시작해 1957년 완공한 이 공장단지는 동독 건축가에 의해 독일 바우하우스 양식으로 설계되었으며 당시 사회주의 국가들 간의 연대를 보여주는 상징적이고 비밀스러운 공간이었습니다. 원래 718 연합공장으로 시작한 이 곳은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각각 706, 707, 751, 761, 797, 그리고 798로 단위가 쪼개졌고, 이후 반 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중화인민공화국 초기 전자제품과 군수품, 중공업 단지로 사용되었습니다(김지연 2013, 253). 이후 1991년 구소련 붕괴 후 사회주의의 몰락과 개혁개방 정책으로 군수품 수요가 줄어들자 따산즈(798) 또한 점차 쇠락의 길로 내몰려 몇몇 공장을 제외하고는 거의 방치된 상태로 폐허가 되었습니다.

이후 1990년 중반부터 작업을 위해 저렴하고 넓은 공간을 모색하던 중앙미술학원의 학생들이 706 공장지대로 모여들어 작업실로 사용 하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2002년 앞서 언급한 황루이, 쉬용, 수이지엔궈(隋建国) 등 핵심 인물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중국의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복합적인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오늘 날까지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공업시대의 증기관과 통풍관, 문혁 시대의 붉은 표어들, 노동자들의 낙서 같은 사회주의 냉전 시대의 유물들은 복합적 공간으로서의 따산즈의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 같은 798 지구의 공간 특성의 변화는 예술가들로부터 시작된 기존의 지배적 관념에 대한 거부와 저항의 모습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별히 798 예술구의 많은 갤러리들 중 798 예술구의 복합적이고 전위적(Avant-Garde)인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798 시태공간입니다. 798 예술구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은 2002년 일본에서 막 귀국한 황루이와 쉬융(徐勇)이 오픈했으며, 798 예술구를 보존하기 위한 ‘새로운 798(再造 798)’ 운동이 시작되었던 역사적인 공간입니다. 또한, 오늘날 해마다 열리는 798 페스티벌의 본부로 사용되어 798의 심장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김지연 2013, 257). 천장고가 9미터에 이르는 이 독일 바우하우스 풍의 건물은 드높은 아치형 천장이 매우 인상적이며, 천장과 벽에 빨간 글씨로 써놓은 “위대한 마오 주석 만만세” “중국 공산당 만세” 등의 빛바랜 구호는 그 어떤 다른 798 예술구의 장소보다 중국현대미술이 가지는 복합성과 전위성의 측면을 잘 보여줍니다.

옛 군수공장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798 예술구
옛 군수공장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798 예술구

내일: 자오강(赵刚): 『Acquiring Identity』

자오강(赵刚)은 중국현대미술의 복합성과 혼성성적 측면을 잘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1961년생인 자오강은 1970년대 후반 앞서 언급한 후문혁 시기 중국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싱싱화회에 18살의 나이로 입단하면서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합니다. 그는 1979년 <제1회 싱싱미전>과 1980년 <제2회 싱싱미전> 등 중국현대미술사의 기념비적인 전시회에 참여했으며, 1980년대 많은 싱싱화회 소속 작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 공산당 정부의 거세지는 감시와 탄압을 피해 해외로 나가 유학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는 2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머무르면서 자신의 예술적 스펙트럼을 확장시켜 가는데, 이후 2006년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와 현재까지 동양과 서양, 보다 구체적으로 중국적 전통과 서구적 모더니즘 사이에서 자신의 작가적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습니다. 중국 전통문화의 영감의 원천인 수도 베이징에서 태어나 2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구 세계 속에서 공부해 온 자오강에게 있어 예술적 정체성 확립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예술적 정체성을 확보해가는 과도기적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여러 실험들을 시도하고 있으며 그 결과 중국뿐 아니라 미국, 프랑스 등 국제미술시장에서 이름을 떨치며 활발하게 활동 중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2018년 5월 16일부터 7월 초까지 798 예술구 롱 마치스페이스(Long March Space) 갤러리와 타임존 8 카페에서 진행 되었던 그의 전시 『Acquiring Identity』는 자오강이라는 인물의 삶과 예술 세계가 보여주는 복합성과 혼성성(hybridity), 그리고 전시 타이틀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 그의 작가적 아이덴티티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상술한대로, 중국현대 미술은 ‘전근대와 근대, 현대가 혼재하는 시대적인 혼성, 동서양 문화의 교집합이라 할 수 있는 지역적 혼성, 그리고 지역성과 세계성을 동시에 구연하는 혼성적 문화정체성’을 가지며, 국제화 과정에서 끊임없는 서구 예술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어가는 과도기적인 시기에 있습니다. 자오강이라는 작가의 개인적 이력과 삶, 그리고 그로부터 기인하는 그의 작품세계는 이러한 과도기적 중국현대미술의 복합성과 혼성성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그의 예술적 스펙트럼이 매우 광범위하다는 점이 었습니다. 실제로 이번 전시회는 1980년대를 풍미했던 정치 팝아트 부터 풍경화, 인물화, 누드화, 회화에 이르기까지 이 작가의 주력 종목을 찾기가 어려울 만큼 다양한 형식과 대상을 주제로 전시를 하고 있었고, 이 뒤죽박죽 속을 알 수 없는 다양성과 모호함이 작가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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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일관성이 떨어져 보이는 자오강의 작품들
다소 일관성이 떨어져 보이는 자오강의 작품들

또한 갤러리측의 설명에 따르면 자오강의 작품들은 자유롭게 뒤섞인 형체와 모습 속에서 중국 고유의 전통과 서구 인상주의 기법을 혼합한 것인데, 작가는 이를 통해 한 사회와 역사의 불가항력적인 추세 속에 갇혀버린 인간의 무력함과 슬픈 처지를 예술을 통해 나타내고자 합니다. 특별히 이번 전시회에는 여성의 누드 내지 세미 누드화 작품들이 많았는데, 개인적으로 받았던 느낌은 과거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했던 여성의 나체 또는 나체의 여성이 대나무 숲에 숨어있는 모습 등을 통해 커다란 시대의 조류 속에 떠밀리는 인간의 수치와 부끄러움, 그리고 취약성을 그리려 시도한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목이 잘린 스탈린을 그린 작품 또한 시대의 변화 속에서 한 때 모든 권력과 명예를 가지고 있었던 인간의 불행한 종말을 그리며 인생의 덧없음과 취약성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이러한 작품들의 인물의 모습 속에 자신을 투영시키고 보다 큰 사회구조 속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고자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뇨병(자오강)
당뇨병(자오강)

결론적으로 망치의 중국현대미술은 정체성의 혼란의 과도기적 시기와 서구와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고 있으며, 이를 통해 내일의 국제 무대 가운데 자신만의 매력을 어필하고 있습니다. 중국예술 특유의 정치사적 맥락과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지 못하고 있지만, 그 또한 국제무대 가운데 중국예술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함과 매력으로 충분히 작용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현대미술은 거울과 망치로서 과거로부터의 교훈을 기억함과 동시에 그 기억에 근거하여 새로운 꿈을 꾸고 내일을 선도해가고 있습니다. 황루이와 798 예술구가 적극적 의미의 중국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고 본격적으로 서구 세계의 미술사적 흐름을 따라가고 배우면서 국제화를 시도했던 어제와 오늘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면, 이제 내일의 중국현대미술은 명실상부 국제미술계를 선도해가는 대표주자로서 국내외 정치사회적 변화를 선도해가고 있습니다.

자오강 전시회장 앞에서 사랑방 학우들과 함께
자오강 전시회장 앞에서 사랑방 학우들과 함께

10기 사랑방과 베이징 답사를 마치며

베이징 답사를 마지막으로 사랑방 10 기가 무사히 끝났습니다. 정말 우연한 계기로 대학원 공지를 통해 합류하게 된 사랑방은 분명 쉽지 않았던 도전이었지만 참 의미 있고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사람이 한계에 봉착하면 때로는 어떤 특정한 과거의 추억을 통해 극복해 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공급받는다고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랑방 학우들과의 만남과 추억이야 말로 대학원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정말 좋은 추억을 나누고 누리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사랑방 학우들과 베이징 답사를 마치면서 배우고 느낀 점을 크게 3 가지로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사랑방 공부를 통해 가장 크게 배웠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학문에 대한 태도와 자세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가르침과 통찰력을 주신 하영선 선생님뿐만 아니라 같이 공부하는 학우들의 모습들 속에서 일종의 진정성과 절박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역사 속 기억과 교훈이 분명 내일에 대한 방향성과 통찰력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지금까지 경험했던 그 어떤 스터디 모임보다 치열하게 머리를 맞대고 씨름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도전과 자극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공부는 학문적 작업이 아니라 실존적 작업이어야 지속 가능하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계속 마음에 남습니다. 어쩌면 선생님과 학우들이 진정성과 절박함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도 이 작업이 ‘나’와 ‘우리’의 실존과 직ㆍ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 합니다.

두 번째로, 이번 사랑방 공부를 통해 스스로의 무식함과 부족함을 깊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이 아직 많은 부분에서 부족하고 갈 길이 멀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과 경험이 부정적인 의미에서 좌절과 낙심을 주었다기보다는(물론 때로는 그러기도 하였 습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저를 다시 자극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공부하는 학우들의 도움과 격려가 있었기 때문에 한 학기를 즐겁게 잘 마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개인적으로 사랑방이 끝난 지금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부족하다고 느낀 만큼 더욱 더 공부하고 더 노력할 뿐만 아니라 사랑방에서 선생님과 다른 학우들을 통해 배웠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돌보고 살리는 ‘사랑의 국제정치학’을 실천해나가고 싶습니다. 꿈과 앎과 삶과 함은 모든 요소들이 균형 있게 같이 갈 때 비로소 운동력과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베이징 답사에 대해 간략히 느낀 점을 간략하게 나누자면, 무엇보다 2 박 3 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마음으로 존경하는 하영선 선생님, 항상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대해 주셨던 최수이 선생님, 그리고 7 명의 휼륭한 학우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정말 즐겁고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한 학기 동안의 사랑방 시간이 지식적인 교류와 학습이 주였다고 한다면, 이번 베이징 답사의 시간은 서로의 삶을 나누고 더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각자 한 학기 동안 열심히 준비한 지식을 공유할 뿐 아니라 3 일 동안 온전히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삶을 공유하고 서로 배울 수 있어서 지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더 친밀해 질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798 예술구 파트를 준비하면서 생소한 분야라 걱정과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 우연한 만남을 통해 중국 현대미술의 매력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었고 그 매력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정말 즐거웠습니다. 이 만남과 추억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소중한 추억과 배움에 근거해서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랑방 학우들이라는 좋은 추억을 선물해주신 하영선 선생님, 백혜영 실장님, 최수이 선생님, 그리고 한 학기 동안 함께 수고한 사랑방 학우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10 기 마지막 보고서를 마치고 싶습니다. 아듀 10 기 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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