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사랑방을 찾아
21세기 조선통신사, 규슈에 가다 : 사랑방의 젊은 그들 규슈를 품다
21 세기 통신사와 아베 일본의 만남 · 최인호 · 서울대학교
답사는 몸으로 하는 공부
저희는 답사의 마지막 여로에서 한 학기 동안의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러 저러한 소감이 오가는 끝에 우리의 토의는 답사를 온 까닭으로 모아졌습니다. ‘왜 강의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우리는 나가사키 땅을 밟아야만 했을까?’ ‘우리의 보고 들음은 읽음과 무엇이 달랐을까?’ 저는 제 나름대로 공부를 넘어선 공부라는 답을 내렸습니다.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공부를 실험해 보고자 나가사키를 온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니 답사의 의미가 명확해졌습니다.
몸으로 하는 공부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줍니다. 답사를 위해 읽었던 글들, 답사에서 만났던 일본의 풍경과 일본인들은 동아시아라는 꿈의 다양한 버전을 이야기해 주었으며, 함께 간 동기들 9. 동아시아 사랑방을 찾아: 21 세기 통신사와 아베의 만남 과 선생님은 나의 국제정치 공부가 동기, 선후배들의 삶 속에 엮여 있음을 가르쳐주었고, 여행지에서의 나는 강의실에서의 나에게 공부와 실천이 별개가 아님을 말해 주었습니다.
타락한 이상향: 일본의 동아시아
이번 답사 기간 동안 제가 맡았던 주제는 아베 신조
일본
(安倍晋三) 총리의 동아시아 전략이었습니다. 전략이라지만 결국 아베 총리가 꿈꾸는 동아시아의 모습은 무엇인가를 짚어보자는 것이고, 현지에서 그 구상을 직접 확인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동아시아라는 구호가 심심치 않게 들려 오지만 사실 동아시아는 20 세기 초 일본이 자국의 제국주의 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고안해낸 위선적인 꿈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Saaler and Szpilman ed. 2011, 161-220). 특히 일본은 1930 년대 동아시아 신질서라는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냈고, 이들이 내놓은 동아시아 연방 이라는 비전은 상당한 매력을 발휘하여 우리나라 좌파 지식인까지 현혹시켜버리기도 하였습니다(하영선 2012). 그 덕분에 서구를 넘어서는 비전이라는 동아시아라는 담론이 가지는 다양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동아시아론은 늘 아시아 국가들에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것도 사실입니다. 일종의 타락한 이상향이 불러일으키는 이중적인 감정이라 고 할까요? 21 세기 동아시아 신질서론의 후계자는 아베 총리입니다. 아베 총리 또한 다양한 시각에서 일본 주도의 동아시아라는 새로운 구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베 정부의 동아시아 구상은 새롭게 설치한 국가안전보장회의 의 《국가안전보장전략》(이하 NSS) 문서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이 문서 3 장을 보면 가장 주목할 지구적인 안보상황의 변화로 세력전이와 급격한 기술 혁신을 들고 있습니다. 세력전이로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신흥 국가들의 부상을 들고 있고, 그 중에서도 중국의 부상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여전히 미국이 소프트 파워, 경제력, 군사력을 합친 가장 큰 강대국임을 지적하며 당분간은 미국 중심 체제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국제정치의 권력이 국가 사이에서만 아니라 기술 변화와 세계화로 인해서 국가에서 비국가 행위자로 이전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들을 주요 행위자로 꼽고 있습니다(National Security Council 2013, 6-10).
위와 같은 세계 정세 분석에 이어서 동아시아 정세 분석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 가장 특징적인 것이 ‘회색지대’라는 단어입니다. 이는 NSS 가 만들어졌던 좌담회 때에도 매우 주목되었던 개념입니다(安全保障と防衛力に関する懇談会 2013). NSS 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질서가 유지되고 있지만, 중국의 급격한 군사력 증강 및 북한의 핵개발로 점차 갈등의 소지가 있는 회색지대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언제든 분쟁이 터질 수 있는 위태로운 균형 상황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National Security Council 2013, 11- 12). 9. 동아시아 사랑방을 찾아: 21 세기 통신사와 아베의 만남
이러한 신정세에 대응하는 아베 정부의 동아시아 전략을 두 가지 단어로 표현하면 적극적 평화주의와 국제협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NSS 는 일본 국가 안보정책의 근본원칙을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전략적 환경에서 일본은 지금까지 밟아온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의 행로를 계속 밟아갈 것이며, 세계 정치와 경제의 주요
행위자로서 더욱 적극적으로 국제공동체의 평화와 안정과 번영의
추구에 공헌할 것이다. 동시에 국제협조주의에 기초한 ‘적극적
평화공헌자’로서 그 자신의 안보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달성한다.
이것이 일본이 고수하려는 국가안보의 근본원칙이다(National Security
Council 2013, 4).
이는 짧은 문단이지만 여러 가지 일본의 고민이 녹아 있는 원칙입니다. 이 문단에서 첫 번째 키워드는 ‘적극적 평화’입니다. 새로운 전략적 환경이라는 것은 앞서 말한 동아시아의 정세, 중국의 부상, 북한의 핵 위협, 회색지대의 증가, 지구적 비전통 안보 이슈의 발생 등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처럼 평화국가의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것은 실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적극’이라는 수사가 앞에 붙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 아베가 이야기하는 평화는 기존의 방어만 하겠다는 전수방위의 소극적인 평화 개념과의 단절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수 방위체제에서 일본은 타국을 침략하지 않으며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국가의 군대를 창설하지 않고 오로지 방어를 위한 자위대만을 유지한다는 입장을 지켰습니다(박철희 2004, 175-177).
하지만 앞서 정세분석에서 보듯이, 이제 안보와 평화를 위협하는 대상은 국가들 간의 전쟁이 아니라, 핵확산, 테러리즘 등의 비전통적인 안보 요소들, 그리고 국가 간에도 전쟁이 아니라 영토분쟁을 둘러싼 회색지대의 갈등입니다. 따라서 이제 평화는 타국을 침략하지 않아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제적인 요소들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때로는 군사력을 사용해서 비전통적인 안보 위협을 제거하는 확장된 평화활동을 해야만 지킬 수 있게 됩니 다(National Security Council 2013, 28- 31). 말은 같은 평화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정반대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키워드는 ‘국제협조’입니다. 아베의 또 다른 최대 현안은 일본 경제의 부흥입니다. 경제 부흥은 일본이라는 국가 전체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이에 대한 아베의 우려는 절실한 면이 있습니다. 2013 년 9 월 아베가 미국의 허드슨 연구소(Hudson Institute)에서 한 발언을 보면, 아베는 솔직하게 현재 일본의 청년들이 희망을 잃고 있으며, 오늘보다 내일이 더 불행할 것이라는 절망에 빠져있다고 시인하고 있습니다(Abe 2013). 이러한 상황 때문에 일본은 세계 경제안보 무대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여 경제를 부흥하고 민족 정신을 고취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제협조라는 말은 안보 영역 이외에도 중국 등 아시아 지역 국가를 비롯해 미국 등 역외 국가는 물론 각종 기구들과 협력을 통해서 일본과 지역의 번영을 함께 달성하는 일을 목표로 합니다(National Security Council 2013, 23-27). 9. 동아시아 사랑방을 찾아: 21 세기 통신사와 아베의 만남
공세적인 경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세분석은 시의 적절한 면이 있습니다. 특히 재균형 정책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고, 줄어든 국방 재정으로 세계 질서를 관리해야 하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대환영할 일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제협조주의도 미국과 안보협력 및 경제협력 차원에서 맞는 부분이 있고, 나아가서는 지역이나 지구적 차원에서도 경제적인 협력을 적극적으로 활성화해서 일본 경제를 다시 한번 부흥시킬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것도 일리 있는 주장입니다. 중국은 위협적 존재로 부상하고 있고, 미국은 아시아로 재균형을 하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중심으로 전세계로 다시 뻗어나가 일본의 경제와 군사정치적인 지위의 부흥을 꾀하겠다는 이러한 아베식 동아시아 전략은 적어도 위와 같은 정세분석의 맥락에서는 논리적인 일입니다.
21 세기 일본 신질서 건축의 후계자로서 아베의 구상은 과연 1930 년대 동아시아 신질서론과 같은 매력을 발휘하고 있을까요? 우선 미국의 반응을 보면 두 나라는 적어도 문서상으로는 긴밀한 공동 노선을 취해왔습니다. 2013 년 10 월 합의된 미일 2+2 회담 공동 성명에 따르면 미국은 우선 미일동맹에서 일본의 확대된 책임과 역할을 인정하고 비용을 분담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정리하였습니다. 양쪽은 미국의 재균형 전략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미일동맹이 미국이 전개하고 있는 지역 및 세계 전략에 더욱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재편되는 것에 합의하는 동시에, 일본의 새로운 안보전략에 대해서는 “미국은 일본이 적극적으로(proactive) 지역과 지구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서 공헌하는 것을 환영한다.”라고 하여 미국 주도의 미일동맹의 틀 속에서 일본의 역할이 확대되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US Department of Defense 2013, 1).
하지만 저는 답사 첫 날 사세보 미국 해군기지(United States Fleet Activities Sasebo)에서 미일 양국의 입장에 미묘한 틈이 벌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답사 프로그램 중에 기지 사령관이 미국의 아태전략에서 사세보가 갖는 역할 등에 대해 브리핑을 해주고 질의 응답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저희를 지도하시는 하영선 선생님께서 일본의 대중국 전략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질문하셨는데 곤혹스러워하는 기지 사령관의 모습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즉 현재 아베의 적극적 평화와 국제협조 전략은 겉으로는 미국의 재균형 전략 담론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중국을 자기 질서의 동반자로 삶으려는 미국과 미일을 중심으로 한 동맹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일본 사이에 미묘한 시각 차이가 있음이 확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동맹이 이러하다면 중국, 한국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 또한 아베의 동아시아 구상에 별로 호의적이지 않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삼국 중 중국은 일본의 새로운 동아시아 전략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컨대 샹그리라 대화(Shangri-La Dialogue)에서 왕관쭝
중장의 발언을 빌리면, 중국은 항상 평화적
(王冠中)
인 방법으로 영토분쟁을 해결해왔고 또 앞으로 그러고자 하지만, ‘평화에 대한 적극적 공헌’이라는 공허한 명분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도발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여, 일본의 적극적 평화론 과 이와 관련된 영토분쟁 정책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습니다(Wang 2014). 9. 동아시아 사랑방을 찾아: 21 세기 통신사와 아베의 만남
한국은 어떨까요? 지난 4 월 한미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이 진정성 있는 실천을 보이기 전까지 아무리 안보 및 경제적으로 공통된 이해관계가 있어도 한일관계 개선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뉴스 1> 2014/04/25). 즉 일본이 적극적 평화주의 및 국제협조를 내세우는 것 자체가 한국의 국익 차원에서 반대할 바는 아니나, 중국과 마찬가지로 일본과의 영토분쟁과 역사문제가 똑같이 걸려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확장적인 일본의 새로운 동아시아 전략이 의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적극적 평화와 이에 입각한 일본 자위대의 활동 강화는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일본의 역사인식과 과거사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는 한국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박영준 2014,114-117).
우방에게는 반쪽의 인정만을 그리고 핵심 이웃인 한국과 중국에게는 별다른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아베의 적극적 평화주의는 식민지 국가들의 지식인마저 속여 넘겼던 1930 년대 동아 신질서론과 비교해서는 한참 매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한마디로 타락한 이상향도 되지 못한 그들만의 이상향을 외롭게 노래하는 처지인 것이죠.
나가사키의 동아시아와 21세기 통신사
이처럼 초라한 아베의 동아시아 구상에도 불구하고, 21 세기 통신사들이 확인한 나가사키와 그 속의 동아시아는 여전히 과거의 화려함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친숙한 먹는 이야기부터 해보자면, 조그만 소도시 나가사키지만 이 곳의 디저트 가게들은 서울의 다양하고 감미로운 맛에 길들여진 21 세기 여성 통신사들의 발길을 끌기에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나가사키의 달콤한 빵들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데지마 보고서에도 언급되었지만 17 세기 설탕과 서양 제빵 기술의 수입에서부터 지금도 유명한 나가사키 카스텔라가 만들어진 것이 그 시초이니 적어도 400 년 가까이 된 셈입니다.
나가사키와 큐슈 곳곳에 깃든 동아시아와 세계의 흔적에서 나가사키가 오랜 세월 외부와의 교류에 공을 들였고 그로 인해 큰 도움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첫날 방문한 아리타
(有田) 9. 동아시아 사랑방을 찾아: 21 세기 통신사와 아베의 만남 에 서는 한국에서 건너간 도조 이삼평을 모시고 몇 백 년을 도자기 산업으로 한 마을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한일교류박물 관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한일교류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데지마에서는 조그마한 섬이지만 조선보다 훨씬 앞서 서양과 교류에 나섰기 때문에 보다 쉽게 19 세기 거대한 변환을 준비할 수 있었던 일본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글로버 가든에서는 19 세기 문명 개화의 중심에 섰던 동아시아의 리더로서 일본의 화려했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글로버 가든 앞에 유명한 카스텔라 ‘문명당’의 이름이 이 과거의 영광을 예증하고 있었습니다. 아베의 동아시아 전략 이 겉으로는 개방적이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모습이지만 그 속내는 폐쇄적이었던 반면, 21 세기 통신사들이 목격한 나가사키의 크고 작은 영광은 일본이 제 나름대로 동아시아 및 세계를 품어냄으로써 달성한 성취들이었습니다.
다른 것은 나가사키만이 아니었습니다. 나가사키 속의 동아시아를 거닌 통신사들의 모습도 아베를 향한 한국 언론이나 정부의 경직된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통신사 팀에는 이미 일본어에 능통한 두 명의 대학원생과 영국출신 석사 등이 있어 나가사키 못지 않게 일본과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를 품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희들은 답사기간 곳곳에서 일본의 여러 매력을 즐기기에 바빴습니다. 특히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일본 특유의 서비스를 보여준 버스 기사의 모습에서부터, 호텔 욕실에서 발견한 얼굴 크기만큼만 김 서림 방지 처리가 되었던 거울 등 일본 특유의 섬세함에 한국에서 온 통신사들은 쉽게 감동받았습니다. 수업 시간에 아베의 정책을 비판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나가사키의 통신사들은 일본이 선사하는 다양한 매력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통신사를 맞아준 나가사키도 나가사키를 찾아간 통신사도 그 삶의 모습은 답답한 아베의 동아시아나 옹색한 한국의 반응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통신사와 나가사키 주민들의 삶은 이미 서로를 품고 안긴 국가, 동아시아, 세계의 시공을 향해 열린 채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9. 동아시아 사랑방을 찾아: 21 세기 통신사와 아베의 만남
글로버의 화려한 부상과 21세기 통신사의 현실
하지만 복잡하게 얽혀있는 우리 삶의 모습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하고 그에 대응하여 새로운 실천을 모색하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19 세기 문명 개화기를 선도한 인물들이 나가사키에 남겨놓은 흔적들을 보면서 그처럼 21 세기의 동아시아를 선도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에 부끄럽고도 부러운 마음을 그칠 수 없었습니다.
특히 글로버 가든에서 글로버의 스케일 있는 삶과 나가사키의 아름다운 해변을 내려다보고 있는 공원과 저택에 압도되는 순간, ‘글로버의 20 대는 저렇게 화려했는데 나의 20 대는 왜 이렇게 초라하고 무미건조할까,’ ‘뒤늦게나마 청춘의 화려함을 되찾을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라는 탄식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스코틀랜드 해안 도시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목숨을 건 도박을 한 끝에 일본 개화의 영웅이 된 글로버에 필적하는 재미있는 삶을 살아볼 가능성이 나에겐 과연 있을까? 국제정치의 빈틈, 문명과 야만의 빈틈을 파고들었다가 글로버는 대박을 터뜨렸는데, 통신사들이 화려한 꿈을 꾸고 실행에 옮길 기회는 있을 것인가 등의 질문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2 박 3 일의 짧은 답사기간 동안 제 머리를 맴돌았던 것은 동아시아 라는 꿈의 무대였습니다. 20 세기 초에 일본이 시작했고, 아베가 초라한 형태로 되살리려 하는 동아시아를 사랑방의 통신사들이 새롭게 꾸며 본다면 나도 21 세기의 글로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면 중요한 일이 공부와 실천의 결합이었습니다. 강의실과 도서관에서 하는 공부가 21 세기 글로버의 비상과 직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놓지 않아야만 공부가 머리에서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 공부의 오랜 버릇으로 공부는 그저 논문 쓰고 전문가가 되는 일인 줄 알았지만 답사를 통해서 역사가 기억할 공부라는 것은 실제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는 공부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베의 초라한 이상향도 1930 년대 일본의 타락한 이상향도 아닌 한국, 중국, 일본, 그리고 세계를 품을 동아시아라는 21 세기의 이상향을 구체적 으로 그려보는 일이 21 세기 글로버의 첫 항해입니다. 이는 민주주의, 자본 주의, 동아시아의 전통, 새로운 기술의 발전 등 현재 동아시아 변화의 핵심이 되는 요소들을 잘 묶고 조합해서 보편적인 매력을 갖는 동아시아 문명의 규범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일입니다. 일단 섞어보자는 식의 순진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문화의 것이든 장점과 단점을 고르고 깎아서 새로운 형태의 질서를 만들어 보자는 시도입니다. 이미 이러한 시도들이 전 세계 각지에서 진행 되고 있고, 동아시아의 일례로는 유교적 전통의 요소들과 민주주의 개혁을 조합해보려는 움직임 이 있습니다(Kim 2014). 9. 동아시아 사랑방을 찾아: 21 세기 통신사와 아베의 만남
동아시아 사랑방을 찾아서
마지막 여로에서 저희가 소감을 다 발표한 이후 저희를 한 학기 동안 지도해주셨던 선생님께서 사랑방이라는 이름의 의미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선생님은 19 세기 일본 지식인들이 국가와 자신들의 미래를 논하며 무수히 밤을 지샌 사례를 말해주시며,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랑의 방이며, 사랑으로 만나고 사랑으로 공부하고 사랑으로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만나서 언제 어디서고 밤을 지새우며 공부와 삶과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 그것이 사랑방이고, 그러한 곳이라면 모두가 사랑방이다, 그리고 앞으로 그 사랑방을 만들어갈 주체는 여러분들이라는 이야기로 매듭 지으셨습니다.
사랑방에 대한 선생님의 말씀은 제게 이번 학기 오리엔테이션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때도 선생님은 수업을 박규수의 사랑방에서 모인 19 세기 유길준 등의 젊은이들의 모임에 관한 이야기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 흥미를 자극했던 것은 그들의 집이 서울 중심부에 모여 있었고 이미 서로 친숙한 사대부들의 선후배 세대가 모여 19 세기 조선의 앞날을 논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동네의 어른이 똘똘한 아이를 데려다가 19 세기 문명 개화의 새 물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돌다리 위에서 어린 아이가 어르신께 인사하는 친숙한 장면과 19 세기 조선의 개화라는 정치적 과제의 상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느꼈던 기묘한 감동이 답사를 마치는 자리에서 다시 되살아 났습니다. 내가 매일 살아가는 일상이 가장 비일상적인 동아시아라는 이상향으로 가는 첫 걸음이라는 사실이 감격스럽기도 두렵기도 했습니다.
2014 년 여름 나가사키에서는 2 박 3 일간의 사랑방이 열렸지만 우리는 아직 동아시아의 사랑방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곳에는 한국 의 젊은이들은 있었지만 일본, 중국, 다른 지역의 젊은이들은 없었습니다. 동아시아와 세계의 젊은이들이 함께하는 사랑방은 언제 가능할까요? 나가사키에서 우리는 잠시 사랑방의 자유를 누렸지만, 돌아가서는 다시 일반 학생으로, 동아시아의 이상향보다는 당장의 학점과 페이퍼와 진로와 유학을 고민할 겁니다.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동아시아의 젊은이들이 밤을 지새워 꿈을 논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 상설 사랑방은 과연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시대가 변하였으니 그러한 사랑방을 찾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흩어진 채로 그러나 하나의 새로운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야 할까요? 어쩌면 동아시아 사랑방은 찾을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만들어 나가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9. 동아시아 사랑방을 찾아: 21 세기 통신사와 아베의 만남 참고문헌 뉴스 1. 2014. “[전문]한미 정상 공동 기자회견-2.” 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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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5.pdf. 9. 동아시아 사랑방을 찾아: 21 세기 통신사와 아베의 만남 부록 • 사랑방 년 학기 프로그램 • 후원회원 사랑방 년 학기 프로그램 현대세계정치 바로 읽기 주 근대유럽과 국제정치사상 주 제 차 세계대전과 국제정치학의 탄생 주 냉전과 현실주의 국제정치학 주 연구계획서 발표 주 국제정치학 방법론 논쟁 역사 과학 주 데탕트와 패러다임 논쟁 주 신냉전 탈냉전과 신현실주의 신자유주의 주 국제정치학 방법론 논쟁 실증주의 탈실증주의 주 복합화와 구성주의 주 복합화와 세계역사사회학 주 동아시아의 국제정치학 주 한국의 국제정치학 주 세미나 마무리 주 현장답사
젊은 그들
사랑방의
규슈를 품다 동아시아연구원을 후원해주싞 분들입니다. 강명훈 김수진 김형찬 배위섭 강은경 김승빈 김희정 백송현 강은모 김시연 김희진 백혜영 강찬수 김연옥 남윢호 서은숙 강현욱 김영구 노봉읷 서정원 고병희 김영섭 노호식 서희정 고승연 김영원 노환길 선승훈 고혜선 김용규 류재희 성정은 공성원 김용남 명정모 손대현 공정문 김 원 문지욱 손재키 공창위 김유상 민선식 송기춘 구상환 김유주 민선영 송우엽 구윢정 김은선 박근아 송지연 구준서 김은숙 박대균 싞동원 권세린 김은영 박미영 싞명철 김가현 김재두 박사라수현 싞보희 김건민 김 정 박상민 싞상화 김경숚 김정섭 박상용 싞성수 김경지 김정온 박석원 싞성호 김광덕 김정은 박선정 싞영준 김국형 김정하 박성만 싞영환 김기정 김 준 박수진 싞준희 김기준 김지윢 박연호 안용찬 김남희 김지태 박영택 안정구 김대영 김 진 박용준 안중익 김동건 김진영 박장호 안현정 김동호 김진혁 박재시 안현호 김만호 김창수 박정섭 양호실 김민규 김태균 박진원 엄찬섭 김병국 김한기 박찬근 여동찬 김병표 김현성 박찬희 여현정 김병희 김현전 박창완 우미경 김봉하 김형욲 박형민 원종숙 김상래 김형준 배기욱 원종애 동아시아연구원을 후원해주싞 분들입니다. 유승훈 이여희 장진호 채규민 유재승 이영석 장희진 채규호 유정석 이영주 전경수 최 건 유지영 이원종 전명선 최규남 유창수 이읶옥 전혜진 최동규 육은경 이재섭 정기용 최병규 윢병석 이정은 정랑호 최복대 윢영두 이정호 정병갑 최종호 윢용집 이정희 정석희 최준원 윢우성 이종진 정영진 최철원 윢재훈 이종호 정용화 하형읷 윢정림 이주연 정원칠 한금현 윢정선 이주연 정윢석 한상철 윢창민 이중구 정윢호 한숙현 윢혜성 이지원 정재관 한승혜 이근우 이지희 정주연 한읷봉 이기호 이창원 정진영 한정원 이내영 이 항 정해읷 한지현 이동훈 이해완 정현윢 허세홍 이미혜 이현옥 정현주 홍성우 이민교 이현희 정현철 홍성원 이범주 이호준 조규남 홍호영 이봉재 이홍구 조규완 황 수 이상원 이홍재 조동현 황정원 이상훈 이희정 조은희 황준호 이서현 임지숚 조현선 W1 이선주 임현모 주영아
이선희 임현진 주진균 이성량 임홍재 주 한 이소민 장동우 지혜리 이숙종 장세린 진선희 이승훈 장세형 진재욱 이시연 장재훈 차국린 이싞화 장준혁 차동민 출판 외교안보 여론붂석연구
북핵위기와 한반도 평화 노무현 정부의 딜레마와 선택
중국 리스크 중국경제 중장기예측과 국민여론 소수정부 정책선택
리스크붂석 한국인의 국가정체성과 한국정치
변환시대의 한미 안보협력 미래를 향한 변화하는 한국유권자 패널조사를 통해 본 지휘관계 재건축 지방선거
동아시아 공동체 신화와 현실 변화하는 한국유권자 패널조사를 통해 본 세기 신동맹 냉젂에서 복합으로 대선
북한 선짂화로 가는 공짂젂략 변화하는 한국유권자 패널조사를 통해 본 중국의 미래를 말하다 글로벌 슈퍼파워의 대 국회의원선거
가능성과 젂망 변화하는 한국유권자 패널조사를 통해 본 일본과 동아시아 지역협력과 공동체 구상 지방선거
위기와 복합 경제위기 이후 세계질서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여론조사를 통해 본 동아시아 국제정치 역사에서 이론으로 한국인의 정체성
미중관계 변화하는 한국유권자 패널조사를 통해 본 하영선 국제정치칼럼 ·上 총선과 대선
하영선 국제정치칼럼 ·下
글로벌 개발협력 거버넌스와 한국 사랑방 여행 답사기
공짂을 위한 남북경협 젂략 보수와 짂보가 사랑방의 젊은 그들 베이징을 품다 함께 고민하다
한국외교 대 과제 복합과 공짂 영문서적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억제 관여 신뢰의 복합 추짂 한반도와 주변 강 거버넌스연구 정치개혁의 성공조건 권력투쟁에서 정책경쟁으로 정치개혁과 국회개혁 현장에서의 회고와 젂망 국회의 성공조건 윤리와 정책 경제를 살리는 민주주의 붂권헌법 선짂화로 가는 길
대통령직 인수의 성공조건 일이 년을
결정한다 영문저널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영국 등재지 보수당의 역사
세계화 제 막 한국형 세계화의 새 구상
대통령의 성공 조건
일본 부활의 리더십 젂후 일본의 위기와 재건축
사회적 책임 사회적 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