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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마오쩌둥

EAI 사랑방 학생들의 베이징 답사 여행기 : 사랑방의 젊은 그들 베이징을 품다

분류
EAI 사랑방 답사기
발행일
2014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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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원 · 이화여자대학교

들어가는 말 모주석기념관

은 1976년 마오쩌둥

의 사망 이후

(毛主席紀念館)

(毛澤東)

방부 처리된 그의 시신을 안치해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 때문에 이곳은 마오쩌둥의 마지막 순간과 죽은 이후까지도 전해 내려오는 그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마오쩌둥을 만나러 가는 길은 까다로웠습니다. 모주석기념관을 일정에 넣을 때부 터, 우리는 2-3시간에 다다르는 입장 시간부터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 습니다. 일정 전날까지도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모주석기념관에 대한 후기(라기 보다는 일종의 경고)를 읽으면서, 피곤에 지쳐있는 다른 사람들 에게 기다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보기 위해 내일 일찍 일어날 것을 당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 시간은 이미 밤 12시를 향해가고 있었습니다. 7. 두 얼굴의 마오쩌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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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까지 2-3시간이 걸린다는 점 이외에도 모주석기념관에 입장하 는 과정은 엄격하고 까다로웠습니다. 카메라를 포함하여 짐은 그 어떠 한 것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으며, 내부에 들어가서는 공안의 안내 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이동해야 했습니다. 말을 할 때도 소리가 지나 치게 크게 나지 않게 주의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모자를 쓰는 것 또한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여행객의 경우에는 신분 보장을 위해 여권을 반 드시 챙겨가야 했습니다.

아마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올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 런 귀찮은 과정들이 필요한 걸까요? 도대체 마오쩌둥이란 인물은 어 떤 사람이기에 죽은 이후에도 그의 시신을 보러 수많은 중국인들이 모주석기념관 앞에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일까요?

모주석기념관에 찾아가는 당일, 우리는 전날까지의 고된 일정으로 인해 예상대로 계획했던 시간보다 늦어지고 말았습니다. 더 지체돼서 혹시라도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날까 몇 명이 먼저 택시를 타고 모주 석기념관으로 출발하여 줄을 서기로 했습니다. 모주석 기념관으로 향 하는 택시를 잡고 목적지를 말하자, 택시 기사는 중국어를 못 하는 우 리를 배려하여 모주석기념관이 “no open”이라고 짧게 설명했습니다. 저를 비롯 미리 출발한 세 사람은 당혹스러웠지만 일단은 직접 기념 관에 가서 상황을 살펴보자고 합의했습니다. 다행이 그날 모주석기념 관이 휴관을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줄을 선 사람이 너무 적어 택시 기사가 오해했던 것이었습니다.

택시기사의 말 대로, 모주석기념관에 도착하자 입장을 기다리는 사 람들의 긴 행렬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입구 주변으로 사람들이 많 이 모여있기는 했지만 우려와 달리 인터넷에서 보았던 긴 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뒤늦게 출발한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느라 잠시 동안 추운 날씨에 바깥에서 기다렸던 것 외에는 예상과 달리 너무나 쉽게 마오쩌둥을 만나러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여전히 적 은 수의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어째서 그 악명 높았던 긴 행렬이 우리 가 갔던 날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혹시라도 우 리가 마오쩌둥과 그만큼 인연이 있었던 것일까요?

두 얼굴의 마오쩌둥

모주석기념관에 들어가기 위한 까다로운 조건들처럼, 마오쩌둥이라는 인물은 그 본모습에 접근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마오쩌 7. 두 얼굴의 마오쩌둥 둥의 생전 행동들은 오늘날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 리는 한 인물이 보여주는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모습 앞에서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전까지 그는 투철한 민족의식의 소유자이 자 뛰어난 혁명가였습니다. 또한 항일전쟁 때에는 당시뿐 아니라 미래 의 정세까지 정확하게 예측할 정도의 판단력과 분석력을 갖춘 사람이 었습니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그의 행적은 오히려 과보 다는 실이 많습니다. 특히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진행된 문화대혁명 은 철저히 마오쩌둥의 책임으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 하나 만으로도 마오쩌둥의 과오는 너무나 큽니다.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추 산이 되지 않는 많은 수의 사상자를 냈을 뿐만 아니라 그 폭력성은 가히 경악스럽습니다. 건국 이전까지 마오쩌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 가 내릴만한 요소들이 문화대혁명 시기에 들어서면 힘을 잃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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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마오쩌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우선은 마 오쩌둥의 이중적인 면모를 모두 살펴봅시다. 이 글에서는 마오쩌둥의 어느 한 측면만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고 최대한 균형 있게 마오쩌둥 의 과와 실을 모두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마오쩌둥이란 인물을 어떻게 볼지는 순전히 각자의 몫일 것이며, 어떠한 정답도 있을 수는 없을 것 입니다.

지구전론

마오쩌둥이 남긴 수 많은 글 중 지구전론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 전 마오쩌둥의 뛰어난 현실판단력과 정세분석력을 보여줍니다. 마오쩌 둥은 일본의 중국 침략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38년 5월에 이 글을 썼 습니다. 이 글에서 마오쩌둥은 “왜 지구전인가?”, “최후의 승리는 왜 중국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 습니다. 그 답에서 마오쩌둥은 일본과 중국이 각각 처한 상황과 특징, 국제사회의 반응, 시간의 흐름에 따른 상황 변화 등을 냉철하면서도 정확하게 비교·분석하고 있습니다. 그가 제시한 구체적인 답을 살펴 보겠습니다.

•일본의 장점은 강력한 군사력, 경제력, 정치조직력에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국제적 원조를 능가하는 국제적 반대에 부딪힐

것인데, 그것은 일본의 퇴보적이고 야만적인 제국주의적 성격으

로 인한 것입니다. 7. 두 얼굴의 마오쩌둥

•반면에 중국은 일본에 비해 군사력, 경제력에서 훨씬 약세에 처

해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넓은 영토, 풍부한 물자와 인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이 장기전에서는 장점이 될 것

입니다. 더욱이 중국의 항일전쟁은 진보와 정의를 대변하므로 국

제적인 원조를 크게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초기에 일본의 강력한 군사력, 경제력은 중국에게 패배를 안겨줄 것

입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이와 같은 패배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고 말합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상황이 변화하고, 그렇게 되면 일

본이 가진 약점은 더욱 크게 작용할 것이며 중국의 강점은 더욱 크

게 성장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최종적으로는 중국이 승리할 가

능성이 높아집니다(마오쩌둥 1989, 207-253).

1938년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마오쩌둥의 이와 같은 상황판단 력과 현실분석력이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그렇게 어려운 건가?”하는 생 각이 든다면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우리는 일본이 패망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1938년이라는 시점 에는 어땠을까요? 일본의 패망을 예측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었을 까요? 지금 현재를 생각해 보세요. 예를 들어 현재 중국과 미국의 관계 를 생각해 봅시다. 5년, 10년 후의 중국과 미국의 관계를 큰 틀에서 정확 하게 예측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1938년 당시 마오쩌둥이 중 일전쟁에서 중국의 승리를 예견했던 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여전히, 위와 같은 마오쩌둥의 예상이 단순히 그의 망상에 불과한 것일 수 있지 않겠냐고, 실제 역사의 전개와 일치했던 것은 단순한 우 연이 아니었냐고 질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오쩌둥이 지구 전론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중국의 무조건적인 승리가 아닙니다. 그는 분명히 중국이 가진 약점과 일정 시기까지 중국의 패배가 불가 피할 것임을 지적하였습니다. 단순히 망상이나 우연의 일치로 치부하 기에 지구전론에서 나타나는 마오쩌둥의 판단력은 매우 균형 있고 현 실성이 높으며 설득력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구전론에서 나타나 는 마오쩌둥의 뛰어난 능력과 업적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만 놓고 보자면, 마오쩌둥은 투철한 민족의식의 소유자이자 혁명 가, 전략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대혁명

이제부터 살펴볼 모습은 마오쩌둥에 대한 시각과 입장을 좀 더 복잡 하게 만들 것입니다. 지구전론을 마오쩌둥의 뛰어난 업적과 성과 중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의 말년을 장식한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 의 가장 큰 실책일 것입니다. 실제로 중국공산당 또한 공식적으로 마 오쩌둥의 공과 과의 비율을 7대 3으로 보고 있습니다. 비율에 대해 세 세하게 이의를 제기하기 이전에 중국공산당조차도 마오쩌둥을 무조건 변호할 수 없는 지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문화대혁명입니다. 그만 큼 문화대혁명은 지도부를 비롯 중국사회 전체에 엄청난 상처와 영향 력을 남긴 사건이었습니다. 7. 두 얼굴의 마오쩌둥

문화대혁명은 철저히 마오쩌둥 한 사람의 결단에 의해 일어났던 사 건이었으며 전적인 책임은 그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문화대혁명을 이해 하려면 마오쩌둥이란 인물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오쩌둥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 위해서도 그의 말년을 지배한 문화대혁명을 반드시 살펴보고 넘어가야 합니다. 도대체 왜 마오쩌둥은 그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일까요? 우리는 문화대혁명을 어떻 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두 질문은 서로 다른 듯 하지만 밀접한 연관성 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례로, 마리-클레르 베르제르(Marie-Claire Bergere)라는 프랑스 학자 는 문화대혁명을 “마오쩌둥이 권력을 재장악하는 과정”, 즉 “권력투쟁” 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마오쩌둥의 권력욕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베르제르조차도 문화대혁명이 마오쩌둥의 입장에서는 “혁명이 퇴락하고 수정주의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이해했습니다(베르제르 2009, 184-185). 분명히 문화대혁명의 결정과 시행 에서 나타나는 마오쩌둥의 모습은 비합리적이고 잔인하며 독재적입니 다. 차라리 무시무시한 권력욕 때문이었다면 그의 이러한 기행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단순히 권력욕만으 로 저지른 행동이 아니라 혁명을 위해서 그러한 행동을 실천에 옮겼 다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많은 고민이 됩니다.

마오쩌둥을 설명하는 중요한 핵심 키워드는 ‘혁명’이 될 것입니다. 마오쩌둥의 이런 특성은 그가 문화대혁명을 왜 일으켰는지도 어느 정 도 설명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문화대혁명이 비 록 마오쩌둥의 지속적인 혁명에 대한 지향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고 해서 그 사건에서 나타나는 폭력성과 마오쩌둥의 과오를 백지화시키 려는 의도는 없다는 점입니다. 다만 앞서 이 글의 목적이 마오쩌둥의 극단적인 양면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데 있었기 때문에 그 양극단을 이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연결고리를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지구전론과 문화대혁명에 나타나는 마오쩌둥의 서로 다른 모습들을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는 이 글을 읽고 있 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나가는 말

마오쩌둥에 대해 공부할 때도 저의 심정은 복잡했지만, 모주석기념관 을 나올 때만큼 심경이 복잡했던 적은 없습니다. 그것이 단순히 누군 가의 시체를 보았기 때문에 찝찝한 기분이 들어서 그랬던 것인지, 아 니면 비록 전에 들은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여전히 상당수의 중국인들이 그곳을 찾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랬던 것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그 광경은 대단히 이 질적인 것이기는 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사람들에게는 그 시체까지 영원불멸하게 모셔놓을 만한 인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역사와 국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고 해서 그 시체까지 경건하게 모셔놓아야 할 이유를 저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말년에 엄 7. 두 얼굴의 마오쩌둥 청난 과오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아마 이것은 한국인인 저의 시각과 입장이 강력하게 반영된 것이겠지요.

기념관을 나오면서 저는 질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왜 마오쩌둥은 시체까지 모셔놓았으면서 덩샤오핑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실제 중 국인들은 마오쩌둥의 시신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요? 중국공산당이 의도한 것처럼 마오쩌둥의 업적에 감명받고 그에게 감사할까요? 아니면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는 걸까요? 혹시라도 저처럼 복잡한 심경을 느끼 는 사람은 없을까요? 한 인물이 이처럼 한 사회나 국가에 거대한 영향 력을 미치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을 까요? 혹시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은 어떨까요? 모주석기념관에 찾아 가 마오쩌둥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 참고문헌 고지마 신지·마루야마 마츠유키. 1988. 《中國近現代史》. 서울 : 지식산업사. 리버살, 케네스. 2013. 《거버닝 차이나 : 현대 중국정치의 이해》. 서울 : 심산. 마오쩌둥. 이희옥 역. 1989. 《모택동선집Ⅰ》. 서울 : 전인.

마이스너, 모리스. 2004.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 1·2. 서울 : 이산. 베르제르, 마리-클레르. 2009. 《중국현대사 : 공산당, 국가, 사회의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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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처, 마크. 2001. 《반조류의 중국》. 서울 : 돌베개. 슈람, 스튜어트 R.. 1979. 《모택동》. 서울 : 두레.

아마코 사토시. 2003. 《중화인민공화국 50년사》. 서울 : 일조각.

전리군. 2012. 《모택동 시대와 포스트 모택동 시대 1949-2009》 上·下.

파주 : 한울아카데미.

스노우, 에드가. 2013. 《중국의 붉은 별》. 서울 : 두레.

스펜서, 조나단 D.. 1998. 《현대 중국을 찾아서》 1·2. 서울 : 이산. 부록

•EAI 사랑방 2013년 2학기 프로그램 •EAI 사랑방 제2기 참가 학생들이 말한다

- “EAI 사랑방”은?

- “EAI 사랑방 답사여행”은? EAI 사랑방 2013년 2학기 프로그램 “동아시아 질서 건축사 : 고대천하에서 미래복합까지” 1주 동아시아 질서 건축사 2주 천하질서의 기원 I 3주 천하질서의 형성 4주 천하질서의 전개 5주 논문 연구계획서 발표 6주 ‘금수’문명의 전파와 변용 7주 일본대아시아주의의 신화 8주 냉전질서 I : 한국전쟁의 비극 9주 연구논문 중간발표

10주 냉전질서 II : 미중 데탕트와 7·4 남북공동성명의 명암 11주 복합질서 I : 중국의 부상

12주 복합질서 II : 미중시대의 미래

13주 복합질서 III : 동아시아신질서 건축의 미학 14주 연구논문 초고발표

15주 베이징 답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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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사랑방 제2기 참가 학생들이 말한다 “EAI 사랑방”은? 박규수의 사랑방을 알고 계신가요? 19세기 격변의 시대에 후학을 양성 하기 위해 박규수가 만든 공부방이었습니다. EAI 사랑방은 그 뜻을 이 어 새시대를 열어갈 인재들을 키우는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앞서 걷고 계신 하영선 선생님의 큰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또 함께 미래를 고민하는 친구들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한 학기란 시간은 참 짧으면서도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인생을 바꿔놓을 긴 시간이기도 합니다. 끝날 줄 모르는 매주의 세미나, 자유롭게 진행되는 개인 연구, 그 뒤 사랑방 밖으로 나가보는 현장답사까지, 사랑방의 한 학기는 알 차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또 여러분이 직접 더욱 알차게 꾸려갈 수 있 습니다. EAI 사랑방은 미래를 꿈꾸는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 니다. ……… 김지은

중국의 부상으로 곧 등장하게 될 신 세계질서를 논의하기 위해 하영 선 교수님과 21세기의 젊은 그들이 모인 공간. 단순 양적 방법론에 기초한 사회과학을 넘어 시대의 난맥상을 읽으려는 통찰력이 살아 숨 쉬는 사회과학을 위한 공간. ……… 전나눔 EAI 사랑방 제2기 참가 학생들이 말한다 학문이란 무엇일까? 공부를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한번 이라도 해 본 사람이 있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영선 교수님의 말씀들, 수준 높은 읽기 자료들, 직 접 발로 뛰는 답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위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제기하고 그 답을 얻는 과정에서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 할 14주를 보 낼 수 있었다. ……… 우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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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사랑방 제2기 참가 학생들이 말한다 EAI 사랑방 프로그램에서는 하영선 이사장님이 엄선하신 읽을거리를 읽으며 예습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고, 각기 다른 학교 에서 공부한 학생들과 의견을 나누며 심도 있는 토론을 하며 14주 동 안 세미나를 진행해나갑니다. 당대 동아시아 질서 건축에 참여한 사람 들의 눈높이를 맞춰가는 공부방식은 다른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EAI 사랑방만의 독특한 훈련방식입니다. 세미나를 종강한 후 떠나는 답사는 학생들이 답사지를 하나씩 맡아 가이드를 함으로써 스스로와 다른 친구에게 답사지의 역사적 맥락과 조건에 맞추어 참신한 관점으 로 소개하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14주간의 훈련의 화룡점정을 찍게 되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 지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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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사랑방 제2기 참가 학생들이 말한다 “EAI 사랑방 답사여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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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가 국가박물관 안에서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박물관 속 유물들은 고려, 조선 유물들과 비슷하면서도 확연히 달라 인상 깊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고려, 조선의 멋과 미가 보다 정제되어 있고 어떤 법 도를 따른다는 느낌을 주는데 반해 중국의 유물들은 세계 각지에서 영향을 받아 변칙적이고 다채로웠다. 국가박물관에서 이러한 중국의 국제적인 면모를 잘 설명해 준 혜수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한다. ……… 전나눔 EAI 사랑방 제2기 참가 학생들이 말한다 사실 국가박물관에는 작정하고 혼자 아침에 와서 마감시간 때 나가본 적이 있어 어색하진 않았다. 하지만 혜수의 놀랍게도 명쾌하고 쏙쏙들 어오는 해설에 다른 곳을 온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특히 술먹는 접시 와 밥먹는 접시 등을 나누어 보니 더 자세히 보인 점이 기억에 남는 다. 역시 박물관은 스토리가 있어야 살아난다. 단체로 박물관에 와서 보람찼던 적은 처음이 아닐까. 어쨌든 별 다섯개짜리 첫 일정!

………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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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사랑방 제2기 참가 학생들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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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긴 역사와 넓은 땅을 가진 나라 중국의 '국가'박물관이라니 어 디서부터 어떻게 봐야할까 갈피가 안잡힐 것 같았다. 혜수가 각 시대 별로 하이라이트를 알려준 덕에 훨씬 의미있게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마감시간이 다가올 때 가이드의 빛이 더 발했다. “부자나라 송이예요. 도자기가 핵심입니다!” “자, 명나라에서는 금을 찾아 떠나세요, 여러분!” 우리는 시대별로 소장품을 봤는데 보는 내내 공간적인 광활함도 느꼈 다. 바로 옆에 전시된 비슷해 보이는 유물이 출토된 곳을 보면 하나는 쓰촨이고 하나는 허난이였다. 비슷한 것들이 이 넓은 땅을 타고 어떻 게 돌아다녔을까를 상상해보았다. 실제로 당 송에 이르면 외국인들이 EAI 사랑방 제2기 참가 학생들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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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속 등장했다. 이 시공간 속에서 사람들이 만나고 섞이는 모습을 엿 보면서 지금 이순간 중국 국가박물관에 와있는 우리들은 나중에 어떻 게 기억될지 생각해보게 됐다. ……… 김지은

처음 가 본 중국 국가박물관은 중국의 대륙 크기답게 정말 크고 웅장 했다. 우리는 하은주 시대부터 송당에 이르기까지 유물을 보다가 시간 이 부족할 정도로 중국은 방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었다. 이 넓디 넓은 곳에서 우리 스페셜 가이드(?)의 센스는 빛이 났다. 특히 측천무 후 이야기를 하는 데에서는 이야기꾼 뺨칠 정도였다. 그 박물관의 방 대함은 다시는 잊지 못할 것이다. ……… 이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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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그들

사랑방의

베이징을 품다 동아시아연구원을 후원해주신 분들입니다.

강국연 권용순 김봉하 김용수 김종휘 김형재 문진성 강규형 권지원 김상래 김용준 김 준 김형준 민병문 강명훈 금영수 김상우 김용직 김준홍 김형찬 민선식 강문선 기의석 김석준 김용호 김준희 김효신 민선영 강영준 김건민 김성경 김우상 김지영 김희동 민영석 강윤관 김건이 김성한 김 원 김지윤 김희정 민지숙 강은경 김건호 김세종 김 원 김지정 김희진 박경수 강은모 김건훈 김송주 김유상 김지태 나상원 박근아 강찬수 김경순 김수진 김유주 김지현 나정원 박대균 강현욱 김경지 김승빈 김윤호 김 진 남계승 박동선 고병희 김관용 김승혜 김윤희 김진기 남윤호 박미나 고승수 김광덕 김시연 김은기 김진아 남태희 박미영 고승연 김국형 김신숙 김은선 김진영 노영훈 박병우 고은희 김기정 김양규 김은숙 김진혁 노익상 박사라수현 고형식 김기준 김연옥 김은영 김창수 노재경 박상민 고혜선 김남이 김영곤 김인섭 김창욱 노현정 박상용 공성원 김남희 김영구 김인혜 김창원 노호식 박상준 공유식 김대영 김영목 김재두 김철영 노환길 박석원 공정문 김동건 김영미 김 정 김태현 라종일 박성만 공창위 김동은 김영섭 김 정 김판석 류재희 박성은 곽노전 김동호 김영원 김정섭 김하정 마금회 박소연 구법모 김만호 김영호 김정수 김한기 마정재 박수진 구상환 김미영 김예자 김정온 김현성 명정모 박순휘 구윤정 김병국 김용규 김정욱 김현전 문성환 박연호 구준서 김병표 김용남 김정은 김형석 문윤성 박영렬 권세린 김병희 김용렬 김정하 김형운 문지욱 박용준 동아시아연구원을 후원해주신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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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1세기 한국외교 대전략 : 그물망국가 건설 1. 노무현 정부의 딜레마와 선택 : 2. 한미동맹의 비전과 과제 국민여론·소수정부·정책선택

3. 북핵위기와 한반도 평화 2. 한국인의 국가정체성과 한국정치

4. 2020 중국 리스크 : 중국경제 중장기예측과 3. 변화하는 한국유권자 : 패널조사를 통해 본

리스크분석 5·31 지방선거

5. 변환시대의 한미 안보협력 : 미래를 향한 4. 변화하는 한국유권자 2 : 패널조사를 통해 본

지휘관계 재건축 2007 대선

6. 동아시아 공동체 : 신화와 현실 5. 변화하는 한국유권자 3 : 패널조사를 통해 본 7. 21세기 신동맹 : 냉전에서 복합으로 18대 국회의원선거

8. 북한 2032 : 선진화로 가는 공진전략 6. 변화하는 한국유권자 4 : 패널조사를 통해 본 9. 중국의 미래를 말하다 : 글로벌 슈퍼파워의 2010 지방선거

가능성과 전망 7.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 여론조사를 통해 10. 일본과 동아시아 : 지역협력과 공동체 구상 본 한국인의 정체성

11. 위기와 복합 : 경제위기 이후 세계질서 8. 변화하는 한국유권자 5 : 패널조사를 통해 본 12. 동아시아 국제정치 : 역사에서 이론으로 2012 총선과 대선

13. 미중관계 2025

14. 하영선 국제정치칼럼 1991-2011·上 EAI 영문서적

15. 하영선 국제정치칼럼 1991-2011·下 1. Between Compliance and Conflict: East Asia, 16. 글로벌 개발협력 거버넌스와 한국 Latin America, and the “New”Pax Americana 17. 공진을 위한 남북경협 전략 : 보수와 진보가 2. Power and Security in Northeast Asia: Shifting

함께 고민하다 Strategies

18. 2020 한국외교 10대 과제 : 복합과 공진 3. Party Politics in East Asia: Citizens, Elections,

and Democratic Development

EAI 민주대전략시리즈 4. Collective Violence in Indonesia

1. 대통령의 성공조건 I : 역할·권한·책임 5. Public Diplomacy and Soft Power in East Asia 2. 대통령의 성공조건 II : 회고와 제언 6. The Park Chung Hee Era: The Transformation of 3. 정치개혁의 성공조건 : 권력투쟁에서 South Korea

정책경쟁으로 7. Future of North Korea 2032: Coevolutionary 4. 정치개혁과 국회개혁 : 현장에서의 회고와 Strategy for the Advancement

전망

5. 국회의 성공조건 : 윤리와 정책 EAI 영문저널

6. 경제를 살리는 민주주의 Journal of East Asian Studies (SSCI 등재지) 2001- 7. 분권헌법 : 선진화로 가는 길

8. 대통령직 인수의 성공조건 : 67일이 5년을

결정한다

9.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 영국

보수당의 역사

10. 세계화 제2막 : 한국형 세계화의 새 구상 11. 2013 대통령의 성공 조건

12. 일본 부활의 리더십 : 전후 일본의 위기와

재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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