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 특별 논평] ① 이란 전쟁 이후의 국제질서와 한국: 끝나지 않는 전쟁의 시대와 탈패권 이행의 시험대
편집자 주
전재성 EAI 원장(서울대 교수)은 2026년 미국-이란 전쟁을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닌 국제질서의 탈패권 이행과 구조적 불균형을 드러내는 중대한 시험대로 분석합니다. 저자는 정체성의 충돌과 경제안보의 얽힘으로 인해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으며, 동맹국의 비용 분담 문제와 핵 비확산 질서의 약화 속에서 미국의 단독적인 안정화 능력이 한계에 직면했다고 지적합니다. 전 원장은 이러한 복합 위기 속에서 한국이 수동적인 안보 소비자를 넘어 능동적인 질서 조성자로서 한미동맹을 진화시키고 다층적인 북핵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 미국-이란 전쟁 특별 논평 시리즈 동아시아연구원(EAI)은 2026년 미국-이란 전쟁 이후 급변하는 글로벌 지형을 심층적으로 진단하기 위해 총 5편으로 구성된 특별 논평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이번 시리즈는 탈패권 이행기와 끝나지 않는 전쟁의 시대라는 복합 위기 속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국제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이를 위해 국제정치, 군사안보, 중동, 중국, 정치경제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합니다. 다양한 시각이 융합된 이번 논평 시리즈를 통해 글로벌 안보 및 경제의 불안정성을 평가하고, 불확실성의 시대에 한국이 나아가야 할 능동적인 외교·안보적 대응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① 전재성, 이란 전쟁 이후의 국제질서와 한국: 끝나지 않는 전쟁의 시대와 탈패권 이행의 시험대 ② 김강석, 안소연, 2026년 이란 전쟁 이후 중동 질서: 구조적 불안정성과 안보전략의 전환 [논평 읽기]③ 김양규, 이란 전쟁과 AI 전장 혁명: ‘속도의 역설’과 한국의 과제 [논평 읽기] ④ 이승주, 이란 전쟁: 우주 정보전과 군산 복합체 2.0의 부상 [논평 읽기] |
Ⅰ. 서론: 세 전쟁과 국제질서의 변환
2026년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대상으로 감행한 군사작전은 단순히 중동 지역의 또 하나의 군사충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전쟁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23년 가자 전쟁과 더불어, 21세기 국제질서가 전쟁이라는 방식으로 변화를 드러낸 중요한 사례이다. 세 전쟁은 원인과 성격, 행위자와 전장, 국제적 파급효과에서 서로 다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유지되어 온 국제질서가 지금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는지 질문한다는 점에서 상통한다.
국제질서 변화에 대한 기존의 논의는 대체로 미국의 상대적 약화,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수정주의, 그리고 다극화의 진전을 중심으로 국제질서 변화를 설명해 왔다. 이러한 세력배분의 변화는 분명히 중요한 배경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국이지만, 냉전 직후와 같은 일방적 질서 형성 능력을 더 이상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오늘의 국제질서 변화를 세력전이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보다 근본적인 변화는 지난 30여 년간 진행된 지구화와 그 결과로 나타난 국제 공공재 수요의 폭증이다. 안보, 통상, 금융, 에너지, 보건, 기후, 식량, 공급망, 사이버 공간에 이르기까지 국제질서가 관리해야 할 영역은 과거보다 훨씬 넓어졌다. 질서가 제공해야 하는 안정성의 범위는 커졌지만, 이를 담당할 단일 패권국의 능력과 의지는 오히려 약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오늘의 국제질서는 공공재 수요는 증가하지만 공급은 불안정해지는 구조적 불균형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이 분야별로 같은 속도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군사안보 영역에서는 세력정치와 강대국 경쟁이 빠르게 복귀하고 있다. 반면 경제와 금융 영역에서는 상호의존이 여전히 깊게 남아 있다. 기후, 보건, 에너지 영역에서는 협력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으나 실제 협력의 제도적 기반은 약화되고 있다. 기술 영역에서는 경쟁, 차단, 표준 설정, 공급망 재편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오늘의 질서 변화는 단순한 탈냉전의 종식도 아니고, 냉전의 반복도 아니며, 고전적 다극체제로의 회귀도 아니다. 그것은 영역별로 다른 속도와 논리가 중첩되는 비동시적이고 비대칭적인 질서 전환이다.
이란 전쟁은 탈패권 이행기의 중요한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탈패권은 미국의 영향력이 단순히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미국이 압도적 힘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힘이 국제질서의 안정적 규칙과 공공재 공급으로 자동 전환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미국의 힘은 여전히 크지만, 그 힘의 사용을 둘러싼 정당성, 지속성, 예측가능성, 제도적 수용성은 약화되고 있다. 오늘의 국제질서는 미국 없는 질서라기보다, 미국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는 질서로 이행하고 있다.
Ⅱ. 트럼프가 시작한 전쟁: 전략 부재의 선택의 전쟁(War of Choice)
이란 전쟁의 첫 번째 특징은 명백한 예방전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전쟁은 이란의 임박한 무력사용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이란이 장차 핵능력을 완성할 가능성, 더 정확히 말하면 이란이 핵문턱 국가로서 되돌리기 어려운 전략적 지위에 도달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군사행동이었다. 전쟁은 전통적 의미의 자위권 행사라기보다 미래의 위험을 현재의 군사력으로 제거하려는 예방적 무력사용에 가까웠다.
국제법적 정당성의 결여의 문제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이 전쟁이 명확한 전략적 합의와 준비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개시되었다는 점이다. 미국 내부의 군사·정보 분야 핵심 행위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작전의 군사적 효용, 정보적 확실성, 확전 가능성, 전후 관리 비용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이러한 신중론을 충분히 흡수하거나 제도적으로 조정하지 못한 채 추진되었다.
이란 전쟁은 미국 패권의 단순한 쇠퇴라기보다 미국 패권 운용 방식의 위기를 드러낸다. 위협을 평가하고, 목표를 설정하며, 수단을 조합하고, 동맹과 파트너를 설득하며, 전후 질서를 관리하는 종합적 능력이 중요하다고 할 때 이번 전쟁은 큰 결점을 드러냈다. 이란 전쟁에서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그 힘을 일관된 정치적 목적과 안정적 질서 관리로 연결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전쟁 수행 과정에서 드러난 전략적 혼선도 심각하였다. 우선 전쟁 목적이 명확하지 않았다. 이란 핵시설을 파괴하여 핵능력 자체를 제거하려는 것인지, 이란 정권의 행동을 강압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인지, 정권교체까지 염두에 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전쟁의 성공 기준도 설정되어 있지 않았다. 핵시설의 파괴가 성공인지, 핵개발의 지연이 성공인지, 이란의 협상 복귀가 성공인지, 역내 억지력 회복이 성공인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전쟁 목적이 불분명하면 전쟁 종결의 기준도 불분명해질 수밖에 없다.
이란의 대응 방식에 대한 준비도 충분하지 않았다. 이란은 직접적인 군사보복뿐 아니라 대리세력 활용, 해상교통 교란, 사이버 공격, 핵개발 가속화, 국제원자력기구와의 협력 축소 등 다양한 비대칭 수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전쟁은 이러한 다층적 대응 가능성을 충분히 통합한 전략적 설계 위에서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려웠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 또는 교란 가능성에 대한 대응 부재는 전략 부재의 대표적 사례였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시장과 직결된 핵심 해상교통로이며, 이란이 군사적 열세를 보완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가장 명백한 압박 수단 중 하나이다. 이란 핵시설을 공격하는 순간, 해협 봉쇄 또는 제한적 교란은 가장 먼저 검토되어야 할 시나리오였다.
미국은 군사작전의 전술적 성공 가능성에는 집중했지만, 그 작전이 글로벌 에너지 시장, 동맹국 경제, 인플레이션, 금융시장, 국내 정치에 미칠 연쇄효과에 대해서는 충분한 대비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는 전쟁을 군사문제로만 이해하고, 전쟁이 경제·기술·사회·동맹정치로 확산되는 복합위기적 성격을 과소평가한 결과였다. 현대의 전쟁은 전장 안에서만 진행되지 않는다. 그것은 에너지 가격, 해상보험, 금융시장, 공급망, 국내 여론, 동맹관리로 빠르게 확산된다.
결국 이란 전쟁은 강요된 전쟁이 아니라 선택의 전쟁이었다. 그러나 그 선택의 결과는 전쟁 이전의 상태를 안정적으로 회복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핵시설에 대한 물리적 타격은 단기적으로 이란의 핵개발 일정을 지연시켰을 수 있다. 그러나 핵프로그램은 건물과 장비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과학자, 기술자, 조직, 축적된 지식, 산업기반, 정치적 의지, 안보 위협 인식의 결합체이다. 시설을 파괴한다고 해서 핵능력의 사회적·기술적 기반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 오시라크 공습의 분석이 보여주듯, 핵시설에 대한 선제적 타격은 단기적 지연 효과를 낼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프로그램의 지하화, 분산화, 은폐 강화, 핵무장 의지의 가속을 초래할 수 있다.
이란 전쟁은 트럼프 개인의 충동적 결정이나 중동정책의 실패로만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탈패권 이행기 미국의 힘이 여전히 압도적이지만, 그 힘을 질서로 전환하는 전략적 능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군사력 사용을 통해 새로운 국제질서를 설계하고, 동맹을 안정시키며, 상대의 장기적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능력이 충분히 행사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군사적 능력과 전략적 질서 형성 능력 사이의 간극이 이란 전쟁이 주는 큰 함의이다.
Ⅲ. 전쟁 종식의 어려움: 끝나지 않는 전쟁의 시대
이란 전쟁의 두 번째 특징은 종결되기 어려운 전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의 비종결성은 우선 전쟁 자체의 결함에서 비롯된다. 이란 전쟁은 개전 목적이 명확하지 않았고, 군사작전의 성공 기준도 불분명했으며, 전쟁 이후의 정치적 상태에 대한 설계도 충분하지 않았다. 목적이 불분명한 전쟁은 종결 기준도 불분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란 전쟁의 종결 어려움은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전쟁, 이란 전쟁을 관통하는 보다 구조적인 변화의 일부이다. 오늘의 전쟁은 과거처럼 일정한 군사적 승패, 영토 조정, 정전 합의, 강대국 보증을 통해 비교적 명확하게 종료되는 양상을 보이지 않는다. 전쟁은 개시되지만 종결되지 않고, 휴전은 이루어지지만 평화로 전환되지 않으며, 합의는 체결되지만 재발 가능성은 제거되지 않는다. 전쟁은 전장의 사건으로 시작되지만, 이후 국내정치, 정체성, 기술, 경제안보, 국제규범, 동맹정치가 얽힌 장기적 위기 상태로 지속된다.
합리주의적 전쟁이론은 전쟁을 기본적으로 교섭의 실패로 설명한다. 국가들이 전쟁의 비용과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면, 양측은 전쟁을 치르기보다 그 예상 결과를 반영한 협상에 도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전쟁이 발생하는 것은 정보의 불완전성, 상대의 결의에 대한 오판, 약속 이행의 불신, 또는 쟁점의 불가분성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전쟁의 종결은 전장에서의 비용 지불을 통해 양측의 신념이 조정되고, 힘의 분포와 의지의 수준에 대한 인식이 수렴할 때 가능해진다.
그러나 오늘의 전쟁들에서는 바로 이 수렴 과정이 구조적으로 지연되고 있다. 전쟁은 정보를 생산하지만, 그 정보가 협상을 가능하게 하기보다 오히려 적대적 정체성과 정치적 결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전쟁의 비용이 커질수록 양측이 현실적으로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불한 비용 때문에 후퇴하기 어려워지는 상황도 반복된다. 이 경우 전쟁은 교섭 실패의 결과일 뿐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정체성과 생존 논리를 생산하는 과정이 된다.
첫째, 전쟁의 성격이 이익의 전쟁에서 정체성의 전쟁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 의미에서 전쟁은 영토, 자원, 영향권, 안보 이익을 둘러싼 갈등으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이익들은 어렵더라도 협상, 보상, 분할, 단계적 이행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주요 전쟁에서 핵심 쟁점은 점점 더 정체성, 역사, 체제 생존, 집단적 기억, 국가의 존재 이유와 결합되고 있다.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단순한 지정학적 완충지대가 아니라 러시아적 세계관과 제국적 정체성의 일부로 간주된다. 이스라엘 정부에게 가자는 단순한 안보 위협의 공간이 아니라 국가 생존, 집단 기억, 국내 우파 정치의 정당성과 결합되어 있다. 이란 체제에게 핵능력은 군사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혁명체제의 자율성, 서방 압력에 대한 저항, 정권 생존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전쟁의 쟁점이 정체성과 결합될수록 타협의 공간은 좁아진다. 협상은 더 이상 이해관계의 조정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부정처럼 인식될 수 있다. 지도자들은 전쟁의 비용이 커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후퇴가 국내정치적 처벌과 정권 약화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한다. 전쟁은 국가 간 교섭의 문제가 아니라 지도자와 정권의 생존 문제가 된다. 전쟁의 지속은 비합리적 고집이 아니라 지도자의 관점에서는 정치적 생존전략이 된다.
둘째, 무기체계의 변화가 약자의 전쟁 지속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20세기 전쟁에서 강자는 제공권, 장거리 정밀타격, 기갑전력, 해군력, 정보우위 등을 통해 상대의 군사능력을 압도하고 전쟁 종결을 강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전쟁들은 기술 확산이 전쟁의 비대칭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공지능의 본격적 전장 활용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드론, 저가 정밀무기, 상업위성, 분산형 통신망, 사이버 수단, 이동식 미사일, 소형 무인체계의 확산은 약자의 전쟁 지속 능력을 크게 높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도 드론, 미사일, 분산 방공망, 외부 정보지원, 민간기술의 군사적 전용을 통해 강대국의 결정적 승리를 지연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란 역시 정규군 전력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비할 수 없지만, 미사일, 드론, 대리세력, 해상교란 능력, 사이버 능력, 지리적 깊이를 활용하여 장기적 비용을 부과할 수 있다. 강자는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지만, 약자는 전쟁을 끝나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셋째, 경제안보 변수가 전쟁 종결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지구화 시대의 전쟁은 전장에서만 수행되지 않는다. 해협, 항만, 에너지 가격, 보험료, 금융시장, 공급망, 식량 가격, 반도체와 핵심 광물의 이동이 모두 전쟁의 일부가 된다. 이란 전쟁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전쟁 종결에 관한 핵심 요인이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군사적 보복수단이 아니라 세계 경제 전체를 압박할 수 있는 경제안보 카드이다. 이란이 해협을 전면 봉쇄하지 않더라도, 제한적 군사행동, 선박 공격, 기뢰 위협, 보험료 상승, 시장 불안 심리만으로도 글로벌 에너지 가격과 물류 비용을 흔들 수 있다.
이처럼 경제적 상호의존은 전쟁 억제의 기반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전쟁 지속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전쟁 당사자는 상대의 군사력뿐 아니라 세계경제의 취약성을 활용해 비용을 외부화한다. 에너지 수입국, 공급망 의존국, 금융시장 개방국, 무역국가는 전쟁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전쟁의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종전 협상 역시 더 이상 군사적 쟁점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제재 해제, 원유 수출, 금융 접근, 항행의 자유, 재건 비용, 난민 문제, 국제기구 복귀, 핵사찰 체제 등이 모두 종결 조건의 일부가 된다.
마지막으로 종전을 보증할 신뢰할 수 있는 제3자의 부재의 문제가 있다. 전쟁은 당사자 간의 합의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특히 상호불신이 깊고, 전쟁 이후 재공격 가능성이 높으며, 합의 위반을 처벌할 독립적 장치가 없을 경우, 종전은 안전보장과 검증을 제공할 제3자를 필요로 한다. 오늘의 국제질서에서 이 보증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 냉전기에는 미소 양극체제가 위험한 대리전과 지역분쟁을 낳았지만, 역설적으로 강대국 간 관리와 압력의 구조가 작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냉전 직후에는 미국의 단극적 우위와 국제기구의 개입이 일부 분쟁에서 보증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의 보증 능력과 의지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고, 중국은 선택적 개입을 선호하며, 러시아는 질서 보증자가 아니라 수정주의적 행위자로 움직이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주요 강대국 간 대립으로 마비되기 쉽고, 국제기구의 검증과 평화유지 능력은 당사자들의 정치적 수용성에 의존한다.
이란 전쟁에서도 이 문제는 결정적이다. 양해각서가 체결되고 60일 또는 그와 유사한 잠정적 시한이 설정되더라도, 그 합의를 지탱할 보증 구조가 없다면 그것은 종전이 아니라 일시적 동결에 불과하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다시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필요로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이 핵개발을 재개하거나 은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검증을 요구한다. 그러나 양측 모두 상대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으며, 제3자는 그 약속을 강제할 충분한 권위와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조건에서는 정전은 가능하지만 평화는 어렵고, 협상은 가능하지만 종결은 지연되며, 위기는 완화될 수 있지만 언제든 재개될 수 있다.
Ⅳ. 동맹 관계의 변화: 조율 없는 전쟁의 비용
이란 전쟁의 세 번째 특징은 미국의 동맹 관계에 내재해 있던 긴장을 노출시켰다는 점이다. 이 전쟁은 미국이 여전히 동맹망을 통해 세계적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의 동맹정치가 과거와 같은 수준의 전략적 조율, 규범적 설득, 비용 분담의 정당성을 안정적으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동맹국들은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에 의존하면서도, 그 군사력이 언제, 어디서, 어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용될지 충분히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가장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것은 걸프 지역의 미국 동맹국들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에서 이란의 군사적 압박과 역내 세력균형 변화에 대응해 왔다. 그러나 이란 전쟁은 이들에게 보호의 편익과 연루의 비용이 동시에 발생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걸프 국가들은 미국의 작전을 직접 지원하거나 최소한 묵인했지만, 그 결과 이란의 보복 위협에 가장 즉각적으로 노출되었다. 미군 기지, 에너지 시설, 항만, 해상교통로, 민간 인프라는 모두 이란과 그 대리세력이 압박할 수 있는 취약 지점이 되었다. 미국의 군사작전은 워싱턴과 텔아비브에서 결정되었지만, 보복의 지리적 비용은 걸프 동맹국들이 먼저 떠안게 된 것이다.
전후 국면에서 이들은 또 다른 부담에 직면하였다. 미국은 군사작전의 정치적 책임과 비용을 동맹국들과 분담하려 했고, 전후 안정화, 재건, 배상, 에너지 시장 안정, 해상안보 유지에 걸프 국가들의 재정적·외교적 기여를 요구하고 있다. 보호는 무상으로 제공되지 않으며, 보호의 대가는 사후 청구서의 형태로 돌아와 거래적 동맹의 성격이 강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 청구서가 동맹국들이 충분히 참여하지 못한 결정의 결과라는 점이다. 결정 과정에서는 주변화되고, 비용 분담에서는 중심화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스라엘과의 관계 역시 단순한 공동전선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핵능력 억제라는 전략적 목표를 공유하였고, 전쟁의 개시 국면에서는 사실상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진행되면서 양국의 이해는 점차 분기하였다. 이스라엘에게 이란의 핵능력은 실존적 위협으로 인식되었고, 따라서 군사작전의 목표는 가능한 한 장기적이고 불가역적인 핵능력 제거에 가까웠다. 반면 미국에게 이란 문제는 중동 전체의 세력균형, 에너지 시장, 국내정치, 대중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동맹관리와 연결된 보다 넓은 전략적 계산의 일부였다. 양국은 같은 적을 상정했지만, 같은 전후 질서를 구상한 것은 아니었다.
이 차이는 전쟁 목적과 종결 조건을 둘러싸고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군사·핵 인프라에 대한 지속적 압박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고, 이란 정권의 약화 또는 내부 불안정까지 전략적 성과로 간주할 가능성이 컸다. 반면 미국은 확전 통제, 에너지 시장 안정, 동맹국 부담 완화,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기회 차단을 동시에 고려해야 했다. 개전의 동반자였던 두 국가는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종결의 방식, 협상의 조건, 전후 감시체제, 이란 체제의 미래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선호를 드러냈다. 이는 동맹이 적의 존재만으로 자동적으로 결속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 이후의 정치적 목표가 공유될 때에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유럽 동맹국들도 모순적인 처지에 놓였다. 이들은 이란 핵문제와 중동 안정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지만, 개전 결정 과정에서 실질적 협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는 미국의 입장을 지지할 것인지, 국제법적 우려를 표명할 것인지, 에너지 시장 안정과 해상안보에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요구받았다. 유럽은 전쟁 개시의 주체가 아니었지만, 전쟁의 외교적 정당화와 경제적 후과 관리에는 동원되었다. 그 결과 유럽 동맹국들은 미국의 군사행동에 대한 거리두기와 동맹 결속 유지 사이에서 어려운 균형을 찾아야 했다.
아시아 동맹국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란 전쟁의 직접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중동 에너지 의존, 해상교통로 안전, 원유 가격, 금융시장 변동, 미국의 전략적 자원 배분, 대중국 억제태세의 변화는 모두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미국이 중동에서 군사적·외교적 에너지를 소모할 경우, 인도태평양에서의 억지력 유지와 동맹 공약의 신뢰성에 대한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아시아 동맹국들은 미국의 중동 개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어렵지만, 동시에 그 개입이 자신들의 안보 환경에 미치는 비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란 전쟁이 보여준 동맹정치의 핵심 문제는 조율 없이 시작된 전쟁의 비용과 비난을 동맹국들이 함께 부담하게 된다는 점이다. 동맹국들은 개전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제한된 발언권만을 갖지만, 전쟁 이후의 경제적 충격, 외교적 입장 표명, 군사적 지원, 제재 이행, 해상안보 협력에서는 책임 있는 파트너로 행동할 것을 요구받는다. 미국은 동맹국들의 신속한 지지와 협력을 기대하지만, 동맹국들은 자신들이 충분히 협의하지 않은 전쟁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불만을 갖게 된다. 이때 동맹은 전략적 공동체라기보다 위기 비용을 배분하는 정치적 장치로 인식될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 전쟁은 동맹의 해체를 보여준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동맹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시킨 사건이다. 동시에 그것은 동맹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의 동맹이 보호와 충성의 교환이었다면, 오늘의 동맹은 위험, 비용, 정보, 기술, 정당성, 국내정치적 부담을 함께 조정해야 하는 복합적 협상체가 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동맹망을 통해 세계전략을 수행하지만, 동맹국들은 더 이상 자동적 지지자가 아니다. 이란 전쟁은 동맹이 군사적 결속의 장치에서 전략적 조율의 시험대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Ⅴ. 핵 비확산 질서의 동요
이란 전쟁의 네 번째 특징은 핵 비확산 질서에 심각한 역설을 남겼다는 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능력 완성을 막기 위해 군사작전을 감행하였다. 표면적으로 이 전쟁은 핵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 방식은 오히려 비확산 질서의 규범적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 핵확산을 막기 위해 예방타격을 사용하면, 단기적으로는 특정 국가의 핵프로그램을 지연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다른 국가들에게 핵무장의 필요성과 핵문턱 상태의 위험성을 동시에 학습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비확산 질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전제 위에서 작동해 왔다. 하나는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들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 대신 평화적 원자력 이용권과 일정한 안보·경제적 혜택을 보장받는다는 전제이다. 다른 하나는 핵개발 의혹이 발생했을 때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협상, 외교적 보장 등을 통해 문제를 관리할 수 있다는 전제이다. 이란 핵문제 역시 오랫동안 이러한 틀 안에서 다루어져 왔다. 이란은 핵개발 의혹을 받았고, 국제사회는 제재와 협상, 포괄적 공동행동계획과 같은 방식으로 이를 관리하려 했다.
그러나 이란 전쟁은 이러한 외교적·제도적 관리 방식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협상과 제재가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과 보고가 정치적 불신을 해소하지 못하며, 강대국 간 합의가 국내정치 변화에 의해 흔들릴 때, 핵문제는 다시 군사적 선택지로 이동한다. 문제는 군사적 선택지가 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핵문제의 성격을 더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핵시설은 파괴될 수 있지만, 핵개발에 필요한 지식과 조직, 과학기술 인력, 정치적 의지는 파괴되기 어렵다. 오히려 공격을 받은 국가는 핵무장을 체제 생존의 최후 보장수단으로 더욱 강하게 인식할 수 있다.
이란 전쟁은 핵잠재력을 가진 국가의 위험성을 부각시켰다. 이들 국가는 완성된 핵억지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핵무장에 필요한 상당한 기술과 물질적 기반을 확보한 국가를 의미한다. 이러한 국가는 핵확산을 우려하는 외부 세력의 예방타격 대상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완성된 핵억지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할 확실한 보복능력도 갖지 못한다. 이 중간 상태는 매우 불안정하다. 핵무장을 완전히 포기하면 외부 위협에 취약해질 수 있고, 핵무장에 접근하면 예방타격의 위험이 커진다. 이란 전쟁은 바로 이 핵문턱 상태의 취약성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황은 다른 잠재적 핵개발 국가들에게 양가적 교훈을 준다. 하나의 교훈은 핵문턱 상태에 머무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핵능력을 충분히 완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외부에 노출되면, 군사타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른 하나의 교훈은 협상과 제한적 투명성이 반드시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핵프로그램을 협상의 대상으로 삼고, 일부 사찰과 합의를 수용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외부 공격을 막을 수 없다면, 국가들은 은폐, 지하화, 분산화, 가속화를 더 선호하게 될 수 있다. 이는 비확산 질서에 매우 부정적인 신호이다.
예방타격의 또 다른 문제는 규범적 일반화 가능성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장래의 위협이라는 이유로 타격했다면, 다른 국가들도 유사한 논리를 자신의 안보 환경에 적용하려 할 수 있다. 특정 국가가 장차 핵능력, 미사일 능력, 사이버 공격 능력, 인공지능 기반 군사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예방적 무력사용을 정당화한다면, 국제질서에서 무력사용의 문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국제법은 실제 공격이나 임박한 공격에 대한 자위권을 인정하지만, 장래의 불확실한 위험을 근거로 한 예방전쟁은 매우 엄격하게 제한해 왔다. 이 기준이 약화될 경우 강대국은 자신의 위협 인식을 근거로 더 자주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핵확산을 방치할 수 없다는 주장도 강력하다. 핵무기를 보유한 적대국가가 등장할 경우, 지역 안보는 근본적으로 불안정해질 수 있다. 핵무장은 재래식 군사균형, 동맹관계, 위기관리, 군비경쟁, 핵도미노 가능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이란이 핵무장을 완성할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이집트 등 다른 중동 국가들의 핵선택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따라서 핵확산 방지는 여전히 중요한 국제 공공재이다. 문제는 이를 어떤 방식으로 달성할 것인가이다. 비확산 질서를 지키기 위해 국제법적 규범과 제도적 절차를 훼손할 경우, 비확산 질서 자체의 정당성이 약화될 수 있다.
이란 전쟁은 비확산과 억지, 강압과 협상, 사찰과 안전보장의 균형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비확산 질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핵개발 국가를 압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핵개발을 포기하거나 제한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안전보장과 경제적 보상, 국제적 지위의 개선이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합의 위반에 대한 검증과 처벌도 분명해야 한다.
결국 이란 전쟁은 핵 비확산 질서가 단순한 기술통제 체제가 아니라 안보질서, 지역질서, 강대국 정치, 국제법적 정당성, 체제 생존 인식이 결합된 복합질서라는 점을 보여준다. 비확산의 미래는 핵시설의 파괴 여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핵무장을 필요 없게 만드는 안보환경과 핵합의를 신뢰하게 만드는 국제정치적 조건을 얼마나 재구성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Ⅵ. 경쟁국의 시각
이란 전쟁의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미국의 경쟁국들이 이 전쟁을 통해 무엇을 학습하였는가에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란 전쟁에서 읽어낸 첫 번째 교훈은 미국의 물질적 한계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장거리 정밀타격, 정보·감시·정찰 능력, 항공모함 전단, 전략폭격기, 미사일 방어, 사이버 능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복수의 전역에서 고강도 작전을 장기간 지속할 수 있는가이다. 전쟁이 단기적 충격으로 끝나지 않고 장기적 소모전으로 전환될 경우,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도 산업적 기반과 재고의 제약을 받는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에게 중요한 전략적 정보이다. 미국의 군사력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지만, 그 힘은 무한하지 않다. 특히 정밀무기와 요격 자산은 현대전에서 가장 빠르게 소모되는 핵심 자원이다. 미사일 방어체계는 기술적으로 정교하지만 비용이 높고, 요격탄 재고는 제한적이며, 방위산업 기반의 생산 속도는 전장의 소모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 경쟁국의 입장에서 이것은 미국을 직접적으로 압도할 수 있다는 신호라기보다,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장기적 소모와 다중 전역 압박을 통해 약화시킬 수 있다는 신호이다.
두 번째 교훈은 미국의 의지의 한계이다. 이란 전쟁은 미국이 군사력을 사용할 의지를 여전히 갖고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그 사용 이후의 확전과 장기전에는 신중하거나 회피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음을 드러냈다. 특히 트럼프의 미국은 강한 언어와 과감한 타격을 선호하면서도, 그 타격이 대규모 지상전, 장기 점령, 막대한 재정 부담, 국내정치적 역풍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피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경쟁국들은 여기서 중요한 패턴을 읽어낼 수 있다. 미국은 공격할 수 있지만, 오래 머물고 끝까지 관리하려 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징벌할 수 있지만, 질서를 재건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속적으로 감당하려 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인식은 경쟁국들의 위험 감수 성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은 대만해협, 남중국해, 동중국해에서 미국의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계산할 때, 미국의 초기 대응 능력뿐 아니라 장기적 정치 의지를 함께 평가할 것이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을 통해 미국이 여러 전선에서 동시에 고강도 관여를 지속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판단을 강화할 수 있다. 이들은 미국이 압도적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강한 압박과 장기적 비용 부과 앞에서는 협상, 후퇴, 또는 제한적 개입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특히 트럼프식 외교가 거래, 압박, 과시, 비용 회피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경쟁국들은 미국의 의지를 일관된 전략적 공약이 아니라 정치적 협상의 대상으로 보게 된다.
세 번째 교훈은 미국 취약성의 다차원성이다. 미국의 취약성은 단순히 군사적 자산의 부족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그것은 외교적 정당성, 경제적 상호의존, 동맹의 신뢰, 국내정치의 분열, 국제규범의 수용성이라는 여러 층위에서 나타난다. 이란 전쟁은 미국이 여전히 압도적인 타격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타격이 국제적 정당성을 자동으로 획득하지는 못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경제적 상호의존 역시 미국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었다. 이란 전쟁은 중동의 군사위기가 원유 가격, 해상보험, 물류, 인플레이션, 금융시장, 공급망 불안정으로 빠르게 전이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은 에너지 자립도가 높아졌지만, 세계경제 전체의 불안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더구나 미국의 동맹국들, 특히 유럽과 아시아의 에너지 수입국들은 중동 위기에 훨씬 더 취약하다. 경쟁국들은 이 점을 주목한다. 미국 본토를 직접 공격하지 않더라도, 미국 동맹국들의 경제적 취약성을 압박함으로써 미국의 전략적 부담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사적 경쟁은 더 이상 전장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글로벌 시장과 공급망의 취약성을 매개로 확장된다.
그러나 이 모든 학습이 곧바로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기회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란 전쟁은 미국의 취약성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경쟁국들에게도 경고를 보냈다. 첫째, 미국은 여전히 장거리 정밀타격을 감행할 수 있는 국가이다. 미국의 전략적 일관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는 있지만, 특정 조건에서 미국이 군사력을 사용할 가능성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측 불가능성은 경쟁국에게도 부담이 된다. 트럼프식 외교의 즉흥성과 과시성은 동맹국에게 불안을 주지만, 경쟁국에게도 계산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다.
둘째, 예방타격의 선례는 경쟁국 자신의 전략 자산도 동일한 논리의 사정권에 놓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장래의 위협이라는 이유로 타격했다면, 중국과 러시아 역시 자신들의 핵심 군사·기술 인프라, 대리세력, 회색지대 작전 기반, 또는 전략적 거점을 둘러싼 예방적 논리의 확산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규범이 약화될수록 강대국에게 행동의 자유가 커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모든 강대국의 전략 자산이 더 불안정한 예외상태에 노출된다.
셋째, 미국의 약점이 곧 중국이나 러시아의 질서 공급 능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이란 전쟁이 확인시킨 가장 중요한 구조적 함의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실수를 비판하고, 미국의 이중기준을 공격하며, 미국 패권의 피로를 강조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미국을 대체하여 국제 공공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능력과 신뢰를 갖추고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질서의 보증자라기보다 그 파괴자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은 경제적 규모와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안보 공공재, 금융 안정성, 해상교통로 보호, 분쟁 종결 보증, 규범적 정당성의 측면에서 아직 미국을 대체할 수준의 신뢰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 점에서 오늘의 국제질서는 단순한 패권교체의 국면이 아니다. 미국의 힘은 부족해지고 있지만, 대체 패권국의 힘도 충분하지 않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모든 문제를 단독으로 관리할 수 없지만, 중국과 러시아도 그 공백을 단독으로 메울 수는 없다.
Ⅶ. 한국에 대한 함의와 결론
이상의 분석은 한국에 대해 세 가지 층위의 함의를 갖는다. 이란 전쟁은 중동의 군사위기이지만, 그 의미는 중동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미국 패권의 작동 방식, 전쟁 종결의 어려움, 동맹 조율의 약화, 핵 비확산 질서의 취약성, 경쟁국들의 전략적 학습을 동시에 드러낸 사건이다. 한국은 이 전쟁을 먼 지역의 위기로만 볼 수 없다. 한국은 미국 동맹망의 핵심 구성원이며, 북한 핵위협에 직접 노출되어 있고, 에너지·공급망·기술·금융의 글로벌 상호의존 속에서 번영을 유지하는 국가이다. 따라서 이란 전쟁 이후의 국제질서 변화는 한국 외교안보 전략의 주변 조건이 아니라,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규정하는 핵심 환경이다.
첫째, 대미 관계의 차원에서 한국은 동맹의 성격 변화를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미국은 여전히 한국 안보의 기축이며, 확장억제와 주한미군, 정보·감시·정찰 능력, 핵우산, 첨단 군사기술, 글로벌 금융·기술 네트워크에서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란 전쟁은 미국과의 동맹이 곧 자동적 안정성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힘의 사용이 언제나 동맹국과 충분히 조율되거나 국제질서의 안정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동맹국들은 미국의 보호를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미국의 일방적 선택전쟁이 초래하는 비용과 연루 위험을 부담해야 할 수 있다.
한국의 대미 전략은 단순한 동맹강화나 거리두기의 이분법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안보의 기축으로 유지하되, 그 관계를 수동적 의존에서 능동적 기여와 발언권의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 동맹에서 발언권은 선언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그것은 정보 공유, 공동 기획, 위기 시나리오 협의, 군사·산업·기술 기여, 경제안보 협력 능력을 통해 확보된다. 한국은 북한 문제뿐 아니라 대만해협, 남중국해, 중동 위기, 에너지 안보, 공급망 충격, 사이버 공격, 군사 인공지능, 우주안보 등 한국 안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을 한미 전략협의의 정례 의제로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북핵 문제의 차원에서 이란 전쟁은 더욱 직접적이고 무거운 함의를 갖는다. 북한은 이란 전쟁을 가장 예민하게 관찰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입장에서 이 전쟁은 명확한 교훈을 제공한다. 핵을 포기한 리비아는 정권 붕괴를 피하지 못했고, 핵무기를 보유했으나 포기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을 받았으며, 협상과 제한적 핵합의를 선택했던 이란은 결국 군사타격의 대상이 되었다. 반면 핵능력을 고도화하고, 강대국과의 전략적 연계를 강화하며, 핵전력의 생존성을 높여 온 북한은 직접 타격을 받지 않았다. 북한이 이 비교에서 얻을 결론은 비핵화의 필요성이 아니라 핵보유의 필요성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의 북핵 정책은 보다 현실적이고 다층적인 접근으로 재설계될 필요가 있다. 비핵화는 여전히 장기 목표로 유지되어야 한다. 북한의 핵보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거나 핵확산 질서의 붕괴를 수용하는 것은 한국의 안보와 국제적 원칙 모두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핵화를 장기적으로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지금 당장 관리해야 할 위험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와 위협 감소라는 중간 목표를 구분해야 하면서 핵무기 수와 질의 추가 고도화 억제, 위기 시 오판 방지, 핵사용 문턱 관리, 미사일 시험과 배치의 투명성 제고, 군사적 충돌 방지 장치 복원, 우발적 확전 방지 채널 확보가 정책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셋째, 지구 거버넌스 참여의 차원에서 한국은 자신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이란 전쟁은 어느 단일 강대국도 더 이상 국제질서를 단독으로 공급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미국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국가이지만, 모든 지역의 안보위기, 경제충격, 기술규범, 비확산 문제, 기후·보건·공급망 위기를 혼자 관리할 수 없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미국의 공백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 공백을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메울 능력과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다. 유럽은 규범적 역량은 강하지만 군사적 집행 능력이 제한적이고, 글로벌 사우스는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아직 통합된 질서 공급자로 작동하지 않는다. 질서의 수요는 증가하지만 질서의 공급은 분산되고 불안정해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조건에서 중견국의 역할은 중요해진다. 물론 한국이 세계질서 전체를 설계하거나 강대국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질서의 공백은 단일 국가가 아니라, 특정 영역에서 능력과 신뢰를 갖춘 국가들의 연합에 의해 부분적으로 메워질 수 있다. 질서의 소비자였던 한국이 질서의 조성자로 이동하는 것이 이란 전쟁 이후 국제질서 변화 속에서 한국에게 부과하는 과제이자 동시에 가능성이라고 하겠다. ■
■ 전재성_동아시아연구원장,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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