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NK 논평] 북한의 헌법 개정과 한반도 문제의 전망
편집자 주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북한의 최근 헌법 개정이 남북 관계를 '별도의 두 국가'로 규정하고 통일 지향을 부정하는 등 기존의 헌법 개정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변화를 보여준다고 진단합니다. 저자는 북한이 이러한 헌법 명문화를 통해 '정상 국가'로서의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고, 기존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일상적 리더십으로 전환하려 한다고 분석합니다. 박 원장은 북한의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가 한국에게 완전히 새로운 대북 정책을 요구하는 동시에 외교를 통한 기회의 순간을 제공할 수 있으므로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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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에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5기 1차 회의에서 북한의 헌법 개정이 채택되었다. 실제로 헌법 개정이 이뤄진 시점은 3월 22일-24일 사이이었던 걸로 알려져 있는데, 국내에 이 소식이 전해진 건 5월 초였다. 정부의 공개 방식도 예사롭지 않았는데, 정부 관계자의 직접적인 설명이 아니라, 민간 전문가의 설명을 통한 전달 방식이었다. 일부 언론의 분석에 의하면, 북한 헌법 개정은 워낙 중차대한 사안이고, 북한 내부의 복잡한 사안들과 연결되어 있어서, 정부가 혹시라도 오해를 야기할 수 있는 상황을 사전에 차단했다는 것이다.
1948년 9월 9일 북한의 최초 헌법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이 제정되었고, 이후 총 13차에 걸쳐 헌법 수정이 이뤄졌다. 그 중에서 한반도 차원에서 중요한 몇 차례의 개정이 있었는데, 권력구조 개편을 핵심으로 한 주석제 헌법인 1972년 개정, ‘선군정치’ 실현을 위해 국방위원장을 내세운 1998년 개정, 그리고 당-국가 관계의 강화를 위한 2016년 개정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기존의 북한 헌법 개정은 어떤 의미에서, 북한의 입장에서 모두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통일을 달성할 수 있을까라는 목표와 연관되어 있지만, 이 번 개정은 반통일적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서, 기존의 개정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진행된 북한 헌법 개정의 핵심적인 포인트는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첫째, 우리의 관심을 가장 끄는 요소는 ‘영역(영토) 조항’으로 알려진 제2조인데, 북한은 한반도 ‘두 개 국가’를 지향함으로써 남북한 사이의 ‘통일 지향’을 부정하고, ‘별도의 국가 간 관계’라는 점을 제도적으로 확립했다. 둘째, 헌법 서문에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이라는 표현을 명문화함으로써 수령이 직접 모든 국정 전반을 챙김은 물론, 핵무력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하고, 나아가 ‘최고인민회의’에 소환되지 않는 절대권력을 가진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셋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이라는 기존의 공식 명칭에서 ‘사회주의’ 부분을 삭제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자리 잡고 있는데, 하나는 대내적으로 인민에 대한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지원’을 축소한다는 의미가 있고, 또 다른 하나는 대외적으로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둠으로써 ‘정상국가’로서의 의지를 강조했다는 의미가 있다.
사실 북한의 ‘적대적 두 개 국가’ 주장이 최초 알려지기 시작한 2024년 12월 이후부터, 국내와 국제사회에서는 이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이 있었다. 세부적인 사안에서는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체적인 해석은 북한이 한국을 상대로 한 체제경쟁에서 완전한 패배를 인정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국가 안보가 아닌 리더십 안보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북한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결국 북한의 입장에서 지속적인 생존을 유지하는 방법은 한국과의 특수 관계를 정리하고, 별도의 국가 관계를 맺는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설명이다.
헌법 개정까지 이르게 된 북한의 진정한 속셈이 무엇이든 간에, 현실적으로, 개념적으로, 그리고 정책적으로 한국의 입장에서 향후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대북 정책 및 통일 정책이 필요하게 되었다. 북한의 입장과는 무관하게 우리는 한국의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면서 우리의 입장을 고수하면 될 수도 있겠지만, 이제 북한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을 민족적 관계에서 접근하거나 혹은 비핵화와 관련한 여하한 대화나 노력을 취하는 건, 한 마디로 ‘위헌적 행동’이 되었다. 더구나 대북 정책의 경우 북한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정책 결정을 위한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북한은 최근의 헌법 개정을 명분 삼아서 우리가 전개하는 어떤 통일 관련 노력에도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 헌법 개정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 내부에서 나오고 있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목소리를 살펴보는 일은 한편으로는 흥미롭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위중한 일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 입장의 사람들은 최근의 북한 헌법 개정에 가능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까지 총 14 차례에 걸쳐 전개되었던 헌법 개정 사례 중의 하나라고 설명하면서, 북한이 남북한 관계를 ‘두 개의 적대 국가’로 규정하든, 혹은 ‘두 개의 친선 국가’로 규정하든, 북한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북한 중심의 한반도 통일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강조한다. 목표는 그대로 유지한 채, 한국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하느냐를 놓고서 이런저런 전술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반면, 진보적 입장의 사람들은 북한 헌법 개정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1948년 이래로 북한이 행한 모든 언행은 통일과 관련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저렇게 갑자기 남북한 사이의 제도적인 단절을 결정한 데에는 반드시 확인하고 분석해야 할 중요한 배경이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현실적으로 완전히 폐쇄된 현재의 남북 관계를 고려할 때, 북한의 헌법 개정이 오히려 우리에게도 관계 개선을 위한 의미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북한 헌법 개정이 국내에 알려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5월 18일 우리 정부는 2026년 ‘통일백서’를 공식 발표했다. 통일부는 이 문서 안에서 남북 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적 두 국가 관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최근 공개된 ‘통일백서’가 북한의 ‘두 개 국가론’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최종적인 공식 입장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통일백서 발표 이후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논쟁이 전개되고 있으며, 북한 및 통일 문제의 상징성을 고려할 때, 대통령이 관련한 어떤 입장도 아직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오는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간주할 수 있는 발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한 헌법 개정에 대한 보수적인 관점이든 진보적인 관점이든, 하나의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그건 북한이 헌법 개정을 통해 소위 ‘정상 국가’로서의 노력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정상 국가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나라마다 고유한 차이가 있겠지만, 북한의 경우 외교 관계를 발전시키고자 노력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6월 8일 시진핑 주석의 평양 방문과 그 직후 푸틴 대통령과의 ‘축전 외교’를 대대적으로 홍보한 점을 볼 때, 북한의 헌법 개정은 북한이 ‘정상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정지 작업일 수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이란 전쟁의 종결과 중동 질서의 재편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면서 북한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은 헌법에 명문화한 핵무력 지위,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를 통한 실속적인 지원을 통해, 북한이 더 이상 급하게 해결해야 할 위기가 사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바로 이러한 부분 즉, 북한이 이제 당장 해결해야 할 위기를 넘어섰다고 스스로 판단한 부분에 주목하고자 한다. 북한은 수십년에 걸쳐 의도적으로 ‘위기를 상시화’하는 전략을 구사했고, 막스 베버의 설명에 의하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카리스마 리더십은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 적합한 구조였다. 그런데, 이제 위기를 넘어섰다고 자신하는 상황이 도래함에 따라, 카리스마 리더십을 떠받칠 위가가 사라지게 되었고, 그 결과 금번 헌법 개정을 통해서 기존의 카리스마 리더십을 가장 높은 제도화 수준인 헌법을 통해서 일상적 리더십으로 전환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상국가에 대한 북한의 열망이 사실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도 외교를 통한 기회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고,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 박인휘_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장.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오인환_EAI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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