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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NK 논평] 북핵 문제의 전략적 재해석: 실패한 비핵화인가, 성공한 능동적 관리인가

분류
논평이슈브리핑
발행일
2026년 5월 27일
관련 프로젝트
북한 바로 읽기(Global NK Zoom & Connect)

편집자 주

전재우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30년간 미국의 대북 정책을 단순한 '비핵화 실패'가 아닌 대중국 전략 차원에서 선택된 '능동적 관리'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역대 미국 행정부가 수사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지역 내 미군 주둔과 한미일 공조 명분을 유지하기 위해 북핵을 관리 가능한 수준의 위협으로 남겨두는 일관된 선택을 해왔다고 분석합니다. 전 박사는 이러한 동맹의 구조적 비대칭성을 직시하고, 한국이 북한을 단순한 위협으로만 보는 수동적 인식에서 벗어나 자국의 국익 관점에서 주도적인 안보 전략을 재규정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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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

1. 문제 제기: 기존 서사의 구조적 결함

북한 핵문제에 관한 지배적 서사는 단순하다. 북한이 핵개발을 강행했고, 미국은 이를 막으려 했지만 실패해 왔다는 것이다. 이 서사는 30년 이상 한국의 안보 담론을 지배해왔으며, 관료, 전문가 집단, 학계를 막론하고 자명한 전제로 수용되어왔다.

최근 이러한 서사의 연장선상에서 대북 핵정책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빅터 차는 2026년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North Korea as It Is: The Case for a Cold Peace”에서 7개 행정부에 걸친 비핵화 우선 프레임을 현실적으로 지속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드러내며, 억지·군축·위기관리·비확산 중심의 “냉전적 평화(cold peace)” 전략으로의 전환을 촉구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도 어디까지나 같은 전제 위에 서있다. 즉, 변화한 것은 전제가 아니라 처방이다. 비핵화 추구가 어려워졌으니 정책적 목표를 바꾸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여전히 근본적인 질문을 비껴간다. 애초에 미국이 선택한 대북핵 정책의 최종 목적과 경로가 과연 비핵화 그 자체를 위한 것이었는가, 아니면 대중국 전략을 최상위에 두는 구조적 프레임 안에 놓인 하나의 요소였는가가 그것이다. 전제 자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책적 변화만을 촉구하는 것은, 오진 여부를 검증하지 않고 처방만을 문제시하는 것과 같다. 근본적인 전제에 대한 질문을 건너뛰는 한, 소위 ‘새로운’ 처방이라는 것도 동일한 구조적 오류의 연장일 위험이 있다.

기존 서사는 근본적인 설명력의 문제를 안고 있다. 소련 붕괴 이후 실질적인 전략적 경쟁자가 존재하지 않던 시기, 세계 유일의 패권국이 극심한 경제난과 외교적 고립 속에 있던 세계 최빈국의 핵개발을 약 20년 동안[1] 막지 ‘못했다’는 전제는, 그 자체로 직관에 반한다. 특히, 1990년대 군사적으로 미국은 영변 핵시설 타격 능력을 명백히 보유하고 있었고, 북한은 단순한 약소국 상태가 아니라 전통적인 후원국에게 외면받고, 외부 지원 없이는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수준의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기존 서사는 큰 설명의 부담을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전제 위에 구축된 서사가 오늘날까지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명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추가적으로 주목할 부분은 미국 대북 정책 패턴의 일관성이다. 해당 20년의 기간에 표면적으로 클린턴, 부시,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 접근 방식에서 차이를 보였다는 점만이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클린턴은 관여, 부시는 압박, 오바마는 전략적 인내를 표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사와 일정한 정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세 행정부는 매우 일관된 정책적 스펙트럼을 유지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핵이 실제로 등장하기 전 단계에서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정책적 옵션은 사실상 네 가지로 한정할 수 있다. 첫째는 북한 핵을 기정사실로 수용하는 것이다. 둘째, 군사적 해결이다. 즉 핵시설 파괴나 정권 붕괴 등 물리적 강제력을 통한 비핵화이다. 셋째, 외교적 해결이다. 북한이 요구한 체제 안전 보장과 북미 관계 정상화를 통한 자발적 비핵화를 의미한다. 넷째, 채찍과 당근의 병행이다. 즉 제재·연합훈련 강화와 대화·지원을 함께 구사하는 것이다. 세 행정부는 네 번째 옵션만을 일관되게 추구했다.

옵션 간 핵심적 차이는 첫째부터 셋째까지의 옵션이 공유하는 구조적 특성이다. 이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북한 핵문제를 단기적으로 해소할 개연성이 크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로 이 옵션들은 대중국 전략을 위한 전략적 시간과 태세를 확보하는 데 반한다. 북한 핵무장의 수용은 동맹국들의 대미 안보 의존 구조를 즉각 약화시킨다. 군사적 옵션이 성공할 경우 북한 정권 붕괴 또는 비핵화로 인해 분단 구조가 흔들리고 주한미군 주둔 명분이 약화하거나 소멸할 가능성이 커진다. 북미 수교로 북한이 체제 안전을 보장받고 국제사회에 편입되는 옵션 또한 위협 구조가 해소되고 역내 미군 주둔과 동맹 결속의 근거가 약화될 가능성이 증대된다. 즉, 세 정책적 옵션의 방향성은 모두 대중국 전략의 핵심 포석을 스스로 약화할 가능성을 가리킨다.

반면 넷째 옵션만이 이 구조적 필요를 충족시킨다. 역내 위협을 제거하거나 해소하지 않고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함으로써 세 가지 효과를 동시에 달성한다. 역내 미군 주둔과 한미일 공조의 명분을 구조적으로 지속시키고, 중국과의 경제적 상호의존을 심화하는 관여 기조를 이어가면서, 중국의 전략적 향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헤징 태세를 갖출 전략적 시간을 확보한다. 이것이 넷째 옵션이 유일한 경로였던 이유다. 실제로 미국의 세 행정부 모두 마지막 옵션만을 일관되게 채택했다. 뒤집어 말하자면, 이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이라는 구조적 프레임 안에서 대북 정책의 선택지가 일관되게 제약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구조적 정책 방향성이 의미하는 가능성과 함의에 대한 논의를 일단 접어두더라도, 소위 ‘비핵화’를 향한 정책적 효과가 제한적임이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상황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개의 서로 다른 행정부가 20년에 걸쳐 동일한 옵션만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각 행정부의 판단 실패가 단순히 반복·누적된 결과라기보다 그 판단을 동일한 방향으로 수렴시킨 구조적 제약의 작동으로 읽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유사 스펙트럼의 정책 실패가 20년 동안 반복되었다면 적어도 어느 시점에서 그 스펙트럼을 넘어서거나 본질적으로 수정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세 행정부에 걸쳐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본고는 이러한 기존 서사의 구조적 한계에서 출발한다. 미국의 대북 정책을 단순한 ‘비핵화 실패’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국 전략 차원의 ‘능동적 관리’의 수단으로 재해석할 때, 즉 대중국 전략을 최상위에 두는 구조적 논리 안에서 넷째 옵션이 일관되게 선택된 결과로 볼 때, 지난 30년의 역사가 훨씬 일관된 논리로 설명된다는 것이 이 글의 핵심 테제다.

2. 지배적 서사가 갖는 설명의 공백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는 서사는 오랫동안 자명한 전제로 통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 서사가 자명하다는 인식은 검증의 결과가 아니라 반복과 확산의 결과다. 실제로 이 서사는 전략적 우선순위, 힘의 차이, 그리고 정책적 일관성이라는 세 측면을 연결할 때 설명되지 않는 근원적인 공백을 안고 있다.

우선 대중국 전략을 최상위에 두는 미국이 왜 그것과 구조적으로 양립하기 어려운 북한 비핵화를 20년간 일관된 최우선 목표로 추구했는가라는 점 자체가 설명되기 어렵다. 그리고 힘의 역학의 층위에서도 세계 최강의 압도적 능력 우위를 가진 행위자가 세계 최빈국을 상대로 결정적 수단을 단 한 번도 동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단순한 정책 실패로 설명되기 어렵다. 정책적 일관성 차원에서 효과가 없음이 반복 확인된 옵션을 세 개의 서로 다른 행정부가 20년에 걸쳐 동일하게 선택했다는 것은 우연이나 무능만으로 치부될 수 없다.

여기서 행정부를 초월하는 이 일관성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특정 시점에 수립된 설계를 이후의 행정부들이 계승했다는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개연성이 크지 않고, 입증하기도 어려운 가설이다. 다만, 미국의 대중국 전략의 핵심 논리, 즉 역내 미군 주둔의 유지, 한미일 공조 강화, 중국을 직접 겨냥하는 부담 회피는 행정부 교체와 무관하게 구조적으로 유지되었고, 이 구조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한, 대북 정책에서 선택 가능한 옵션의 범위가 구조적으로 제약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유사한 구조적 제약이 일관된 정책적 판단의 스펙트럼으로 수렴하는 결과로 이어졌을 개연성이 크다.

기존 서사가 지닌 상기 설명의 공백은 개별적으로도 크지만, 누적적으로 볼 때, 기존 ‘비핵화에 실패했다’는 서사가 자기 완결적 근거 위에 있는 당연한 결론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성공한 능동적 관리’ 테제보다 논증의 취약성이 크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서사는 이러한 설명의 공백들을 직면하거나 검토하지 않은 채 자명한 전제처럼 유통되어 왔다.

상기 논리적 공백에 대해 기존 서사가 시도할 수 있는 답변은 제한적이며, 각각 심각한 논리적 결함을 안고 있다. 우선 군사적 옵션에 대해 기존 서사 지지자들은 흔히 “북한 붕괴 시 한반도 불안정”이나 “동맹국 피해에 대한 우려”를 들어 그 한계를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이 설명은 오히려 기존 서사를 약화시킨다. 북한 붕괴와 한반도 불안정을 우려했다면, 그것 자체가 비핵화보다 현상 유지를 선호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는 능동적 관리 테제의 핵심 논거에 더 부합한다.

다른 시도로서 “각 행정부가 진정으로 비핵화를 원했지만 북한의 버티기 전술과 중국의 비협조로 인해 반복적으로 실패했다”는 답변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설명은 피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직면한다. 우선, 중국이 북한에 식량과 에너지를 제공한다는 사실은 1990년대 중반부터 공개된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미국이 중국을 향해 대북 지원 중단을 실질적으로 강제하려는 결정적 시도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은, 비핵화가 대중국 관계 관리보다 낮은 우선순위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더 결정적으로, 만약 미국에게 중국에 대한 관여가 장기적 헤징만큼 중요했기 때문에 대북 지원을 차단하기 어려웠다고 인정한다면, 그 인정 자체가 능동적 관리 테제를 뒷받침한다. 즉, 대중국 전략이 비핵화보다 구조적으로 상위에 있었음을 스스로 확인해주기 때문이다. “중국 때문에 실패했다”는 설명은 결국 “비핵화보다 중국과의 관계가 더 중요했다”는 고백과 다르지 않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비핵화가 그 자체로서 미국의 실질적 목표였다는 설명은 성립하기 어렵다.

반면, ‘능동적 관리 테제’에 대한 가장 강한 반론은 미국이 북한 핵무장을 의도적으로 종용했다는 직접적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하면, 전략적으로 은폐된 모든 국가 행위는 원천적으로 분석이 불가능하다. 더 결정적인 것은, 앞선 질문들에 대해 기존 서사가 답변하는 데 모두 실패할 경우, 남는 설명은 ‘능동적 관리 테제’뿐이라는 점이다. 직접적 증거의 부재를 반증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다른 설명이 작동할 때에만 논리적으로 유효하다.

또한, 노출될 경우 동맹체제 자체가 붕괴되고 전략적 목적 달성이 불가능해지는 성격의 의도에 대해, 공개 가능한 직접적 증거를 요구하는 것은 적절한 기준일 수 없다. 전략이란 노출되는 것이 목적에 부합하면 노출하고, 은폐되는 것이 목적에 부합하면 은폐하고, 의도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반대여야 할 때는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직접적 증거의 부재는 의도의 부재를 입증하지 않는다. 따라서 판단의 기준은 직접 증거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가용한 증거들이 어느 가설에 더 정합적으로 수렴하는가여야 한다.

3. 분석 틀: 북핵 문제는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략적 재해석의 출발점은 미국의 대전략 우선순위에 대한 정확한 이해다.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을 관통하는 최상위 목표는 핵확산 방지나 민주주의 확산이 아니라, (현실주의 국제관계 이론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듯이) 미국이 아닌 또 다른 잠재적 패권국가의 부상 저지다.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핵확산 방지나 인권 같은 규범적 목표는 패권 경쟁 억제라는 최상위 목표에 종속된다.

이는 추상적 주장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반복 확인된 패턴이다. 핵확산 방지의 경우, 미국은 소련 봉쇄에 기여한다는 판단 하에 영국과 프랑스의 핵개발을 사실상 묵인했고, 이스라엘의 핵무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묵인하는 이른바 “핵 모호성” 정책을 수십 년간 유지했다.[3] 파키스탄에 대해서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대소련 전략적 가치를 이유로 핵개발을 사실상 방치했으며, 인도와는 2005년 민간 핵협력협정을 체결함으로써 NPT 체제 밖의 핵보유국을 사후 승인했다.[4]

민주주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국익에 부합하는 권위주의 정권과 기꺼이 협력한 반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라도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협할 경우 이를 전복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란(1953), 과테말라(1954), 칠레(1973) 등의 사례는 민주주의가 미국 대외정책의 목적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활용되는 수사였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핵확산 방지와 민주주의 확산은 미국 대외정책의 목적이 아니라 패권 유지를 위한 수단이었다.

이 틀에서 보면 한국에게 북한 문제는 그 자체가 최상위 전략 과제이지만, 미국에게 북한 문제는 상위 전략적 목표, 즉 대중국 전략의 하위 문제다. 즉,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바라보는 층위는 다르다. 이는 미국에게 한국과 북한 모두 최상위 전략적 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상의 분석 틀에서 바라보면 북핵 문제와 관련된 주요 국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필자는 이미 1994년 영변 위기에 대한 기존 서사와 관련하여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추가적으로, 1991~1992년 부시 행정부의 기밀 해제 문서는 제네바합의 당시 국무부가 비핵화-관계정상화 교환을 추진하려 한 반면, 국방부는 관계정상화 언급 자체를 삭제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Sigal(1998)이 Disarming Strangers에서 재구성한 내부 역학과 일치한다. 갈루치가 국무부 출신이었음에도 협상의 실질적 방향은 국방부의 구도를 따랐다.

국방부가 완벽한 비핵화가 아닌 핵물질 추가 생산 동결에 초점을 맞춘 것은 전략적 불확실성의 시기에 선택지를 열어두기 위해서였다. 1993년 당시 미국은 중국이 궁극적으로 패권을 추구할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중국이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북한 핵무장은 불필요하지만, 패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미군 재무장과 역내 동맹체제 유지의 핵심 명분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 제네바합의는 이 전략적 불확실성의 기간 동안 선택지를 보존하기 위한 전략적 시간을 확보하는 구조였다. 이후 중국이 부상함에 따라 미국이 중국을 잠재적 패권 경쟁자로 보는 시각이 강화되고, 대중국 전략의 윤곽이 뚜렷해질수록, 이러한 전략적 프레임이 가져오는 구조적 논리는 행정부의 교체와 무관하게 대북 정책 선택지를 동일한 방향으로 제약하게 된다.

4. 공식 문서가 보여주는 구조적 연속성과 미국의 대북 전략

이 논증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공식 문서는 풍부하게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1991년부터 200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미국의 대북·대중 전략이 어떻게 설계되고 구체화되었는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문서로는 1991년 부시 대통령이 지시하여 작성된 NSR-28, 1995년 2월 발표된 소위 ‘나이 보고서(Nye Report)’, 1999년 3월 발표된 아미티지 보고서 등이 있다.

첫 번째 문서는 1991년 부시 대통령이 냉전 종식 직후 동아시아·한반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도록 지시한 NSR-28(National Security Review 28)이다. 공개된 검토 지침(Terms of Reference)은 이 문서가 단순한 북핵 대응 검토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지침은 “핵 비확산 문제가 역내 미국의 다른 주요 목표 및 국익과 어떻게 연계되는가”를 명시적으로 물었다. 비핵화를 독립적 목표가 아니라 상위 전략 목표의 하위 문제로 처음부터 설정한 것이다. 또한 “한국은 행동에 나서기 전까지 얼마나 더 기다릴 것인가”라는 질문은 동맹국 한국을 협력 파트너가 아니라 관리해야 할 변수로 취급했음을 드러낸다. 나아가 압박과 유인책에 대한 북한의 ‘반응’ 평가를 요청하고 있는데, 이것은 채찍과 당근의 병행이 처음부터 정책 옵션으로 설계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중국·소련·일본과의 협력 방안을 묻는 질문은 북한 비핵화를 새로운 지역 구조와 연동해서 사고했음을 보여준다. 1991년의 이 문서는 이후 20년에 걸친 구조적 제약의 원형이 어디서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기점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문서는 1995년 2월 발표된 ‘Nye Report’(United States Security Strategy for the East Asia-Pacific Region)다. 페리 국방장관이 서명한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1990년과 1992년의 국방부 전략 보고서는 냉전 이후 역내 병력을 감축할 것을 구상했다. 그러나 올해 보고서는 이와 반대로 약 10만 명 수준의 안정적인 전진 배치를 유지할 것을 재확인한다.” 이 반전의 타이밍이 결정적이다. 1994년 제네바합의 직후인 1995년에 역내 전진 배치 영구화가 공식 선언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 동아시아의 힘의 공백을 메우고, 지역 안정자 역할에 대한 종합적 고려의 일환으로서 북핵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위협으로의 유지가 미국의 역내 주둔 정당화에 구조적으로 필요했다. 보고서는 중국의 부상과 북한 핵 문제를 역내 미군 전진 배치를 유지하기 위한 양대 명분으로 명시하며 “관여와 헤징의 병행(engage while hedging)”이라는 대중국 전략 기조를 공식화했다.

세 번째 문서는 1999년 아미티지의 “A Comprehensive Approach to North Korea”와 2000년 아미티지-나이 공동 보고서(The United States and Japan: Advancing Toward a Mature Partnership)다. 1999년 보고서의 “Should Diplomacy Fail” 섹션은 본고의 논지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된다. 아미티지는 여기서 “이 구상에서 북한의 반응과 무관하게(irrespective of North Korea's response) 지속되는 단 하나의 핵심 요소는 이 결정적 지역에서 안정을 유지하고 안보를 강화하는 데 있어 미국의 리더십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명시했다. 비핵화 외교의 성패와 무관하게 역내 미군 주둔 강화와 한미일 안보 협력 심화라는 목표가 독립적으로 추진된다는 것을 공식 정책 문서에서 명시한 것이다. 북한에 대한 '종합적 접근'을 '북한의 반응과는 무관하게' 진행한다는 것이다.

2000년 공동 보고서는 미일동맹의 “부담 분담(burden-sharing)”에서 “권력 분담(power-sharing)”으로의 전환을 촉구하며 이 논리를 동맹 구조 전반으로 확장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아미티지, 켈리, 울포위츠, 그린 등이 이후 부시 행정부의 핵심 직책을 맡았다는 사실은, 이 논리가 단순한 정책 제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정책으로 구현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들 문서는 대중국 전략을 최상위에 두고 북한을 관리 가능한 위협으로 유지한다는 구조적 논리가 흔들리지 않았다는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보여준다. 각 행정부가 독자적으로 판단하면서도 동일한 구조적 제약에 수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공식 문서가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1996년 양안 위기는 이 구조를 강화한 변곡점이었다. 중국이 대만 해협에서 미사일을 발사하고 미국이 항모 전단을 파견하면서, 중국을 잠재적 패권 경쟁자로 공식화하는 흐름이 가속화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소련 붕괴 및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이 고사 직전에 이르자, 중국이 ‘전략적 완충지대 상실 방지’를 위해 식량과 에너지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미국 입장에서 이것은 중국이 미래에 북한을 대미 완충지대로 활용할 의도를 명확히 한 신호였다. 이 인식의 전환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 강경화로 이어졌고, 2002년 켈리 방북을 통한 제네바합의 파기와 북한과의 양자대화 지속적 거부로 귀결되었다.

따라서 북한의 악마화와 관리의 동시성은 모순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이 능동적 관리 테제의 핵심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북한을 악마화하고 제재를 가하며 연합훈련을 강화하는 것은 동맹국들의 안보 의존도를 높이고, 미군 주둔 명분을 강화하며, 대중국 포위망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전략적 효과를 동시에 달성한다. 동시에 비핵화를 실현할 결정적 수단을 동원하지 않음으로써 북한의 핵개발 및 핵능력 고도화가 진행되는 구조를 유지한다. 대중국 전략을 최상위에 두는 논리 안에서 이 두 축은 모순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으로 기능한다.

이 전략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 진의가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 필자가 앞선 코멘터리에서 지적했듯이 “미국의 양동 전략은 그 진의가 동맹국과 적성국 모두에게 읽히지 않아야만 작동했다.” 동맹국인 한국이 미국의 실제 의도를 알게 되면 주한미군 주둔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고, 북한이 이를 파악하면 협상 레버리지가 성립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이 전략의 구조적 필연이며, 따라서 직접 증거의 부재를 의도의 부재로 읽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클린턴 행정부 8년의 대북 정책은 북한 붕괴를 방지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이는 단순한 인도주의적 발로 등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1994년 제네바합의 직후 국방부가 Nye Report를 통해 역내 전진 배치 영구화를 공식화한 것은, 북한이 붕괴되지 않고 ‘관리 가능한 위협’으로 유지될 때 미국의 역내 군사 태세가 정당화된다는 구조적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페리 전 국방장관이 1999년 검토 보고서에서 북한과의 포괄적 관여를 권고했을 때조차, 그 권고의 전제는 북한 정권의 즉각적 붕괴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위협의 단계적 관리였다.

부시-오바마 행정부에 이르는 16년은 북한이 한국과 일본을 타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 능력을 점진적으로 갖추어가는 환경을 구조적으로 유지했다. 요컨대, 행정부 간 수사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붕괴시키지도 완전히 비핵화시키지도 않는다는 실질적 결과는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이것은 특정 초기 설계의 계승이 아니라, 대중국 전략을 최상위에 두는 구조적 논리가 각 행정부의 대북 정책 선택지를 동일하게 제약한 결과였다.

5. 한국 안보 담론에 대한 함의

조엘 S. 위트(Joel S. Wit)는 미국의 대북 핵외교 30년을 내부자 시각으로 기록하며, 미국이 진정으로 비핵화를 원했음에도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이 책의 서평에서 갈루치는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세계 최강의 패권국이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의 핵무장을 30년간 막지 못했는가.” 본고는 이 질문에 대해 대중국 전략의 구조적 제약에서 그 답을 찾는다.

서두에서 언급한 빅터 차의 최근 주장으로 돌아가면, 그는 7개 행정부에 걸친 비핵화 프레임의 실패를 인정하며 “냉전적 평화”로의 전환을 촉구했다. 그러나 본고의 테제가 옳다면, 그의 처방은 전략의 전환이 아니라 지속된 전략이 다음 단계로 진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핵화가 처음부터 실질적 최우선 목표가 아니었다면, 이제 그것을 포기하고 억지·관리로 전환하자는 주장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미 수행해온 것을 공식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전제가 달라지면 처방의 의미도 달라진다.

어느 쪽이 옳으냐에 따라 한국의 과제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본고의 재해석이 옳다면, 북핵과 관련한 한국의 안보 담론은 근본적인 재검토를 필요로 한다. 한국 안보 담론은 지금까지 “미국은 한국과 함께 북핵 개발을 막으려 했다”는 전제 위에서 작동했다. 이 전제가 옳다면 한국의 과제는 미국이 다음번에는 더 잘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나 본고의 테제처럼 미국이 대중국 전략을 최상위에 두면서 북한을 전략의 최상위에 두는 한국과 비대칭적인 입장에서 전략을 추진해왔다면, 한국의 향후 전략은 달라져야 한다.

한국이 북한을 단순히 ‘위협’으로 규정하는 데 머무르면서 미국과 한국의 전략적 목적이 동일하다고 간주하는 것은, 그 위협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더 큰 구도 안에서 한국 또한 수단화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일 수 있다. 한국이 북한을 위협으로만 인식하는 한, 그 위협을 관리하는 구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구도를 설계하는 것은 한국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 안보 담론은 북한을 위협으로만 간주하는 단계를 넘어서, 강대국들이 북핵을 매개로 구축하는 전략적 이해관계의 차이를 직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강대국에게 북한과 북핵은 어떤 구조적·기능적 의미를 갖는가, 각국이 북핵을 매개로 추구하는 전략은 서로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을 이념으로 가리지 않고 직시할 때 한국에게 최적화된 대북 전략과 지역 전략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동맹의 비대칭성을 직시하는 것이 동맹에 대한 부정이 아니듯, 이러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한국의 안보를 약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한국이 자신의 눈으로 안보와 외교를 추구할 수 있는 토양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국방 전략은 동맹의 구조적 비대칭성을 직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맹목적으로 동원되는 수동적 인식과 태도에서 벗어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동맹 현대화, 전작권 문제 등을 한국의 국익 관점에서 재규정해야 한다. 아울러 이러한 전략적 자율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병렬적 지휘 구조로의 이행은 향후 한미동맹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결정지을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

[1]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을 북한이 유의미한 핵탄두 위력을 확보한 변곡점으로 시기를 구분한다.

[2] 1990년대 북한의 경제적 취약성에 대해서는 Noland, Marcus, Sherman Robinson, and Tao Wang, "Famine in North Korea: Causes and Cures," Economic Development and Cultural Change 49(4), 2001, pp. 741–767 참조. 소련 붕괴 이후 에너지 및 식량 지원이 급감하면서 북한은 사실상 외부 지원 없이는 존립이 불가능한 상태에 처해 있었다.

[3] 이스라엘의 핵 모호성 정책과 미국의 묵인에 대해서는 Cohen, Avner, The Bomb that Never Was: The Making of Israel's Nuclear Polic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8); Hersh, Seymour M., The Samson Option: Israel's Nuclear Arsenal and American Foreign Policy (New York: Random House, 1991) 참조.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의 핵개발을 소련 봉쇄 전략의 맥락에서 수용한 과정에 대해서는 Gavin, Francis J., Nuclear Statecraft: History and Strategy in America's Atomic Age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2012), pp. 40–75 참조.

[4] 파키스탄 핵개발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방치에 대해서는 National Security Archive, "The United States and Pakistan's Quest for the Bomb," Electronic Briefing Book, 2010 참조. 2005년 미·인도 민간 핵협력협정(U.S.-India Civil Nuclear Agreement)의 전략적 의미에 대해서는 Perkovich, George, "Faulty Promises: The U.S.-India Nuclear Deal," Carnegie Endowment Policy Outlook, September 2005 참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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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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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재우_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오인환_EAI 수석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11) | leesj@eai.or.kr

첨부파일

  • 전재우_북핵 문제의 전략적 재해석_260527_GlobalNK논평.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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