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래지도자] ① 북한 미디어로 본 김주애의 권력 승계 서사 | 김현경 서강대 대우교수, 전 MBC 북한전문기자
편집자 주
김현경 서강대 대우교수, 전MBC 북한전문기자는 북한 미디어에 나타난 김주애의 동향을 분석하여 권력 승계 서사의 전개 과정과 그 정치적 의미를 설명합니다. 저자는 선대인 김정은의 후계 체제 구축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김주애에게 부여된 권력 상징과 전략적 미디어 노출의 목적을 분석합니다. 김 교수는 북한 특유의 가부장적 체제와 내부 위기라는 한계 속에서 북한이 향후 어떻게 인민의 지지 속에서 후계 서사를 완성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핵심 과제를 제시합니다.
YouTube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IHsgpMCY2j0&si=z6I5zRfJHMRq0EXj
영상 스크립트
김주애 후계 서사의 미디어 분석
김현경입니다. 저는 우선 북한 미디어에 나타난 김주애의 후계 서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주애의 등장에 대해 먼저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북한의 후계자론은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으며 미디어는 이를 어떻게 반영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또한 김주애를 살펴보기 위해 선대의 후계자들이 있었던 두 번의 후계 체제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나타난 측면을 보면서 김주애의 후계 서사가 김정은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지 미디어 화면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자격 부분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김주애의 후계 서사에 대한 평가와 전망으로 준비했습니다. 김주애의 등장 이후 동향을 보면, 2022년 11월 처음 등장한 이후 41회, 42회, 43회 등 군사 분야에서 시작해 외교, 경제 분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에 단 한 번이라도 나온 날짜를 모아보니 1년에 약 200번 정도 출연하여 총 600번 이상 출연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김정은 후계 구축 경험과 김주애 전략
호칭은 '사랑하는 존귀하신 자제분', '위대한 향도의 분들'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의전이나 시각적 신호는 계속 강화되고 있지만, 김주애라는 이름은 북한 어디에도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김주애로 알려졌기에 김주애라고 부르고 있으며, 북한이 후계자라고 김주애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현재 국정원의 평가는 처음에는 후계 수업 중, 내정, 후계자로 봐도 될 것 같다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황뿐 아니라 신빙성 있는 정보에 의한 것이며, 일부 시책에 의견을 밝히는 단계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이는 후계자의 영도 체계와 관련된 움직임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어땠을까요? 김정은의 후계 서사가 따로 없을 것 같지만 오랜 기간 준비했습니다.
준비해서 여건을 조성하고 서사를 구축하며 후계 체제를 실행하고 사후적으로 메시지를 만들어 정당화하는 과정을 거쳐 이미 전통이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대의 전통이 마련된 상황이라면 후대 역시 이를 따라서 가는 경로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김주애는 어떻게 할까요? 김정은의 후계 구축 경험으로 김주애의 후계 전략과 서사를 읽는 것은, 김주애가 후계자가 맞다는 전제 하에 그 전략의 단초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북한 체제는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뇌수인 수령이 핵심이기 때문에 수령이 있어야 체제가 유지됩니다. 따라서 후계자는 사활을 가르는 중대한 문제이며, 후계자론은 근본적으로 수령론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북한 후계자론의 이론적 변천
제가 오경섭 선생님 논문으로 공부했을 때의 내용입니다. 후계자 지명과 영도 체계 구축은 현직 수령이 해야 하는 중요한 의무이자 업적이 됩니다. 최근 노동당 기관지 '근로자' 2025년 봄호는 내용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으나 시기적으로 예사롭지 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야기하던 영도의 계승 문제를 빛나게 해결했다는 표현은 1980년대 김일성과 관련된 표현으로 등장했습니다.
계승의 위대한 정통이 있다고 하는데, 후계자는 1차로 1970~80년대 김정은 후계 체제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이론화되었습니다. 김정은의 후계자론은 김정일 맞춤형으로 70~80년대에 사후적으로 생산된 담론이라고 보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김정은은 1964년 대학을 졸업한 이후 과장, 부부장 등을 거쳐 1974년 후계자로 지명 확정되었는데, 이미 당에서 10년의 경력을 쌓은 후였습니다. 1980년에 공개될 당시에는 16년이 지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걸림돌은 혈통 세습이 사회주의권에서 가능한지에 대한 문제였고,
혈통 이외에 자격 요건을 부각하게 되었습니다. 수령의 다음 세대여야 하고, 수령의 뜻을 제일 잘 알아야 하며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소련처럼 되지 않고, 중국의 덩샤오핑처럼 중간에 배신하거나 실패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에서 사상, 영도 경력, 능력이 검증되어야 한다는 후계자론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김정은에게는 이것이 적용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김정은은 1982년생, 83년생, 84년생으로 추정되며, 우리 정부는 84년생으로 보고 있습니다.
2006년 12월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도 사후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2010년 9월 대장,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되는 과정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달라진 점은 혈통이 가장 중요한 자격이 되었고, 다음 세대나 충실성 등은 충족하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너무 어리고 당 경력이 없기 때문에 기존 후계자론에 적용하기 어려워 새로운 후계자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언론에 노출된 시점을 보면 2023년경 후계 구도를 조기 가시화한다는 정황이 나옵니다. 이때 '새별궁' 등의 호칭이 등장합니다. 2005년 김정일은 후계 논의 자체를 금지시켰으나,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2009년 1월 8일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되었다는 정황이 관찰됩니다. 2010년 9월 후계자로 등장하는데, 후계 체제는 오래전부터 준비되었고, 후계자 논의 자체를 금지시킨 2005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북한 미디어의 정치적 역할과 서사 구축
기존 후계자론을 김정은 맞춤형으로 변용하여 상당 기간 비공개로 준비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 미디어는 혁명을 위한 수단이며,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수령의 혁명 활동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미디어는 그 자체로 정치 기구이자 무기입니다. 김정일과 김정은은 노동신문을 '당 중앙위원회 한 부서와 같다', 방송을 '대포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미디어 형태는 핸드폰을 포함하여 수령 저작, 당·정치·출판물, 방송, 신문, 출판물, 공연, 미술 작품 등 매우 다양하며, 사전도 포함되지만 여기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의 사전 표현 변화도 관찰됩니다.
사전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것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할까요? 10대 장군이 등장합니다. 선군 정치는 1995년 1월 1일에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갑자기 2005년에 선군 영도 45주년 행사가 열렸습니다. 35년이 훌쩍 뛰었지만 설명 없이 행사를 치렀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노동신문의 정론 형식은 설명이 필요할 때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중요한 방식입니다. 구구절절이 설명하면서 시계열적으로 완전히 다르게 정리합니다. 그동안 '용남산의 맹세'라 하여 대학 입학 후 당 업무를 시작하는 것을 '영광스러운 6월 19일'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억하라, 잊지 말라 하면서 대학 입학 일주일 전부터 선군도를 시작했다는 역사를 만들어내면서 이 사진이 처음 공개됩니다. 가운데가 김정일입니다.
이 사진이 나중에 발굴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지배 이념이었던 선군을 35년 소급하여 후계자론으로 겸용하는 구조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러면서 '혁명은 대를 이어 진행된다'는 혁명 전통이 등장하는데, 이는 북한에 원래 있던 개념입니다. 그동안 계주봉은 '당의 붉은기'라고 이야기했었지만, 이 무렵 '총대가 계주봉'이 됩니다. 즉 선군에 맞춘 것입니다. 그러면서 등장하는 서사들은 여기저기에 있던 것들을 정교화하고 체계화합니다. 1952년에 권총을 계주봉으로 전달했다는 내용과 함께 새로운 노래가 작사, 작곡되어 등장합니다. '총대는 혁명의 계주봉'이라는 노래는 노동신문과 방송을 통해 집중 보급됩니다. 정리하자면, 소년기에 선군의 후계자로 낙점되어 18세에 영도 지도와 군 지도 경력을 쌓았는데, 중요한 것은 아무런 직함도 없고 제도적 승계가 관찰되지 않던 1960년대에 인민군 지휘자들이 최고 사령관으로 받들어 모셨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받들어 모시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총대 혈통의 장군복을 입고 어려서부터 '청년 장군'으로 불리며,
직함은 없었지만 실질적으로 영도를 행사하고 있었다는 구조가 됩니다. 이것이 김정은에게 적용되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총대 혈통, 어려서부터 만경대 가문이나 백두산 혈통으로 태어나 장군복을 입고 자라났다는 것입니다. 10대 사진을 보면 최근 나온 '김정은 혁명 역사'(2020) 내용을 보면 1998년 혁명을 시작했고, '백두산 맹세'로 혁명 계승을 다짐합니다. 이는 김일성의 포평나루터 맹세, 김정일의 용남산 맹세 등과 비슷합니다. 1999년 군부대 현지 지도를 했는데, 이것이 모두 10대 때의 일입니다.
김주애 후계 서사의 상징과 경로 예측
2002년에는 신형 장갑차를 조종했다는 내용이 소설 '오성산'에 나옵니다. 북한의 소설 형태는 매우 중요합니다. 2003년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입학하는데, 이미 그때부터 영도를 시행했다는 서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대학 재학 중 인민군 지휘관들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하달했으며, 2006년 12월 24일은 김정은이 졸업하는 날이자 김정숙의 생일, 김정일이 최고사령관에 임명된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이날 인민군 지휘관들 앞에 소개되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현 단계 김주애의 후계 서사는 미디어 노출 빈도는 매우 높지만 구체적인 정보는 없습니다. 호칭, 시각, 상징 등을 통해 이상적인 위상과 이미지 구축을 하고 최대한 노출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리지만 김정은이 사랑하고 인정하는 백두 혈통의 계승자이며, 당과 군의 존중을 받습니다.
존경이라는 표현까지 있습니다. 처음 등장했을 때는 김정은의 대미 대결전에 동행하는 강경하고 단호한 지도자의 모습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에 동행하고 있습니다. 언어적, 비언어적 상징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경로를 가지고 있는지 예측해 보겠습니다. 2023년 김주애가 등장했는데, 이날 김정은은 군 지휘부에 김주애를 공식 소개합니다. 군 열병식 전날 지휘부 숙소를 방문하는데, 저는 이것을 보면서 12장의 사진 중 9장에 등장하는 것이 혹시 사람들이 못 알아볼까 봐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주애를 중앙에 배치하는데, 부모와 나란히 배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서는 옆으로 빠지면서 주변 지휘부를 배치했습니다. 이는 김정일이 김정은을 군 지휘부에 소개한 전통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상징은 북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인데, 열병식의 기마 부대 행군에서 가장 앞에 있는 것이 김정일의 말, 그다음이 김주애의 말입니다. 김정은의 말과 김주애의 말입니다. 열병식의 흐름을 이끈다는 것은 인민군 전체 행렬을 이끈다는 상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굳이 북한이 김주애 얼굴이 딱 들어오는 장면에 '백두혈통 결사보위'라는 자막까지 내놓습니다. 김주애가 있는 곳은 따로 네모난 부분인데, 세대의 카메라가 붙어 있습니다. 또 하나의 표현은 '당 지도부가 존경하는 자제분을 모시고 앉았다'라고 별도의 문장으로 이야기합니다. 총대 계승을 떠올리는 부분들 같은 경우, 김정은은 총 선물 수여를 참 자주 하는데,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총을 수여하는데 같이 합니다. 사진 동그라미 안을 보면 나머지는 모두 총을 수여받는 입장인데, 이 두 사람만 수여하는 입장이 되어 있습니다. 수여자나 후계자는 자격이 있어야 하는데, 그냥 수령이 낙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동의와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김정은의 사례를 보면 동의를 얻는 과정 속에서 김정은의 성과로만 끌어와 공식화하는데, 김정일이 이런 방식으로 칭찬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멘트로 '적들이 우리의 위성을 요격했더라면 우리 대장의 반타격 전에 큰일 날 뻔했다'는 나레이션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김주애는 어떤가요? 아직 성과 서사는 없지만 볼 때마다 김정은이 활짝 웃거나 만족한 표현을 하는 등 비언어적인 이미지는 존재합니다. 결국 성과는 사후적으로 소급하여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 나가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북한에서 성과가 얼마나 객관적이고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서사는 필요합니다.
김주애 조기 노출의 배경과 전략
군, 경제, 사회, 대중의 지지 서사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탱크를 조종하는 모습, 신형 탱크입니다. 경제 건설 성과에 참여하는 모습, 화면 구도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드디어 대중의 지지를 상징하는 스킨십 단계로까지 나아갑니다. 그렇다면 왜 일찍 노출했을까요? 사실 트라우마라고 누군가가 이야기했는데, 김정일의 급고 사태가 있었습니다. 한참 준비할 때 갑자기 급병으로 비공개 후계 체제 문제에 일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수령이 급사하면서 급작스러운 수령 승계를 하게 되는데, 후계자로 공개된 지 불과 1년 1~2개월 만이었습니다. 노출 기간과 빈도가 부족했고, 대중적 리더십과 존재감이 현저히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도적인 후계 승계, 후계자의 영도 체계 자체가 김정은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김정일 사망 이후 김일성 사망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김정일은 최대한 드러나지 않고 추모만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열병식에서 군마 행군을 할 때 가장 앞에서 김정일의 말이 등장합니다. 그 다음이 김주애의 말이고, 김정은의 말과 김주애의 말입니다. 열병의 흐름을 이끈다는 것은 인민군 전체 행렬을 이끈다는 상징성을 갖습니다. 북한이 굳이 김주애의 얼굴이 등장하는 장면에 '백두혈통 결사보위'라는 자막까지 내보내는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 또한 김주애가 앉아 있는 곳에는 네모난 부분이 있고, 그곳에 세 대의 카메라가 붙어 있습니다. 별도의 문장으로 '당 지도부가 존경하는 자제분을 모시고 앉았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총대 계승을 떠올리게 합니다. 김정은은 총 선물 수여를 자주 하는데,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총을 수여받을 때 김주애가 함께합니다. 사진 속 동그라미 안을 보면, 나머지는 모두
총을 수여받는 입장이지만, 이 두 사람만 수여하는 입장이 되어 있습니다. 수여자이자 후계자는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수령이 낙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동의와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김정은의 사례를 보면, 그동안의 성과를 김정은의 것으로만 끌어와 공식화하는 과정에서 김정일이 이런 방식으로 칭찬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적들이 우리의 위성을 요격했더라면 우리 대장의 반격 전에 큰일 날 뻔했다는 나레이션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김주애는 어떤가요? 아직 성과 서사는 없지만, 김주애를 볼 때마다 김정은이 활짝 웃거나 만족한 표현을 하는 등 비언어적인 이미지는 존재합니다. 결국 성과는 사후적으로 소급하여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 나가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솔직히 북한에서 성과가 얼마나 객관적이고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서사는 필요합니다.
군, 경제, 사회, 대중의 지지라는 서사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신형 탱크를 조종하는 모습, 경제 건설 성과에 참여하는 모습 등을 통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대중의 지지를 상징하는 스킨십 단계로 나아갑니다. 그렇다면 왜 일찍 노출했을까요? 김정일의 급고 사태를 보면, 후계 준비 중에 갑자기 급병으로 비공개 후계 체제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령이 급사하면서 급작스러운 수령 승계를 하게 되었는데, 후계자로 공개된 지 불과 1년 1~2개월 만이었습니다. 노출 기간과 빈도가 부족했고, 대중적 리더십과 존재감이 현저히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도적인 후계 승계나 후계자의 영도 체계 자체가 김정은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김정일 사망 이후 김일성 사망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김정일은 최대한 드러나지 않고 추모만
했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드러냅니다. 김정일 추모 사진 면에 김정은이 뚜렷하게 나타나 의도적으로 노출합니다. 권력 공백 없이 즉시 제도적인 승계를 시작합니다. 그 배경을 보면, 김정은의 후계 서사를 수정 없이 따라도 되는 단계에 있습니다. 김정은의 개인적 특성도 중요합니다. 공개적이고 거침이 없습니다. 2002년 코로나 위기를 보면,
김주애 후계 체제의 과제와 전망
당시 김여정은 김정은이 고열을 심하게 앓았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이러한 문제 상황까지 염두에 뒀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비밀리에 준비되다가 노출되었던 구조에서 이제는 준비 단계부터 노출하는 돌파 전략을 구성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후계 취재는 준비 중이고 서사는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불일치가 있습니다. 북한 체제 자체가 가부장적입니다. 수령, 아버지 수령, 어머니 당, 자녀 대중이라는 구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만성적인 위기 문제를 이 복잡성에서 후계자는 어떤 거리를 둘 것인가? 현재로서는 김주애의 후계 체제가 바뀔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생각합니다.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변수는 항상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를 일단 띄운
다음에 발견되는 문제를 걸러내면서 장시간에 걸쳐 보완, 첨삭, 수정, 극복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후 법·제도적인 후계 체제의 기반 마련도 중요합니다. 김정은은 이제 선대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 입장입니다. 계속해서 아버지,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이전처럼 가져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향후 김정은의 서사는 김주애의 후계 체제를 동시에 의식한 방향으로 제조될 것입니다. 가장 약한 고리인 여성이라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백두산 3대 장군의 한 사람이었고, 백두의 여장군으로서 백발백중 명사수이며 수령 결사옹위의 화신인 김정숙 계통의 전통, 그리고 최선희의 역할과 북한 여성 지도자급들의 위상을 통해 어떤 담론을 만들어 갈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