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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기 EAI Academy] ① 미래 속의 젊은 그들: 21세기 한국의 꿈

분류
멀티미디어
발행일
2025년 8월 4일
관련 프로젝트
EAI 아카데미

편집자 주

하영선 EAI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은 냉전 종식 이후의 경험을 바탕으로, 21세기는 안보·번영을 넘어 기술·문화·생태·공치로 이어지는 복합세계질서의 시대임을 강조하며, 이에 걸맞은 미래 선도적 사고와 준비가 절실하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군사력, GDP, AI 기술 경쟁력 등 세계 질서를 구성하는 핵심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중전략경쟁이 복합세계질서를 형성하는 모습을 분석하며, 향후 미래복합질서를 정확히 파악하고 먼저 주도해나갈 한국 미래세대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제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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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pczos8vXBjc

영상 스크립트

이것을 보면 여러분들이 이제 구기로 되어 있는데, 처음 시작은 어떻게 이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나 하는 이야기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기'라는 이야기는 거의 2015년, 6년경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처음 시작이 아니고, 첫 시작은 2009년인가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이라는 공개 강좌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어떤 이유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들으려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았습니다. 물론 EAI가 독립 빌딩을 가지고 있을 때도 아니었기 때문에 여의도에서 했었는데, 여러 선생님들이 연 것이 아니라 제가 여덟 번 강좌를 했던 것 같습니다.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이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왜 제가 그런 강좌를 하게 되었을까요? 책이 나와서 강좌를 한 것이 아니고,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이라는 책은 공개 강좌를 여덟 번 하고 나서 책으로 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에 뒤늦게 책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은 왜 했냐, 제목이 그때 있었냐? 지금 여러분들이 듣는 것은 '미래 세대를 위한 미래 한국의 길'이지만, 그 당시에도 원래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은 약간 수필 제목 같은 느낌이었고, 제목은 원래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런 강좌를 그 당시에 왜 했냐? 그 당시에도 20대가 많았죠, 상대적으로. 그런데 여의도에서 한 중요한 이유는 20대뿐만이 아니라 그 여의도라는 곳이 국회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 젊은 국회의원들이 정신 차리고 이야기를 좀 듣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뭐 그런 뜻도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의도에서 했던 이유는 국회의원들이 와서 그렇게 많이 경청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럼 그런 것을 그 당시에 왜 하게 되었냐는 거죠. 그 출발은 그보다 훨씬 전인데, 여러분들이 지금 20대나 30대 나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대학에 들어간 것이 1967년인데, 그러니까 세월이 좀 갔죠. 약 60년 전입니다. 외교학과에 들어갔으니까 국제 정책에 약간의 관심이 있어서 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결과적으로 60년 동안 실학이나 국제정치라고 하는 것을 배우거나 가르치거나 하지 않았겠습니까? 제가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부터였습니다.

냉전 종식과 국제정치의 예측 불가능성

가르친 것도 약 45년 정도 되었는데, 그러면 60년 동안 국제정치를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가장 낙담했던 사건은 무엇이냐? 국제정치라는 것을 재미있어서 시작했고, 그것을 또 경우에 따라 가르친다고 하는데 전혀 예상이 잘 되지 않고, 경험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가장 낙담했던 최대 사건은 무엇이겠느냐고 든다면 아마 큰 사건이 있었죠. 1960년대 중반부터 지금 2025년까지 보면 역시 최대 사건은 냉전이 끝나는 사건이었습니다. 뭐 여러분들이 태어나기 전이긴 하지만, 공식적으로 냉전이 끝나는 서곡은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이었지만, 공식적으로 소련이 해체되었다고 선언한 것은 1991년 크리스마스입니다. 고르바초프가 공식적으로 소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제 러시아는 남지만, 그런데 왜 그것이 최대 사건이냐, 지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의 최대 사건이었다고 한다면 개인적으로도 왜 최대 사건이냐? 뭐 또 여러분에게도 그에 준하는 사건이 있을 가능성이 있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때쯤 저는 가르치고 있었을 텐데, 이미 가르친 지 10년은 되었는데 냉전이 끝났다는 것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 속에서 국제정치를 가르쳤다는 것은 무엇이냐? 한마디로 잘못된 것 아닙니까? 스스로도 그렇고, 또는 그것을 가르치는 상대방에게도 잘못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당시에 국제정치가 냉전이 끝나는 것을 예측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거의 100% 틀렸습니다. 국제정치학자들이. 그런데 전반적으로 국제정치학을 하시는 분들이 약간 좋게 말하면 용기 있고, 나쁘게 말하면 뻔뻔해서 사실은 그만뒀어야 되죠. 양심적으로 말입니다. 자신이 주전공인데 전혀 예측을 못 했다면, 그것은 한 개인의 업으로서 피해가 가지만, 나라에 피해가 가는 것이고 세계에 피해가 가는 것입니다. 계속 냉전에 간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해 나가는 것과, '아, 이거 끝난다. 아, 개인적으로 나도 이거 공부를 새로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은 고르바초프가 1991년 12월 25일 날 저녁 TV에 나와서 공식 선언을 했을 때입니다. '소련 연방은 이제 끝난다.' 그런데 왜 제가 특별한 감회가 있냐면, 고르바초프가 등장하는 것이 1985년 3월입니다. 중반에 페레스트로이카라고 하는 소련 개혁을 통해 세계 정치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소련으로 새로 태어난다고 하는 선언을 하고 7년 후가 된 거죠. 그런데 그것이 뭐 그렇게 큰 문제냐?

3월에 그랬는데, 1985년 5월에 제가 지금으로 치면 중앙아시아에 해당하는 곳에서, 당시 수교가 없었는데 UN 대학에서 아시아 지역의 평화 연구 전문가 26명을 데리고 러시아에서 국제 회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지금도 그렇지만, 아시아에서 전쟁과 평화 연구를 한다고 할 경우 대표적으로 시끄러웠던 지역이 항상 한반도였기 때문에 한반도 문제를 논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명색이 UN 대학인데, UN 대학이 도쿄에 있거든요.

기독교가 그래도 명색이 일본이 평화 국가라고 하는데, 어떻게 국제 기구도 하나 없냐 해서 마지막으로 UN 대학에 돈을 상당히 내고 도쿄에 유치한 거죠. 그런데 UN이니까 어떤 생각을 했냐면, 그럼 차제 남북한 사람들을 좀 불러서 회의를 해 보는 게 어떻겠냐? 그런데 북한의 입장에서는 사회주의 모국인 소련에서 회의를 하는데, 그것도 모스크바도 아니고 타슈켄트에서 회의를 하는데, 아버지 같은 나라에서 왜 괴뢰인 남쪽 사람을 부르냐는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UN의 원칙, UN의 국제적인 평화 원칙에서 '그래도 불러야 되겠다.' 그래서 타슈켄트로 가게 됐습니다. 뭐 그렇게 간단히 간 건 아니죠. 소련과 수교도 없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개별적인 국제회의에 들어간 것은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자를 줄지 안 줄지 몰라서 어떡하냐 그랬더니 도쿄에 와서 일주일을 대기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영상이 없으니까 학기 중간인데 강의 안 오고 도쿄에 가서 일주일 놀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약 일주일 전에 처음으로 비자를 줘서 갔죠. 뭐 그 얘기를 시작하면 길어질 테니 거두절미하고, 왜 그런 얘기를 하냐 하면, 갔더니 이제 북한 쪽에서 두 사람, 북한은 항상 국제회의에 혼자 나오지 않죠. 서로 체크를 해야 되기 때문에 두 사람이 오고, 그래서 이제 같이 모여서 2주를 같이 지냈는데, 일주일은 모스크바에 있었고 일주일은 타슈켄트 가서 회의를 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회의 이야기는 뭐 다른 기회로 하고, 그게 5월 1일이 되었는데, 메이데이, 노동절입니다.

그랬더니 타슈켄트에서 국제회의로 아시아의 평화 연구자 26명이 UN 대학 국제회의로 인해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서 메이데이 행사에 초청해서 행사장에 갔습니다. 포디움 맨 앞줄에 앉았는데, 뭐 당연히 형식상 한국이니까 남북한 친구들과 같이 앉아 있는데, 단상에서 내려다보니까 붉은 깃발이 전 시가를 덮고 이제 시가 행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제가 그 당시에 어떤 생각을 했냐면, '내 평생 중에 이게 두 번 다시 이런 기회가 있을까? 타슈켄트에서 북한 사람들과 손을 잡고, 더군다나 노동절에 붉은 깃발을 바라본다는 게 다시 있을 수 있을까?' 그래서 그 2주 동안 제가 평생에 유일하게 일기를 썼습니다. 저는 일기를 게을러서 잘 안 쓰는데, 제 이야기는 그러고, 그럼 85년에서 고르바초프가 물러나는 게 7년이 지난 건데 전혀 망할 줄 몰랐거든요. '아, 이게 개혁이 되는 거 아닌가? 소련이 드디어 이렇게 생각했지, 소련이 무너지고 전혀 딴 세계가 올 거라고 생각 안 했어요. 그 충격이 제 개인적으로 조금 더 왔죠. 왜냐하면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된 두 달 만에 제가 소련에 들어갔었으니까.

갔다 오고는 당시의 조건이 뭐였냐면, 우리 정부 위원회에서 안 갔다 온 것으로 한다. 그게 조건이었습니다. 당신이 국립대학 교수니까 잘 알아서 하시겠지만, 갔다 온 것에 대한 일체 글을 쓰거나 말을 할 원칙적으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주는 지우는 것을 조건으로 좀 오케이를 했었으니까. 뭐 저도 지우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냉전이 되고 나니까 왜 그럼 85년에 보이지 않게 흥분했던 건 뭐고 91년에 그런 것을 읽지 못한 건 뭐냐 하는 거죠.

미래 예측을 위한 새로운 학문적 접근

그래서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그러면 공부를 좀 다르게 해야 되겠다. 흔히 사회과학에 들어오면 미래를 공부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 현재나 과거의 터를 가지고 석사도 쓰고 박사도 쓰고 이렇게 원칙적으로 하게 되죠. 알 수가 없으니까 뭐 제 마음대로 거짓말도 쓸 수 있는 거고. 그래도 미래, 내가 얘기한 전망이 미래의 현실화되지 않는 전망을 내가 가진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 공부를 바꾸자. 공부의 방향을. 뭐 거창하게 해결이 학자나 지식인이라는 게 미네르바의 올빼미처럼 어둠이 터질 때 그것을 내려와서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그러는데, 저는 그거보다는 차라리 새벽에 올 때 참새가 되는 게 낫다. 뒤에서 뒤통수를 보는 역사의 뒤통수를 공부하기보다는 앞을 좀 들여다보고 싶다고 해서 대부분의 분들이 '왜 소련이 망했는가' 그거에 몰두하고 뭐 탈냉전이라고 하고 있을 때, 아니 그거보다는 이건 보다 본격적인 무슨 사거 새로운

역사의 변화의 시각에서 문제를 보는 것이 옳지 않냐? 그렇게 생각을 하고 시작했던 것은 이건 단순한 냉전의 탈냉전의 변화가 아니라 문명사적인 차원에서의 새로운 문명의 도래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했어요. 변화의 규모를 훨씬 크게 본 거죠. 그런데 그 얘기를 했더니 들으려는 사람이 없어요. 오늘 하는 얘기가 뭐 중요한 거죠. 문명사적인 변화라는 게 액터적인 차원에서 근대적인 네이션 스테이트의 일정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무대도 전쟁, 전쟁과 평화, 또는 번영과 빈곤 이런 것으로 우리가 19세기에 국제정치라는 것은 그런 것을 위해서 싸운다고 그러는데, 그건 물론이지만 무대가 달라지고 있다.

훨씬 복잡한 무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고, 퍼포먼스 자체도 행동 양식도 바뀌는 것이 아닌가. 그런 얘기를 하기 시작을 했죠. 듣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그러니까 주로 대학원생들과 세미나도 하고 책도 내고 그런다가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이게 쉽지 않은데 그러면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는 경우에 우리 역사의 격변기가 있었는데, 그때 이런 얘기를 했던 사람들은 어떤 사태에 직면했을까 하고 역사를 되돌아보니까 제가 그 답답해하는 것보다 훨씬 답답한 시기들이 있었어요. 제일 가까운 것은 19세기 서양이 들어오는데, 한쪽에서는 '저 오랑캐 같은 친구들, 뭐 그 위정척사의 깃발 아래 충분히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속에서, '이거보다 이게 이상하다. 변화' 이렇게 얘기하는 부류들이 있어서 제가 그걸 보고, 그러면 그 당시에 그 사람들은 어땠나?

그 궁금한 것을 알기 위해서 공부를 시작한 것은 19세기 당시에 그러면 문명화는 불가피하다고 봤던 친구들은 어떻게 됐나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문명 개화를 얘기했던 부류들은 당시의 역사에서 결국은 일본을 끌어들이려다 친일로 몰려서 다 자기 목숨을, 생명을 끝까지 산 경우는 드물고, 또 패자는 대체로 기록이 없죠. 이겨야 기록이 남는 거지. 그러니까 글이 별로 없어요. 뭐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였던 김옥균 같은 케이스를 비롯해서 그나마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은 김옥균 덜 용감했기 때문에 재명을 사는 거죠. 그러니까 글도 서유견문을 비롯해서 글들이 꽤 남아 있는데, 그래서 서유견문을 좀 들여다봤죠.

그랬더니 뭐 여러분들이 제가 보조 리딩으로 좀 읽으라고 해서 읽은 사람도 있고 안 읽은 사람도 있겠지만, 김옥균이 그 나름에 자기 소신 같은 것들을 이걸 간단히 생각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 결과적으로 그런 얘기를 했던 개인들도 성공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건 굉장히 어렵지만, 여러분들이 저는 하여튼 재명을 대부분 못 살았죠. 김옥균은 뭐 목숨은 살았지만, 뭐 큰 직위를 하기는 어렵죠. 왜냐하면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쪽에서 문명 개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개인의 운명도 그 마땅치 않았고, 나라는 결국 어떻게 되냐? 나라는 결국 나라가 죽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나라가 죽었다.

식민지가 되었다는 것은 500년이나 생명력을 유지했던 조선조가 결국 일본의 식민지가 되죠. 개인도 죽고 비명횡사하고 국가도 죽고. 그런 것을 보면서 제가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그러면 한 개인이 여러분이 만약 내가 2050년에 대해서 어떻게 살고 싶냐 하는 얘기를 좀 재밌게 써 봤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으로 쓰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뭐 읽으면서 포복절도 눈물이 나는 글은 하나도 없었어요. 물론 어렵죠. 포복절도구나 나를 내가 눈물 흘리면서 읽게 만들기는 어렵지만, 그 얘기는 뭐 오랫동안 생각이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는 얘기도 되는지 모르죠.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그 시대에 19세기의 문명 개화 팀이라는 게

여러분들보다 나이가 어린 쪽이 많아요. 가장 대표적인 역할을 했던 김옥균이 1884년 갑신정변에 실패하는 나이 때가 서른넷 또는 그 박규수의 사랑방에 모여서 젊은이들끼리 '이거 서양 이런 걸 배워야 된다' 뭐 이런 얘기를 하던 때가 또 10년 전이었기 때문에 20대 초반, 여러분의 나이죠. 그러면 가만히 보면 어느 한 시대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게, 특히 그 변화가 상당히, 변화는 늘 있죠. 역사는 변화가 있는데 격변의 역사가 오는 경우에 그것을 제대로 감지해 내고 미리 앞서가는 경우는 어쩌면 한 개인도 중요하겠죠. 그 드라마에서. 동시에 그 젊은이들이 그 그런 문제 의식을 가진 모 정 그 사회가 결국은 무대에서는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여러분들보다 나이가 어린 쪽이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역할을 했던 김옥균이 1883년 또는 1884년 갑신정변에 실패했을 때의 나이가 서른 살 내외였습니다. 박규수의 사랑방에 모여 젊은이들끼리 서양 학문을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하던 때가 10년 전이었으니, 그때는 20대 초반이었습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특히 격변의 시기가 오는 경우, 이를 제대로 감지하고 앞서가는 데에는 한 개인의 역할도 중요할 것입니다. 드라마에서도 그러하듯,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젊은이들이 결국 사회의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적 격변기 속 한국의 미래

역사의 격변기에는 기성 세대가 아니라 여러분의 세대가 가장 중요합니다. 앞으로 30년 뒤 한국, 한반도, 아시아가 세계 무대 중심에 설 수 있을지는 현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내다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를 위해 역사적으로 굴곡이 있었던 시기, 가까이서는 18세기 정조 무렵을 살펴보겠습니다.

정조 시기에는 나라가 어려워지자 돌파구를 찾으려는 새로운 모색 그룹들이 등장했습니다. 박지원, 다산 정약용이 그 예입니다. 19세기에는 박규수와 유길준을, 식민지 시기에도 나라가 죽었지만 정신적으로 살아남아 부활의 계제를 만든 김양수, 민세안을 들 수 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방 이후의 인물 선정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해방 이후 한국의 위치와 방향을 비교적 정확하게 읽고 전망한 인물은 동주 이용입니다. 또한 90년대 초반부터 단순한 탈전이 아닌 새로운 문명의 등장을 준비하자는 공부 모임을 이끌었던 복간 국제정치 연구 모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편의상 맨 오른쪽 마지막 사진은 제 얼굴로 하여 총 여덟 명을 선정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서버'라는 것을 쓴다면,

아홉 번째 챕터가 될 것입니다. 미래는 어떻게 다가오고 있으며, 그 속에서 나와 국가, 아시아, 세계, 나아가 우주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대학에서 외교와 같은 좁은 의미의 학문만 가르치기보다는 넓고 길게 보는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여덟 명의 젊은이들을 선정한 이유는 전통적 질서에서 근대 질서로 이행하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냉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변화입니다. 당시 서구는 우리를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오랑캐나 금수로 여겼습니다. 냉전 시기 남북한이나 미소 간의 싸움은 인간 대 인간의 싸움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덜 심각했습니다. 당시 20대들은 대부분 양반 자제였고, 나라가 기울고 있었지만 과거에 급제할 정도의 머리는 있었습니다. 이들이 문명화 등을 고민하다 비극적이거나

화려하지 못한 삶을 살았던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시기를 겪지 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겪는 변화는 당시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체인지가 아니라 레볼루션, 즉 완전한 변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서 중국 중심의 질서로 변화한다면,

영어 다음으로 중요하게 공부하던 중국어가 공용어가 된다면, 이를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중요한 역할을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트럼프의 행보를 보며 중국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여 중국어를 공부했지만, 50대가 된 지금도 미국이 득세하고 영어를 사용합니다.

언어에 투자한 모든 시간을 중국에 쏟았지만, 이를 활용할 영역은 제한적이었습니다. 개인의 삶은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 행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 세계 질서가 어디로 갈지 판단하여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개인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올 것이라 판단하여 미국과 멀어졌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질서가 오지 않는다면 개인은 책임을 지면 되지만,

5천만 명의 운명, 특히 북한이 러시아를 선택했지만 러시아가 별 볼 일 없다면, 중국이나 미국을 잡아야 하는데 러시아 선택은 미안하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2천만 명의 운명을 고난의 행군으로 몰고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 한국 외교의 세부적인 지식은 GPT나 위키피디아로 독학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를 소박하게나마 고민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은 어디로 가고 있으며, 그 속에서 나와 한국, 북한, 한반도, 트럼프와 시진핑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정확히 읽는 것은 50대가 되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저는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복합 국제정치로의 변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판단하여 30년 전부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친구들은 안 되면 어떡하냐고 물었지만,

저는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공부한다고 답했습니다. 복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 있었지만, 요즘은 복합 위기, 복합적 대응 등 복합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항상 먼저 준비하는 자가 중심에 설 수 있으며, 나라 역시 세상을 미리 내다보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계 질서의 주기적 변화와 동력

지난 2천 년을 되돌아보면 한 나라가 계속 같은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BC/AD 천년 사이에는 인도가 가장 위안이었고, 그다음이 중국, 서유럽, 중동 순이었습니다. 미국은 원주민 외에는 거의 존재감이 없었지만, 천년 후 세계 질서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누가 예측했겠습니까? 천년 앞을 내다보고 특히 관심을 가질 것은 우리와 가까운 중국의 변화, 서유럽의 변화, 미국의 변화입니다. 중국이 피크에 오른 것은 1700년에서 1820년대, 즉 청조 시기였습니다.

당시 청조의 세계 GDP 비율은 오늘날 미국과 비슷했습니다. 서양이 본격적으로 우세해진 것은 산업혁명 이후인 180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중국은 30%에서 5%로 떨어졌고, 서유럽은 올랐습니다. 이후 서유럽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미국이 득세하게 되었고, 이는 2010년경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흥미로운 연구 중 하나는,

국제정치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학부와 석사까지 사상 등을 공부했습니다. 당시 세틀에 있던 모다스키라는 학자의 '롱 사이클' 이론은 일리가 있었습니다. 16세기부터 100년 주기로 한 나라가 주도권을 장악했고, 100년 후에는 전쟁을 통해 다음 리더가 바뀌었습니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미국 순이었습니다.

요즘 유럽 여행을 가면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이곳이 세계 질서의 슈퍼파워였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16세기에는 스페인이 더 컸지만, 지구 전체를 돌아다니는 면에서는 포르투갈이 시대를 장악했습니다. 17세기를 장악한 네덜란드는 오늘날에도 네덜란드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글로벌합니다.

암스테르담에서 택시를 탔을 때, 운전수가 어느 나라 말로 대화해 줄까 묻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영어는 물론 독일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로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글로벌 무대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나는 네덜란드만 하겠다'는 식으로 살지 않는 삶의 방식, 즉 17세기 슈퍼파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네덜란드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100년 주기 사이클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전쟁이 나면 대체로 네 단계의 페이스를 거칩니다. 첫 번째는 승전국 중심으로 세계 질서를 재건축하는 것입니다. 1945년 미국이 세계 질서를 주도하게 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군사 동맹, 경제 질서, 무역, 노동 등에 대한 질서를 운영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국제 정치에서는 세계 정부가 없기 때문에 항상 문제가 발생합니다.

가장 큰 승전국이 질서를 짜면서 공공재 생산 과정에서 사적인 이익을 더 많이 챙기게 됩니다. 그러면 다른 국가들은 불만을 품게 되고, 질서를 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너무 많은 이익을 가져가는 것에 도전하게 됩니다. 국내 정치에서는 선거를 통해 반영되지만, 국제 정치에서는 전쟁 전까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냉전 질서에서 소련이 미국 질서에 도전했지만 졌고, 그다음에는 중국이 그 역할을 담당하려 했습니다. 주도국이 세련된 주도국이면 불만이 있어도,

불만을 수용하며 질서를 유지하려 합니다. 하지만 트럼프의 관세 협상처럼 불만이 커지면, 말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힘을 키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세 번째는 군사력 경쟁 시기이며, 결국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였습니다. 이 네 단계를 염두에 두고 현재 우리가 겪는 질서를 살펴보겠습니다.

21세기 복합 세계 질서의 이해

현재 질서를 세 가지 각도에서 볼 것입니다. 첫째, 주인공은 누구인가? 누가 중심인물인가? 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도 역사의 주인공이 되려면 누가 득세하는지 유심히 보며 활동해야 합니다. 둘째, 무대는 어디인가? 어느 무대에서 활동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특히 요즘처럼 AI가 등장하는 속도를 보면, AI를 모르면 20년 후에는 생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무대를 주목해서 봐야 할 시점이라는 거죠. 세 번째는 행동 양식 자체가 바뀌는지 모른다. 그 행동 양식에 맞게 행동하는 그룹, 개인이 또는 국가가 특수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럼 행위자(actor)부터 보겠는데, 행위자는 여전히 근대가 완전히 없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군사비로 먹고 사는 데 있어서의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저런 통계를 별로 본 적이 없을 거예요. 그 이유는 국제 정치를 가르칠 때 대체로 제국의 국제 정치를 가르치면 세 가지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미들 파워(middle power)의 입장에서 제국의 국제 정치를 배울 기회는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익수관계, 한미 관계, 한일 관계, 한중 관계, 남북한 관계 이렇게 공부를 하죠. 세계의 전체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고 그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는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세력들이 되게 자기네들이 합니다. '너희는 아직 왜 그런 걸 하려 그래?' 그렇게 되니까 아마 지금 국내 국제 정책을 가르치는 교수분들을 다 모아 가지고 저기 나온 것 중에 1년의 세계 군사비 전체가 얼마인지

물어봐도 맞출 사람은 5% 미만일 겁니다. 군사를 전공해도 이게 뭐냐 하면 남북한의 군사력이 어떻게 되느냐, 또는 미중의 군사력이 어떻게 되느냐 그 정도를 생각하지. 그럼 이 표를 보면 맨 밑에 보면 2조 2천억 달러가 1년에 쓰는 군사비예요. 내가 세계 대통령인데 이게 아닌데 그걸 알아서 꼭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은 안 하는 게 좋다는 거죠.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대강 아는 것이 내가 결국은 앞으로 한 세대를 살아가는데는 분명히 중요합니다.

그중에 미국이 차지하는 부분이 얼마냐? 저기 보면 2조 2천억 중에 미국이 차지하는 게 1조예요. 9970억으로 나와 있잖아요. 그럼 1조면은 대략 치면 40% 가까이 되는 거죠. 굉장히 많이 쓰는 거죠. 미중이 각축한다고 하는데 얼마나 각축하는가? 중국이 3천억 정도 써요. 러시아 100억, 독일 9900억, 인도 900억, 영국 800억, 일본 550억, 사우디아라비아 470억. 몇 가지 금방 생각을 해야 될 게 우리는 국제 정치 그러면 여러분들이 익숙한 한반도와 주변 4강인데 그렇게 국제 정치를 생각하면 망할 가능성이 많죠. 왜 주변 4강이 어디 있어요? 저기 보면 러시아가 그나마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해 가지고 굉장히 많아진 게 1500억이에요.

그러면 1500억 대, 3천억 대, 1조. 일본 550억인데 이걸 주변 4강이라고 불러야 될 거냐? 그렇게 보고 국제 정치를 하면 망하겠죠. 미중이라고 하는 그 위상을 대강 어느 정도 놓고 보느냐? 우리보다는 중국이 훨씬 정확히 알아요. 중국은 당장 미국과 싸울 생각이 없어요.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현재로 봤을 때는 3대 1 이상이다 차이가. 그러면 그때 싸우면 안 되죠. 이게 어느 정도 싸울 만할 때 선방을 날려서도 되려면은 최소한 어느 정도 접근할 때 싸워야 되는 거 아니에요. 우리는 그냥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거죠. 미국한테도 잘하고 중국한테도 잘하고. 그렇게 쉽게 안 됐는 중국 당사자는 그렇게 안 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굉장히 안타깝고 애절하게 생각하는 거는 북의 입장에서 러시아를 붙잡는 겁니다. 이건 단기적으로는 부분적인 효과가 있겠죠. 북한에 뭐 여러분 나이 젊은이들이 가서 피를 흘리고 그것에 대한 반대적인 군사적인 급부나 경제적인 급부를 받지만 러시아 가지고는 힘이 없는데 4강이 아닌데 초강대국보다 좀 작은 강국, 파워 수준에 러시아가 있는 보면 뭐 한국과 일본이 합친 군사비나 러시아나 뭐 큰 차이가 안 됩니다. 그럼 러시아를 잡으면서 중국이 좋아할 리가 있나요? 그러면 중국이라고 하는 세컨드 그레이트 파워(second great power)한테 기분을 상하게 만들고 압도적으로 아직까지 우위에 있는 미국을 어떤 형태로든지 활용할 생각을 안 하면, 그리고 러시아를 통해서 모든 걸 얻어낸다. 그거는 현명한 지도자의 선택은 아니죠.

뭐 여러분들이 개인적으로 선택해도 어느 기업을 간다든지 그런다. 때도 그건 물론 스타트업에 가서 내가 대박이 나겠다. 그건 그거의 각도에서 봐야 되겠죠. 이 중에 비록 현재 상태가 적더라도 내가 같이 해서 대박이 날 수 있는 어디냐?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나 중남미라든지 미들 이스트(Middle East)나 이런 데 밑에 있는 작은 국가들과 협력해서 돌파할 수 있느냐. 그게 당장은 희망한 대로 안 될 가능성이 굉장히 큰 문제가 있죠. 그러면 다른 데이터를 보면 좀 나을까?

뭐 군사 다음엔 경제 데이터니까. GDP도 마찬가지. GDP는 그나마 한국이 지구를 상대로 그니까 아마 정치 국제 정치학자들에게 물어보고 세계 군사비가 얼마냐고 물어보면 100명 중에 99명이 틀릴 겁니다. 경제를 하거나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아마 반 이상은 맞출 거예요. 그건 우리 비즈니스가 그만큼 커져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또 여러분들도 들은 기억이 얼추 있을 수가 있죠. 저기 보면 세계 GDP 전망이 금년도 대체로 113조, 113~14조 정도가 된다.

그중에 미국이 차지하는 부분이 30조다. 군사비보다는 낫죠. 우리는 그냥 미중이 뭐 아 중국의 경제가 커지는데 이게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 이렇게만 알고 있는 것에 비해서 저거를 보면 대체로 19조 중 엄청나게 커진 거예요. 커진 거는. 그러나 여러분의 인생이 걸린 거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막연히 커졌다고 할 게 아니라 정확히 알아야 되죠. 2000년 초반에 중국의 GDP가 1조였어요. 1인당 국민 소득 1천 불 수준이었어요. 그 1조 조금 넘죠. 우리하고 비슷했어요.

우리 지금 뭐 그래도 랭킹 10이라고 10이 좀 되나요? 우리가 13위, 우리 1조 7천 아니에요. 10분의 1 중국에. 근데 불과 20년 사이에 그때는 우리랑 비등비등했거든요. GDP 토탈 좀 많았죠. 근데 인구가 뭐 저쪽은 10억이고 우리는 4, 5천만 사이즈였는데 저건 이제 개별 국가를 나눠서 그렇지. 만약에 EU를 27개국을 더하면 대체로 중국 사이즈죠. 30조, 20조, EU 20조 그럼 합치면 70조 아니에요. 벌써. 그러니까 그거는 일단은 머릿속에 그런 기본 데이터는 가지고 생각을 해야지 그냥 관념적으로 감성적으로만 일을 처리할 수는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거죠.

첨단 기술 발전과 미래 사회

그런데 더 복잡한 것은 이 조금 더 하겠지만은 무대가 바뀐다. 지금 급변한다. 여러분들도 사실은 직업이 향후 10년 후에 격변할 거예요. 반 이상은 없어진다는 거 아니에요? 없어지는 거야. 우선 순위야. 사실 변호사 같은 것도 상당한 수는 그거는 AI가 해야 될 작업들. 따라서 첨단 기술 파트가 굉장히 중요한데 21세기 질서에 그러면 첨단 기술은 어디가 가지고 있느냐? 그게 향후 30년을 결정한다. 그러면 여러분도 첨단 기술을 개인적으로 장착하지 못하면, '아, 난 그냥 자연으로 살고 싶어.

꼭 내가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야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살고 싶어 그러면 별 문제가 없지만은 그거보다 나는 무대에서 중심에서 활약하고 싶어 그러면 무대를 유심히 봐야 될 파트들이 걸려 있잖아요. 그중에도 이제 뭐 여섯 일곱 개의 첨단 기술 중에도 가장 핫한 거는 요즘 AI가 걸려 있죠. AI가 뭐 처음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란 말 자체는 1950년대 생겼지만은 그동안의 AI도 뭐 기복이 있었죠. 겨울을 여러 번 맞았는데 이번 경우는 겨울이 쉽게 안 찾아올 것으로 대부분 전망을 하고 기대를 하고 있죠. 물론 나 같은 사람은 너무 완벽한 기대는 하지 말아라.

AI가 인간의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없는 건 뭐 명확하니까 그 AI 데이터를 전망하기가 굉장히 어렵지만은 이게 뭐 최근 수년 내에 그 장사가 되니까 AI에 관한 보고서나 연구서는 하루에도 뭐 몇 백 개가 쌓이는 속에 그럴듯하다고 느껴지는 게 이제 금년 초에 맥킨지 컨설팅 그룹에서 한 건데 밑에 여섯 개가 인덱스죠. 캐피탈 파워(capital power)라는 건 돈을 얼마나 투자하냐. 그다음에 인력 탤런트(talent)를 얼마나 가지고 있냐. 그다음 IP(Intellectual Property)는 뭐 아마도 지적 재산권 이런 거겠죠. 생산은 얼마냐. 그다음 데이터가 역시 데이터를 가지고 지금 하는 거니까

예. 데이터를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그리고 알다시피 이제 에너지가 엄청나게 들어가는 작업들이 되기 때문에 에너지 파트. 그다음 컴퓨팅 파워(computing power) 이런 여섯 개 데이터를 써서 보니까 크게 보면 미국하고 중국이 선두인데 상대적으로 미국의 우세다. 그다음 EU,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UAE, 사우디아라비아 정도를 그다음 중간 정도로 놓고 그다음 나머지 어떻게 보면 국제 질서의 불평등화는 더 심화되고 있는 건지도 모르죠. 아는 자와 모르는 자로 나눠지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건지 또 모르겠는데 일단 염두에 두려는 거죠. 한 개인의 입장에서건.

그러니까 이제는 어떤 직업을 택하든 어느 정도는 AI나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같은 것들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입문 사회 자연과학이 아니고 입문 사회를 하더라도 모든 것을 그것에 의존하는 자가 승리할 것이냐 그것에 대해서는 나는 별로 동의하지 않아요. 왜 그러냐면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가 그런 계산하는 능력이 이성적인 측면이 중요한 파트가 있다고 한다면 내가 보는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에 못지않는 부분이 감성적인 파트의 부분과 또한 영성적인 부분의 파트도 있어요.

그러면 ChatGPT가 그런 것들을 장악할 수는 없는 것이냐? 감성이나 영성(spirit power) 목사도 다 실직하고 예술이나 이런 영역도 모두 다 그만두게 만들 가능성이냐? 그럴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러나 따지고 계산하는 파트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AI가 대체하는 효과를 가져오겠죠. 그러니까 그걸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해야 되겠죠. 내가 개인의 입장에서나 또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이건 뭐 참고로 아주 최근 통계는 아닌데 흔히 말하는 싱크탱크(think tank)라는 말이 있어요.

지식 생태계와 행위자 변화

뭐 EAI도 뭐 그런 것에 하나라고들 이제 우리도 싱크탱크라는 말을 쓰지만은 세계 20대 싱크탱크를 이건 그 일종의 투표한 거죠. 이쪽 관련하는 상당히 많은 전문 지식인, 교수, 연구소 연구하는 분들을 해 가지고 투표를 했어요. 전 세계로 랭킹을 매긴 거예요. 인문 사회, 특히 사회 외교 국제정치 그런데 투표를 해 보니까 20개가 뽑혔는데 금방 알 수 있는 게 20개 중에 열 개는 미국이에요. 그럼 여전히 지식력 파트에 있어서 상당한 부분은 저들이 그것을 남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제3세계 거의 없잖아요. 저 뭐 브라질 눈에 띄는 거죠. 미국에다가 유럽 합치면은 뭐 한 70% 80%. 아시아 거의 없잖아요. 중국, 일본 하나 들어가 있고. 뭐 너 지금 중국 같은 걸 하나 넣을 수는 있는데 그게 액터(actor)라고 하는 것을 머릿속에 액터의 생각을 좀 바꾸라는 거예요. 언론 매체나 무슨 유튜브나 그런 데서 소위 국제정치라고 나와서 약간 사기성 발언들을 계속하는 분들을 믿으면은 그것은 시대의 변화와는 관계가 없는 나는 옛날 무대에 설 수밖에 없는 배우가 될 수밖에 없다. 미래를 내다보는 무대로 치면은 액터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 복합 세계 질서의 새로운 기반

무대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전통적인 것은 아까 얘기하듯이 우리는 전통적으로는 어떤 무대가 제일 중요했냐면 예, 이런 것이 중요하죠. 지금 듣기에는 익숙지 않잖아요. 예가 뭐야? 예(禮)란 글자는 원래는 제사 지냈다는 글자예요. 이 예의가 있는 예의가 바르다. 그거는 제사를 지내는 이런 것을 나타내는 옆에는 그 벼의 변이고 이쪽은 제사상 책이는 그럼 동방 예의지국이란 말을 우리는 19세기 중반까지 썼어요. 19세기 중반까지의 슈퍼파워는 동방 예의지국이 되는 거다. 근데 서양의 쌍놈들이 와서 동방 예의지국을 부국강병이라고 하는 세력이 와서 완전히 박살을 낸 거예요. 부국강병은 하나는 시큐리티 파워(security power)고 하나는 이코노믹 파워(economic power)가 아니에요. 안보, 경제.

근데 내가 21세기에는 복합이 된다고 하는 것은 안보, 경제만 자각해 가지고 안 된다는 거예요. 세 가지 정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21세기는 기술, 정보, 지식이 기반 질서가 될 수밖에 없다. 3층 탑의 기초를 이루고 하는 것이. 그럼 항상 기술이 기초였나? 아니죠. 지구상의 인간이 태어나서 기초가 됐던 것은 종교였어요. 맨 거의 모든 것을 사람은 잘 몰랐기 때문에 다 물어봤죠. 점을 치든지 이거 하면 좋습니까? 안 좋습니까? 내일 사냥을 가면 살 수 있습니까? 아닙니까?

모든 것을 점쳤습니다. 갑골문 점을 치든지 이런 식이었죠. 그러다가 근대로 들어오면서 정치가 질서의 모든 기반을 이루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19세기 들어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경제가 모든 것의 기반이 되었죠. 21세기에 들어와서는 기술, 정보, 쉽게 말해 첨단 기술이 기반이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로 주목할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세상이 움직이면 좋겠지만, 나머지 안보, 원형 문화, 생태, 공치 등에도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새롭게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외교 역시 인공지능(AI)의 발전과 더불어 점차 중요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20세기까지는 번역이 중요했지만, 문화 생태는 무엇일까요?

안보와 번영을 통해 부국강병을 추구했지만, 그 싸움이 치열해지면서 결국 서로 죽이고 대공황이 오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스스로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근대적으로 부국강병이 해결되었던 부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중세 유럽에는 500개의 국가가 있었습니다. 중세 사람들은 매일매일 생계가 불안했습니다. '오늘 누가 나를 죽일까?' 하고 말이죠. 그런데 국가는 생명을 보장하고 먹을 것을 준비하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근대 국가의 등장으로 유럽은 10여 개국으로 줄었습니다. 지금은 27개국이라고 하지만, 동구의 작은 나라들을 제외하면 큰 나라는 열 개 정도입니다.

그 나라 중심으로 개편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열 개 나라 중심으로 놔두니 서로 치고받아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등 여러 문제가 생겼습니다. 게다가 지구 자체에 부작용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환경 문제, 의료 문제, 기후 변화 등이 결국 근대의 각 개별 국가의 각축 시스템에서 오는 부작용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안보와 번영만으로는 안 되고 문화 생태라는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맨 꼭대기에는 영어로 '글로벌 거버넌스(global governance)'라고 표현하는 것이 있는데, 세계 정부가 없으니 이를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 기능이 존재해야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이 세 가지가 과거와는 다르게 움직입니다. '글로벌 거버넌스'라는 말을 한국어로 번역하기 어려운데, 저는 그것을 '공치(共治)'라고 번역합니다.

'공동으로 다스린다'는 뜻으로 말이죠. 시간이 많이 갔는데, 세 번째로 '연기의 복합화'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연기에도 변화가 왔다는 것입니다. 특징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소위 홉스적인 표현으로 그래야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너를 죽여야 살아남는다는 것이 근대적인 연기의 기본이었다고 한다면, 이것이 점차 변화를 겪기 시작합니다. 밑에 있는 것은 텍스트인데, 내가 읽어보라고 하면 내가 썼던 옛날 텍스트를 본 사람이 있겠지만 '늑대 거미'의 모습입니다.

저는 늑대 거미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늑대는 기본적으로 근대적인 연기의 기본 공식인데, 거미는 네트워크를 치는 것이 아닙니까? 결국 21세기에는 늑대적으로만 살면 안 되고 동시에 거미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 인터넷에 '늑대'와 '거미'를 쳤는데, 눌러보니 거미 중에 '늑대 거미'라는 거미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놀랐습니다.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90년대 제가 그런 복합을 가르칠 때 저희 관학의 외교학과의 비밀 코드가 '다버탑'이면 '늑대 거미'라고 하면 '너는 강의를 들었구나' 하는 비밀 번호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쪽은 소위 '공생(symbiosis)'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는 데는 모든 것을 각축이라고 생각하지만, 각축하지 않고 사는 예가 있습니다. 지금 저것은 벌새와 꽃이 서로 공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데, 저런 새로운 왼쪽의 경쟁에서 공생으로의 변화들이 다

국가 대응 전략과 미래 선도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는 변화를 요약하면 이런 것입니다. 주인공에는 국가와 초국가 네트워크, 그리고 국가의 하위 국가 네트워크라고 하는 것이 옛날보다는 복잡해졌다는 것입니다. 안보와 번영에서 문화 생태가 보완되어지고, 기축 무대와 상무대를 주목해야 합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썼는데, 그러면 이런 변화에 대해 각 국가들은 어떻게 대응하려고 하는 것인가? 누가 이런 변화를 먼저 읽어내고 그것에 따라서 과감하게 투자를 하고 앞서 가려고 하는 것이냐? 이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선두에 서려는 노력을 스스로 또는 내가 소속된 정치 단위체가 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미중 전략 경쟁과 미래 전망

샘플로 여전히 아까 보았듯이 행위자가 훨씬 복합되긴 했지만, 여전히 중요한 것은 미국과 중국입니다. 이들은 이런 변화를 어디까지 읽고 있고, 어디까지 그러한 새로운 변화 속에서도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고 필사의 노력을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샘플로 미국 같은 경우에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이라고 하는 것은 미국이 세상이 어디로 변하고 있는지를 읽고, 그 사람이 어디로 갈 것인지를 전략을 짜는 것에 가장 기본되는 문건입니다. NSS는 4년에 한 번씩 나옵니다.

아마 내년이 지금 안보 작업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길게 읽어볼 필요 없이 이제 첫 단어는 많이 유행했죠. '인플렉션 포인트(inflection point)'라고 했는데, 인플렉션 포인트라는 것은 변곡점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제가 하는 얘기는 사실은 천년 단위 속에서 다시 100년 단위로 이렇게 좁혀서 얘기를 한 것인데, 저는 그것보다 훨씬 단기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2020년은 왜 그럴 수밖에 없냐면 선거들을 치르니까 선거 과정에서 저것은 바이든 때 나왔던 케이드라고 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변곡점이기 때문에. 그나마 우리는 그런 얘기도 별로 한 적이 없습니다. 여당이고 야당이고 우리가 역사의 변곡점에 있다고. 그런 것으로 싸울 결이 없는 이전 구도가 우리는 벌어지고 있는 속에 계속해서 중심에 서려고 하는 부류들은 그래도 자꾸 미래를 전망하고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자신들이 앞서간다고 하는 얘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밑에는 주적이 중화인민공화국(PRC), 뭐 이런 러시아 이런 것들이 있는 속에서 자신들이 어디로 가겠다 이런 얘기고, 미국은 '국가안보전략'이 중요하다 그러면 중국은 당대회가 중요하죠.

20차 당대회라고 하는 것은 시진핑이 원칙적으로는 10년씩만 하게 되어 있거든요. 맥시멈 두 번 재선할 수 있는데, 이례적으로 워낙 역사의 변환에 별 중요한 때이기 때문에 자신이 한 번 더 하면서 그 기반을 닦고 물러나야 된다. 그래서 일종의 무리를 하면서 20차 당대회에서 삼선이 됩니다. 세 번째 대통령 취임해서 자기 목표로는 왜 해야 되냐? 보면 2050년까지 목표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2020년에서 2035년까지 기본적으로 실현하겠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현대화라는 것을 전면 건설 사회주의 현대화라고 하는 거기까지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2035년부터 2050년까지를 제가 중국 사람들이 보면 늘 약간 놀리는 얘기를 하는데, 저기 보면 '부강, 민주, 문명, 조화, 아름다운 사회주의 현대화국'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길게 얘기한 건 결코 모르겠다는 얘기입니다. 어떻게 외우기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좋은 단어는 다 집어넣는 것입니다. 저쯤 돼서 이제 2050년에는 세계 무대에서 중국이 가운데 선다는 얘기입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간단히 요즘 얘기로 치환을 하면, 트럼프라고 하는 사람이 두 번째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얘기를 많이 하지만 쉽게 얘기하면 '포' 영어도 쉽잖아요. 들어보면 굉장히 잘 들리는 영어죠. 세 마디밖에 없습니다. 하는 말에 'America First', 우리가 한 거에는 행위자적 차원에서는 'America First', 'America 무대 peace through strength', 세 번째 'Make America Great Again'. 궁극적인 목표는 그것에 따라서 뭘 하고 싶어냐?

가장 큰 목적의 하나는 가만히 보니까 미국을 위대한 미국을 만들려는 경우에 최대 문제는 중국을 패권 국가로 만들면 안 되겠다. 그것이 최대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할 것이냐? 하나는 군사적으로 잡아야 되고, 하나는 경제적으로 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관세 협상이 막 끝나니까 뭐 그것은 나라가 온통 시끄럽고 잘됐니 못됐니 이래 가지고 싸우지만, 사실은 더 큰 싸움은 정상회담이 더 큰 싸움입니다. 왜 그러냐면 그 관세라고 하는 것은 뭐 올라가고 어느 정도 내려가고 해도 어떤 형태로든지 어느 정도는 겪어 나갈 부분이 있는데, 시큐리티 협상은 그것보다 훨씬 취약해야 합니다. 그럼 저쪽에서 군사적인 차원에서 뭐라고 하냐?

말을 우리 보고, 우리만이 아니라 공맹 보고, 중국의 패권력을 막기 위한 얘기를 하자. 언론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자세히 들으면 중국을 위해 중국을 맡기기 위해서 그 포괄적인 전략적 관계를 미래지향적인 전략적 관계를 재설정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그냥 관련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미국 거의 다 짰습니다. 안세 때는 마찬가지지만, 저쪽 다 짜면 그때 막 보여 가지고 뭐 저쪽에 어떻게 짰을까, 뭐 일본 하는 거 눈치도 보고 뭐 이런 디펜스 전략이라는 것은 아까 말한 NSS가 짜지면 그 밑에 국방부에서 짜는 문서가 '전략국방검토(Strategic Defense Review)'이고, 또 하나는 '글로벌 전력 검토(Global Force Review)'라고 하는 전 세계에 나가 있는 병력들을 리뷰하는 것입니다.

미국이 사실은 군사 병력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남북한 합치면 한국이 중국과 더불어서 세계 이위입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지금 뭐 거의 100만 된다고 주장하고, 남쪽 뭐 50만 60만 하면 합치면 150만입니다. 거의 중국과 쌍벽입니다. 미국은 지금 현재 135만 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그중에 해외 나가 있는 게 한 20만 됩니다. 유럽에 10만가 있고, 한국에 28,500명 와 있고, 일본에 52,000원 와 있고, 구함에 만쯤 와 있습니다. 그니까 이쪽에 10만, 10만 이렇게 되어 있는데 8월 31일이나 9월 초쯤 나온다고 하거든요.

그럼 우리 대통령이 미국을 가면 그땐 저기는 이미 다 완성된 프레임업입니다. 해외 주변 명령 그 조정 같은 우리는 아직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 이러고 있잖아요. 저쪽은 다 짰는데 이미. 그럼 28,500명에서부터 얼마나 줄일 것인가? 그러면 그것에 따라서 우리는 줄이면은 줄이면서 돈 내라는 건 무슨 얘기냐?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근데 생각이 기본적으로 다른 건 미국에서는 죽이면서 왜 돈 내라는 게 아니라, 죽여도 만약 28,500명에서 만 명으로 줄인다고 그래서 만 명이 거기에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있는 우리가 내야 되겠네. 그러니까 계산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병력을 줄였으면은 우리가 그걸 우리가 배신 메꿔야 되니까 우리를 도와주든지 해야 될지, 돈대로 되고 병력은 중국 대응으로 빠지지 않 일부 빠지든지, 아니면 최소한 한국에 있더라도 그것이 대중 영웅으로 전략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오케내라. 이런 취지의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경제 파트도 마찬가지입니다. '테리딜'이라는 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거고, '서플라이 체인'이라고 하면 중국을 잡으려고 그러니까 특히 첨단 기술 AI나 뭐 이런 것들에 연관돼서 소위 말해서 '디커플링(decoupling)'에서 '디리스킹(derisking)'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중국이 따라올 수 없도록 전체적으로 조정을 하려고 하는 메커니즘을 운영하고 싶다고 하는 것입니다.

중국의 대응 전략과 신형 국제 관계

그럼 시진핑은 그냥 있냐? 시진핑은 시진핑 나름으로 자신이 외교, 경제, 기술, 규범, 안보 이런 차원에서 대응 전략들을 지난 10여 년 동안 계속 추진해 온 것은 명백합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미중이 5대 5라고 판단하는 것도 위험한 판단이고, 그렇다고 미중 게임은 원사이드 게임이냐 이렇게 판단하는 것도 굉장히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한계 내에서 아마 적절하게 대응을 해야 되는데, 미중은 스스로 그것을 정확히 알기 때문에 아까

얘기했듯이 하고 있는 방식도 아까 말해서 2050년까지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일례를 들어서 외교에 사용되는 말로는 '신형 국제 관계'를 자신들은 추구합니다. 그런데 '신형 대국 관계'라고 하는 말은 여기 보면 '불충돌, 불대항' 이건 미국하고 얘기합니다. 충돌라고 하는 대항할 생각은 없다. 상호 존중하자, 합작 공영. 합작이란 말은 이제 우리말로는 협력, 공용을 위해서 서로 윈윈하자고 하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걱정할 게 없지 않냐? 아직까지는 중국이 로키로 나갔는데, 뭐 걱정할 것이 없지 않냐?

그런데 중국의 국제적 국제 관계는 대국 관계와 주변 관계로 나누어서, 주변 관계에서 국가 핵심 이익을 건드리는 경우에는 일정한 경우는 유소불이할 수 있다. 일정한 경우에서는 경우에 따라서 군사력을 활용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어떤 경우에 그렇다는 얘기냐? 핵 중국이 생각하는 핵심 이익은 저기 쓰여져 있듯이 국내 안보, 국제 안보, 그리고 경제 사회적인 안보 이것을 직접적으로 건드린 경우에는 그냥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다. 그중에 뭐 대표적인 것이 이제 뭐 인태로 들어오면은 대만 문제고, 남중국해 문제고, 뭐 동중국해 문제고, 한반도 문제 같은 부분이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중에 이제 제일 첨예화되어 있는 것은 대만 문제에 걸려 있는 것이고, 경제적으로 한계 안에서 그 글로벌 사우나 이런 데를 향해서 일대일로나 이런 것에 작은 것에 그럼 언론 생각하면은 트럼프는 이런 그 동맹이나 이 그동안의 파트너 국가들에 대해서도 관세를 올리고 뭐 이런 방식으로 해서 골탕을 먹이고 있는 것 같이 보이는데, 중국은 일대일로 도와준다

중국이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미국이 잃고 있는 것을 중국이 모두 가져가고 있는지도 별개의 문제입니다. 최근 글로벌 여론조사를 보면 두 나라 모두 인기가 없습니다. 트럼프의 인기도 떨어지고 있고 시진핑의 인기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딥러닝 기술 분야에 주목해야 하는데, LLM 모델 같은 경우 중국이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AI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다고 판단됩니다. 중국은 즉시 무릎 꿇는 것이 아니라, 자체 기술과 미국이 둘러싸려는 것을 우회하는 방식을 활용하여 돌파구를 찾으려 노력할 것입니다. 딥러닝은 매우 중요한 작은 성공 사례가 될 수 있으며, 이 부분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현재 관세 협상도 중국은 결과적으로 90일 연장하고 협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EU와 일본, 한국 등이 합쳐서 15% 관세가 아닌 더 낮은 관세를 요구하지만, 현실적으로 단기적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서 세 가지 프레임에서 이야기했듯이, 미중 간의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국가 건설은 가성비를 최대화하는 싸움일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강조하지만, 전체적인 테이블에서 보면 여전히 비중은 7대 3 정도입니다. 시간이 없어 길게 말할 수 없지만, 대통령이 가서 트럼프와 직접 부딪히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북핵 문제에 대해 국내에서는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거나, 북한의 전술핵을 다시 가져오자는 등 여러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지만 이는 모두 낭만적인 주장입니다. 최대한 활용하되, 핵을 빌려다가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활용하려 한다면, 부분적으로라도 절대 안 됩니다. 유럽 국가들의 계산 방식으로는 결국 미국이 장기적으로 총체적인 이득을 보기 어렵습니다. 즉, 앞으로 벌고 뒤로 마이너스될 위험성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으려면 이미 트럼프는 돈을 나눠주겠다는 것입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월 600달러씩 지급하는 방식으로 실업 증가와 물가 상승에 대응하려 합니다. 결국 이러한 방식은 한계 안에서 적절한 상황 조절 노력을 시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정 국가에 의해 퍼블릭과 프라이빗의 균형을 조절하려면 매우 복잡한 메커니즘이 필요합니다.

BTS 현상 분석과 21세기 젊은 세대

매번 트럼프 같은 대통령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기분에 따라 정책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없으므로 건너뛰고 마지막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왜 갑자기 BTS 이야기가 나오는지 의아할 수 있습니다. 복합기를 이야기하면서 3, 4년 전 이해찬 대표가 BTS가 왜 국내보다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는지 공부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사회과학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저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저는 평생 노래를 부르지 않았기에 잘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BTS 가사 약 200개를 읽어보았습니다. 가사뿐만 아니라 가락, 춤이 조화를 이루어 아미를 비롯한 전 세계 팬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접속자 수만 해도 7, 8천만 명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200개의 곡 중 두 곡을 골랐는데, 하나는 '페이크 러브'이고 다른 하나는 '마이크로 코스모스'입니다. '페이크 러브'는 이미 유명하지만, '마이크로 코스모스'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분석해야 하므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일곱 멤버들의 인터뷰나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특히 RM은 자신이 부른 노래 중 '페이크 러브'가 가장 중요했다고 말합니다. 해석은 조금 다르지만, 저는 이 노래가 가짜 사랑과 진짜 사랑의 경계에서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살아가는 삶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노래한다고 해석했습니다. 반면 아미는 인터뷰에서 이 노래가 자신의 삶에서 또 다른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마이크로 코스모스'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루소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이 자기애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있습니다.

명품, 외제차, 고급 의류 등을 사랑하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페이크 러브'는 이러한 차이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 코스모스'는 루소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 존재가 살아남기 위해 개인에 대한 사랑과 타자와의 관계에서 오는 연대, 즉 진정한 사랑의 궁극적인 결합이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기본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마이크로 코스모스'는 진정한 사랑으로 나아가자고 말하며, 동시에 70억 인구가 가진 각자의 촛불이 모여 큰 빛을 발할 때 무언가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개인과 전체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노래하고 있습니다. 가사 자체로도 그들이 얼마나 절실하게 느끼고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격변기 한국의 현실 인식

21세기 지구의 젊은 세대들이 개인과 전체 사이에서 방황하는 속에서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내용을 읽어보라고 권했지만, 주관적으로는 우리가 격변 속에 있다는 긴박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수고했습니다.

■ 하영선_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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