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논평] 북·러 관계 강화와 중국: 지정학적 시각에서
편집자 주
전재우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북러관계 강화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미중, 중러, 북한과의 관계라는 세 층위에서 분석합니다. 전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북러 협력을 냉전적 진영화 촉진으로 우려하는 반면, 북러는 북중러 관계에서 중국 우위를 견제하려는 전략적 계산을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북한은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전략적 공간 확대를 시도하지만, 중국의 우위와 북한 핵무장이 초래한 현재의 지정학적 환경은 과거와 질적으로 달라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평가합니다. 이에 한국은 정세 변화를 정밀히 읽고, 주요국과의 소통을 강화해 한반도가 강대국 경쟁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외교적 균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YouTube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DRGHu6fLPk8
영상 스크립트
북러 관계 강화와 중국의 지정학적 시각
오늘 북중러 관계와 관련하여 지혜를 모을 수 있는 자리에 참여하게 되어 대단히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말씀 주신 바와 같이 '북러 관계 강화와 중국 지정학적 시각'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총 다섯 개 파트로 구성된 글이며, 첫 번째 파트에서는 북러 밀착에 대한 중국의 반응을 정리했습니다. 여러 공식적인 발언들을 종합하고, 전직 관료나 일각에서 나오는 1.5 트랙 혹은 트랙에서의 발언들, 그리고 주요 언론 매체들의 보도를 종합해 보았습니다. 현재 중국은 북러 관계가 영내 진영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인식하며, 원론적이고 다소 거리를 두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북러 협력의 역사적 사례를 정리했습니다. 총 세 차례의 역사적 사례가 있었는데요, 첫 번째 시기는 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1956년 소위 종파 사건 때까지입니다. 소련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시기는 세력권 관리 및 세력 팽창의 교두보로서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를 인정할 수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북한의 관점에서도 정부 수립 및 한국 전쟁 이후 복구 과정에서 소련의 지원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습니다. 하지만 1956년 소위 종파 사건을 기점으로 당시에 중국과 러시아의 이해는 일치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와중에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권력을 장악하고 주체성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북러 간의 밀착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웠습니다. 두 번째 시기는 1960년대 중소 분쟁과 베트남 전쟁이 중첩된 시기입니다. 이 두 사건은 긴밀하게 상호 연계되어 있습니다.
1960년대 흐루쇼프는 중국을 다시 자국의 영향력하에 두기 위해 호치민의 남베트남 침공을 지원하는 전략을 추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의 주변국, 특히 베트남, 인도, 북한 등과 관계를 강화하면서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습니다. 이 시기에, 나중에 제가 마지막 부분에서 러시아의 대북 무기 지원 가능성에 대한 전망을 할 때 다시 언급하겠지만, 당시 첨단 무기였던 미그-21기가 소련에 의해 북한에 제공되었습니다. 이렇게 첨단 무기를 제공한 이면에는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가 중국의 수도 베이징과 인접하여 중국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전략적 차원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이 소련과 협력한 이유는 중국이 베트남 지원에 대해 보였던 태도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실 마오쩌둥 입장에서는
중국 바로 아래에 커다란 통일 국가가 등장하는 것이 중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고, 그래서 지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또한 소련의 지원은 필연적으로 중국을 관통할 수밖에 없는데, 이럴 때 중국은 공산주의를 지원해야 한다는 명분과 소련이 자국의 민감한 시설 및 사람들을 노출시킬 수도 있다는 위험이라는 두 가지 딜레마에 노출되었습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원인으로 중국이 베트남 지원에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었는데, 북한의 관점에서는 한반도 유사시 중국이 또한 저런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다는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입장에서는 소련과의 밀착을 택하게 되는 전략적 고려를 하게 된 동기가 작용했습니다.
북러 협력의 역사적 사례와 시사점
마지막 세 번째 시기는 레이건 미국 행정부 시기입니다. 이 시기, 특히 1983년부터 1986년까지 미국은 SDI 등 본격적인 대소련 봉쇄 정책을 추진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소련은 자신의 세력권 관리 차원에서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기에 북한은 미그-23기, 수호이-25기, 미그-29기 같은 항공기를 제공받았고, 북한은 자신의 영공을 개방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역사적 사례를 살펴본 후, 현재 이러한 역사적 사례가 현재 북러 밀착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는지 검토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말씀드렸던 첫 번째와 세 번째 사례는 현재 시점에 적용하기 어려운 본질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가 과거 소련처럼 북한을 세력 팽창의 교두보로 삼을 맥락이라고 보기 어렵고, 미국의 주요 초점이 중국에
맞춰져 있다는 점을 봤을 때 첫 번째와 세 번째 사례는 현재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사례의 경우, 명목적으로 중러 우호적인 관계를 표방하면서도 밑으로는 연성 경쟁부터 심한 갈등 단계까지 발전을 했던 1960년대의 모습을 봤을 때, 특히 러시아가 대중국 지렛대를 확보하기 위해 주변국과의 관계를 강화한다는 맥락에서 현시점의 북러 밀착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따라서 두 번째 사례가 본질적으로 현재에 적용 가능한 경우가 되겠다 하여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았습니다.
중러 관계의 비대칭성과 북한의 전략적 공간
이러한 상황에서 또 하나의 변수는 현재 중러 관계를 봐야 합니다. 중러 관계는 표면적으로 전례 없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2010년대 초부터 정치, 외교, 경제, 군사 모든 부분에서 상호 연계성이 지속 심화되고 있으며, 특히 러시아가 2014년부터 식량 수출국으로 변모하면서 빠르게 중국의 식량 공급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 강화와 실질적 강화에도 불구하고 중러 양국 간에는 중국의 전략적 우위라는 비대칭성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러우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동시베리아 지역에서의 러시아의 전략적 공백에 대한 우려가 매우 커지고 있는 시점입니다.
이전에는 러시아가 동시베리아 지역을 염두에 둘 때 잠재적 협력의 균형자로 한국을 염두에 둔 것이 사실입니다만, 현재 한국에게 그러한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국이기 때문에 대안으로서 북한이 나름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경우, 자체적인 필요에 의한 혹은 자체적으로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핵무장으로 인해 중국의 완충지 성격이 변화했다는 복잡한 논리가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는 중국의 관점에서 볼 때 전통적인 외침의 경로인데, 이러한 외침의 경로가 북한의 자체적인 핵무장으로 인해 완전히 차단된 것입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중국이 북한의 급변 사태 방비 이상의 이유로 지원해야 할 동기를 크게 감소시키는 효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또한 북한의 대중국 지렛대가 크게 약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북러 밀착의 정황적 증거와 중국의 반응
결과적으로 요약하자면,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함으로써 강대국 의존도를 낮추고 정권의 안정성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텐데, 역설적으로 전략적 고립과 경제적 의존도가 핵무기로 인해 심화되었고, 중국의 대북 지원 동기는 감소했습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북한 정권의 안정성에 대한 중국 의존도는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이러한 안보 자율성의 비대칭성 또는 장기적인 정권 안정성 차원에서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추구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논리적 혹은 정황적 증거들이 뒷받침되는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총 세 가지 정황적 증거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이번 북러 조약에서 언급된 두만강 하부에서의 교량 신설 계획입니다. 사실 북러 정상회담 한 달 전인 5월에
중러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중국 선박이 두만강 하구를 통해 바다로 항행하는 문제에 대해 북한과 건설적인 대화를 진행할 것이라는 내용을 명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달 개최된 북러 정상회담에서는 이와 관련된 내용 대신, 북한의 국토환경보호상 러시아 운수성이 두만강 국경 자동차 다리 건설 협정에 서명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즉, 기존의 두만강 하구 우정의 다리 외에 자동차 통행이 가능한 추가 다리 건설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두만강 하류로 중국이 출해하겠다는 전략적 목표를 이중으로 차단하는 것으로, 중러 양국이 대중국 지렛대를 강화하려는 의도를 나타낸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실제로 이러한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매우 민감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두만강 하구 지역의 전망대 동쪽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신설했고
도로 곳곳에 의미가 불명확한 다수의 시설을 설치했으며, 전망대에 인접한 곳에 새로운 선박 시설도 구축했습니다. 특히 두만강 하구가 예전부터 북중러 3자 협력의 실질적인 가늠자 역할을 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일련의 조치들이 3자 협력 차원이 아니라 러시아의 선제적 조치와 이해에 대한 즉각적인 중국의 반응이라는 점에서 앞서 말씀드린 구도의 정황적 증거로서 의의를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푸틴의 외교 행보입니다. 6월에 북한과 정상회담을 끝내자마자 베트남을 방문했고, 7월에는 귀국하여 인도의 모디 총리를 불러들이는 등, 이는 전형적으로 1960년대 중국이 주변국과의 관계를 통해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던 시기와 매우 유사한 외교 패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2024년 2월에 유출된
중국의 북러 밀착에 대한 신중한 태도
러시아의 기밀 문서입니다. 이 기밀 문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는 시간이 부족하므로 핵심적인 의의가 있는 부분만 설명드리자면, 러시아가 2001년 중국과 맺은 핵 선제 불사용 협약에도 불구하고 핵 작전까지 염두에 둔 중국의 침공에 대한 대비 시나리오 및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동시베리아의 전략적 공백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정황적 증거를 종합해 볼 때, 북러 밀착은 대중국 지렛대 강화라는 성격이 분명히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은 이러한 북러 밀착에 대해 왜 짐짓 원론적이고 거리두기를 하는 듯한 입장만 반복하는 것일까요? 당연히 중국도 북러 간의 밀착이 역사적 사례와 현재 정황을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불쾌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영내 진영화를 추동하고
서방에서 미국 중심의 강제하는 중국 역할론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더 큰 그림에서 볼 때, 미국 세력의 주도권 약화 혹은 미국 반대 세력의 질서 부상 등을 반영할 수 있기 때문에, 북러 관계를 훼손하면서까지 저지할 동기는 상쇄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북한은 단순히 러시아와의 관계를 통해 이중 전략 구도 내에서 전략적 공간을 창출하는 것 외에,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도 전략적 공간을 창출하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의 이중 전략과 국제 질서 편입 노력
그러나 이것이 실질적인 결실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네 번째 부분인 북중 관계 전망에서는 현재 북한이 추구하는 이러한 이중의 전략적 공간 창출 노력이 과거에는 어느 정도 성공한 사례가 있지만, 특히 중러 간의 연성 경쟁을 활용하여 등거리 외교를 펼쳤던 1961년 양자 및 동맹 체결 사례와 같이 어느 정도 성공한 사례가 있지만, 현재는 안보 환경이 그때와는 매우 다르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현재 북한의 이러한 움직임이 경제적 차원의 결정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CSIS의 빅터 차 등이 대표적인 논자입니다. 저는 2014년에 북한과 러시아가 이미 채무 90%를 탕감한 사례가 있고, 나머지 10%에 대해서도 20년에 걸쳐 매 6개월마다 분할 상환하기로 합의한 바 있기 때문에, 물론 경제적 동기도 있지만 그것을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합니다.
러시아의 대북 최첨단 무기 지원 가능성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는 이러한 북한의 움직임은 매우 전략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북한 입장에서도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 대중국 의존도를 결정적으로 완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나아가 국제 질서로의 편입까지 염두에 둔 북한의 이러한 움직임은 그러한 마중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전망 부분에서는 요즘 많이 회자되는 러시아의 대북 최첨단 무기 지원 가능성 여부를 다루었습니다. 저는 현재로서는 지원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며, 총 네 가지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첫 번째는 실제 러시아가 대북 첨단 무기를 지원한 역사적 사례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당시 첨단 무기였던 첨단 항공기들이 지원된 사례는 역사적 사례 중 두 번째와 세 번째 사례에 불과한데, 이 두 사례의 공통점은 모두 러시아가 혹은 당시 소련이 중국이나
미국 등 강대국과 핵 분쟁까지 포함한 바이탈 인터레스트 차원의 위협에 몰렸을 때였다는 것입니다. 이때 세력권 관리 차원에서 지원이 이루어졌는데, 과연 러시아가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불구하고 그런 강대국 간의 바이탈 인터레스트 차원의 위협에 몰려 있는가를 봤을 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러시아가 과거와 같이 세력 팽창의 교두보로서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를 중시하고 있는가 하는 점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미국의 전략적 초점이 현재는 당시 냉전 시기 소련 때와 달리 중국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고,
마지막 네 번째는 러시아의 첨단 무기 판매 사례와 패턴입니다. 예를 들어 인도에는 전략 무기, 특히 전략 잠수함을 판매한 사례가 있는데, 이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고 중국 대중국 전략에 있어서 상호 협력 관계에 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이루어졌습니다. 판매 방식도 거의 10년에 걸친 임대와 공동 운영을 통해 상호 만족 수준에 이르렀을 때 전략 잠수함이 넘어갑니다. 중국에도 잠수함 판매 사례가 있는데, 이 경우에도 디젤 잠수함에 국한되며 핵심인 소음 기술 등은 넘어가지 않습니다.
강대국 정치와 지정학을 고려한 한국의 외교 전략
중국의 S-400 방공 체제가 넘어갔던 것도 2014년에 가능했던 사례인데, 이때도 크림 사태로 안보 환경이 크게 바뀌고 중국과 러시아가 밀착하는 시기로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미 2012년에 러시아가 S-500으로 방공 체계를 넘어갈 군사 계획을 수립했기 때문입니다. 즉, 이러한 재반 고려 사항들이 충족될 때 러시아는 타국에 첨단 무기를 넘긴다는 것입니다.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변화 가능성 등 모든 면을 고려했을 때, 러우 전쟁이 종료되면 군수 물자 등에 대한 수요도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총론적으로 봤을 때, 현재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은 전략적인 결정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정책적 시사점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북한, 중국, 러시아 모두 강대국 정치와 지정학을 최우선 변수로 다루면서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우리나라는 강대국들이 한반도를 얼마나 도구화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깊은지 검토해야 합니다. 또한, 현재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 의의가 과거 냉전 시기 소련의 팽창에 노출되었던 시기와 지금, 즉 중국의 팽창을 염두에 둔 시기는 동에서 서로의 팽창이라는 본질적인 지정학적 의의가 달라졌기 때문에, 이러한 요인들을 최우선 변수로 상정하고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일차적으로 정책적 수준에서 제언을 드리자면, 영내 주변국들과의 소통을 현실화하여 최소한의 연성 균형 상태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상입니다.
최우선 변수로 다루면서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래야 한다고 저는 주장합니다. 과연 우리나라는 강대국들이 한반도를 얼마나 도구화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있는지, 이 지점부터 검토해야 합니다. 현재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 의의는 과거 냉전 시기 소련의 팽창에 노출되었던 때와는 다릅니다. 당시에는 국익에서 나무의 팽창을 염두에 두었다면, 지금 중국의 팽창은 동에서 서로의 팽창입니다. 이러한 본질적인 지정학적 의의가 달라졌기 때문에, 이러한 요인들을 최우선 변수로 상정하고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일차적으로 정책적 수준에서 제언을 드리자면, 영내 주변국들과의 소통을 현실화하여 최소한의 연성 균형 상태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