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기 EAI Academy] ⑧ 미래 속의 젊은 그들: 21세기 한국의 꿈
편집자 주
하영선 EAI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은 21세기 초 중국 경제가 미국을 역전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근래의 예측은 주로 중국이 성장의 정점에 도달했다는 피크 차이나(Peak China) 담론을 제시한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21세기 신문명질서를 형성하는 핵심에 인공지능이 있다고 진단하고, 미중 양국이 인공지능과 군사 기술의 결합에 따른 충돌 가능성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질서의 향방이 좌우될 것이라고 진단합니다. 끝으로 21세기 한국은 기술과 지식의 기반 위에서 경쟁과 공생을 병행하는 복합 연기를 통해 국제 무대의 중심 행위자가 되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YouTube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koY_nLqGBzQ
영상 스크립트
미래 전망과 젊은 세대의 역할
오늘이 마지막 시간입니다.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을 테니, 제가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습니다. 마무리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에게는 미래지만, 여러분에게는 현재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50대나 60대가 되었을 때 어떤 국제정치 속에 살게 될 것인가, 혹은 그것을 바꾸려고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해보겠습니다. 제목을 '미래 속의 젊은 그들'이라고 붙인 것은, 10여 년 전에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이라는 책을 낼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쓴 책들은 대부분 쓰고 싶어서 쓴 것이 아니라, 강연 후에 활자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주변의 권유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역사 속의 젊은 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2~300년 동안 한반도에서 태어나 살다 간 사람들 중 주목할 만한 인물들의 젊은 시절에 대한 연속 강연을 제안받았고, 여덟 명을
뽑아 강의했습니다. 당시 제목이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이었습니다. 시대별로 보면 다산 정약용보다 조금 뒤인 박지원, 정약용, 박규수, 김양수, 안재홍 등이었습니다. 아, 이승만도 빠졌군요. 마지막에 복합파도 넣어야 합니다. 당시 제 얼굴을 대신 넣었는데, 이렇게 여덟 명의 젊은 시절의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고 기대했는지, 결과적으로 그들이 기대했던 미래 속에 어떤 현실을 맞이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하는 이야기는 여러분이 바라보는 미래, 그것이 30년 후든 50년 후든 그때 나는 세상을 잘못 알았어, 그렇게 알았더라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 혹은 예측대로 세상이 바뀌었고 그에 따라 준비했기 때문에 미래의 주인공이 되었어, 라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매우 중요한 상상이자 결심의 내용이 될 수 있습니다. 빠르면 21세기 중반, 즉 2050년에서
국제정치 패러다임의 변화와 복합 질서
2060년 사이의 세상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 그 속에서 제가 소속된 한반도는 어디로 향하게 될 것인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마지막 질문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다가오는 미래를 전망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미래 속의 젊은 그들'이나 '사랑의 세계 정치'를 본 사람은 저 그림을 보면 금방 알 것입니다. 10년 전쯤, 2013년 여름에 영국 런던에 머물 일이 있었습니다. 하이드 파크는 런던의 대표적인 공원입니다. 하이드 파크 뒤편에는 '폰타인 갤러리'라는 작은 갤러리가 있고, 현대 미술관으로 연결된 '서파인 갤러리'가 있습니다.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매년 전 세계에서 미래가 촉망되는 건축가 한 명을 선정하여 상을 주는 것 때문입니다. 상금 대신 갤러리 앞에 자신이 생각하는 작품을 마음대로 짓도록 합니다. 매년 선정하기 때문에 보통 6월에 지으면 11월쯤 철거됩니다. 수상자는 보통 40대이며, 나중에 50~60대가 되면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상을 받는 순서가 됩니다. 2013년에 솔직히 몰랐지만, 저 건물을 보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냉전 시대가 바뀐 국제정치에서 세계 질서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인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세계 질서가 단순히 탈냉전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문명사적 새로운 변환이 다가오는 속에서 복합 질서라고 하는 새로운 질서의 모습으로, 단순 국제정치에서 복합 국제정치로 가지 않겠냐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약 15년쯤 지났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했죠. 여러분들이
제가 썼던 글들을 보면 '늑대와 거미', '다보탑 쌓기' 같은 이야기들을 많이 했는데, 15년 동안 그런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이야기냐, 세계 질서가 어떻게 된다는 이야기냐, 들어도 모르겠다는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저 건축물을 보고 무릎을 쳤던 것은,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국제정치가 이렇게 된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굉장히 부러웠던 것은, 저 상을 받았던 사람, 후지모토 소스케는 일본의 가장 촉망받는 40대 건축가였습니다. 현재도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며 여러 상을 받고 있습니다. 소스케는 건축 자체를 21세기의 새로운 건축의 모양으로 저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매우 흥미로워서 그가 쓴 책도 들여다봤더니, 그가 하는 이야기는 이런 것입니다. 미래를 내다보면서 건축물도 그렇게 지으려고 하는데,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은 '숲'이라고 합니다. 숲의 건축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왜 숲이 좋으냐 하면,
숲에 가면 제대로 된 울창한 숲 속에는 고목뿐만 아니라 작은 나무, 이끼, 생명체가 없는 돌 등 모든 것이 자기 나름의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불만도 없고 상대적으로 갈등도 없어 보이는 숲처럼, 건축도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 재미있는 사람이구나 싶어서 도쿄에 가서도 그가 지은 건축물들을 많이 찾아다녔습니다. 국제정치학을 꼭 국제정치 교과서를 보아서 배우는 것은 아마 착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 국제정치를 전망하고 상상하는 데는 오히려 그런 것이 도움이 됩니다. 국제정치학을 한다는 사람들은 사실 상상력 면에서는 대단한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수준으로 보면 2류, 3류 예술을 했으면 무명이었을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후지모토 소스케가 도쿄에 지은 아파트가 있는데, 우리 아파트와는 다릅니다. 우리가 사는 수십억 원짜리 아파트들은 전통적인 건축 방식이 아닙니다. 서양의 아파트가 우리에게 전해진 것은 1970년대 이후입니다.
단극, 다극, 무극 국제정치 논쟁
그런데 보면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습니까. 후지모토는 모든 아파트 거주자들이 행복하게 느끼려면 이렇게 지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찌그러뜨려 복잡하게 지어서, 누구나 작은 평수든 큰 평수든 자신이 중심이 되는 아파트로 바꾸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려는 이야기도 그런 답답하고 심심한 국제정치학을 풀어서 다시 이야기해보자는 것입니다. 갑자기 그렇게 하면 여러분들이 당황할 것 같아서, 처음에 제가 써보라고 했던 것에 '21세기 여러분들이 살 국제정치가 다극 국제정치일 것 같으냐, 단극 국제정치일 것 같으냐'라는 질문에 대한 소감을 써보라는 것이 첫 번째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질문 자체가 매우 순진하고 상상력이 결여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극 국제정치 학자나 실전에 임하는 정치가들의 상상력이 뛰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비극적인 논쟁은 계속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50~60대가 되었을 때, 만약 단극 질서 형태로 특정 국가가 세계 질서의 중심이 되는 것과 다극화되는 것, 혹은 무극 질서가 되는 것 중 어느 것이 나라와 나에게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유엔 사무총장도 아니고, 대통령도 아니며,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관계는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매우 강하게 다극 질서로 간다고 주장하고 믿는 나라는 중국, 러시아, 북한, 그리고 글로벌 사우스의 일부 국가들입니다. 만약 유니폴라 모먼트가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 언어적인 차원만 봐도, 세계 질서의 주도국이
중국이 되면 영어는 대강 다 하겠지만, 중국어 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으니 매우 난감할 것입니다. 미국이 세계 질서의 중심이 있지 않고 중국이 중심이 된다면 반대로 나는 결심하고 다극화로 갈 것이기 때문에, 중국어 공부에 영어 공부 시간만큼 투자하겠다고 판단해서 맞으면 대박이 나는 것이고, 안 맞으면 개인적으로 여러 부작용을 낳을 것입니다. 나라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어떤 미래를 전망하고 외교 정책을 추구할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미국적인 질문입니다. 니스와 포스는 최근 20년 동안 계속 이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아직 다극화로 가기에는 너무 노익장이라는 주장을 강하게 해왔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논리는 '다극화'라는 말 자체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폴라, 멀티가 되려면 '투'가
있어야 하는데, 기껏 있어 봤자 미중밖에 없는데 무슨 다극화냐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중국을 인정해서 양극 체제를 인정하고 그에 따라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하겠느냐는 것도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미국은 부분적 일극 체제(partial unipolar)를 유지하며 세계 질서를 짜 나가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고, 나머지 국가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R Times For 니은 그렇지 않게 전망하고, 만약 투 국제정치를 살아나가는 경우에는 그야말로 러프 타임즈를 맞이할 것이라고 나라 차원에서 이야기하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면 상당히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러프 타임을 각오하고 살아야 할 것인가, 혹은 브루스 앤 포스의 전망은 국제정치적으로 설득력이 있는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 아티클이 나가고 나서 여러 사람들이
찬성, 반대 논쟁을 벌였고, 그중 의미 있는 몇 개의 글을 실었습니다. '미국의 종말'이라는 이야기는 힘의 유무를 따지는데, 니스와 포스는 힘을 군사력, 경제력, 기술력 정도로 측정합니다. 아직 편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부분적 일극 체제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19세기부터 서구 근대 국제정치사를 되돌아봐도 힘의 배분 형태가 거의 대등할 때만 극 역할을 한 것은 아닙니다. 힘의 격차가 웬만큼 있어도 상당한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미국이 압도적인 여전히 상처 난 부분적 일극 체제를 쓸 수 있겠느냐는 문제 제기를 한 것입니다. 메리 스턴은 프린스턴 출신이고 국무부 정책기획실장도 역임한 여성 국제정치학자인데, 앞으로 다가올 세계 정치를 바라보는 데 있어 우리가 이런
논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미국이 미래의 일극 체제가 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행위자도 많이 바뀌어서 국가뿐만 아니라 대기업, 시민 사회 등 여러 행위자들이 등장하고, 부딪히는 이슈 자체도 세계 기준만으로 재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행위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텐데, 저 프레임워크가 너무 구닥다리 아니냐는 반론이 제기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아마 기억에 싱가포르 외교관 출신이기 때문에 물질적인 기반만으로 국제정치를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물질적 기반 위에 심리적 영향력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중요한 힘인데, 물론 두 가지 모두 문제가 있습니다. 비물질적인 힘만으로 생각하면 북한은 경제력이 거의 없지만, 우리는 미제국주의와 일대일로 싸우겠다고 주장합니다. 아무도 믿지 않고 객관적으로도 어렵습니다. 그러면 물리력을 강조할 것인가, 심리를 동시에 고려할 것인가?
물리적인 기반으로만 계산하는 쪽에서는 이쪽도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따라서 21세기 중반이나 말의 힘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 비슷한 이야기인데, 국제정치학을 배운 사람들은 K. J. 홀스티 같은 자유주의적 제도주의를 강조하는 사람들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국제정치를 좀 더 복잡하게 보려고 하며, 군사력, 물리력뿐만 아니라 리더십 같은 요소까지 포함해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질서도 복잡하게 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누구 말을 믿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질문이 잘 성립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왜 물어봤냐 하면, 어떻게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입니다. 우선 써준 사람들에게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다만 조금 더, 아까 '역사 속의 젊은
21세기 국제정치 지표: GDP와 군사력
그들'처럼 조금 더 과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 더 젊은 사고가 필요합니다. 너무 틀에 짜인 질문이기 때문에 기성세대들이 그렇게 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새로운 세대로서 대기업 직원이 아니라 스타트업을 하는 입장에서 문제를 치고 나갈 수 있는 용기, 매력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나 하는 개인적인 느낌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쓰면 떨어지겠죠. 채점하는 사람들이 다 늙은이들이라 익숙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라나 개인이 진취적으로 나아가는 입장에서는 새롭게 문제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논쟁하는 수준은 크게 보면 세 가지 프레임워크를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참고 삼아 공부도 될 것 같아서 최근 데이터를 다시 띄었습니다. 첫 번째, 이 사람들이 중시하는 것은 GDP입니다. 글로벌 GDP 추계를 보면 2023년
기준 미국은 27조 달러, 중국은 19조 달러입니다. 나머지는 4조에서 2조 정도이며, 11위, 12위, 13위 정도에 한국이 1조 7천억~1조 8천억 달러 정도 있습니다. 한두 가지 지적을 하면, 여러분이 미래를 내다볼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전체를 알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통계를 볼 때 글로벌 통계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글로벌 G7 국가가 된다'고 해도 글로벌 경제 규모가 얼마인지 물어보면 머릿속에 잘 입력되지 않습니다. 글로벌 경제 규모는 약 100조 달러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미국이 약 26~27% 정도 되는 것이겠죠. 생각보다 중국이 많이 따라왔습니다. 19조 달러면 많이 따라온 것입니다. 좀 과장되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따라서 우선 그런 것을 머릿속에 입력하고 미래 국제정치를 내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수와 진보, 혹은 좌와 우라고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상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제가 볼 때는 50년 내지 100년 전의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보수다, 진보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좀 앞을 보고 21세기의 보수화 진보가 되라고 말하는 이유는, 요즘 여야 지도자들을 보면 주변 사강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주변 사강은 없습니다. 지금 보면 러시아는 GDP 12위 안에도 못 들어옵니다. 우리보다 조금 큽니다. GDP로 보면 우리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주변에 4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중국은 어느 정도 맞습니다. 일본만 해도 4조 달러 정도인데,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과 같습니다. 따라서 주변 4강 대 분단 한국이라는 고정관념으로 공간 개념을 갖고 50년 후를 상상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입니다. 그런데 어려운 것은, 머릿속에 입력해야 할 것은 미중이 상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2050년 미중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이냐. 아, 나는 옛날 사람처럼 생각하지 않고 미중이 경쟁하는 속에 한반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래도 상당히 선진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수준으로는 21세기를 앞서가기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가장 큰 논쟁 중 하나가 중국을 어떻게 평가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까 26조 대 19조라고 나왔는데, 중국 평가에 대한 매우 복잡한 논의들이 있습니다. E 프로젝트에서도 2050년 미중 관계 전망에 대해 고심했는데, 대부분의 데이터를 보면 중국이 2050년에 미국을 앞선다는 데이터들이
3년 전까지 우세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결국 어떻게 생각했냐면, 중국이 2050년까지 잘하면 거의 근사할지는 모르지만 미국을 못 넘어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1~2년 사이의 논의는 '피크 차이나 론'으로 가고 있습니다. 중국이 올 때 커버들을 해주셨겠지만, 요즘 와서 미중이 2050년에 5대 5가 된다면, '아, 공부 안 했구나'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최근 2~3년 동안 그런 소리를 듣게 되죠. 그럼 향후 30년 후에는 어떤 소리를 듣게 될 것인가, 그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코노미스트가 처음 '피크 차이나'를 언급하면서 2050년에 87% 정도 따라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미국을 중국이 말입니다. 그러면서 예로 든 것이 2011년, 21년, 22년을 보니까
미국이 27조 달러, 중국이 19조 달러입니다. 나머지 국가들은 4조에서 2조 정도이며, 11위, 12위, 13위 정도에 한국이 1조 7천억~1조 8천억 달러 정도 있습니다. 한두 가지 지적을 하면, 여러분이 미래를 내다볼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전체를 알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통계를 볼 때 글로벌 통계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글로벌 G7 국가가 된다'고 해도 글로벌 경제 규모가 얼마인지 물어보면 머릿속에 잘 입력되지 않습니다. 글로벌 경제 규모는 약 100조 달러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미국이 약 26~27% 정도 되는 것이겠죠. 생각보다 중국이 많이 따라왔습니다. 19조 달러면 많이 따라온 것입니다. 좀 과장되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따라서 우선 그런 것을 머릿속에 입력하고 미래 국제정치를 내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수와 진보, 혹은 좌와 우라고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상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제가 볼 때는 50년 내지 100년 전의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보수다, 진보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군사비 지출과 힘의 재분배
처음에는 2026년이면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2030년, 2035년, 2041년 등의 예측이 나왔다가 결국 따라잡기 어렵다는 결론으로 바뀌었습니다. 다음은 군사비 지출입니다. 미래의 힘의 구성 요소를 왜 경제와 군사력으로 측정하는가 하는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시다시피 19세기 중반까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중반까지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예(禮)의 기준으로 나누었습니다. 동방 예의지국은 선진국으로, 예의가 없는 나라는 상종할 수 없는 오랑캐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부국강병을 내세운 서구 세력이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밀어닥치자, 단기적으로는 패배했습니다. 즉, 서구의 지표가 승리한 것입니다. 이것이 150년간 영원히 지속될지는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조금 더 논의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군사력을 보면, 세계 총 GDP 대비 군사비 지출을 경제 전문가나 군사 전문가에게 물어보면, 1년에 세계 군사비가 얼마나 쓰이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정치학자도 5% 이상 맞추기 어려울 것입니다.
세계 군사비 지출 비율이 몇 퍼센트 정도 될 것 같습니까? 작년 세계 군사비는 대략 2조 4천억 달러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 수치를 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아파트 가격은 알아야 하지만, 2조 4천억 달러의 군사비 지출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군대를 갈지 안 갈지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러나 국제정치 전체를 이해하는 데는 의미가 있습니다. GDP를 알면 왜 안 되느냐는 질문에 대해, 비율이 다름을 명확히 보여주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미국은 대체로 9천억 달러 이상을 지출하며, 중국은 2,900억 달러입니다. 경제력은 약 80% 차이가 나지만, 군사비 지출은 약 3배 차이입니다.
시진핑 주석이 이를 모르고 국제정치를 하겠습니까? 주변 강대국들을 모두 적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3대 1 정도의 격차는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어디까지 게임을 해야 하고,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에 대한 마지막 보루는 군사비로 측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러시아의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군사비 지출이 1천억 달러 규모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는 한국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한국이 러시아와 일대일로 싸운다면 이길 수 있을까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군사력으로도 저렇게 싸우고 있습니다. 물론 실제 평가에서는 조금 더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겠지만, 따라서 이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세계를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사람과 주변 강대국을 단순히 외워서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다를 것입니다. 21세기가 어떻게 될 것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지표를 가지고 어떤
판도를 그릴 것인가를 머릿속에 그리는 사람이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작년은 일본 입장에서 여러모로 충격적인 해였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과 같아졌기 때문입니다. 식민지 국가로 여겼던 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에서 동등해졌다는 것은 일본에게 매우 복잡한 문제입니다. 더 복잡한 것은 작년에 한국의 군사비 지출이 일본을 추월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마 더 참기 어려운 부분일 것입니다. 요즘 한일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친일이냐 반일이냐, 창가가를 불러야 하느냐 애국가를 불러야 하느냐를 두고 싸우지만, 만약 한국의 군사비와 일본의 군사비, 또는 GDP와 인구가 2대 1 또는 3대 1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현재 인구는 2대 1이지만, 총 GDP는 일본이 2조 달러 이상으로 더 많습니다. 만약 3대 1이 된다면, 한국이 일본에게 반성을 요구하는 시대는 지날 것입니다.
기술력과 지식 질서의 중요성
일본이 스스로 반성하겠다고 나서고, 우리는 그만해도 된다고 말할 것입니다. 반성을 계속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말의 힘보다는 이러한 데이터가 훨씬 중요합니다. 블루스와 포스는 여기에 기술력을 추가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질서의 핵심 구성 요소는 군사력, 경제력, 그리고 기술력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받아들이기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기술력을 측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방식을 시도하고 있는데, 매년 발표되는 AI 인덱스 리포트에서는 머신러닝 모델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내는지를 측정 지표로 사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이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특정 연도를 2023년으로 잡은 것은 생성형 AI가 공개된 직후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은 머신러닝에서 딥러닝으로 넘어가는 시점이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격차는 61대 15로, 상당한 편차가 있습니다. 이를 추정해보면 2003년부터 중국이 61대 15까지 많이 따라왔습니다. 중국의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요즘 머신러닝이 세상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딥러닝 모델이 판도를 주도하고 있다면, 그 격차는 더 줄어들고 있을까요? 최근 2~3년의 추세를 보면 미국이 여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참고 자료일 뿐입니다. 군사력과 경제력이 있는 경우, 기술력은 강대국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21세기 기술의 중요성은 기술이 생산해내는 지식을 누가 가지느냐에 달려 있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에, 세계 지식 질서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세계 싱크탱크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가장 강력한 싱크탱크가 어디인지 물어본 것입니다.
2018년 데이터만 있는 이유는, 매년 데이터를 생산하던 팀의 소장이 2018년과 2019년에 사망한 후 유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데이터가 조금 오래되었지만, 20개의 싱크탱크를 보면 여전히 미국이 12개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브루킹스 연구소,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등입니다. 편차도 매우 큽니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연간 예산이 1억 달러이고 직원이 1,000명입니다. 이는 150분의 1에 불과합니다.
복합 질서와 K-복합 국가
절망적인 부분도 있지만, 뒤에서 더 생각해 보겠지만 그렇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 문제를 가지고 브루킹스 연구소와 CSIS를 비교해 봅시다. 특히 이런 시대에는 그들이 사용하는 빅데이터 처리 방식이나 우리가 핵심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AI 시대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슷해집니다. 따라서 물질적인 숫자만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틀은 머릿속에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절망할 필요도 없지만, 지나치게 자만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마 이것이 적절한 균형일 것입니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여러분이 사는 세계에서 어떤 지표를 사용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미국 논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젊음을 자랑하는 상상력을 보여주는 미래 전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1세기 신문명 질서와 AI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보시다시피 그 앞에
미국 논쟁이라고 하는 것은 두 번째 칸에 해당하는 사고를 대표합니다. 근대라는 역사적 시기는 서양에서는 대체로 15~16세기이고, 우리는 15~16세기에 본격적인 경험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일부 지식인들이 중국으로 갔지만, 우리가 본격적으로 느낀 것은 19세기입니다. 다음은 복합 질서인데, 이는 일정 부분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사람들은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스(Age of Empires)'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바뀌는 것 같습니다. '에이지 오브 심플리시티(Age of Simplicity)'에서 '복합성(Complexity)'으로 가는 것입니다. 한 상자를 다 설명하려면 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주인공, 무대, 연기, 제도 등 모든 면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마지막 복합 단계에서는 그러한 변화를 상정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지표로 사용한 것은 안보와 번영, 그리고 그 밑에 기술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살고 있는 시대에는 이것보다 훨씬 복잡한 복합 시대가 올 것입니다. 개인은 근대인 대신 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결국 무대의 중심이 되거나, 혼자 쓰지 않고 여러 사람이 모여 복합적인 주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기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개의 다보탑이 있는데, 미안하지만 다보탑을 빌려 글씨를 넣었습니다. 기술에서 출발한 정보와 지식이 21세기에는 소위
21세기 지식 기반 사회와 공치(共治)
기반이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늘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처음 태어나 모든 것을 결정했던 것은 종교였습니다. 모르는 것은 무조건 종교에 의지했습니다. 부처님, 하나님, 알라신 등 말입니다. 일정 시기가 지나면서 정치가 기반이 되었습니다. 19세기에는 경제가 세계 질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마르크스와 같은 사람들은 세계를 자본의 논리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인류 역사에 영원히 맞았던 것이 아니라, 19세기 자본주의 발달과 산업 혁명을 통해 정점에 달하면서 나머지 무대들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200년이 지나면서 그 기반이 약해지고, 기술을 기반으로 한 지식 질서가 나머지 영역들을 윤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술이 안보에 통합되면서
상당한 변화를 겪게 하고 있으며, 경제 질서, 문화 질서, 생태 질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는 '공치(共治)'는 영어 표현 '거버넌스(governance)'를 번역한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거버넌스라는 말을 번역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의 사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번역해야 합니다. 국내에서는 '협치'라는 단어를 쓰는데, 협치는 한자 뜻으로 보면 '힘 력(力)' 세 개가 들어간 '협(協)'입니다. 거버넌스는 단순히 힘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성의 근거까지 포함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용했던 단어 중 '공치'가 가장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를 측정하려면 복합성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적어도 여섯 가지 힘을 어떻게 응집하느냐에 따라 국가, 세력, 또는 개인이 더 주목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글로벌 파워의 흥망성쇠와 AI의 부상
문제는 우리가 지금 겪는 것이 이 모습의 마지막 칸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폴 케네디의 '글로벌 파워의 흥망성쇠'에 따르면, 지난 500~600년간 세계 질서를 주도한 국가는 대체로 100년마다 바뀌었습니다. 포르투갈에서 시작하여 17세기에는 네덜란드가 100년간 풍미했고, 영국이 두 번의 사이클을 장악한 후 미국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미국의 사이클은 1945년부터 시작되었는데, 100년 주기를 다시 짜보면
대략 25년씩 4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나서 성장하여 평균 수명 100세라고 할 때, 50세쯤 활동하다가 서서히 노화 현상을 겪으며 70~80대에 세상을 떠납니다. 흥미롭게도 대국도 비슷한 과정을 겪어왔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경우 1945년부터 100년이면 2045년까지인데, 이미 50년이 지났습니다. 100년이면 2045년쯤에는 다른 나라에게 자리를 넘겨줘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4단계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합니다. 왜 갑자기 AI 이야기가 나오느냐 하면, 저 밑에 기술, 정보, 지식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AI에 가장 큰 비중을 두는 표를 가장 많이 획득하고 있는 것이 인공지능 파트이기 때문입니다. 샘플로 하나를 여러분께 읽으라고 드렸는데, 헨리 키신저와 에릭 슈미트가 쓴 책입니다. 키신저는 거의 100세까지 살았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과학기술 국제관계 교수였던 에릭 슈미트와 함께 썼습니다. 아마 이 책이 나온 후 두세 달 뒤에 세상 떠났을 것입니다. 4~5년 전부터 AI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에릭 슈미트와 구글 CEO는 미국이 AI를 주도하지 못하면 결국 패권을 놓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래서 NSC AI라는 700~800페이지 분량의 방대한 보고서를 쓰면서 유명한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AI와 핵의 결합: 인류 문명의 위협
21세기에는 AI를 장악하는 자가 국제 정책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에릭 슈미트가 키신저를 설득했습니다. 키신저는 살아있는 사람 중에 국제정치 이론과 실무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그래서 책을 공저로 냈습니다. AI 국제정치에 대해서 말입니다. 책에서 21세기를 이해하려면 AI 공부 없이는 국제정치를 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죽기 직전에 이 글을 쓴 것은 10월 13일, 바이든과 시진핑이 만나기 며칠 전이었습니다. 바이든과 시진핑은 APEC 정상회담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때 보내는 글이었습니다.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America and China Must Work Together to Avert Catastrophe'라는 제목은 단순한 학술적 아티클이 아니라 시진핑과 바이든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인류의 운명이 너희에게 달려 있으니, 싫더라도 기본적인 합의라도 하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면서 어떤 논의를 하냐면, 많은 사람들이
핵무기 등장이라고 하는 것이 국제정치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고 1945년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키신저는 그 시기를 살았고, 핵은 그의 주전공은 아니었지만, 그가 보기에 핵이 가져온 국제정치의 변화보다 AI가 가져올 변화가 더 클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을 떠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늙은 두 사람이 봉사하라는 메시지를 남기며 과거를 회고합니다. 원자폭탄이 나왔을 때 국제정치를 그렇게 바꿀 줄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바루크 계획'이 1940년에 나왔습니다. 세상이 망하는 것이니 특정 국가가 아닌 공동으로 관리하자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항상 힘을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가 있을 때, 가진 자가 그것을 놓으라고 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루크 계획이 결국 실패했습니다. 실질적인 역사는 그러면 완전히 핵전쟁으로 가느냐, 아니면 핵전쟁을 피하고 제한적인 핵
AI 시대의 핵무기 효율성 변화와 북한 핵 문제
군축이 이루어지느냐의 갈림길에 섭니다. 1972년 SALT, START, New START 등 부분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NPT 같은 것도 퍼져 나갔습니다. 키신저의 주장은 그것보다 더 절실하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합의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절실하다고 말하는가?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중이 하는 이야기를 점프해서 보면 크게 세 가지 문제가 발생할 것 같습니다. 그가 떠나고 여러분이 맞이할 첫 번째는 AI와 핵의 결합입니다. 우리는 핵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핵 시대와 AI가 엉켜 붙으면 매우 복잡해질 것입니다. 얼마나 복잡해질까요? 먼 이야기를 하면 현장감이 없으니 북한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북한은 전형적인 '꼬마 핵 보유국'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큰일 났다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미국과 확장 억제를 통해 막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북한의 가장 잘못된 선택 중 하나는 핵 개발일 것입니다. 특히 AI 시대에는 핵이 가진 효율성이 매우 빠른 속도로 줄어들 것이라고 봅니다. 북한이 핵을 개발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자체 개발해야 하느냐, 미국 것을 빌려와야 하느냐, 아니면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어야 하느냐를 두고 국내에서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는 반세기 전의 현실을 머릿속에 두고 하는 논의입니다. 더구나 지금부터 50년을 내다본다면, 50년 후 사람들이 이 논의를 보면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저렇게 구시대적인 사고 속에서 대응했을까?'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 북한은 명분이 있습니다. 주관적으로 미국의 적대 정책 속에서 생존을 위해 핵을 개발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왜 복잡해졌느냐입니다. AI와 핵의 결합이라는 말은 이런 뜻입니다. AI 발전이 핵 시대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느냐는 것입니다. AI 무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핵은 핵무기를 만들면 핵무기가 됩니다. AI는 기존 무기들의 실효성과 효율성을 엄청나게 확대시키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예를 들어,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작년에 만나 워싱턴 선언을 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남한에 핵을 발사하기로 결심하고 쏘려고 하면, 그것은 동시에 김 위원장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또 한 번의 공갈 외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AI가 결합되면서 과거에 가지고 있던
AI가 가져온 핵무기의 효과는 이전의 예상보다 훨씬 커졌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발사하려는 경우, 한국의 대응 투명성이 AI 도입으로 인해 엄청나게 증대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네가 쏘면 너의 죽음'이라는 단순한 보복 논리가 통했지만, 이제는 북한의 모든 움직임이 AI를 통해 세밀하게 파악됩니다. 미국의 경우, AI 기술 발전으로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이버 공간에서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의 24시간이 모두 노출된다는 의미이며, 투명성이 극대화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지하 벙커에 숨더라도 24시간 감시망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AI 도입으로 북한의 핵무기 운용에 대한 투명성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북한이 미국을 핵으로 위협해도 미국은 이를 허풍으로 여겼습니다. 북한이 미국 본토까지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핵잠수함 등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AI 기술은 이러한 판단을 바꾸고 있습니다. AI는 북한의 핵무기 위치를 15분 단위로 추적할 수 있게 하여,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미국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AI는 전술 핵무기의 운용 방식에도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과거에는 핵폭탄이 공중 낙하 방식으로 떨어졌다면, 이제는 AI 기반 유도 시스템을 통해 목표 지점에 정확히 정조준되어 지하 벙커까지 파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율무기체계와 인지전의 부상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특정 건물의 특정 방까지 정확히 타격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보유한 전술 핵무기의 효율성은 오히려 감소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더라도, 한국의 보복 공격으로 인해 북한 역시 초토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AI 등장으로 인해 '상호확증파괴(MAD)' 개념이 더욱 강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변화는 '자율무기체계'의 발전입니다. AI 기술은 무기 체계를 자율화하여, 인간의 개입 없이도 스스로 판단하고 공격하는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율무기체계의 발전은 더욱 가속화될 것입니다. 현재는 드론과 같이 알고리즘에 의해 목표를 식별하고 공격하는 수준이지만, 미래에는 AI가 스스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판단하여 공격하는 형태로 발전할 것입니다. 또한, 탱크와 같은 기존의 무기체계도 무인화되어 인간 승무원 없이 운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AI는 이러한 변화를 통해 군사 작전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철책 경계 임무 등을 로봇이나 AI 시스템이 대체하여 군 병력 구조에 큰 변화가 예상됩니다.
AI 기반의 군사 시스템은 인구 감소 문제와 맞물려 군 병력 구조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특히 핵무기는 대규모 살상 능력으로 인해 여전히 가장 큰 위협입니다. 자율무기체계가 발전하면서 인간의 개입이 줄어들면, 의도치 않은 충돌이 발생했을 때 핵전쟁으로 비화될 위험이 커집니다. 따라서 '인지전(Cognitive War)'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인지전은 상대방의 뇌를 장악하여 심리적으로 굴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손자병법에서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상의 전략으로 꼽았습니다. 인지전은 정보의 인식 단계를 넘어 상대방의 인지 과정을 조작하여 전쟁 발발 가능성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는 AI 기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미래의 전쟁 양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매우 다를 것입니다. 다음 달 서울에서 열리는 군사 AI 관련 회의는 이러한 변화를 논의하는 중요한 자리가 될 것입니다. 비군사 AI와 반도체 기술도 중요하지만, 군사 AI는 미래 안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AI 거버넌스와 책임 소재의 문제
AI 기술은 250년경에는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띨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대한 거버넌스 논의가 시급합니다. AI에게만 군사 결정을 맡기는 것은 위험하며, 인간이 통제 타워로서 AI의 정보 수집, 정책 결정, 지시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1984년 소련의 '부러진 화살' 사건은 AI의 오작동으로 인한 핵전쟁 위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당시 소련의 레이더망에 미국의 미사일 발사가 탐지되었으나, 담당자가 기계의 오작동 가능성을 의심하여 최종 결정을 보류함으로써 핵전쟁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AI의 '블랙박스'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입니다. AI가 왜 특정 결정을 내리는지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AI와 인간의 지능을 비교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남북 관계와 같은 복잡한 질문에 대해 AI는 그럴듯한 답변을 생성하지만, 때로는 부정확하거나 편향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이는 AI의 학습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한계 때문입니다.
AI가 생성한 답변의 정확도가 높더라도, 10~20%의 오류 가능성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만약 AI의 잘못된 판단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Responsible AI'의 핵심은 바로 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AI 모델의 블랙박스를 줄이고 투명성을 높이는 작업은 AI 기술 발전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K-복합 국가와 공생의 미래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의 미래는 'K-복합 국가' 건축에 달려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국가의 경계를 넘어, 남북한 네트워크, 주변 사이버 지구 등을 포괄하는 복합적인 국가 개념을 의미합니다. 첨단 기술 기반의 지식 질서를 따라가지 못하면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공계 출신이 아니더라도 AI와 같은 첨단 기술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입니다. 문화, 생태, 기후 변화 등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최소한의 첨단 기술 기반을 이해하고 이를 접목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근대 국가에서 복합 국가로의 전환은 필연적입니다. '늑대 거미'라는 표현처럼, 과거의 방식과 새로운 방식이 결합된 형태가 될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의 발전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군사, 글로벌 거버넌스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불가피한 변화를 요구합니다.
미중 갈등과 AI 기술 발전으로 인한 군사적 위험 속에서 '공생(Symbiosis)'은 21세기 생존의 핵심 키워드가 될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개별 국가의 생존을 넘어, 인류 전체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BTS의 음악은 이러한 국제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페이크 러브(Fake Love)'와 '마이크로 코스모스(Micro Cosmos)'와 같은 곡들은 사랑의 본질과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페이크 러브'는 가짜 사랑과 진짜 사랑의 이중성을 탐구하며, 이는 국제 정치학의 중요한 사상과도 연결됩니다. '마이크로 코스모스'는 작은 촛불들이 모여 함께 빛을 내는 것처럼, 자기애와 타자애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노래합니다. 이러한 곡들은 국내 정치의 난맥상과는 다른,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1세기 중후반에 건설될 복합 국가는 근대 국가의 개념을 넘어설 것입니다. 이는 국가를 중심으로 하되, 하위 국가 네트워크를 포괄하는 형태로 발전할 것입니다. 중앙 무대에는 안보, 원형 문화, 생태가 자리하고, 기층에는 기술, 정보, 지식이 뒷받침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를 넘어 '공진화(Co-evolution)'를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인류 공멸의 위협과 21세기 한국의 과제
인류는 생존을 위한 자기 충족을 넘어, 타자와 함께 나아가는 '공생'의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만약 이러한 공생을 외면하고 끝까지 투쟁한다면, 핵무기와 AI가 결합된 '뉴클리어 플러스 AI 넥서스' 시대에 인류는 공멸의 위험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과거의 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파괴력을 가질 것이며, 인류의 미래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것입니다.
21세기 신학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국제 정치학은 아직 더디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분단 문제와 국내 정치의 혼란 속에서 이러한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우리는 앞서가는 고민을 통해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 자리에 모인 30명의 여러분들이 이러한 고민을 앞장서서 한다면, 그것이 바로 BTS가 말하는 한반도 안에서의 '촛불'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8주간 수고 많으셨고, 앞으로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나누시길 바랍니다.
■ 하영선_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