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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기 EAI Academy] ① 미국 국제 리더십의 미래와 다권역 질서의 도래

분류
멀티미디어
발행일
2024년 8월 6일
관련 프로젝트
EAI 아카데미

편집자 주

YouTube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Kx8IvlN11Eg

영상 스크립트

오늘 제가 말씀드릴 주제는 미국의 외교 전략과 그 국제 질서에 미치는 함의입니다. 오늘부터 정확히 세 달 후면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미국은 패권 국가로서 엄청난 국력과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 왔기에 국제 질서와 동맹국인 한국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따라서 미국 외교 분석은 한 국가의 외교 정책 분석을 넘어 세계 질서 전체에 대한 분석입니다. 여러분은 다양한 관점에서 미국 외교 정책과 국제 질서를 보겠지만, 미국 대선 기간 중에 표출되는 미국의 외교 대전략 방향들을 고려할 때 앞으로 펼쳐질 국제 질서가 과연 어떠할지, 그리고 2024년 현재의 국제 질서 변화가 어느 정도의 중요성을 갖는지 생각해 보게 될 것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고 회고하게 될 시기일 것입니다. 여전히 많은 국제정치적 굴곡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점은 미국의 변화뿐 아니라 국제 질서 측면에서도 엄청난 변화와 새로운 측면들이 많습니다. 공부하는 입장에서 보면 20세기까지 관찰해 온 국제정치 시각이나 이론으로는 앞으로 펼쳐질 국제 질서를 바라보는 데 한계가 많습니다. 과거와 잘 반복되지 않는 새로운 현상도 많기 때문입니다. 흔히 미국의 패권 약화와 단극 체제 쇠락, 그리고 양극 또는 다극 체제 도래를 말합니다.

이는 국력 배분 구조와 군사력, 경제력 등 하드 파워 중심의 세계를 극의 구조로 보는 매우 전통적이고 과거와 연속적인 분석입니다. 물론 미래가 그렇게 펼쳐지는 부분도 있겠지만, 훨씬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 변화, 핵전쟁 가능성, 인류 절멸 위기 등은 인류가 하나 되어 해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국제 질서 변화의 학문적 고민과 미국 외교 전략

AI와 같은 신기술 발전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기에,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기술 발전 주체, 즉 테크 엘리트나 비국가 행위자들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국제 질서를 일관되게 파악하기 매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앞부분은 우리가 국제 질서를 주로 미국과의 외교 관계에서 보지만, 어떻게 국제 질서 변화를 파악해야 하는지에 대한 학문적 고민을 나누고 싶습니다. 앞부분에서는 국제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후반부에서는 미국이 추진하는 외교 전략의 갈래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3개월 후 해리스 대 트럼프 대통령 선거는 두 정당이나 두 대통령의 대결을 넘어, 매우 다른 외교 정책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중요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만 해도 하루에 끝날 수도 있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후보도 있기에,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는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선거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향력은 비단 우크라이나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께 나눠드린 리딩에 '권역 질서'라는 용어를 사용한 논문이 있습니다. 국제 질서에 대한 다양한 이론적 견해들이 흥미롭고 타당성이 있지만, 한국의 관점에서 앞으로 펼쳐질 국제 질서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앞부분 강의 후반부에 다극 질서에 대한 말씀을 더 드리려 했기에, 제목을 '미국의 국제 리더십 미래'와 '다극 질서의 도래'라는 두 가지 주제로 정했습니다. 패권 쇠락 속에서도 다른 형태의 미국 리더십은 유지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개념과 특징

첫 번째로, 현재 국제 질서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쓰는 용어는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 또는 '규칙 기반 질서'입니다. 미국이 리더십을 가지고 하드 파워와 세계 질서에 대한 청사진을 투영한 질서입니다. 미국이 주도하지만 다른 국가들의 역할은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리더에게는 팔로워가 있기 마련이고, 팔로워가 질서 유지에 상당 부분 기여할 때 질서가 유지됩니다. 따라서 미국의 주도성과 자유진영 내 다른 국가들의 역할 비중이 어떻게 나뉘는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자유주의 국제 질서'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자유주의가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유주의는 자유를 가장 중요한 정치의 목적 또는 가치로 삼는 질서입니다. 근대 서양 질서가 만들어지면서 중세 봉건 질서에서 개인의 자유를 실현하려 했고, 이것이 국제 질서로 확장된 것이 자유주의 국제 질서입니다. 슈엘로 논문에서도 언급되었듯, 자유주의 국제 질서 또는 다자주의 규칙 기반 질서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의 공화당 외교 정책은 '미국 우선주의'와 '트럼프류의 보수적 현실주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과거 공화당이 '미국 우선주의' 중심으로 갔다면, 트럼프 1기 이후 미국의 외교 정책은 자국 이익을 중시하며 세계 문제에 개입하는 개입주의로 후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면에서 미국의 리더십 성격이 크게 바뀔 것이며, 이러한 상황에서의 세계 질서는 미국이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자본이나 노력을 투여하는 질서가 아니라 세력 균형 질서가 될 것입니다. 국가 간 세력 균형이 각축을 벌이며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질서입니다. 세력 균형 이론에서 평화는 목적이 아니며, 안정성은 확보될 수 있어도 갈등과 전쟁을 통해 균형이 유지됩니다. 반면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평화를 강조합니다. 1945년 이후 국제정치에서 군사력 중심의 세력 균형 체제를 넘어, 다자주의적이며 국내 정치와 유사하게 폭력 제어와 상호 입법적 규칙을 만드는 질서를 추구해 왔습니다.

이는 부분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1945년 2차 대전 종전 후 UN, GATT(현 WTO) 등 국제기구를 만들었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도 많아졌습니다. 민주 평화, 시장화, 다자 제도의 평화가 실현되었기에, 우리는 이 자유주의 국제 질서 밖에서 살아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국제정치에는 상위 권력 기관이 없기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전쟁이 가능하지만, 우리는 수십 년간 전쟁을 겪지 않았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전 세계적으로 국제법, 국제기구, 미국의 개입 등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성공적이지 않았고 미국이 오히려 전쟁에 더 많이 참여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국제 질서 흐름은 기존 세력 균형이나 현실주의 질서와는 다른 질서를 만들고자 했고, 일정 부분 유지되었습니다.

1945년부터 소련 붕괴 전인 1991년까지는 자유민주주의 권역에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유지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질서가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공산권 내부에서는 국가 주권을 존중하지 않았기에 그쪽 질서를 자유주의 질서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질서는 1991년 이후 약 30년간의 탈냉전기 자유주의 세계 질서가 유지된 셈입니다.

특히 여러분은 그 안에서 태어났고, 국제정치는 미국이 주도하며 국제법과 국제기구가 중요하고, 전쟁은 사법적/정치적으로 해결하며 필요시 미국의 군사력이 개입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무리도 많고 잘못도 많았으며, 미국도 경제적 문제를 겪었습니다. 탈냉전기가 끝나고 펼쳐질 세상은 상상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지난 30년은 미국의 국력이 가장 높았던 시기였습니다. 2000-2001년경 전 세계 국방비의 거의 50%를 미국이 지출했습니다. 이는 로마 제국이나 과거 제국의 군사력보다 훨씬 높은 수준입니다.

미국은 인류 역사상 한 정치 집단이 가질 수 있는 최대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그런 탈냉전기에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실현하려는 노력들이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는 경제 위기를 겪었고, 자유주의를 전 세계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반발을 불러와 9.11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미국의 리더십 역할은 트럼프식으로 한정되었고, 국가 간 협력은 개별 국가의 복원 노력 앞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이 예상하지 못했던 미중 전략 경쟁이 매우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상황 예측은 매우 어렵습니다. 기술 변화가 너무 빨라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기술로 변화될 국제정치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어떤 지구 거버넌스가 등장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지난 30년은 미국이 주도한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극성기였지만, 그 질서가 유지되기에는 많은 위기 요인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는 매우 역설적인 현상입니다.

국제정치가 역사상 초유의 강력하고 이념적으로 기대가 컸던 자유주의 국제 질서로 실현될 것이라 믿었지만, 결과는 많은 위기들과 10년마다 발생한 세 번의 위기, 그리고 미중 전략 경쟁으로 미래 예측이 어려운 질서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국제 질서가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극 질서가 되거나 미중 패권 전쟁을 벌인다는 분석은 정확하지 않지만, 그런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앞으로 어디로 갈지 모르는 이유에 대한 분석 도구를 우리가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대한 이론적 분석

지난 70-80년간 있었던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고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대한 자유주의적 분석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학자는 프린스턴대 존 아이켄베리 교수입니다. 그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상대적 이점이 많고, 인류 역사상 초유의 좋은 질서이며, 자유주의를 실현한 국가가 리더가 되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평화, 개방적 국제 경제, 국제기구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문제는 자유주의 메커니즘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약화된 것이기에 더 자유주의적으로 나아가야 자유주의 질서를 복원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타당성이 있으며, 실패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본래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의 리더십은 매우 중요합니다. 해리스(바이든)와 트럼프 중 누가 되든, 미국이 여전히 세계에 필요한 공공재를 제공하고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되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반면, 자유주의에 대한 현실주의적 분석도 있습니다. 미국이 했던 것은 자유주의 국제 질서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강대국이 약소국의 자율성을 뺏고 동맹을 통해 지배력을 유지하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인권, 국가 권리 등을 이야기했을 뿐, 국제정치가 가진 한계를 넘어선 부분은 별로 없다는 분석입니다. 구조주의 현실주의자들이 말하듯, 국제체제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는 세컨드 이미지 변수이며, 학교 강의에서 배울 법한 내용입니다. 자유주의라는 운영 원리가 무정부 상태라는 더 근본적인 구조적 권리를 이길 수는 없다는 분석입니다. 칼 슈미트는 자유주의가 본래적으로 정치적으로 실현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주권자들이 모여 뜻을 대변하는 대리적 정치 결정 과정을 만드는 것인데, 위임받은 결정자가 국민의 뜻을 그대로 실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전쟁이나 위기 상황에서는 최고 결정자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닥칩니다. 이 결정자의 생각에 따라 여지가 많기에, 최고 정책 결정자인 주권자의 권력이 매우 큽니다. 이를 결정론 또는 예외론이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자유주의 질서라도 정치성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국제 정치에서도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잘 됐을 때 많은 국가들의 다자적 의견을 모아 질서를 만드는 것 같지만, 사실은 최고 리더인 미국의 독자적이고 일방주의적인 결정이 될 여지가 언제나 존재하기에 완전한 의미의 자유주의 질서는 있을 수 없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결정을 위임받은 주권자들의 의견을 모두 실현하려고 노력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이나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거나 법적 한계 내에서 가능한 선택지는 모두 소진됩니다. 이제 대통령이나 수상이 최고 결정권자로서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는 것입니다. 이때 최고 결정권자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여지가 생각보다 매우 많기 때문에, 최고 정책 결정권자인 지도자의 역량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결정자의 결단주의라고도 합니다.

예외 상태에서의 결정을 예외주의라고도 하며, 따라서 자유주의 질서라 하더라도 정치적인 것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국제 정치에서도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잘 작동할 때 많은 국가들의 다자적 의견을 모아 국제 질서를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때에도 이를 결정해야 하는 최고 리더, 즉 미국의 아주 독자적이고 일방적인 결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여지는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에 완전한 의미의 자유주의 질서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는 다소 복잡한 논의일 수 있으나,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본질적으로 실현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합니다. 1990년대 초반, 미국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990년과 1991년, 45년간 지속된 소련과의 냉전이 소련의 몰락으로 끝나고 미국과 자유주의 국가들이 승리의 분위기에 휩싸였을 때, 당시 미국이 세계 질서에 대해 가졌던 열망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후쿠야마와 같은 학자는 '역사의 종언'을 언급하며 역사가 전혀 다른 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권력에 기반한 세력 균형의 시대는 끝나고, 민주화가 전 세계로 확산되어 인류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윌슨이 꿈꿨던 '신 윌슨적 순간'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헌팅턴과 같이 '문명의 충돌'을 예견하며 억눌렸던 비서구권 문명들의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고, 이것이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론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패권과 공공재 제공 능력의 한계

결과적으로 지난 30년간 미국의 패권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사람들은 왜 미국의 패권이 성공적이지 못했는지 묻습니다. 물리적 힘이 부족했는지, 정책 방향을 잘못 잡았는지 등을 질문합니다. 더 나아가 미국이 패권 국가가 아니었던 것은 아닌지, 즉 다른 나라보다 강했지만 세계 질서를 부여할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질문도 제기됩니다. '패권'이라는 말은 많이 쓰이지만, 학문적으로 패권은 무정부 상태인 국제 상황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규칙 기반 질서, 규범 기반 질서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말은 쉽지만, 국가들 간의 갈등 속에서 모든 국가가 지켜야 할 규칙을 부여하는 것은 엄청난 노력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모범적인 공공재 제공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공공재란 모두가 필요로 하지만 누구도 자신의 비용으로 생산하려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국내에서는 정부가 세금을 거두어 공공재를 생산하지만, 국제 정치에서는 이를 수행하는 국가가 없습니다. 패권 국가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다른 국가의 자금 지원 없이도 공공재를 제공하여 국제 질서에 질서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장기적인 이득을 취하며 패권을 강화하는 메커니즘을 작동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극소수의 국가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지난 30년간 미국이 이러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돌이켜보면 미국이 개입하지 못한 전쟁과 해결하지 못한 분쟁이 너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북핵 문제만 해도, 미국이 더 많은 정책 자원을 투입했다면 해결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미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표현은 다소 어폐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미국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북한이 핵 문제를 일으킨 이유 중 하나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때로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충분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세계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그리고 중국의 미국에 대한 경제적 도전 등이 지난 30년간 계속 가중되었습니다. 9.11 테러와 경제 위기를 해결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얼핏 생각했던 미국의 패권은 다른 국가에 비해 월등히 강했지만,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공공재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충분치 못했을 수 있습니다.

강하다는 것이 반드시 국제 정치의 질서를 제공할 수 있는 공공재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두 가지는 전혀 다른 논리입니다. 최강 국가라고 해서 패권 국가인 것은 아니라는, 질서 부여자로서의 의미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지난 30년간 우리는 미국이 세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힘을 들였다고 생각했고, 미국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 성적표를 보면, 미국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국가는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국제 정치는 훨씬 복잡해졌으며, 지구에서 비롯되는 문제들과 냉전 종식으로 인해 발생하는 새로운 분쟁들에 대한 연구도 필요합니다. 냉전 시대 두 초강대국의 경쟁 논리가 다른 모든 문제를 잠재웠던 것입니다. 포스트 식민주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19세기 제국주의가 끝나면서 억압되었던 제3세계의 많은 문제들, 식민 본국과의 문제, 엉터리로 그어진 국경으로 인한 영토 문제, 우리와 같은 분단 문제 등이 내부적으로 골마가고 있었습니다. 그 위에 초강대국의 냉전 논리가 덧씌워지면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가 냉전이 끝나면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한반도나 대만 문제 등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을까요? 국제 정치에서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수요가 더 커졌습니다. 따라서 지난 30년간 우리가 특히 미국의 국제정치학 때문에 가졌던 허상은, 냉전 종식 이후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매우 좋은 과정이었지만 충분치 못한 과정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단극 체제와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한 성찰

그렇다면 미국의 단극 체제와 지난 30년간의 외교 정책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제가 미국에서 회의에 참석했을 때 전직 국무부 관료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의 단극 체제가 하나의 '질병'이며, 지금도 미국인들에게 큰 병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을 볼 때 전지전능한 패권 국가라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미국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우리 역시 미국에 걸었던 기대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문제가 더 많았습니다. 따라서 '단극 체제'나 '냉전 종식'과 같은 당시의 판단이 사실은 매우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지난 30년을 겪고 나서, 새로운 길, 새로운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길을 미국의 두 후보가 충분히 깨닫고 실현하고 있는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렇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미국의 외교 정책을 논할 때, 두 사람의 외교 정책 내용을 묻기보다는 지난 30년간 미국 외교 정책의 궤적을 되돌아보고 그 구조 속에서 미국의 외교 정책을 평가할 준거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 보는 미국 주도 국제 질서보다 우리가 보는 국제 질서에 대한 시각이 더 정확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뒤에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무엇인지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PPT에도 있지만 내용이 많으므로 핵심만 전달하겠습니다. 자유주의는 구성원의 자유를 가장 중시하는 질서입니다. 국제 질서와 지구 질서가 있습니다. 국제 질서는 국가를 단위로 하는 질서이고, 지구 질서는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 기업, 미디어, 이익 집단, 국제 기구 등 다양한 주체가 작동하는 질서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멀티 이해관계자 질서입니다.

국가 중심 질서에서 글로벌 질서로의 이행

우리는 80억 인구의 정치 질서가 200개 국가로 나뉘어 국가 간의 관계로 유지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국제 정치를 보면,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때 기술 기업이나 개인의 역할, 국제 기구의 개입 등을 보면 국제 정치가 국가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지구화되면서 지구가 하나의 정치 단위, 군사 단위가 되고 국가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포퓰리즘적 반발이 생겨납니다. 예를 들어, 우리 정부가 우리를 보호해주지 못하고 외국 농산물이 쏟아지면 농민들이 반발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대니 로드릭이 말한 '하이퍼 글로벌리제이션'이 가져오는 국가 권능의 약화 속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불만이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구화는 거부할 수 없습니다. 지구화는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적 지구화의 정책적 측면도 있지만, 이미 기술 발전과 인식의 발전으로 글로벌한 것이 하나의 단위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국제적인(international) 차원을 넘어 이미 글로벌한(global) 차원으로 이행기에 있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지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질서는 서구 30년 전쟁에서 비롯된 베스트팔렌 체제, 즉 국가 중심 질서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국가 중심 질서가 글로벌한 질서로, 아까 말했던 테라지(terrage) 같은 다른 정치 단위가 함께 작동하는 질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국가 간'이라는 말은 국가들 사이를 의미하지만, '지구 질서'는 지구상의 다양한 단위들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즘에는 행성 간에는 생태계에 포함되는 인간 이외의 생물이나 광물까지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또는 우주까지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행성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까지 정치 질서 안에 포함시킨다면, 그 질서를 자유주의적으로 만들어 간다는 것은 그 질서의 구성원인 국가의 자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질서라는 의미입니다. 국가의 자유란 결국 생존과 영토 보존과 같은 것입니다. 마치 국내 질서에서 개인의 생존과 재산권이 자유주의 정치 철학의 핵심인 것처럼, 국제 정치에서 자유주의적 가치는 국가의 생존과 안전, 그리고 영토 보존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국가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형식적 주권뿐만 아니라, 내정 불간섭이나 국가의 적극적 자유까지 보장하는 질서를 자유주의 질서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국제 질서에서는 아주 제한된 소극적 자유, 즉 국가의 생존과 안전만을 유지하는 질서까지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적극적인, 모든 국가가 자신의 가능성과 권리를 실현하고자 하는 질서를 만들고자 합니다. 약소국들도 이미 그러한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자유주의적 질서를 실현할 수 있는 국제 질서의 형식은 무엇일까요? 국내 정치에서는 민주주의 과정을 통해 이러한 자유주의적 열망을 실현합니다. 모든 사람이 정치 질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주권자가 되어 입법 과정을 통해 평등하게 질서를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질서를 자유주의 질서와 함께 가져가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자유민주주의 질서였습니다.

하지만 자유주의 질서와 민주주의 질서는 매우 다른 개념입니다. 자유주의는 권력의 원천에 관한 것이고 외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정치 이념입니다. 반면 민주주의는 권력을 어떻게 배분하고 누가 정치 결정에 참여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도 있고, 자유주의적이더라도 자격이나 특정 집단에 따라 제한될 수 있습니다. 과거 비서구 국가들은 문명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없어서 군주정이나 독재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거나 여기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온전히 실현되었을 때 가져야 하는 기준은 매우 높지만, 충분히 실현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아주 제한된 의미의 자유주의 질서였다는 것은 맞습니다. 미국이 지난 30년간 실현하고자 했던 자유주의 국제 질서도 모든 국가의 생존과 영토를 보장하고자 노력했지만, 점차 많은 국가들이 요구하게 될 정책적 자율성이라는 적극적 자유, 즉 내정 불간섭의 문제는 실제로 국제 정치에서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정에 간섭하기 위한 국제 정치가 현재 국제 정치의 본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가진 한계가 일단 한쪽에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민주주의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여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200개 국가가 국제 정치를 결정할 때 똑같이 1/200의 비율로 참여하여 평등하게 국제 질서를 만들어 가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렇지 않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만 보더라도 다섯 개 나라가 결정권을 가집니다. 이는 국내 정치로 보면 귀족정에 해당되는 정치 체제입니다. 따라서 국제 정치는 전혀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패권 국가는 정치 이론으로 보면 군주정에 해당되고, 대부분은 선진국 강대국들의 귀족적인 형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총회나 일반적인 부분에서 부분적으로 민주적인 형태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국내 정치 식으로 보면 혼합정입니다. 따라서 혼합정의 공식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국제 정치는 국내 정치와 달리 워낙 차이가 많고 국가들이 같이 존재하더라도 불평등한 것이 당연하며 서로 싸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것은 잠시 접어두고, 반면에 지구

자유주의적 지구 질서와 현실적 과제

정치 질서라는 것은 그와 전혀 달리 80억 인구가 각각 1/80억의 결정권을 행사하는 질서가 가장 좋다는 자유주의적 지구 질서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미 지구화된 시대, 여러분 모두 지구화된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 각자가 1/80억의 중요한 주자인데, 내가 정확히 1/80억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을까, 이 지구의 일을 만드는 데 있어서? 우리가 직접 참여할 수는 없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통해서 참여하고 있고, 대한민국이 그래도 세계 12위권의 경제 대국으로서 아프리카의 약소국보다는 지구 거버넌스에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구 거버넌스의 일정 부분에 우리가 기여하고 있지만, 우리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사건들을 결정할 때 우리가 그만큼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 자유주의 국제 질서 안에 살고 있고, 우리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거기에 맞는 지구 거버넌스를 만들고 싶다면, 우리가

충분히 그렇게 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봤을 때, 미국 외교 정책과 관련하여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미국이 지금까지 자유주의적 질서를 잘 만들어 왔지만, 충분히 자유주의적이더라도 약소국이 있고 현실주의가 끼어드는 상황에서, 지난 30년간 미국이 그러한 현실주의에 기반한 패권적 자유주의 질서, 즉 군주정에 해당하는 자유주의 정치 질서를 만들어 왔는데, 그것이 세계를 이끌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말입니다. 따라서 이미 국제 질서는 미국이 추구해 왔던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매우 많은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미국의 외교 정책을 이야기할 때, 바이든 정부의 외교 정책이 뭐가 잘못됐는지, 또는 트럼프 정부의 외교 정책에 뭐가 잘못됐는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우리가 그래도 세계를 잘 이끌어왔다고 생각하는 미국 주도 자유주의 질서가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를 충분히 생각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꼭 나쁜 것이 아니라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것을 국제 정치 차원에서 머릿속에 그리고 있어야 지금 미국의 각 후보자들이 내세우는 외교 정책을 효과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말이 핵심적으로 여러분들께 드리고자 하는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만약 우리가 그것을 충분히 해내지 못한다면, 우리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우리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 안에서 매우 성장했고 잘 살고 있으며 우리의 가치관은 이미 자유주의가 우리 몸에 깔려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자유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자유주의란 내가 정하지 않은 나의 운명을 타자가 정해주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내가 누리는 자유가 타인의 자유에 침해되지 않으면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우리는 신봉하고 체현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참여하지 않는 정치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양한 국제 질서의 대두와 경쟁

그렇다면 그런 자유민주주의의 우리의 가치관이 국제 정치에 반영될 수 있도록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의 국제 정치 질서는 충분히 그렇게 나아가고 있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되는 질서를 제시하고자 하는 여러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꼭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국제 질서가 얼마든지 대두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그렇습니다. 역사적으로 푸틴이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었는데, 전통적으로 우크라이나의 독립 국가 역사에 대한 비판, 나치즘에 대한 언급, 그리고 앞으로 러시아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와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은 현재 국제 질서를 매우 중시하고, 특히 지금 국가들이 신봉하는 규칙을 지키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자유주의는 아닙니다.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존재론적인 개인주의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가장 중요한 존재이고, 그 개인이 사회를 만드는 것이지, 사회가 원래 있고 그 안에 개인이 해야 할 바가 배정되는 것은 자유주의가 아닙니다. 중국의 경우는 개인의 자유보다는 국가나 당의 주도성을 더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규칙을 강조하고 국제 질서의 평화나 주권을 강조하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의미의 자유주의 질서는 아니기 때문에 그런 여러 가지 경쟁적인 국제 질서 속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의 시대는 단극적이고 탈패권적이지만, 조금 넘어가겠습니다.

중국은 현재 국제 질서를 매우 중시하며, 특히 지금 여러 국가가 신봉하는 규칙을 지키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는 자유주의 질서는 아닙니다. 자유주의는 본질적으로 존재론적 개인주의에 기반하며, 개인이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지 사회가 먼저 있고 개인이 그 안에서 역할을 배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의 경우는 개인의 자유보다는 국가나 당의 주도성을 더 강조하며, 규칙과 국제 질서의 평화, 주권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의미의 자유주의 질서가 아니기에 경쟁적인 국제 질서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시대는 단극적이고 탈패권적일 수 있으나, 이 부분은 넘어가겠습니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한계와 대안적 질서 모색

여러분, 이 이야기는 이미 한 바 있고, 그런 면에서 국제질서 파트는 마지막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국제질서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가 둘로 쪼개지고 다시 하나로 합쳐지면서 쭉 유지되어 왔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굉장히 큰 역할을 했고, 미국이 많은 주도성을 발휘했습니다. 그것이 앞으로도 잘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한계를 아주 뚜렷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뚜렷하게 보이는 이유는 여태까지 이야기한 것처럼 굉장히 많은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지구화, 미국 자체의 힘의 부족, 자유주의 질서라고 생각했던 것의 내용적 한계, 비자유주의 국제질서로부터의 도전 등이 지금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도전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랬을 때 그 자유주의 질서를 앞으로 더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잠시 놔두고, 그랬을 때 그 자유주의 질서라는 것을

개념화할 때, 그 자유주의 질서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국가들의 외교 정책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유주의를 구성하는 어떤 원리에 관한 것일까? 이런 더 근본적인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논문에 있는 내용인데, 그것을 다 말씀드리기는 어렵고, 권력이라는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리저널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기존에 영국 국제사회학파가 이야기했던 '인터내셔널 사이'라는 개념도 있고, 거기서 '리저널 시큐리티 컴플렉스'라는 개념을 쓰기도 하고,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과 좀 다른 의미는 이 지역의 역사성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역사성입니다. 영국 국제사회학파 같은 경우는 기본적으로 제국이었고, 문명권이 합쳐지면서 생기는 권력들 간의 충돌이나 전파의 논리를 충분히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몇 개로 쪼개지고 있는 서로 다른 질서 단위, 거기 '플로카드'의 '멀티 오더 월드'라는 아규먼트가 있는데, 지금 중국, 미국, 러시아, 또는 중동의 대립을 그냥 멀티폴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힘이 굉장히 강한 국가, 즉 강대국들의 출연으로 몇 개의 강대국 간 경쟁으로 지금의 국제정치를 보기에는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논리가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이야기했던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권역은 그것대로 상당히 유지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굉장히 많은 한계를 보였기 때문에 중국이 거기 안에 속해 있으면서도 대안적 질서를 내려고 하고 있는데, 이것은 단순한 반항이나 패권 경쟁이 아니라, 자유주의 질서보다 좀 더 나은 질서를 제시해 보고자 하는 훨씬 더 야심 차고 중요한 노력입니다. 이것이 성공할지의 여부와 별개로 러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러시아도 단순히 싸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 중심의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있고, 이슬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이슬람 지역이 갖고 있던 전통 질서에 대한 재활이나 복구의 노력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국제정치의 미래를 볼 때에는 역사적으로 만들어졌던 자기 중심의 질서에 대한 새로운 부활, 그것은 역설적으로 서구 중심의 질서가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까 포스트콜로니얼 문제나 그것을 해결하기에는 굉장히 많은 어려움을 앞으로도 겪을 것입니다. 그것이 더 심해져서 예전 패권 안정 이론처럼 안보적 대립으로 가게 되면 훨씬 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미중은 단순하게 두 국가의 패권 경쟁이라기보다는, 미국이 만들었던 질서의 한계를 중국이 나름대로 비판하고자 하는 훨씬 더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대립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두 권역의 경계에서 더 나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것도 나쁜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미국의 외교 정책이나 지금의 국제정치를 볼 때 조금 더 경쟁의 폭, 심도를 길게 봐야 합니다. 그 권역 안에는 국제질서를 보는 사람들의 시각, 내러티브, 우리 나름의 스토리텔링이 굉장히 다르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지금 한국의 경우는 유교 문화권에 있었지만 서구의 국제질서에 굉장히 많이 들어간, 거의 유일하게 미국이 이야기하는 민주주의 이식이 성공한 나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패전국이고, 독일도 그렇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자유주의 이론에서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민주 평화나 네이션 빌딩 같은 작업이 너무 잘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출신의 선진국이잖아요. 그런 나라는 세계에 없고, 자유민주주의가 너무나 미국보다 우리가 훨씬 더 민주주의적입니다. 지금 보면 세계 민주주의의 모범이라 할 만큼 어떤 폭력도 없고, 선거 불복도 없고, 개인의 정치 의식도 굉장히 높습니다. 그렇게 봤을 때 이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우리의 그 정치 문화의 굉장히 큰 특성이

있는데, 그렇지 않은 국가들, 다른 국가들의 경우는 그 권역에 독특한, 굉장히 다른 정치에 대한 관념이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권력이라는 것이 단순한 국제정치의 물리적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아주 오랜 역사 속에서 만들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랬을 때 앞으로의 국제정치의 흐름이라는 것은 이런 권역 간 충돌, 여러 권력들이 경쟁을 할 텐데, 그것이 계속 경쟁할 수는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류 절멸의 위기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또 다른 논리이기는 하지만, 핵전쟁의 위험을 필두로 지금 심화되고 있는 기후 위기, 그다음에 또 등장할 수 있는 보건 위기, 그다음에 기술의 통제 불가능성 등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을 기술을 잘못 이용하는 악용하는 사례부터 기술 자체가 통제되지 않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AGI, ASI에 해당되는 그런 시대도 예측 가능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2년 뒤 우리가 다 같이 맞이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전에, 그렇게 되기 전에 국제 정치적인

미국 외교 정책의 현황과 미래 전망

어떤 통일된 대응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지구가 하나의 권역으로 재탄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1945년부터 국제질서가 많은 발전을 이루어 왔지만, 지금 요구되는 공공제 수요에는 자유주의 질서가 턱없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다수의 질서가 충돌하고 있는데, 그것은 단순한 권력의 충돌이나 패권 갈등이 아닌, 국제정치를 보는 아주 근본적인 시각의 권역 간 충돌입니다. 그것이 잘 하나의 새로운 지구 권역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이제 인류가 절멸할 수도 있는 굉장히 중요한 시점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처음에 이야기했던 우리가 20세기에 생각했던 국제질서와는 굉장히 다른 국제질서 안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5분만 미국 외교정책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대부분 아는 내용일 것입니다. 핵심은 바이든 정부의 외교정책은 자유주의 외교정책,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패권의 부흥 또는 부활을 추구하는 외교 정책입니다. 그렇지만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아주 근본적인 문제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미국은 미국이 공공제를 제공할 수 있는 충분한 국력을 이미 상실했다는 것을 바이든 정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공급망의 문제일 수도 있고, 군사력의 부족 문제일 수도 있어서, 지금 바이든 외교 정책은 아까 식으로 하면 군주정, 귀족정으로 바뀌는 또는 패권 연대를 통해서 동맹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세계 리더십 그룹을 만들려는 정책으로 바뀌어가고 있고, 그 동맹과 파트너십을 리드하는 일종의 메타적 리더십으로 바뀌려는 쪽으로까지 변화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까 이야기처럼 글로벌 사우스부터 비롯된 충분한 문제들, 또 같은 자유주의 국가이긴 하지만 다른 국가들의 요구 사항을 충분히 활용하는 정말 다자주의적인 리더십을 만들기에는 미국 스스로가 국력도 부족하고, 또 미국 리더십의 문제를 충분히 깨달아서 새로운 담론이나 전략적 내러티브를 정말 잘 제공하고 있을까? 여러분, 지금 바이든의 캠페인이 있었고 이제 해리스의 캠페인이 있는데, 거기서 쓰는 단어, 또는 개념, 또는 어떤 표어 같은 것을 보면 민주당의 국제정치에 대한 이론적 분석과 앞으로 세계를 어떻게 끌고 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보고 여러분들이 만약에 지금 앞에서 짧게 이야기했지만 국제정치 흐름 속에서 앞으로 진행될 국제질서의 모습에서 해리스가 그것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담론 구조를 가지고 있을까라는 것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할 수 없다면 무엇이 부족하고, 결국 미국으로 안 되는 것이라면 새로운 세력의 주축을 어떻게 형성해야

되는지, 완전한 민주주의로 가야 되는지, 아니면 패권 경쟁으로 가야 되는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이든 정부의 외교 정책은 내적으로 제조 부흥이나 경제 성장을 통해서 미국의 힘을 강화하고,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의 힘을 빌어서 패권을 다시 부활하려는 노력입니다. 동시에 경쟁국에 해당되는, 특히 중국과 같이 '페이싱 트레이드'라고 하는, 앞으로 계속 같이 가게 될 경쟁국에 대한 경쟁이 굉장히 중요한 외교 정책의 핵심인데, 그것을 미국의 여러 정책 결정자들이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충분한가? 특히 대중 전략에서 그 대중 전략의 마지막 모습을 미국이 어떻게 상정하고 있는지, 정말 중국과 어떤 식의 경쟁을 어떻게 끌고 갈지에 대해서 그림이 너무 불명확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작년 4월 27일 날 설리번이 '디리스킹'에 관한 연설을 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읽은 10월 달 포브스 글을 보면 미국이 생각하는 외교 정책의 핵심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그것이 정말

얼마나 충분한지를 여러분들이 잘 평가하셔야 합니다. 그 포브스 아티클을 굉장히 잘 썼기 때문에 해리스의 외교 정책도 그것을 넘어서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런 시대가 4년 더 이어졌을 때 세계 질서가 어떻게 변화할지를 평가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선 그 1년간 지속되었던 '디리스킹' 패러다임의 성패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이 필요한데, 아무도 평가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고, 미국 스스로도 이게 정말 성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기술 분야, 안보적 함의를 가진 기술 분야에서 완전한 '디커플링'을 주장하는데, 정말 이것이 성공할 수 있을지, 오히려 중국의 자체 첨단 반도체 생태계를 촉진시키는 악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아직은 알기 어렵습니다.

트럼프 2기 외교 정책의 특징과 함의

트럼프 2기의 예상 외교 정책입니다. 최근 많은 분석이 나오는데, 트럼프는 캠페인 때 주장했던 외교 정책을 그래도 다 실현하는 경향이 있다는 통계적 연구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 1기와 2기에 상당한 연속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1기에 하려고 했던 것을 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고자 합니다. 트럼프의 외교 정책의 핵심은 랜들 러리의 글이 트럼프보다 더 트럼프를 잘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이야기처럼, 정말 미국의 핵심이 아닌 부분에서는 미국이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개입할 필요가 없고,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패권 정책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패권은 국제질서에 필요한 공공제를 제공해서 구조를 부여한 다음에 거기서 나오는 장기적인 이익을 수확해 가는 시계 외교입니다. 대만도 대만 스스로 중국으로부터 '디트랜스'하고자 도와주긴 하지만, 유사시에 꼭 들어갈 필요가 있느냐 하는 입장인 것입니다. 거기 보면 한반도 북쪽 문제는 사우스 코리아와 관련해서 굉장히 여러 가지 함의가

해리스 부통령의 예상 외교 정책

있는 요즘 트럼프 캠프에서 나오는 니힐리즘을 포함해서 그런 면에서 트럼프 정부는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지도 않고, 미국의 핵심이 아닌 지역에 개입하지도 않고, 미국의 국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하는 외교 정책을 펼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강한 국가지만, 보통 강대국이 될 것입니다. 패권 국가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랬을 때 세계 질서는 밸런스 오브 파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군사적 충돌을 해결하려고 하는 패권 국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계는 굉장히 다른 시대가 될 것입니다. 1945년 이래로 우리가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던, 아마 지금 생전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격하지 못했던 국제 정치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또 미국의 책이 바뀔 수도 있겠고, 이제 미국 혼자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면에서 개별 국가들에 대한 예상 외교 정책이 있는데, 이것은 좀 넘어갈게요. 여러분, 이따가 질문 때 말씀을 더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리스 부통령의 예상 외교 정책은

누구나 다 관심 있는 분야이긴 합니다. 그런데 기존에 2016년 선거 때 나왔던 논의들과 부통령 때 보였던 여러 가지 퍼포먼스를 놓고, 2020년 경선 때 나왔던 내용들을 합쳐서 해리스 부통령과 바이든 정부의 차이점 정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최근의 노력입니다. 어느 정도의 차이점은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부분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경우에 훨씬 더 강력한 지원 의지를 보이고 있고, 이스라엘 사태도 하마스 공격을 비판하기는 하지만 이스라엘의 인권적인 부분에 대한 비판 의식도 있기 때문에, 뭐 정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나 중국에 대한 상당히 강경한 지정학적 경쟁 정책은 유지될 것이고, 경제적으로도 미국의 국력을 강화하는 데 힘을 많이 쏟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과 연속성이 있을 것이고, 또 그런 리더십 복구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중국 주도 질서의 가능성과 한국의 과제

정리해서 앞에서 우리가 봤던 지금 세계 질서의 변화와 여기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충분한 리더십을 갖추고 있을지는 조금 더 두고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은 그렇다면 중국 주도 질서가 만약에 온다면, 중국이 대안적인 새로운 권역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간단한 논의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중국에 대해 들으실 때 더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을 텐데, 하여간 중국이 지금 제시하는 여러 가지 도전 요인이라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힘의 대결이나 패권 전쟁보다는, 지금 질서에 대한 대안적 질서를 마련하기 위한 상당한 노력입니다. 좀 더 노력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작년은 미국 외교 정책 자체에 대한 말씀을 좀 드렸는데, 오늘은 그것보다는 이번 선거 이후 또는 전후에 생겨나게 될 세계 질서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도 더 많은 고민을 해야 되고, 그래서 변화되고 있는 미국을 어떤 식으로 우리가 봐야 될지, 또 그에 따라서 북핵 문제나 한미동맹, 확장 억제 등 굉장히 많은 문제들이 걸려

있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생각하시고. 오늘은 미국만 이야기하지 않고 복잡한 이야기를 하려고 마음을 먹고 왔기 때문에 썩 와닿지 않을 수 있는데, 다음 강의부터 훨씬 더 재미있고 구체적인 말씀들을 많이 하실 겁니다. 그래도 제 개인적인 고민이긴 합니다만, 하여간 지금 세계 질서를 기존의 국제정치학으로 잘 분석할 수 없기 때문에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학문적으로 또 여러분들이 앞으로 살아갈 시대이기 때문에 좀 넓게 보시고 공부한다는 것이 반드시 기존에 있는 책을 열심히 보는 것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아주 창의적인 생각을 해야 될 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좀 넓게 넓게 생각을 많이 하시라는 의미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전재성 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은 탈냉전기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이론적 분석을 토대로, 경제 위기와 국제 분쟁 등에서 드러나듯 자유주의 질서가 현재 한계에 봉착했다고 진단합니다. 아울러 국제정치에서 질서를 부여하는 패권국의 출현이 더 이상 어렵고 다권역 질서의 도래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미국은 국제 사회 내 리더십 확대를 추구하는 민주당과 핵심 이익 분야로 개입의 범위를 제한하려는 공화당 간의 정책 경쟁과 유권자의 선택을 앞두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 전재성_동아시아연구원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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