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시민사회 인터뷰 시리즈] ④ “국외 이주노동자, 청년, 그리고 여성: 미얀마 민주항쟁의 새로운 주역들”
편집자 주
YouTube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hPmTmRHdeRc
<미얀마 시민사회 역량 강화> 프로젝트는 지난 일 년간 미얀마의 시민불복종운동을 지지해 온 한국과 미얀마의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듣는 시민사회 인터뷰 시리즈 ‘다시, 미얀마’를 기획하였습니다. 킨메이타(Khin May Htar) 수원이주민센터 대표는 지난 8888 미얀마 민주항쟁의 경험을 돌아보며, 이번 민주항쟁에서 미얀마 국민들이 군부 저항 및 민주화 운동을 위해 미얀마 현지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긴 투쟁의 과정 가운데 특별히 청년 여성의 활약이 중요했다고 분석하며, 이번 일을 계기로 미얀마가 불교 국가의 보수적인 유산을 떨쳐내고 미래 세대에게 좀 더 많은 사회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인터뷰이 소개
■ 킨메이타_수원이주민센터 대표이자 인권 활동가. 세계시민교육과 인권을 널리 알리는 교육 사업을 벌이고 있다. 만드레이 대학 영문학사를 졸업하였고 타운지교육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 담당 및 편집: 전주현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 jhjun@eai.or.kr
영상 스크립트
네 안녕하세요 저로 주게 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아 저는 야마 에서 태어나고 4 한국에서 제 2의 인생으로 사고 있는 캠 메이 자라고 한다 저는 한국에 남편하고 아이 남자 아이 주에 아드 아들이자 네 아들을 좋아하고 여기에 인생엔 거의 전반 으 수원에서 4구 있고 여기서 하니 주민센터에 대표 활동가로 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원이 주면 선자 네 저희 사자는 2000년부터 여기에 저희 있어서의 이주민 제대 인권 정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제 맨과 선주민 의 동동 1 사회 르 같이 만들고 있는 시민 단체 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센터 에서 여기에 다양한 인권 중증 2화 덩 그리고 다양성 인식 개선 활동 다양한 역 그 지역 사회의 단체들과 연대해 서 다양한 활동 듯 하고 있습니다 예 말씀대로 저는 맞아 연애 8 판에 2000은 어 1988 년 8월 팥 있죠 미야마 2에서 아 그때는 두 번째로 구체 차를 일으켰죠 그때는 저도 공무원 이었어요 4 공무원이 얻고 같이 함께 를 시위를 했어요 4 했지만 4 나중에는 점 아 어덯게 뜻 그 국궁 국에서 저희야 제타 1 패서 4 즉 땅에 다시 들어가라 4 협박한 이가 저희의 다 무서워 가져다 이름 계속 직장에 다시 들어가고 다 일을 시작했어요
왜 그걸 은 쉴수 였죠 예 가장 술수 였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측은 2021 년 내 여기에 주초 이 감염 아이보험 혁명은 치금 바지 위함 마 국민들이 끝까지 싸우겠다고 4 공무원들도 닿아 포기하지 않고 자기들의 4 끝까지 싸우겠다 고 서 하고 있는 상태라고 제가 4 보구요 그리고 한국에서 로 지금 아 아까 말씀대로 8 한국의 민주화 운동의 위에다 세계적으로 4 유형 하고 그렇잖아요 그래서 먀 말씀 국민들도 그걸 배우고 4 배우고 지금이야말로 한국을 많이 배우면서 내 기재 하면서 예 그렇게 매사 오고 있습니다
소식을 듣자마자 충격에 빠져요 4 어떻게 몇을 동안은 저는 정말로 정책 뭐 저야 4 밥도 으 4 밥맛도 없고 이래서 도가 손 즉 채 대로 늬 선 참 많 쓸까 없는거지요 안에 프라우 묘는 한 한달정도 달 정도 그래서 이제야 주 보면 우리가 4 힘내야 안다 우리의 밑에서 저 잊어 청년들이 있잖아요 그 대구에서 제가 납 쳐서 힘내야 한다네 그런 아집에 서로 저희의 그전에 4 얘들이 있고 여기 직전 센터에서 로저 엄마 탄 맡은 일이 있어가지고 네 그럴 경 경 하고 열심히 하고 있지만요
아 냐 많은 4시 왜 환한 하라는건 은에 저희가 2000회 십 년까지 좀 4 이제 십 년 어 그때부터는 야마의 민주화 꽃봉우리가 예 추적해 가지고 하다가 2016 년 의 집 년에 바로 민 졸고 좁혀 짜 나요 튀고 그래서 며 마구 매드 그 아 그 행복으로 내 편하게 사기를 시작했고 매 세계의 서로 마음이 익으면 말을 원해 주목하게 되고 그랬다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저희한테 엄마 나 내 환하고 소프너 일이 있는데요 어 이거 오이나 저도요 이 생각한 날에는 이래 주의로 시작했어요
하고 내 일 년이 거유 1 2루 일은 아 여기 수원역으로 가니까 4 청년 전면 맞춰 있는 조명 명만 낫더라구요 네 그래서 저희 센터와 함께 합시다 하면서 그때부터 다 여기에는 쓰든 4 보여주지 만들고 시작했어요 그럼 얌마 젊 처마 자 그럼 감정이 있는데 이 점은 일이 더 그렇죠 네 같은 친구들은 저기에서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음 너무 2층 구 드림 쫓아가서 싸우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에요 저 자기들 최적화 느낀 거죠 전 후 그건 아니다
여기 들어가서 써레 도 온에어 어떻게 우리가 찍은 현재로서 매 익힐 수 없다 4 그리고 지금 얼마나 힘들고 있잖아 국민들이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서 없게 한 입만 너무 많다 내측 음 첫 번째 이런 하러 왔다 병거 하고 있다 코드 오늘 오면 말을 지원해주면 지금 많이 도움이 되고 예 우리 친구들의 여기에 와서 목소리 낼 수 있잖아 야만의 가자 목소리 내면 자 새벽 파여서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여기에서 우리는 큰 목소리 내고 4 여기에 음약 한국식 멘즈 3개의 우리 네 중 5급 바짝 그런 식으로 저희가 4 끌로 봤습니다 아 네 저희가 그렇게 스완 약 억 근처에 가서 c 를 하고 있는데 아 한국 분들 4 여기 보내도 보아서 저희 르 연대해 주셨잖아요
현재 가서 저희 만의 힘이 없을 거예요 내 축융 센터에서도 제가 한다고 하니까 격이 쓴다 활동과 선생님 좀 내 함께 합시다 하면서 아사 자면서 저희가 함께 한 이가 오직 책으로 너무 감사하죠 4 감사하고 저의 산에서도 올리고 4 우리르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하니까 대암 마이의 있는 시멘트 도내 마구 면제로 아노 감사하고 내 많이 패미 돼요 있죠 그래서 우리 친구들 너무 감사하다 강사 한다 감사한 마음 베풀기 위해서 저희는 아 아 어째 이 헌 이어 치프 해 줘 4 스토리가 있는 현 여지 패도 4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청년들과 함께 요기 인을 뭐 영이 함께 오신 분들도 다 모두가 내 하게 바 그래서 저희가 하루에는 어둠이 두세 명씩 많으며 1 어 여러 명 서 00 까지도 오 내 매주 매주 이렇게 헌 여로 하게 되었어요 다시피 코로나 때문에 저희가 네 방향의 코나 방학의 위해서 어 제대로 못하죠 그때 내며 노인이 미만 얘는 내 5 행위자 모일 수 없다 라고 했을 때는 또 하나는 저희가 아 그때도 888 다 기념 인가 봐요 그래서 저희가 어 나인 스트라이크로 로 하고 4 여러분 여러가지 그리고 인증샷 즉 구원의 올리기 일어 sns 로 올리기 그런 캠페인 들 왜냐하면 첫 가며 안 됐잖아요 그래서 매일 존의 적우 준이네 빠진 없이 예 생활 그럼 요 4 그걸 그렇게 에 가서 저희가 네네 얼 그 그 내에 있고요
4 보여주고 목소리를 내고 이니 가시는 분들도 함께 하고 내 저 2회 맘도 안되고 같이 함께 내 아우 망하고 내 사옥에 됐잖아요 그 다음에 그 저희가 안에 아 여기 미얀마 청년이 로 자기 제인 낸 네 저희 졸저 앞에 개새끼네 힘으로 제목 음들을 하고 있고 신는 분들도 같이 함께 저희 모금에 참여 했어요 4 참여해서 저희가 여기 에일리 커뮤터 치즈 그리고 또 미아 뭐 여기 한국에 있는 소수민족 보면 늦지 그리고 애니 우지 여기엔 으 아 대산 mn 유지 대성 그런 네트웍 들과 함께 해서 여기 중요하다 필요한 지역이죠 4 치료 한 지역에서 저희가 4 아직 만큼 또 보내고 그리고 물품이나 좀 마스크 그런 보내기 등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 저그 미얀마는 학교가 지금 몬타 끼 인해 한 찾지는 2년 됐잖아요 네이년 되서 학생들 학교로 다닐 수 없어서 저희가 그 학생들을 위해서 여기 ay 미미 아마 대학생들과 함께 에 한국어 원의 4 봉사 레버 라인으로 봉사를 하고 있어요 하고 있다가 지금 금 부가 또 인터넷 요금을 또 올래 올린 거예요 그래서 학생들의 못하는 상황을 드리고 그래서 저희가 그래서 인터넷 요금 여기서 지원 식으로 네 그렇게 여러 방법으로 전에 도와주고 있습니다
아 지금 얼라인 으로 미얀마 현지 학생 가 4 현재 학생들한테 는 한국어교육 음 않다 세요 4항 법 일과 네 그 학생들 다른데 내 컴퓨터나 영어로도 하고 있다라고 이 여기에 시작해서 자 안에 그렇게 바다에서 많이 하고 있더라구요 저는 여기에서는 그 아가 함 한국어 어 뷰 부마 아니다 지금 여기 와 있는 한국 청년들이 있잖아요 여기에 와 있어 가지고 여기에 있는 배우 뭐 이 있는 동안에 배우 만큼은 배우고 가라 라는 뜻으로 그래서 여기에 저희 센다이에서 전부 요
러가기 토론이나 강우 위해서 참여하게 됐어요 4 참여 룩 만들어져 안에 참여하게 해서 여기에 다양한 세계 시민 교육 뜰 4 아 그런게 같이 함께 활동 하고 토론하고 그런거 a 친구들 다 배워서 너무 좋아 가지고요 그리고 어 또 여기입니다 한국계 민주화로 배우고 싶다 라고 해서 저희가 네 그럼 강의 같은거 좀 해주고 그리고 저희 으 광주 어머니의 4관 주에게 내민 좋아 어머님 드와 구독 염려 연결해서 4 서로 아 아 천천히 숲 꾸 네 그런 프로그램도 해봤어요 4 사실 서 저는 문학 조금의 전공한 사람이라서 문학 을 좋아해요 그래서 제가 아시아 허브 저 승원이 거야 아냐 나 서울의 아자 허브 문화 영웅 소 4 으 통해서 제간 그 동화책 으 번역 하게 되고 그리고 저희 자자 까지 4만 들게 만드는 길에게 주셨죠 4 아자 허브에서 그랬다가 지금의 마 사태가 그렇다
다한 인가 저희가 안에 후원금도 4 받은 것을 받아 고 어떤 께 내요 뭐 해야 되는지에 반복 부 찾아 내가 대표님도 트라움 에 관심이 있으세요 그래서 태조 내일 얘기해 줘 어떤 저희한테 지금 어디야 라고 해서 내려 님께서 4 가서 저런 애 후원해 주시고 고스 거 로 저희가 4 후원자들에게 4 그 채 끈한 얻을 인것 했어요 그래서 어 나 전에도 지금 연마 어 교 제드 기부 해주셨어요 그래서 저희 가게 돼서 지금 그 책들로 4 나눔 욕을 합니다 4 여성에 대해 저안에 맞아요 내가 부정적 게 있잖아요
안거하고 그 보다 넓어 사내 조금도 또 좀 다르게 내 그래도 내 좀 그러면 들이 있었어요 내 그리고 무비 요 문화 바탕으로 선의 여성들이 조금 이렇게 배제되는 4 상태였고 아이 꽤 며 어디든지 줘 그저 여성들이 좀 그리고 적 거 그게 소극적으로 하는 며느리 너무 많았었죠 그런데 지금 고된 4 이번 내 게임 야마 에 보험 혁명 예 동안은 정말 저도 놀라 만큼은 안내 여성들이 이제 내 일찍이 많이 퍼 코트는 너 퍼졌다 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것에 대해 도 받아 들리는 내 우리내 그 전원 2 3 애들도 너무 감사하죠 네오 이제는 여자들이 와서 이 남자들 그러나 생각도 없 쓰죠 알았는데 아니야 몸에는 맞지만 있고 어느 나왔 아니 제가 깜짝 놀랐어요 4 그래서 지금은 이 때 내 우리 냉 라세 찌지 3 대저 아내만 2일 찍기 반해 편안히 되었다 1 개선 해댔다 라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요
약해도 우리 엄마가 아직도 네 아 부교 나라 불교 9 가 라고 고집이 세 이기 때문에 여 그거로 조금 아 아쉬운 것 전에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제 그 무효로 쪼끔 내 쪼다 a 면으로 즘 보이기는 시작했어요 이렇게 무교 라는 것은 앤 사시는 종교적 극우 란에 일찍 으로 좀 에 가야 되는데 그걸 좀 다른 면으로 그걸로 4 아 이건 음 그 거에요 뭐라고 해요 응 225 뭐 제 군부의 영향이 받은 거에요 사실 4 그것때문에 아 지금은 여성 데이즈 도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있다 라고 생각하고 요 앞으로도 우리 여성들이 찍음 너 아 다 수 있죠 뭐지 아 비무장 지대에서 다 싸우고 있어요
남이 얼 안에 9분이 없더라고 하며서 그래서 앞으로 많이 좋아질 거다 라고 생각합니다 너희가 지금 아 이년이 됐는데 너무 하고 쉽지만 여 어 어떻게 내 지금은 미야마 안에 해서 지금 pdf 라는 어쩔 수 없잖아요 지금 아 처음에는 야 마구 맨즈 어느 가 맨손으로 5 내내 살려주세요 로 와주세요 라고 외치고 있었을 때 다음해 그 어떻게 해결이 안 됐어 짜 나요 그래서 많은 아 희생자들 나와 하고 나오니까 어쩔 수 없이 차기 그려 자기 너무 보호하기 위해서 빚이 어브 보호하기 위해서 어져 부스 없어 이마 때 싸우게 돼 있었고 는 서울의 데다가 또 저쪽에서는 어디에 는 더 뭐 그게 세력이 많잖아요 그래서 여기에서 어떻게 지금 하네요 한국내 공격까지 해버린다 지금 이 엄마가 정말 완전히 전쟁터가 되고 잇닿은 말이에요 4 국민들을 다음에 마구 면제 지금 아부 받아들이 있는 제 마을을 써도 시즈 도 있고 그래서 실린 이 업계 나와가지고 다 남는 tn 않는데도 이고 그 분만이 야 아까 조용하다
라는 그 지역의 사람들도 언제 얻게 되는지 모르고 불안하게 사고 이내다 내 엄마의 사고 인해 다 모두가 났는데도 되는거예요 그래서 이 네 마 국민대 어떻게 도와 좋아하다 는 방법 밖에 없는 거에요 저희가 예 들어가자 사우스 고 없고 4 그래서 어 여기에서 우리 청년들 너무 잘하고 있어 여지가 오고 저희 나머지 완제 2 저거 어 완 데이 그거 구간 그거로 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루 한 달에 하루에 인해 인건비 이런 에 모여서 면 마 로 보내 내 거 그거 로 하고 완득이 캠핑 이러하고 이고요
아 저희도 그래서 어떻게요 파스 이니 마크 여기에서 내 지금 화면에 근무한 금은 10m 마문에 마련해서 보내는 거잖아요 어제 그저께 도저히 가 아내 50만원으로 보냈어요 4 그래서 사람 되묻지 겁네 피해 나와가지고 내피 나와선 카드가 없고 예 엄마 음핵 와 내죠 됐고 그래서 뭐 나 2부 2부 라고 쌓아 네 그렇게 지원 해주는 거죠 그래서 저희가 앞으로 오늘 지금 그렇게 할 수 있는것 밖에 없고요 두번째는 국제 어쩌다 미얀마에 지금 국민 정부 저의 니 우지 라는 4 꾸민 정보를 세우고 있어요 예 아 세우고 있다는 거는 4c 는 어쩔 수 없어요 네 지금 n 유지로 저희가 안에 이들 세 잔의 키워야 다고 생각해요 4 이젠 유지로 저희가 전에 키워주고 n 유지로 줘 국제 에서 인정해줘야 그러 야이 군부 로 싸울 수 있다 4 물론 늘 무너뜨릴 수 있다 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것을 위해서 저희가 그 nu 지드 저희가 아님 조금 더 내 힘이 좀 해 실어줄 수 있는 방법들 하고 있습니다 지금 엔마군 맨 들이 임야 마에 보험 우붓 알고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죠 언제 아 온 지 모르겠지만 꽃 5 거지 다 라고 믿고 4 저희가 지금 야마 에 너무 위험하고 공부 게 더 보인 n 야마 이들을 잊어버리면 안 되고요 4 왜냐 자식아 니가 수록 다 안에 잊어 지니고 때문에 저 앞에서 매주 1위라는 피우거나 눈이와 또 네 꼭 가서 어 내 목소리를 내고 내 얼굴을 보여주면서 제초 크게 연대하고 있다
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고요 그리고 미얀마 국민들에게도 4 한마디를 하고 싶구요 4 으 힘내세요 여러분 4 야마 에 봄이 꼭 찾아 오 거지 입니다 그때 가지 우리가 함께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싸워야 합니다 4 싸워 싸워야 익혀 내야 되고 그래야 우리가 평화롭고 아름다운 내 아마르 다시 만들어 수 있고 냠 아예 민주와 사회로 같이 함께 만들지 다 그런 말씀은 하고 싶어요 그리고 여기 한국 신이 여러분들의 그래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2 와 이리 9 데다가 일어나자마자 야마 에 큰 관심을 해준 응원도 해주고 물 찌 어 지원까지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저와 함께 매주 일요일 나 함께 해주신 동지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리고 새해 에어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또 4 있어 이의 아마 사태는 한 나라 한 구성원이 게 문제가 아니라요 그런 문제가 생긴다 며 전세계 다음 5주 4 사회적 있고 경제적이고 타협이 있는 거예요 다 모두 의 먼제 라고 생각하면서 함께 4 풀어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4 야 마구 맨 들이 힘이 없이 궁 부여 3 저도 위험에 빠져 가지고 아까처럼 에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한해도 이거는 내부 사정이 다 라며 외면이 해버려 가지고 야마 사람들은 회만 십 년 제 많이 실 많이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몬 본인들이 스스로 네 스스로 우리가 4 아 이거 르 4 아 방어해야 한다 란 음식으로 지금이 4 힘으로서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얻는 것도 창 와 로 예사 오고 있다 라고 오네 아 알아주시고 오해 하지 마시고 코 것에 대해 함께 싸워 주시면 야마가 빨리 저희의 민주 받고서 다시 4 튜 어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의 함께 해야 하는 방법 2 쫓아 자 내주시고 냠 a 네 엄마와 함께 해주시기 부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