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1980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
격동의 동아시아에서 중심을 찾다 : 사랑방의 젊은 그들 규슈를 품다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 정다은 · 서울대학교
들어가며
원자력은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이중용도 기술적 속성으로 인하여 핵비확산성을 충족시키는 조건 하에서만 평화적 이용이 장려되고 있다. 실제 ‘이용 확대’와 ‘효과적인 규제’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원자력 기술에 대한 다자 혹은 양자 간 국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원자력 양자협력은 원자력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가 이를 수용하는 국가에 주요 기술과 물질을 공급 또는 이전하는 대신 이에 대한 규제와 통제권을 행사하는 구조를 보인다. 즉, 공급국의 권리와 수요국의 의무로 맺어지는 일종의 비대칭적 협력 관계라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일본은 제 2 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의 위력을 직접 경험한 유일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핵심기술 상용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무엇보다 세간의 이목을 끄는 점은 일본이 NPT 에 가입한 비핵국가 중 유일하게 주요 핵연료주기시설을 보유한 국가로서 준핵국의 위상을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제사회 내 일본의 핵에 대한 위상이 격상되었던 근본적 배경엔 1988 년 개정된 ‘미·일 원자력협력협정’(AGREEMENT FOR COOPERATION BETWEEN THE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GOVERNMENT OF JAPAN CONCERNING PEACEFUL USES OF NUCLEAR ENERGY)이 있다. 일본은 협정 개정을 통해 재처리기술과 플루토늄 사용에 관한 권한을 확보하고 미국과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자율적인 원자력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현재 산업용 수준의 농축과 재처리 시설은 물론 다량의 플루토늄도 보유하고 있다. 미·일 원자력협정을 기점으로 핵의 평화적 이용에서 군사적 이용으로의 전환의 경계에 서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협정 개정교섭과정이 종래의 일본 대미외교와 달리 미국과 상당히 대등한 입장에서 평등한 내용의 협정을 체결하였다는 것이다. 약 5 년간 이어진 협상은 신규제의 도입을 요구한 미국에 대해 일본이 일방적인 양보를 거부하면서 난항을 겪었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의 요구가 최종 합의문에 다수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반영되었다. 이는 당시 미국이 에너지뿐만 아니라 경제와 안보 무대에서 일본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례적인 외교적 사건이었다.
본 보고서는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 사례를 분석하여 미국이 일본에게 군사적 이용이 가능한 원자력 기술을 허용한 배경을 고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를 위해 1980 년대 미국과 일본이 직면한 대내외적 상황을 레이건 대통령과 나카소네 총리의 정상회담을 통해 먼저 검토하고 그에 따른 각국의 통상정책과 원자력 정책 및 관련 법률의 변화 양상을 살펴본다. 특히 당시 미·일 관계의 가장 큰 화두이자 협상의 대상이었던 자동차 무역 분쟁(1980-81)과 반도체 협정(1986), 그리고 원자력 협정(1988) 사례를 통해 ‘1980 년대’라는 하나의 같은 시간 축에서 ‘에너지’와 ‘경제’ 무대 위 다양한 주인공들의 연기가 어떻게 복합화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나아가 미·일 원자력 협정에 관한 청문회 자료를 통해 앞선 상황적 맥락이 반영되었는지 재확인함으로써 당시 협정 개정을 둘러싼 다양한 행위자들의 이해관계를 파악한다. 이처럼 당시 정책결정과정에서 나타난 각국의 국내정치와 미·일 간의 양자 관계에서 나타난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어 협상 과정과 결과를 재구성함으로써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안이 미 의회를 통과하여 체결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본 보고서는 각 사례 연구에서 도출한 경험적 결과에 기초하여 미국의 관점에서 원자력협력 개정의 요인을 추적할 것이다.
1980년대 미·일 관계: 에너지와 경제 무대
1. 레이건 – 나카소네 정상회담
초기 레이건 행정부는 기존 카터 행정부와 달리 일본을 포용하는 정책을 추구했으며 나카소네 총리와는 소련의 위협에 대한 공통된 시각을 바탕으로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81-1988, Volume XXX, Japan; Korea, 1981-1984 와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81-1988, Volume XXX, Japan; Korea, 1985-1989 가 아직 공개가 되지 않은 관계로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 사이에 어떤 긴밀한 대화가 오갔는지 직접 확인하기에 아직 한계가 있다. 따라서 본 보고서는 선행연구로서 1985 년을 기점으로 1980 년대 이루어진 레이건 대통령과 나카소네 총리의 정상회담 성명문을 크게 세 가지 주요 사안들(⓵평화/안보/국방, ⓶경제/무역, ⓷자유민주주의/진영 논리)으로 나누어 어떻게 논의되었는지 살펴보았다.
1983 년 5 월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⓵평화/안보/국방과 ⓷자유민주주의/진영 논리에 관한 사안을 중점적으로 다루었으며 미·일 동반자 관계와 지속적인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Reagan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Library, 1983). 같은 해 11 월 30 일 정상회담에선 당시 아시아, 중동, 카리브 해의 정세와 미-소 간의 중거리핵전력 협상을 포함한 글로벌 차원에서의 군비통제와 동서관계가 주요 화두였다. 이를 통해 자유민주주의의 공통적인 사상과 가치를 기반으로 미·일 안보 협정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연대를 약속하였다. 두 차례의 회담에서 ⓶경제/무역 사안은 전반적으로 국제 무역 및 금융 시스템의 자유화와 보호무역주의 퇴치, 인플레이션 없는 경제 발전, 개발도상국 지원 등 거시적인 경제 문제와 세계 자유무역체제 공고화를 위한 다자간 무역 협상이 강조되었다. 미·일 관계에선 엔-달러 환율 개선 조치를 이행하고 감시하기 위한 장관급 실무반을 설치하고 상호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구체적인 조치들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레이건 대통령은 만약 무역 분쟁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미·일 사이의 국제 파트너십의 비전의 실현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나카소네 총리를 압박하였다(Reagan Library, 1983).
1985 년 정상회담에서 미·일 무역 분쟁은 가시화되었다. 비록 성명문은 미-소 간의 제네바 무기 감축 협상에 초점을 맞추어 국제정치 현안(⓵평화/안보/국방+⓷자유민주주의/진영 논리)을 논의했지만 이후 양국 간의 무역 관계(⓶경제/무역)를 최우선 과제로 언급하면서 성명문의 대부분을 할애하였다. 미국은 일본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고 보호주의 압력에 저항하는 것을 장기적 목표로 일본에게 자본 시장 조치와 같은 긴급한 협력 조치의 시행을 촉구하였다. 특히 첨단 기술 분야에서의 적극적 협력과 자본 교류가 특징인 새로운 시대를 맞아 보다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일본도 내수 주도의 성장을 강화하고 시장 개방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위한 공동 후속조치를 약속했다(Reagan Library, 1985).
1986 년 4 월 정상회담도 ⓵평화/안보/국방에 관한 사안을 짧게 제시한 후, ⓶경제/무역 사안의 일환으로 미·일 무역 문제가 중점적으로 논의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미·일 무역관계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무역 불균형’을 꼽으면서, 제조업과 기타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시장접근성 향상과 무역 확대를 위한 구조적인 조치를 시행할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이에 나카소네 총리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압력을 지적하면서도,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일본 정부는 무역 흑자를 줄이기 위해 국제 무역 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근본적인 정책 변화를 꾀할 것을 약속했다(Reagan Library, 1986).
1987 년 5 월 레이건 대통령과 나카소네 총리의 두 차례의 정상회담에서 무역 마찰의 신속한 해결을 위해 정책적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했다(⓶경제/무역). 두 정상은 양국 간에 심각한 무역 불균형에 더 이상의 달러화 가치 하락은 저해가 될 수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나카소네 총리가 금리 인하를 통한 내수 확대를 비롯하여 미국 상품에 대한 시장개방 확대, 300 억 달러 규모의 대외 원조 등을 약속했다고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밝히면서 그 대신 자신은 보호무역의 압력을 완강히 저지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나카소네 총리도 미국에 대한 일본의 심각한 무역 불균형이 세계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국내 성장 정책과 일본 소비자 수요 확대를 위한 노력을 재확인했다.
우리 두 나라 사이의 무역은 예상대로 치열한 논의의
영역이었다. 일본과 미국 모두 현재의 무역 불균형이 정치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긴급한 주의가 요구된다.
총리는 나에게 그의 정부가 취하려는 조치들을 설명했고, 나는
그러한 긍정적인 조치들을 지지하며 우리는 곧 상황이 호전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낙관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공동성명에
기술된 바와 같이 경제정책에 대해 긴밀히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물론 미국도 제 몫을 해야 하며, 우리가 재정적자를
줄이는데 전념하고 있으며 미국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나카소네 총리와 내가 동의한 접근법과
일관되게, 태평양 양쪽에서 보호무역주의는 강력하게 반대될
것이다(Reagan Library, 1987).
그러나 레이건 대통령은 ‘공정한 자유 무역’이라는 정책 기조를 토대로 무역 수지 불균형 문제에 대한 빠른 해결책을 또 다시 촉구하였다. 각국의 의사결정 과정에 관여하는 국내 정치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기회의 증가를 가져올 수 있는 제조업, 농업, 건설업, 금융 및 첨단기술 산업에서의 일본 시장 확대를 요구했던 것이다.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보이지 않는 다리가 있다. 우리 두 민족의
노력과 상업적인 천재성, 그리고 생산적인 힘에 의해 건설된
다리다. 우리는 그것이 질서 정연하게 유지되고, 삶을 개선하고
행복을 증가시키는 상품과 서비스를 운반하며, 양쪽 방향에서
동등한 강도로 운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Reagan Library,
1987).
한편 나카소네 총리는 양국 간의 우호 협력 관계적 측면에서 접근했다. 레이건 대통령과 달리 군비 통제 문제를 먼저 거론하면서 세계 평화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서방 국가들의 연대를 강조하였다. 즉 국제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양국 관계가 흔들리지 않는 토대 위에서 발전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는 미일 간에 통상 마찰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고 그런 상황이 양국 간의 우정과 상호 신뢰를 해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데 동의하였다. 이에 따라 적극적이고 일관된 정책 조치의 필요성을 확인하면서도, 기존 회담과 달리 상대적으로 일본이 취한 기존 조치들의 성과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우리의 막대한 경상수지 불균형이 세계 경제의 건강에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이 상황을 근본적으로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시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양국이
적극적이고 일관된 정책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공동의 정치적
결의를 확인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공동성명에 기술된
바와 같이 미시경제 정책과 환율에 대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결정했다... (중략) 대통령과 나는 다른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해
보이는 만족스러운 경과를 언급했다. 양국 정부는 남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나는 대통령에게 우리
정부가 상당한 규모의 특별 예산 조치를 통해 수입 확대를 위한
노력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Reagan Library, 1987).
또한 나카소네 총리는 베니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일본 반도체 산업에 관한 미국의 규제 조치는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미국 프레스 클럽에서의 연설에서 나카소네 총리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자유무역체제를 붕괴시킬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그는 ‘어제 하원을 통과한 무역법안이 법으로 최종 확정될 경우, 세계 무역은 크게 위축될 것이다’며 하원 무역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기를 강력히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에서 레이건 대통령은 가장 심각한 현안인 반도체 보복관세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으며 베니스 회의까지 해당 사안을 유보하는 등 두 정상은 타협을 이루지 못했다.
2. 에너지: 1980년대 일본의 에너지 정책과 원자력 발전 세 가지 주요 사안 외에 주목할 점은 1983 년과 1985 년 정상회담에서 모두 미국이 에너지 무역의 확대를 강조했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은 세계 최대 석탄 수입국으로 미국은 호주와 캐나다와 함께 일본에 석탄을 공급하고 있었다. 또한 레이건 대통령은 에너지 협력 협정에 대한 이행 가속화와 에너지 무역 확대가 가져올 일자리 창출 및 에너지 안보의 강화 효과도 재차 언급하였다. 미국과 일본의 공동 노력을 통해 에너지 안보의 상호 취약성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카소네 총리는 성명문에서 에너지 무역에 관하여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1980 년대 들어 일본은 두 차례의 석유위기를 계기로 에너지 수요를 낮추고 에너지 공급원을 다양화하기 위하여 국가 에너지 정책을 극적으로 전환하였다(방기열, 2007). 에너지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효과적인 정부-기업 협력을 통해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원자력과 천연가스 도입 촉진 및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가속화하였다. 이 가운데 전통적으로 세계 에너지 시장에 관여했던 통업산업성(통산성, Ministry of Internationl Trade and Industry, MITI)이 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이끌었다(Morse 1981, 5). 그들은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먼저 산업용 석탄 화력 설비을 위한 증기 석탄 수입을 검토했다. 그러나 석탄은 화력 발전소 건설에 있어 기술적·환경적 제약이 많고 원자력 발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또한 대량의 미국산 석탄을 수입하는 것이 일본의 에너지 안보를 강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경제적 적대감만 악화시킬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었다.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지나친 대일 의존과 같이 자국의 잠재적 미국산 석탄 의존도가 양국 관계를 긴장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Gale in Morse 1981, 85-105). 비록 미국으로부터 석탄을 구입하면 수지 적자 개선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은 아마도 미국 시장을 점점 더 파고들 고부가 전자제품의 영향을 상쇄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반면 원자력 발전은 외국 석유와 기타 원자재에 대한 국가의 의존도를 감소시켜 일본 안보에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Suttmeier in Morse 1981, 106-109). 당시 일본은 원자력 발전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비용을 들여 자체 연구 개발 능력을 함양시킴으로써 원자력을 독자적인 에너지원으로 삼고자 하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핵의 평화적 이용’ 선언 이후 미국의 원자력 계획에 동참한 첫 국가였던 일본은 1955 년 미국과의 ‘원자력연구협정’ 체결 이후 빠른 속도로 원자력산업의 성장을 도모하였다. 1956 년 원자력위원회의 신설과 함께 원자력 발전에 대한 장기 계획을 수립한 이래로 핵기술 통제 요건인 농축과 재처리 기술에 있어서 높은 수준을 유지해왔다. 이에 따라 자국의 원자력 기술 능력을 자체적으로 향상시키면서 고도화된 원자력 선진 기술을 보유한 국가로 인식될 수 있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일본의 선진화된 원자력 프로그램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원자로와 핵연료주기 영역에서 상당한 정도의 기술적 자율성이
달성되었다... 핵연료주기에서 보다 많은 공급 자율성을 획득하는
것이 일본의 중요한 에너지 안보 목표이기는 하나, 특히
미국과의 국제협력이 일본 프로그램의 중요한 요소이다(Reagan
1987, 206-209).
1980 년대 초까지 이 목표를 향한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졌다. 미국의 기술 지원을 받지 않고 프랑스 아레바(AREVA)와 코제마(Cogema)와 같은 원자력 기업들의 설계 지원을 받아 구축된 토카이무라 재처리시설이 연간 90 톤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함에 따라 보다 자율적인 원자력산업 활동을 진행할 수 있는 역량이 마련되었다. 일본 내 상업적인 재처리를 위한 제도적 기반도 마련되었다. 핵 정책에 대한 정부 권한은 공식적으로 총리실에 집중되었으며, 일본원자력위원회(JAEC)가 자문 역할을 맡았다. 통산성도 면허, 안전 규제 및 발전소 검사, 부지 선정 및 원자력 발전의 대중 수용 촉진, 그리고 공공요금 설정에 관한 권한을 행사했다. 이처럼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일본의 원자력 기술 개발의 진전은 산업 구조, 연구개발, 착석 및 인허가, 우라늄 획득에서 비확산까지 다양한 활동에서 정부와 산업이 긴밀히 협력한 결과였다.
3. 경제/무역: 1980년대 미·일 경제와 무역 분쟁의 배경
1980 년대 레이건 대통령과 나카소네 총리의 정상회담은 각 시기에 따라 정도에 있어 차이를 보였으나, 점차 ⓵평화/안보/국방과 ⓷자유민주주의/진영 논리와 같은 군사적·안보적 현안에서 ⓶경제/무역, 특히 미·일 간의 무역 분쟁에 관한 사안으로 주요 논점이 옮겨갔다. 이는 세계 경제 질서의 변화와 함께 양국 간의 무역 불균형 문제가 심화되면서 불거진 것이었다.
1970 년대 이후 발생한 일련의 대내외적 요인들로 인해 글로벌 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과 위상이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1973·1979 년 두 차례에 걸쳐 나타난 오일쇼크와 그로 인한 자원 파동, 실업률 증가, 인플레이션 심화, 전통적 제조업의 경쟁력 상실 등 미국 경제는 침체 국면에 빠졌다. 무엇보다 1980- 1985 년간 40% 가까이 상승한 달러화 가치는 당장의 수입비용 하락 효과보다는 수출경쟁력 훼손으로 이어져 전례 없는 무역 적자를 불러왔다. 단순히 무역적자 문제만이 아닌 경기 둔화, 생산성의 구조적 하락, 주변국의 추격 등이 맞물리며 미국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본질적인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미·일 무역 분쟁의 시작은 이러한 미국의 위기감으로부터 출발하였다. 당시 미국의 주요 통상협상 상대국이자 최대 무역불균형 상대국은 바로 일본이었기에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는 기폭제로 작용하였다(United States Census Bureau, no date). 1980 년대 초반 레이건 행정부는 감세정책과 국방비 증대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레이거노믹스'를 추진하여 미국 경제를 회복시키고자 하였지만, 오히려 감세로 인한 수입확대와 국방비 증가로 무역수지 적자폭이 증가하고 재정적자폭이 확대되는 ‘쌍둥이 적자’가 심화되었다. 국내 제조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압력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미국 산업의 경쟁력 상실은 미국 자체의 문제가 아닌 다른 국가들의 불공정한 무역에 의해 유발되었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다.
1985 년 플라자 합의를 기점으로 미·일 무역 분쟁의 초점은 첨단산업으로 옮겨가기 시작했으며 미국 통상 정책도 자유무역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유롭지만 공정 무역(free but fair trade)'을 추구하는 '전략적 무역정책(strategic trade policy)'으로 변화하였다. 첨단산업과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선 특정 산업에 대해서는 자유무역이 아닌 미국 정부의 보호와 지원을 통한 보호무역이 필요했다(Tyson 1992, 258; Gandolfo 2014, 277-278). 당시 미국에서 반도체 제조 능력과 경쟁력이 미국의 산업 건전성과 동의어인 동시에 선진 산업경제의 미래로서 국가 안보에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반도체 분쟁은 레이건 행정부의 크나큰 시험대로 여겨졌다.
에너지 무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
1. 레이건 행정부의 원자력 정책과 핵 비확산법
1970 년대 미국은 핵기술 통제 정책에 대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1974 년 인도의 핵실험은 핵보유국으로서 미국의 국제적 위상의 재고와 미국의 핵기술 및 핵물질 수출에 대한 보다 보편적이고 강경한 통제 요건을 촉발시켰다. 당시 산업용 원자로에서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은 고도로 집약된 과학기술로 그 가능성 자체에 대한 경각심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인도의 핵실험 성공은 국제사회에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핵 기술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카터 행정부는 강력한 다자 핵수출 레짐을 구축함으로써 재처리와 농축 시설에 대한 규제와 민감한 핵물질과 핵기술에 대한 보편적인 통제 조치를 마련하였다. 동시에 양자 관계에서 핵기술 통제 강화를 위해 ‘핵 비확산법(The Nuclear Non-Proliferation Act 1978, NNPA(1978))’를 제정하여 엄격한 비확산 규제를 의무화하고 미국 원자력협력에 대한 의회의 참여를 강화하였다(US Govinfo, 1978). 이 가운데 원자력법 제 123 조는 미국 정부로 하여금 협력 상대국과 일정한 규모 이상의 원자력 협력을 맺고자 할 경우 엄격한 핵비확산 요건을 신규체결 또는 개정 협상 시 협정에 반영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OCED, no date). 이러한 미국의 요구는 협력 상대국에게 원자력 산업 활동에 대한 더 많은 제약을 의미하였다. 일본의 원자력 발전에 대한 강력한 의지도 1978 년 미국 핵 비확산법으로 인해 주춤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발 연료의 재처리 또는 재전송에 대한 새로운 허가가 필요했기 때문에 일본의 독자적 연료 주기 개발 계획도 새로운 불확실성에서 직면하였다.
1980 년대 미 의회에서 핵확산금지의 분위기가 강세를 보이던 상황에서 출범한 레이건 행정부는 ‘핵확산금지’를 미국의 대외 원자력정책의 기본정책으로 그대로 계승하였다(Beckman, 1985).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는 국내 원자력 정책에서 카터 행정부의 강경 노선을 비판하며 기존 정책의 상당 부분을 변경하였다. 무엇보다 1970 년대 석유위기 이후 새로운 에너지 공급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원자력을 에너지 공급의 주요 원천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1981 년 10 월 발표한 ‘원자력정책 이니셔티브’는 원자력에 대한 규제 및 허가 절차에 대해 보다 완화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나는 이전 행정부가 미국에서 상업적 재처리 활동에 부과한
무기한 금지를 해제하고 있다. 또한 원자력 발전소에서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와 관련하여 일관되고 장기적인 정책을
추구할 것이며, 적절한 보호장치를 보장함에 따라 상업적 이익을
위해 규제를 제거할 것이다(Reagan, 1981).
미국의 경제 회복을 우선시했던 레이건 행정부는 기존의 엄격한 원자력 규제 조치와 수출 통제 정책도 완화하였다. 핵비확산법으로 인해 일본과의 명목적인 협정 개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일본을 핵확산의 위험이 없는 국가로 간주하고 재처리 및 플루토늄 이용을 일부 허용함으로써 원자력 선진국과의 관계개선과 함께 우호협력 관계를 증진하고자 한 것이다(The White House 1981, 2). 1974 년 인도의 평화적 핵실험 이후 재처리 시설에 대한 통제가 비확산의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그러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그러나 1979 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동서 관계가 악화되면서 레이건 대통령은 동맹국들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보다 현실적인 노선을 취한 것이다.
미국의 많은 동맹국들은 원자력에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적절한 안전장치 하에서 평화적인 원자력협력을 위한
예측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십을 다시 구축해야 한다.
이는 비확산 목표에 필수적이다. 우리가 협력 상대국과의
파트너십을 재건하지 않는다면 협력 상대국들은 자국의 방향을 토대로 ‘핵의 평화적 이용’을 이어 나갈 것이며, 이는 미국의
영향력이 더욱 줄어들게 만들 것이다. 결과적으로 핵확산 문제
해결에 있어 미국의 효율성은 더욱 감퇴할 것이다(Reagan, 1981).
이처럼 레이건 행정부의 비확산 정책은 동맹국들의 원자력 산업 부흥을 지향하되 자국의 영향력권 내에서 원자력 사용에 대한 통제를 보다 용이하게 하는데 집중하였다.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와 같은 다른 공급국들이 원자력협정을 통한 핵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였다. 국내법적으로 엄격한 비확산 정책을 추구한 미국과 달리 다른 공급국들은 상대적으로 원자력 수출 통제에 대한 완화된 요건을 제시했기 때문에, 책임 있는 공급국의 위상을 유지하고 수요국의 신뢰성을 강화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수요국들의 원자력 시설 구축에 대한 적극적 입장이 석유 위기 이후 불거진 에너지 안보에 대한 부정적 상황과 결부된다는 것을 고려하여, 핵확산 위험이 없는 고도화된 원자력 프로그램을 보유한 국가에 한하여 재처리 시설과 고속 증식로의 개발을 금지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2.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1982-1987)
레이건 행정부의 원자력 정책 변화를 감지한 일본 정부는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에 대한 미국의 장기 사전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협정 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1982 년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미국과 일본은 본격적인 원자력개정 협상을 시작하였다. 미·일 교섭은 크게 2 단계로 진행되었다. 제 1 단계 협의는 1982 년 8 월에서 1985 년 7 월까지는 주로 재처리문제의 해결과 협정 개정 문제 등을 포함한 양국 간 포괄적 협의가 이루어졌으며, 1985 년 11 월부터 1986 년 8 월까지는 협정개정을 목표로 제 2 단계 협상이 이루어졌다.
미국 측에서는 국무부가 실질적으로 교섭을 주도하였으며, 에너지부, 국방부, 군비관리군축국, 원자력규제위원회가 관여하였다. 국무부는 원자력 협력 사안을 미국 외교정책 및 국가 안보의 차원에서, 국방부는 국방 및 국가 안보 차원에서, 에너지부는 원자력을 에너지, 과학기술 및 환경 차원에서 접근하였다.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원자력의 안전성 확보 측면에서 원자력 시설 및 핵물질의 소유, 사용, 처분인가와 인허가 규제 요건을 수행하며, 군비관리군축국은 군비통제, 핵비확산 및 군축에 초점을 두고 있는 연방기관으로 핵확산 평가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이 가운데 협정 개정을 지지하는 국무부와 이를 반대하는 국방부의 대립이 두드러졌으나 국무부가 주요 결정을 독점하고 국방부는 협상에서 배제되었다(U.S. Congress. House Committee on Foreign Affairs 1987, 345-347). 일본 측에서는 원자력정책 결정을 주도하는 과학기술청과 통산성이 협정 개정을 둘러싸고 1 단계 협의에서부터 서로 대립하였으나, 2 단계 협상부터 외무성이 일본에게 유리한 교섭 타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교섭을 주도하였다(전진호 2001, 185-188).
1 단계 협상에서 일본은 이미 완공된 토카이무라 재처리시설 가동에 대한 미국의 허용을 가장 우선적인 협상안으로 고려하였다.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 이미 완공한 재처리시설을 미국의 국내법으로 인해 가동하지 못한다는 것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으로부터의 농축 우라늄 수입이 연 3 억불 수준에 도달함에 따라 미국 에너지 무역의 가장 중요한 수요국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협상 당시에는 미국과 일본은 상당히 대등한 수준에서 협상을 진행할 수 있었다(Yoshida 2018, 2-3). 그러나 일본이 원자력 규제가 더욱 강화된 상황에서 협정 개정에 대한 요구에 응하지 않는 전략을 취하면서 초기 교섭 3 년 동안 양국은 뚜렷한 합의에 이를 수 없었다. 결국 미·일 교섭 최종안은 일본이 요구하였던 단체추출방식으로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플루토늄 보관방식을 제외한 상업용 재처리시설 및 플루토늄 전환시설 건설이 2 년간 연기되었다. 이는 핵기술 통제에 대한 요건이 일본에게 유리하게끔 타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1985 년 재처리 교섭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미국은 기존 원자력협정의 핵기술 통제 요건에 대한 전반적인 개정 교섭을 진행할 수 있었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핵 비확산법을 협정 개정에 반영하라는 국내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 원자력관련 외교정책 수행에 있어 행정부가 행사할 수 있는 행정협정을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적용할 수 없었으며 협정 체결에 대한 의회의 최종 승인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반대로 협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불투명해지자, 레이건 행정부는 기존 국내법을 수용하면서도 장기 사전동의 방식을 도입하여 일본과의 윈윈 협상을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당시 일본 측도 제 2 재처리 시설 건설 문제와 더불어 미국과의 우호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였기 때문에 협상에 참여하는데 동의하였다(전진호 2002, 33- 35).
장기 사전동의 방식은 궁극적으로 일본에 대한 핵기술 통제 요건을 완화하기 위해 시도한 방법이었다. 표면적으로 미국의 핵기술 통제권인 사전동의권 내에 포함되지만, 비확산 영역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원자력 산업 활동에 대해 건별 보고 방식이 아닌 30 년의 기간을 두기 때문에 일본의 입장에서 보다 자율적인 원자력 활동이 가능하였다. 핵기술 통제 요건에 있어 4 대 핵심 요소인 제 3 국 이전, 재처리, 농축, 플루토늄 및 고농축 우라늄 저장이 모두 장기 사전동의 방식을 승인받았다. 특히 재처리시설 및 플루토늄 사용에 대한 장기 사전동의 방식의 허용은 일본이 자체적으로 원자력산업 활동에 있어 핵연료주기를 완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는 현재 일본이 준핵국의 위상을 가질 수 있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경제 무대: 미·일 무역 분쟁
1. 레이건 행정부의 통상법과 통상정책
레이건 행정부의 통상정책은 세계 무역, 생산, 금융 시스템의 변화에 의해 제기되는 도전에 대한 대응에서 발전하였다. 1980 년대 미국의 통상정책의 핵심 목표는 동등한 경쟁 기회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소위 ‘잘 봐주던 시대’는 끝난 것이다. 통상법의 변화는 미국의 상품이 해외에서 불공정하게 차별 또는 제약 받는 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전후 미 통상법의 역사는 1962 년 무역확장법, 1974 년 미국 통상무역법, 1988 년 종합통상경쟁력법을 기점으로 변화하였으며, 서서히 자유무역의 색채가 희미해지고 보호적, 제한적, 보복적인 성격을 띄었다. 이 가운데 1974 년 미국 통상무역법 301 조(Section 301)는 불공정 무역에 대한 구제 관련 조항으로 미국 제품의 판매를 현저히 감소시키는 관세, 수입 제한, 수출 보조금 등 불공정 무역을 행하는 무역 상대국에서 생산/제조한 물품을 수입금지하는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한다. 즉 외국의 불공정 또는 불합리한 무역관행에 엄격히 대응하되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경우에는 행정부가 일방적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다(US Govinfo, 1974).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미일 무역 분쟁이 가시화되던 1985 년부터 미 의회는 일본의 시장개방에 관한 성과가 없을 경우, 수입제한 보복조치를 취하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면서 레이건 행정부를 압박하였다(船橋 1987, 93). 같은 해 9 월 정부는 주요 타깃인 일본과의 무역관계에서 통상법 301 조를 적극 활용하는 '통상정책 액션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새로운 무역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였다(Cannon, 1985).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무역적자와 대외 경쟁력 저하로 인한 보호주의 압력은 더욱 심화되었다. 결국 의회는 1987 년 4 월 30 일 HR3(Omnibus Trade and Competitiveness Act of 1987)에 대한 로스텐코스키와 기본즈 의원의 수정안을 최종 표결에서 290 대 137 이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가결시켰다(Destler 1986, 96-107; US Congress, 1987). 1988 년 8 월 23 일 레이건 대통령은 HR4848 에 서명함으로써 1988 년 종합통상경쟁력법이 제정되었다(US Congress, 1988). 1988 년 통상법은 1974 년 통상법 301 조보다 광범위한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슈퍼 301 조라고 불렸다. 부당하고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수행한 것으로 여겨지는 국가를 감시대상국으로 선정하여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미 무역대표부에게 허용함으로써 무역 제재의 위협을 의무화하고 특정 무역 관행에 대해 조사를 대폭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통상 전문기관인 무역대표부로의 제재 권한 이양은 301 조 운용을 비통상적 요인에 의한 제약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조치였다. 1988 년 통상법은 강력하게 보호주의 정책을 지지하는 민주당이 의회 다수파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초당적 지지 투표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기존 경제 정책의 실패로 재정적자가 증대되고 일본의 불공정 무역관행이 미국의 무역적자를 더욱 누적시킨다는 불안 심리가 증폭된 상황에서 강력한 통상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국내 행위자와 이익집단이 의회에 압력을 가하기 쉬운 반면 행정부의 권한은 상대적으로 약하였던 미 국내정치 구조상 행정부는 GATT 와 대립되는 301 조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통상법 301 조를 앞세운 미국의 일방주의는 미국의 독자적 판단으로 무역 상대국의 제도나 관행이 부당하다고 간주하거나 협상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일방적으로 보복조치를 취하는 것을 정당화하였다.
2. 1980년대 대일 통상압력과 미·일 무역 분쟁
1980 년대 미국과 일본의 무역 마찰은 제조업과 첨단산업, 그리고 무역과 기술 분쟁이라는 ‘Two Track’에서 진행되었다. 주로 국내 통상법을 토대로 미국이 ⓵일본의 대미 수출을 제한하거나 ⓶일본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대일 수출을 늘려 무역 적자를 줄이고 미국의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두 가지 전략이 사용되었다(Ito and Hoshi, 2020). 통상법에 근거한 보호무역조치 외에 GATT 규정을 편법적으로 우회하는 회색 수입제한조치라고 불리는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수출자율규제(VER)’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1979 년에 덤핑 및 보조금 혐의를 조사하고 결정하는 기능을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였던 재무부에서 기업 활동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상무부로 이관된 것도 수입제한 조치가 급증한 원인이었다(권영민 2005, 59).
1) 자동차(1980-1981): 수출자율규제(VER)
미국에서 일본산 자동차를 둘러싼 갈등이 시작된 시점은 1970 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인해 일본산 소형 자동차의 대미 수출이 급증하면서부터였다. 상대적으로 연비 효율성이 뛰어난 일본 소형차로 소비자의 수요가 옮겨가면서 시장 점유율을 확대된 반면 일부 미국의 자동차 산업 근로자들은 일련의 해고 사태에 직면했다(Yoffie 1983, 221-230; Winham and Kabashima 1982, 82). 미국 내 자동차 시장의 구조적 변화로 인해 자동차 산업이 국가 간 경쟁의 대상으로 인식되면서 자동차 무역 분쟁에서 미국과 일본 정부 기관들뿐만 아니라 노조 단체와 자동차 산업과 같은 국내 민간 행위자 사이의 광범위한 상호작용이 나타났다. 특히 미국자동차노조(UAW), 빅 3 미국 자동차 회사, 일본 자동차 회사, 일본 정부, 미국 의회, 미국 행정부 등 6 개의 주요 행위자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1980 년부터 미국자동차노조는 1974 년 통상법 301 조에 의거하여 정부에 구제조치를 요청하고 일본 자동차 수출을 제한하는 수입 쿼터법을 추진하기 위해 행정부와 의회에 압력을 행사하였다(小峰 2011, 53-54). 같은 해 미 대선에선 대중 매체 인터뷰, 의회 청문회 참여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이 문제를 공론화하였다. 의회도 1980-81 년 미·일 자동차 협상에서 핵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주로 자동차 산업과 깊이 연관된 지역 국회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주도하면서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였다. 실제 1981 년 3 월 상원은 3 년간 일본산 자동차 수입을 연간 160 만 대로 제한하는 쿼터제 법안을 제출함으로써 자동차 수입 제한에 관한 일본의 양보를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다양한 국내 행위자들의 압력 하에 레이건 대통령은 1981 년 취임과 동시에 일본과의 거래 전략을 조정해야했다. 당시 행정부는 자동차 통상협상을 주도할 각료급 TF 를 설치하여 일본에게 대미 수출자율규제를 요구하는 방침을 구상했지만 자유무역주의자와 보호무역주의자로 나뉘어 통상 정책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였다. 교통부, 상무부, 노동부, 무역대표부는 일본 수입 자동차가 미국 자동차 회사의 실적과 전반적인 고용률 모두에 끼친 중대한 영향을 고려하여 보호주의적 접근을 지지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재무부와 행정예산국은 보호주의 정책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지적하면서 수입 규제안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이들 모두 GATT 체제 하에 자유 무역 의지를 유지하면서도 자동차 산업을 회복시킬 수 있는 행동 방침을 찾아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레이건 행정부는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보호주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기존의 자동차 무역 관계에 변화를 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기존 대미 무역 관계로부터 반사 이익을 얻고 있었던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현상 유지를 추구하였다. 이미 일본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미국 시장 의존도(20-40%)가 매우 높은 상황에서 대미 수출을 제한하라는 요청에 비협조적일 수밖에 없었다(Reich 1989, 572). 반면 미국과의 자동차 무역 분쟁에 대한 일본 정부와 통산성의 선호도는 국내 산업과는 달랐다. 미 국내에서 자동차 무역이 고도로 정치화된 상황에서 특정한 이슈 영역보다는 미·일 관계 전반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기 때문에 미국의 이익을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였다(Winham and Kabashima 1982, 111-113). 결국 미국과 일본은 미 의회의 쿼터제 법안을 저지하면서도 자동차 문제를 둘러싼 국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비공식협상 전략의 일환인 자발적인 수출규제조치(VER, Voluntary Export Restraints)'를 실시하기로 합의한다. 법안의 예정된 회기를 11 일 앞둔 1981 년 4 월 1 일, 일본 통산성는 3 년 동안 미국에 대한 자동차 수출을 연간 168 만 대 이하로 자발적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하였다. 그 결과, 댄포스 상원의원은 일본의 자동차 수입을 제한하는 법안을 철회하였다.
2) 미·일 반도체 협정(1986)
1970 년대 후반 일본은 주요 반도체 생산국으로 부상한 반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은 높은 자본 비용, 미 달러화 가치 상승, 새로운 프로세스 기술의 채택 지연, 품질 관리 문제 등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 점유율의 가파른 상승으로 인해 미국 기업들이 뚜렷한 비교 불이익을 받게 되자,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일본 산업의 강점이 국제 경쟁력을 보호하고 촉진하는 국가 전략의 직접적인 산물이라고 강하게 비난하였다(Tyson and Zysman, 1983). 실제 당시 일본 반도체 산업은 정부의 정책 아래 육성되고 있었고, 미국 기업으로부터의 기술이전을 조건으로 시장 진입을 허용하는 폐쇄성을 보였다(近藤 2011, 54~55). 이는 미국의 입장에서 공정한 게임이 아니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1970 년대 말부터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법안을 시작으로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로비 활동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또한 일본의 반도체 수입 관세율 인하를 요구하고 일본 기업에 대한 지적재산권 침해 소송을 연이어 제기하였다(김상배, 2002). 결국 일본은 1981 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반도체에 대한 수입 관세율을 4.2%로 인하하고, 1982 년 4 월 신설된 미·일 첨단기술산업 워킹그룹 내 반도체 소위원회에서 관세철폐, 상호 무역촉진, 투자 장벽 제거, 일본 진출 외자기업의 투자촉진책 지속, 기술교류 촉진 등에 관한 양국 간 합의를 도출하였다(O'Shea 1993, 61).
상황이 급변한 것은 1985 년부터였다. 1984 년과 1985 년 사이에 컴퓨터 산업의 침체로 인해 반도체 가격이 폭락하자 궁지에 몰린 미 반도체산업협회는 1985 년 6 월 일본 반도체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시장의 폐쇄성과 반덤핑 행위에 대해 1974 년 통상법 제 301 조 위배협의로 무역대표부에 제소하였다. 덤핑이나 301 조 조사 이전부터 의회는 국내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7 월 30 일, 상원 국제금융 및 통화정책 소위원회는 청문회를 열어 일본의 시장 접근 제한에 대한 업계 불만과 일본의 약탈적 마케팅 관행의 의혹을 검토하였다. 상무부와 무역대표부도 경쟁력 있는 미국 산업을 보존하기 위해 일본에게 미국 기업들을 위한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들도록 압력을 가하였다. CIA 와 국방부는 해외 공급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우려 때문에 청원을 지지하였지만 미 국무부와 재무부, NSC 는 미국 산업 문제가 부분적으로 경영부실에서 기인한 것으로 일본에 대한 제재를 반대하였다(Prestowitz 1988, 160). 관리예산처, 경제자문위원회, 법무부, the Council of Economic Advisors (CEA), 그리고 the Justice Department 는 자유무역협정 준수와 GATT 규정 위반 등을 이유로 상무부와 무역대표부의 무역협상 전략에 반발하였다(O'Shea 1993, 72).
그러나 의회와 산업 양측의 강화된 압력과 일본의 불공정한 경쟁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에 가해지는 위협의 크기를 고려할 때, 행정부 내부에서도 공격적인 협상 전략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마침 재선에 성공한 레이건 행정부도 일본의 불공정 행위를 주시하고 있었고 정치, 경제, 안보의 모든 측면에서 미국의 이익을 정의하라는 내부 압력도 거세지고 있었다. 청원은 대일 무역 적자와 해외 시장 개방에 대한 행정부의 스트레스와 일치하였고, 더 강력한 일본 정책을 원하는 의회를 달래고 무역 정책에 대한 행정권을 선점하기 위한 새로운 이니셔티브가 필요했다(Irwin 1994, 41). 이에 따라 약간의 초기 저항에도 불구하고 국무부와 여타 기관들도 상무부와 무역대표부를 지원하게 되면서 광범위한 내부 합의가 이루어졌다.
일본 측에서는 통산성이 반도체 분쟁을 주도했다. 통산성은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관료 메커니즘과 무역 협정을 이용하면서도 불공정한 무역국가라는 꼬리표를 달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Prestowitz 1988, 64-65). 무엇보다 반덤핑과 301 조 심의 과정에서 일본의 로비가 미국 무역법에 따른 엄격한 행정 절차로 인해 제한된 상황에서, 대일 제재는 일본에게 반도체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 업계와 정부 관계자들의 결의를 일깨워 주었다. 반면 일본 반도체 산업의 반응은 엇갈렸다. 일부 반도체 회사들은 협상이 실패하여 일본에 관세가 부과되는 것을 개의치 않았던 반면 미국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약간의 양보를 선호하는 기업들도 있었다. 이 회사들 중 다수는 미국의 대미 수출 보복의 잠재적 영향을 염려하는 전기 소비재 같은 제품의 수출업체였다. 결국 일본 정부는 반덤핑 부과와 301 조의 제재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약속에 대한 대가로 미국은 256K DRAM 반덤핑 절차를 중지하고 청원자의 EPROM 중단 및 반덤핑 절차를 모색하기로 합의하였다.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그 결과 1986 년 9 월 '미국-일본 반도체 협정(1986 U.S - Japan Semiconductor Trade Agreement)'이 체결되었다. 본 협정의 핵심은 ‘5 년 이내에 미국 기업들이 시장점유율 20%의 목표에 도달하도록 도와주는 것을 일본 측이 이해하고 환영하며 노력한다’는 비밀부속서 조항이었다(近藤 2011, 63).
청문회(1987-1988): 미 국내 행위자들의 연기
현재까지 미국은 원자력 공급국 가운데 원자력협력협정의 체결을 국내법으로 정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로, 행정부가 대외정책으로서 다른 국가와 협정을 체결할 경우, 의회가 원자력법 제 123 조를 고려하여 심의하는 과정에서 행정부와 의회 간의 동학이 나타난다. 특히 미국은 시기적 상황과 협력 상대국에 따라 협정의 기준을 달리 적용하였기 때문에, 이에 어긋난 원자력협정에 대해선 국내정치적 수준에서 의회를 비롯한 다양한 국내행위자들과 치열하게 논쟁하였다.
본 보고서는 당시 미 의회의 협정 개정안 심의 절차의 일환으로 다양한 국내 행위자들이 참가한 청문회(hearings) 자료인 ‘United States-Japan Nuclear Cooperation Agreement: Hearings before the Committee on Foreign Affairs House of Representatives, One Hundredth Congress First and Second Sessions, December 16, 1987 and March 2, 1988’을 분석함으로써 결정 요인을 추론한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관련 청문회는 1987 년 12 월 16 일과 1988 년 3 월 2 일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첫 번째 청문회에선 교섭을 주도하였던 국무부, 에너지부, 국방부, 군비관리군축국, 원자력규제위원회가, 두 번째 청문회에선 국내 원자력산업 종사자와 관련 연구소 및 학계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였다.
새로운 원자력협정을 통해 일본이 미국에서 유래한 핵연료를 재처리하고 추출한 플루토늄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행정부와 의회뿐만 아니라 그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열되어 있었다. 미 행정부의 경우, 협상을 주도한 국무부, 에너지부, 군비관리군축국이 협상을 강력히 옹호한 것과 달리 국방부와 원자력규제위원회가 플루토늄을 이용한 시설에 대한 향후 테러 위협과 플루토늄 수송에 따른 물리적 보호와 안전 문제를 이유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미 의회에서는 협의안의 심의를 주도한 상원 외교위원회(Senate Foreign Relations Committee)를 비롯하여 다수의 하원의원들이 협정 개정을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그러나 아시아태평양위원회를 비롯한 일부 의원들은 감정적 편견 없이 협정의 실질적 성과와 국내법과의 양립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정부 관계자와는 별도로 원자력산업 관련 기업인 General Electronic 과 전력회사 연합인 Edison Electric Institute(EEI), 그리고 American Nuclear Energy Council 이 협정을 지지한 반면,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Nuclear Control Institute(NCI), 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그리고 Hudson Institute 는 협정에 반대하였다.
이에 따라 청문회는 크게 두 가지 사안에서 네 가지 논점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사안은 원자력 협정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세 가지 기술적인 논점(플루토늄 운송, 새로운 안전조치 적용, 그리고 장기 사전동의 방식)를 검토하였다. 두 번째 사안은 경제/무역과 연관된 정치적 사안으로 안보(비확산) vs 경제적 이익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어졌다.
1. 원자력 협력 관련 기술적 사안
1) 플루토늄 운송: 환경과 안전
<반대>
u 플루토늄은 공기 중에 쉽게 퍼지며 잠시라도 노출될 경우
폐암을 일으킬 수 있는 인간에게 매우 유해한 독성물질이다.
에너지부가 제시한 환경영향평가 보고서가 과거 원자력
생산과 관련된 환경 및 안전 관련 문제를 대부분
무시해왔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외부 기관이 참여하는
추가 환경영향평가가 필요하다.
u 플루토늄을 연료로 사용하는 것은 무기에 적합하지 않은
저농축 우라늄이라는 저렴하고 보장성이 높은 대안과
비교하였을 때 원자력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자원이 부족한 일본에게도 좋지 않은
협상이다.
u 플루토늄 항공 운송은 안전과 환경에 대한 위험을 증가시킬
것이다. 미국 전역의 플루토늄 항공 운송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과 엄격한 안전장치 및 사고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알래스카와 캐나다 정부가 플루토늄 운송 문제에
이의를 제기한 상황에서, 캐나다와 알래스카에서 운송이
가능하지 않다면 결국 워싱턴에서 매달 3 회에 걸쳐
300 파운드 이상의 플루토늄을 운송할 수밖에 없다. 또한
플루토늄 사용이 장기적으로 핵확산과 테러 위험을 야기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유럽과 일본에서 생산되는
플루토늄을 특정 국가나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이나 해외의
이익에 반하는 무기에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찬성>
u 국가환경정책법(National Environment Policy Act)을 참작해
광범위하고 종합적인 환경평가를 마련하였으며 플루토늄이
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u 플루토늄 운송은 전용 화물 항공기를 통해 자연 재해나 시민
생활 영역을 피하기 위해 선택된 극지방 노선이나 다른
경로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실제 플루토늄 운송 시 특정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국가를 수반하는 어떤 계획도 해당 국가의 승인과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며 어느 국가도 협력과 지원의 의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협정은 재처리를 위해 일본으로부터
사용후핵연료를 프랑스와 영국의 특정 시설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장기간 사전 동의를 제공하며, EURATOM 으로부터
회수된 원료를 일본으로 반환하는 것에 대해서도 미국의
동의를 구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국제 운송에 대한 지침을
지속적으로 준수하는 것은 물리적 방호조치에 대한 국제적
협의에 기반하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 지침의 갱신도
가능하다. 따라서 미국의 동의권이 적용되지 않는 일본
플루토늄의 선적과 운송에 대해 보다 광범위한 국제 규범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2) 새로운 안전조치 적용
<반대>
u 새로운 안전조치는 과학적, 공학적, 기술적 사실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에 개념상의 안전장치에 대한 수용이 위험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도 구속력을 가지지 못한다. 무엇보다 현재
안전장치의 기술은 완전히 발전되지 않은 개념으로, 협정이
수용 가능한 안전조치를 시행하기 위해선 여전히 광범위한
개발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어떤 기술이 필요할지 모르는 미래 시설에 대한 장기적 프로그램 승인을 제공하기보다
기존 협정과 같이 건별 조항에 대한 승인이 바람직하다. u 안전장치 접근방식이 IAEA 안전장치와 검사 목표의 달성을
가능하게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어떤 성과기준도 목표를
구속하도록 명시되어 있지 않는다는 점이 우려된다. 특히
대규모 재처리시설에 대한 검사 목표를 연간 100kg 이상의
플루토늄으로 책정하면서도, 그러한 계산방식이 허용 가능한
수준의 처리를 제공할 것이라는 조항은 아직 입증되지 않는
주장일 뿐이다.
u 비록 새로운 협정이 원자력법에 포함된 법적 요건을
보장하고 핵물질과 핵시설뿐만 아니라 관련 구성요소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핵확산의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고
하더라도 현명하지 못한 결정이다.
<찬성>
u 협정 개정안은 전체를 포괄하는 일련의 기준뿐만 아니라
아직 건설되지 않은 미래 발전소 시설과 설비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개념과 세부적인 안전조치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 문서는 IAEA 가 확립한 안전장치 원칙들을
포함할뿐 만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서 기존 원칙을 뛰어넘어
어떤 시설이 기준을 충족하는지, 그리고 미국에 이를 알리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안전조치가 무엇인지 제시한다. 만약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새로운 시설이 가동되기 직전 일본이 적절한 안전장치
접근법을 고안하지 못할 경우, 미국은 해당 시설에 관한 장기
사전동의를 철회할 수 있다. 이후에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일본은 더 이상 미국의 핵물질을 사용할 수 없다. u 미국이 전 세계의 플루토늄을 통제할 수 없는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일본과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그들이 실제로 사용할 플루토늄에 최첨단 안전장치 개념과
물리적 방호 조치의 적용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새로운 협정은 일본의 첨단 핵 시설과 프로그램에 대한
안전장치와 물리적 방호조치의 적용에 있어 실질적이고
장기적인 미국의 역할을 확립할 수 있는 기회일 뿐만 아니라
평화적인 핵 협력을 위한 포괄적인 틀을 제공할 것이다.
일본도 이 협정에 수반된 비확산 정책성명에서 IAEA 가
안전장치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제공하고 첨단 안전장치 기법을 통합하여 안전장치
이행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따라서 미래
시설의 설계 초기 단계에서부터 건설 및 운영 과정에
이르기까지 IAEA 와 협력하여 보다 효과적인 안전조치의
적용이 가능하다.
u 새로운 협정의 제 3 조, 4 조, 5 조에 따르면 협정은 핵확산
방지를 주요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장기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신뢰할 수 있는 기준에 따라 본 조항에 명시된 상호 합의 요건을 충족하고 각 국가에서
원자력 에너지의 평화적 사용을 더욱 촉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행될 것이다. 이를 위해 원자력법의 목적을 위한
협정의 필수적인 부분을 구성하는 이행 합의서는 제
11 조에서 요구하는 별도의 협정을 통해 보장한다.
3) 장기 사전 동의방식
<반대>
u 기존 사례별 검토방식을 보다 포괄적인 형태인 사전
동의방식으로 대체하는 것은 미국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기존 방식으로도 일본의 사용후핵연료 관련 활동을 충분히
감시할 수 있으며 플루토늄 사용에 대한 동의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동의 방식을
채택하는 것은 포괄적 허가인지 아니면 백지 위임인지 또는
실제 협정 기간 동안 검토와 동의 권한을 포기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u 특히 30 년 동안 상황이 변화할 경우 미래에도 여전히
동의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협정에서 명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오히려 이 접근법을 통해 사례별 검토방식에 따른
의회의 심사를 회피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고 플루토늄을 사용할 수 있도록
30 년간 포괄승인을 제공함으로써 협정은 아직 건설되지도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않은 시설에서 플루토늄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일본에
부여할 것이다. 이는 핵확산금지를 위한 신중한 조치로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관련 시설이 비핵국가에서 건설되거나
운영되는 다른 유형의 시설의 크기에 비례하여 플루토늄의
허용량이 증가하는 방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찬성>
u 기존 사례별 검토방식은 원하는 것을 점진적으로 얻기 위해
각각의 사례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항상 미국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은 그들이 미국의 증가하는
요구에 몹시 분개하고 있다. 사실상 장기 사전동의
방식에서도 개별적인 사건에 따라 모든 조건들을 위원회와
의회에 제출해야한다.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협정은 각
이슈들에 대한 지속적인 검토와 상황적 변화를 반영하기에
유용하다.
u 무엇보다 미국은 핵 확산의 위험이나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의 증가를 막기 위해 미국의 동의를 요구하는 일부 또는
모든 활동에 대해 사전 동의를 보류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양국은 IAEA 와의 안전조치 협정의 종료 또는 기타 명시적
조건의 위반을 포함하여 협정을 위반할 경우, 언제든지
일방적으로 계약을 중지하거나 해지할 수 있다. 이에 앞서
협의할 수 있는 조항이나 해지에 따르는 경제적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는 요구사항이 있지만 일방적인 협정 종료
권리를 결코 훼손하지 않는다. 제 16 조에 명시된 바와 같이,
해지 또는 정지의 경우에도 계약의 비확산 조건과 통제는
계속 유효하다.
u 현재 미국이 결정해야 할 중대한 문제는 일본의 플루토늄
사용 여부가 아니다. 일본은 이미 플루토늄을 사용하고
있으며 민간 핵 프로그램에 플루토늄을 계속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일본이 열적 재활용과
고속 증식 원자로 프로그램에 다량의 플루토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미국에게
유일한 현실적인 선택은 플루토늄 사용에 있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다. 장기 사전동의 방식은
미국의 구체적인 승인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시설, 절차,
활동에 관한 일반 규칙을 규정함으로써 미국 핵물질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발전소의 설계와 운영 절차에 적용될 수 있다.
이에 따라 협정 개정안은 사전 동의를 위해 일본이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정확한 조건을 매우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행 합의서는 적절한 안전장치 및 물리적 보호와
관련된 기준을 포함하여 미국의 법적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협정 대상 핵물질의 특정 재처리, 이전, 변경 및
저장에 대한 장기적 동의를 일본에 제공한다. 그러나 특정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활동에 대한 조건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는 경우, 사전
동의는 해당 활동에 적용되지 않는다.
2. 정치적 사안: 안보(비확산) vs 경제적 이익
<반대>
u 이번 협정 개정이 일본뿐만 아니라 원자력협정 개정이
필요한 다른 협력 국가들과의 관계에서도 위험한 선례를
남김으로써 국제 핵비확산체제를 약화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미국의 안보보다 경제적 이익을 미국 정책의
배타적인 결정요인으로 격상시킴으로써 미국이 기존 협정이
보장하는 핵 통제권을 상실할지도 모른다.
u 비확산금지법이 전면적인 플루토늄 경제에 내재된
위험으로부터 국가 안보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협정 개정안은 미국법의 요건을 위반하는 사실상
규제되지 않은 무역을 촉진한다. 일본은 이미 미국의 통제를
받지 않는 상당한 양의 무기로 사용가능한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으며 핵폭발 장치에 필요한 양을 실질적으로
초과하여 추가 수량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찬성>
u 현재까지 일본에서 사용되었던 연료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농축된 것으로, 기존 협정은 미국의 플루토늄이나 농축 우라늄이 사용될 때 통제권을 행사했으며 개정 이후에도
미국의 영향력은 유지될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협정이
발효되지 않을 경우, 일본은 사용후연료의 이전과 재처리
승인에 있어 미국의 동의 없이 비-미국산 연료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수익성이 좋은 일본 우라늄 농축
사업을 유치하려는 유럽의 적극적인 노력을 감안할 때, 일본
전력회사가 유럽 업체들과 계약을 맺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로 인해 국제 원자력 협력에 있어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될
것이다.
u 나아가 협정 개정은 일본과 신뢰할 수 있는 무역 파트너십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핵수출의 지속과 성장을
보장하며, 핵 거래 환경에 있어서 더 많은 예측 가능성과
확실성을 제공한다. 일본은 농축 서비스 분야의 최우수
고객으로, 이러한 일본의 구매력은 향후 10 년 동안 증가하여
미국의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따라서 새로운 협정은 미국을 원자력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매우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할 것이다.
u 일본은 국제사회에 우수한 비확산 성과를 보여왔다. 일본은
핵 피폭의 경험을 가진 유일한 국가로 방사능의 폐해를 직접
경험하였지만 광범위한 핵 교류를 장려해왔으며 원자력
프로그램에 대한 정부 활동을 공개해왔다. 레이건 대통령이
1982 년 일본과의 핵 협력에 대한 특별한 접근법을 승인한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것도 이러한 사실들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일본은 EURATOM 과 더불어 핵확산 위험이 전혀 없고
엄격한 조건과 통제를 유지하는 원자력 프로그램을 보유한
국가이자, 플루토늄 사용을 미래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국가로, 안전한 원자로에서
사용하는 연료에 대해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미국 원자력 정책의 기조이다.
u 토착 에너지 자원이 거의 없는 선진 공업국인 일본에게
원자력 발전은 전력의 25%를 차지하는 주요 에너지원이다.
협상 초기 일본은 장기적 에너지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의 재처리 동의 문제를 먼저 제기하였다.
즉 가장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통제 방법을 행사하려는
미국의 의지가 일본이 새로운 협정을 체결하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또한 협정은 미국과 일본 산업 간의 적극적인 협력을
촉진하여 미국의 원자력 발전이 공백을 채우는데 기여할
것이다. 현재 일본은 원자력 산업에 대한 경험을 쌓으면서
원자력 발전 프로그램의 기술 및 제도적 혁신뿐만 아니라
유례없는 운영 경험 기록도 꾸준히 쌓고 있다. 미국의 원자력
산업과 전력회사는 일본 측과의 긴밀한 협력으로 상당한
이익을 얻고 있으며 향후 첨단 원자로 설계를 개발하려는
노력을 함께 수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번 협력과 관련된 향후 수익이 세기가 바뀌기 전에 30 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u 본 협정은 비확산금지의 법적 요건과 일치하며 궁극적으로
‘국제 비확산체제 강화’라는 미국 국가 안보의 기본적인
목표에 부합한다. 이는 일본이 모든 신규제 조항을
채택하는데 동의하였다는 의미로 기존 협정보다 엄격한
요구사항과 새롭게 연장된 동의권을 확대 보장한다. 또한
협정은 평화적 원자력 협력을 예측 가능하게 하고 과거
마찰의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협력이 유지되고 개선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실제 미국과
일본은 협력이 개선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첫 번째 지표로서
1988 년부터 매년 두 차례 양자 간 비확산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따라서 협정은 원자력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증가시키고 다른 국가들이 비확산
체제에 동참하는 것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원자력 협력과 관련된 기술적 사안에서 ⓶플루토늄 운송과 ⓷새로운 안전조치 적용은 협정 개정에서 핵기술 통제 요건 완화로 인해 발생하는 보편적이고 기술적인 영향에 관한 논의였으며, ⓸장기 사전동의 방식이 전체적인 맥락에서 기존 협정과 비교하였을 때 가장 차별성을 가진 조항이었다. 협정을 반대하는 입장은 협정이 위험한 핵물질에 대한 미국의 통제권을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미국의 비확산이나 국가안보, 환경적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하였다.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기 전까지 합의안 승인을 유보하고 최대한 기존 틀에서 원자력 협력을 유지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분명 기술적 사안에서 일본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얻었지만 미국도 모든 논점을 양보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은 일본의 사용후핵연료 시설 이전 및 플루토늄의 선적과 운송에 대한 장기적 사전 동의권을 부여하고 핵 확산의 위험이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경우 철회할 수 있는 권리를 동시에 보장받았다. 또한 미국 핵물질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시설, 절차, 활동에 관한 일반 규칙과 물리적 방호조치 및 첨단 안전장치를 제공함으로써 보다 광범위한 국제 규범을 확립하였다.
무엇보다 당시 미 국내정치에 있어 가장 큰 정치적·정책적 함의를 가진 사안은 바로 ⓵안보(비확산) vs 경제적 이익으로, 해당 요인이 미·일 원자력협정 통과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협정을 반대하는 입장이 해당 사안에서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다소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반면, 찬성하는 입장은 협정이 미국과 일본의 평화적 핵 협력 필요성과 요구사항을 완전히 충족하면서도 미국의 중대한 경제적 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보와 경제 모두에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협정은 일본이 모든 신규제 조항을 채택하도록 장려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국제비확산체제 강화’라는 미국 국가 안보의 기본적인 목표와도 일치한다는 점도 강조하였다. 향후 미·일 원자력 협력의 문제는 ‘일본 원자력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의 지속이냐 아니면 본질적으로 향후에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것이냐’의 선택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에 따라 레이건 행정부도 미국이 더 이상 전 세계의 플루토늄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원자력 협정을 자국의 역할을 확대하고 핵의 평화적 사용을 더욱 촉진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었다.
나가며: 군사·안보를 넘어 경제와 에너지의 복합
무대로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1980 년대 미·일 원자력 협정과 무역 분쟁 사례가 동시에 진행된 시공간에서도 과정과 결과의 측면에서 차이를 보였다. 미·일 무역 분쟁의 협상 과정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대부분 자발적 수출규제조치(VER)를 비롯한 일본의 양보를 통해 최종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미국이 보다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실제 대부분의 분쟁 사례에서 일본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도 미국에게 가치 있는 보상을 요구하지 않고 양보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GATT 체제 하에서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단 한 번도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역 마찰이 심화되고 미국으로부터 압박을 받을 때마다, 일본은 자발적인 수출규제조치로 대응하였다. 당시 일본의 수출에서 미국의 중요성은 일본의 대미 무역 정책을 결정하는 주 요소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일본의 대미 무역정책의 기동성은 더욱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일본 정부가 먼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 국내 행위자들로부터의 강한 국내적 저항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협상에서 자신의 이익을 충분히 관철할 수 있었다.
반면 1980 년대 레이건 행정부에게 있어서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목표는 국내 경제 회복과 경제적 패권의 확보였다. 미·일 무역 분쟁의 경우, 일본의 경제 성장과 보호주의적 무역 정책이 미국의 경제 침제와 자유무역 기조와 상반되는 상황에서, 일본의 무역 장벽과 불공정 무역 관행은 미국 경제에 직접적이고도 가시적인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미국의 대일 통상 압력은 원자력협정과 달리 국내적으로 폭넓은 지지를 받았으며, 주요 정부 부처보다 미국 내 노조 단체와 자동차 제조회사 또는 반도체 산업과 같은 민간 행위자와 국내 이익단체가 국가 간의 통상 마찰을 촉발시키는데 앞장섰다. 무엇보다 당시 미국과 일본의 무역 관계의 성격 자체가 매우 경쟁적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국제 경쟁력이 직접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미 국내 산업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미국 내 기업들은 국내 시장의 혜택을 누리고 일본 경쟁업체들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통상 압력을 환영하였다.
또한 미국의 대일 통상 위협의 실효성 향상에는 행정부 내부, 그리고 행정부와 의회 사이에서 대일 무역 전략에 관한 광범위한 합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의 장기적인 경제적 복지와 안보적 영향을 고려하였을 때, 미·일 관계 전반에 더 민감한 정부 부처들조차 일본과의 경제/무역 관계에선 보다 공격적인 전술을 채택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미 의회 역시 대다수의 의원들이 원자력협정 개정을 강력하게 반대하였던 것과 달리, 1980 년대 미국 의회에 상정된 무역 법안의 대다수가 불공정 무역장벽을 철폐하고 시장 접근성을 확보하는 것이었을 정도로 무역 분쟁에선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옹호하는데 앞장섰다. 이러한 국내적 압력은 미국이 동맹 관계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일본의 보호주의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정책을 용인할 것이라는 믿음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미국의 위협에 대한 신뢰성을 강화시켜 일본 정부의 양보를 유도할 수 있었다.
반면 원자력협정 교섭은 긴 협상 과정을 거쳐 일본이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와 재처리로부터 회수되는 플루토늄의 이용을 관철시키는데 성공하면서 마무리되었다. 미국과 달리 일본의 원자력정책의 경우, 원자력정책결정의 최고기관인 원자력위원회를 필두로 통산성이 원자력발전과 관련된 에너지 정책을, 과학기술청이 연구 및 개발 등의 과학기술에 관한 정책을 분담함으로써 일본 정부가 사실상 국가정책의 결정권을 독점하고 외부로부터의 영향력 행사를 배제하였다. 따라서 이들을 중심으로 개별 성청의 이익이 아닌 이익연합 전체의 이익을 우선시함으로써 일본 측의 양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전진호 2002, 28-29). 반면 미국의 경우 청문회에서 드러나듯이 원자력협정 개정안을 둘러싸고 미국 행정부와 의회 간의 대립뿐만 아니라 행정부 내부에서도 재처리 문제와 플루토늄 운송 문제와 같은 기술적 사안을 물론 안보와 경제적 이익과 관련된 정치적 사안을 둘러싸고 의견이 첨예하게 분열되어 있었다. 따라서 앞장서서 국내 행위자 간의 대립을 완화하고 보다 광범위한 합의를 도출하였던 일본 정부가 원자력협정 개정 교섭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1980 년대 원자력협정과 미·일 무역 분쟁 사례 모두 각국의 국내정치적 수준에서 의회를 비롯한 다양한 국내 행위자들이 참여하여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 사례에서 다양한 연기를 선보였다. 첫 번째 청문회에선 일본과의 협정 교섭을 주도했던 국무부, 에너지부, 국방부, 군비관리군축국, 원자력규제위원회가, 두 번째 청문회에선 원자력산업, 연구소, 학계의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1980 년대 미·일 무역 분쟁도 해당 산업이 국제적 경쟁의 대상이 되면서 국가 위주의 경쟁을 넘어 노동조합, 기업, 의회를 포함한 상무부, 국방부, 국무부, 재무부 등 다양한 정부 행위자가 복합적으로 얽힌 네트워크 성격의 분쟁 형태를 보였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정부 기관은 자동차 무역 분쟁과 반도체 협정, 그리고 원자력협정에 참여했던 미 국무부와 국방부, 의회, 그리고 일본의 통산성이다. 국무부는 미·일 관계의 악화를 우려하여 1980 년대 미·일 통상 압력은 반대했던 반면 원자력협정 개정 교섭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기관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반면 국방부는 보호주의 무역정책이 가져올 국가 안보적 위험을 우선적으로 고려했기 때문에 미·일 통상 압력에는 찬성했지만, 같은 이유를 들어 원자력협정 개정에는 반대하였다. 무역 분쟁 사례에서 국내 산업의 이익을 옹호했던 미 의회는 자동차 수출규제조치와 반도체 협정 체결에 있어서 큰 이견을 보이지 않았으나, 원자력협정에 있어선 상대적으로 강하게 반발하였다. 한편 미·일 무역 분쟁과 원자력협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일본 통산성의 경우, 경제적 이익은 물론 전반적인 미·일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관계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하여 협상에 임했다. 이처럼 같은 시기, 각기 다른 양자 협상에서 상반되는 연기를 펼친 것은 당시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그들의 시각에서 각국의 국가 이익을 안보라는 단순 무대를 넘어 경제와 에너지의 복합 무대에서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청문회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레이건 행정부는 일본과의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적 이익을 핵확산금지를 포함한 안보적 고려나 기술적 문제보다 우선시하고 있었다. 새로운 협정이 발효되지 않을 경우, 수익성이 좋은 일본으로의 연료 수출 사업이 유럽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상당히 높게 보았으며, 이로 인해 국제 원자력 시장에 있어 미국의 영향력 약화를 우려하였다. 반대로 협정 개정이 가져올 미국의 원자력 수출의 지속과 성장을 보장할 수 있는 핵 거래 환경을 통해 미국의 원자력 발전의 공백을 채우고 향후 일본 측과의 긴밀한 협력을 이어간다면 미국의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한편 미·일 무역 분쟁은 20 세기 후반 세계경제에서 양국 간의 제조 및 첨단 기술을 둘러싼 라이벌관계를 반영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의 대일 통상 압력은 일본의 불공정 무역행위에서 나아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관계적 성격이 강하였다. 특히 미국 기업의 미래 경쟁력과 직결되는 첨단 기술 분야에서는 자유무역 원칙을 포기하고 관리형 무역 정책을 채택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이처럼 무역 분쟁은 미국이 군사적으로 우세하지만 경제나 기술적으로 꼭 그렇지는 않은 시대에 경제 패권을 위한 세계적인 투쟁의 일환이었다.
물론 본 보고서의 사례 연구만으로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관련된 하나의 결정적 요인을 특정하는데 여전히 한계가 많다. 이러한 요인들은 서로 매우 밀접하게 상호 연관되어 결정되고 특정 상황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기에 언제 어떤 요인들이 다른 요인들보다 더 중요한지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더 중요한지를 정의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무엇보다 당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었던 레이건 대통령과 나카소네 총리 사이에서 긴밀하게 오갔을 대화를 직접 확인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당시 미국이 처한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1980 년대 경제 무대에서 미·일 무역 분쟁의 끊임없는 연쇄 작용 속에서 미국이 일본에 대한 양보를 무릅쓰고 원자력협정 개정을 단행함으로써 일본이 군사·안보 무대에서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에 설 수 있도록 한데는 경제적 요인이 가장 결정적인 상황적 요인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1. 복합 무대 위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경계 - 1980 년대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과 무역 분쟁_나가사키 원폭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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