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로 · ← 홈으로 · ← 목록으로

삼천 년의 역사와 만나다

EAI 사랑방 학생들의 베이징 답사 여행기 : 사랑방의 젊은 그들 베이징을 품다

분류
EAI 사랑방 답사기
발행일
2014년 5월 8일
sarangbang_2_ch2_cover.png
sarangbang_2_ch2_cover.png

베이징 수도박물관 · 강진혁 · 서강대학교

《북경자전거》. 내가 베이징

이라는 도시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

(北京)

저 생각났던 영화입니다. 시골에서 베이징으로 온 한 중국 소년이 택 배회사에 취직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는 직원들에게 자전거를 주어 서 배달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소년이 택배를 배달하느라 자전거를 두고 간 사이에 누군가가 자전거를 훔쳐갔고, 이것을 찾는 과정에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다룬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2001년에 나온 오래된 영화이고,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에 나는 중학생이었습 니다. 그렇지만 영화 내용이 흥미로웠기에 아직까지 잊어버리지 않고 있었고, 그래서 베이징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도 이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통해 상상할 수 있는 베이징이라는 도시의 이미지는 막연 히 자전거가 많은 도시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며 2. 삼천 년의 역사와 만나다 : 베이징 수도박물관

천안문광장의
천안문광장의

모습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베이징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것은 천안문광장 정도입니다. 1989년 6월 4일 천안문광장에서는 민주

화를 위한 중국 시민들의 시위가 있었고, 이 시위는 우리나라의 광주

시민들이 겪었던 것처럼 중국 당국에 의해 무력으로 진압되었다는 사

실 정도가 베이징에 대해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들입니다. 이렇게 저

에게 베이징은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 도시이자, 민주

화를 외쳤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도시 정도로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방문을 통해서 막연히 베이징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

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해 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베이징의 간략한 역사를 소개하겠습니다. 베이징은 일찍이 화

대평원과 북방의 산간지대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서 역사상에

(華北)

등장하였습니다. 생산력의 증대에 따라 평야지대와 산간지대 사이의

교통이 빈번해지자 그 교통로의 요충을 차지한 고대취락이 점차 발전

하였으며, 진·한 이후 당나라 말기에 이르는 기간에는 대체로 동북변 방의 정치 및 군사상의 요지가 되었습니다. 오대

에 이르러 요나

(五代)

라는 938년에 이곳을 부도

로 삼아 남경

이라 하고, 요나라

(副都)

(南京)

를 물리친 금나라는 처음 연경

으로 부르다가 1153년에 이곳으

(燕京)

로 천도하여 중도

라고 고쳤습니다. 그리고 다시 몽골족이 남하

(中都)

하여 중도성

을 빼앗은 뒤 쿠빌라이

때에 신성

(中都城)

(世祖)

(新城) 건설하고 국도로 정하여 대도

라고 명명하였습니다. 그 후 몽골

(大都)

족이 중국을 통일하여 원나라를 세우자 대도는 중국 전역을 지배하는 정치중심지가 되며 수도로 지정되었고 지금까지 내려오는 도시의 기 본 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명나라 때에는 처음 국도를 지금의 남경 에 두었다가 1420년에 영락제

가 이곳을 국도로 정하고 북경

(永樂帝)

( 北京, 베이징) 이라 하였습니다. 명대에는 남문 밖에 외성 (外城) 을 구축 하고 북부의 성역

을 대도 때보다 축소하여 내성

이라 불렀

(城域)

(內城)

는데, 그 내·외성이 지금의 베이징성의 규모를 이루고 있습니다. 명 나라를 멸망시킨 청나라도 1644년 이후 멸망에 이르기까지 이곳을 국 도로 하였습니다. 그 후 베이징은 국민당 정부가 난징을 다시 수도로 정하고 1930년 베이징은 베이징핑으로 개칭하였으나 1949년에 중화인 민공화국 수립 후 다시 수도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1

이처럼 베이징은 정치, 군사적 요지, 교통의 중심지로서 왕조를 거 치며 이름은 바뀌었지만 고대부터 중국의 중심지 역할을 해오며 수도 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그래서 베이징은 1000여년의 역사를 가지는 중국 7대 고도의 하나로 중국에서 문화유적이 가장 많은 주요 관광도 1 문화콘텐츠 닷컴 (문화원형백과 한민족 전투). 2002. 한국콘텐츠진흥원. 2. 삼천 년의 역사와 만나다 : 베이징 수도박물관

시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이징 수도박물관은 고대부터 전해져

온 베이징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고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되어 온 베이

징이라는 도시의 특징을 잘 담고 있습니다. 수도박물관은 1981년 중

국의 수도인 베이징의 역사와 생활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국자감 공자

사원 (北京国子监孔庙, 북경국자감공묘) 안에 건립되었습니다. 그리고 2006

년에는 현재의 자리에 중국 수도에 걸맞은 최신 현대식의 대형 건물

로 새롭게 건축되었습니다.2

그래서 그런지 수도박물관을 갔을 때 제가 처음으로 받은 느낌은

굉장히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에 박물관을 웅장하

게 지어 놓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증이 생겨 교수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이 질문에 교수님께서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겨냥하

웅장한

사진

수도박물관 내부

2 네이버 기관단체사전: 전시관, 미래를소유한사람들. 여 중국당국이 베이징의 이미지를 제고하고자 했다는 점이 재건축의 주요한 이유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중국은 한번의 스포츠 행사를 통해서 자국의 역사, 문화의 우수성까지 널리 홍보함으로써 자 국의 이미지를 다양한 측면에서 제고하고자 세심하게 노력했음을 깨 닫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베이징과 같이 오랜 시간 동안 우리나라의 수도 역할을 해 온 서울에도 수도박물관과 같은 박물관이 생겨서 서 울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지하 1층, 지상 6층의 규모를 갖춘 박물관은 입구의 동쪽에 종모양 의 원형전시실과 오른쪽(서쪽)의 유리로 꾸며진 일반 전시관으로 나뉘

▼종

사진

어져 있는데 동쪽 전시관에는 모양의 주로 미술, 회화, 서예 등 예술 원형전시실 분야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 니다. 이 유물에는 고대부터 내 외관 려온 유물도 포함되어 있어서 고대부터 이어져 온 베이징의 역사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 리고 입구 서쪽에는 역사유물, 건축물, 베이징의 옛 문화 등 역 사 중심의 주제별 전시관이 있 습니다. 3 수도박물관 방문 당일 에는 박물관 전체를 다 둘러보 3 http://travel.daum.net/place/place.daum?placeid=HTCC02CBJS0001 2. 삼천 년의 역사와 만나다 : 베이징 수도박물관 고 싶었지만 일정과 시간의 제약으로 주로 입구 서쪽에서 소개되는 전시를 살펴 보았습니다.

베이징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특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는 베이징이 잘 짜인 계획도시라는 점이고, 두 번째는 골목 및 거리를 의미하는 중국말인 후통

이 곳곳에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胡同)

우선 계획도시로서의 베이징을 살펴보겠습니다. 베이징은 크게 두 개의 도시, 세분하면 4개의 도시로 구분됩니다. 본래 몽고인이 만든 성이 내성으로, 내성 내부에 황성이, 그리고 황성 내부에 자금성이 위 치하고 있으며, 명대에는 자금성의 아래쪽에 건설한 성이 외성으로 이 어져 모두 4개의 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성과 외성은 주로 육중한 성문이 두드러지고 황성과 그 안의 자금성은 우아하고 웅장한 건물들 이 돋보입니다.

이처럼 베이징은 여러 개의 성벽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 런데 베이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특징이 있습 니다. 남쪽의 외성은 주로 성벽과 검정기와로 덮인 건물들이 있고, 이 를 지나서 내성으로 들어오면 반짝이는 청기와 지붕과 금장식을 한 적색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차이나타운에서 볼 수 있는 중국식 건물들은 주로 내성의 건물들임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황성 입구의 문은 녹색으로 칠해져 있고 오문에 가까워지 면 바로 자금성에 이르게 됩니다. 여기에서 외정 그리고 내정에까지 이르면 황금색으로 되어 더욱 강렬한 색체를 지니게 됩니다. 이처럼 북경은 도시의 외곽에서 중심부로 갈수록 지붕의 색깔이 어두운 색에

청나라
청나라

▼적색의 자금성 서 황금색으로 점차 바뀐답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도 왕실의 권 위를 높이기 위한 세심한 장치들을 마련해 놓고 있는 것처럼, 베이징은 사람들이 엄밀한 계획에 따라 건설한 도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대시기부터 내려오는 주례 고공기

라는 베이징 도시건설

(周禮 考工記)

계획도는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좋은 근거입니다.

《주례》는 중국, 주대의 관제

를 기술한 경서입니다. 관제는

(官制)

천·지·춘·하·추·동의 6부서로 나누기 때문에 《육관》

이라

(六官) 고도 하는데 그 중 동관

의 기사가 없어졌기 때문에 성제

(冬官)

(成帝, 재위 BC 33 – BC 7) 때 보완한 것이 《고공기》이며, 이 둘을 합해서 “주 례 고공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는 후대 중국 역대 왕조의 도성건설 에 기본이 되었습니다. 이 주례 고공기를 근거로 BC 1500년경부터 도 시계획의 대원칙을 정해놓고 모든 도시를 이에 맞춰서 건설하도록 하 였습니다. 이 대원칙들 중 몇 가지만 살펴 보겠습니다. 2. 삼천 년의 역사와 만나다 : 베이징 수도박물관

• 수도는 9리, 사방으로 된 정방형

일 것.

(正方形)

• 네 개의 기본방위에 일치시키고 성벽으로 둘러 쌀 것.

• 궁궐의 남문에서부터 성 남쪽 중앙의 남문까지 대로를 낼 것.

• 성내에 9개의 남북도로와 9개의 동서도로를 낼 것

이렇게 고대 시기부터 있었던

사진

도시건설계획의 대원칙들을 통해 시기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사각형 도시구획도 으로 나누어진 구획을 갖고 있는 도시로서 베이징이 계획되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고대의 이러한 특징은 수도박물관에 나 온 청나라 시기 베이징 도시구획

도 에서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고대부터 전해 내려져 오는 도시건설의 기본 틀이 잘 유지

되는 도시가 베이징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베이징의 지금 모습

이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기보다는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도시를 효과

적으로 보호하고 중앙의 통치를 효율적으로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계

획적 인위적 노력에 의해 탄생되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두 번째로 베이징을 관통하는 특징인 후통을 살펴 보겠습니

다. 후통은 북경의 골목 및 거리를 의미하는 중국말입니다. 후통의 전

통 주거양식은 사합원

으로, 이는 가운데 정원을 중심으로 4개

(四合院) 가구가 ‘ㅁ’자 모양으로 동서남북에 주거하는 주거형태를 말합니다. 이 사합원이 바둑판처럼 이어져 있는 것이 바로 후통입니다. 베이징성은 구획과 배치상 황성을 중심으로 남북으로는 주요 도로가 뻗어있고 동 서로는 간선도로가 놓여 십자형의 도로망을 만들고 있으며, 종횡으로 도로가 교차하는 지역을 나누어 거주지역을 분리하고 각각의 거주지 역을 ‘방’(坊)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베이징은 좌우대칭의 바둑판 구조를 띄고 있습니다. 이렇듯 후통은 베이징의 도시건설계획에 부합 하도록 형성된 골목 및 거리입니다. 후통은 회색 담에 회색 기와이고 한 가지 모양입니다. 그리고 후통은 베이징 역사의 변천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베이징 토박이들의 말에 따르면 하나하나의 민속적 분 위기를 내는 전시관과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후통을 돌아보지 않고는 베이징과 베이징 사람들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합니다. 박물관에 서 접한 후통과 사합원은 베이징인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 었습니다. 수도박물관 관람을 통해 베이징 사람들이 사합원이라는 전 통주거양식에 거주하며 후통에서 그들의 일상생활을 영위해왔음을 직 접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진

▼베이징의 모습 2. 삼천 년의 역사와 만나다 : 베이징 수도박물관

그래서 박물관 관람 후에 영화 《북경자전거》를 다시 한 번 보았습

니다. 예전에 영화를 볼 때와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영화를 보았더니 이

전에는 보이지 않던 후통과 사합원 등의 건축양식이 제 눈에 들어왔

습니다. 후통 곳곳에서는 마을 어린이들이 모여서 놀고 있었고, 마을

어르신들은 장기를 두며 여가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주

인공이 살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공간 역시 후통과 사합원이었습니

다. 박물관 관람을 통해 베이징 사람들의 생활공간으로 사용되었던 후

통과 사합원을 더욱 잘 이해할

사합원
사합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외관 첫 부분에서는 택배 배달원들 에게 사장님이 모든 후통들을 하나하나 다 외워서 배달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 다. 베이징 토박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후통이 가장 많을 때는 6,000여 개, 현재에는 1,300여 개에 달한다고 하며, 유명한 후통은 300여 개, 이름이 없는 후통은 소털과 같이 많다고 합 니다. 4 그래서 이를 영화에서

4 捷徑. pp. 86–87. 北京言語大學出版社. 나온 대사와 연관지어 베이징이라는 도시의 특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이번 박물관 방문은 예전에 막연히 갖고 있던 이미지에서 벗어나서 베이징이라는 도시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준 좋 은 기회였습니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도시건설계획의 기본틀은 베이징 이 성벽으로 둘러싸이고 바둑판처럼 나누어진 구획도시가 되도록 했 으며, 이 바둑판의 한 칸이 사합원이고, 사합원 간의 경계가 후통으로 구분되며, 북경인들의 일상생활은 바로 이 곳에서 이루어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전거의 도시이자 천안문광장에서 많은 시민 들이 희생된 도시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서 북경을 둘러볼 때 무엇을 중심으로 보아야 북경과 북경인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번 여정은 그리 길 지 않아서 베이징의 후통들을 하나하나 직접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접할 수는 없었고 수도박물관을 통해서, 그리고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또 유리창을 너머 보이던 후통과 사합원만을 접할 수 있 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다음 번에 베이징을 방문할 기회가 생기면 곳곳에 존재하는 후통과 사합원에 직접 들어가서 중국인들의 삶을 체 험해보고 싶고, 이를 위해 중국어를 배워서 북경인들과 직접 대화하며 사합원에서 홈스테이를 해보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렇 듯 이번 여정으로 베이징에 대해 좀 더 깊이 알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교차하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이런 감정을 잘 간직하고 다음 에 또 다시 베이징에 방문할 날을 기약하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 2. 삼천 년의 역사와 만나다 : 베이징 수도박물관 참고문헌 리원허 저. 이상해·한동수·이주행·조인숙 역. 2000. 《중국 고전건축

의 원리》. 서울 : 시공사.

앤드류 보이드 저. 이왕기 역. 1999. 《중국의 건축과 도시》. 서울 : 성

문당.

루경서 저. 한동수 역. 1996. 《궁궐건축 (중국고대건축총서 1) 》. 서

울 : 발언.

성주탁 역주. 1993. 《중국 도성 발달사》. 서울 : 학연문화사.

← 뒤로 · ← 홈으로 ·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