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로 · ← 홈으로 · ← 목록으로

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하다

EAI 사랑방 학생들의 베이징 답사 여행기 : 사랑방의 젊은 그들 베이징을 품다

분류
EAI 사랑방 답사기
발행일
2014년 5월 8일
sarangbang_2_ch1_cover.png
sarangbang_2_ch1_cover.png

중국국가박물관 · 지혜수 · 연세대학교

중국국가박물관을 가다

2014년 1월 3일, 아침 일찍 인천을 떠나 베이징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첫날 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원래 첫날의 일정은 점심을 먹고 자금성-중국국가박물관

순으로 답사하기로 계획되어

(中国国家博物馆)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심으로 훠궈를 너무 맛있게 먹는 바람에 자금성 답사를 둘째 날로 조정하게 되었고, 첫째 날은 중국국가박물관만 방문 하기로 하였습니다. 비록 원래 계획은 아니었지만 국가박물관을 첫 번 째 답사지로 관람하게 된 것은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어느 특정한 시대를 보여주는 다른 답사지들과는 달 리, 중국국가박물관은 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함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설계도를 찾기 위해 떠난 베이징 답사 여행을 훌 륭한 조감도와 함께 시작하게 된 셈이지요. 첫 방문지로서의 국가박물 1. 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하다 : 중국국가박물관 관이 특별한 이유가 또 있습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취임 후

(習近平)

첫 방문지가 바로 중국국가박물관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방 수업에서 도 많이 토론하였던 ‘중국의 꿈’(中国梦) 을 시진핑이 최초로 역설한 곳 이 바로 이곳입니다. 그렇다면 시진핑은 왜 중국국가박물관을 첫 방문 지로 선택한 것일까요? 이후 그의 리더십의 중요한 슬로건이 되는 ‘중 국의 꿈’을, 최초로 언급하는 장소로 국가박물관을 선택한 것은 무엇 을 의도한 것일까요?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중국국가박물관에 입장한 저희는 엄격 한 보안 절차를 통과하고 드디어 건물로 들어왔습니다. 밖에서 보았을 때도 크다고 생각했지만, 내부는 정말 넓고 크고 으리으리했습니다. 총면적은 20만 제곱미터에, 상설전시 외에도 기획전시 및 국제교류전 시 등 전시관이 48개에 달한다고 하니 그 규모가 엄청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최신식의 규모와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사실 중국국 가박물관은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12년부터 시작하여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비교적 최근에 대 대적인 공사를 통해 재개관한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따로 운영하던 중 국역사박물관과 중국혁명박물관을 2003년에 합병하여 재개관하고, 2007년 다시 대대적인 확장공사를 통해 지금과 같은 최신식의 시설을 갖춘 박물관으로 2011년에 재개관하였습니다. 2011년 재개관한 중국국 가박물관은 “고대중국”과 “부흥의 길”이라는 2개의 상설전시관을 만들 었는데, 그 중에서 저희가 관람한 곳은 바로 지하 1층에 위치한 “고대 중국” 상설전시관이었습니다. “고대중국” 상설전시관으로 이동하기 전, 1층에 마련된 마오쩌둥

(毛

특별전시를 먼저 둘러보았습니다. 마오쩌둥이 직접 쓴 글들과 澤東)

중국 현대미술작가들의 마오쩌둥 그림과 조각이 전시되어 있는데, 아 주 호남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소영이가 흥미로운 점을 가르쳐주었 는데, 전시작품들이 대부분 눈높이보다 훨씬 위에 있어서 관람객들은 자연스럽게 마오쩌둥을 올려다보며 관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전시장 한가운데 서있는 6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마 오쩌둥 동상이었습니다. 이 특별전시는 마오쩌둥 탄생 120주년 기념 전시로,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동상은 우리가 방문하기 열흘 전, 마 오쩌둥의 120주년 생일(1893년 12월 26일생)을 맞아 전시된 따끈따끈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이사장님께서 동상과 같은 포즈를 취하시 고 찍으신 사진은 모두에게 깨알 같은 웃음을 주었습니다. 마오쩌둥 전시를 보고 나와 지하 1층 “고대중국” 상설전시관으로 이동하면서 본격적인 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원고시기_ 우리는 단군의 자손, 중국민은 황제의 자손 “고대중국” 상설전시관은 왕조 순으로 전시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 라서 중국국가박물관을 관람하기 전에 왕조 순으로 쓰여진 중국사 서 적을 읽고 가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중국사 관련 책들을 읽다 1. 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하다 : 중국국가박물관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생깁니다. 지은이가 중국인이냐 외국인이 냐에 따라서 첫 장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외국인 저자들은 상왕조부터 본격적으로 기술하는 반면, 중국인 저자들은 삼황 오제의 신화시대부터 자세하게 다루며 기원전 2070년 우가 중국 역사상 첫 번째 왕조인 하왕조를 건립했다고 연도까지 확정하여 쓰고 있습니다. 상왕조는 그 실체가 분명한 역사시대이지만 하왕조에 대해서는 아직 논쟁의 소지가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내에서 통용되는 모든 역사 서술은 하왕조의 성립 연대까지도 확정적으로 기원전 2070년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확정적인 연대는 하상주단대공정

(夏商周斷

과 중화문명탐원공정

과 같은 정부 차원에서 代工程)

(中華文明探源工程)

진행된 역사 연구사업의 결과입니다. 특히 중화문명탐원공정은 중국 고대 문명의 기원을 밝혀내는 것을 목표로, 기원전 4000년까지 거슬 러 올라가면서 이 시기를 황제시대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기원을 거슬 러 올라가면 모든 중화민족은 황제의 자손으로 하나의 뿌리라는 메시 지가 공정의 궁극적인 목적인 셈입니다. 이를 반영하는 사례로, 섬서 성

황제릉

에서 청명절

에 열리는 황제 제사가 (陕西省)

(黄帝陵)

(清明节)

2004년부터 국가급 전례로 행해지고 있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이유진 2013). 따라서 “고대중국” 전시관의 첫 번째 전시실인 원고시기 (远古

전시실에서는 이러한 ‘황제’ 개념을 생각하면서 둘러보면 좋을 时期)

것입니다. 1. 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하다 : 중국국가박물관 하상서주시기_ 청동기, 그 놈이 그 놈? 두 번째 전시실인 하상서주시기

전시실에서 우리가 중

(夏商西周时期)

요하게 살펴보았던 것은 청동기의 발달입니다. 상주시대에는 청동을 제련하고 주조하는 기술이 고도로 발달되어 생산과 생활의 질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상주시대 사람들은 이미 구리와 아연의 비율을 정확 하게 조제할 수 있었으며 각종 용도에 따라 경도가 다른 청동기를 제 조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국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사모무동정 (司母戊铜鼎) 은 높이가 1.33 미터, 무게가 832.84킬로그램으로, 현존하는 가장 거대한 청동기입니 다. 상대 후기 만들어진 왕실 제사용 청동 사각 솥으로, 각각의 부분 을 따로따로 만든 후 하나의 완전한 완성품으로 주조한 것입니다. ‘정’(鼎) 이란 원래 3개의 다리와 2개의 귀(손잡이)를 가진 청동기를 뜻 합니다. 물을 끓이거나 음식을 삶는 용도로 주로 사용되었고, 음식을 담아두기도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다른 정과는 다르게 사모무동정은 사각형모양으로 원주형의 다리가 네 개입니다. 상부에는 호랑이가 사람을 물고 있는 도안이 있고, 몸체는 네 면의 중앙에 무늬 가 없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는 구름과 번개문양 등의 다 양한 형태의 세밀한 문양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내면 벽에는 사모무

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이 문물의 명칭이 사모무동정이 되 (司母戊)

었습니다. 사모무동정은 현존하는 청동기 중 형태, 장식, 공예 모두 최 고 수준으로 평가되며, 상대 청동기문화가 얼마나 발달했었는지를 짐 작할 수 있게 합니다.

상대의 뛰어난 청동기문화를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유물로는 고대 중국 전시포스터에도 등장하는 사양청동방준

이 있습니

(四羊青铜方尊)

다. 처음 고대 청동기 유물 조사를 시작할 때, 청동기 이름들이 모두 생소하고 길고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명칭을 붙인 원리를 이해하면 결코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달게 되었습니다. 사양청동방준의 ‘사양’은 네 마리의 양을 뜻합니다. 고대 중국어에서는 상서로움을 뜻하는 글자 祥(상)이 羊(양)과 같았는데요, 이 때문에 고대 인들은 양을 장식에 많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방’은 사각형, ‘준’은 술잔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사양청동방준은 “네 마리 양이 있는 청동 사각 술잔”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식으로 몇 가지 청동기 유물의 이름 글자를 뜯어보니, 먼저 끝 글자를 통해 용도를 나타내고, 유물의

사진

1. 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하다 : 중국국가박물관 특징적인 외형이나 새겨진 글자 등을 따서 앞에 붙여 그 청동기 유물 의 이름을 붙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작은 발견 후에는 다 비슷비슷하게 보였던 지루한 청동기 유물들이 저마다 흥미로운 특 징과 용도를 저에게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모무동정과 사양청동방준이 주조되었던 상나라 후기를 지나, 상 왕조를 무너뜨리고 건립된 주나라의 청동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주나라 시기에 중요하게 작동한 통치제도 중 하나가 분봉제

입니다.

(分封制)

분봉제는 간단히 말해서 주왕과 제후 간의 의무에 관한 제도입니다. 주왕은 친척과 공신들에게 영토와 백성을 내려주고, 분봉 받은 제후들 은 봉지를 관리하고 왕실에 충성해야 하는 의무를 담당합니다. 종법제 와 더불어 분봉제는 주대에 전국 각지를 통제하고 단결시켜 정치국면 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분봉제 연구의 귀중한 사 료 중 하나가 국가박물관이 소장한 대우정

이라는 청동기입니

(大盂鼎)

다. 대우정은 주나라 강왕 23년(BC1003) 주조된 청동기로, 안쪽에는 19 행의 명문이 2단으로 모두 291자가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명 문은 왕이 우(盂)라는 귀족에게 선왕들의 선정을 공경하고 자신을 잘 보좌해 달라는 부탁과 우에게 신민과 노예 및 이것을 하사한다는 등 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렇듯 주대 분봉제의 주왕과 제후 간의 의 무와 책임이 명문의 주요 내용이기 때문에 대우정은 그 사료적 가치 가 매우 큰 청동기 유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찾아도 전시관에서 대우정을 찾을 수가 없 었다는 것입니다. 전시도록에서도 보았고, 국가박물관 홈페이지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유물이라 국가박물관이 분명 소장하고 있는 유물인데 찾을 수 없어서 왔다 갔다 하며 당황했었습니다. 후에 박물관 측이 대 우정 등의 상주시기 주요 청동기를 테마전시로 다른 층으로 옮겨 전 시해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박물관 자체의 상설전시와 테마 전시 구성 등을 제대로 파악하고 가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진한시기_ 포디즘의 원조는 진시황릉의 병마용? 춘추전국시기

전시실을 지나 진한시기

전시실

(春秋战国时期)

(秦汉时期)

로 들어갔습니다. 진시황이 난립하던 제후국들을 통일하면서 혼란의 춘추전국시기는 막을 내리고 중국 최초의 전제주의적 다민족 중앙집 권국가인 진나라가 등장합니다. 진시황으로 알려진 진왕 영정은 스스 로 삼황

오제

보다 뛰어나다는 의미에서 황제

라는 명

(三皇)

(五帝)

(皇帝)

칭을 최초로 사용하였습니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한 후, 그는 화폐와 도량형을 통일하고 수도를 중심으로 교통망을 구축하 는 등 경제적 문화적으로 중국의 통일과 융합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 다. 현대 중국의 영문 명칭인 ‘차이나’(China)도 진을 뜻하는 ‘Chin’에 나라를 뜻하는 접두사 ‘a’를 붙인 명칭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니, 고 작 15년 지속된 통일왕조였음에도 불구하고 진나라가 후대 중국에 엄 청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시황은 사상 통일을 위해 고서를 불태워 버리고 유생들을 생매장하는 분서갱 1. 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하다 : 중국국가박물관 유를 단행하였고, 아방

사진

궁과 만리장성 건설을 위한 과도한 부역과 세 금으로 인하여, 그의 사후 대규모 농민봉기 가 일어나 진나라는 건 국 15년 만에 멸망하 고 맙니다.

국가박물관에 전시된 병마용은 시안의 진시황릉에서 가지고 온 것 입니다. 사마천의 《사기》

에 따르면 진시황릉을 짓기 위해 10년

(史記)

넘게 70만 명의 인부가 동원되었습니다. 병마용의 병사들은 장인들이 머리, 몸통, 팔 다리가 각각 따로 제작한 후 결합하였으며, 연구 결과 다리를 제외한 부위들은 각각 여러 종류의 틀이 있어 이들을 조합하 여 다양한 형태의 병마용을 제작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조립을 위해 서는 각 부분을 맞춘 뒤 다음 과정으로 넘겨주는 생산공정에 따른 조 립 라인이 존재하였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또한 공방에서 각 부분을 생산할 때, 품질보증 및 관리를 위해 생산한 장인의 이름을 새 겼다고 합니다.1 그렇다면 이 병마용이야말로 포디즘과 생산자 표시제 의 원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Terracotta_Army. 진시황의 병마 토우를 지나 진한시기 전시실의 안쪽으로 더 들어가 자 중앙쯤에 누워 있는(?) 유물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미라처럼 보이는 이 유물은 한나라 황제와 고급 귀족들이 사망한 후 입혔던 옥 으로 만든 수의입니다. 한나라 사람들은 이러한 옥갑(옥의)을 입으면 시체가 부식되지 않는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귀족의 신분에 따라 금실, 은실, 동실을 나누어 사용하였는데, 전시된 유물은 옥 조각 1,203개, 금실 약 2,567그램이 사용된 호화로운 금실옥갑이었습니다. 옥갑주인 이 기원전 55년에 사망하였다고 하니 이 옥갑은 시대적으로 서한 말 기에 제작되었을 것입니다. 서한 말기의 황제들은 모두 극도로 무능하 고 부패하여 외척들 손에 조정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따라 서 국내적으로 매우 혼란스럽고 사회 문제들이 악화된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귀족들은 여전히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음을 보여주는 유물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옥갑이 보여주는 한나라 말 귀족들의 사치 스러운 생활의 배경에는 장건의 서역개척을 계기로 개통된 실크로드 를 통한 외국과의 활발한 문물교류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진

1. 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하다 : 중국국가박물관 삼한양진남북조시기_ 북위의 마두녹각형금보요와 효문제 진한시기 전시실을 나와 들어간 삼한양진남북조시기

(三国两晋南北朝时 期, 위진남북조) 전시실이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눈을 잡아 끌었던 것은 화려한 금빛의 머리장신구인 ‘보요’(步摇) 였습니다. 보요는 중국 고대 부녀자들의 중요한 머리 장신구의 한 가지로, 나비 나 꽃 등 다양한 모양의 장식품이 열매처럼 달린 나뭇가지 모양으로 생겼습니다. 상상이 가시나요? 그러한 장신구를 머리에 꽂고 걸어가는 여인의 뒷모습을 상상해보면 사뿐사뿐 걸음을 뗄 때마다 가지에 매달 린 잎들이 하늘하늘 흔들리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걸음 보

(步)

에 흔들 요

를 써서 보요

(摇)

사진

라 부릅니다. 삼국시대 (步摇) 귀족 여인들의 지위를 과시하 는 패셔너블한 장신구였던 보 요는 중원에 들어선 이민족 북위 여인들에게서도 큰 사랑 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국가 박물관에서 보았던 보요는 북 위의 유물로 마두녹각형 금보 요와 우두녹각형 금보요가 나 란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북 방 유목 민족답게 초원에서 흔히 보는 말과 사슴 등의 형상을 도안으로 하여 말머리 형태와 사슴 뿔 가지에 금잎을 달았습니다. 삼국시대 한족 귀족층의 장신구에 선비 족 문화가 첨가되어 북위 여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금보요 유물 을 보니, 북위의 효문제가 떠올랐습니다.

소설 《삼국지》

에 등장하는 위·촉·오 삼국시대를 끝

(三國志演義)

낸 진

나라는 내부의 왕위 찬탈전을 겪으며 국력을 소모하다가 결

(晉)

국 유목민족인 흉노족에 의해 멸망합니다. 진의 멸망은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처음으로 한족이 아닌 왕조가 중원에 들어서 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남쪽으로 피난을 간 한족이 강남에서 왕조 (남조)를 세우고, 화북에서는 비 한족인 이민족 왕조(북조)가 들어서게 됩니다. 남조와 북조가 제각기 몇 번의 왕조교체를 거치며 대립하는 남북조 시대는 수가 통일을 이루기까지 약 300년 간 이어지게 됩니다. 전시된 금보요가 만들어진 나라인 북위는 북방 유목민족인 선비족이 세운 나라로, 439년 화북 지역을 통일하여 북조의 시작이 되는 나라입 니다. 북위의 제7대 황제인 효문제는 친정기간이 10년에 불과하지만, 사랑방에서 중국의 천하질서와 중화사상을 공부한 우리들에게는 정말 흥미로운 왕입니다. 어려서부터 중국의 고전을 배우며 자란 효문제는 적극적으로 선비족을 한족의 문명에 동화시키는 정책을 추진하였습니 다. 그러나 선비족이 이미 튼튼한 기반을 가지고 있는 북위의 초기 수 도 평성에서는 그러한 한화정책을 펼치기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효문제는 역대 한족 왕조들이 수도로 삼았던 낙양으로의 천도를 단행합 니다. 그는 선비족의 전통 복식을 금지하고 언어 역시 한족의 언어를 1. 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하다 : 중국국가박물관 사용하게 하였으며, 선비족과 한족의 혼인을 장려하고 한족식 성을 따 르게 하는 등 선비족을 철저하게 한족의 문명에 동화시켰습니다.

효문제의 이러한 한화정책은 이

가 화

의 천하질서에 스스로

(夷)

(華)

적극적으로 편입하고 동화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 화사상이 오늘날 흔히 오해되는 것처럼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사상으 로 볼 수 없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중국의 어떤 학자들은 효문 제의 개혁을 중국을 통일한 다민족 국가 발전의 본보기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한나라 이후 각 민족들의 생활방식과 언어가 모두 달라 통일 을 이루지 못하고 분열되었었는데, 북위의 효문제는 우수한 선진문화 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통일된 언어와 문화를 꾀함으로써, 소수 민족 이 중국을 통일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방향을 제시했다고도 볼 수 있 습니다(쑨톄 2011).

이러한 역사적 관점을 떠올리면서 전시된 보요를 보자 훨씬 더 흥 미롭게 느껴졌습니다. 비록 선비족이 한족의 보요를 받아들인 것은 북 위 이전의 일이지만, 한족의 문화와 선비족의 문화가 적극적으로 융합 된 모습의 금보요 전시 유물은 천하사상에 적극적으로 편입하려고 한 효문제와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당오대시기_ 최첨단 국제화 도시, 글로벌장안 수당오대시기

전시실에서 친구들과 흥미롭게 이야기했

(隋唐五代时期)

던 주제는 국제화 도시, 당의 수도 장안이었습니다. 전시실 한쪽 벽에 크게 붙어 있는 도성도를 통해 장안이 물 공급과 배수시설을 완비한 최고 수준의 계획 건축 도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당 현종이 개원의 치라는 태평성대를 이끌었을 때에는 장안의 인구가 100만에 달했으며 주변 각국의 조공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시기의 장 안은 시리아인, 아랍인, 페르시아인, 티베트인, 한국인, 일본인 등이 공 존하고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기독

사진

교, 불교 사원들이 공존하는 실크로 드의 기점이자 세계 최고의 국제도 시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며 전시된 당삼채 를 보니 당의 (唐三彩) 활기찬 국제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 는 듯 하였습니다. 당삼채는 녹∙갈∙황 색의 유약으로 화려하게 칠한 당나 라의 도기로 주로 귀족들의 장례용 으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전시실의 당삼채들은 하나하나가 다채롭고 독 창적인 생동감을 지니고 있었는데, 1. 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하다 : 중국국가박물관 사실은 처음부터 무덤에 묻기 위해 제작된 것이었다니 참 아이러니합 니다. 머리를 추켜든 낙타가 등에 5명의 악사들을 태우고 있는 사진의 당삼채에서도 익살스러운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운데 한 사 람이 춤을 추고 있고 나머지 네 사람이 둘러 앉아 연주를 하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고 흥겹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중 코가 훨씬 더 크고 수염이 덥수룩한 외국인 얼굴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족과 외 국인 악사들이 함께 어울려 낙타 위에서 즐겁게 연주하는 당삼채를 통해 당대 사람들의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요송하금원시기_

송의 패러독스 : 부 의 나라 송, 부 때문에 망하다

(富)

요송하금원시기

전시실의 압권은 단연 송대의 도자기

(辽宋夏金元时期)

였습니다. 송대에 이르러 새로운 유약이 개발되고 굽기 방법도 다양해 지면서, 여요, 관요, 경덕 등 나름대로의 특색을 자랑하는 유명 도요지 가 여러 곳 출현하여, 도자기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전시된 송대의 도자기들을 보니 같은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믿기 지 않을 정도로 그 형태와 색과 특징이 모두 제각기 독창적인 아름다 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채로운 도자기 전시품들은 정말 우아하고 예 술적이어서 모두가 눈을 떼지 못하고 감탄사를 연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문득 페어뱅

사진

크(J. Fairbank)가 지적한 “송의 패러 독스”(paradox of Song)가 생각이 났습 니다(Fairbank 2006). 송대에는 사치품 단계의 도자기뿐만 아니라 일상용 도자기도 활발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서민들도 도자기를 사용하였고, 만 담이나 잡극 등의 서민문화가 확산 되어 향유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는 송나라가 그만큼 물질적으로 부

유하였음을 뜻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상업의 획기적인 발전입 니다. 이모작 쌀 품종이 개발되고, 논이 대규모로 개간되면서 세 배로 증가한 곡물 생산량은 상품경제의 질적인 전환을 가지고 왔습니다. 또 한 송대에 해상무역이 개시되어 대외무역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화폐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세계 최초의 지폐가 바로 이 때 송나라에서 발행됩니다. 당시 전세계 국민총생산(gross national product:

GNP)의 6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

사진

로 송나라는 물질적인 풍요를 누 렸습니다. 한편 경제에서뿐만 아 니라, 송의 찬란한 도자기 문화 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술과 과학 기술도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 1. 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하다 : 중국국가박물관 니다. 세계 문명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화약, 나침반, 인쇄술이 모두 송 나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러나 지나친 문치주의 로 인해 군사적 측면에서 송나라는 그 어느 왕조보다 약체였습니다. 이 민족이 침략해올 때마다 송은 전쟁을 치르는 대신 공물을 쥐어 보내는 강화조약을 선택하였고, 결국 문명의 절정기를 이루었음에도 이민족에 의해 정복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송나라의 패러독스가 떠올라, 전시실의 아름다운 도자기 예술품을 보면서 마냥 감탄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 전시실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것은 입구에 붙어 있는 전시실의 이름입니다. 요송하금원시기

에 쓰인 글자들을 살펴보니,

(辽宋夏金元时期)

요∙송∙금∙원은 알겠는데 하

라는 글자에서 고개가 갸웃했습니다. 하

(夏)

는 티베트계 탕구트족의 왕조인 서하

를 뜻하는데, 제가 읽고 (夏)

(西夏)

간 중국사 관련 서적들에서는 요송금원시기

라며 대부분

(辽宋金元时期)

누락되거나 아주 짧게만 언급되어 있어 생소하게 느껴졌었던 것입니다.

서하의 초대왕 이원호는 부족을 통합해 송으로부터의 독립을 천명 하여 나라를 세우고, 독자적인 서하문자를 반포하였는데, 여기에 흥미 로운 점이 있습니다. 서하문자를 보면 중국에 대한 대항의식과 자존감 이 반영된 부분을 찾을 수 있는데, 그 예로 중국이란 뜻의 서하 문자 는 각각 “작은”과 “벌레”를 뜻하는 의미요소가 더해져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2 그렇다면 위에서 이야기했던 북위의 경우와는 달리, 서하의 경우 중화질서에 오히려 반하는 성격이 강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2 Wikipedia. http://ko.wikipedia.org/wiki/%EC%84%9C%ED%95%98_% EB%AC%B8%EC%9E%90 더 흥미로운 것은 몽골에 의해 멸망한 서하의 후손이 남아 있지 않다 는 것입니다. 중국 국영중앙방송국(CCTV)에 따르면 칭기즈칸이 서하를 점령할 때 서하인들이 끈질기게 저항했던 것에 분노하여 서하인들을 아주 철저하게 살육하여 멸족시켰다고 합니다.3 그렇다면 서하는 현재 중국인민공화국과 문화의 연속성도, 민족의 연속성도 없다고 볼 수 있 습니다. 민족의 연속성을 적게나마 지니고 있는 다른 정복왕조들과 달 리 서하는 오로지 영토의 연속성만으로 송과 동등하게 요송하금원시 기

라고 불리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논리라면 동북

(辽宋夏金元时期)

공정이 주장하는 고구려의 중국사 편입도 당연해 보입니다. ‘요송금원 시기’라 부르느냐, 혹은 ‘요송하금원시기’라 부르느냐가 우리에게 민감 한 문제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박물관을 나서며

명청시기

전시실을 막 들어섰을 때 박물관 관람시간이 30분

(明清时期)

남았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안내방송이 들려왔습니다. 마음이 너무 급 해져서 명청시기 전시실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쉽습니 다. 명나라와 청나라는 송나라보다도 훨씬 더 번영했던 나라였습니다. 청의 최전성기였던 강건성세 때의 이야기를 준비했었지만 박물관에서 꺼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기의 이야기는 3 Wikipedia. http://discovery.cctv.com/20070214/100813.shtml 1. 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하다 : 중국국가박물관 자금성과 이화원에서 다시 펼쳐질 것이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전시 관을 나왔습니다.

글을 마치면서 중국국가박물관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부흥’(复兴) 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부흥이라는 단어는 마 치 박물관처럼 과거, 현재, 미래가 내포되어 있는 단어입니다. 찬란한 과거가 전제되며, 그 영광을 미래에 다시 이루고자 하는, 비교적 쇠퇴 한 현재의 소망과 목표가 담긴 단어입니다.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을 자랑하는 곳. 백년국치의 비장함이 서려있는 곳. 그리고 G2시대의 자 신감을 가지고 중국의 미래를 외치는 곳. 중국국가박물관은 “复兴”이 라는 단어 그 자체였습니다. ■

참고문헌 이유진. 2013. 《상식과 교양으로 읽는 중국의 역사》. 파주 : 웅진지식

하우스.

쑨톄 (孫鐵). 2011. 《성찰적 지식인 청년 학생을 위한 중국사 산책》. 서

울 : 일빛.

Fairbank, John K. 2006. China: A New History. Second Enlarged, ed.

London: Belknap Press.

← 뒤로 · ← 홈으로 ·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