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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중앙SUNDAY 공동기획] 미·중 상호의존이 전쟁 억제? 1차대전도 제3국이 도화선

분류
논평이슈브리핑
발행일
2026년 4월 10일

편집자 주

1·2차 세계대전의 거울에 비친 2026년 강대국들의 패권경쟁과 무력 선호, 경제 위기와 민주주의 후퇴 그리고 권위주의 부상, 국제기구 무력화…. 오늘을 읽는 키워드지만, 100년 전에도 유효한 키워드였다. 기존 질서가 무너지며 낯설어진 오늘을 이해하기 위해 과거로 시선을 돌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100년간의 평화’ 막바지였던 1차 세계대전 직전, 그리고 1·2차 세계대전 사이의 전간기(戰間期) 시기와의 비교다. 세계적 역사학자인 마거릿 맥밀런은 “(양차 대전) 당시 전 세계를 짓눌렀던 개전(開戰)의 공포를 우리가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고 투자계의 스티브 잡스로 물리는 레이 달리오는 “1945년 형성된 새 질서가 진화해 1929~1939년 당시와 유사한 지점에 도달했다”고 봤다. 미 국방부전략기획담당 특별보좌관 출신의 할 브랜즈도 “지금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1930년대와 훨씬 더 닮았다”고 했다. 과연 어느 정도로 유사한 것인가. 역사의 반복(repeat)인가, 비슷한 변주(rhyme)인가. 중앙SUNDAY와 동아시아연구원(EAI)이 4일부터 공동기획 ‘1·2차 대전의 거울에 비친 2026년’을 통해 이 논쟁을 다룬다. ‘100년간의 평화’와 전간기가 왜 비극적으로 귀결됐는지, 오늘날 그 경로를 차단하려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색이기도 하다. 12명의 전문가가 상호의존부터 패권 경쟁, 극단주의까지 12주제를 탐색한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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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중앙SUNDAY 공동기획 ①무너진 상호의존 신화

제1차 세계대전은 경제적 통합이 평화로 이어지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로 거명된다. 1차 대전 전야는 현 시점의 세계 질서와 흡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914년이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고도로 상호의존되어 있는 강대국들이 세계를 3차 대전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싹이 돋아날 수 있다. 1913년의 세계화는 무엇이 잘못 되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상호의존이 평화와 번영을 가져온다”는 주장이 신화에 불과한 것인지 경험적·이론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1913년 영·독, 2026년 미·중 ‘평행이론’

1913년의 세계가 유럽 중심이기는 하였지만 그 이전 시기와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의 세계화를 성취한 것은 사실이다. 산업혁명 이후 급격하게 진행된 제1차 세계화의 결과, 당시 세계 경제를 주도하였던 영국과 독일은 각각 17.5%, 16.1%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무역 의존도를 기록하였을 뿐 아니라, 두 국가는 서로에게 제1, 제2의 무역 상대국일 정도로 상호의존적이었다. 상호의존의 획기적 증가는 수천 년 동안 지속된 전쟁의 효용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산업혁명 시대에 경제적 상호의존 상태에 있는 국가들 간 갈등의 군사적 해결은 경제적 비용이 막대할 뿐 아니라, 점령국의 통치 또한 어렵기 때문에 이전과 같이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전쟁에서 승리가 경제적으로 커다란 이득을 가져다 준다는 것은 ‘대환각(great illusion)’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논리적 귀결은 ‘경제적 상호의존 시대 전쟁은 상상하기 어렵고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경제적 상호의존이야말로 국가의 선한 행동을 보장하는 실질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호의존론이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였음을 이미 알고 있다. 상호의존으로 인해 전쟁의 피해와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영국은 승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이전보다 악화된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71만 명이 넘는 인명 피해는 물론, 물적 자산의 10%를 상실하였고,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영국이 자랑하던 해외 투자의 24%를 고갈해야 했다. 그러나 전쟁, 주요 무역 파트너였던 영국과 독일 사이의 전쟁을 방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상호의존이 평화를 가져 올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은 신화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상호의존론 비판에 대한 반론은 두 가지 방향에 이루어진다. 첫째, 전쟁 당사국, 특히 전쟁을 단기간에 끝낼 수 있을 것이라는 독일의 오판에 주목하는 설명이다. 당시 군사 기술의 발전이 공격과 방어 논쟁에서 공세 교리(offensive doctrine)를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한다는 믿음이 오판을 더욱 강화하였다. 그러나 단기전이 될 경우, 경제적 충격이 감내할 수준이 될 것이라고 본 것일 뿐, 이들이 상호의존에 따른 경제적 피해가 과거의 전쟁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둘째, 당시 상호의존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동유럽 국가들 간 잦은 갈등과 분쟁이 지역, 더 나아가 세계적 차원의 군사적 충돌을 촉발하였다는 설명이 있다. 경제적 상호의존의 수준이 높았던 국가들 사이에도 세계 대전 이전 수십 년 간 분쟁이 계속되었으나, 이들은 대체로 유혈 사태로 이어지기 전에 분쟁을 해결하곤 하였다. 1차 대전 당시 어느 강대국도 전쟁을 직접적으로 주도할 생각은 없었다. 반면, 경제적 상호의존 수준이 낮은 국가들은 더 호전적인(war prone) 성향을 보였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상호의존되어 있는 강대국들을 자국의 파트너 또는 동맹으로 끌어들이고자 하였다. 전쟁은 낮은 상호의존의 약소국이 높은 상호의존의 강대국을 연루한 결과인 셈이다. 이로부터 도출되는 결론은 동유럽 국가들도 서유럽 국가들처럼 높은 수준의 상호의존을 달성하였더라면, ‘대전’은 회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21세기에도 1913년의 파국이 재현될 것인가. 세계 질서를 놓고 경쟁하는 국가가 영국과 독일에서 미국과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 두 시기 사이에는 높은 상호의존이라는 공통 분모가 존재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이란 전쟁 등 잇따른 지역 분쟁은 국지전으로 끝나지 않고,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현재 지역 분쟁의 상당수가 상호의존 수준이 낮은 국가들에 의한 것이라는 점은 묘하게 1913년과 2026년의 평행이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1913년과 2026년의 단순 비교는 위험하다. 두 시기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상호의존이기는 하나, 상호의존의 성격이 변하였기 때문에 2026년의 위험은 1913년의 위험과 판이하다. 영국이 독일에 대해 해상 봉쇄를 단행한 데서 나타나듯이, 전전 세계 주요국들은 비대칭적 상호의존(asymmetric interdependence)을 활용한 경제적 강압을 상대국 압박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자국에도 큰 비용과 희생을 수반한다는 데 딜레마가 있다. 영국과 독일을 포함한 세계 주요국들은 상호의존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한 것이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전략 경쟁 상대국 밖에서 방아쇠 가능성

반면, 2026년 미국과 중국은 무기화된 상호의존(weaponized interdependence)을 통해 상대국을 압박한다. 미국이 IP 등 반도체 산업 가치 사슬의 상류에서 지배력을 활용하여 중국에 수출 통제를 단행하자, 중국 또한 희토류 등 소재와 원료에 대한 장악력을 활용하여 미국에 역공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국과 중국이 동원한 구체적 수단은 상이하나, 자국의 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상대국에 대한 경제적 충격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1913년이 비대칭적 상호의존을 담보로 한 ‘융단 폭격’이었다면, 2026년 무기화된 상호의존은 가치 사슬 내 ‘조임목(choke point)’을 활용한 ‘정밀 타격’이다. 이 차이는 1914년 1차 대전과 2026년 ‘총성 없는 전쟁(war without gunfire)’으로 나타난다.

무기화된 상호의존에도 패러독스(paradox)가 있다. 전략 경쟁의 상대국을 견제, 압박해야 하는 국가와 상업적 이익을 포기할 수 없는 기업 사이에 이해 충돌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AI 반도체 수출 통제를 통해 중국의 AI 굴기를 지연시키려고 함에도, 엔비디아가 AI 반도체 수출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끝내 수출 허가를 획득한 것은 단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이는 국가가 기업의 협조 없이는 상호의존을 무기화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기업이 전략 경쟁이 파국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최후의 안전판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업의 초국적 이해관계는 1913년보다 훨씬 더 촘촘하게 엮여져 있다.

1913년의 교훈 가운데 하나는 전략 경쟁의 상대국뿐 아니라, 제3국에 유의하라는 것이다. 경제적 상호의존의 수준이 낮은 약소국 간 갈등이 1차 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전략 경쟁의 상대국에 과도하게 몰두할 경우, 예상외의 지점에서 전쟁의 방아쇠가 당겨질 수 있다. 21세기에는 분쟁을 서슴지 않는 상호의존 수준이 낮은 국가들이 강대국을 연루하는 힘과 미국과 중국을 매개하는 연결 국가(connecting countries)들이 직접 충돌의 가능성을 낮추는 힘이 공존한다. 연결 국가들은 지난 수년 간 상대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해 온 미국과 중국이 간접적 상호의존을 유지,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미국과 중국이 연결 국가들을 활용한 새로운 경계 짓기의 과정에 돌입한 셈이다. 다만, 그 중장기적 효과는 아직 불분명하다. 미국과 중국이 연결국가에 의한 평화 증진 효과를 기대할 것인지,  아니면 이들을 트로이의 목마로 보고, 제거하려고 할 것인지 여부가 세계 질서 재편의 방향을 설정할 것이다.

ㆍ100년의 평화(벨 에포크)=1815년 나폴레옹 전쟁 종료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 전까지 유럽에서 대규모 전쟁이 없었던 시기.
 
ㆍ전간기(戰間期·Interwar period)=양차 대전 사이의 1918년 11월부터 1939년 9월까지 시기. 독일,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고 공산주의(러시아)·파시즘(이탈리아·독일)이 집권했으며 대공황이 강타한 정치·사회·경제적 격변기였다.
 
ㆍ세력권(Sphere of Influence)=제국주의 시대나 냉전기처럼 강대국이 특정 지역이나 국가에 대해 정치·경제·군사적 우위를 점하고 배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범위. 해당 세력권 내 소국들의 자율성은 제한된다.
 
ㆍ세력균형(Balance of Power)=특정 국가나 동맹이 압도적인 힘을 갖지 못하도록 국가들이 서로 견제하여 힘의 평형을 이루는 상태로 한 국가가 패권을 잡으려 하면 다른 국가들이 동맹(세력 전이 방지)이나 군비 증강을 통해 대응, 체제 안정을 유지하려는 현실주의적 질서 원리.

이승주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로 버클리대 박사 출신이며 싱가포르국립대·연세대 교수로도 있었다. 『디지털 무역 질서의 국제정치경제』 『중국 ‘우주 굴기’의 정치경제』 등의 저서가 있다.

[출처:중앙일보, 고정애 기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7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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