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한국의 주변국 외교 및 대북 전략 컨퍼런스: 신년 대담회] ③ 발전·안보 이중 전략과 기술관료 통치: 시진핑 체제 중국 국가 대전략의 본질
편집자 주
조영남 서울대 교수는 중국이 '정점론'을 넘어 첨단 산업국으로 도약하면서 미국의 견제에 대응하기 위해 채택하고 있는 '국가발전전략'을 분석합니다. 조 교수는 기술관료 중심의 지도부와 경제·안보 병행 노선이 중국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이 독자적인 생존 가치를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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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스크립트
반갑습니다. 우선 이해해야 할 점은 올해가 중국이 개혁개방을 한 지 48년이 되는 해이며, 50년이 다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10년 단위로 국가적 위기를 겪었으며, 그때마다 ‘중국 망한다’, ‘중국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가장 최근의 위기로는 2023년에서 2024년 전 세계를 강타했던 ‘피크 차이나(Peak China)’론과 이에 수반된 중국 위기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실거리는 병자인 줄 알았던 중국은 첨단 산업 국가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는 코로나19 이후 국제회의 등으로 중국을 여덟 번 방문했으며, 지방과 기업체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40년간 중국을 연구한 전문가로서 제 눈에도 중국은 훨씬 많이, 그리고 빠르게 변했습니다.
놀랐습니다. 특히 시진핑 주석 시기인 지난 10년, 13년 동안 중국의 꿈이라는 국가 전략을 제시하고, 이에 맞춰 제13차, 14차 5개년 계획을 실행했으며, 내년부터 제15차 5개년 계획이 시행됩니다. 또한 당대회를 세 번 거쳤습니다. 제가 받은 질문은 ‘도대체 중국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입니다. 이따 말씀드리겠지만,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 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쇠퇴하거나 망하기는커녕 오히려 미국에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으며, 전혀 위축되지 않는 모습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국내 주요 언론 보도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중국의 국가 발전 전략과 미국 견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순서대로 가장 중요한 중국의 현재 상황, 즉 국가 발전 전략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의 국가 발전 전략은 처음부터 미국의 견제를 전제로 했습니다. 시진핑 정부는 2012년에 출범했지만, 그 이전인 2009년 등장한 오바마 미국 정부가 이미 중국 견제 방침을 분명히 천명했습니다. 다만 실행을 못 했을 뿐입니다. 따라서 중국의 국가 발전 전략은 미국에 대한 대응 전략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이 한반도에 대해 어떤 정책을 쓰고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현재 중국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편의상 중국 지도자들을 구분하면,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하여 중국을 건국한 마오쩌둥 중심의 제1세대. 이들은 혁명에는 성공했지만,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고 평가받습니다.
부국강병을 이룬 것은 제2세대 덩샤오핑입니다. 그리고 제2세대를 위해 육성된 지도자들이 제3세대 장쩌민, 제4세대 후진타오입니다. 그 이후 시진핑 시대가 등장했습니다. 원래라면 기존의 개혁개방 규범에 따라 3년 전 제20차 당대회 때 제5세대 지도부가 물러나고 제6세대 지도부가 등장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를 흔히 시진핑의 ‘총서기 3연임’이라고 합니다. 통계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중국의 통치 엘리트는 크게 국가급 지도자와 장관급 지도자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국가급 지도자는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을 의미합니다. 이들 중 1950년대생이 6명이고, 1960년대생은 딩쉐샹 한 명뿐입니다. 즉, 현재 중국을 주도하는 것은 제5세대입니다. 반면 장관급 지도자(중앙정부 장관급 또는 31개 성의 당서기 및 성장) 62명을 보면 상황이 다릅니다. 통계에 나와 있듯이 대부분 교체되었습니다. 정치국(정치국 상무위원 포함)에는 제5세대가 다수지만, 제6세대도 상당수 포함되었습니다. 따라서 현재 중국의 통치 엘리트는 최고위직은 제5세대가 주도하고, 실무 총책임자인 장관급은 이미 제6세대로 교체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제5세대와 제6세대의 통합 체제라고 규정해도 무방합니다.
제5세대 통치 엘리트의 특성과 시진핑 시대
참고로 1970년대생들은 현재 차관급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년 후 개최될 제21차 당대회에서 이들 중 상당수가 장관급으로 승진할 것입니다. 시진핑 주석만 보면 지도부의 권력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국 상무위원만 그대로일 뿐, 장관급에서는 사실상 제5세대에서 제6세대로 교체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통치자가 누구인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제5세대 지도자의 특성을 봐야 합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시진핑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제5세대 집단의 특성입니다. 학계에서는 이들을 1950년대 출생자로 정의합니다. 이들은 1949년 건국 이후 태어나 혁명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문화대혁명을 경험하며 중국의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고, 마오쩌둥 사망 후 대학 제도가 부활하여 공부를 시작했으며, 개혁개방 시기에 대학을 마쳤습니다. 1980년대 초부터
현재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하급 간부부터 경험하며 올라온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현재 중국을 지도하는 통치 엘리트들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이들은 혁명과는 거리가 멀지만, 개혁개방의 지도자로서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해온 것’이라는 자부심이 매우 강합니다. 또한, 장쩌민, 후진타오 세대가 기술 관료였다면, 이들은 주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지도자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들의 성향은 시진핑 주석에게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때 2012년 제18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총서기로 선출되었을 때, 국내외 일부 언론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중국의 고르바초프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시진핑 주석의 아버지인 시중쉰은 광둥성 당서기 시절 경제특구를 만든 개혁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중국 내에서 존경받는 혁명 지도자 중 한 명입니다.
권력, 돈, 명예 앞에서 항상 원칙을 선택했던 사람입니다. 매우 어려운 삶을 살았는데, 시중쉰의 아들이 시진핑 아니냐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더구나 시진핑 주석은 푸젠성, 저장성, 상하이 등 개혁개방의 핵심 지역에서 성장하며 비즈니스 친화적인 리더십으로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에, 그가 집권하면 중국에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예상에 반대했습니다.
실제로 드러난 것은, 그가 처음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되었을 때의 짧은 연설에 그의 정치 방침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민족, 인민, 공산당’입니다. 경제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처음부터 보수였습니다. 나중에는 경제 방침 자체가 정치 방침을 따라가면서 보수화되었습니다. 2020년은 매우 중요한 해였습니다. 그 해가 중요한 이유는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근본적인 방침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중국 공산당의 근본 방침 변화와 경제·안보 동시 고려
덩샤오핑이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하며 내세웠던 원칙은 ‘경제 발전 최우선 전략’이었습니다. 외교, 군사 등 모든 것이 여기에 기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2020년을 기점으로 ‘공동 발전과 안보의 동시 고려 전략’으로 바뀌었습니다. 즉, 경제 성장과 국가 안보, 공산당 체제 유지가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국내 정책과 대외 정책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대외 정책으로는 ‘전랑 외교(Wolf Warrior Diplomacy)’가 대표적입니다. 이때부터 외교관들이 공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정책으로는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부동산 부양책 중단입니다. 더 이상 경제 발전에만 신경 쓰지 않고 성장 촉진에만 집중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2021년 헝다그룹 사태와 같이 민간 부동산 기업들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부동산 경기가 침체된 것은 국가 전략 변경에 따른 예상된 결과이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닙니다. 감소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 감소하겠다는 것은 올바른 선택이라고 봅니다. 시진핑 주석 집권 10년 동안 가장 중요한 방침 하나를 꼽으라면 ‘공산당의 전면 영도’입니다. 공산당이 모든 것을 영도하는 것에서 예외는 없습니다. 민영 기업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들의 성향입니다. 더 고려해야 할 점은, 설사 2년 후 제21차 당대회에서 권력 승계가 이루어져 제6세대 지도부가 등장하더라도 이 방침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시진핑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산당 집단의 합의이며,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3년 후 물러나더라도, 앞으로 미국 대통령들의 성향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200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후퇴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민주주의 후퇴 현상이 나타나면 두 가지가 두드러집니다. 국제정치적으로는 더 이상 가치가 의미가 없습니다. 자유, 인권 같은 것은 없습니다. 오직 국가 이익과 힘이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국내 정치에서는 스트롱맨 리더십이 나타납니다. 비리비리한 정치는 선출되지 못합니다. 러시아, 튀르키예 등을 보십시오. 이미 스트롱맨 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2단계 발전 목표
2000년부터 시작된 현상입니다. 이는 미국의 트럼프 현상이며, 중국에서는 시진핑 현상입니다. 따라서 미국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과거와 같은 상황이 나오기 어렵듯이, 중국에서도 제5세대에서 제6세대로 권력이 바뀌더라도 이러한 정책 기조는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특히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국가 전략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는 다시 말씀드리면 그대로 이어졌고, 제18차, 19차, 20차 당대회를 거치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새로운 국가 발전 목표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모두 들어보셨을 이야기입니다.
1단계는 이미 끝났습니다. 절대 빈곤을 없앴다고 했습니다. 2단계는, 저기 인용 부호 안의 말은 중국에서 쓰는 표현이고, 아래는 학자들의 해석입니다. 앞으로 2035년까지 1인당 GDP를 약 25,000달러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입니다. 작년(2024년) 1인당 GDP는 13,000달러였는데, 이를 25,000달러로 올리겠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러한 통계는 흐름만 보십시오.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을 ‘하나의 중국, 세 개의 세계’로 분석합니다. 중국은 하나이지만, 실제로는 세 개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다를 낀 연안 지역이 제1세계입니다. 제1세계 중 가장 잘 사는 곳은 상하이로, 인구가 2,500만 명이며 1인당 GDP는 3만 달러입니다. 두 번째로 잘 사는 광역 단체는 선전으로, 1인당 GDP는 29,500달러입니다. 베이징은 약 26,000달러입니다. 어쨌든 이 지역은 약 3억에서 4억 명 규모이며, 이미 1인당 GDP 2만 달러를 넘었습니다. 이 지역은 이미 2단계 발전 목표가 실현된 것입니다. 그러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제2세계, 중간 지역은 약 7억 명 규모이며 1인당 GDP는 약 15,000달러입니다. 우리가 아는 소수민족 지역 등 서쪽의 제3세계는 평균 5,000~6,000달러 수준입니다. 따라서 2단계 발전 전략은 중국 전역을 현재의 제1세계처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10년 안에 가능할까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저렇게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전형적인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국가 발전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치적 안정이 필수적인데,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런 문제는 없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실각설은 미국, 일본, 심지어 대만에서도 유행하지 않았습니다.
유튜버들이 많이 이야기했지만, 유일하게 한국의 주요 언론들이 다루었던 현상입니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단적으로 말해, 미국의 주요 언론은 중국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한 적이 없으며, 일본의 주요 신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일하게 한국만 다릅니다. 저는 이것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특정 세력이 의도적으로 만든 정보전 또는 선전이라고 간주합니다. 어쨌든 시진핑 주석의 사임은 불법이 아니며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이루어졌고, 이에 대해 비토하거나 반대할 세력은 없습니다. 다만 권력을 세 번째 연임하면서 발생할 문제의 가능성은 있습니다. 제가 이 논문을 썼고 곧 출간될 예정입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정책의 탄력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10년마다 중앙과 지방의 지도부가 교체되었습니다. 새로 등장한 지도부는 이전 정책 중 잘한 것은 계승하되, 잘못한 것은 바꿀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중국 혁신 주도 전략의 가능성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이것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분석에 따라서는 정책 탄력성이 유지되고 있어 큰 문제가 없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즉, 잘못된 정책은 계속 바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인데, 덩샤오핑과 같은 혁명 원로들이 만들어 놓은 권력 승계 규범을 시진핑 주석이 깨뜨렸다는 것입니다.
그럼 새로 등장한 지도부들은 부담 없이 이전 정책 중에서 잘한 것은 계승하지만, 잘못한 것은 바꿀 수 있죠. 이것을 계속 해왔던 겁니다. 그런 중국이 혁신 주도 전략이 가능했던 거예요. 그런데 이것이 바뀌지 않았죠. 거기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이제 분석에 따라서는 중국의 정책 탄력성이 유지되고 있다, 큰 문제 없다, 즉 잘못된 정책은 계속 바꾸고 있다. 이제 두 번째는 이것은 아직 끝난 게 아닌데, 시진핑이 혁명 원로들이 만들어 놓은 권력 승계 규범을 깨버렸어요.
권력 규범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엘리트 정치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참고로 베트남에서 먼저 시작된 엘리트 정치는 4~5년 후에 중국으로 옮겨가기도 합니다. 중국 공산당 총서기 선출도 응우옌 푸 쫑 총서장이 먼저 인기를 기반으로 했습니다. 그 인기의 기반은 반부패였습니다. 내년에 베이징에서 제14차 당대회가 열리고, 그 다음 해에는 중국에서 제21차 당대회가 열립니다. 따라서 베트남 당대회에서 일어나는 일이 조금 있으면 중국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예를 볼 수 있습니다.
미중 패권 전쟁 인식과 중국의 대응 전략
이어서 중국은 어떤 국가 발전 전략을 짜고 있으며, 그 속에서 미국에 대한 대응책은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근본적으로 중국은 미국의 견제 정책에 대해 미국의 생각과 다르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이것은 통상 전쟁도, 기술 전쟁도 아닌 패권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이 가만히 있는데 중국이 도전한 것이 아닙니다. 중국이 현재 하고 있는 정책의 80%는 2002년 후진타오 집권 당시 제16차 당대회에서 결정된 것입니다. 시진핑이 들어와서 바뀐 것은 제 판단으로는 20%가 넘지 않습니다. 즉, 중국은 자신들의 길을 간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다른 행동을 했습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 거의 10년 가까이 매달렸습니다. 그 사이에 중국은 국내 혁신 주도 발전 전략을 추진했고, 대외적으로는 주변 국가와 개발도상국을 챙기는 정책을 꾸준히 실행했습니다. 후진타오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
미국은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로의 회귀라는 용어가 등장했고, 결국 재균형 전략으로 이어졌지만 실행되지는 못했습니다. 중국에 대한 경제 정책은 그때 시작되었습니다. 방침은 발표되었지만 실행되지 못한 이유는 다들 아실 겁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미국 국내 상황이 매우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내부 수습에 집중하는 동안, 오바마케어와 같은 정책이 만들어졌고, 이는 이번 셧다운 사태의 핵심 이슈가 되었습니다. 제대로 된 견제는 트럼프 행정부 때 시작되었지만 방법론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제가 볼 때 제대로 된 견제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권 교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본적인 인식입니다.
이것은 이미 3년 전 제20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에서 공식적으로 나타난 내용이며 매우 중요합니다. 왜 중요하냐 하면, 중국은 혁명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북한도 혁명 국가입니다. 북한이나 중국의 보고서를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먼저 정세 분석부터 시작합니다. 아까 박훈 교수가 발표할 때 세계 진영이 어떻다는 분석부터 시작했듯이,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부터 정책이 도출됩니다. 이것이 바뀌었습니다.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시작할 무렵, 마오쩌둥의 국제정세 인식을 바꾸면서 가능했습니다. 마오쩌둥은 전 세계 정세가 혁명과 전쟁의 시대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미국이나 소련이 중국을 공격할 수 있으므로 중국은 전쟁 대비를 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혁명의 시대라고 보아 국내적으로는 문화대혁명을 일으켰고, 대외적으로는 제3세계 지원과 같은 활동을 했습니다. 이러한 전쟁과 혁명의 시대라는 국제정세 인식 하에서는 개혁개방이 불가능했습니다. 덩샤오핑은 이를 깨고, 지금은 더 이상 전쟁 시대가 아니라 평화 시대라고 보았습니다. 중국이 핵무장을 했기 때문에 누구도 중국을 공격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두 번째, 지금은 혁명의 시대가 아니라 각국이 자국의 발전을 도모하는 발전의 시대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냉전이 종식되었는데, 그보다 10여 년 전에 이러한 인식을 정립했습니다. 따라서 국제정세는 평화와 발전의 시대라고 보았고, 이를 바탕으로 40년간 경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제20차 당대회에서 이러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바뀌었냐 하면, 국내적으로는 전략적 기회기가 아니라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시대라고 보았습니다. 강조점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바로 위기입니다.
위기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중국이 완전히 환골탈태하여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판단입니다. 쉬운 개혁은 이미 끝났고, 앞으로 남은 개혁은 매우 어려운 개혁이며, 이것을 성공하지 못하면 끝이라는 의미입니다. 대외적으로는 역사적 전면적 변화의 시대라고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개발도상국의 부흥을 막으려는 미국 중심의 일부 세력의 패권 행태 때문에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정치 전략: 통치 엘리트 변화와 군 개혁
이에 대해 중국은 국내적으로는 공산당의 전면적인 투쟁을, 대외적으로는 투쟁을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제20차 당대회에서 중국의 정치 문건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용어가 바로 '투쟁'입니다. 이는 3년 전, 트럼프 집권 훨씬 이전에 시작된 인식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세 인식입니다. 이제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중국은 어떤 국가 발전 전략을 통해 미국에 맞설 것인가? 내용이 매우 풍부하지만, 재미를 위해 딱 하나씩만 꼽아왔습니다. 우선 정치 전략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의 통치 엘리트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냐 하면,
흔히 중국이 개혁개방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이유로 전략 노선이 올바랐다는 점을 듭니다. 저는 이에 대해 반만 동의합니다. 1989년 천안문 사태나 1991년 소련 붕괴와 같은 엄청난 시련 속에서도 개혁개방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치 엘리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기본적으로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한 원로들의 올바른 방향 제시와 이를 집행할 수 있는 장·차관급 실무 지도자들의 두터운 형성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1981년부터 1986년까지 기존 당정 간부 140만 명을 퇴출시키고, 46만 명의 새로운 간부들을 대거 등용했습니다. 이들은 국장급에서 차관급, 장관급까지 성장했으며, 1990년대 중국의 핵심 인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들은 개혁개방과 자신들의 이익이 일치한다고 보았습니다.
개혁개방이 좌절되면 자신들도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들이 기술 관료들, 즉 테크노크라트입니다. 학계에서 기술 관료를 분류하는 세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첫째, 학부에서 이공계 학위를 취득해야 합니다. 둘째, 엔지니어로서 전문 직종에서 최소 10년 이상 근무해야 합니다. 셋째, 당정 간부로 발탁되어 장관급 지위에 올라야 합니다. 이 세 가지 기준을 만족하는 사람들을 기술 관리라고 부릅니다. 시진핑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는 칭화대학교 화학공학과를 나왔지만 전문 직종에서 근무한 경험이 없습니다.
따라서 공대 출신이지만 테크노크라트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의 최종 학력은 칭화대학교 법학 박사입니다. 인류 역사상 인구 10억이 넘는 나라를 20년 동안 기술 관료가 통치한 사례는 없습니다. 그들의 비약적인 경제 성장은 중국 성장의 중요한 동력이었습니다. 이들은 혁명가가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었습니다. 1982년 국무원 중앙정보 장관 중 기술 관료는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1997년 장쩌민 집권 초기에는 장관의 70% 이상이 기술 관료였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도지사와 같은 지방 지도자들도 중국에서는 성 지도자라고 불리는데, 이들 역시 70% 이상이 중앙위원이었습니다. 이는 중앙위원 중 20%가 현역 장군들이기 때문입니다. 현역 장군들을 제외하면 비율은 비슷합니다.
이들이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시진핑 정부 들어서 이러한 경향이 다시 강화되었습니다. 중국식 표현으로는 고급 전문 기술 직무 출신들이 중앙위원의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약 50%에 달합니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13명의 정치국 위원 중 6명이 박사 학위 소지자입니다. 우주항공,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박사들입니다. 다른 통계를 살펴보겠습니다. 통계 계산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장쩌민 시기 지방 지도자의 66%가 기술 관료였습니다. 시진핑 집권 시기인 제18차 당대회에서는 이 비율이 낮아졌는데, 이는 시진핑이 인사한 것이 아니라 전임 지도부의 영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꾸준히 증가하여 제20차 당대회에서는 40%대까지 올라섰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겠죠? 미중 대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관급 지도자들이 누구인지입니다.
누가 이길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결국 경제 대결이며, 경제 대결은 과학 기술과 첨단 산업을 이해하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보고서 내용을 쉽게 설명해 보라고 하면, 전문 용어를 공식 회의에서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지도자들과 그렇지 못한 지도자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장기적으로 볼 때 누가 이길 것인가? 저는 정치 전략 측면에서 중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이 이것이라고 봅니다. 이제 경제 전략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이 부분은 전병 박사님께서 자세히 설명해주실 것이므로, 저는 큰 흐름만 잡겠습니다.
중국의 경제 전략: 첨단 산업 육성과 혁신 체제
중국의 경제 발전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초기 24년, 덩샤오핑 시대에는 경제 발전 지상주의였습니다. 당연한 것이,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했을 당시 1인당 GDP가 150달러였습니다. 당시 인도는 250달러였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150달러로는 생계 해결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경제 발전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렇게 24년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24년 동안 경제 발전에 모든 것을 집중하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역 불균형 심화, 계층 간 빈부 격차 확대, 환경 파괴 및 자원 낭비 심화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후진타오 집권 이후 공식적으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이를 표현한 것이 후진타오 시대의 '과학적 발전관'입니다. 즉, 기존의 발전관은 비과학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과학적으로 발전하겠다는 선언이었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습니다. 10년 동안 연평균 10.6%의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혹시 아시겠습니까? 당시 중국 정책 결정자들은 적정 성장률을 7%로 설정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성장률은 10%를 넘었습니다. 금방 아실 겁니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중국의 무역 흑자 비율은 70%대였지만, 지금은 30%대입니다. 금융위기가 미국과 유럽에서 확산되면서 3년여간 경기 침체 상태에 빠졌고, 경기 부양책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극적인 재정 정책과 4조 위안 규모의 은행 양적 완화, 8조 위안, 총 12조 위안이 풀렸습니다. 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2,400조 원이 풀린 것입니다.
엄청난 자금이 어디로 갔겠습니까? 아시다시피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아파트 가격이 상승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베이징 시내를 재정비하고 주변 도시들에 사회 간접 자본 인프라를 구축했습니다. 또한 2008년 쓰촨 대지진 복구에도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되어 인프라가 확충되었습니다. 이처럼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면서 지금까지도 중국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노력은 실패했고,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5년간의 모색을 거쳐 제20차 당대회에서 발전 방향을 명확히 했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첨단 산업 육성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첨단 산업 육성을 위한 혁신 체제 수립 전략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 양성입니다. 이것이 시작되었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잘 아실 겁니다. 가장 최근에는 작년에 반도체 기금으로 약 1조 5천억 위안, 즉 300조 원을 조성했고, 작년 5월에는 AI 창업 펀드로 1조 위안, 약 200조 원을 조성했습니다. 한국은 이에 대해 10조 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진핑 정부가 갑자기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중국을 만든 것은 30년 된 전략입니다. 저는 중국의 정치와 외교를 연구하면서 동시에 정책도 함께 보고 있는데, 중국이 최초로 혁신 주도 발전 전략을 수립한 것은 1996년입니다.
당시의 표현은 '과학 흥국 전략'으로, 과학과 기술로 나라를 부흥시킨다는 전략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중국은 중요한 정책을 시행할 때 전국적으로 즉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지역에서 시험적으로 실시합니다. 세 곳을 선정했는데, 첫째는 베이징의 중관춘입니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며 대학들이 밀집해 있습니다. 둘째는 상하이, 셋째는 선전입니다. 핵심 내용은 투자였습니다. 엔젤 펀드 조성 등에서 성공을 거두어 10년 정도 시험 운영한 후 전국으로 확대했습니다. 내용은 인구 200만~300만 이상 도시들에 벤처 타운을 조성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이를 통합하여 '중국 제조 2025'라는 첨단 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작년에 종료되었고, 올해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발표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전략 발표 이후 미국과의 통상 마찰이 발생했지만, 분명한 것은 이미 전략이 짜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첨단 산업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를 위해 '211 공정' 즉 21세기 인재 양성을 위한 100개 대학을 선정했습니다. 너무 많다고 판단하여 '985 공정'으로 축소하여 30여 개 대학을 선정했습니다. 1998년 5월에 시작된 이 프로젝트에 막대한 자금이 대학에 투입되었습니다. 참고로 중국에는 3,700개, 혹은 3,300개의 대학이 있습니다. 그중 30여 개 대학, 즉 각 성마다 하나씩, 베이징대, 칭화대 등입니다. 이렇게 인재를 육성하는 데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습니다. 자체 육성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해외 인재를 유치하기 시작했습니다. 흔히 '천인계획'이라고 불리는 이 프로그램의 원래 명칭은 '국가 첨단 분야 해외 고급 인재 초빙 전략'입니다. 약 7,000명의 인재를 유치했으며, 거의 노벨상급 인재들이었습니다. 이로써 중국은 더 이상 이공계 유학을 갈 필요가 없게 되었고, 전 세계 최고의 혁신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이는 30년간의 작업입니다. 중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화웨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1996년 이후에 설립되었습니다. 중국이 왜 이렇게 했느냐? 간단합니다. 공산당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1999년
중국의 외교 전략: 글로벌 사우스 외교와 네트워크 구축
중국의 대학 정책이 바뀌면서 매년 50만 명씩 대학 입학 정원을 늘렸습니다. 그 결과 2010년에는 매년 500만 명의 대졸자가 배출되었습니다. 작년 8월 졸업생 수를 보셨습니까? 신문에서 1,200만 명의 졸업생이 배출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를 흡수하지 못하면 정권 유지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혁신 분야의 창업과 서비스업 육성에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코로나19 이전에는 매년 15,000개의 벤처 기업이 설립되었고, 연간 65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이러한 분야에서 창출되었습니다. 이것이 현재 중국을 만든 동력입니다. 이제 외교로 넘어가겠습니다. 중국의 외교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시진핑 정부 10년간의 외교 전략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미국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주변국 외교와 개발도상국 외교를 통합하여 '글로벌 사우스 외교'라고 부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이를 보여주는 예로 2013년 시진핑 집권 1년 차에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주변국 외교 관련 회의를 개최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중국의 경제 발전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초기 24년, 덩샤오핑 시대에는 경제 발전 지상주의였습니다. 당연한 것이,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했을 당시 1인당 GDP가 150달러였습니다. 당시 인도는 250달러였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150달러로는 생계 해결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경제 발전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렇게 24년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24년 동안 경제 발전에 모든 것을 집중하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역 불균형 심화, 계층 간 빈부 격차 확대, 환경 파괴 및 자원 낭비 심화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후진타오 집권 이후 공식적으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이를 표현한 것이 후진타오 시대의 '과학적 발전관'입니다. 즉, 기존의 발전관은 비과학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과학적으로 발전하겠다는 선언이었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습니다. 10년 동안 연평균 10.6%의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혹시 아시겠습니까? 당시 중국 정책 결정자들은 적정 성장률을 7%로 설정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성장률은 10%를 넘었습니다. 금방 아실 겁니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중국의 무역 흑자 비율은 70%대였지만, 지금은 30%대입니다. 금융위기가 미국과 유럽에서 확산되면서 3년여간 경기 침체 상태에 빠졌고, 경기 부양책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극적인 재정 정책과 4조 위안 규모의 은행 양적 완화, 8조 위안, 총 12조 위안이 풀렸습니다. 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2,400조 원이 풀린 것입니다.
들어보셨죠? 일대일로라든지, 그리고 신남방정책은 미국의 동맹에 대한 대응책입니다. 중국은 '인류 운명 공동체'를 내세우며 미국의 냉전 의식에 기반한 동맹 중심 외교를 비판했습니다. 이는 2013년 시진핑 주석의 발언으로, 미국 중심의 가치 외교에 대비한 것입니다. 이러한 외교는 강대국 중심에서 주변 외교, 나아가 글로벌 사우스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는 일관되게 추진되어 왔습니다.
그 결과, 각 대륙의 개발도상국 지도자 모임인 브릭스가 출범했습니다. 처음 다섯 개국으로 시작해 현재 열 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중국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을 둘러싼 북쪽과 서쪽에는 상하이협력기구가 있습니다. 처음 여섯 개국으로 시작해 현재 회원국은 열 개국이며, 옵저버까지 포함하면 19개국입니다. 남쪽으로는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이 있지만, 이는 중국판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중국은 후진타오 시대부터 20년간 일관되게 개발도상국을 우군으로 확보하는 전략을 추진해 왔습니다. 중국의 판단은 명확합니다. 중국이 어떤 일을 하든 G7은 중국 편을 들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략은 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단순히 말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결국 돈을 써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대일로 전략입니다. 일대일로는 자원 개발 전략이나 다른 나라의 공항 건설 등이 아닙니다. 핵심은 연결성 전략입니다. 중국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속철도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중국의 고속철도망은 4만km에 달하며, 수십만 명의 엔지니어와 막대한 장비가 투입되었습니다.
또한, 5G 통신망은 화웨이가 주도하고 있으며, 베이더우(BeiDou) 위성항법시스템을 통해 GPS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제재로 인해 각국이 불안감을 느끼자, 중국은 위안화를 통화 수단으로 사용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이처럼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이는 현재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작년 1월 20일, 미국이 중국에 대해 대규모 관세를 부과했을 때, 중국의 대미 수출은 15%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총 수출액은 오히려 증가했으며, 무역 흑자는 작년 11월 기준으로 1조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한국의 작년 전체 수출액이 7천억 달러를 돌파한 것을 축하했지만, 중국은 작년 11월에 이미 무역 흑자 1조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미국으로부터 수출이 크게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과는 다른 지역에서의 무역 흑자 증가로 상쇄되었습니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중국의 대미 수출이 10% 감소하더라도 중국 경제에 큰 영향은 없을 것입니다. 전략적으로 볼 때 그렇습니다. 작년 봄에도 이러한 회의를 열어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개발도상국 중심 외교의 결과물입니다. 한국 언론에서는 선진국들의 불참을 보도하지만, 중국은 이에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는 주로 개발도상국 중심 외교의 결과물입니다.
중국의 군사 전략과 핵 전략 변화
다음으로 군사 분야로 넘어가겠습니다. 중국은 핵심 이익을 수호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신장, 티베트, 대만 등이 핵심 이익이었으나, 2007년과 2008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혼란 속에서 중국 지도부가 서방은 쇠퇴하고 중국은 부상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공식적으로 핵심 이익을 주권, 안보, 발전 이익으로 규정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모든 지역이 동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은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불과 3일 전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공격했습니다. 세계 최강대국 두 곳이 충돌한 상황에서 다음으로 강력한 국가는 중국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네 곳의 잠재적 위협 지역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대만, 남중국해, 동중국해, 그리고 한반도입니다. 이 지역들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가 중국의 기본 전략입니다. 이에 맞춰 중국은 이미 19차 당대회에서 인민해방군 현대화 발전을 추진했습니다. 이 중 오해가 많은 1단계는 대만을 공격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대만을 군사적으로 점령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자는 것입니다.
제 판단으로는 중국의 군사 전략은 기본적으로 미국에 맞서 태평양까지 진출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실적인 전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국방비는 1조 달러인데 비해 중국은 3천억 달러에 불과합니다. 2050년까지 태평양에서 미국과 경쟁하려면 국방비를 계속 올려야 하는데, 이는 비현실적입니다.
중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 판단으로는 동아시아, 넓게는 아시아 전체에서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부분적 패권주의 전략이라고 간주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하나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바로 군 개혁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개혁 이전의 기본적인 지휘 구조를 보면, 사회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문제가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과 인민해방군을 연결하는 유일한 고리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인데, 이 민간인이 바로 시진핑입니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대에는 이러한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군인 출신이었기 때문에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군을 통솔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시대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첫째, 이 민간인 지도력이 하급 부대까지 전달될까요? 4총부라고 불리는 핵심 부서가 현역 군인들로 장악되어 있는데, 그들이 민간인 지시를 따를까요? 군 내부의 보고가 제대로 올라올까요?
보고가 제대로 올라오지 않습니다. 후진타오 시대에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셋째, 4총부와 4대 군종은 모두 육군 중심입니다. 현대전에서 육군 중심의 군대가 유효할까요? 넷째, 연합 작전 체제가 없습니다. 육해공 합동 작전이 필수적인데도 말입니다. 이러한 구조로는 미국과 경쟁할 수 없습니다. 장쩌민 시대에도 2000년에 군 개혁을 시도했지만, 군의 강력한 반발로 6개월 만에 무산되었습니다. 시진핑이 이를 다시 추진한 것입니다. 저는 시진핑 정부의 대외 전략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이 일대일로이며, 대내적으로는 군 개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개혁은 목숨을 건 것입니다. 시진핑 집권 13년 동안 120명의 장군이 처벌되었습니다. 시진핑은 지금 목숨을 걸고 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개혁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4총부가 15개의 참모 조직으로 개편되면서 시진핑의 명령이 지역 및 군종으로 직접 전달됩니다. 소통을 방해하는 조직이 사라진 것입니다. 둘째, 중국을 7개 지역으로 나누었던 7대 군구를 5대 전구로 개편하여 육해공 합동 작전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셋째, 4대 병종은 4대 군종 및 4대 병종으로 확대되어 총 8개로 늘어났습니다.
전문화되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시진핑의 신분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서 인민복을 입었지만, 이제는 전투복을 입습니다. 이는 새로 신설된 연합 작전 지휘 기구인 합참의 위상을 보여줍니다. 합참의장으로서 군복을 입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는 이전에는 없었던 것으로, 완전히 새로운 체제입니다. 이를 통해 시진핑의 군에 대한 통수권이 확실해졌으며, 군 개혁에 대한 그의 의지가 꺾이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대부분의 중국 전문가들은 이러한 분석에 동의합니다. 또한, 중국은 세계 최초로 항모 전단을 운용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습니다. 항모 세 개 전단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데, 이미 이를 갖췄습니다. 4호, 5호, 6호 항모가 건조 중이며, 2035년에는 핵 항모가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20차 당대회에서 중국의 핵 전략이 변경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변경되었고, 이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혹시 몇 년 전부터 북핵 문제에 대한 언급이 줄어든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으셨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현재 북핵 문제를 언급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입니다. 이는 바로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중국은 '강대한 전략적 억제 능력'을 갖추겠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기존의 '최소 억제 전략'에서 '최대 억제 전략'으로 전환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핵무기 보유량을 300개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고 있습니다. 반면, 러시아와 미국은 이미 최대 억제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미국 국방부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핵탄두가 100개씩 증가하여 2030년경에는 1,000개에 달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중국이 전략을 바꾼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세계 강대국이 되려면 군사력 면에서도 이를 따라가야 한다는 판단입니다. 러시아의 군사 전략이 재래식 무기에서 핵무기 중심으로 전환된 것처럼, 중국도 핵무기를 통해 미국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2016년 사드 배치 결정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사일 방어 체제 구축에 대한 중국의 우려가 커졌습니다.
중국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핵무기 보유량을 대폭 늘리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러한 전략을 가속화시켰습니다. 나토와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지만 병력 파병은 하지 못합니다. 이는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전술핵 훈련까지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를 그대로 모방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점이 매우 두렵습니다. 지금까지 북한과 중국이 미국과의 핵 경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아 그나마 잠잠했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이는 중국 국방백서와 15차 5개년 계획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 변화와 핵 보유국 지위
더 이상 한반도 비핵화는 중국의 정책 목표가 아닙니다. 참고로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마지막으로 사용한 것은 2024년 5월 한중일 회의 때입니다. 당시 중국 리창 총리가 참석하여 합의문에 '지역 안정과 번영,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를 각각 강조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는 중국이 지역 평화와 안정을, 한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일본이 납치자 문제를 강조했다는 의미입니다. 그 이후로 제가 아는 한,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중국이 매년 핵탄두를 100개씩 늘리면서 북한에게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핵 전략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더 이상 북한 문제와 관련하여 한반도 비핵화를 중국의 정책으로 삼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즉, 공식적으로는 아닐지라도 비공식적으로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합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중국을 보지 말고, 중국의 관점에서 한반도를 봐야 합니다.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관점은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시기적으로 강조점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중국을 복합적으로 보지만, 중국은 우리를 더 복합적으로 봅니다. 첫 번째는 한국 자체를 보는 관점입니다.
이는 초기, 즉 1992년 국교 수교 당시의 관점입니다. 한국의 경제적 가치와 대만 고립이라는 외교적 가치 때문에 북한의 결사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중 수교를 추진했습니다. 이로 인해 10년간 한국에 대한 대접이 매우 훌륭했습니다. 두 번째는 2000년대 이후 남북한 가치를 재평가하면서 본격적인 균형 외교를 시작한 것입니다. 현재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남한 정책이나 북한 정책이 아닌, 한반도 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2010년대 이후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간단히 말해 '너 한국, 어떻게 할래?'라는 질문에 따라 중국과의 관계를 설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관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현재는 두 번째 관점이 중심이고 세 번째 관점이 부수적입니다. 따라서 두 번째 관점을 중심으로 보면, 중국은 국가 이익을 위해 순서대로 한반도 정책을 펼칩니다.
이것은 초기였습니다. 초기 1992년 국교 수교 당시에 한국의 경제적 가치, 그다음에 대만을 고립시키는 외교적 가치, 이것 때문에 북한의 결사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중 수교를 했던 거고요. 이게 10년 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그때 진짜 한국에 대한 대접이 훌륭했었죠. 두 번째로는 바로 2000년대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남북한 가치를 재평가하기 시작하면서 이때부터 이제 본격적인 균형 외교를 시작하게 되는 그리고 현재 중국의 한반도 정책 전국의 한국 남한 정책은 없다고 보여요. 중국에 있는 것은 남한 정책도 아니고 북한 정책도 아니고 한반도 정책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이거는 이제 이천 십년대 나타난 것으로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을 바라봅니다. 간단히 말해 '너 한국, 어떻게 할래?' 여기에 따라 중국을 쓰겠다. 중국의 방침을 하겠다라는 거고요. 이게 세계가 같이 작동을 하고 있는데 현재는 2번이 중심이고 3번이 거기에 부수적입니다. 그래서 2번을 중심으로 보시면 중국은 국가 이익을 위해서 저 순서대로 한반도 정책을 펼칩니다.
이것은 초기였습니다. 초기 1992년 국교 수교 당시에 한국의 경제적 가치, 그다음에 대만을 고립시키는 외교적 가치, 이것 때문에 북한의 결사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중 수교를 했던 거고요. 이게 10년 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그때 진짜 한국에 대한 대접이 훌륭했었죠. 두 번째로는 바로 2000년대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남북한 가치를 재평가하기 시작하면서 이때부터 이제 본격적인 균형 외교를 시작하게 되는 그리고 현재 중국의 한반도 정책 전국의 한국 남한 정책은 없다고 보여요. 중국에 있는 것은 남한 정책도 아니고 북한 정책도 아니고 한반도 정책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이거는 이제 이천 십년대 나타난 것으로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을 바라봅니다. 간단히 말해 '너 한국, 어떻게 할래?' 여기에 따라 중국을 쓰겠다. 중국의 방침을 하겠다라는 거고요. 이게 세계가 같이 작동을 하고 있는데 현재는 2번이 중심이고 3번이 거기에 부수적입니다. 그래서 2번을 중심으로 보시면 중국은 국가 이익을 위해서 저 순서대로 한반도 정책을 펼칩니다.
첫째, 안정적인 분단 유지를 원하며 통일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북한이 사고를 치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둘째, 북한 체제 유지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전략적 가치가 있습니다. 북한이 좋아서가 아니라, 셋째, 한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남북한의 균형 외교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작년 10월 조선노동당 창건 80주년에 리창 총리가 방북한 이유를 제 해석으로는, 재작년 2024년 5월 한중일 정상회담 때 리커창 총리가 왔기 때문에 답방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항상 그래왔습니다. 작년 11월 시진핑 주석의 국빈 방문에 이어 조만간 북한을 방문할 것입니다. 중국은 항상 이런 식으로 관계를 관리해왔습니다. 또한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이 세 가지 문제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한국의 독자적 가치 확보와 미중 경쟁 속 과제
군사 안보, 경제, 외교적 측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에 따라 중국이 방침을 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 던지는 고민은 이것입니다. 한국이 독자적인 가치를 중국에 어떻게 제시할 수 있을까? 한때는 한국 주도의 한중 관계였으나, 지금은 중국 주도의 경쟁 관계입니다. 이 속에서 한국의 독자적인 가치는 무엇일까요?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는 고민입니다. 지구적 차원, 지역적 차원, 양국 차원에서 하나하나 쉽지 않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정책을 집행하기 위해 세 가지를 동시에 설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중국과 미국이라는 강대국을 설득해야 하고, 둘째는 국내 정치권, 즉 보수와 진보를 나누어 설득해야 하며, 셋째는 국민을 설득해야 합니다. 따라서 해답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단, 이것저것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미중 패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양국과 모두 잘 지내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미중 간의 사활적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지역 차원에서도 특히 대만 문제가 심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현 차원에서 대만 유사시 미군이 관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군은 중국에 비해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만, 과연 미국이 대만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을까요? 중국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에 공산당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아시겠지만, 대만 문제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처럼 무기만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미 포위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난 2년 동안 네 차례의 포위 훈련을 했습니다. 최근 20년 동안 총 다섯 번의 훈련 중 두 해에 네 번을 한 것입니다. 포위 훈련을 했다는 것은 미군을 파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본토에서 올까요, 주변에서 올까요? 평택이나 오산에서 오겠죠. 그 순간 동아시아는 전쟁입니다. 저는 미군이 파견되지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어떻게 할 것이냐? 마찬가지로, 한중 관계의 최대 문제는 한국의 산업 경쟁력과 기술 경쟁력이 세계에서 너무 뒤처져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뒤처진 정도가 아닙니다.
간단합니다. 작년에 한국의 이공계 박사 배출 인원은 7천 명인데, 중국은 5만 명입니다. 작년 한국의 총 연구개발(R&D) 투자액은 850억 달러인데, 중국은 5천억 달러입니다. 한국 정부가 인공지능(AI) 투자로 10조 원을 하겠다고 하는데, 중국은 200조 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30년 누적된 결과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독자적인 가치를 내세우지 못하면 대접받기 어렵습니다. 국제 사회는 더 냉정한데 누가 대접을 하겠습니까? 게다가 한중 간의 정서 문제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 정서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따집니다.
이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한국에서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집단이 있고, 경제적으로 이익을 얻기 위해 반중 연합을 이용하는 집단도 있습니다. 이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장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자: 조영남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담당 및 편집: 임재현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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