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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경로 선택과 신한반도 구상] ② AI를 둘러싼 일반적 동향

분류
워킹페이퍼
발행일
2026년 9월 14일
관련 프로젝트
AI 시대 경로 선택과 신한반도 구상

편집자 주

백서인 한양대 교수는 AGI로의 전환과 오픈웨이트 모델 확산으로 재편되는 AI 기술 패러다임과 미중을 중심으로 한 전략·규범 경쟁의 구조를 분석합니다. 저자는 컴퓨팅·데이터·인재·알고리즘·표준의 5대 전략자원을 둘러싼 미중 경쟁 속에서, 한국을 비롯한 AI 중견국들이 전략적 불가결성 확보, 소형 풀스택 구축 등 다양한 포지셔닝 전략을 모색하고 있음을 조명합니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백 교수는 한반도에 미치는 함의로서 한국의 전략적 딜레마와 대체 불가능한 AI 파트너로서의 위상 구축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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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경로 선택과 신한반도 구상
동아시아연구원(EAI)은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가 한반도 안보와 남북관계, 그리고 장기적으로 한반도 구상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AI 시대 경로 선택과 신한반도구상」 워킹페이퍼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의 대북정책은 비핵화와 남북교류협력, 평화체제 구축, 통일을 서로 연결된 과정으로 이해해 왔으나,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와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의 남북관계 재규정, 미중 전략경쟁의 구조화로 인하여 이러한 구상이 전제해 온 조건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AI를 둘러싼 국제질서의 변화와 북한의 기술발전 경로를 살펴보는 한편, 군사·경제·지식 거버넌스 영역에서의 파급효과를 검토함으로써 AI 시대에 걸맞은 신(新)한반도구상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북한은 고성능 반도체와 컴퓨팅 인프라의 제약으로 프런티어 AI를 자체적으로 발전시키는 대신 무인기와 사이버작전, 감시체계 등 특정 목적에 필요한 AI를 선택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중국의 기술생태계에 대한 의존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북한의 선택은 남북 간 군사적 위기불안정성과 기술·지식격차를 심화시키는 동시에, 한국에도 새로운 대응 전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 또한 AI 기반 감시정찰과 정보분석, 위기관리 능력을 발전시키는 한편, 인간안보 분야를 중심으로 한 대북 협력의 가능성을 위험관리의 관점에서 모색하고 있습니다. 특히, AI의 민군 겸용성을 고려할 때 대북 협력이 북한의 군사능력이나 사회감시 능력의 강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억제와 방어를 지속하면서도 조건이 허용되는 영역에서 협력을 준비하는 이중적 접근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본 워킹페이퍼 시리즈는 AI를 둘러싼 국제질서의 변화로부터 출발하여 북한의 AI 발전경로와 군사·경제·지식 거버넌스 영역에서의 파급효과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의 대북 AI 협력 방향과 신한반도구상의 함의를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를 통해 AI 시대의 한반도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학술적·정책적 기반을 마련하고, 한국의 전략적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AI 시대 경로 선택과 신한반도 구상 발간 목록] ① AI시대 전략환경의 변화와 미래 한반도 구상, 전재성 [워킹페이퍼 읽기] ② AI를 둘러싼 일반적 동향, 백서인 [워킹페이퍼 읽기]

Ⅰ. AI 발전의 세계적 동향과 구조 변화

1. AGI 시대의 도래와 기술 패러다임의 전환

인공지능(AI)은 21세기 들어 인류 문명의 구조 자체를 재편할 범용 기술로 성장하였다. 특히, 2010년대 중반 딥러닝(deep learning)의 상용화를 `기점으로 AI 기술의 발전 속도는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고, 이후 트랜스포머(Transformer) 아키텍처의 등장과 대형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의 보급은 AI를 기술 전문가의 전유물에서 일반 대중의 일상 도구로 탈바꿈시켰다. 2022년 11월 OpenAI의 ChatGPT 출시는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1억 명의 사용자를 돌파하며 이 전환을 이끌었다.

<그림 1> 52일 동안 클로드가 출시한 모델의 수

출처: 중앙일보(2017. 6. 9.)

이러한 LLM발 인공지능의 폭발적인 발전은 자연스럽게 범용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으로의 전환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글로벌 정책 담론의 전면에서 부상하고 있다. 업계를 대표하는 수많은 테크 그루, 연구 기관, 빅테크가 일반 인공지능의 도래 가능성을 10년 이내로 전망하는 가운데, 주요국 정부들은 이를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닌 국가 존망을 좌우할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2025년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다음 날 5,000억 달러 규모의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같은 해 11월 제네시스 미션(Genesis Mission)을 통해 AI를 과학 연구의 맨해튼 프로젝트로 격상시킨 것은 이러한 인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또한, 최근 출시된 클로드의 미토스는 출시 직후 전 세계의 보안 및 국방 시스템에 충격을 안기며, 글로벌 AI 안보 지형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기술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흐름은 오픈 웨이트 모델의 급격한 부상이다. 2025년 1월 중국 DeepSeek의 등장은 서방 AI 업계에 심각한 충격을 안겼다. DeepSeek은 미국의 첨단 GPU 수출통제를 우회한 채 OpenAI에 대등한 성능을 달성하였으며, 그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개함으로써 AI 기술의 지리적·경제적 접근성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두고 "우리 산업에 대한 경보(wake-up call)”고 표현할 만큼, 이 사건은 미국 AI 전략의 취약성을 세계에 노출시켰다(NBC News 2025). 중국의 오픈소스 전략은 자국 AI 기술을 글로벌 모델 시장에서 빠르게 확산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향후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도 유사한 구조가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딥시크 외에도 알리바바 Qwen, 즈푸, 미니맥스 등의 모델들이 경쟁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오픈 웨이트 모델을 무료로 제공하면서 이러한 흐름은 더 급격히 전개되고 있다.

기술 발전의 방향성 측면에서는 또 다른 중요한 전환이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AI 개발의 주요 방법론은 더 많은 데이터와 컴퓨팅 자원을 투입하여 모델 규모를 늘리는 스케일링(scaling) 접근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론이 수확체감의 한계에 접근하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면서, 업계의 관심은 점차 현장 성과 중심과 효율성으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의 딥시크가 보여준 검약적(frugal) 혁신, 즉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성과를 거두는 접근법은 이 전환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차세대 AI 패러다임은 단순한 규모 경쟁을 넘어, 아키텍처 혁신, 에너지 효율, 추론 능력의 질적 도약으로 경쟁의 축이 이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딥러닝 구루인 얀 르쿤의 경우 AGI는 대형언어모델이 아닌 멀티 모달의 형태로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 바 있고, GPT 공동 창업자 일리야 서츠케버(Ilya Sutskever) 역시 인공지능 경쟁이 이제는 스케일링에서 연구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고 강조한바 있다.

2. AI의 사회경제적 파급효과

AI가 사회경제적 구조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이미 가시화되고 있으나, 그 규모와 방향성에 대해서는 상당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노동시장의 측면에서 보면 2026년 2월 한 달에만 9만 2,000개의 일자리가 미국에서 사라진 것으로 집계되었으며, AI 에이전트의 확산은 인간의 직접적 개입 없이도 복잡한 업무를 처리하는 인간 없는 루프(loop without human)의 가능성을 현실화하고 있다. Cazzaniga et al., 의 연구에 따르면 고소득, 선진국, 남성 등이 인공지능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지만, AI를 활용해서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도 더 많이 포착할 수 있음을 분석해 낸 바 있다.

<그림 2> 국가별 성별, 교육 수준, 연령별 인공지능 노출 정도

출처: Cazzaniga et al., (2024)

그러나 AI의 경제적 영향을 단순히 일자리 감소의 관점에서만 파악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편적이다. MIT NANDA(2025)에 따르면 기업 내 AI 도입률은 높지만 실질적인 비즈니스 변혁(transformation)을 달성한 기업은 전체의 5%에 불과하며, 9개 산업 부문 중 7개에서 구조적 변화가 관찰되지 않았다. AI가 대부분의 일자리를 단기간에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은 AI 도구의 불완전한 워크 플로우 통합, 학습 불능 문제, 조직 문화적 저항 등이 실제 확산을 제약하는 요인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이상적인 추정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더 중요한 것은 AI가 인간 능력의 분포를 극적으로 재편한다는 점이다. AI는 상위 0.01%의 탁월한 인재의 능력을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키는 동시에, 중간 수준의 많은 업무를 대체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AI시대의 조직 형태가 1인 + 1 에이전트 + 휴머노이드의 초소형 및 초효율 구조로 수렴할 가능성을 시사하며, 이에 따른 불평등 심화와 포용적 성장이라는 정책적 딜레마가 부각된다. 또한, AI 기술의 혜택이 영어권 및 고소득 국가에 집중되는 현상은 글로벌 디지털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으며, 이는 특히 글로벌 사우스의 개발도상국들에게 심각한 구조적 양극화를 야기할 수 있다.

3. AI 전략 경쟁의 구조적 특성

AI 기술의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국제정치의 핵심 경쟁 구도는 AI를 둘러싼 전략 경쟁으로 급속히 수렴하고 있다. 특히, 양국간의 기술 격차가 확대 및 축소를 반복해 나가면서 그 어느때보다도 향후의 경쟁 구도의 전개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림 3> 미중 AI 모델간의 최근 성능 격차

출처: NIST(2026)

이 경쟁의 구조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AI 역량의 5대 전략 자원, 즉, 컴퓨팅 파워(compute), 데이터(data), 인재(talent), 알고리즘(algorithm), 표준(standards)이 어떻게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컴퓨팅 파워는 AI 모델 학습과 서비스 제공을 뒷받침하는 가장 핵심적인 물리적 인프라이다. NVIDIA의 GPU, TSMC의 반도체 파운드리, ASML의 EUV 장비, SK 하이닉스의 HBM 등은 AI 시대의 핵심 병목 자원이 되었으며, 이를 둘러싼 통제권 경쟁이 지정학 갈등의 새로운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둘째, 데이터는 새로운 석유에 비유되는데, AI 모델 개발의 중요한 원료라고 볼 수 있다. 데이터 현지화 규제, 국경 간 데이터 이동 협정, 개인정보 보호 체계 등이 AI 경쟁력의 법적·제도적 기반을 결정한다. 셋째, 인재는 앞서 언급한 인프라와 자원을 가지고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핵심 플레이어로써 모든 지식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그 어느때보다도 프론티어 연구의 경험과 역량을 갖춘 인재가 중요해졌기 때문에 전세계 주요국은 모두 글로벌 탑 AI 엔지니어를 유치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연봉과 대우를 제시한다. 일례로 메타는 새로운 AI 랩을 런칭하면서 일부 핵심인재에게 연봉 1000억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넷째, 알고리즘은 새로운 시스템으로 경제, 사회, 국방의 핵심 자산이 되었으며, 자율 시스템, 사이버 작전 및 전장 의사결정 지원에 직접 활용된다. 마지막으로, 표준은 새로운 게임의 규칙이자 강력한 견제 수단으로써 기능하고 있다. ISO/IEC 42001, NIST AI RMF, EU AI Act, 중국의 생성형 AI 규정 등 경쟁하는 규범 체계들이 글로벌 AI 거버넌스의 리더십 확보를 위해 강력한 경쟁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5대 자원을 둘러싼 경쟁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으나, 그 구조는 단순한 양극 체제가 아니라 복잡한 다층 경쟁의 형태를 띤다. 미국은 자국 기업들이 글로벌 AI 혁신을 주도하는 가운데 수출통제와 투자심사를 통해 중국의 기술 접근을 제한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중국은 국가 주도 혁신 생태계와 방대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추격하는 한편, 오픈소스 전략과 글로벌 사우스 파트너십을 통해 미국의 포위를 돌파하려 한다. 유럽은 규범 설정자의 역할을 자임하며 제3의 길을 모색하고, 한국, 일본, 싱가포르, 인도 등 AI 중견국들은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자국의 틈새 역량을 극대화하는 복합 전략을 구사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AI 경쟁이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가치 경쟁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OpenAI의 샘 올트먼(Sam Altman)은 의회 청문회에서 미국 주도의 민주주의적 가치에 기반한 AI와 권위주의적 AI 사이의 대결을 직접적으로 언명하였으며, JD 밴스(JD Vance) 부통령은 파리 AI 정상회의에서 권위주의 정권의 AI 무기화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러한 담론은 AI 경쟁을 단순한 경제 및 기술 차원에서 문명론적·이데올로기적 차원으로 격상시키며, 중견국들의 전략적 선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중견국 역시 과거와 다르게 일정 수준의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위한 인공지능 경쟁력 확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Ⅱ. 군사, 경제, 지식 및 거버넌스 분야에서의 AI 확산

1. 주요국의 AI 전략 비교 분석

(1) 미국: AI 전략의 진화와 내적 모순

미국의 AI 전략은 2017년 이후 세 단계의 전환을 거치며 진화해왔다. 1기 트럼프 행정부(2017~2021)는 AI를 전략 기술로 처음 규정하면서도 구체적인 국가 전략 없이 민간 주도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7년 국가안보전략(NSS)은 AI를 경제 성장과 국가 안보에 핵심적인 신흥 기술로 명시하며 중국과 러시아를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했으나, 이는 아직 위험에 대한 예비적 인식 수준에 머물렀다(Trump 2017). 2019년 행정명령 13859호(미국의 AI 이니셔티브)는 AI 연구개발 투자, 자원 개방, 거버넌스 표준 설정, 인력 양성, 국제 협력 등 5대 우선순위를 제시하며 최초의 포괄적 AI 생태계 전략을 수립했다(Executive Order 13859 2019).

바이든 행정부(2021~2025)는 AI를 독자적이고 핵심적인 안보 우선순위로 격상시켰다. 이 시기의 특징은 두 가지 위협 인식의 병존이었다. 하나는 중국의 AI 역량 급성장이 가져오는 외부 안보 위협이며, 다른 하나는 딥페이크를 통한 허위정보 확산, AI 시스템의 편향성, 자율 무기의 윤리 문제 등 AI 자체가 내포하는 민주적 가치에 대한 위협이었다. 2023년 10월 서명된 행정명령 14110(EO 14110)은 이 두 차원을 통합한 것으로,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를 국정 기조로 선언하고 고성능 AI 모델에 대한 안전 테스트 결과 보고 의무화, 콘텐츠 출처 표준 개발 등을 규정했다(Biden 2023). 또한, 바이든은 QUAD, TTC(무역·기술위원회), IPEF, FAB4 등 다자 동맹 프레임워크를 활발히 가동하며 동맹 연대 구축에 힘썼다. 2022년 10월에 발표된 반도체 수출통제 패키지는 수십 년 만에 가장 포괄적인 수출통제로 평가받았으며, 미국 시민권자 및 영주권자의 중국 반도체 기업 근무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까지 포함된 전면적 디커플링 조치였다.

2기 트럼프 행정부(2025-현재)는 바이든 행정부와 다른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취임 다음 날 발표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OpenAI, SoftBank, Oracle 등이 참여하는 4년간 5,000억 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 계획으로, AI 데이터센터를 텍사스, 뉴멕시코, 오하이오 등 미국 전역에 구축하고 최대 10GW의 컴퓨팅 용량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2025년 7월 발표된 AI Action Plan은 규제 장벽 제거, 대형 AI 인프라 구축, AI를 글로벌 표준으로 확산시키는 외교·안보 전략의 세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네시스 미션(EO 14363, 2025년 11월)은 AI를 활용해 10년 내 미국의 과학 연구 생산성을 두 배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며, 에너지부 주관 하에 17개 국립연구소를 연결하는 통합 연구 플랫폼 구축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그림 4> 미국 DOE의 AI for Science 협력 현황

출처: 김영기(2026)

그러나 2기 트럼프 전략에는 핵심적인 내적 모순이 존재한다. AI Action Plan은 중국과의 AI 리더십 경쟁을 천명하면서도, 실제로는 중국에 대한 NVIDIA 고급 칩(H20) 판매 재개를 결정하는 등 선언과 이행 간의 혼선을 드러내고 있다(The White House 2025). 더 근본적으로, ‘중국 포위를 위해 동맹이 필요하다’는 안보 논리와 ‘동맹국도 경쟁자’라는 미국 최우선 주의(America Fist) 논리가 충돌하면서 실질적으로 동맹국과의 AI 협력은 일방적인 확산 및 지시의 형태로 진행하는 점이다. 트럼프는 동맹국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수출통제 협력을 요구하는 자가당착적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정책의 혼선을 빚고 있으며 이로 인해 동맹국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2) 중국: 국가 주도 혁신의 질주와 글로벌 영향력 확대

중국의 AI 굴기는 1978년 개혁개방 이후 41년간 평균 9.4%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한 발전국가 역량을 AI 분야에 집중 투자한 결과물이다. 2024년 중국의 연구개발(R&D) 지출은 약 1조 300억 달러로 미국(1조 100억 달러)을 처음으로 추월했으며, 이는 단순한 투입량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의 기술 역량이 구조적 전환점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 2025년 Nature Index에서 중국이 세계 1위에 올랐고, 칭화대학이 전 세계 AI 특허 출원 기관 중 최상위권에 포진한 것은 이러한 질적 전환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의 AI 전략은 2017년 차세대 AI 발전계획이 발표되면서 본격화되었다. 이 계획은 2020년, 2025년, 2030년 세 단계에 걸친 단계적 발전 목표를 제시하며, 2030년까지 AI 핵심 산업 규모 1조 위안, 연관 산업 10조 위안을 달성하고 세계 AI 리더가 되겠다는 비전을 채택했다(国务院 2017). 이후 2024년 공개된 AI 플러스 전략은 AI를 전면적으로 응용 및 확산함으로써 국내 부가가치 창출 및 글로벌 영향력 확대를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목적을 제시하였다.

<그림 5> AI Connection Action Plan을 통한 유럽내에 설립된 AI Factory

출처: 国务院(2025)

중국 AI 혁신 시스템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국가와 민간의 복잡한 공생 관계다. 표면적으로는 국가 주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부 조달의 70% 이상이 민간 AI 기업에 귀속되며, 규제와 산업 발전 사이에는 공공과 민간의 정교한 거래가 이루어진다. 이른바 선(先)혁신 후(後)규제 원칙 하에서 바이두(Baidu), 알리바바(Alibaba), 텐센트(Tencent), 화웨이(Huawei) 등 BATH 기업군이 AI 생태계를 주도하면서도, 국가는 메기효과(catfish effect)를 통해 지속적인 경쟁 압력을 유지한다. 민군융합(Military-Civil Fusion, MCF) 전략은 이 구조의 안보적 차원으로, 민간 AI 혁신이 군사 역량으로 전환되는 파이프라인을 제도화한다. iFlytek 등 민간 AI 기업들이 중국 인민해방군의 주요 AI 계약자로 활동하는 것이 이 구조의 단적인 예이다.

중국 AI의 고유한 경쟁적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성과를 거두는 검약식 혁신 역량은 DeepSeek 사례에서 극적으로 입증되었다. 둘째, 복잡한 다중 모델에 의한 통합적(holistic) 혁신 역량과 광범위한 내재화 및 자급자족 지향은 미국의 수출통제에 대한 구조적 저항력을 제공한다. 셋째, 방대한 AI 네이티브 소비자 시장은 기업들이 실제 환경에서 AI 시스템을 신속하게 검증하고 개선하는 가장 강력한 테스트 베드가 된다. 베이징, 상하이, 항저우 등 13개 AI 혁신 발전 시범구 등 오픈 AI 이노베이션 플랫폼은 이 혁신 생태계의 지리적·기술적 인프라를 구성한다.

그러나 중국 AI 발전의 구조적 한계 역시 직시해야 한다. 경직된 교육시스템에서 배출된 창의적 인재의 부족, 독창적 사고에 대한 제도적 억압, 그리고 자유와 실패 없는 혁신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은 중국 AI의 장기적 경쟁력에 큰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중 경쟁의 심화, 경제 성장세 둔화, 인구 감소에 따른 중장기 경제 전망의 불확실성 역시 중국 AI 발전 전략의 지속 가능성을 제약하는 외부 요인이다. 또한, 그 어떤 기술이든 당이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기술 거버넌스에 대한 과신 역시 AI로 인한 예측이 어려운 재앙적 사고를 유발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단기적으로 중국의 전략적 일관성은 주목할 만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 불가능한 관세 정책과 동맹 압박에 비해, 중국은 당근과 채찍 전략을 비교적 일관되게 유지함으로써 파트너국들에게 더 예측가능한 협력 상대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많은 중견국들이 미국의 AI 기술을 채택하면서도 중국의 경제적 유인에 이끌리는 이중적 포지션을 취하는 것은 이 전략적 일관성의 효과를 반영하고 있다.

(3) 유럽: 규범 선도에서 산업 경쟁력 확보로

유럽의 AI 전략은 규범 초강대국(regulatory superpower)으로의 포지셔닝을 핵심 기조로 해왔다. 유럽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제3의 AI 강대국 위상을 확립하려는 전략적 의지를 일관되게 유지해 왔는데, GDPR을 통해 확보한 글로벌 디지털 규범 리더십을 AI 거버넌스에서도 확보하기 위해 2024년 EU AI Act를 제정했다. 이 법은 AI 시스템의 위험도에 따른 4단계 규제 체계를 채택한다. 수용 불가능한 위험(unacceptable risk) 범주에는 사회적 점수 시스템, 승인 없는 생체인식 등에 적용되어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고위험(high risk) 범주는 의료기기, 교육, 고용 및 핵심 인프라 등에 적용되어 엄격한 투명성과 인간 감독 요건을 부과한다(European Union 2024). 이 법의 역외 적용 조항은 EU 시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외국 AI 기업에도 적용되어, 사실상 글로벌 AI 규범의 기준을 설정하는 브뤼셀 효과(Brussels effect)를 의도한다.

그러나 EU의 야망과 현실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EU AI act가 발효된 이후 너무나 강한 처벌 규정으로 인해 글로벌 빅테크를 비롯한 세계주요 기업들은 유럽시장 투자와 진출을 꺼리게 되었고, 유럽의 토종 AI 기업 역시 강한 규제로 인해 새로운 서비스 개발을 엄두도 못 내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과규제로 인한 혁신 동력 상실의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유럽은 인공지능법안의 시행을 유예하고, 예외조항을 신설하는 등의 제도개선과 함께, 2025년 인공지능의 활용과 혁신을 지원하기 위한 AI Continent Action Plan을 발표하며 유럽의 AI 혁신 허브 도약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평가의 따르면 EU의 AI 투자 발표는 실제 신규 자금이 아닌 기존 프로그램의 재포장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EU 기업 대비 10배의 R&D 투자를 집행하고 있어 심각한 투자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개별 국가의 전략을 살펴보면 프랑스는 에콜 폴리테크니크(École polytechnique)와 ENS 등 엘리트 교육 기관 중심의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AI 강국 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2023년 창업한 Mistral AI는 구글 딥마인드와 메타 AI 출신 연구자들이 프랑스로 귀국하여 설립한 기업으로, 29개월 만에 기업 가치 138억 달러를 달성하며 유럽 최대 AI 유니콘이 되었다.

<그림 5> AI Connection Action Plan을 통한 유럽내에 설립된 AI Factory

출처: European Commission. (2025). AI Continent Action Plan.

독일은 제조업 강국의 AI 전환을 추구하는 AI+X 모델을 채택하여 정밀 제조, 자동차, 화학, 물류 분야에 AI를 접목하는 전략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 기업의 AI 도입률이 여전히 저조하고, 국가 대표 AI 스타트업이었던 Aleph Alpha가 프론티어 모델 개발을 포기하며 기업용 AI 소프트웨어로 사업을 전환한 것은 독일 전략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또한, 최근 사업부를 매각하는 등 사실상 AI 사업을 포기하는 수순으로 들어가고 있어, 앞으로의 전망은 더욱 어둡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EU의 사전 규제 모델과 의도적으로 차별화된 친 혁신 규제 허브 전략을 구사하며, Bletchley Park AI 안전 정상회의 개최와 세계 최초의 AI 안전 연구소(AISI) 창설을 통해 글로벌 AI 안전 거버넌스의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딥마인드와 핵심 인재를 매개체로 미국 인공지능 생태계와의 전략적 연결성을 강화하는 한편, ‘기술주권 펀드’를 조성하여 자체적인 기술 역량 확보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4) 아시아 중견국: 미중 사이의 전략적 자율성 모색

아시아의 주요 중견국들은 AI시대에 공통적으로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규범과 안보 측면에서는 미국 및 서방과의 연결성을 유지하되, 산업적 자율성과 중국과의 경제적 연계는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소버린 AI(Sovereign AI) 담론을 자국 전략의 핵심 언어로 채택하고 있으나, 그 구체적인 접근법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은 2016년 알파고 충격을 계기로 AI 전략 수립에 박차를 가하였으며, 2019년 국가 AI 전략 수립 이후 AI G3 목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한국 AI 전략의 핵심 레버는 반도체, 특히 고대역폭 메모리(HBM)에 있다. 한국은 글로벌 HBM 시장의 약 90%를 공급하며, 이는 NVIDIA 중심의 AI 컴퓨팅 패러다임에서 구조적 불가결성(indispensability)을 확보한 전략 자산이다. SK하이닉스는 NVIDIA 최대 HBM 공급자로서, 삼성전자의 파운드리와 함께 AI 인프라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2024년 12월 국회를 통과하여 2026년 1월 시행된 AI 기본법은 아시아 최초의 포괄적 수평적 AI 법률로, 고위험 AI에 대한 투명성·인간 감독 의무를 부과하면서도 EU AI Act보다 혁신 친화적인 설계를 채택했다. 또한, 미국과 중국에 이어 발 빠르게 AI 액션플랜을 수립하고 대규모 예산을 편성하면서 독자적인 AI 생태계 구축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2026).

일본은 Society 5.0이라는 독자적인 개념 프레임을 통해 AI를 인구 감소, 고령화, 에너지 의존이라는 구조적 문제의 해결책으로 자리매김시키는 전략을 취한다(Cabinet Office of Japan 2019). 거버넌스 측면에서는 소프트로(soft law) 접근, 즉 구속력 있는 법률보다는 원칙과 자발적 준수에 의존하는 방식을 채택하여, 2023년 G7 의장국으로서 히로시마 AI 프로세스(Hiroshima AI Process)를 주도 및 선진 AI 개발자를 위한 국제 행동 강령을 성안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했다. 기술 측면에서는 Rapidus를 통한 2nm 로직 파운드리 구축 시도, NTT의 일본어 LLM, 사카나(Sakana) AI의 진화적 모델 병합 방식 등을 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다카이치 정부 출범 이후 AI, 휴머노이드 및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핵심기술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였다(〈이투데이〉2026/03/08).

싱가포르는 도시국가라는 물리적 한계를 역설적 강점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국내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 AI 허브로서의 거버넌스 리더십 구축에 집중하며, 세계 최초의 AI 거버넌스 테스트 프레임워크인 AI Verify와 동남아시아 언어 특화 LLM인 SEA-LION, 그리고 ASEAN AI 거버넌스 가이드라인의 주요 입안자로서 규모에 비해 불균형적으로 큰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한다(Smart Nation Singapore 2023). 싱가포르의 전략은 AI 주권을 기술 자립이 아닌 거버넌스 역량으로 정의하는 독특한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인도는 14억 인구의 방대한 시장 규모와 세계 3위의 AI 인재 풀과 Aadhaar(14억 명 생체인식 ID), UPI(월 180억 건 결제), DigiLocker 등 검증된 공공 디지털 인프라를 AI 전략의 기반으로 삼는다(NITI Aayog 2018). 2024년 3월 승인된 India AI Mission(10,372억 루피, 약 12.5억 달러)은 소버린 GPU 클러스터, 인딕(Indic) 언어 LLM 개발, 공공 데이터셋 플랫폼 구축을 7대 기둥으로 제시한다(MeitY 2024). BharatGPT, Krutrim, Sarvam AI 등 인도 고유의 파운데이션 모델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으며, AI Impact Summit을 비롯해 다수의 다자플랫폼에서 글로벌 사우스를 대표해 AI의 글로벌 어젠다를 선도하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2. 군사·안보 분야 AI 확산

AI의 군사적 확산은 현대전의 패러다임 자체를 재정의하고 있다. 자율 무기 시스템(AWS), 전장 상황인식, 사이버 작전, 군수 최적화, 정보·감시·정찰(ISR) 분야에서 AI 적용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군사 전략가들은 AI가 결정 속도(decision speed)를 인간의 인지 한계를 초월하는 수준으로 압축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드론 군집(drone swarm), AI 기반 사이버 무기, 딥페이크를 활용한 인지전(cognitive warfare)은 이미 실전에 배치되거나 개발 중인 기술들이다.

민군 겸용(dual-use) 기술로서의 AI는 전통적인 군비 통제 패러다임에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한다. 민간 분야에서 개발된 AI 역량이 군사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수출통제와 기술이전 제한을 통한 군사 AI 확산 방지를 극히 어렵게 만든다.

다자 AI 거버넌스의 측면에서 NATO는 2021년 최초의 AI 전략을 채택하고 2024년 개정판을 발표하며 책임 있는 AI 원칙의 군사적 적용을 위한 제도적 틀을 구축하고 있다(NATO 2024).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 유의미한 형태의 군사 AI 협력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자율무기 시스템의 국제적 규범 형성은 심각한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 AI 안전 정상회의 네트워크가 민간 AI 안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군사 AI 거버넌스를 포괄하지 못하는 것도 이 공백의 일부다.

3. 경제 분야 AI 확산

경제 분야에서 AI의 확산은 산업 구조와 가치사슬 전체를 재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AI 기반 예측 유지보수, 품질 검사 자동화, 공급망 최적화가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있으며, 특히 반도체, 자동차 및 정밀기계 분야에서 AI와 로봇의 융합이 가속화되고 있다. 금융 분야에서는 알고리즘 트레이딩, AI 기반 리스크 평가, 이상 거래 탐지가 표준 인프라가 되었으며, 특히 싱가포르 DBS 은행은 300여 개의 AI 활용 사례를 운영하며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AI 진단 보조, 신약 개발, 임상 시험 최적화 등에서 혁신이 진행 중이며, 일본의 Society 5.0 프레임이 고령화 사회 대응을 위한 AI 헬스케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AI 인프라 투자 경쟁은 글로벌 에너지·부동산·금융 시장에도 광범위한 파급 효과를 미치고 있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목표 용량 10GW는 중소 국가 하나의 전력 소비에 맞먹으며, AI 데이터센터의 급증은 전력망 인프라, 수냉각 시스템,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 전례 없는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이란이 UAE 소재 스타게이트 데이터센터를 군사 표적으로 지정하고 위성 사진을 공개하며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위협한 것은, AI 인프라가 이미 현대 분쟁의 전략적 표적이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AI 연계 산업정책은 이제 모든 주요국의 표준 정책 도구로 자리잡았다. 반도체 공급망 안보를 핵심으로 하는 미국의 CHIPS Act, EU의 Chips Act, 한국의 K-반도체 벨트, 일본의 반도체 재건 전략(Rapidus), 인도의 반도체 미션(ISM)은 모두 AI 경쟁력을 위한 하드웨어 기반 산업정책의 사례들이다. 이 정책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국가 보조금을 통한 공급망 현지화와 핵심 기술에 대한 수출통제를 결합하는 보호주의적 경향이며, 이는 전후 자유무역 질서의 긴장을 심화시키고 있다.

AI 연계 산업정책은 이제 모든 주요국의 표준 정책 도구로 자리잡았다. 반도체 공급망 안보를 핵심으로 하는 미국의 CHIPS Act, EU의 Chips Act, 한국의 K-반도체 벨트, 일본의 반도체 재건 전략(Rapidus), 인도의 반도체 미션(ISM)은 모두 AI 경쟁력을 위한 하드웨어 기반 산업정책의 사례들이다. 이 정책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국가 보조금을 통한 공급망 현지화와 핵심 기술에 대한 수출통제를 결합하는 보호주의적 경향이며, 이는 전후 자유무역 질서의 긴장을 심화시키고 있다.

4. 지식 및 거버넌스 분야 AI 확산

AI 거버넌스의 국제 제도화는 2019년 이후 급속히 진전되었다. OECD AI 원칙(2019)은 인간 중심 AI, 투명성, 책임성, 안전성, 공정성의 5대 원칙을 국제 규범의 기초로 제시했으며, 이는 G20 AI 원칙에도 채택되었다(OECD 2019). GPAI(2020)는 EU와 14개 민주주의 국가들이 창설한 다자 AI 거버넌스 포럼으로, 중국은 초기 바이두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자체적인 AI 표준화 노선을 추구하며 이탈했다. UN은 2024년 3월 AI 거버넌스 결의를 채택하였고, UNESCO는 2021년 AI 윤리 권고문을 발표했다(UNESCO 2021).

AI 안전 정상회의는 거버넌스 제도화의 가장 역동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플랫폼이다. 2023년 영국 블레츨리 파크에서 개최된 1차 AI 안전 정상회의는 28개국 정부와 주요 AI 기업들이 참여하여 블레츨리 선언을 채택하고, 세계 최초의 정부 AI 안전 연구소(AISI)를 영국에 설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서울(2024)과 파리(2025)로 이어진 정상회의는 AI 안전의 국제 어젠다를 지속적으로 확장하였으며, 현재 미국, 영국, 일본, 한국, 싱가포르, 인도, EU AI Office, 캐나다와 호주 등이 참여하는 국제 AISI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프론티어 AI 모델의 공동 평가와 레드팀 프로토콜 공유를 추진하고 있다(인공지능안전연구소 2026).

그러나 AI 거버넌스의 심층에는 근본적인 규범 경쟁이 존재한다. 미국식 접근은 혁신 우선·자율 규제를 강조하며, 트럼프 2기 행정부 하에서는 DEI(다양성, 평등성, 포용성)와 AI 안전 개념 자체를 후퇴시키고 미국 AI의 글로벌 확산을 국가 전략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EU식 접근은 사전 예방적 규제와 기본권 보호를 핵심 원칙으로 하며, AI Act를 통해 전 세계 AI 기업들이 준수해야 하는 강제적 규범을 설정하고자 한다. 중국식 접근은 국가 주도의 기술 발전과 사이버 주권을 핵심 개념으로 하며, 서방 주도 거버넌스 포럼과 병행하여 자체적인 AI 표준 체계를 구축하고 글로벌 사우스로의 수출을 도모한다. 이 세 가지 규범 체계의 경쟁은 단순한 기술 표준 경쟁이 아닌 디지털 시대의 국제 질서와 인터넷 거버넌스의 미래를 놓고 벌이는 문명적 경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Ⅲ. AI 시대 국제질서 변화와 한반도에 대한 함의

1. AI 시대 국제질서의 구조적 변화

AI를 둘러싼 국제질서의 가장 중요한 구조적 변화는 기술 블록화(tech bloc formation)의 심화다. 미국의 수출통제와 중국의 자립화 전략이 교차하면서, 글로벌 기술 생태계는 단일 시장에서 복수의 병렬적 생태계로 분열되고 있다. 각각의 블록이 독자적인 AI 모델, 반도체 공급망, 디지털 인프라,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는 멀티호밍(multi-homing) 구조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는 시장 효율성의 관점에서는 손실이지만, 각국이 자국 이익에 따른 전략적 선택을 행사하는 공간을 확대한다는 의미도 있다.

<그림 6> 미중 AI 풀스텍 생태계의 분리 현황

출처: 조은교 외(2021)

소버린 AI(Sovereign AI) 담론의 급속한 확산은 이 구조 변화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이다. 기본적으로 기술의 주권은 특정 국가 또는 기업에 대한 일방적인 구조적 의존을 완화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추구한다. 즉 반드시 자체개발을 하지 않더라도 여러 대안에 대한 접근권한을 확보해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소버린 AI는 완전한 기술 자립의 이상향이 아닌 의존도의 구조를 능동적으로 설계하는 지정학적 역량의 문제로 재정의된다.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풀스택 AI를 활용하여 각국이 AI 주권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전략이라고 강조하고, 중국은 자국의 가성비 좋은 모델을 활용하여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것이 AI 주권 확보에 더 유리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요 AI 중견국(AI Middle Powers)이 어떠한 AI 주권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지 비교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중견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 유형의 다양성인데, 전략적 불가결성 추구형(Strategic Indispensability Seekers)인 일본, 영국, 캐나다는 거버넌스 리더십과 안전 연구에서 미국 중심의 생태계에서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확보하는 전략에 집중한다. 소형 풀스택 제공자(Small Scale Full-stack Providers)인 한국, 프랑스, 독일은 독자적인 AI 모델과 반도체 역량을 동시에 보유하는 전략을 추진하며, 모두를 위한 AI(AI for All Supporters)인 인도는 방대한 인구와 디지털 공공 인프라를 기반으로 글로벌 사우스의 AI 리더 역할을 추구하고 있다. 이 유형들은 고정된 것이 아닌 기술 발전과 지정학적 변화에 따라 유동적으로 전환될 수 있다.

<그림 7> 인공지능 역량별 국가 그룹

출처: https://www.tortoisemedia.com/data/global-ai#rankings

2. 한국의 전략적 포지셔닝과 과제

한국의 AI 전략은 HBM 반도체라는 구조적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이를 파운데이션 모델과 섹터별 AI 확산으로 연결하는 반도체-모델-응용의 수직 통합형 포지션을 지향한다. AI G3라는 정치적 목표는 야심차지만, 아직 많은 해결과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어와 중국어 대비 한국어 데이터의 절대적 규모 열세, 삼성과 SK하이닉스 중심의 과도한 대기업 의존도, 미국 빅테크로의 AI 인재 유출, 그리고 국내 파운데이션 모델의 글로벌 경쟁력 한계는 구조적 제약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할 때, 한국의 현실적인 전략은 전략적 불가결성(Strategic Indispensability) 확보와 이를 레버리지로 한 AI 주권확보를 병행해야 한다. 현재 한국은 HBM을 레버리지로 이러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나, AI 컴퓨팅 아키텍처의 변화와 중국의 대안 개발 시도로 인하여 이 독점적 지위가 영구적이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차세대 기술 패러다임에서도 전략적 불가결성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적·생태계적 기반을 지속적으로 발굴해야 한다.

협력적 기술 주권(cooperative technology sovereignty) 추구 역시 한국의 전략 틀에서 중요하다. 완전한 기술 자립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한국은 중견국과의 전략적 네트워크를 통해 집합적 레버리지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서로 주고받는 상호적 주권 전략으로, 일방적 의존이 아닌 복수의 파트너십을 통해 각 분야에서의 의존도를 분산하고, 협력 관계는 상호 강화하는 구조를 지향하는 것이다. 한국이 NeurIPS 등 최전선 AI 연구 커뮤니티에서 존재감을 확대하고, AI 서울 정상회의를 공동 개최하며, UN AI Hub 유치를 추진하는 것은 이 방향성의 실질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소버린 AI 중심의 기술 추격을 흡수 역량과 기초 체력 강화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전략적의 의미는 타당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음 패러다임 전환의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다.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이 디지털 전환의 교차점에서 메모리 시장을 선점한 경험처럼, AI 시대에도 현재 기술의 한계가 분명해지는 공정 혁신 모멘트(Process Innovation Moment)를 포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트랜스포머 이후의 아키텍처, 양자-AI 융합, 에너지 효율 AI 등 차세대 기술 영역에서 선제적 포지셔닝을 확보하는 것이 장기적 경쟁력의 관건이다.

3. 한반도에 대한 함의

AI 전략 경쟁이 한반도에 미치는 함의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다. 첫째, 미중 AI 경쟁의 심화는 한국의 전략적 딜레마를 구조적으로 고착화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중국의 AI 영토 확대를 최대한 억제하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 주도의 AI 공급망(풀스택)에 참여하면서도 중국 시장과의 경제적 연계를 유지해야 하는 양면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중동 지역에서 미국이 중국산 기술을 제거하고 미국 기술 중심으로 시장 재편을 완료함으로써 시장이 축소된 것처럼, 한국의 AI 수출 공간도 지정학적 분열에 따라 점차 제한될 수 있다.

둘째, 북한의 AI 역량과 남북관계에 대한 구조적 함의를 검토해야 한다. 북한은 국제 제재 하에서 첨단 GPU와 AI 개발 도구에 대한 접근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으나, 중국의 오픈소스 AI 확산 전략은 이 제약을 부분적으로 완화할 가능성이 있다. DeepSeek을 비롯한 중국산 오픈소스 모델의 확산은 고성능 GPU 없이도 일정 수준의 AI 역량을 구축할 수 있는 경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은 사이버 공격, 암호화폐 탈취, 선전 및 기만 활동 등의 분야에서 AI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정황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는 군사·안보 분야에서 남북 간 AI 역량 격차가 일반적인 기술 격차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셋째, 한국의 대북 AI 협력 가능성의 조건과 전망을 구조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현재 국제 제재 체계와 남북 관계의 경색 국면 하에서 대북 AI 협력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러나 중 장기적인 관점에서, AI는 남북 통합의 새로운 매개체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북한의 농업, 의료, 교육 분야에서의 AI 활용이 남북 경제협력의 새로운 틀을 제공할 수 있으며, 지식 및 거버넌스 분야에서는 AI를 통한 북한 정보 환경의 변화가 장기적으로 사회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가능성은 북한 AI 역량의 군사적 활용을 억제하는 동시에 민간 활용을 지원하는 고도로 정교한 이중 전략을 전제로 한다.

넷째, AI 시대의 한반도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이 미중·북한 모두에게 대체 불가능한 AI 파트너로서의 위상을 구축하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에는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기술 제공자로, 여러 국가에는 신뢰할 수 있는 AI 기술 협력 상대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북한에는 AI 기반 발전의 실질적 협력자로 자리매김한다면, AI는 단순한 기술 경쟁의 도구를 넘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구조적 기반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AI 전략이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를 넘어, 동북아와 글로벌 AI 거버넌스의 맥락 속에서 통일과 평화라는 거시적 목표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결국, AI 시대 한국의 전략적 성공은 기술적 역량 확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략적 불가결성의 지속적인 발굴, 협력적 기술 주권 구현, 중견국 네트워크 구축, 그리고 AI를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장기적 도구로 자리매김시키는 거시적 전략의 수립이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한국은 AI 시대의 진정한 수혜자이자 능동적 형성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동태적인 정책 업데이트와 지속적인 파인 튜닝(fine-tuning)이 필수적이며, 어느 단일 행위자도 AI를 독점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 속에서, 국제적 네트워크를 통해 협력하며 AI 확산을 주도하는 상호적 주권 전략이 요구된다. 


■ 저자: 백서인_한양대학교 글로벌문화통상학부 교수.


■ 담당 및 편집: 임재현_EAI 연구원
문의: 02-2277-0746 (ext. 209) jhim@eai.or.kr

첨부파일

  • 백서인_AI를 둘러싼 일반적 동향_260914_EAI 워킹페이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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