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용도 기술 수출통제 강화에 따른 한국 방산·우주 산업의 규제 리스크와 전략적 대응 방향
총괄 요약
Executive Summary
이중용도 기술 수출통제 강화는 단순한 규제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민·군 기술 경계의 구조적 붕괴와 AI·드론·우주 분야의 급속한 기술 발전이 맞물리며 초래된 패러다임 전환으로, 한국 방산·우주 기업들은 기존의 규정 준수 중심 접근만으로는 이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ITAR/EAR 적용 범위가 첨단 AI 칩·자율 시스템·우주 기술 전반으로 지속 확대되는 가운데, 국제 규범 합의는 미·중 전략 경쟁으로 인해 지연되고 있어 규제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는 '선택적 강화' 국면이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발생 확률 약 55%)로 전망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 기업들이 취해야 할 핵심 대응 방향은 기술 개발 단계부터 수출통제 준수 가능성을 설계 요소로 내재화하는 '규제 선제 대응형 기술 아키텍처' 구축과, 폴란드·호주·UAE 등 기존 방산 협력 성과를 발판으로 미국 및 유럽 방산 생태계 내 '전략적 내부자'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규제 강화의 불확실성을 위협으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 우위 확보의 기회로 전환하는 적극적 전략이 요구되며, 이를 위해서는 기업 차원의 규정 준수 역량 강화와 함께 정부 차원의 동맹국 외교·협정 확대가 병행되어야 한다.
I. 이슈 상황분석
이중용도 기술 수출통제 강화와 방산·우주 분야 규제 리스크
이슈 상황분석
1. 이슈 배경 및 경과
이중용도(dual-use) 기술이란 민간과 군사 목적 모두에 활용될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하며, 냉전 시대부터 국제 수출통제 체계의 핵심 관리 대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문제는 질적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과거에는 기술이 민간 목적으로 개발된 후 군사적으로 전용되는 패턴이 일반적이었다면, 현재는 처음부터 민·군 양용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는 '이중용도 목적 설계(dual-use by design)' 연구가 유럽을 중심으로 급증하고 있다. SIPRI는 이러한 추세가 기존 수출통제 체계의 근본적인 전제를 흔들고 있다고 경고하며, 다자간 수출통제 협력 유지 자체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이 촉발한 유럽의 대규모 재무장 움직임이 자리하고 있다. 유럽과 캐나다의 방위비 지출은 전년 대비 900억 달러 증가하였으며[17], 각국 정부는 드론, AI, 자율 시스템 등 첨단 기술을 방위 분야에 빠르게 통합하고 있다[5]. 문제는 이 과정에서 민간 기술과 군사 기술 간의 경계가 급격히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 산업의 반도체 칩이나 셰일가스 채굴용 파이프가 미사일 추진체 생산에 전용되는 사례가 등장하는 등[1], 공급망 전반에 걸쳐 이중용도 기술의 확산이 가속화되고 있다.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UN 산하 독립 국제 과학 패널은 AI 기술의 발전 속도가 과학적 이해와 정부의 정책 대응 능력을 모두 앞지르고 있다고 경고하였으며[3][10], 이는 AI 기반 무기체계에 대한 수출통제 규범 형성이 기술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과 중국 간의 군사 AI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8], 기존의 다자간 수출통제 협력 체계인 바세나르 협정 등은 이러한 신흥 기술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데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2. 현재 상황 (최신 동향)
현재 국제 수출통제 환경은 복수의 흐름이 동시에 전개되는 복합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첫째, 미국은 ITAR(국제무기거래규정) 및 EAR(수출관리규정)의 적용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특히 첨단 AI 칩과 서버에 대한 수출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AI 서버 공급망 전반에서 밀수 시도가 적발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엔비디아와 같은 기업들이 자체적인 검증 절차를 강화하는 상황이다[13]. 이는 반도체와 방산·우주 기술이 교차하는 영역에서 규제 리스크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AI 무기체계에 대한 새로운 국제 규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으나 실질적 합의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기계 전쟁(machine warfare)'의 도래가 가시화되는 가운데[8],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적 경쟁 구도로 인해 글로벌 규칙 형성이 지연되고 있다. UN 패널은 AI 능력이 과학적 이해와 정부의 적응 능력을 앞지르고 있다고 명시적으로 경고하였으며[3], 이는 규제 공백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임을 시사한다.
셋째, 방산 분야에서 민간 기술의 군사적 활용이 가속화되면서 공급망 관리의 복잡성이 증대되고 있다. 방산 스타트업들이 자동차용 칩과 산업용 부품을 무기 생산에 전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1], 우크라이나의 Brave1 플랫폼이 에어버스와 같은 서방 방산 기업과 협력을 확대하는 등[14] 기술 이전과 공동개발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북한의 드론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무인 전투 역량 강화 계획이 발표되었으며[2], 이는 국내 드론 산업의 성장과 동시에 관련 기술의 수출통제 리스크를 함께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3. 주요 행위자 및 각 행위자의 입장/이해관계
미국은 이중용도 기술 수출통제의 핵심 설계자이자 집행자로서, ITAR/EAR를 통해 동맹국을 포함한 전 세계 기술 이전을 통제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은 기술 우위 유지와 중국·러시아로의 기술 유출 차단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으며, 이를 위해 동맹국에게도 방위비 증액(GDP의 3.5%)과 함께 엄격한 기술 통제 준수를 요구하고 있다[16]. 미국의 AI 산업계 일부는 중국과의 경쟁을 명분으로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으나[11], 안보 당국은 오히려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 내부적 긴장이 존재한다.
EU 및 NATO는 재무장 필요성과 기술 주권 확보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NATO는 방위비 증액 공약을 이행하면서도 실질적인 무기 생산 능력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17], 유럽 방산 기업들의 이중용도 기술 연구 급증은 수출통제 규범과의 충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EU는 한국과의 안보 협력 강화를 촉구하면서도[7], 북한-러시아 군사 협력 심화에 따른 확산 리스크를 우려하고 있다.
한국은 방산 수출 확대와 수출통제 규정 준수라는 상충되는 압력에 동시에 직면해 있다. 한국은 폴란드, 호주, UAE 등을 대상으로 방산 수출을 적극 확대하고 있으며, 국내 드론 산업 육성과 무인 전투 역량 강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2]. 그러나 반도체 수출 의존도가 높아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는 OECD의 경고[4]와 호르무즈 해협 물류 리스크[6]는 방산·우주 분야의 공급망 안정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 방산·우주 기업들은 미국산 부품 및 기술을 활용한 제품을 제3국에 수출할 때 ITAR의 재수출 통제 조항에 구속되며, 이는 수출 계약 협상에서 구조적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방산 스타트업 및 민간 기술 기업들은 기존 방산 대기업의 느린 생산 속도를 대체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나[1], 이중용도 기술 활용에 따른 수출통제 컴플라이언스 부담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황이다. 터키의 아셀산이 민간 통신 기업과 협력하여 스마트폰을 공동 개발하는 사례[9]는 방산 기업의 민간 기술 통합이 전 세계적 추세임을 보여주며, 이는 규제 당국의 감시를 강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4. 핵심 쟁점 정리
첫 번째 핵심 쟁점은 기술 정의의 모호성과 규제 공백이다. 이중용도 목적 설계 기술의 급증으로 인해 어떤 기술이 수출통제 대상인지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 AI, 드론, 자율 시스템 등 신흥 기술 분야에서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통제 기준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으며[3][8], 이 규제 공백은 기업에게는 법적 불확실성으로, 정부에게는 안보 리스크로 작용한다.
두 번째 쟁점은 다자간 수출통제 협력의 약화이다.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로 인해 바세나르 협정 등 기존 다자 체계의 실효성이 저하되고 있으며, 각국이 독자적인 수출통제 기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는 한국 방산·우주 기업들이 복수의 상이한 규제 체계를 동시에 준수해야 하는 '규제 중복(regulatory layering)' 부담을 가중시킨다.
세 번째 쟁점은 공급망 투명성과 재수출 통제 리스크이다. 민간 부품이 방산 제품에 통합되고, 해당 제품이 제3국에 수출되는 복잡한 공급망 구조 속에서 ITAR의 재수출 통제 조항 위반 리스크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1][13]. 한국 기업들이 미국산 기술이 포함된 위성, 발사체, 드론 등을 중동이나 동남아시아에 수출할 경우, 미국 정부의 사전 승인(license) 취득 의무가 핵심 장애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네 번째 쟁점은 기술 주권과 동맹 의존성 간의 딜레마이다. 한국을 포함한 중견국들은 첨단 방산·우주 기술 개발을 위해 미국 및 NATO 동맹국과의 협력이 불가피하지만, 이 협력 자체가 수출통제 규정에 의해 제약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해 있다. 기술 자립도를 높이지 않으면 수출통제 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없고, 기술 자립을 위한 협력 과정에서도 수출통제 규정의 적용을 받는 구조적 딜레마가 한국 방산·우주 산업의 중장기 성장 전략에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4][16].
II. 이슈 심층분석
이중용도 기술 수출통제 강화와 방산·우주 분야 규제 리스크
이슈 심층분석
1. 이슈의 근본 원인 분석
이중용도 기술 수출통제 강화 문제의 근본 원인은 단순한 규제 강화 의지가 아니라, 기술 발전의 구조적 패러다임 전환에서 비롯된다. 전통적인 수출통제 체계는 기술의 민군 용도가 비교적 명확히 구분되던 냉전 시대의 논리를 기반으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AI, 드론, 첨단 반도체, 우주 기술 등의 영역에서는 민간 기술과 군사 기술 간의 경계 자체가 소멸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반도체 칩이 미사일 추진체에 전용되고, 셰일가스 채굴용 파이프가 무기 생산에 활용되는 현실은[1] 이 경계의 붕괴가 이미 공급망 전반에서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SIPRI가 지적한 '이중용도 목적 설계(dual-use by design)'의 확산이다. 과거에는 민간 기술이 사후적으로 군사 목적에 전용되는 것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처음부터 민·군 양용을 전제로 기술을 설계하는 방식이 유럽을 중심으로 제도화되고 있다. 이는 수출통제 체계가 통제 대상 기술을 사전에 특정하고 목록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작동 불능 상태를 초래할 수 있다. 통제 대상 기술의 경계 자체가 설계 단계에서부터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설정된다면, 어떤 기술이 통제 대상인지를 판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AI 기술의 발전 속도는 이 문제를 한층 더 심화시키는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 UN 독립 국제 과학 패널은 AI 기술의 발전이 과학적 이해와 정부의 정책 대응 능력을 모두 앞지르고 있다고 명시적으로 경고하였으며[3][10], 이는 규제 당국이 통제 대상 기술의 위험성조차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규제를 설계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을 의미한다. 특히 AI 기반 자율 무기체계는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이 핵심 기술 요소이기 때문에, 물리적 하드웨어 이전을 중심으로 설계된 기존 수출통제 체계로는 효과적인 통제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지정학적 경쟁의 심화 또한 핵심적인 근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이 기술 패권 경쟁으로 전환되면서, 각국은 수출통제를 안보 수단이자 경제적 무기로 동시에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이 첨단 AI 칩에 대한 수출통제를 강화하자 중국 기업들이 밀수를 통해 이를 우회하려는 시도가 공급망 전반에서 적발되고 있으며[13], 이는 수출통제의 실효성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동시에 규제 강화의 악순환을 촉발하고 있다. 결국 수출통제 강화는 기술 확산을 막기 위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지정학적 경쟁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이중적 역학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2. 구조적 맥락
정치적 구조
현재의 수출통제 강화 흐름은 단일한 정치적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복수의 정치적 압력이 중첩된 결과물이다. 가장 핵심적인 구조적 압력은 미국 주도의 동맹 재편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GDP 대비 3.5% 수준의 방위비 지출을 압박하면서[16], 동시에 첨단 기술의 이전에 대해서는 엄격한 통제를 유지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는 동맹국들이 방위력을 강화하되, 그 과정에서 미국의 기술 우위를 위협하는 방향으로는 발전하지 않도록 관리하려는 전략적 의도를 반영한다.
유럽의 정치적 맥락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촉발한 재무장 압력과 미국의 유럽 주둔 감축 위협이 결합되면서[5], 유럽 각국은 방위 자율성 확보를 위해 이중용도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에어버스가 우크라이나의 방산 기술 생태계인 Brave1과 군사 기술 공동 연구 및 테스트를 위한 협력 협약을 체결한 것은[14] 이러한 정치적 압력이 구체적인 산업 협력으로 전환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생산되는 기술들이 기존 수출통제 체계의 어느 범주에 속하는지가 불분명해지는 정치적 딜레마가 발생하고 있다.
경제적 구조
경제적 구조 측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방산 기술 개발의 주체가 전통적인 대형 방산업체에서 스타트업과 민간 기술 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스타일의 스타트업들이 생산 속도, 대량 생산, 비용 절감을 무기로 전통 방산업체와 경쟁하며 방산 시장에 진입하고 있으며[1], 이들은 기존 방산업체와 달리 수출통제 규정 준수 체계가 상대적으로 미비한 경우가 많다. 이는 수출통제 리스크가 대형 방산업체에 집중되던 과거와 달리, 공급망 전반으로 분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도체 분야의 구조적 취약성 또한 방산·우주 분야의 수출통제 리스크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OECD는 한국의 반도체 수출 의존도가 외부 충격에 대한 취약성을 높이고 있다고 경고하였으며[4], 이는 방산·우주 분야에서 첨단 반도체를 핵심 부품으로 사용하는 한국 기업들에게 이중적 리스크를 의미한다. 수출통제 강화로 인해 핵심 부품 조달이 어려워지는 동시에, 자국이 생산하는 반도체 기술 자체가 수출통제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보적 구조
안보적 구조의 핵심은 기술 우위가 곧 안보 우위로 직결되는 현대 전장 환경의 변화에 있다. 드론, AI, 자율 시스템이 전쟁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가운데[5], 각국은 이러한 기술의 확산을 통제함으로써 전략적 우위를 유지하려 한다. 북한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드론 능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은[2] 이러한 기술 확산이 이미 적대 세력에게도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는 역설적으로 수출통제 강화의 명분을 강화하는 동시에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군사 AI에 관한 글로벌 규칙 형성이 지연되는 가운데[8] '기계 전쟁'의 도래가 가시화되고 있어, 안보 딜레마가 수출통제 체계의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3. 역사적 선례 및 유사 사례 비교
이중용도 기술 수출통제의 역사는 냉전 시대 코콤(COCOM, 대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의 설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9년 설립된 코콤은 서방 진영이 소련과 동구권에 대한 전략 물자 및 기술 수출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다자간 협력 체계로, 현재의 바세나르 협정의 직접적인 전신이다. 코콤 체제가 직면했던 가장 큰 도전은 기술의 민군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는 문제였으며, 이는 현재의 상황과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특히 1980년대 일본 도시바가 소련에 정밀 공작기계를 수출하여 소련 잠수함의 소음 감소 기술 향상에 기여한 이른바 '도시바 사건'은 이중용도 기술 통제의 실패가 안보에 직결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준 역사적 사례로 남아 있다. 이 사건은 미국이 동맹국 기업에 대해서도 강력한 제재를 부과할 수 있다는 선례를 확립하였으며, 이는 현재 한국 방산·우주 기업들이 직면한 규제 환경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다.
냉전 종식 이후 코콤을 대체하여 1996년 출범한 바세나르 협정은 보다 포괄적인 이중용도 기술 통제를 목표로 하였으나, 참여국 간 합의를 요구하는 구조로 인해 신흥 기술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 한계는 2010년대 사이버 감시 기술의 확산 문제에서 이미 드러난 바 있다. 당시 유럽 기업들이 개발한 사이버 감시 소프트웨어가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반체제 인사 탄압에 활용되면서 이중용도 기술 통제의 허점이 국제적 논란이 되었고, 이는 바세나르 협정에 사이버 감시 기술을 추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러시아의 반대로 합의 도출이 수년간 지연되었으며, 이는 현재 AI 무기체계에 대한 국제 규범 형성이 지연되는 상황과 구조적으로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8].
가장 직접적인 유사 사례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진행된 위성 기술 수출통제 강화 사례이다. 1998년 미국 의회는 위성 기술을 상무부 관할의 EAR에서 국무부 관할의 ITAR로 이관하는 입법을 단행하였는데, 이는 중국이 미국 기업의 위성 발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탄도미사일 기술을 획득했다는 의혹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조치는 미국 위성 산업에 심각한 경쟁력 저하를 초래하였으며, 유럽 발사체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누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 역사적 선례는 수출통제 강화가 규제 당국의 의도와 달리 산업 경쟁력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현재 한국 우주 방산 기업들이 직면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조점을 제공한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미국의 대중국 첨단 반도체 수출통제가 가장 직접적인 현재 진행형 선례로 작용하고 있다. 2022년 이후 미국이 단계적으로 강화해온 첨단 AI 칩 수출통제는 중국 기업들의 밀수 시도를 촉발하였고[13], 이에 대응하여 미국은 통제 범위를 더욱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반도체 수출 의존도가 외부 충격에 대한 취약성을 높인다는 OECD의 경고[4]는 방산·우주 분야에서 첨단 반도체를 핵심 부품으로 사용하는 한국 기업들에게 직접적인 함의를 가진다.
4. 이슈 전개의 핵심 변수
이슈의 향후 전개를 결정할 핵심 변수는 크게 네 가지 차원에서 식별할 수 있다.
첫째, 미국의 ITAR/EAR 규제 범위 확장 속도와 방향성이다. 미국이 AI 기반 무기체계 및 우주 기술에 대한 수출통제 범위를 어느 속도로, 어느 방향으로 확장하느냐가 한국 방산·우주 기업들의 사업 환경을 결정하는 가장 직접적인 변수이다. 특히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 형태의 AI 기술을 ITAR/EAR의 통제 대상으로 명시적으로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규제가 강화될 경우, 공동 개발 및 기술 이전 방식 전반에 걸쳐 근본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해진다. AI 서버 공급망에서 밀수 시도가 적발되면서 엔비디아가 자체 검증 절차를 강화하는 흐름은[13] 이러한 규제 강화가 민간 기업의 자율 규제로도 확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둘째, 다자간 수출통제 협력 체계의 유지 가능성이다. 바세나르 협정을 비롯한 기존 다자간 수출통제 체계가 AI, 드론, 우주 기술 등 신흥 기술을 효과적으로 포괄하는 방향으로 개편될 수 있는지 여부가 핵심 변수이다.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규칙 형성이 지연되고 있으며[8], 이는 각국이 독자적인 수출통제 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높인다. 다자 협력이 약화되고 각국의 독자적 규제가 강화될수록, 한국 방산·우주 기업들은 복수의 규제 체계를 동시에 준수해야 하는 복합적 부담에 직면하게 된다.
셋째, 한국의 방산 수출 확대 전략과 수출통제 규정 준수 역량 간의 균형이다. 한국은 폴란드, 호주, UAE 등을 대상으로 방산 수출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산 부품 및 기술이 포함된 무기체계의 제3국 이전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 방산·우주 기업들이 미국의 ITAR/EAR 규정을 준수하면서도 수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규정 준수 역량을 얼마나 신속하게 구축하느냐가 수출 확대 전략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EU 대사가 한국과 EU 간의 안보 및 경제 협력 강화를 촉구하고 있는 것은[7] 한국이 미국 일변도의 방산 협력 구조에서 벗어나 다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외교적 공간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넷째, 북한·러시아 군사 협력의 심화와 기술 확산 리스크이다. 북한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드론 능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있으며[2], 북한의 불법 석탄 수출 증가가 제재 감시 약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은[15] 수출통제 체계의 실효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EU 대사가 북한·러시아 군사 협력의 심화가 한반도 비확산 리스크를 높이고 있다고 경고한 것은[7] 이 문제가 단순한 규제 준수 문제를 넘어 한국의 안보 환경 전반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의 드론 및 미사일 기술 고도화가 가속화될수록, 한국 정부는 국내 방산·우주 기업들에 대한 기술 보안 강화 압력을 높이는 동시에 대응 역량 확충을 위한 기술 개발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