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대지진과 미국의 전략적 인도주의 개입: 과도 정부의 통치 위기와 양국 관계 재편
총괄 요약
총괄 요약 (Executive Summary)
2026년 6월 베네수엘라를 강타한 규모 7.2·7.5의 연속 대지진은 사망자 2,645명 이상, 부상자 12,666명, 피해액 67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인도적 위기를 초래하였으며, 이 피해의 심각성은 단순한 자연재해의 결과가 아니라 마두로 체제 20여 년간 누적된 인프라 붕괴·제도적 취약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구조적 재난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2,000명 이상의 군 병력을 전개하고 라과이라 항구 복구를 주도하는 등 금세기 최대 규모의 인도적 군사작전을 수행함으로써, 재난 대응을 미국의 대베네수엘라 전략적 개입의 핵심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마두로 체포 이후 불과 5~6개월 만에 재난이 겹친 과도 정부는 통치 역량의 공백을 드러냈으며, 지지율 급락과 구호 배분 과정에서의 구(舊)체제 관료 개입 논란은 정치적 정통성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번 사태는 트럼프 행정부가 설계한 안정화·회복·전환의 3단계 로드맵의 이행 경로를 재조정하도록 압박하는 동시에, 중남미에서의 미국의 영향력 재건과 미중 경쟁 구도, 그리고 베네수엘라 석유 자원을 둘러싼 공급망 재편 가능성에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인도적 지원 참여를 통한 중남미 외교 지평 확대 가능성을 검토하는 한편, 베네수엘라 과도 정부의 안정화 여부와 미국의 서반구 전략 변화가 에너지·공급망 등 경제안보 영역에 미치는 파급 효과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I. 이슈 상황분석
베네수엘라 대지진: 인도적 위기와 미국-베네수엘라 관계 변화
이슈 상황분석
1. 이슈 배경 및 경과
베네수엘라는 2026년 상반기 동안 두 차례의 대형 충격을 연속으로 경험했다. 첫 번째는 지정학적 충격으로, 미국의 군사작전을 통해 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이 체포되면서 수십 년간 지속된 차베스-마두로 체제가 붕괴되었다. 이후 델시 로드리게스를 수반으로 하는 과도 정부가 출범하였으며, 트럼프 행정부는 이 과도 정부를 상대로 안정화·회복·전환의 3단계 로드맵을 설계하고 점진적인 관계 정상화를 추진해왔다[7]. 두 번째 충격은 자연재해로, 6월 24일 베네수엘라 북부를 강타한 규모 7.2와 7.5의 연속 대지진이 카라카스 인근 라과이라(La Guaira)를 비롯해 미란다, 아라과, 카라보보 등 주요 지역을 초토화시켰다[1].
이 두 충격의 연속성은 베네수엘라의 현재 위기를 단순한 자연재해로 환원하기 어렵게 만든다. 마두로 체제하에서 수년간 지속된 경제 제재, 인프라 노후화, 사회 서비스 붕괴는 지진의 물리적 피해를 구조적으로 증폭시켰으며[7], 이는 재난 대응 역량이 이미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에서 대규모 인도적 위기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지진 직후 초기 집계에서 188명 수준이었던 사망자 수는[15] 수색·구조 작업이 진행되면서 급속히 증가하여 일주일 만에 2,295명을 넘어섰고[2], 이후 2,645명 이상으로 최종 집계되었으며 부상자도 12,666명에 달하고 수만 명이 여전히 실종 상태다[13]. 피해 규모는 건물 855채 이상이 손상되었고 예비 피해액은 67억 달러로 추산된다[3][13].
2. 현재 상황 (최신 동향)
지진 발생 일주일이 경과한 시점에서 생존자 발견 가능성은 급격히 낮아지고 있으며, 라과이라 시내 붕괴 건물 대부분에는 사망자 수색 완료를 의미하는 'D' 표시가 부착되었다[5]. 그럼에도 불구하고 24개국 이상의 특수 구조대가 계속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6일간 잔해에 갇혀 있던 어린아이가 기적적으로 구조되는 사례도 보고되었다[9]. 피해 지역 주민들은 식량 부족이라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5], 베네수엘라는 지진 발생 후 일주일 동안 707,063톤의 인도적 지원을 수령했다[4].
미국의 대응은 이번 사태에서 가장 두드러진 요소 중 하나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국내에 900여 명, 푸에르토리코와 퀴라소에 800여 명 등 총 2,000명 이상의 군 병력을 전개하였으며[11], 미군은 6월 29일 가장 피해가 심각한 라과이라 항구를 복구·재개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6]. 미국 국무부 외교 담당 차관보 제러미 루인은 이번 작전이 금세기 미국이 수행한 자연재해 대응 중 최대 규모의 인도적 작전이라고 평가했다[10]. 미국 측 임시 대리대사 존 배럿은 남부사령부 사령관 프랜시스 도노반 장군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트럼프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3단계 계획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을 재확인하면서도 재난 이후 이행 경로가 "다소 다르게 보일 것"이라고 인정했다[2].
과도 정부 수반 델시 로드리게스는 7월 1일부터 7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16], 미국 국무부 및 IMF와 인프라 재건을 위한 자금 확보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공식 발표했다[3]. 세계은행과 미주개발은행도 무상 협력 및 신용 공여 의사를 밝혔다[3].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미국-베네수엘라 관계가 '최상'이라고 공개적으로 평가하며 과도 정부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3. 주요 행위자 및 각 행위자의 입장·이해관계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인도적 지원을 단순한 재난 구호를 넘어 대베네수엘라 전략의 연장선에서 운용하고 있다. 미군의 항구 복구와 구조 작전 참여는 과도 정부와의 실질적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중남미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가시적으로 확장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미국 측은 과도 정부가 항구와 공항 접근을 원활히 허용하는 등 "완전한 협력"을 이행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만족감을 표시했다[1]. 이는 마두로 체포 이후 추진해온 3단계 전략의 첫 번째 단계인 안정화 국면에서 인도적 지원이 정치적 신뢰 구축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2].
베네수엘라 과도 정부(델시 로드리게스 수반)는 이번 재난을 국제사회와의 관계 정상화를 가속화하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 IMF, 세계은행, 미주개발은행과의 협의를 공개적으로 발표함으로써 국제 금융 시스템으로의 재편입 의지를 표명하는 한편[3],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수용함으로써 실용적 협력 노선을 택했다. 그러나 재난 대응의 실효성에 대한 국내 비판이 거세지면서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6월 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3.3%가 로드리게스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으며, 응답자의 52.4%가 정부의 재난 대응을 '매우 불량'하다고 평가했다[14].
베네수엘라 해외 망명 공동체는 미국의 대응 방식에 강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플로리다 도랄 지역의 주요 망명자 단체들은 과도 정부가 민간 구조 활동과 구호품 배분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트럼프 행정부가 로드리게스 정부에 대해 '만족'을 표명한 것을 철회하고 입장을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8]. 이들은 과도 정부를 '후견 정부(gobierno tutelado)'로 규정하며 차베스주의 잔재 세력과의 협력에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국제기구(IMF, 세계은행, 미주개발은행)는 재건 지원을 매개로 베네수엘라의 국제 금융 질서 편입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될 전망이다. 이들 기관의 개입은 단순한 재난 복구를 넘어, 베네수엘라 경제 구조 재편과 거버넌스 개혁을 유도하는 조건부 지원의 성격을 띨 가능성이 높다[3].
4. 핵심 쟁점 정리
첫 번째 핵심 쟁점은 3단계 전략의 이행 경로 변화다. 미국의 대베네수엘라 안정화·회복·전환 로드맵은 지진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순서와 우선순위가 재조정될 수밖에 없다. 배럿 대리대사가 인정했듯이 경로가 "다소 다르게 보일 것"이라는 표현은[2], 재건 지원이 정치적 전환 일정과 어떻게 연동될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대규모 인프라 재건 수요는 과도 정부의 국제 협력 의존도를 심화시켜 미국의 레버리지를 강화하는 동시에, 전환 일정 자체를 지연시킬 수 있는 양면성을 지닌다.
두 번째 쟁점은 과도 정부의 정통성 위기다. 재난 대응 실패에 대한 국내 비판이 고조되면서 로드리게스 과도 정부의 지지 기반이 약화되고 있으며[14], 망명 공동체는 미국이 이 정부를 지나치게 옹호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8]. 미국이 과도 정부와의 협력을 유지하면서도 국내 정치적 정통성 문제를 어떻게 관리할지가 향후 전략의 핵심 변수로 부상한다.
세 번째 쟁점은 재건 과정에서의 경제적 이해관계 재편이다. 67억 달러 규모의 피해 복구를 위한 IMF 및 국제 금융기관과의 협의[3][13]는 베네수엘라의 석유 자원 접근권, 부채 재조정, 경제 개혁 조건 등과 연계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통상·경제안보 측면에서 공급망 재편 및 자원 외교의 새로운 국면을 열 수 있다.
네 번째 쟁점은 중남미에서의 미국 영향력 확장과 지역 정세 변화다. 미국이 금세기 최대 규모의 인도적 작전을 베네수엘라에서 전개한 것은[10] 서반구에서의 미국의 전략적 존재감을 재확인하는 신호로 읽힌다. 이는 중남미에서 영향력 확대를 모색해온 중국 및 러시아와의 간접적 경쟁 구도와도 맞닿아 있으며, 지역 정세 측면에서 미국의 서반구 전략이 인도적 개입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구체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II. 이슈 심층분석
베네수엘라 대지진: 인도적 위기와 미국-베네수엘라 관계 변화
이슈 심층분석: 근본 원인, 구조적 맥락, 역사적 선례 분석
1. 이슈의 근본 원인 분석
이번 베네수엘라 대지진이 초래한 인도적 위기의 심각성은 단순히 지진의 물리적 규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피해가 이토록 광범위하고 치명적으로 확대된 데에는 자연적 요인과 인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 두 층위를 분리하지 않고서는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렵다.
자연적 차원에서 보면, 베네수엘라 북부 해안 지역은 카리브판과 남아메리카판이 접하는 지각 경계선을 따라 형성된 고위험 지진대에 위치해 있다. 규모 7.2와 7.5의 연속 지진은 그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파괴력을 지니며, 특히 라과이라와 카라카스 등 인구 밀집 도시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피해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15]. 그러나 지진의 물리적 강도가 피해의 충분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동일한 규모의 지진이라도 사회 기반시설의 내진 설계 수준, 긴급 대응 체계의 작동 여부, 주민들의 대피 역량에 따라 피해 규모는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위적 차원에서 이번 재난의 근본 원인을 추적하면, 마두로 체제 20여 년간 누적된 구조적 취약성이 핵심으로 부상한다. 미국과 서방의 경제 제재, 석유 수출 급감으로 인한 재정 붕괴, 만성적인 부패와 국가 자원의 사적 유용은 베네수엘라의 공공 인프라를 극도로 취약한 상태로 방치했다[7]. 건축물의 내진 기준 미달, 노후화된 항만·공항 시설, 붕괴된 의료 체계는 지진이라는 외부 충격에 사회 전체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게 만들었다. 실제로 피해 집계에서 855채 이상의 건물이 손상되었고 예비 피해액이 67억 달러에 달한다는 수치는[3][13], 단순한 지진 피해가 아니라 수십 년간 방치된 인프라 부실의 총체적 결과로 읽혀야 한다.
여기에 더하여 마두로 체포 이후 과도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5~6개월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재난이 발생했다는 정치적 타이밍도 중요한 원인 변수로 작용한다[1][2]. 과도 정부는 국가 행정 체계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상태였고, 기존 차베스-마두로 체제의 관료 네트워크와 새로운 과도 정부 사이의 권력 이행이 완결되지 않은 불안정한 이행기에 재난이 겹쳤다. 이는 초기 대응 역량의 심각한 공백을 낳았으며, 베네수엘라 재외 동포 사회가 과도 정부의 구조 및 구호 배분 과정에서 차비스타 관료들이 민간 구조 활동을 방해했다고 비판하는 배경이 되었다[8].
2. 구조적 맥락
정치적 구조
이번 사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정치적 구조는 베네수엘라가 '이중 권력 이행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마두로 체포 이후 델시 로드리게스 과도 정부가 공식적인 국가 권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이 정부의 정통성과 실질적 통치 역량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지진 발생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로드리게스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락하여 불지지율이 63.3%에 달했으며, 응답자의 52.4%가 정부의 재난 대응을 '매우 불량'으로 평가했다[14]. 특히 재건보다 새로운 선거 실시가 더 시급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거의 절반에 달했다는 점은, 재난이 과도 정부의 정통성 위기를 심화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14].
미국의 입장에서 이 정치 구조는 복잡한 딜레마를 제기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과도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베네수엘라의 안정화를 도모하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 임시 대리대사 배럿은 과도 정부가 항구·공항 접근을 원활히 허용하는 등 "완전한 협력"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1][2]. 그러나 베네수엘라 재외 동포 사회는 미국이 차비스타 잔재 세력이 주도하는 과도 정부에 과도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반발하며, 트럼프 행정부가 과도 정부에 대한 입장을 재검토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8]. 이는 미국이 단기적 재난 대응의 효율성과 장기적 민주주의 전환이라는 두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구조적 긴장을 드러낸다.
경제적 구조
경제적 구조 측면에서 이번 재난은 이미 붕괴 직전에 있던 베네수엘라 경제에 추가적인 충격을 가했다. 마두로 체제하에서 진행된 초인플레이션, 달러화 경제의 비공식화, 석유 생산량 급감은 국가 재정 기반을 극도로 취약하게 만들었으며, 이 상태에서 67억 달러 규모의 재건 비용을 자체적으로 조달할 능력은 사실상 전무하다[13]. 이러한 구조적 재정 취약성이 바로 과도 정부가 미국 국무부, IMF, 세계은행, 미주개발은행 등과 동시에 재건 재원 협의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3]. 특히 IMF와의 협의는 단순한 재난 지원을 넘어, 베네수엘라가 국제 금융 체계에 재편입되는 과정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통상·경제안보 측면에서 베네수엘라의 방대한 석유 매장량과 핵심 광물 자원이 국제 공급망에 재통합될 가능성을 열어두는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안보적 구조
안보적 구조의 관점에서 가장 주목할 지점은 미군의 베네수엘라 내 전개 방식이다. 미국은 국내 900여 명, 역외 800여 명 등 총 2,000명 이상의 군 병력을 전개하고 항구 복구 및 수색·구조 작전을 직접 수행했으며[11], 미국 정부는 이를 금세기 최대 규모의 인도적 군사 작전으로 자평했다[10]. 이러한 군사적 개입의 규모와 속도는 순수한 인도적 동기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우며, 트럼프 행정부의 3단계 대베네수엘라 전략의 연장선에서 이해되어야 한다[2]. 남부사령부가 이번 작전의 핵심 실행 주체로 등장했다는 사실은,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단순한 인도적 지원 대상이 아니라 전략적 안보 이해관계가 걸린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역 정세·분쟁의 맥락에서 보면, 이번 미국의 개입은 중남미에서 미국의 전략적 영향력을 재확립하는 과정의 일부로, 러-우 전쟁이나 중동 분쟁과 같은 전통적 분쟁 지역에서의 개입 방식과는 다른 형태의 '연성 군사 개입' 모델을 보여준다.
신흥·비전통 안보의 관점에서도 이번 사태는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대규모 자연재해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비전통 안보 위협으로 기능한다는 점, 그리고 재난 대응 과정에서 국제기구와 다국적 행위자들이 국가 주권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은, 기후·재난 안보가 전통적 군사 안보와 불가분하게 연결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24개국 이상의 구조대가 베네수엘라에 파견되었다는 사실[9]은 재난 대응이 다자적 비전통 안보 협력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3. 역사적 선례 및 유사 사례 비교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와 가장 직접적으로 비교되는 역사적 선례는 2010년 아이티 대지진이다. 규모 7.0의 지진으로 약 22만 명이 사망한 아이티 사태에서도 미국은 대규모 군사력을 투입하여 인도적 지원을 주도했으며,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1만 명 이상의 미군을 파견했다. 아이티 사례는 정치적으로 취약하고 경제적으로 파탄 상태에 있는 국가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을 때 국제 사회, 특히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 모델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사례는 아이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아이티에서의 미국 개입은 비교적 중립적인 인도주의적 성격을 띠었던 반면, 베네수엘라에서의 개입은 마두로 체포 이후 진행 중인 정치적 전환 과정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훨씬 더 복잡한 지정학적 함의를 내포한다[7].
또 다른 유사 사례로는 1988년 소련의 아르메니아 스피탁 대지진을 들 수 있다. 당시 고르바초프 소련 지도부는 서방의 인도적 지원을 이례적으로 수용했으며, 이는 냉전 구도하에서 적대적 관계에 있던 국가들 사이에 인도적 협력의 공간이 열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사례는 재난이 지정학적 긴장을 일시적으로 완화하고 관계 재설정의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미국-베네수엘라 관계 변화와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 다만 스피탁 사례에서의 협력이 소련 체제의 근본적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은, 재난 협력이 정치적 전환의 충분조건이 되지 않는다는 역사적 교훈을 제공한다.
2004년 인도양 쓰나미 사례도 중요한 비교 준거를 제공한다. 당시 미국은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태국 등 피해국에 대규모 군사·인도적 지원을 제공했으며, 이는 해당 지역에서 미국의 소프트파워를 크게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경우 미국의 신속한 지원이 양국 관계 개선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사례는 재난 대응이 단순한 인도주의적 행위를 넘어 전략적 관계 재편의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베네수엘라 작전을 "금세기 최대 인도적 작전"으로 적극 홍보하는 전략적 의도와 맥락을 같이한다[10].
중남미 지역 내 선례로는 1985년 멕시코시티 대지진을 참조할 수 있다. 당시 멕시코 정부는 초기에 외국의 지원을 거부하는 민족주의적 입장을 취했으나, 피해 규모가 명확해지면서 국제 지원을 수용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자발적 구조 활동이 정부의 무능을 대체하면서 멕시코 민주화 운동의 씨앗이 되었다는 역사적 평가가 있다. 현재 베네수엘라에서도 과도 정부의 재난 대응 실패에 대한 불만이 정치적 변화 요구로 이어지는 유사한 동학이 관찰된다는 점에서[14], 이 선례는 재난이 정치 변화의 촉매로 작용하는 패턴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4. 이슈 전개의 핵심 변수
이슈의 향후 전개를 결정할 핵심 변수는 크게 네 가지 차원에서 식별된다.
첫째, 과도 정부의 정통성 유지 여부가 가장 중요한 내부 변수다. 로드리게스 과도 정부의 불지지율이 63.3%까지 상승하고 재난 대응에 대한 부정 평가가 압도적인 상황에서[14], 과도 정부가 재건 과정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정치적 위기가 심화될 수 있다. 반대로 미국·IMF·세계은행으로부터 확보한 재건 자원을 신속하고 투명하게 집행한다면, 과도 정부는 정통성 위기를 부분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3]. 이 변수는 베네수엘라 내부의 정치 지형뿐 아니라 미국의 대베네수엘라 전략 전체의 성패와도 직결된다.
둘째, 미국의 3단계 전략 이행 속도와 방식의 조정이 핵심 외부 변수로 작용한다. 배럿 임시 대리대사가 인정했듯이 재난 이후 3단계 계획의 이행 경로가 "다소 다르게 보일 것"이라는 점은[2], 안정화·회복·전환의 순서와 속도가 재조정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재건이라는 새로운 우선순위가 기존 정치적 전환 일정과 어떻게 조율되는지, 그리고 미국이 재건 지원을 정치적 조건과 연계할 것인지 여부가 향후 전개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셋째, 국제 금융기구의 개입 조건과 범위가 경제적 차원의 핵심 변수다. IMF와 세계은행이 제공하는 재건 지원이 어떤 조건을 수반하는지, 그리고 베네수엘라가 이 조건을 수용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지가 재건의 실질적 진전을 좌우한다[3]. 특히 IMF와의 협의는 베네수엘라의 국제 금융 체계 재편입이라는 더 큰 구조적 변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으며, 이는 통상·경제안보 측면에서 베네수엘라 석유 자원 및 핵심 광물의 국제 공급망 재통합 가능성과도 연결된다.
넷째, 중국의 대응과 중남미에서의 영향력 경쟁이 지역 정세 차원의 잠재적 변수로 부상할 수 있다. 미국이 이번 재난을 계기로 베네수엘라에서의 전략적 입지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마두로 체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중국이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는지가 중남미 지역 내 미중 영향력 경쟁의 새로운 국면을 형성할 수 있다. 미중 전략경쟁의 맥락에서 직접적인 연관성은 제한적이지만, 베네수엘라의 방대한 석유 매장량과 전략적 위치를 고려할 때 중국의 움직임은 이 이슈의 중장기적 전개에서 무시할 수 없는 변수로 남는다.
참고출처
[1] [Efecto Cocuyo] EEUU celebra el “cumplimiento total” del interinato en las labores de ayuda
[4] [Efecto Cocuyo] Una semana del doble terremoto de Venezuela en cifras
[5] [Hürriyet Daily News] Hope fades, hunger grows a week after Venezuela quakes
[6] [Hürriyet Daily News] Key Venezuela port opens with US aid, as burials begin
[11] [14ymedio] EE UU asume en Venezuela un papel predominante en el rescate tras los terremotos
[12] [France 24] 🔴 Venezuela death toll rises to 2,295, seven days of national mourning declared
[17] [Yonhap (연합뉴스)] Foreign ministry mulls dispatching relief team to quake-devastated Venezuela